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30주년 기획 - 우리 30대는 지금…> ③극단의 세대

영원히 서로를 이해 못 할 두 집단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두 번의 탄핵과 한 번의 계엄, 청년 세대를 불안으로 밀어 넣은 정치가 결국 업보를 돌려받았다. 청년이 극우·극좌라는 극단의 영역으로 나뉘면서 정치 양극화는 물론 사회적 혼란까지 초래한 것이다. 극우·극좌는 상대를 향한 혐오를 기반으로 한다. 그 틀을 깨는 건 한 사람이 새로 태어나는 것과 맞먹는 수준이다.

‘진보적인 목소리로 기득권에 저항하던 운동권 청년’은 옛말이 됐다. 대한민국이 초고속 성장을 이룬 지금, 청년들은 불공정, 미래 불확실성, 젠더 이슈, 무한 경쟁 등 온갖 갈등이 중첩된 삶을 하루하루 버텨내고 있다. 결국 이 같은 불만이 정치적 제도와 기득권 전반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져 극우·극좌라는 과잉 반응으로 표출됐다는 해석이 나온다.

닿지 못할 평행선

청년들이 극단적인 정치에 매몰되는 이유는 “역시 내가 옳았어”라는 자기 확신을 느끼기 때문이다. 온오프라인을 넘나들며 같은 성향의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고 시간이 지날수록 상대방을 바라보는 색안경은 짙어진다. 극우에 있어 극좌는 “대한민국 공산당화에 앞장서는 사람”이며 극좌에 있어 극우는 “민주주의를 무너트리는 척결 대상”으로 정의된다.

해외는 정치 양극화가 가져온 결과를 극단으로 보여준다. 지난 2월 프랑스 남동부 리옹에서 좌파 정치인 반대 시위에 참석한 우파 청년 활동가가 좌파 진영으로 추정되는 무리가 가한 집단폭행으로 목숨을 잃었다. 지난해 9월 미국서는 보수 논객이자 트럼프 대통령 지지자로 알려진 찰리 커크가 연설 도중 총에 맞아 사망했다.

극우화로 나타나는 대표적 현상 중 하나는 특정 대상에 대한 혐오다. 미국의 경우 자국 내 이민자들이 표적이 됐고, 유럽 역시 난민과 외부 세력이 극우의 먹잇감이 됐다.

대한민국도 크게 다르지 않다. 특정 국가를 비롯한 성별, 나이 더 나아가 사회적 지위까지 비난의 대상이 된다. 한국에서는 두 번의 보수정권이 퇴진하면서 차곡차곡 갈등이 쌓였다. 특히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청년 극우 세력을 결집하는 등 청년 세대를 반으로 가르는 결정적인 도화선이 됐다는 평이다.

물리적 대치는 예견된 수순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지난해 1월 발생한 ‘서부지법 폭력 사태’가 그 예시로, 당시 경찰은 현행범으로 붙잡은 90명 가운데 20대와 30대가 51%(46명)에 이른다고 집계했다.

다만 정치권에서는 “과거에 비해 최근 청년들이 극우화됐다”는 주장을 경계하는 모양새다.

올해 초 권현서 경제사회연구원 미래센터장은 <일요시사>와의 인터뷰를 통해 “‘2030 남성의 극우화’라는 말은 틀렸다고 생각한다. 이는 현상을 설명하기보다는 낙인 찍기에 가깝다”며 “물론 서부지법 사태처럼 폭력과 불법 행위가 있으면 법률적인 책임을 져야 하지만, 소수의 일탈을 전체 세대의 성향으로 일반화하는 건 문제의 원인을 가릴 뿐”이라고 주장했다.

‘1찍’은 종북좌파 ‘2찍’은 내란범?
쉴새 없이 생산되는 혐오 콘텐츠

‘청년 극우 세력’과 달리 ‘청년 극좌 세력’이라는 단어를 찾기는 쉽지 않다. 청년이 극우화되는 현상과 별개로 소위 말하는 ‘운동권 청년’들이 사라지는 추세이기 때문이다. 대학가에서는 예전만큼 대자보를 찾아보기 어렵고 민중가요에 맞춰 행진하는 ‘학생운동’이라는 말도 어색하게만 느껴진다.

