<김삼기의 시사펀치> ‘제71회 현충일 추념식’ 보훈은 국가의 약속이다

기억은 추모로 시작되지만 책임은 실천으로 완성

1년 전 이재명 대통령은 취임 후 이틀 만에 첫 국가기념일 행사로 ‘제70회 현충일 추념식’에 참석했다. 당시 이 대통령은 “특별한 희생에는 특별한 보상이 주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참전유공자 배우자 지원 강화, 빈틈없는 보훈의료체계 구축, 군 경력 보상 현실화, 군 장병과 경찰·소방공무원 복무 여건 개선도 약속했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났다. 이제 제71회 현충일을 맞아 우리는 국가가 그 약속을 얼마나 실천했는지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현충일은 기억의 날이고 책임의 날이다. 정치권은 이날마다 순국선열과 호국영령 앞에서 고개를 숙인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고개 숙이는 장면이 아니라 그 이후의 실천이다. 국립현충원에서의 묵념이 하루의 의전으로 끝난다면 보훈은 형식이 된다.

국가가 진정으로 희생을 기억한다면 그 기억은 예산이 되고 제도가 되고 일상의 예우가 돼야 한다.

지난해 이 대통령의 추념사는 분명한 방향을 담고 있었다. 독립운동가, 참전용사, 민주주의를 위해 희생한 이들을 함께 언급했고 군 장병, 경찰관, 소방관을 ‘제복 입은 민주시민’이라고 불렀다. 보훈을 보수의 언어로만 두지 않고 민주주의의 언어와 연결하려는 시도였다.

안보와 민주, 희생과 헌신, 예우와 책임을 하나의 국가 가치로 묶으려는 메시지였다. 그런 점에서 지난해 현충일 추념사는 새 정부의 통합 메시지이기도 했다.

그렇다면 1년이 지난 지금, 가장 먼저 점검해야 할 것은 참전유공자 배우자 지원이다. 지난해 이 대통령은 참전유공자가 세상을 떠난 뒤 남겨진 배우자가 생활의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 사각지대를 해소하겠다고 약속했다. 이 부분은 일정 부분 이행됐다고 볼 수 있다.

고령·저소득 참전유공자 배우자에게 생계지원금을 지급하는 제도가 마련됐고, 80세 이상 생계가 어려운 배우자를 대상으로 월 15만원을 지원하는 길이 열렸다. 참전유공자 본인에게 지급되는 참전명예수당도 월 49만원 수준으로 올라갔다.

물론 이것만으로 충분하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월 15만원은 생계 전체를 책임질 수 있는 금액이 아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처음으로 배우자 지원 사각지대를 제도적으로 인정하고 국가 책임의 문을 열었다는 점이다. 그동안 참전유공자가 사망하면 배우자는 국가의 기억 밖으로 밀려나는 경우가 많았다.

남편의 전쟁은 국가의 역사였지만, 남겨진 배우자의 노후는 개인의 문제가 되어버렸다. 이번 제도는 그 모순을 바로잡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보훈급여금과 수당 인상도 일부 성과로 볼 수 있다. 국가유공자 보상금이 인상됐고, 참전명예수당 등 주요 수당도 오른 것으로 확인된다. 생존 애국지사에 대한 특별예우금과 간병비 인상도 추진됐다. 이는 ‘예우는 더 높게, 지원은 더 두텁게 하겠다’는 지난해 약속의 연장선에 있다.

적어도 말만 하고 끝난 것은 아니었다. 정부는 예산과 제도 일부를 움직였고, 보훈정책의 우선순위를 높이려는 흔적을 남겼다.

그러나 보훈은 인상률만으로 평가할 수 없다. 국가유공자와 유족이 실제 생활에서 체감하는지가 더 중요하다. 물가가 오르고 의료비 부담이 커지는 현실에서 몇만 원 인상만으로 품격 있는 예우가 완성되지는 않는다. 특히 고령 보훈 대상자들은 복잡한 신청 절차, 지역별 지원 격차, 의료 접근성 문제를 동시에 겪고 있다.

