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의 왕족은 김(金)씨였고, 고려의 왕족은 왕(王)씨였으며, 조선의 왕족은 이(李)씨였다. 지금 대한민국 인구를 보면 김씨는 천만명에 가깝고, 이씨 역시 수백만명을 넘는다. 그런데 고려를 약 500년 가까이 지배했던 왕씨는 극소수만 남아 있다. 같은 왕조의 성씨였는데 왜 이런 차이가 생겼을까.
단순히 세월이 지나 자연스럽게 줄어든 것이 아니다. 여기에는 권력을 넘겨주는 방식의 차이, 그리고 마지막 순간 국가를 바라보는 철학의 차이가 숨어 있다.
많은 사람들은 왕조가 망하면 자연스럽게 왕족도 줄어드는 것 아니냐고 생각한다. 하지만 신라는 그렇지 않았다. 마지막 왕 경순왕은 고려 왕건에게 나라를 넘기는 과정에서 끝까지 피해를 줄이려 했다. 그는 이미 신라가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을 인정했고, 백성과 왕족의 생존을 우선했다. 왕건 역시 신라 왕실을 고려 귀족 체제 안으로 흡수했다.
그 결과 신라 김씨는 살아남았고 오히려 고려와 조선을 거치며 거대한 성씨 집단으로 성장하게 됐다. 실제로 신라 멸망 이후 대규모 신라 왕족 학살 기록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신라 귀족 상당수는 고려 체제 안으로 편입됐고, 경주 김씨는 오히려 전국적 대성씨로 성장했다. 나라를 잃었지만 혈통과 공동체는 살아남은 셈이다.
반면 고려의 마지막은 달랐다. 공양왕 시기의 고려는 이미 내부적으로 무너지고 있었지만, 완전히 정리되지는 않았다. 고려 조정 안에는 여전히 반이성계 세력이 존재했고, 정몽주를 중심으로 한 고려 충신 세력 역시 왕조 유지 가능성을 끝까지 놓지 않았다.
공양왕 역시 형식적으로는 왕위를 넘겼지만, 조선 입장에서는 언제든 고려 복위의 상징이 될 수 있는 존재였다.
특히 조선 개국 직후에도 곳곳에서 고려 부흥 움직임과 왕씨 추대 가능성이 계속 거론됐다. 새 왕조 입장에서 왕씨는 단순한 전 왕조 후손이 아니라 “살아 있는 정통성”이었다. 결국 이성계와 정도전, 그리고 이후 이방원 세력은 왕씨 자체를 위험 요소로 보기 시작했다.
경순왕처럼 나라를 넘기며 불씨를 정리한 것이 아니라, 고려 왕조의 불씨가 계속 살아 있는 구조가 되면서 숙청도 장기화된 것이다.
조선 건국 직후 벌어진 고려 왕씨 숙청은 세계사적으로 봐도 매우 이례적인 수준이었다. 태조 3년인 1394년 기록만 봐도 고려 왕씨 일족을 강화도와 거제도로 옮긴 뒤 집단 제거한 내용이 등장한다. 일부는 강화 나루에서 익사했고, 일부는 배에 태워 바다에 수장됐으며, 남은 왕씨 자손들을 전국적으로 색출해 처형하라는 명령까지 내려졌다.
공양왕 일가 역시 유배 뒤 결국 제거됐다.
더 충격적인 것은 이 작업이 하루 이틀로 끝난 사건이 아니라는 점이다. 고려 왕씨 숙청은 조선 개국 직후 잠깐 벌어진 보복이 아니었다. 태조 이성계 이후에도 계속 이어졌고, 태종 이방원 시기까지 거의 20년 가까이 지속됐다. 1413년 태종이 공식적으로 “더 이상 고려 왕족 색출을 중단하라”는 교서를 내렸다는 것은, 그 이전까지 조선 정부가 지속적으로 왕씨를 찾아내 제거하고 있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당시 살아남은 왕씨들은 숨어 살아야 했다. 일부는 산속으로 도망쳤고, 일부는 성씨 자체를 바꿨다. 왕(王)자에 점 하나를 더해 옥(玉)씨가 되었다는 이야기가 대표적이다. 또 전씨·마씨·용씨·김씨 등 다른 성으로 숨어들었다는 구전도 남아 있다.