한 청년 정치인은 “과거보다 탄압받는다고 느끼는 일이 적어지니 자연스럽게 기억에서 잊혔을 것이다. 이제는 최루탄을 던지면서 싸우는 일이 없지 않은가. 평화로운 일상에서 굳이 나설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청년들이 민주주의에 관심이 없는 게 아니다. 지난 계엄 사태 때 거리로 나온 수많은 응원봉을 기억해 달라”며 “그들만의 방법으로 민주화를 지키고 있다. 과거와 방법이 달라졌을 뿐 본질은 같다”고 덧붙였다.

정치 스펙트럼 중 가장 왼쪽으로는 한국대학생진보연합(이하 대진연)과 촛불행동 등을 꼽을 수 있다. 이들은 반미주의를 내세우는 극좌 세력으로 ‘적폐 청산’ ‘보수 정권 퇴진’을 주장한다.

대진연은 지난 5월 주한 미국대사관 진입을 시도하며 기습 시위를 벌이다가 경찰에 붙잡히기도 했다. 경찰이 해산을 요구하자 대진연 회원들은 도로 위에 누워 “주한 미군 철수”라는 구호를 외치고, 연행되는 호송차 안에서도 ‘주권 모독 브런슨은 이 땅을 떠나라’ 등의 문구가 적힌 팻말을 들고 반발했다.

청년들의 정치가 극한으로 치닫는 데에는 SNS 등 온라인의 역할이 크다는 해석이 나온다. 진영에 상관없이 자극적인 내용일수록 온라인에 빠르게 퍼지고 알고리즘은 청년을 한쪽 편에 가둔다. 그 안에서 소통하는 청년들의 소속감은 극대화되고, 이들은 분노, 풍자, 조롱 등 즉각적인 감정을 자극하는 콘텐츠를 끊임없이 공유·생산한다.

정치인도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 특정 집단을 결집하기 위해 세대, 성별, 지역 등을 이용하고, 특히 탄핵 정국 이후에는 서로를 겨냥한 프레임을 씌워 불안감을 자극한다는 이유에서다.

드러눕고 때려 부수고...격해지는 시위
‘미래의 한 표’ 위해 방관하는 정치인

지난해 국민의힘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한 김문수 전 고용노동부 장관은 “극우라는 것은 국민의힘에 없다. 오히려 극좌가 민주당에 많이 있다”며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출신 고용노동부 장관과 김민석 국무총리가 과거 미 문화원을 점거한 사건을 거론했다.

이 밖에도 “반미, 친북, 종북 등 여러 가지 폭력적 세력과 손을 잡고 이재명 대통령이 당선되지 않았느냐” “북한 친화적이며 좌파식 선동을 일삼는 더불어민주당이야말로 먼저 해산해야 한다” 등의 주장을 이어갔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국민의힘은 “좌파에게 나라가 넘어가면 안 된다”는 ‘읍소 전략’을 택했다. 대구시장 국민의힘 후보 경선에 출사표를 던졌으나 컷오프로 출마를 포기한 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은 “보수의 붉은 심장이 파란색으로 물들고 자유민주주의 최후의 보루가 사회주의 포퓰리즘에 장악된다면 대한민국은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우려가 발목을 잡았다”고 했다.

민주당도 지난해 치러진 조기 대선을 앞둔 당시 국민의힘을 향해 “보수인 척도 안 하는 수구 이익집단, 폭력배 본성을 드러냈다”며 공세에 나섰다.

이재명 당시 대통령 후보는 “사회 변화, 혁명이 다 청년들로부터 시작됐는데 지금 청년 세대 중 일부는 매우 보수적이어서 일부는 극우화되기까지 했다”며 청년 세대들이 오염됐다고 주장했다.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가 ‘서울 잘사는 청년은 극우’라는 취지의 기사를 자신의 SNS에 올렸다가 “청년 갈라치기”라며 뭇매를 맞은 일도 있었다.

미래가 두렵다

전문가들은 이 청년들이 40대, 50대, 60대가 됐을 때 비로소 진짜 문제가 드러날 것이라고 입 모아 말한다. 인구 절벽으로 고령층의 한 표가 사회 전체를 좌우하는 구조에서 양극단으로 굳어진 세대가 정치를 극한의 교착 상태로 몰고 갈 것이란 점에서다. 결국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 채 날을 세우는 청년들이 대한민국 사회에 공존하는 형국이다.

중간이 사라지면서 협치와 대화도 사라지고 있다. ‘혐오의 청구서’를 오롯이 감당해야 할 미래세대에게 부끄럽지 않은지 우리 모두 돌아봐야 할 시점이다.

