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삼기의 시사펀치> 이젠 출구조사도 믿기 어려운 시대

사전투표 시대, 출구조사 권위도 ‘휘청’

6·3 지방선거와 재보궐선거가 막을 내렸다. 선거 당일이었던 지난 3일 오후 6시가 되자 우리 국민은 어김없이 방송 3사 출구조사 결과에 시선을 집중했다. 과거에는 출구조사 결과가 발표되면 사실상 당선자가 결정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개표 결과가 출구조사와 거의 일치했기 때문이다. 후보들은 출구조사를 보고 당선 소감을 준비했고 정당들은 승패 분석에 들어갔다. 그만큼 출구조사는 선거 결과를 가장 먼저 보여주는 권위 있는 지표였다.

그러나 이번 선거는 많은 사람들에게 다른 인상을 남겼다. 출구조사에서 앞선 것으로 발표된 후보가 실제 개표에서는 패배한 지역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물론 모두 초접전 지역이었다. 통계적으로는 오차범위 안에 있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유권자 입장에서는 당선자를 맞혔느냐 틀렸느냐가 더 중요하다. 출구조사가 발표된 순간과 실제 개표 결과가 달라졌다는 사실 자체가 출구조사의 권위에 의문을 던지고 있다.

가장 충격적인 사례는 경남도지사 선거였다. 방송 3사 출구조사는 김경수 후보 54.3%, 박완수 후보 45.7%로 발표하며 김 후보의 우세를 예측했다. 두 후보 간 격차는 8.6%포인트에 달했다. 단순한 접전이 아니라 비교적 뚜렷한 우세로 해석될 수 있는 수치였다.

그러나 실제 개표 결과는 정반대로 나타났다. 박 후보가 2%포인트 이상 앞서며 당선된 것이다.

서울시장 선거에서도 방송 3사 출구조사는 정원오 후보 51.4%, 오세훈 후보 46.0%로 정원오 후보의 5.4%포인트 우세를 예측했다. 그러자 정원오 후보 캠프에서는 환호가 나왔고, 오세훈 후보 캠프에서는 침묵이 흘렀다. 그러나 실제 개표 결과는 예상과 달리 4일 오전 7시부터 오세훈 후보가 역전하기 시작하여 결국 근소한 차이로 당선됐다.

이는 단순한 오차 범위를 넘어 출구조사의 정확성과 신뢰성, 나아가 권위 자체에 적지 않은 의문을 제기한 사례로 평가될 수 있다.

부산 북갑 재보궐선거와 평택을 선거도 마찬가지다. 부산 북갑에서는 방송 3사 출구조사가 하정우 후보 42.6%, 한동훈 후보 41.6%로 발표하며 하 후보의 근소한 우세를 예상했다. 그러나 개표 결과에서는 한 후보가 43.0%를 얻어 당선됐다.

평택을 역시 출구조사에서도 조국 후보가 근소하게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지만 최종 승자는 유의동 후보였다.

물론 부산 북갑과 평택을 두 지역 모두 오차범위 내 초접전 지역이었다. 그러나 국민의 기억 속에는 통계적 설명보다 “출구조사와 실제 결과가 달랐다”는 사실이 더 강하게 남기 마련이다. 더욱이 이들 지역뿐 아니라 전북, 대구를 비롯 여러 선거구에서도 출구조사 결과와 실제 개표 결과가 10%포인트 안팎의 차이를 보인 사례가 적지 않았다.

이는 과거 높은 정확도를 자랑하던 출구조사와 비교할 때 신뢰도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왜 이런 현상이 잦아지고 있느냐는 점이다. 과거에도 오차는 있었지만 최근에는 출구조사의 예측력이 예전 같지 않다는 평가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특히 사전투표가 선거의 중요한 축으로 자리 잡으면서 출구조사가 가진 구조적 한계가 드러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사실 출구조사는 오랫동안 가장 정확한 선거 예측 도구였다. 일반 여론조사는 선거 전에 실시되기 때문에 막판 변수의 영향을 받을 수 있다. 반면 출구조사는 실제 투표를 마친 유권자를 대상으로 조사한다. 그래서 실제 결과와 가장 가까운 조사 방식으로 인정받아 왔다.

