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30주년 기획 - 우리 30대는 지금…> ⑤젊은 정치인들 이야기

“앞으로 도전할 날이 더 많죠”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기다려라, 곧 우리가 간다.” 인터뷰 도중 ‘현역 기득권에 하고 싶은 말’을 묻자 곧바로 돌아온 한마디다. 농담 반 진담 반이지만 말에 뼈가 있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선거철마다 여야는 앞다퉈 개혁의 상징으로 청년 정치인을 앞세우지만, 막상 30대가 여의도에서 살아남기란 쉽지 않다. 미래 세대를 이끌어갈 청년 정치인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잃을 게 없어 더욱 솔직했다. 김지수 대통령 직속 대한민국 국민통합위원회 위원(1986년생)·더불어민주당 김보미 강진 군의원(1989년생)·정진호 의정부 시의원(1995년생)의 이야기다.

그들은 취재진이 끼어들 틈도 없이 치열하게 토론하다가도 청년 문제에 머리를 맞대고 한참을 고민했다. 그러다 재치 있는 말투로 서로의 혼을 쏙 빼놓더니 이내 깔깔 웃으며 농담을 주고받았다.

세 사람은 기득권의 벽에 부딪혀 깨지고 좌절해도 또다시 도전한다는 공통점을 지녔다. 유난히 하늘이 푸르던 5월, <일요시사>가 여의도 국회에서 김지수·김보미·정진호를 만났다.

-먼저 자기소개를 부탁한다.

▲김지수= 대한민국의 ‘행복지수’가 되고 싶은 김지수다. 2020년 비례대표 면접 탈락, 2022년 최고위원 예비후보 컷오프, 2024년 당 대표 선거에서는 꼴등을 했다. 인생이 컷오프지만 계속해서 도전 중이다. 지금은 대통령 직속 국민통합위원회 위원으로 있다.

▲김보미= 전국 최연소 의장을 역임한 강진군 의원 김보미다. 정치 인생 13년째 온갖 음해와 정치공작에 탈탈 털리면서도 먼지 한 톨 나오지 않은 당당함과 실력으로 무장했다. 이번 6·3 지방선거에선 강진군수 예비후보로 본선을 눈앞에 두고 고배를 마셨지만, 여전히 “정치가 재밌다”고 말하는 꺾이지 않는 멘탈의 소유자다.

▲정진호= 의정부 시의원 정진호다. 김보미 의원과 마찬가지로 지방선거에서 의정부 시장에 도전했으나 낙선했다. 덕분에 전국 최연소로 기초단체장 후보 타이틀을 얻었다. 그동안의 주요 성과로는 의정부 재정의 남는 돈 1293억원을 밝혀냈고 그중 불법 예비비 634억을 환수해 시민 품으로 돌려낸 일이 있다.

-세 사람 모두 평범한 30대의 삶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정치를 시작한 계기가 무엇인가?

▲김보미= 나는 흔히 말하는 시골에서 자랐다. 시간이 흐르면서 마을이 사라지고 점차 면 단위로 사라지고 결국에는 학교도 없어졌다. “바꿔야 산다”라는 생각으로 정치를 시작했다.

▲정진호= 불공정한 세상을 바꾸고 싶었다. 나 좋자고 혼자서만 잘 먹고 잘사는 게 행복하지 않더라. 그런 삶은 인생을 사는 데 있어 어떠한 의미도 없다고 생각했다.

▲김지수= 한반도 평화가 궁극적 목표다. 코스피 7000 시대지만 전쟁이 일어나면 다 무슨 소용인가. 전쟁이 일어나면 정치부터 환경, 복지, 가족 등 모든 게 파괴된다. 그런 상황이 일어나지 않는 사회를 만들고 싶다.

▲정진호= 여담이지만 청년 정치인도 평범한 인간이다. 정치인은 다를 거라고 생각하는데 나도 요즘 30대가 좋아하는 거 좋아한다. 두쫀쿠(두바이 쫀득 쿠키) 좋아하고 서울 성수동 같이 핫한 곳에서 친구들도 만난다.

-사회 초년생으로서 정치를 시작하는 데 경제적 어려움은 없었나?