<hypak28@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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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표용지가 없다니…’ 초유의 사태 후폭풍

‘투표용지가 없다니…’ 초유의 사태 후폭풍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선거가 끝난 뒤에는 자연스럽게 후폭풍이 따라온다. 이긴 쪽은 동력을 얻고 진 쪽은 수습에 나선다. 하지만 이번 지방선거는 결과만큼이나 선거관리위원회의 행보가 회자할 것으로 보인다. ‘투표용지 부족’이라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불러온 후폭풍이 지방선거를 뒤흔드는 모양새다.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는 이재명정부 출범 1년(4일)을 앞두고 치러졌다. 선거 자체가 국민의 심판을 받는다는 취지로 치러지는 만큼 여야는 결과에 사활을 걸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광역단체장 등에서 싹쓸이로 의회 권력에 이어 지방 권력까지 차지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고, 국민의힘은 ‘견제’를 외치며 맞섰다. 누구 손도 안 들어줘 민심은 절묘했다. 광역단체장 선거에서 민주당은 총 16개 시‧도 중 12곳에서 이겼다. 결과만 놓고 보면 압승이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격전지였던 서울시장 선거에서 채 1% 차이도 나지 않게 석패했다. 관심을 모았던 대구에서도 졌다. 지방선거와 함께 치러진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에서도 관심이 집중된 부산 북구갑에서 의석을 내줬다. 반면 국민의힘은 선거 초반 전패를 예상했던 것과 비교해 상당히 선전했다는 평을 받는다. 서울을 수성했고 텃밭인 대구에서도 예상보다 수월하게 이겼다. 경기 평택을 선거에서도 ‘어부지리’지만 의석 하나를 건졌다. 민주당으로선 이겨도 찜찜한, 국민의힘은 졌지만 미묘하게 웃을 수 있는 결과가 나온 셈이다. 이제 여야는 물론 이재명 정부는 선거 결과에 따른 후폭풍을 마주해야 한다. 여야 모두 ‘완벽하게 이겼다, 혹은 졌다’는 결과를 받아든 게 아니기에 후폭풍은 작지 않으리라고 예상된다. 전당대회를 앞둔 민주당은 이번 선거 결과를 두고 당권 싸움을 시작할 것이고, 보수 궤멸 직전에 간신히 살아남은 국민의힘에서도 내전이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 문제는 여기에 또 다른 후폭풍이 더해졌다는 점이다. 심지어 이 후폭풍의 크기는 선거 결과에 따른 후폭풍과는 차원이 다르다. 선거의 신뢰성 문제까지 뒤흔들 수 있는 수준의 초대형 태풍급이다. 선거에서 심판 역할을 맡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가 도마 위에 올랐기 때문. 지난 3일 지방선거 본투표 중에 서울 일부 지역에서 투표용지 부족으로 유권자가 투표하지 못하는 초유의 사태가 일어났다. 유권자의 참정권 행사라는 선거의 가장 본질적인 부분에 취지가 훼손된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이 같은 일이 투표소 한 군데가 아니라 십수 군데서 발생했다는 점이다. 선관위에 따르면 지난 3일 서울 송파구 잠실 일대를 비롯한 12개 투표소와 강남구 1개 투표소, 광진구 1개 투표소에서 투표용지가 부족해 유권자들이 투표하지 못하고 현장에서 대기하는 일이 벌어졌다. 선관위는 사태를 인지한 후 투표용지를 이송하고 현장 대기 인원에 한해 투표를 보장하겠다고 했다. 소쿠리 이어 투표지가 없다? 부정선거 논란에 불 질렀다 하지만 잠실7동 제2투표소는 대기표를 받은 유권자를 대상으로 오후 10시까지 투표 시간을 연장하는 등 혼란이 발생했다. 동시에 소식을 접한 시민과 유튜버 등이 투표소에 몰리면서 분위기가 험악해졌다. 일부 투표소에서는 투표함 반출을 둘러싸고 선관위 관계자와 시민 사이에 대치 상황까지 벌어졌다. 이번 투표용지 부족 사태는 선거의 공정성과 신뢰성에 강한 타격을 입혔다. 특히 서울시장 선거는 국민적 관심이 집중됐던 데다 개표가 진행되면서 출구조사보다 실제 결과가 훨씬 박빙으로 나오고 있는 상태였다. 개표가 진행되는 와중에 투표도 동시에 이뤄지는 말도 안 되는 상황에 여야는 물론 지지자들은 강하게 반발했다. 국민의힘은 개표 중단을 요구했다. 