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6·3 지방선거 투표일이다. 전국의 유권자는 지방자치단체장, 지방의원, 교육감 그리고 재보궐 지역 국회의원을 뽑기 위해 투표소로 향한다. 언론은 어느 정당이 몇 곳의 광역단체장을 차지할지, 어느 지역에서 막판 이변이 나올지에 관심을 집중하고 있다.
그러나 필자가 이번 선거에서 주목하는 숫자는 따로 있다. 바로 전국 무투표 당선자 504명이다.
이미 투표가 시작되기 전 당선이 사실상 확정된 후보가 500명을 넘는다는 사실은 이번 지방선거가 안고 있는 민주주의의 구조적 문제를 보여준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6·3 지방선거에서 무투표 당선 후보자는 513명이다. 이 중 504명이 당선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지자체장까지 무투표 당선 제도가 도입된 이후 가장 많은 규모다. 오늘 전국 수많은 유권자가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하고 있지만, 일부 지역 유권자는 다른 선거에는 투표할 수 있어도 무투표로 결정된 선거에 대해서는 선택권을 행사할 수 없다는 점에서 이 숫자는 더욱 무겁게 다가온다.
우리나라 지방자치는 1995년 민선 지방자치가 부활한 이후 30년 넘게 발전해 왔다. 그러나 이번 선거에서 나타난 무투표 당선자 급증 현상은 지방자치가 양적으로는 성장했지만 질적으로는 여전히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준다.
무투표 당선이 결정된 지역에서는 유권자가 해당 후보를 선택할 기회가 사라진다. 후보 등록이 끝나는 순간 사실상 선거도 끝난다. 민주주의의 핵심인 선택 과정이 생략되는 것이다. 실제로 이번 선거에서는 수도권에서도 처음으로 시흥시장 선거가 무투표로 결정됐다.
인구 50만명이 넘는 도시의 유권자가 시장 선거에서는 선택권을 행사할 수 없게 됐다는 점은 무투표 당선 문제가 전국적 현상으로 확산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선거는 원래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하다. 후보들이 경쟁하고 토론하며 유권자 앞에서 자신의 정책과 비전을 검증받는 과정이 민주주의의 본질이다. 누가 당선되느냐도 중요하지만, 어떤 과정을 거쳐 당선되느냐가 더 중요하다. 그런데 무투표 당선은 그 과정을 통째로 생략한다.
일각에서는 특정 정당 지지세가 강한 지역에서는 당연히 나타날 수 있는 현상이라고 말한다. 실제로 광주·전남에서는 민주당이 절대적 우위를 유지하고 있고 영남 일부 지역에서는 국민의힘이 비슷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지역 정서에 따라 특정 정당이 강한 것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하지만 특정 정당이 강한 것과 경쟁이 사라지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민주주의는 경쟁을 전제로 한다. 경쟁 없는 민주주의는 존재할 수 있어도 건강한 민주주의는 되기 어렵다.
해외 주요 민주주의 국가도 무투표 당선을 최소화하기 위해 다양한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미국과 영국에서는 특정 지역에서 후보가 한 명만 등록하더라도 유권자의 투표를 통해 최종 확정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일부 국가에서는 일정 수준 이상의 찬성표를 얻지 못하면 재선거나 후보 재등록 절차를 진행하기도 한다.
방식은 서로 다르지만, 공통점은 분명하다. 후보가 한 명뿐이더라도 유권자의 선택과 검증 과정은 최대한 보장하려고 노력한다는 점이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무투표 당선자가 대거 나온 가장 큰 이유는 정당 독점 구조 때문이다. 일부 지역에서는 특정 정당 공천장이 사실상 당선증처럼 인식된다. 후보들은 유권자보다 공천권자를 더 의식하게 되고 선거 경쟁보다 공천 경쟁이 더 치열해진다.
실제로 이번 지방선거 무투표 당선자 504명 가운데 민주당은 306명, 국민의힘은 197명, 진보당은 1명이다. 광주·전남에서는 민주당이, 대구·경북에서는 국민의힘이 압도적 우위를 보인다.
더 우려되는 것은 무투표 당선이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 구조로 굳어질 가능성이다. 특정 지역에서 특정 정당의 공천이 곧 당선으로 이어지는 상황이 반복되면 선거의 중심은 유권자에서 정당으로 이동한다. 후보들은 유권자보다 공천권자를 더 의식하게 되고 정치의 책임 역시 시민보다 당 조직을 향하게 된다.
민주주의가 시민 중심에서 정당 중심으로 변질될 수 있다는 점에서 무투표 당선 증가는 결코 가볍게 볼 문제가 아니다.