방송 3사는 전국 수백개 투표소에서 대규모 표본을 조사하며 높은 정확도를 보여줬고 출구조사는 선거 방송의 꽃으로 불렸다.

실제로 과거에는 출구조사가 놀라울 정도로 정확했다. 대통령선거와 총선, 지방선거 대부분에서 승자를 맞혔다. 오차가 있더라도 주로 득표율 수치에서 발생했을 뿐 승패 자체가 틀리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 그래서 국민들은 오후 6시 출구조사 결과를 사실상의 선거 결과로 받아들였다. 출구조사가 발표되면 선거는 사실상 끝났다는 말까지 나왔다.

하지만 최근 선거 환경은 크게 달라졌다. 가장 큰 변화는 사전투표다. 과거에는 대부분의 유권자가 선거 당일 투표했다. 따라서 선거 당일 실시하는 출구조사만으로도 전체 민심을 상당 부분 파악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전국 단위 선거에서 사전투표율이 20~30%를 넘고 있다. 일부 지역은 30%를 훌쩍 넘는다.

선거 당일보다 사전투표가 더 중요한 변수로 떠오른 것이다.

문제는 출구조사가 선거 당일 투표자만 직접 조사할 수 있다는 점이다. 사전투표자는 이미 며칠 전에 투표를 마쳤기 때문에 조사원이 만날 수 없다. 방송사들은 이를 보완하기 위해 별도의 전화조사를 실시한다. 그러나 전화조사는 응답률이 낮고 응답 거부층이 많으며 실제 투표 내용을 정확하게 답하지 않을 가능성도 존재한다.

결국 사전투표 비중이 높아질수록 출구조사의 불확실성은 커질 수밖에 없다.

최근 정치 양극화도 또 다른 변수다. 자신이 누구에게 투표했는지 말하기를 꺼리는 유권자가 늘고 있다. 특정 후보나 특정 정당을 지지한다는 사실 자체를 숨기려는 유권자도 적지 않다. 이른바 샤이 보수, 샤이 진보 현상이다. 응답 거부층이 특정 후보에게 집중되면 조사 결과는 왜곡될 수 있다. 과거보다 출구조사가 어려워진 이유 가운데 하나다.

출구조사의 한계는 이미 여러 차례 드러난 바 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지난 2022년 경기도지사 선거다. 당시 방송 3사 출구조사는 김은혜 후보가 김동연 후보를 근소하게 앞서는 것으로 발표했다. 선거 당일 저녁만 해도 많은 사람들이 김은혜 후보의 승리를 예상했다.

그러나 개표가 진행될수록 상황은 바뀌었다. 결국 김동연 후보가 역전에 성공하며 당선됐다. 출구조사와 실제 결과가 엇갈린 대표적인 사례로 지금도 자주 언급된다.

2024년 총선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나타났다. 서울 동작을과 경기 성남분당갑, 경기 화성을, 경남 양산을 등 일부 초접전 지역에서는 출구조사 결과와 실제 개표 결과가 달랐다. 물론 대부분 오차범위 안 승부였다. 그러나 국민이 체감하는 것은 통계학이 아니라 결과다. 당선자가 바뀌면 출구조사에 대한 신뢰 역시 흔들릴 수밖에 없다.

이런 점에서 이번 부산 북갑과 평택을 사례를 단순한 실패라고 보는 것은 정확하지 않을 수 있다. 두 지역 모두 초박빙 지역이었다. 원래 맞히기 어려운 선거였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런 사례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과거에는 출구조사 결과가 곧 결과로 받아들여졌다면 이제는 하나의 예측 정보로 이해해야 하는 시대가 됐다.