투표용지 부족 사태가 발생한 지역이 공교롭게도 서울 지역 내에서 비교적 보수세가 강한 ‘강남권’으로 확인되자 당력을 집중한 것이다. 국민의힘 장동혁 상임선대위원장은 긴급 기자회견에서 개표를 중단하고 결과에 따라 서울시 선거를 다시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개표를 멈추고 상황에 따라 재선거를 치러야 한다는 것이다. 반면 민주당은 선관위에 책임을 묻겠다면서도 국민의힘의 개표 중단, 재선거 요구는 일축했다. 민주당 조승래 총괄선대본부장은 국민의힘의 요구에 ‘일고의 가치가 없다’고 말했다. 선관위의 부실한 선거 관리에 대해서는 책임을 묻겠다고 약속하면서도 선거를 다시 치를 필요까지는 없다는 뜻으로 풀이됐다. 선관위 역시 대국민 사과를 하면서도 투표용지 부족 사태가 선거 연기나 재선거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발표했다. 앞서 허철훈 선관위 사무총장은 “국민 여러분께 큰 혼란과 심려를 끼쳐 드렸다”며 “소중한 주권을 행사하기 위해 투표소를 찾아주신 국민께 불편을 드리고 공정한 선거 관리에 대한 신뢰를 훼손한 점에 대해 책임을 통감한다”고 고개를 숙였다. 박빙에서 불 질렀다 그러면서 “중앙선관위는 이번 사안을 엄중히 인식하고 있으며 개표가 종료되는 즉시 일부 투표소의 투표용지가 부족했던 원인과 문제점을 정확히 파악해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하겠다”며 “미흡한 준비와 대처로 실망을 드리게 돼 다시 한번 사과드린다”고 덧붙였다. 또 이상능 선관위 선거1국장은 “이런 사례가 과거 선거에서 발생했다는 보고를 받은 적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송파구의 경우 전체 유권자 수의 50% (규모의 투표용지)를 인쇄한 것으로 파악했다”고 말했다. ‘몇 표 차이로 선거 당락이 갈리는 경우가 있는데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윤재수 선거관리정책실장은 “저희가 직접 말씀드리기는 좀 곤란할 것 같다”며 “소송 절차 등을 통해 법원의 결정에 따라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답했다. 선관위는 지난 4일 0시께 긴급 위원회를 열고 수습 방안을 논의했다. 이후 위원회는 “(투표용지 부족 문제가) 공직선거법에 따른 선거 연기나 재선거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입장문을 내놨다. 또 “현재 진행되는 개표를 중단하는 것은 불가하다”고 강조했다. 국민의힘의 요구에 선을 그은 것이다. 이번 사태로 선관위에 개혁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쏟아지고 있다. 이번 일뿐만 아니라 선거 때마다 일어났던 ‘선관위발’ 논란이 ‘파묘’되는 분위기다. 가장 큰 논란 중 하나는 ‘소쿠리 투표’다. 2022년 대선 당시 코로나19 확진자와 격리자의 사전투표 용지를 간이 용기나 쇼핑백 등에 담으면서 촉발된 논란이다. 지난 조기 대선 때도 서울 신촌의 한 사전투표소에서 관외 선거를 위해 대기하던 일부 유권자가 대기 줄이 길다는 이유로 투표용지를 받은 채 식사하고 돌아오는 일도 있었다. 선관위의 행태는 일부 극우층에서 제기하는 ‘부정선거’ 논란에 빌미를 제공하고 있다. 이들은 본투표에 앞서 이틀간 진행되는 사전투표가 조작됐다는 등 부정선거가 조직적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주장을 내세우는데, 선관위 관련 논란도 그 근거로 언급하고 있다. 재선거까지 나왔지만… 부정선거 논란을 차단해야 할 기관에서 오히려 의심만 제공하는 꼴이다. 일각에서는 선관위 내부 사정이 반복되는 부실 선거의 배경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한 언론이 민주당 채현일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달 1일 기준 선관위 휴직자 수는 176명으로 집계됐다. 최근 10년 새 두 번째로 많은 수치다. 육아휴직이 124명으로 가장 많았고 일반 질병 휴직 30명, 가족 돌봄 휴직 11명, 해외 동반 휴직 8명 등이 뒤를 이었다. 지방선거, 대통령선거, 국회의원 선거 등 이른바 3대 전국 선거 때마다 휴직자가 늘어나는 선관위의 고질적인 병폐가 또다시 되풀이됐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실제 2022년 5월 기준 선관위 휴직자 수는 218명으로 최근 10년 기준으로 가장 많았다. 당시 3월에는 대선, 6월에는 지방선거가 각각 치러졌다.