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 전력 파수꾼’ 열악한 노동 현장

컨테이너 숙소에 나홀로 근무까지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대한민국에는 육지 전력망이 닿지 않는 섬의 불을 지키는 이들이 있다. 백령도와 울릉도, 연평도부터 남해안 작은 섬들까지 전국 도서지역 발전소 노동자들은 24시간 현장을 지키며 주민들의 삶과 국가 전력망을 유지해 왔다. 그러나 정작 이들이 머무는 곳은 엔진실 옆 컨테이너 숙소였다. 현장에서는 인력 부족, 노후 설비 문제가 수년째 반복되고 있었다.

섬에서는 별도의 발전시설을 통해 전기를 자체 생산·공급한다. 울릉도와 백령도, 연평도 같은 접경 도서지역부터 남해안 소규모 섬까지 전국 60여개 섬의 전력 공급이 이런 방식으로 유지되고 있다. 이른바 ‘도서 발전’으로 불리는 이 사업은 국가 필수 공공 전력 사업으로 꼽힌다. 의료시설과 통신망, 상하수도 시설은 물론 군사시설 운영까지 안정적인 전력 공급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주방도 없고
화장실도 없고

하지만 정작 섬을 밝히는 노동자들은 열악한 환경에 놓여있었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섬 발전소 노동자들의 숙소 상태는 낙후됐다. ‘독거도 발전소’도 그중 한 곳이다. 이곳에서 근무하는 노동자들의 숙소는 발전소 내부에 설치된 컨테이너다.

사택이 마련되지 않아 임시로 설치한 공간이지만, 현장 노동자들은 이곳에서 수년째 생활하고 있다. 컨테이너 내부에는 주방도, 화장실도 없었다. 바로 옆 엔진실에서 발생하는 소음 때문에 제대로 된 휴식을 취하기 어렵다는 게 노동자들의 설명이다. 설치된 지 오래돼 곳곳에 녹이 슬었고, 천장 누수 문제도 반복되고 있다고 전했다.

다른 섬 지역 발전소의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득량도 발전소’와 ‘성남도 발전소’도 역시 별도 사택 없이 발전소 내부 컨테이너를 숙소로 사용 중이었다. 이곳 역시 엔진실과 가까워 소음이 심하고, 주방과 화장실조차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았다.

‘평도 발전소’의 경우에는 더 심각했다. 숙소가 엔진이 설치된 발전동 내부에 마련돼있다. 엔진실 바로 아래 공간에서 여러 명이 함께 생활하는 구조다.

안전 문제도 심각했다. 현장 노동자들에 따르면 일부 발전소에서는 식수 필터를 한 달만 사용해도 오염이 심해 음용이 어려운 수준이라고 한다. “일부 사택은 누수로 인해 물을 받아놓고 생활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현장에서는 인력 문제와 함께 설비 노후화 문제도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일부 발전소에서는 연료탱크와 내부 설비에 녹이 심하게 발생하고 있으며, 엔진실 누수나 누전 우려가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실제 백령도 발전소의 경우 엔진 누유가 발생해도 복구 작업 승인이 늦어져 대응이 지연되기도 했다.

곰팡이 가득·엔진실 소음 속 휴식
오염된 물 마시며 외로운 1인 생활

노동자들은 “엔진실 누수로 누전이나 정전 위험까지 우려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노동자들은 “백령도와 같은 접경지역 발전소는 단순 지방 시설이 아니라 국가 안보와도 연결된 곳”이라며 “현장 상황은 국가 필수 전력 인프라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열악하다”고 전했다.

노동자들은 이 상황의 배경으로 현재 도서 발전 운영 구조를 지적했다. 도서발전사업은 ‘농어촌 전기공급사업 촉진법’에 따라 운영되는 국가 정책 사업으로, 전력산업기반기금을 통해 지원된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현재 구조상 한전이 전력 판매 손실 일부를 부담하고 있어 인력 투자나 설비 투자에 소극적이라는 것이다. 특히 현장 노동자들은 “도서 발전은 단순 수익사업이 아니라 국가 필수 공공 전력 사업”이라며 “비용 논리로만 접근할 경우, 결국 인력 부족과 설비 노후화 문제가 반복될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도서 발전 노동자들은 열악한 환경만큼이나 심각한 문제로 인력 부족 문제를 꼽고 있다. 이들에 따르면 현재 현장 인력은 정원 대비 80%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으로 운영되는 경우가 많다. 부족한 인원을 기존 근무자들이 추가 근무 형태로 메우며 현장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 상당수 도서 발전소는 최소 인력 수준으로 운영되고 있고, 일부 현장에서는 야간 시간대 1인 근무 체계까지 유지되고 있었다.