▲정진호= 경선 기탁금만 1000만원에서 1500만원을 준비해야 한다. 당장 내일 1000만원을 마련해 입금해야 하는 셈이다. 기탁금을 제외하고 이런저런 비용을 대다 보면 현금으로 3000만원이 필요하다. 빚을 안고 시작하는 것이다. ‘청년 50% 감면 혜택’이 있어서 당에 물어봤더니 현역은 안 된다더라. 현역도 청년이다. 현역 청년이 돈이 많으면 오히려 그게 문제 아닌가.

▲김지수= 그렇다. 결국 다 빚이다. 나는 당 대표 선거 나갈 때 현수막도 많이 못 걸었다. 하나에 8만원, 많게는 15만원이라 세 개만 주문했다. 돈이 없으니 사무실도 없었고, 결국 당원들께 투표 독려 문자도 못 돌렸다.

▲김보미= 그런 점에서 청년 정치인을 위한 최소한의 장치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부가 청년 스타트업을 지원하듯 당에서도 청년 정치인을 독려하는 것이다. 당은 말로만 청년을 외치지, 정작 그들과 발을 못 맞추는 것 같아 아쉽다.

“기득권에 매달리는 키링 정치는 그만”
“세대교체는 뒷물이 앞물을 밀어내듯”

-청년 정치의 현실을 한 줄로 설명한다면?

▲정진호= ‘키링(열쇠고리·Keyring) 정치’를 벗어나자.

기득권 국회의원의 줄 세우기에 청년들이 자발적으로 걸어 들어가지 말라는 뜻이다. 자신만의 의제를 설정하고 밑바닥부터 ‘박박’ 기어서 국민이든 정치 관계자든 자기 사람을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내가 높은 자리에 올라갔을 때 이곳까지 올려준 사람들을 대변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나는 의정부 시민들에게 많은 고마움을 느낀다.

▲김지수= ‘이 시대의 주인공이 돼야 하지만 현실은 시궁창인 삶’이다.

그들은 돈도 사람도 세력도 없다. 앞서 스타트업을 예시로 들었는데, 정치에서는 비전을 가진 청년에게 투자하려는 사람이 없다.

-성공한 청년 정치인의 사례가 없어서 투자하지 못하는 건 아닐까?

▲김보미= 각자도생 구조에 낙하산 정치가 만연해서 그렇다. 낙하산 정치를 근절하려면 현역 정치인이 공정한 사다리를 만들어 주면 된다. 보여주기식으로 자기 사람을 꽂고, 키링으로 만드는 대신 공정의 틀만 만들어 주면 알아서 큰다. 잘 알려지지 않은 많은 청년 정치인들 모두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자기 자리에서 잘하고 있다.

▲정진호= 나는 성공한 청년 모델이 없다는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김대중·김영삼 전 대통령은 20세 때부터 정치를 해온 대표적인 성공한 청년 정치 모델이다. 그들은 명확한 의제가 있었고 민주주의에 목숨을 걸었다. 이걸 잊지 않고 이어왔기 때문에 성공한 것이다. 내가 계속해서 자기만의 의제를 강조하는 이유기도 하다.

-어리다는 이유만으로 정치판 변두리로 밀려나는 일도 비일비재할 것 같다.

▲김지수= 이 중에서 내가 제일 나이가 많지만 아직도 선배들로부터 “너무 어리다” “경험이 부족하다”라는 말을 항상 듣는다. 비슷한 이야기로 “조금 더 기다려라”라는 말씀도 하신다. 과연 기다리면 알아서 때가 올까? 나는 그걸 깨고 싶어서 도전한다.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계속해서 증명해 나가는 중이다. “내가 했으니 너도 할 수 있다”라는 느낌이다.

▲정진호= 나는 차별을 받은 일은 없지만 청년 정치인이라는 프레임에 자기 자신을 가뒀다. 어리다는 이유로 개방적인 모습 보여주면 안 되고 공식적인 자리에서 많이 웃어도 안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이번에 낙선하고 캠프에서 설문을 돌렸는데 “분명 젊은 후보인데 전혀 젊은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는 피드백을 받았다. “나이가 어리다”라는 말은 알고 보니 여의도 사투리였다는 걸 알게 된 것이다.

가볍게 처신하라는 말은 아니다. 다만 정진호라는 사람은 늘 열려 있고 잘 웃을 줄도 알고 시민과 어울릴 수 있는 후보라는 걸 보여드리면 어땠을까 후회가 된다.