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으로 갑작스럽게 치러진 지난해에도 선거를 한 달 앞둔 5월 기준 휴직자는 145명에 달했다. 이 같은 문제가 반복적으로 지적되자 선관위도 선거 기간에는 휴직을 자제하라는 내용의 공지를 내리는 등 개선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 법으로 보장된 육아휴직 등은 강제로 제한할 수 없으니 인력을 채용하는 방향으로 인력 공백을 막겠다는 대응책도 내놨다. 하지만 앞서 선관위 내부에서 채용 관련 비리 의혹이 크게 불거지면서 이마저도 미덥지 못한 방안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더 큰 문제는 선거 때마다 논란이 불거지고 내부의 고질적인 병폐 등으로 지적을 받는 와중에도 선관위는 큰 변화가 없다는 점이다. 독립된 ‘헌법기관’이라는 방패를 내세워 ‘지금만 넘기면 된다’는 안일한 생각이 선관위를 좀먹고 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자정을 할 수 없으면 외력이라도 가해야 하는데 그것조차 막혀 있다는 것이다. 선거 때마다 구설 불거지는데… 자정은커녕 외부 감사도 안 돼 2023년 5월 당시 선관위 사무총장, 사무차장 등 고위 간부의 자녀가 선관위 경력직 채용에 특혜를 받았다는 언론 보도가 나왔다. ‘아빠 찬스’ 논란의 시발점이다. 이후 선관위 자체 특별감사 결과 고위직 자녀 특혜 채용이 관행적으로 이뤄졌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이 과정에서 감사원이 선관위의 인력 관리 실태에 관한 직무감찰에 착수했다. 그러자 선관위는 ‘독립기관’임을 내세우면서 감사원 감사를 수용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밝혔다. 국회는 물론 여론의 반발이 거셌다. 선관위는 감사원 직무감찰을 부분적으로 수용하면서도 “감사원의 감사 범위를 명확히 정리할 필요가 있다”며 2023년 7월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했다. 헌재는 선관위의 손을 들어줬다. 지난해 2월 헌재는 “이 사건 직무감찰은 헌법 및 법률상 권한 없이 이뤄진 것으로 선관위의 독립적 업무 수행 권한을 침해했다”고 밝혔다. 선관위가 감사원의 감사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헌법에 기재된 감사원의 감사 범위가 “행정부 내부의 통제장치로서의 성격”인 만큼 정부와 독립된 헌법기관인 선관위는 국회, 법원, 헌재와 같이 직무감찰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본 것이다. 그 배경으로 선관위의 선거 관리 업무를 들었다. 대통령 소속 기관인 감사원이 독립된 헌법 기구인 선관위를 직무감찰할 수 있게 되면 선거 관리 공정성에 대한 신뢰가 훼손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감사원의 직무감찰 배제가 곧바로 부패 행위에 대한 성역의 인정으로 호도돼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헌재는 “감사원 직무감찰을 허용하지 않는 것은 이를 대신할 독립성과 전문성을 갖춘 자체 감찰기구가 마련될 것이라는 점을 전제로 한 것”이라며 “선관위는 자체 감찰제도의 실효성을 담보함으로써 우려를 불식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결국 내부 자정 기능에 기대를 건 것이다. 이번에는 고쳐질까 하지만 채용 의혹은 차치하고라도 그 이후에도 가장 본연의 업무인 선거 관리에서 계속해서 잡음을 내고 있다는 점에서 선관위를 바라보는 국민의 시선은 곱지 않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4일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회의에서 “민주공화국에서 무엇보다 철저해야 할 선거 관리에 납득하기 쉽지 않은 허점이 발생한 점에 대해 매우 큰 유감을 표한다”며 “국민의 참정권이 한치라도 훼손되는 일이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신뢰할 만한 적절한 대책을 조속하게 마련해 주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이제 지방선거는 끝났다. 선관위는 이 후폭풍을 감당할 수 있을까.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