보훈 정책은 중앙정부 예산만이 아니라 지방정부 지원과 현장 행정까지 함께 움직여야 한다. 그래서 지금의 평가는 ‘성과는 있으나 충분하지 않다’가 맞다.

보훈의료체계 구축 약속은 아직 진행 중인 과제로 보인다. 지난해 이 대통령은 국가유공자가 집 근처에서 제때 편리하게 의료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빈틈없는 보훈의료체계를 구축하겠다고 했다. 정부는 위탁의료기관 확대와 보훈병원이 없는 지역의 준보훈병원 운영 방향을 내놓고 있다.

방향은 맞다. 그러나 현장에서 중요한 것은 계획이 아니라 접근성이다. 고령의 국가유공자가 버스를 여러 번 갈아타지 않고 병원에 갈 수 있어야 한다. 예약과 진료가 복잡하지 않아야 한다. 보훈의료는 병원 숫자가 아니라 보훈대상자의 이동 거리와 대기 시간으로 평가해야 한다.

군 경력 보상 현실화도 중요한 약속이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해 군 경력에 대한 정당한 보상을 현실화하겠다고 했다. 이후 공공 부문에서 의무복무 제대군인의 군 경력 반영을 의무화하는 법 개정이 이뤄졌다. 이는 의미 있는 진전이다.

청년들이 군 복무로 보낸 시간이 사회 진출 과정에서 불이익이 아니라 정당한 경력으로 인정받아야 한다는 방향을 제도화했기 때문이다. 병역 의무를 이행한 청년에게 국가는 “수고했다”는 말만 할 것이 아니라 실제 보상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다만 군 경력 보상 현실화 역시 아직 갈 길이 멀다. 공공 부문 반영만으로는 부족하다. 민간 영역에서 군 복무 경력이 어떻게 평가될 것인지, 취업과 임금, 경력 산정에서 어떤 기준이 적용될 것인지가 남아 있다. 군 복무를 마친 청년들이 사회에 나왔을 때 “나는 뒤처졌다”는 느낌을 받지 않도록 해야 한다.

안보는 청년의 시간 위에 세워진다. 그렇다면 국가는 그 시간에 대해 분명한 사회적 보상을 설계해야 한다.

제복 공무원 처우 개선 역시 미완의 과제다. 지난해 이 대통령은 군 장병, 경찰관, 소방공무원들이 국민을 지키는 동안 대한민국이 그들을 지키겠다고 말했다. 이 표현은 강했다. 제복을 입은 사람들에게 사명감만 요구하지 않겠다는 뜻이었고, 국가가 이들의 안전과 처우를 책임지겠다는 약속이었다.

하지만 군 장병의 복무 환경, 소방관의 현장 안전, 경찰관의 정신적·육체적 부담은 여전히 무겁다. 순직 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추모는 반복되지만, 현장 위험을 줄이는 제도 개선은 더디게 느껴진다.

보훈 정책에서 가장 위험한 것은 ‘기념일 정치’다. 현충일에는 누구나 애국을 말한다. 그러나 현충일이 지나면 예산 논리와 부처 이기주의, 정치적 이해관계가 다시 고개를 든다. 국가는 기억한다고 말하지만 정작 유족은 행정 서류 앞에서 또 다른 싸움을 해야 한다.

이것이 보훈의 현실이다. 나라를 위해 희생한 사람과 그 가족이 국가를 상대로 자신의 희생을 다시 증명해야 한다면 그것은 예우가 아니다. 보훈행정은 더 따뜻하고 더 간단해야 한다.

이제 제71회 현충일에 이 대통령은 무엇을 말해야 하는가.

필자는 첫째, 지난해 약속의 이행 상황을 국민 앞에 솔직히 보고해야 한다고 본다. 무엇을 했고 무엇이 부족했는지 말해야 한다. 참전유공자 배우자 지원은 시작됐지만 충분하지 않고, 보훈의료는 확대 방향을 잡았지만 현장 체감은 더 필요하며, 군 경력 보상은 법 개정의 첫발을 뗐지만 민간 확산이 남았다고 말해야 한다.