도서 발전 현장은 4조 교대 형태로 운영된다. 각 교대 시간마다 근무자 1명이 8시간씩 발전소 운영을 맡는 구조다. 주간에는 관리자가 일부 현장에 배치되지만 야간에는 사실상 근무자 혼자 발전설비를 관리해야 하는 상황이다.

도서 발전 업무는 단순 시설 관리와는 성격이 다르다. 육지 전력망이 연결되지 않은 섬에서는 발전소가 멈출 경우 곧바로 정전으로 이어질 수 있는 점에서다. 실제로 도서지역에서는 전력 공급이 끊기면 의료시설과 통신망, 상하수도 시설 운영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식수는 오염
설비 노후화

노동자들은 신규 인력 이탈도 심각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한 노동자는 “근무 환경이나 처우가 워낙 열악하다 보니 새로 입사한 인력이 한 달도 버티지 못하고 나가는 경우가 많다”며 “결국 남아 있는 인력들이 초과근무를 반복하며 버티는 구조가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인력 부족 문제가 심화된 건 한국전력공사 자회사인 ‘한전MCS’ 전환 이후다. 노동자들은 현재 운영 구조 변화 과정에서 현장 인력난과 처우 문제가 더욱 악화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도서발전사업은 원래 한국전력공사(이하 한전)가 직접 운영하던 사업이다.

한전은 1990년대 초반까지 울릉도 등 도서지역 발전소를 직접 운영해 왔다. 그러나 섬 지역 근무를 기피하는 직원들이 많아지면서 인력 확보에 어려움을 겪었고, 이후 도서 발전 운영을 외부에 위탁하기 시작했다.

이후 한전은 퇴직자 단체인 한국전력전우회가 100% 출자한 업체인 JBC와 수의계약을 맺고 전국 도서지역 발전소 운영을 맡겼다. JBC는 1996년부터 울릉도와 백령도 등 전국 60여개 섬 지역에서 발전설비 운영과 배전시설 유지·관리 업무를 수행해 왔다.

그러나 도서 발전 노동자들은 “실제 현장에서는 한전의 지휘·감독 아래 업무가 이뤄졌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현장에서는 한전이 제작한 업무지침서를 사용했고, 업무 보고와 설비 운영 과정에서도 한전과 수시로 연락하며 업무를 수행해 왔다”고 했다.

이에 도서 발전 노동자들은 현재 운영 구조가 사실상 불법파견에 해당한다며 지난 2020년 한전을 상대로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은 1심과 2심 모두 노동자들의 손을 들어줬다. 광주지방법원은 2023년 6월, 도서 발전 노동자들이 형식상으로는 JBC 소속이지만, 실제 업무 수행 방식은 한전의 지휘·감독 아래 이뤄졌다고 판단했다.

불법 파견
인정됐지만…

재판부는 한전이 업무 지침을 제공하고 관리·감독을 통해 노동자들의 업무 수행에 직접 개입했다고 봤다. 이후 지난 1월 열린 항소심에서도 광주고등법원은 같은 판단을 유지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이 사건 용역계약은 일부 도급계약 성격에 부합하는 특성들도 존재하지만 근로자파견계약의 성격이 더욱 강하다”고 밝혔다.

또 “도서지역에서 근무할 인력 확보를 주된 목적으로 체결된 용역계약”이라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특히 노동자들이 한전이 제작한 업무 지침서에 따라 업무를 수행했고, 한전 직원들과 수시로 업무 연락과 보고를 주고받은 점 등을 근거로 들었다.

또 한전이 JBC 노동자들을 직접 교육·훈련했고, 근태와 인력 운영에도 관여했다고 판시했다.