무엇보다 출구조사의 성공 기준 자체가 바뀌고 있다. 과거에는 선거 당일 투표자가 전체 유권자의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사전투표가 선거의 중심 축이 됐다. 사전투표율이 30% 안팎까지 높아진 상황에서 선거 당일 출구조사만으로 전체 민심을 완벽하게 파악하기는 쉽지 않다. 아무리 정교한 통계기법을 사용하더라도 구조적 한계는 존재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제는 출구조사 방식도 바꿔야 한다. 단순히 선거 당일 투표소 앞에서 조사하는 방식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사전투표 표심을 보다 정확하게 반영할 수 있는 새로운 조사 체계를 개발해야 한다. 빅데이터와 인공지능, 지역별 투표 패턴 분석, 연령별 투표 성향 분석 등을 종합적으로 활용하는 새로운 모델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방송사들도 고민해야 한다. 출구조사는 단순한 방송 이벤트가 아니다. 국민이 가장 먼저 접하는 선거 정보이며 민주주의 과정의 중요한 일부다. 만약 예측 실패 사례가 반복된다면 출구조사에 대한 신뢰는 계속 약해질 수 있다. 신뢰를 잃은 출구조사는 선거방송의 꽃이 아니라 혼란의 원인이 될 수도 있다.

이번 선거가 남긴 가장 중요한 교훈은 출구조사가 틀렸다는 사실이 아니다. 왜 과거보다 예측이 어려워지고 있는가를 분석하는 것이다. 선거 환경은 이미 크게 변했다. 사전투표가 보편화됐고 정치 양극화는 심해졌으며 응답 거부층도 늘어났다. 그런데 조사 방식이 과거와 크게 다르지 않다면 정확도가 떨어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 수 있다.

필자는 앞으로 사전투표율이 더 높아질 것으로 본다. 젊은 세대는 사전투표를 선호하고 직장인과 학생들에게도 사전투표는 이미 일상이 됐다. 그렇다면 출구조사도 시대 변화에 맞게 진화해야 한다.

출구조사는 여전히 가장 강력한 선거 예측 도구이자 선거 방송의 꽃이다. 그러나 이번 6·3 지방선거와 재보궐선거는 분명한 메시지를 남겼다. 지금은 출구조사가 과거처럼 절대적인 권위를 갖기 어려운 시대라는 점이다. 사전투표 시대에 맞는 새로운 조사 방식이 마련되지 않는다면 ‘출구조사는 곧 결과’라는 공식은 역사 속으로 사라질지도 모른다.

<skkim596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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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표용지가 없다니…’ 초유의 사태 후폭풍