현충일 메시지는 추상적 감동보다 구체적 책임이어야 한다.

둘째, 제71회 현충일 메시지는 ‘기억하고, 기록하고, 책임지겠다’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기억은 말로 하는 것이다. 기록은 제도로 남기는 것이다. 책임은 예산과 행정으로 완성하는 것이다.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을 기억하는 일은 추모곡을 부르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들이 왜 희생했는지, 어떤 국가를 꿈꾸었는지, 오늘의 대한민국은 그 희생 위에 무엇을 세워야 하는지를 다음 세대에게 알려야 한다. 보훈은 과거를 기리는 일이면서 미래를 교육하는 일이다.

셋째, 보훈을 진영의 언어에서 국가의 언어로 끌어올려야 한다. 그동안 한국 정치에서 보훈과 안보는 보수의 가치로, 민주주의와 인권은 진보의 가치로 나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이는 잘못된 구분이다. 독립운동도 민주주의였고, 호국도 민주주의를 지키는 일이었다.

군인과 경찰, 소방관의 헌신도 민주공화국을 유지하는 힘이다. 보훈은 어느 정당의 소유물이 아니다. 보훈은 대한민국 공동체의 뿌리다.

넷째, ‘제복 입은 민주시민’이라는 지난해 표현을 더 구체화해야 한다. 제복 입은 시민은 명령만 따르는 사람이 아니다. 헌법을 지키고 국민을 보호하며 민주공화국의 질서를 수호하는 사람이다. 국가는 이들에게 충성만 요구해서는 안 된다. 안전한 장비, 충분한 휴식, 합당한 보상, 순직과 부상에 대한 신속한 예우를 보장해야 한다.

제복의 무게를 개인의 희생으로만 떠넘기지 않는 나라가 성숙한 나라다.

다섯째, 독립유공자와 그 후손에 대한 국가 책임도 더 분명히 해야 한다. “독립운동하면 3대가 망하고 친일하면 3대가 흥한다”는 말은 대한민국의 부끄러운 자화상이다. 이 말을 없애려면 역사교육만으로는 부족하다. 독립유공자 후손의 주거, 교육, 생계, 의료를 국가가 더 세밀하게 챙겨야 한다. 독립운동가의 이름은 기념관에 있지만 그 후손의 삶이 빈곤 속에 있다면 국가는 아직 빚을 갚지 못한 것이다.

제71회 현충일은 이재명정부가 보훈 정책을 한 단계 더 끌어올릴 수 있는 중요한 계기다. 지난해가 통합 메시지의 출발이었다면 올해는 이행 점검과 책임 강화의 해가 돼야 한다. 국민은 더 이상 기념사만으로 감동하지 않는다.

국민은 묻는다. 참전유공자 배우자는 실제로 지원을 받는가. 국가유공자는 가까운 병원에서 진료받는가. 군 복무를 마친 청년은 사회에서 정당하게 인정받는가. 소방관과 경찰관은 위험한 현장에서 국가의 보호를 받고 있는가.

정치는 선거가 끝나면 승패를 말한다. 그러나 현충일은 승패보다 더 큰 것을 질문한다. 대한민국이라는 국가는 누구의 희생 위에 서 있는가. 그 희생을 오늘의 국가는 어떻게 갚고 있는가. 이 대통령과 여야 정치권은 현충일만큼은 이 질문 앞에 함께 서야 한다.

보훈은 정권의 성과물이 아니라 국가의 의무다. 정권은 바뀌어도 국가의 책임은 이어져야 한다.

1년 전 약속은 일부 지켜졌으나 아직 완성되지는 않았다. 참전유공자 배우자 지원은 시작됐고, 보훈급여와 수당은 올랐고, 군 경력 인정 제도도 한 걸음 나아갔다. 그러나 보훈의료 접근성, 제복 공무원 처우, 지역별 지원 격차, 유족의 생활 안정은 여전히 더 큰 노력이 필요하다.

그래서 제71회 현충일의 메시지는 자화자찬이 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시작했지만 아직 부족하다. 끝까지 책임지겠다”는 고백이어야 한다.