하지만 한전은 1심 판결 이후에도 직접고용 대신 자회사 전환 방안을 추진했다. 한전은 도서발전사업을 기존 JBC가 아닌 자회사인 한전MCS로 이관하는 방안을 검토했고, 이 과정에서 노동자들에게 근로자지위확인 ‘소송 취하’와 ‘부제소 확약서 제출’을 요구했다는 논란이 불거졌다.

한전은 한전MCS로의 전환 과정에서 임금 총액 기준 4% 인상과 처우 개선, 고용 안정 등을 약속했고, 당시 다수의 노동자들은 도서 주민 불편 최소화, 국가 공공 전력 유지, 현장 혼란 방지를 위해 현장을 지키며 한전MCS 전환에 동의했다.

그러나 다른 노동자들은 법원이 이미 한전 노동자 지위를 인정했는데 자회사로 이동하는 것은 받아들이기 어렵다며 반발했다. 노동자들은 특히 소송 취하를 조건으로 내건 점에 대해 “재판받을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갈등은 결국 집단해고 사태로 이어졌다. 한전은 지난 2024년 JBC와의 위탁계약을 종료했고, 소송을 유지한 노동자들은 같은 해 8월 해고 통보를 받았다. 해고된 노동자들은 이후 생계 문제와 건강 악화 등을 호소하며 복직 투쟁을 이어갔다. 한전과 노동자들의 갈등은 이후 장기화됐다.

노동자들은 해고 이후 생계 악화와 건강 문제를 호소했다. 도서 발전 노동자들이 속한 발전노조가 지난해 진행한 실태조사에 따르면, 해고 노동자들의 소득은 해고 이전 대비 23.1% 수준까지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응답자의 60%는 해고 이후 빚이 늘었다고 답했으며, 생활비를 줄이기 위해 식대부터 줄이고 있다는 조사 결과도 나왔다.

“정전 막으려 전환 선택했는데…”
도서 발전 일선 여전히 ‘인력난’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는 노동자들도 많아졌다. 노조 측 조사에서는 응답자 가운데 상당수가 불면증과 우울 증상을 호소했으며,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가 의심된다는 결과도 포함됐다. 노동자들은 장기간 이어진 해고 상태와 생계 불안, 복직 문제 등이 복합적으로 영향을 미쳤다고 주장했다.

실제 해고 노동자 가운데 울릉도 발전소에서 근무했던 한 조합원은 해고 이후 생활고와 스트레스를 호소하다 지난해 4월 숨졌다. 노조 측은 해고 이후 정신적·경제적 부담이 커졌다고 주장하며 한전에 책임 있는 대책 마련을 요구했다.

정치권에서도 비판이 이어졌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와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국정감사에서는 한전의 도서 발전 운영 방식과 집단해고 문제가 여러 차례 언급됐다. 더불어민주당 이용우 의원은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한전을 향해 “공기업이 민간 악덕 기업주보다 못한 행태를 보이고 있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노동계와 정치권의 압박이 이어지는 가운데 한전은 지난 2월 결국 상고를 포기했다. 한전은 2심 판결 이후 “판결을 수용하고 상고를 제기하지 않기로 결정했다”며 직접고용 절차에 착수했다. 이에 따라 1차 소송 원고 126명에 대해서는 근로계약 체결 절차가 진행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한전MCS 전환을 선택했던 노동자들은 직접고용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 현재 현장에서는 이들을 중심으로 처우 문제와 형평성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노동자들의 주장에 따르면 당시 전환 과정에서 약속했던 임금 총액 기준 4% 인상과 처우 개선, 고용 안정 등이 제대로 이행되지 않고 있다.