▲김보미= 우리가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 모르겠다. 나는 의회에서 청바지를 입고 다니지 말라고 혼난 적도 있다. 오늘도 청바지를 입었으니 나중에 한 소리 들을지도 모른다. 이번에 출마 선언할 때 “어린 여자가 무슨 군수를 하느냐”는 말도 많이 들었다. 내가 미혼이라는 것도 감점 요소다. 누구나 생각하는 ‘표준 정치인’이 아니다 보니 무엇을 해도 족쇄가 된다.

-“진보도 싫고 보수도 싫다”는 청년 무당층이 늘어나는 추세다. 이들이 정치에 관심이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정진호= 관심이 없다기보다는 참여가 없다고 생각한다. 나는 정치에 대해 불평불만 하는 또래 친구에게 “네가 참여를 안 해서 그렇다”고 말한다. 참여한 만큼 얻는 게 민주주의다. 공직 선거 출마 같이 거창한 걸 하라는 게 아니라 여든 야든 당원 가입이라도 해 달라는 뜻이다.

▲김보미= 조금 의견을 달리하고 싶다. 지금 상황을 청년의 탓으로 돌리면 안 된다. 또래인 청년 정치인이 활동하고 무언가를 바꿔 나가는 선례가 있어야지, 지금 정치는 586세대가 대부분인데 청년이 함께하고 싶을까?

▲정진호= 586세대도 참여한 만큼 가져갔다. 그들은 민주화 운동 때 목숨을 걸고 싸운 정체성과 유산이 있다. 지금은 서로 나눠 먹는 정치를 하지만, 대전제는 그들 역시 정치에 참여했다는 것이다. 집에 누워서 스마트폰 스크롤을 내리며 유튜브 쇼츠만 보면서 욕하는 청년들이 어느 방식으로든 정치에 관심을 두길 바란다.

“내리꽂는 수직이 아닌 수평적 연대로”
“이 모든 걸 바꾸는 건 국민의 투표뿐”

-586세대를 주축으로 한 기득권의 벽이 허물어져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들도 나름의 역사와 전통이 있을 텐데….

▲김보미= 이재명 대통령이 말하는 시민주권, 국민주권을 위해서다. 기득권이 무너져야 주권을 찾을 수 있고 시민의 목소리가 반영된다. 지금은 기득권과 함께 목소리도, 민의도 막혀 있다고 생각한다.

▲정진호= 청년 세대가 더 절박하기 때문에 기득권이 깨져야 한다. 현재를, 그리고 미래를 살아갈 우리보다 그들(기득권)이 더 절박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앞으로 살아갈 날이 더 많은 사람이 정치에 적극적으로 진출하면 좋겠다.

▲김지수= 기득권이 ‘무너진다’기보다 자연스럽게 시대가 변하면서 그 가치를 반영하는 미래 세대가 앞으로 나서는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장강(양쯔강)의 뒷물이 앞물을 밀어낸다’는 말을 좋아한다. 새로운 가치관을 반영하는 후배와 지혜를 가진 선배가 함께하면서 더 넓은 세상으로 향하는 것이다. 후배가 앞서고 선배가 뒤에서 밀어주면 자연스럽게 세대가 교체된다.

▲김보미= 민주화의 시작은 이전 세대에서 첫발을 뗐지만 완성은 청년 세대가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급변하는 시대에 맞춰 청년이 (민주화를) 이어받는 게 진짜 정치 아닐까?

▲김지수= 그러니 지금부터 미래 세대가 나서야 한다. 내가 최고위원에 도전한 것도, 당 대표 선거에 나선 것도 이런 움직임을 만들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래 세대만의 힘으로는 부족하다. 미국의 대선주자였던 버니 샌더스(85세)는 오카시오 코르테스(36세) 하원의원과 함께 “시대를 바꾸자”고 선언했다. 이처럼 미래 세대와 함께 손을 잡고 가는 장면을 만드는 게 현역 정치인들의 역할이라고 본다.

-끝으로 국민께 한마디.

▲김보미= 늘 정치에 관심을 달라고 말한다. 내가 사는 동네의 재정이라든가, 관심을 가질수록 모든 게 투명해지고, 국민이 알면 많은 게 바뀌게 된다.

▲정진호= 동감한다. 이제까지 우리가 한 말은 국민의 참여가 없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물론 후보들에게 부족함이 있겠지만 그 부족함을 채워주는 것 역시 국민과 당원의 참여에서 비롯된다. 변화와 혁신을 열망한다면 청년이든 기성세대든 정치에 참여해 주시길 바란다.