무투표 당선의 가장 큰 문제는 유권자가 해당 선거에서 후보를 선택할 권리를 행사할 수 없다는 점이다. 투표권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국민이 가진 가장 기본적인 정치적 권리다. 그러나 후보가 한 명뿐이라면 권리는 존재해도 선택은 존재하지 않는다. 유권자는 자신의 의사를 표현할 기회를 잃게 되고 민주주의의 핵심인 참여 과정 역시 크게 약화된다.
또 다른 문제는 검증 과정의 실종이다. 경쟁 후보가 있어야 정책과 공약을 비교할 수 있고 공개 토론과 언론 검증도 활발하게 이뤄진다. 그러나 무투표 당선이 되면 이런 과정 자체가 사라진다. 유권자는 후보의 자질과 능력을 충분히 평가할 기회를 얻지 못하고 당선 예정자 역시 유권자 앞에서 자신의 비전과 정책을 설명해야 할 필요성이 줄어든다.
이런 현상이 반복되면 정치에 대한 관심과 참여도 함께 줄어든다. 유권자는 “어차피 결과는 정해져 있다”는 인식을 갖게 되고 선거에 대한 기대보다 냉소가 커질 수 있다. 결국 특정 정당이나 세력이 지역 정치를 장기간 독점할 경우 지방의회 역시 다양한 목소리를 담아내기 어려워진다.
민주주의는 다양한 의견이 경쟁하고 서로를 견제할 때 건강하게 작동한다.
특히 지방정치는 중앙정치보다 더 많은 경쟁이 필요하다. 지방의원과 단체장은 주민 생활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권한을 행사한다. 도로 하나, 복지 예산 하나, 지역 개발 계획 하나가 주민 삶에 직접 영향을 준다. 그런 만큼 주민은 후보를 비교하고 평가할 권리가 있으며 후보 역시 주민 앞에서 검증받을 의무가 있다.
그렇다면 해결책은 무엇일까. 가장 중요한 것은 경쟁이 가능한 선거 환경을 만드는 일이다. 특정 정당이 독점하는 구조가 고착되면 선거는 경쟁보다 절차에 가까워진다. 다양한 정치세력이 후보를 낼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고 유권자가 실제로 선택할 수 있는 선거가 되도록 제도를 보완할 필요가 있다.
정당 내부의 공천 과정도 더욱 투명하고 민주적으로 운영돼야 한다. 공천이 일부 세력에 의해 좌우되면 새로운 인물이 정치에 진입하기 어렵고 결국 후보군 자체가 제한된다. 동시에 지방정치를 이끌어 갈 인재를 장기적으로 육성하는 노력도 필요하다. 지역사회에서 활동하는 전문가와 청년, 시민단체 인사들이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통로를 넓혀야 한다.
무투표 당선이 불가피하게 발생하더라도 최소한의 검증 장치는 마련돼야 한다. 공개 토론회나 정책 설명회, 주민 의견 수렴 절차 등을 통해 유권자가 후보를 평가할 기회를 보장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시민들의 관심과 참여다. 민주주의는 제도만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시민이 정치에 관심을 갖고 후보를 발굴하며 적극적으로 참여할 때 비로소 경쟁과 견제가 살아난다.
이와 관련해 필자는 우리 정치가 지역 정당 허용 문제도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현재 우리나라 정당법은 사실상 전국 정당만 허용하고 있어 특정 지역만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지역 정당은 존재하기 어렵다. 그러나 지역 정당이 허용되면 거대 양당이 독점하고 있는 지역 정치구조에 새로운 경쟁이 형성될 수 있다. 지역 현안을 중심으로 경쟁하는 정치세력이 등장하면 유권자의 선택권 역시 넓어질 수 있다.
민주주의의 위기는 투표율이 낮을 때만 오는 것이 아니다. 투표할 기회 자체가 사라질 때도 시작된다. 선거는 승자를 만드는 제도가 아니다. 시민이 권력을 빌려주는 제도다. 그래서 민주주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당선이 아니라 선택이다. 경쟁 없는 승리는 가능할지 몰라도 경쟁 없는 민주주의는 오래 지속될 수 없다.
지방자치 30년을 넘긴 지금 우리는 당선자를 얼마나 많이 배출했는가보다 유권자가 얼마나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가를 먼저 물어야 한다. 민주주의의 수준은 승자의 숫자가 아니라 선택의 폭으로 결정되기 때문이다.
오늘 전국의 유권자는 한 표를 행사하며 지방자치의 미래를 결정할 것이다. 그러나 일부 유권자는 이미 결과가 정해진 선거 앞에서 해당 후보를 선택할 기회를 갖지 못한다. 504명이라는 숫자는 단순한 선거 통계가 아니다. 그것은 지방민주주의가 얼마나 건강하게 경쟁하고 있는지를 되묻는 질문이다.
민주주의는 투표함에서 완성된다. 그리고 투표함에 담길 선택지가 사라지는 순간 민주주의 역시 조금씩 힘을 잃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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