실제 현장에서는 급여 감소와 각종 수당 미반영, 역할·직무급 미지급 문제가 이어졌다고 한다. 여기에 인력 부족 문제까지 겹치면서 기존 근무자들의 업무 부담도 더 커졌다는 주장이다. 현장 관계자는 “소송 대신 현장을 지킨 노동자들이 오히려 힘들어진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피해는 고스란히 도서 주민들에게 돌아갔다. 노동자들이 제시한 자료에 따르면 한전MCS 전환 이후 도서지역 고장·정전 발생 건수는 이전 3개년 평균 74건에서 125건으로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발전설비 고장과 배전 계통 이상 모두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갈수록
처우 악화

주민들은 정전이 발생할 때마다 일상생활에 불편을 겪어야 했고, 현장 노동자들 역시 늘어난 정비와 긴급 출동 업무를 감당해야 했다. 노동자들은 “도서 발전은 단순한 사업이 아니라 주민들의 생명과 안전, 국가 전력망을 책임지는 공공 인프라”라며 “현장의 문제를 방치할 경우 결국 그 피해는 주민들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imsharp@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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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 보는 민주당 당권 경쟁

미리 보는 민주당 당권 경쟁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8월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최고위원을 선출하는 전당대회가 열린다. 6월 지방선거라는 빅 이벤트가 걸쳐져 있지만 당의 시선은 벌써 8월을 향했다. 재보궐선거를 통해 당에 입성한 사람, 공천에서 밀린 사람, 경선에서 탈락한 사람 등 변수도 수십 가지다. 당권을 쥐기 위한 ‘비공식’ 후보들의 경쟁이 벌써부터 뜨겁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6·3 지방선거 직후 곧바로 8월 전당대회 국면에 돌입할 예정이다. 이번 지방선거가 이재명정부 1년을 평가할 시험대인 동시에 민주당 권력 재편의 시작점인 셈이다. 그 누구도 출사표를 던지지 않았지만 정치권에서는 이미 하마평이 돌고 있다. 현직인 정청래 대표를 비롯한 ▲김민석 국무총리 ▲송영길 전 대표 ▲김용민 의원 ▲우원식 전 국회의장 ▲이광재 전 사무총장 등이 거론된다. 지방선거를 무대로 물밑에선 각자 발 빠르게 움직이면서 차기 당권 경쟁이 점화하는 분위기다. 안갯속 연임 가도 이정부 1대 지도부를 이끈 정청래 대표는 지난해 8월 치러진 전당대회서 박찬대 후보와의 2파전 대결 끝에 61.74%의 득표율로 당선됐다. 대의원 누적 투표 결과에선 정 후보가 46.91%로, 53.09%를 얻은 박 후보에게 약 7%p 뒤처진 만큼 압도적인 당심으로 선발됐다는 평이 나왔다. 그동안 정 대표는 연임 가능성에 선을 그어왔다. 1인1표제 등 당권 강화를 위한 작업이 한창이던 당시 정 대표가 자신의 대표 연임을 위해 이를 무리해 추진하는 것이라는 논란이 제기됐고, 이에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당원에 대한 모독이다” “연임의 이응(ㅇ)도 들어본 적이 없다”고 반박했다. 그러나 정 대표가 6·3 지방선거를 돕기 위해 전국을 무대로 행보를 가속하는 모습이 마치 전당대회 전초전을 연상시킨다는 평이 나온다. 정 대표는 부산, 울산, 경남을 비롯해 전체 권리당원의 30%가 분포된 호남 지역을 순회했다. 지방선거 후보들에게 힘을 실어주는 동시에 당원과의 접촉을 늘렸고, 자연스럽게 얼굴 도장을 찍는 효과를 얻었다. 당내에서는 이변이 없는 한 민주당이 이번 지방선거에서 대승하면서 정 대표가 정치적 위상을 굳히고 대표 연임 역시 무리 없이 진행될 것으로 봤다. 