‘투표용지가 없다니…’ 초유의 사태 후폭풍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선거가 끝난 뒤에는 자연스럽게 후폭풍이 따라온다. 이긴 쪽은 동력을 얻고 진 쪽은 수습에 나선다. 하지만 이번 지방선거는 결과만큼이나 선거관리위원회의 행보가 회자할 것으로 보인다. ‘투표용지 부족’이라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불러온 후폭풍이 지방선거를 뒤흔드는 모양새다.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는 이재명정부 출범 1년(4일)을 앞두고 치러졌다. 선거 자체가 국민의 심판을 받는다는 취지로 치러지는 만큼 여야는 결과에 사활을 걸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광역단체장 등에서 싹쓸이로 의회 권력에 이어 지방 권력까지 차지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고, 국민의힘은 ‘견제’를 외치며 맞섰다. 누구 손도 안 들어줘 민심은 절묘했다. 광역단체장 선거에서 민주당은 총 16개 시‧도 중 12곳에서 이겼다. 결과만 놓고 보면 압승이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격전지였던 서울시장 선거에서 채 1% 차이도 나지 않게 석패했다. 관심을 모았던 대구에서도 졌다. 지방선거와 함께 치러진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에서도 관심이 집중된 부산 북구갑에서 의석을 내줬다. 반면 국민의힘은 선거 초반 전패를 예상했던 것과 비교해 상당히 선전했다는 평을 받는다. 서울을 수성했고 텃밭인 대구에서도 예상보다 수월하게 이겼다. 경기 평택을 선거에서도 ‘어부지리’지만 의석 하나를 건졌다. 민주당으로선 이겨도 찜찜한, 국민의힘은 졌지만 미묘하게 웃을 수 있는 결과가 나온 셈이다. 이제 여야는 물론 이재명 정부는 선거 결과에 따른 후폭풍을 마주해야 한다. 여야 모두 ‘완벽하게 이겼다, 혹은 졌다’는 결과를 받아든 게 아니기에 후폭풍은 작지 않으리라고 예상된다. 전당대회를 앞둔 민주당은 이번 선거 결과를 두고 당권 싸움을 시작할 것이고, 보수 궤멸 직전에 간신히 살아남은 국민의힘에서도 내전이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 문제는 여기에 또 다른 후폭풍이 더해졌다는 점이다. 심지어 이 후폭풍의 크기는 선거 결과에 따른 후폭풍과는 차원이 다르다. 선거의 신뢰성 문제까지 뒤흔들 수 있는 수준의 초대형 태풍급이다. 선거에서 심판 역할을 맡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가 도마 위에 올랐기 때문. 지난 3일 지방선거 본투표 중에 서울 일부 지역에서 투표용지 부족으로 유권자가 투표하지 못하는 초유의 사태가 일어났다. 유권자의 참정권 행사라는 선거의 가장 본질적인 부분에 취지가 훼손된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이 같은 일이 투표소 한 군데가 아니라 십수 군데서 발생했다는 점이다. 선관위에 따르면 지난 3일 서울 송파구 잠실 일대를 비롯한 12개 투표소와 강남구 1개 투표소, 광진구 1개 투표소에서 투표용지가 부족해 유권자들이 투표하지 못하고 현장에서 대기하는 일이 벌어졌다. 선관위는 사태를 인지한 후 투표용지를 이송하고 현장 대기 인원에 한해 투표를 보장하겠다고 했다. 소쿠리 이어 투표지가 없다? 부정선거 논란에 불 질렀다 하지만 잠실7동 제2투표소는 대기표를 받은 유권자를 대상으로 오후 10시까지 투표 시간을 연장하는 등 혼란이 발생했다. 동시에 소식을 접한 시민과 유튜버 등이 투표소에 몰리면서 분위기가 험악해졌다. 일부 투표소에서는 투표함 반출을 둘러싸고 선관위 관계자와 시민 사이에 대치 상황까지 벌어졌다. 이번 투표용지 부족 사태는 선거의 공정성과 신뢰성에 강한 타격을 입혔다. 특히 서울시장 선거는 국민적 관심이 집중됐던 데다 개표가 진행되면서 출구조사보다 실제 결과가 훨씬 박빙으로 나오고 있는 상태였다. 개표가 진행되는 와중에 투표도 동시에 이뤄지는 말도 안 되는 상황에 여야는 물론 지지자들은 강하게 반발했다. 국민의힘은 개표 중단을 요구했다. 투표용지 부족 사태가 발생한 지역이 공교롭게도 서울 지역 내에서 비교적 보수세가 강한 ‘강남권’으로 확인되자 당력을 집중한 것이다. 