현충일의 핵심은 추모가 아니라 계승이다.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이 지킨 나라는 특정 정당의 나라가 아니며, 보수의 나라도, 진보의 나라도 아니다. 자유와 평화, 민주주의와 번영을 함께 지켜야 하는 대한민국이다. 그러므로 이 대통령은 올해 현충일에 이렇게 말해야 한다.

“국가는 기억하겠습니다. 국가는 기록하겠습니다. 그리고 국가는 끝까지 책임지겠습니다.” 이것이 71번째 현충일에 대한민국이 순국선열과 호국영령 앞에 드릴 수 있는 가장 정직한 약속이다.

<kangjoomo@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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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독해진 송영길 역할론

더 독해진 송영길 역할론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의원이 목소리를 키우고 있다. 이미 명심(이재명 대통령의 의중)은 김민석 전 국무총리에게 쏠렸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지만 그는 누구보다도 ‘정청래 고립 작전’에 힘을 쏟고 있다. 친정청래계의 십자포화를 견디면서까지 존재감을 키우는 그의 의도는 무엇일까? 오는 8월 치러지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전당대회가 다가올수록 당의 내홍도 거세지는 분위기다. 지난달 대표직 사퇴 이후 사실상 연임을 선언한 정청래 전 대표는 ‘민주당 전통성’을 부각시키며 지지층 결집에 나섰다. ‘노사모(노무현 전 대통령을 사랑하는 모임)’ 출신인 점 등을 강조하면서 친문(친 문재인) 진영의 표심을 흡수하려는 시도로 해석된다. 타깃은 한 명뿐 그런 정 전 대표를 향해 날을 세우는 건 또다른 후보군인 송영길 의원이다. 송 의원은 초반부터 매섭게 정 전 대표를 몰아세우며 그의 적통성 행보를 차단하고 나섰다. 송 의원은 KBS 라디오 인터뷰에서 “정 전 대표가 친노(친 노무현)·친문 등 정체성을 부각한다”는 진행자의 말에 “그는 완전히 노무현 대통령과 등을 져서 장례식에도 참석하지 못했다”며 “다른 분이면 몰라도 정 전 대표는 (친노의) 적통성을 따질 수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 전 대표는 2002년 노사모를 기반으로 한 인터넷 정당 ‘정정당당 추진위원회’을 꾸리면서 정치에 입문했지만, 2007년 노무현정부와 대립각을 세운 열린우리당 정동영 당시 의장(현 통일부 장관)과 더 가깝다는 평이 나오면서 적통성을 의심받고 있는 것이다. 그러자 정 전 대표는 “이렇게까지 하느냐. 100% 허위 사실”이라며 불쾌감을 숨기지 않았고, 송 의원은 “당일 정 전 대표를 본 기억이 없어서 (노 전 대통령) 장례식에도 참석도 못했다는 말을 했다”며 사과의 뜻을 건넸다. 송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제 발언의 요체는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 앞에 우리는 모두 지못미(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라는 사실이다. 다시 이런 비극을 재현해서는 안 된다”면서도 “노 전 대통령께서 한미 FTA를 추진할 때 민주당 대부분 의원이 격렬하게 반대했다. 그 선봉에 (당시) 정청래 의원이 있었다”며 또다른 논란을 꺼내 들었다. 이는 친청(친 정청래)계와 친명(친 이재명)계 간의 계파 대리전으로 번졌다. 민주당 최민희 의원은 “이제는 한미 FTA 찬반까지 끌어와 당 대표 경선을 혼란스럽게 한다”며 “이런 편파적 파묘 안 하시면 안 되느냐”고 지적했다. 