특히 후보 경선 과정에서 친청(친 정청래)계가 잇따라 공천을 받은 만큼 세 늘리기에 주력했다는 평가도 나왔다. 우선 민주당 수석대변인으로 정 대표와 호흡을 맞췄던 박수현 전 의원은 충남도지사 후보로 선거를 치렀다. 평소 정 대표와 가까운 사이로 알려진 이원택·민형배 의원도 각각 전북도지사 후보와 전남·광주 통합특별시장 후보로 공천됐다. 지방선거 덕을 톡톡히 봤으나 과거 행적에 발목이 잡힐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이번 선거서 ‘클린 공천’을 자신했으나 일부 지역에서 잡음이 나오면서 그를 향한 원성이 높아지는 모양새다. 먼저 서울 강북구청장 후보를 기존 이승훈 변호사에서 정창수 나라살림연구소장으로 교체한 사건이다. 이 변호사가 과거 성범죄자를 변호했다는 보도가 나오자 국민 여론을 의식해 후보를 교체했는데, 자신과 유사한 변호 이력을 지닌 다른 후보가 다른 지역에 공천되자 ‘이중 잣대’라는 지적이 나왔다. 이 변호사는 단식 농성에 돌입했고 친명(친 이재명) 강득구 최고위원은 농성장을 찾아 “정말 4무 공천이 맞나”라며 정 대표를 직격하기도 했다. 1년 사이 늘어난 적수 정청래 연임 가능성은? 재선에 도전하는 김관영 전북도지사는 ‘현금 살포’ 의혹으로 제명 처리됐다. 윤리 감찰을 지시한 정 대표에게 분노를 느낀 김 후보는 무소속으로 출마해 “전북도지사 선거는 이번 민주당 전당대회와 관련된 친청과 친명의 대결 구도가 있다”며 “제가 작년 전당대회 때부터 정 대표와 다른 노선에 있었기 때문에 이런 것들이 저를 제명하는 데까지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올해 초 진행한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과의 합당 좌초도 악수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당시 정 대표는 ‘청와대와 조율을 거쳤다’는 취지로 수습에 나섰지만 오히려 이재명 대통령을 끌어들였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친명계를 적으로 돌렸다. 이언주 최고위원은 앞장서서 합당에 반대했다. 그는 “조기 합당은 민주당의 주류 교체 시도이자 이재명의 민주당을 정청래나 조국의 민주당으로 전환하려는 시도라고 보인다”고 말했다. 강득구 최고위원 역시 “이번 합당 제한은 최고위를 패싱한 정 대표의 개인적 제안”이라며 “지금도 심한 자괴감을 느끼고 있다”고 밝혔다. 각종 진보 진영 온라인 커뮤니티 역시 정 대표를 향한 원성과 혁신당을 배척하려는 의도를 가진 게시글이 줄을 이었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지금 선거판은 민주당 내부 권력 투쟁의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 정청래 연임파와 반청(반 정청래)파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며 “서로를 방해하려고 하다 보니 잡음이 생기는 것”이라고 봤다. 김민석 국무총리의 거취도 관심의 대상이다. 김 총리는 “당 대표직에 로망이 있다”고 말해 당권 도전 가능성을 시사했으나 직접적인 물음에는 선을 그으며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그런 김 총리는 최근 여당 인사들과 접점을 늘리는 데 주력하고 있다. 전북 군산시 새만금개발청에서 새만금·전북 대혁신 태스크포스(TF) 회의를 진행한 데 이어 지난 19일 민주당 신임 원내대표단과 만나 국정과제 필수 입법안의 신속한 처리를 당부하기도 했다. 이날 회동에는 한병도 원내대표를 비롯한 ▲천준호 원내운영수석부대표 ▲김한규 원내정책수석부대표 ▲이주희 원내대변인 및 원내부대표 등이 참석한 것으로 전해졌다. 민주당 이주희 원내대변인은 “총리께선 123개 국정과제를 뒷받침할 필수 입법안 신속 처리에 대한 당부와 함께 이재명정부 2년차를 맞아 정부와 여당의 원내대표단이 함께 심기일전해 국정 운영의 강력한 원군이 되어줄 것을 요청했다”고 설명했다. 개혁 끝 관리 시작? 