국민의힘 장동혁 상임선대위원장은 긴급 기자회견에서 개표를 중단하고 결과에 따라 서울시 선거를 다시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개표를 멈추고 상황에 따라 재선거를 치러야 한다는 것이다. 반면 민주당은 선관위에 책임을 묻겠다면서도 국민의힘의 개표 중단, 재선거 요구는 일축했다. 민주당 조승래 총괄선대본부장은 국민의힘의 요구에 ‘일고의 가치가 없다’고 말했다. 선관위의 부실한 선거 관리에 대해서는 책임을 묻겠다고 약속하면서도 선거를 다시 치를 필요까지는 없다는 뜻으로 풀이됐다. 선관위 역시 대국민 사과를 하면서도 투표용지 부족 사태가 선거 연기나 재선거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발표했다. 앞서 허철훈 선관위 사무총장은 “국민 여러분께 큰 혼란과 심려를 끼쳐 드렸다”며 “소중한 주권을 행사하기 위해 투표소를 찾아주신 국민께 불편을 드리고 공정한 선거 관리에 대한 신뢰를 훼손한 점에 대해 책임을 통감한다”고 고개를 숙였다. 박빙에서 불 질렀다 그러면서 “중앙선관위는 이번 사안을 엄중히 인식하고 있으며 개표가 종료되는 즉시 일부 투표소의 투표용지가 부족했던 원인과 문제점을 정확히 파악해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하겠다”며 “미흡한 준비와 대처로 실망을 드리게 돼 다시 한번 사과드린다”고 덧붙였다. 또 이상능 선관위 선거1국장은 “이런 사례가 과거 선거에서 발생했다는 보고를 받은 적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송파구의 경우 전체 유권자 수의 50% (규모의 투표용지)를 인쇄한 것으로 파악했다”고 말했다. ‘몇 표 차이로 선거 당락이 갈리는 경우가 있는데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윤재수 선거관리정책실장은 “저희가 직접 말씀드리기는 좀 곤란할 것 같다”며 “소송 절차 등을 통해 법원의 결정에 따라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답했다. 선관위는 지난 4일 0시께 긴급 위원회를 열고 수습 방안을 논의했다. 이후 위원회는 “(투표용지 부족 문제가) 공직선거법에 따른 선거 연기나 재선거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입장문을 내놨다. 또 “현재 진행되는 개표를 중단하는 것은 불가하다”고 강조했다. 국민의힘의 요구에 선을 그은 것이다. 이번 사태로 선관위에 개혁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쏟아지고 있다. 이번 일뿐만 아니라 선거 때마다 일어났던 ‘선관위발’ 논란이 ‘파묘’되는 분위기다. 가장 큰 논란 중 하나는 ‘소쿠리 투표’다. 2022년 대선 당시 코로나19 확진자와 격리자의 사전투표 용지를 간이 용기나 쇼핑백 등에 담으면서 촉발된 논란이다. 지난 조기 대선 때도 서울 신촌의 한 사전투표소에서 관외 선거를 위해 대기하던 일부 유권자가 대기 줄이 길다는 이유로 투표용지를 받은 채 식사하고 돌아오는 일도 있었다. 선관위의 행태는 일부 극우층에서 제기하는 ‘부정선거’ 논란에 빌미를 제공하고 있다. 이들은 본투표에 앞서 이틀간 진행되는 사전투표가 조작됐다는 등 부정선거가 조직적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주장을 내세우는데, 선관위 관련 논란도 그 근거로 언급하고 있다. 재선거까지 나왔지만… 부정선거 논란을 차단해야 할 기관에서 오히려 의심만 제공하는 꼴이다. 일각에서는 선관위 내부 사정이 반복되는 부실 선거의 배경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한 언론이 민주당 채현일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달 1일 기준 선관위 휴직자 수는 176명으로 집계됐다. 최근 10년 새 두 번째로 많은 수치다. 육아휴직이 124명으로 가장 많았고 일반 질병 휴직 30명, 가족 돌봄 휴직 11명, 해외 동반 휴직 8명 등이 뒤를 이었다. 지방선거, 대통령선거, 국회의원 선거 등 이른바 3대 전국 선거 때마다 휴직자가 늘어나는 선관위의 고질적인 병폐가 또다시 되풀이됐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실제 2022년 5월 기준 선관위 휴직자 수는 218명으로 최근 10년 기준으로 가장 많았다. 당시 3월에는 대선, 6월에는 지방선거가 각각 치러졌다.