물론 모든 사례가 공식 문헌으로 입증된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당시 왕씨라는 이름 자체가 생존을 위협받는 표식이었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하다.
반면 조선 이씨는 달랐다. 조선은 대한제국으로 이어졌고, 이후 일제강점기와 대한민국 수립 과정으로 넘어가면서도 조선 왕실 전체를 제거 대상으로 삼는 대규모 숙청은 벌어지지 않았다. 대한제국 황실은 일본에 의해 정치적 권한을 잃었지만 혈통 자체가 조직적으로 말살되지는 않았다.
해방 이후 대한민국 역시 왕조를 부정한 공화국 체제로 출발했지만, 전주이씨 자체를 제거 대상으로 삼지는 않았다.
결국 이씨는 왕조는 잃었지만 성씨 공동체는 유지할 수 있었다. 조선 왕실 후손 상당수는 일반 사회로 편입됐고, 전주이씨 역시 지금 대한민국 최대 성씨 중 하나로 남아 있다. 신라 김씨와 조선 이씨는 왕조는 사라졌지만 공동체는 살아남았다.
반면 고려 왕씨는 왕조 교체 과정 자체가 장기 숙청 구조로 이어지며 성씨 집단까지 급격히 축소됐다. 같은 왕조 몰락이었지만 마지막 권력 이양 방식은 전혀 달랐던 셈이다.
조선은 단순히 고려 왕족만 제거하려 했던 것이 아니다. 고려의 문화와 가치관, 정치 기반 자체를 지우려 했다. 새로운 국가의 정통성을 세우기 위해서는 이전 왕조의 상징을 완전히 부정해야 한다고 봤던 것이다. 결국 고려 왕씨 숙청은 조선이라는 새 국가를 만들기 위한 ‘시스템적 제거 작업’에 가까웠다.
하지만 역사는 늘 아이러니를 만든다. 조선은 고려 왕실을 제거했지만 고려의 정신까지 완전히 지우지는 못했다. 고려 말 성리학 계열 학맥은 조선 중기 사림 세력으로 이어졌고, 정몽주·길재·이색의 학문 전통은 결국 조선 정치의 중심축이 된다.
조선은 고려를 부정하며 출발했지만, 시간이 흐르자 결국 고려의 정신과 학문을 다시 흡수하며 500년을 이어간 셈이다.
현재 대한민국은 왕조 국가가 아니다. 그러나 정치 권력 교체 과정에서는 여전히 왕조의 그림자가 남아 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이전 정부 참모들이 줄줄이 수사를 받고, 감옥에 가고, 사회적으로 매장되는 장면이 반복됐다. 대통령은 퇴임하지만 참모들의 정치 인생은 끝나버리는 경우가 많았다. 권력이 교체될 때마다 ‘끝까지 살아남기 위한 충성 경쟁’이 심해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특히 대통령이 권력을 내려놓는 마지막 순간의 태도는 매우 중요하다. 끝까지 자신의 정치적 생존만 바라보며 버티거나, 정권교체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방식으로 움직이면 결국 주변 참모들이 더 큰 피해를 입는다. 반대로 국가 안정과 질서 유지에 무게를 두고 권력 이양을 정리하면, 권력 교체의 충격은 훨씬 줄어든다.
역사적으로도 마지막 선택이 수많은 사람의 운명을 갈랐다.
경순왕은 나라를 잃었지만 사람을 살렸다. 조선 역시 왕조는 무너졌지만 이씨 공동체 자체가 제거 대상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반면 고려 말에는 왕조의 불씨가 끝까지 남아 있었고, 새 권력은 그것을 제거 대상으로 보기 시작했다. 결국 김씨와 이씨는 살아남아 거대한 성씨가 됐고, 왕씨는 역사 속에서 거의 사라질 정도로 축소됐다.