이어 “갈등은 필연이지만 팩트로 논쟁하자”며 “적통 논쟁도 하지 말자. 지금은 AI시대”라고 말했다. “네가 친노?” 20년 전 사건까지 파묘 거세게 몰아치는 ‘정청래 고립 작전’ 최 의원은 송 의원의 ‘사당화’ 주장에도 반박했다. 앞서 송 의원은 “대통령과 손발을 맞추려면 할 일이 많은데 우리 민주당은 운동장을 너무 좁게 쓰고 있다. 정 전 대표 측근 아니면 당무에서 거의 배제되고 최고위원도 자기들끼리만 한다”며 사당화를 도마 위로 올렸다. 이에 대해 최 의원은 “송 의원이 정 전 대표를 비난하면 기다렸다는 듯 재래식 언론이 줄줄이 보도한다. 민주당이 극복한 ‘문모닝(하루를 문 대통령 비판으로 시작한다)’의 악몽이 되살아나려 하는데 막을 사람이 바로 송 의원”이라고 주장했다. 논란의 한가운데에 선 정 전 대표는 “소모적 적통 논쟁을 하지 말자”며 싸움을 그만둘 것을 제안했다. 그는 “저는 제 입으로 적통의 적자도 꺼낸 적이 없고, 그럴 생각도 없다. 위대한 대통령 누구의 적통이라고 주장한 적도 없다”고 주장했다. 정 전 대표는 “저는 김대중 대통령을 존경했고, 노무현 대통령을 사랑했으며 문재인 대통령을 좋아했다”며 “이재명 대통령과는 동지이자 전우로 윤석열 검찰독재정권의 폭압을 함께 뚫었다. 12·3 불법 비상계엄 내란의 밤 때는 목숨 걸고 국회 담장을 넘었다”고 주장했다. 이어 “(이렇게 말한 것이) 뭐가 문제가 되냐”면서 “제 입으로 말하지도 않은 것을 상상하고 비틀어서 ‘적통이네 아니네’ 하는 언론의 프레임에 맞장구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이달 초를 기점으로 민주당의 분위기가 한층 누그러졌다는 평이 나온다. 이 대통령과 문재인 전 대통령이 오찬 회동을 하며 지지자 간의 갈등 봉합을 시도했고, 보안수사권 폐지 역시 정부가 먼저 치고 나오면서 논란을 잠재웠다. 퇴로까지 끊었다 정 전 대표의 전당대회 필살기가 사라졌다. 여기에 친문 의원들조차 “하늘에 계신 분들이 (정 전 대표의 적통성을) 인정하겠나” 등 표현으로 거리를 두면서 고립 직전에 놓였다. 정 전 대표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면서 송 의원의 여론전도 박차를 가하는 모양새다. 송 의원은 정 전 대표에게 힘을 싣는 여의도 밖 스피커와도 각을 세우고 있다. ‘ABC론’ ‘증축·재건축론’ 등을 주장한 유시민 작가를 향해 “간신은 주군 옆에서 권력을 독점해 똑똑하고 새로운 사람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차단한다”고 지적했다. 앞서 유 작가는 “이 대통령이 대통령이 되는 과정에서 열렬히 지켜주고 응원했던 사람들이 원했던 것은 증축이었는데, 대통령은 재건축을 하려고 했던 것 같다. 대통령의 자신감이 지나쳤던 것 아닌가”라고 주장했다. 민주 진영 코어 지지층이 바란 것은 중도·보수로의 ‘증축’이지만 이 대통령은 원주민(코어 지지층)과 상의 없이 ‘재건축’에 나서 이들이 이탈하고 있다는 증축·재건축론을 제기한 것이다. 이에 송 전 대표는 YTN <장성철의 뉴스명당>에 출연해 “충신은 자기 주군의 성공을 위해서 더 똑똑한 사람, 새로운 사람을 계속 영입한다”며 유 작가의 주장을 반박했다. 연일 송 의원의 견제가 이어지고 있지만 강성 지지층의 두터운 지지를 받는 정 전 대표가 쉽게 꺾이지 않을 것이란 평가가 지배적이다. 따라서 김민석 전 총리와 송 의원 둘 중 누구든 결선에 진출해 ‘반 정청래’ 전선을 꾸리는 것이 1차 목표라는 설명에 힘이 실린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현 상황에 대해 “지금으로서는 송 의원은 당 대표를 하겠다는 열망보다 정 전 대표를 막겠다는 열망이 더 강해 보인다”고 봤다. 이처럼 정치권에서는 송 의원을 개별 후보가 아닌 김 총리의 페이스메이커로 보는 분위기다. 