▲김지수= 모두가 참여할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투표다. 다가오는 지방선거에서 약 4000명을 뽑는데 그 4000명이 4년 동안에 쓰는 예산이 약 1300조원이라고 한다. 투표하지 않으면 사라지는 ‘침묵 비용’이 1300조원이란 뜻이다. 그러니 꼭 투표하라는 당부의 말씀을 드린다. 우리 청년 정치인들도 더 나은 미래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30대 현역 의원 누구?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지난해 치러진 22대 총선 당선인들의 평균연령은 56.3세인 것으로 나타났다.

연령별로 보면 50대는 150명으로 당선인 중 절반을 차지했으며 30대는 14명으로 4.7%에 그쳤다.

대표적인 30대 정치인 중 더불어민주당은 모경종(1989년생)·김동아(1987년생)·전용기(1991년생) 의원이, 국민의힘은 김용태(1990년생)·우재준(1988년생)·김재섭(1987)·조지연(1987년생) 의원 등이 있다.

이 밖에도 개혁신당 천하람(1986년생)·무소속 장경태(1983년생)의원과 기본소득당 용혜인(1990년생) 대표 등이 30대 국회의원으로 분류된다. <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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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의 눈’ 오세훈 차기 대선 로드맵

‘태풍의 눈’ 오세훈 차기 대선 로드맵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오세훈 서울시장이 5선에 성공했다. 하지만 국민의힘은 참패했다. 국민의힘의 수도권 참패 기류 속에서 홀로 승리한 오 시장은 국민의힘에 불어올 태풍의 눈이 될 것이다. 과연 오 시장은 성공적인 시정과 국민의힘 체질 개선이란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을까? 국민의힘은 6·3 지방선거에서 참패했다. 지난 4일 오전 개표 결과, 국민의힘은 광역자치단체장 기준 서울·대구·경북·경남 등 4곳 수성에 그쳤다. 전반적으로 전통적인 지지자들의 지원에 힘입어 최소한의 수성을 한 것으로 보인다. ‘졌잘싸’ 최소 수성 이로써 오세훈 서울시장은 사상 첫 5선에 성공했다. 오 시장은 48.94%를 득표해 48.34%를 득표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원오 후보를 가까스로 물리쳤다. 방송사들의 출구조사에서는 정 후보가 오 시장을 약 5% 앞설 것이라는 예상이 나왔지만, 개표 후 13시간이 지난 시각부터 정 후보를 역전해 신승을 거뒀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3월 이후 역동적으로 중앙정치에 개입했다. 공천 과정에서는 후보 등록을 거부하면서 ‘윤 어게인’에 기반한 강경 보수 노선을 유지하려는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 체제에 반기를 들었다. 이어 당에 절윤(윤 전 대통령과의 절연) 선언을 요구했고, 국민의힘은 의원총회를 개최해 “윤석열 전 대통령의 정치적 복귀에 반대한다”는 등 절윤 결의문을 채택했다. 이후에도 오 시장은 당과 거리두기를 멈추지 않았다. 오 시장이 후보 등록을 거부하면서 요구했던 것 중 하나는 혁신 선거대책위원회 설치였으나 실현되지 않았다. 그러자 오 시장은 한동안 당의 상징색인 빨간색이 아닌 흰색 점퍼 차림으로 현장을 누볐다. 그는 장 대표의 지원 유세를 거절하기도 했다. 지난 4월 진행된 국민의힘 서울시당 필승결의대회와 지난달 12일 진행된 서울시당 선대위 발대식 모두에 장 대표를 초청하지 않았다. 오 시장이 장 대표의 지원 유세를 거절한 취지는 “마음은 고맙지만 필요 없다”는 것이었다. 오 시장은 지난 3월27일 SBS 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에 출연해 “저도 장 대표를 모시고 싶다. 변신한 모습으로 지원 와 주시길 촉구한다”며 “국민의힘 자체가 중도 확장성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후 오 시장은 서울시당을 배경으로 서울 내 자치구를 둔 의원들과 함께 선대위를 구성해 독자적으로 선거를 치렀다. 그리고 5선에 성공했다. 오 시장의 승리는 정치학적으로 정치의 개인화 현상이라고 평가할 만하다. 정치의 개인화는 정당 등 집단적 배경이 아닌 정치인 개인의 리더십 등 이미지가 정치 과정의 핵심이 되는 현상을 말한다. 