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으로 갑작스럽게 치러진 지난해에도 선거를 한 달 앞둔 5월 기준 휴직자는 145명에 달했다. 이 같은 문제가 반복적으로 지적되자 선관위도 선거 기간에는 휴직을 자제하라는 내용의 공지를 내리는 등 개선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 법으로 보장된 육아휴직 등은 강제로 제한할 수 없으니 인력을 채용하는 방향으로 인력 공백을 막겠다는 대응책도 내놨다. 하지만 앞서 선관위 내부에서 채용 관련 비리 의혹이 크게 불거지면서 이마저도 미덥지 못한 방안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더 큰 문제는 선거 때마다 논란이 불거지고 내부의 고질적인 병폐 등으로 지적을 받는 와중에도 선관위는 큰 변화가 없다는 점이다. 독립된 ‘헌법기관’이라는 방패를 내세워 ‘지금만 넘기면 된다’는 안일한 생각이 선관위를 좀먹고 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자정을 할 수 없으면 외력이라도 가해야 하는데 그것조차 막혀 있다는 것이다. 선거 때마다 구설 불거지는데… 자정은커녕 외부 감사도 안 돼 2023년 5월 당시 선관위 사무총장, 사무차장 등 고위 간부의 자녀가 선관위 경력직 채용에 특혜를 받았다는 언론 보도가 나왔다. ‘아빠 찬스’ 논란의 시발점이다. 이후 선관위 자체 특별감사 결과 고위직 자녀 특혜 채용이 관행적으로 이뤄졌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이 과정에서 감사원이 선관위의 인력 관리 실태에 관한 직무감찰에 착수했다. 그러자 선관위는 ‘독립기관’임을 내세우면서 감사원 감사를 수용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밝혔다. 국회는 물론 여론의 반발이 거셌다. 선관위는 감사원 직무감찰을 부분적으로 수용하면서도 “감사원의 감사 범위를 명확히 정리할 필요가 있다”며 2023년 7월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했다. 헌재는 선관위의 손을 들어줬다. 지난해 2월 헌재는 “이 사건 직무감찰은 헌법 및 법률상 권한 없이 이뤄진 것으로 선관위의 독립적 업무 수행 권한을 침해했다”고 밝혔다. 선관위가 감사원의 감사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헌법에 기재된 감사원의 감사 범위가 “행정부 내부의 통제장치로서의 성격”인 만큼 정부와 독립된 헌법기관인 선관위는 국회, 법원, 헌재와 같이 직무감찰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본 것이다. 그 배경으로 선관위의 선거 관리 업무를 들었다. 대통령 소속 기관인 감사원이 독립된 헌법 기구인 선관위를 직무감찰할 수 있게 되면 선거 관리 공정성에 대한 신뢰가 훼손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감사원의 직무감찰 배제가 곧바로 부패 행위에 대한 성역의 인정으로 호도돼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헌재는 “감사원 직무감찰을 허용하지 않는 것은 이를 대신할 독립성과 전문성을 갖춘 자체 감찰기구가 마련될 것이라는 점을 전제로 한 것”이라며 “선관위는 자체 감찰제도의 실효성을 담보함으로써 우려를 불식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결국 내부 자정 기능에 기대를 건 것이다. 이번에는 고쳐질까 하지만 채용 의혹은 차치하고라도 그 이후에도 가장 본연의 업무인 선거 관리에서 계속해서 잡음을 내고 있다는 점에서 선관위를 바라보는 국민의 시선은 곱지 않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4일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회의에서 “민주공화국에서 무엇보다 철저해야 할 선거 관리에 납득하기 쉽지 않은 허점이 발생한 점에 대해 매우 큰 유감을 표한다”며 “국민의 참정권이 한치라도 훼손되는 일이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신뢰할 만한 적절한 대책을 조속하게 마련해 주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이제 지방선거는 끝났다. 선관위는 이 후폭풍을 감당할 수 있을까.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