명심을 등에 업은 김 총리가 거칠게 나올 경우 국정 운영에 차질이 생길 것이란 우려가 나오는 만큼 상대적으로 리스크가 적은 송 의원이 ‘정청래 저격수’ 역할을 자처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오래전 큰 그림 송 의원의 의중과 상관없이 두 사람의 단일화가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이번 전당대회서 정 전 대표에게 유리한 것으로 알려진 1인1표제가 적용되는 만큼 김 전 총리와 송 의원이 손을 잡는 것이 안전하다는 이유에서다. ‘김민석+송영길 대 정청래’ 구도로 선거를 치른다면 압승도 가능하다는 판단이 깔린 것으로 해석된다. 정치권에서는 전당대회에 출마한 송 의원이 가장 주목을 받는 시점에 김 전 총리와의 단일화를 선언한 후 사퇴하는 시나리오도 점치고 있다. 자신의 지지층 결집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 김 전 총리에게 힘을 실어준 뒤 물러서는 방식으로, 이럴 경우 확실한 1 대 1 구도가 만들어지게 된다. 정치권에서는 송 의원이 전당대회를 통해 체급을 키운 뒤 청와대에 외교부 장관 등 자신이 희망하던 자리를 요구하지 않겠냐는 해석도 나온다. 국회 입성 이후 송 의원의 외교부 장관 입각설 등이 꾸준히 나오는 것 역시 이 같은 해석을 뒷받침한다. 그동안 송 의원은 자칭타칭 ‘외교 전문가’로 이름을 알려왔다. 그는 문재인정부 당시 러시아 특사를 지냈으며 대통령 직속 북방경제협력위원회 위원장과 민주당 동북아평화협력특별위원회 초기 위원장을 지냈다. 21대 국회 전반기에는 외교통일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꾸준히 외교·통일 정책 비전을 밝혀왔다. 지난 2월 복당을 앞둔 때에는 향후 외교 분야에서 역할을 맡고 싶다는 의지를 피력하기도 했다. 송 의원은 부산 벡스코에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종결과 북극 항로의 미래’를 주제로 열린 민주당 부산시당 주최 특강에서 “러시아와 미국 등 외교 현안에서 역할을 감당하겠다”고 밝혔다. 이날 송 의원은 러시아와의 협력 필요성을 강조하면서도 “현재 한국은 러시아보다 우크라이나에 더 가까운 입장”이라며 “전쟁 중이라는 특수성이 있지만 아쉬운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북극 항로를 열기 위해서는 실용주의 외교가 필요하다”며 이정부의 실용주의 노선과 궤를 같이 했다. 그는 최근까지도 활발한 외교 행보를 보였다. 지난달 24일 조정식 국회의장 특사 자격으로 미국 출국길에 올라 전방위 외교 활동에 나서기도 했다. 송 전 의원은 미국 워싱턴에서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관계자와 미 의회 지도부와 연쇄 면담을 갖고, 북핵 문제와 경제 제재 예외 조치 등 한미 간 주요 현안을 논의한 것으로 전해진다. “복당 후 역할은…” 마음은 다른 곳에? ‘미주민주참여포럼(KAPAC)’이 워싱턴DC의 한 호텔에서 개최한 콘퍼런스에서 송 의원이 이 대통령의 서면 축사를 대독에 눈길을 끌기도 했다. 이에 국민의힘 신지호 전 의원은 송 의원이 “양손에 떡을 다 쥘 수 있는 상황이 됐다”고 평가했다. 그는 채널A 라디오쇼 <정치시그널>에 출연해 이같이 주장하며 “누군가 송 의원에게 ‘너 외교부 장관 할래, 당 대표 할래?’라고 묻는다면 바보가 아닌 이상 당 대표라고 답한다. 이번에 당 대표가 되면 공천권을 쥘 수 있기 때문”이라며 “(선거를) 하다가 여의치 않을 경우 외교부 장관으로 가는 것이고, 지금의 이런 것들이 또 외교부 장관으로 가기 위한 과정이 될 수 있다. 