시대는 달라도 권력을 넘겨주는 철학이 공동체의 미래를 결정한다는 사실은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다.
현대 민주주의 역시 마찬가지다. 선거에서 패배한 세력이 국가 전체를 흔드는 방식으로 저항하거나, 반대로 승리한 세력이 이전 권력을 완전히 말살하려는 방식으로 움직이면 사회는 극단으로 갈 수밖에 없다. 결국 정치는 상대를 완전히 제거하는 게임이 아니라, 권력을 넘겨받고 다시 넘겨줄 수 있는 질서를 만드는 과정이어야 한다.
세계사를 봐도 권력 승계 철학이 있는 나라들은 상대적으로 안정적이었다. 미국은 치열한 대선을 치르더라도 대통령 취임식에서 전임 대통령이 참석해 권력을 넘겨주는 상징을 유지해 왔다. 영국 역시 총리가 교체되면 정치적 충돌은 있어도 국가 시스템은 유지됐다. 반면 권력 교체가 곧 숙청과 제거로 이어진 나라들은 쿠데타와 내전, 정치 보복이 반복됐다.
지금 한국 정치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는 “정권이 바뀌면 모두 끝난다”는 공포다. 그러니 권력 말기가 되면 참모들은 대통령에게 현실을 직언하지 못한다. 오직 살아남기 위한 판단만 하게 된다. 결국 대통령도 고립되고 국정도 왜곡된다. 과거 왕조 시대 충신들이 왕과 함께 몰락했던 구조가 지금도 다른 형태로 반복되는 셈이다.
과거에는 왕조가 망하면 왕족의 성씨도 함께 사라졌다. 지금은 정권이 바뀌면 참모들의 정치 인생과 사회적 기반이 함께 무너진다. 시대는 달라졌지만 구조는 비슷하다. 그래서 민주주의는 단순히 선거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권력을 어떻게 넘겨주고, 패배를 어떻게 받아들이며, 다음 시대를 어떻게 인정하느냐까지 포함돼야 진짜 민주주의가 된다.
결국 역사는 하나를 보여준다. 권력을 잡는 능력보다 더 중요한 것은 권력을 내려놓는 능력이라는 사실이다. 마지막 순간 어떤 철학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한 시대의 사람들은 살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한다.
아이러니한 것은 최근 대한민국 정치 역시 묘하게 고려 말과 조선 초의 그림자를 떠올리게 한다는 점이다. 손바닥에 ‘王’자를 쓰고 등장했던 윤석열정부는 강한 권력 의지와 검찰 권력을 기반으로 출범했고, 반대로 지금의 이재명정부는 ‘빛의 혁명’과 정권교체 열망 속에서 탄생했다.
마치 한 시대의 권력이 무너지고 새로운 권력이 들어서는 고려 말과 조선 초의 장면이 겹쳐 보일 정도다.
물론 지금은 왕조 시대가 아닌 민주공화국이고, 국민이 권력의 주인인 시대다. 그러나 정치의 흐름 속에는 여전히 “권력을 어떻게 넘기고, 어떻게 받아들이는가”라는 오래된 역사적 질문이 남아 있다. 문제는 새 권력이 이전 권력을 완전히 제거 대상으로 보기 시작하고, 이전 권력 역시 끝까지 저항과 생존 논리만 앞세우게 될 때다.
그렇게 되면 정권교체는 민주주의의 순환이 아니라 현대판 숙청 정치로 변질될 가능성이 커진다.
결국 가장 먼저 무너지는 것은 대통령 주변 참모들과 국가 시스템이다. 그래서 지금 대한민국 정치에 필요한 것은 승리의 도취도, 패배의 복수심도 아니다. 경순왕이 보여줬던 “왕조는 끝나도 사람과 나라는 살아야 한다”는 권력 이양의 철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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