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수록 심해지는 구급대 ‘응급실 뺑뺑이’의 중요 원인으로 경증 환자에 의한 대형병원 응급실 과밀화가 지적되자, 최근 의사협회 일각에서는 경증 환자를 개인 의원으로 이송하는 정책을 제안했다.
그러나 응급의료 현장의 반응은 냉소적이다. 구급대원이 배후 진료 역량(수술, 처치 등)이 없는 야간 의원이나 소규모 의료기관에 환자를 인계한 뒤 철수해 버리면, 대처가 불가능한 작은 병원에서 환자가 더 큰 위험에 처하게 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송 실적조차 제대로 집계되지 않는 기형적 구조 속에서 환자는 방치되고 구급대원은 실전 업무에서 겉돌 뿐이다. 이 같은 왜곡의 본질은 소방 고위층의 응급의료 전문성 미비와 이로 인해 파생된 소방청의 철저한 ‘데이터 독점 및 은폐’에 있다.
대한민국 소방청과 119 구급 조직은 ‘Pre-KTAS(병원 전 단계 환자 중증도 분류체계)’에 기반한 구급대원의 현장 분류 역량이 병원의 ‘KTAS’와 호환되며 객관성과 정확성을 갖췄다고 홍보해 왔다. 그러나 이는 검증되지 않은 일방적 주장에 불과하다.
구급대원의 현장 분류가 정확했는지, 적절한 전문 처치가 행해졌는지는 오직 환자가 이송된 병원에서의 최종 진료 결과와 생사(生死) 통계로만 판정할 수 있다. 즉, 구급대의 이송 데이터와 응급실의 병원 데이터가 유기적으로 이어져야 비로소 구급 역량에 대한 ‘의학적 질 관리(Quality Control)’가 가능하다.
현재 소방청은 구급 과정에서 생산되는 수많은 의료 데이터 중 극히 일부만을 중앙응급의료센터와 질병관리청에 마지못해 제공하고 있다. 정작 병원 의료진은 가장 기초적인 정보인 ‘구급활동 기록지’마저도 응급실 전산과 연동되지 않는 단순 PDF 이미지 파일 형태로 받아보는 실정이다.
바쁜 응급실 의료진이 소방청 홈페이지에 따로 접속해 이미지 파일로 일일이 내려받아야 하는 구조인 데다, 이마저도 구급대원이 한참 후에야 입력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현장에서 구급대원과 초진 의료진이 나눈 구두 인계 사항은 허공으로 날아가 버리고, 추후 환자를 진료할 다른 의료진들은 구급 단계의 정보를 전산으로 확인하지 못한다.
더 심각한 문제는 구급 데이터를 소방청과 소방에 밀착된 일부 구급 지도 의사 집단이 카르텔을 형성해 독점하고 있다는 점이다. 학술적으로 매우 중요한 ‘병원 전 심정지 기록(엇스타인 양식, 심폐소생술 세부 기록지)’을 비롯해 중증 외상, 심근경색, 뇌졸중 등의 핵심 데이터가 연구 현장에서 사장되고 있다.
이 아까운 데이터들이 고작 소방의 시설·인력·예산을 늘리기 위한 내부 용역 연구보고서 작성용으로 오용된다. 환자의 개인정보 보호를 핑계로 대지만, 이미 공신력 있는 기관을 통해 가명화(익명화)한 뒤 데이터를 연계·분석하는 기술적 방법은 널리 쓰이고 있다.
응급실과 연구자를 믿지 못해 정보를 줄 수 없다는 소방의 논리는 구급 기록의 존재 의미 자체를 부정하는 처사다.
이처럼 소방 구급 체계가 의학적 질 관리를 거부하고 파행을 겪는 근본 원인은 소방 관료들의 행정 편의주의와 응급의료에 대한 무지 때문이다. 과거 경증 환자의 응급의료 상담을 전담하던 ‘1339’를 구급차 출동 중심의 ‘119’로 강제 통합해 버린 결과, 국민은 증상의 경중과 상관없이 119를 누를 수밖에 없게 됐다.
전화 통화만으로 질병의 위중도를 구분하기 힘든 신고 접수 요원들은 민원 발생과 책임 추궁이 두려워 출동 지시를 남발하고, 경증 환자에 대한 구급대 출동 증가로 이어진다.
의학 전문성이 없는 소방 관료들이 복잡한 응급의료 체계를 이해하지 못하니, 결국 과거 이국종 교수가 강하게 비판했던 이른바 ‘용역 장사꾼 집단’에 가까운 일부 구급 지도 의사들에게 의존하며 데이터 장막 뒤에 숨어버린 것이다.
조직의 왜곡은 이뿐만이 아니다. 대폭 증원된 소방 인력이 현장이 아닌 내근 행정에 주로 배치되면서 현장 동력이 떨어지고 있다.
최근 소방노조 일각에서 순직 사고를 막기 위해 내근 위주의 승진 관행을 타파하고 현장 경력을 필수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국립대병원이 보건복지부 소속으로 전환된 만큼, 소방 관료나 복지부 공무원들이 병원 원무과나 응급실 현장 바닥에서 직접 구르며 상대평가를 받게 하는 등의 파격적인 현장 보직 근무제라도 도입해야 할 지경이다.
구급 데이터와 병원 데이터의 단절은 특정 지역의 병원 이송 전 심정지 환자 생존율이 왜 낮은지, 특정 구급 약물이 현장에서 정말 효과가 있는지 파악할 기회를 원천 차단하고 있다. 소방이 데이터 독점을 풀고 응급의료의 전문성을 받아들이지 않는 한, 각 지역 실정에 맞는 구급대원의 의학적 능력 향상도, 환자 생존율 증가도 기대할 수 없다.
응급실 뺑뺑이에 대한 제대로 된 대책도 나올 수 없는 것이 당연하다. 소방청은 환자의 생명을 담보로 한 데이터 쇄국정책을 지금 당장 끝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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