지금 양쪽 접근을 다 하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유리한 지점에 서 있는 만큼 송 의원의 당권 레이스 완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2021년 치러진 전당대회서 당선된 경험이 있는 만큼 이미 민주당에 조직 기반이 있다는 점에서다. 최근에는 경남 지역 시민사회단체와 당원 등 100여명이 모여 ‘8·17 전당대회, 응답하라 송영길!’이라는 슬로건과 함께 송 의원의 출마를 촉구하기도 했다. 이들은 “지금 대한민국은 대내외적으로 복합적인 위기와 갈등을 동시에 마주하고 있다”며 “이런 시대일수록 국정을 안정적으로 뒷받침하고 당을 하나로 묶어낼 검증된 지도력이 절실하다. 송영길 의원은 ‘이재명 국민주권정부’의 성공적인 국정 운영을 가장 안정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정치적 경험과 국가 운영 능력을 갖춘 인물”이라며 평가했다. 친명 좌장으로 불리는 민주당 김영진 의원은 8월 전당대회와 관련해 “제가 아는 송영길 의원은 (김 전 총리를 위한) 페이스메이커로 나가지는 않을 것”이라고 봤다. 그는 한 라디오를 통해 “누구든지 1등을 하기 위해서 나가고, 만약에 결선투표로 간다면 1등, 2등 해서 결선에 가서 이기겠다는 생각일 것”이라며 “송 의원이 누구를 위해서 자기가 페이스메이커로 나간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양손에 쥔 꽃놀이패 송 의원 역시 본인이 김 전 총리의 페이스메이커 역할을 자처하고 있다는 분석에 대해 “후보자들은 일종의 면접시험을 보고 있는 것이고 인사권자인 당원들께서 판단하실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이어 “결선투표 제도가 없다면 단일화 논란이 일어날 수 있지만 전당대회는 제도적으로 결선투표제가 있다”며 완주 가능성을 부정하지 않았다. 만일 송 의원이 전당대회를 완주한다면 정 전 대표와 청와대라는 양강 구도에 변수가 된다. 그의 선택에 따라 이번 전당대회 판세가 갈릴 것이란 전망이 나오면서 그가 페이스메이커가 아닌 ‘게임 체인저’로 바뀔지 이목이 쏠린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여의도 복귀 김민석, 전대 신호탄 김민석 전 국무총리가 당권 경쟁자인 정청래 전 대표를 겨냥해 “지금까지 했던 방식으로 굳이 (대표를) 두 번 할 필요나 필연성은 지금 발견하기 어렵다”고 직격했다. 총리직에서 퇴임해 여의도에 복귀하자마자 이같이 밝힌 김 전 총리는 유튜브 채널 ‘오마이TV’가 공개한 영상에서 “이제는 정청래 전 대표와 다른 색깔, 역량, 스타일, 장점을 가진 리더십이 필요한 때”라고 주장했다. 이어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와 지방선거로 (정부 출범 후) 최초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당의 역할 폭과 숙제 크기가 더 넓고 커지고 강해졌다. 이제 당이 더 본격적으로 움직여야 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당이 어떻게 가야 하나, 무엇을 해야 하나에 대한 제 나름의 생각이 있기 때문에 그것을 최대한 반영하고 싶다”며 “대한민국 역사의 황금시대 도래, 그 첫 장을 이재명정부가 열고 있다고 보고 그것을 실제로 만들어내는 일에 모든 걸 다 해야 한다”고도 강조했다. 올해 초 정 전 대표가 시도했다가 무산된 조국혁신당과의 합당 문제도 꺼내들었다. 김 전 총리는 “그것(합당)을 풀어가는 데 문제 제기와 과정이 잘못돼서 일을 그르쳤다고 본다”며 “같은 세력은 통합하고 다르면 연대하고, 통합과 연대와 확장이 반드시 필요하다. 통합을 할 것이냐 연대를 할 것이냐의 문제에 대해서는 혁신당이 스스로 명확하게 판단하고 (입장을) 드러내는 것이 좋다”고 제언했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