김 총리가 정 대표의 맞수로 떠오른 이유는 그가 이 대통령의 복심이자 ‘섬세한 관리형’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동안 정 대표가 청와대와 엇나가는 모습을 보여준 탓에 당정 갈등설이 빈번하게 일어났고 당원들의 불안감으로 이어지면서 차기 대표는 정부와 합이 잘 맞는 사람으로 뽑아야 한다는 여론에 힘이 실렸다. 선거 기여도가 낮은 탓에 등판 시기는 고심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이번 전당대회에서 전국을 누비며 솔선수범한 정 대표와 달리 김 총리는 선거 승리 공을 가져갈 명분을 얻지 못했다. 그런 그가 지방선거 이후 전당대회에 출사표를 던진다면 “승리를 위해 어떤 기여를 했느냐”는 질문에 명쾌한 답을 내놓기 어려울뿐더러 오히려 반감만 생길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만일 김 총리가 전당대회에 출마할 경우 정 대표를 지지하는 당원들에 의해 과거사가 ‘파묘’될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작년 6월 공직자 청문회 당시 김 총리는 재산 형성과 학위 취득, 군 복무 및 금전 거래 의혹 등으로 혹독한 신고식을 치렀다. 청문회가 진행되는 시기는 이정부 출범 극초기 단계로 민주당 의원들이 적극 엄호에 나섰지만, 이번에는 제대로 된 방패막이 되어줄지 확실치 않은 상황이다. 민주당의 원조 터줏대감인 송영길 전 대표도 변수다. 인천 연수갑 보궐선거에 출마한 그는 최근 대표 도전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어 이목이 쏠린다. 선거를 불과 일주일 남겨둔 시점에서 송 후보는 정 대표를 향한 견제구를 날렸다. 연수갑 보궐선거 후보 공천에 대해 “정 대표가 줬다는 표현은 맞지 않다”고 말하는 등 차기 행보를 염두에 둔 것으로 풀이된다. 그는 YTN 라디오에 출연해 ‘공천 받기 전 정 대표에게 연락을 받았나’라는 질문에 송 후보는 “직접 전혀 전화 받은 건 없다”고 잘라 말했다. 이어 “정 대표께서 당원이 주인된 당을 만들겠다고 1인1표제까지 만들지 않았나. (따라서) 정 대표가 (공천을) 줬다는 표현은 맞지 않다”고 반박했다. 자신의 출마가 정 대표의 배려 덕분이 아닌 당원들의 호응에 응했다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풀이된다. 송 후보는 국회 복귀가 우선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면서도 당권 도전 가능성을 완전히 닫지 않았다. 그는 ‘김어준의 뉴스공장’에서는 “당선되면 이재명 대통령을 만나 여러 가지로 무엇이 필요할지 상의하겠다”며 “당의 역할이든 정부에서의 역할이든 (이 대통령과) 상의해 봐야 할 것 같다. 제 개인의 정치 프로그램이 중요한 게 아니라 이재명 정부 성공을 위해서 어떤 역할이라도 하겠다는 자세”라고 밝혔다. 사방에서 “혹시 나도?” 송 후보가 민주당의 지방선거와 재보선 후보로 지원하는 것이 ‘만약 당 대표가 된다면 해야 할 일을 미리 준비하는 단계’인지를 묻는 말에는 “그것보다는 정 대표나 저나 마찬가지로 전체 승리가 중요하다”며 “조금이라도 힘이 될 수 있으면 도와주려고 뛰고 있다”고 답했다. 민주당 강성 지지층의 지지를 받는 김용민 의원의 존재감도 급부상했다. 김 의원은 법제사법위원회 민주당 간사로 검찰·사법개혁 논의 등을 주도해 온 검찰개혁 강경파로 꼽힌다. 6월 지방선거 종료와 동시에 보완수사권을 띄워 다시 한번 승부수를 던지지 않겠냐는 해석이다. 전당대회를 앞두고 검찰개혁이 다시 화두가 된다면, 강경 성향인 정 대표에 이어 본인도 겨뤄볼 만하다는 자신감이 깔린 것으로 전해진다. 앞서 김 의원은 ‘당권 도전설’을 부인했으나 검찰개혁 공을 앞세워 ‘개혁 당 대표’ 기류를 이어간다면 전당대회 역시 하나의 선택권이 될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다만 김 의원을 향한 여권 내 평가 역시 호의적이지만은 않다. 김 의원이 추미애 의원과 함께 중수청법 입법을 앞두고 당·정 협의를 거쳐 내놓은 안을 엎는 등 여권 내 갈등을 촉발시켰기 때문이다. 당시 한 정치권 관계자는 “김 의원이 고집스러운 면모를 보이면서까지 의견을 굽히지 않은 건 당원들에게 무언가를 어필하려는 마음도 조금 있었던 것 같다”고도 해석했다. 국회의장직에서 퇴임한 우원식 의원도 하마평에 올랐다. 그동안 우 의원은 여권 의원들과 친밀한 행보를 보이며 유독 평판 관리에 힘 써온 것으로 전해지는데, 이를 두고 우 의원의 다음 스텝이 당 대표가 되지 않겠냐는 해석이 나왔다. 22대 국회 전반기 국회의장 퇴임을 하루 앞둔 지난달 28일 기자회견에서 우 의원은 “후반기 국회에서 개헌하지 못하면 제 인생에 굉장히 큰 후회가 올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국민투표법을 개정해서 절차적 걸림돌을 해소했고, 단계적 개헌에 국민적 공감대도 넓어졌다”며 “후반기 국회에서 반드시 개헌특위를 구성하고 결실을 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다만 우 의원은 향후 역할론에 대해선 말을 아꼈다. 그저 “당원으로서 필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며 “우리나라의 민주주의와 사회적 약자를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면서 지내겠다”고 언급했다. ‘친명 주도권’ 다시 쥐고 싶어도… 전대 판 가를 최종 종착지 ‘전북’ 하남갑에 출마한 이광재 전 의원도 후보군에 올랐지만 최근 한 인터뷰에서 ‘전당대회 등 다른 계획이 있느냐’는 질문에 “지역에 헌신할 생각”이라며 선을 그었다. 재차 이어진 질문에도 “지금은 중앙 정치를 생각하지 않고 있다. 지금 국민이 원하는 건 하남을 확실하게 모델 도시로 만드는 것”이라고 답했다. 그런 이 후보를 둘러싸고 계속해서 출마설이 나오는 이유는 당원은 물론 민주당 의원까지 그의 선당후사 정신을 높게 봤기 때문이다. 이 후보는 각종 선거 때마다 당의 요구에 따라 험지에 몸을 던졌다. 2022년 지방선거에선 보수세가 강한 강원도지사에 출마해 김진태 지사에게 패배했고, 2년 뒤 22대 총선에선 20년 넘게 살아 온 종로를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위인 곽상언 의원에게 양보했다. 이번 지방선거 역시 평택 출마를 희망했지만 당의 뜻에 따라 하남으로 향했다. 선당후사 이미지가 굳어지면서 당원들 사이에서는 ‘적재적소 어디든 잘 어울리는 인재’라는 평을 받았다. 이번 전당대회를 가를 변수는 전북이다. 전북은 정 대표의 판단하에 후보가 교체된 곳이다. 그동안 정치권에서는 민주당이 서울 등 주요 격전지에서 선전하더라도 전북에서 성과를 못 낼 경우 정 대표의 책임론은 불가피하다고 봤다. 정 대표의 연임 가도에 빨간불이 들어온다면 그의 대척점에 선 이들이 유리해지는 만큼, 전북이 ‘민주당의 격전지’가 된 셈이다. 무소속으로 출사표를 던진 김관영 후보는 연일 정 대표를 향한 공개 비판을 이어가며 전북 선거를 당권 문제로 확장했다. 그는 자신의 유튜브 채널을 통해 “정청래 지도부는 만약 이번 선거에서 김관영이 이기면 사퇴한다”며 “(내가 당선된 뒤) 사퇴를 안 한다 해도 8월 전당대회에서 다른 분이 될 가능성이 아주 커진다”고 말했다. 이어 “정 대표를 사퇴시키고 싶으면, 당 대표로 더 이상 만들고 싶지 않으면 이번에 김관영을 선택해야 한다”고도 주장했다. 묘연한 텃밭 민심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는 “이미 민주당 전당대회는 시작됐다. 비공식 후보와 비공식 일정만 있을 뿐,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낙관론으로 보일 수 있어 지방선거 기간에는 전당대회의 ‘전’자도 못 꺼냈다”고 말했다. 이어 “지방선거 승리를 두고 저마다 공을 가져가려고 할 텐데 정 대표는 본인의 것으로, 나머지 주자들은 이 대통령의 것으로 나누려고 할 것”이라며 “국정 안정 기조와 내란 청산 기조 두 개를 적절히 조율할 수 있는 후보가 유리할 것으로 본다”고 덧붙였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