전통적인 지지 세력 외엔 국민의힘이라는 브랜드가 호감을 얻지 못하는 상황에서 유권자는 국민의힘과 오 시장을 분리해서 평가한 후 오 시장을 지지했다. 국민의힘이라는 정당 브랜드가 오 시장에게 도움이 되기보다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었다. 따라서 오 시장은 당과 거리를 두면서 개인 지지 기반이 잠식되는 것을 최대한 막은 셈이다. 지방선거와 함께 진행된 경기 평택을 보궐선거에서는 국민의힘 유의동 후보가 승리했다. 유 후보는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의 지지 선언 외에는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다. 언론이 주목한 핵심은 더불어민주당 김용남 후보와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의 갈등·상호 폭로였다. 유 후보의 승리는 범여권의 내분 속에서 어부지리 효과를 거둔 것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뒤베르제 법칙에 따르면, 단순다수대표제와 소선거구제는 양당제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김 후보와 조 대표가 단일화에 성공했다면, 유 후보를 상대로 여유 있게 승리했을 가능성이 있었다. 참패 속 홀로 선 오…당과 거리 두고 5선 신승 유 어부지리·한 자력 생존…장동혁 책임론 불씨 하지만 두 후보가 화합하지 못하면서 평택을 선거구도는 다당제로 전개됐다. 김 후보와 조 대표가 각각 일정한 경쟁력을 가진 채 분열했기 때문에 범여권 지지자의 표심은 사실상 양분됐다. 반면 자유와혁신 황교안 후보는 김 후보와 조 후보만 한 경쟁력을 갖지 못해 유 후보의 표를 결정적으로 잠식하지는 못했다. 김 후보·조 후보·진보당 김재연 상임대표 등 진보 성향 범여권 후보들은 각각 28.77%·27.44%·2.95%를 득표했다. 반면 유 후보는 34.83%를, 황 후보는 6.19%를 득표했다. 이 때문에 유 후보는 다수 대결 구도 속 승자가 될 수 있었다. 평택을 결과는 뒤베르제 법칙의 기계적 효과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보여줬다. 단순다수대표제에서는 1표라도 더 얻은 후보가 의석을 차지한다. 유 후보는 34.83%를 득표하는 데 그쳤지만, 범여권 후보들이 분열하면서 의석을 차지할 수 있었다. 범여권 후보의 분열은 뒤베르제 법칙이 기대하는 심리적 효과인 사표 방지를 위한 유력 후보 결집 효과 실현을 방해했다. 따라서 유 후보의 승리는 국민의힘의 조직적 승리라기보다, 범여권 분열과 단순다수대표제의 기계적 효과가 맞물린 결과에 가까웠다. 부산 북구갑 재보궐선거에 무소속으로 출마했던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도 민주당 하정우 후보를 물리치고 신승했다. 이로써 한 전 대표는 오 시장과 함께 자력으로 정치적 승리를 거뒀다. 지난 2월 한 전 대표 제명을 주도했던 장 대표 등 당권파는 매우 치명적인 내상을 입은 것이다. 통상적인 정치적 관례대로라면 선거에서 대패한 당 대표 등 지도부는 일괄 사퇴의 길을 걷는다. 이후엔 비상대책위원회가 설치돼 당의 혼란을 수습한 후 전당대회를 개최한다. 하지만 일각에선 선거 이전부터 “장 대표는 선거에서 패배하더라도 물러나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지난 3일 SBS 선거 방송에 출연한 홍준표 전 대구시장은 “나는 자유한국당 대표였던 지난 2018년 지방선거 당시 자유한국당 패배를 예고하는 출구조사 발표를 듣는 즉시 사퇴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장 대표는 억울하다고 생각하면서 사퇴하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가 장 대표가 억울해할 것이라고 예상한 이유로는 “상당수 후보들이 장 대표에게 지원을 요청하지 않았으므로 장 대표로서는 할 말이 있다”고 설명했다. 장 대표는 지난 4일에도 사퇴 의사를 밝히지 않았다. 장 대표를 강제로 사퇴시킬 수단은 사실상 없다. 국민의힘 당헌·당규에 따르면, 청년 최고위원을 포함한 선출직 최고위원 5명 중 4명 이상이 사퇴하거나 궐위되면 지도부가 무너진 것으로 간주돼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전환된다. 치열한 혈투 치명적 내상 국민의힘 선출직 최고위원은 신동욱·김민수·양향자·김재원·우재준 최고위원이다. 이들 중 신동욱·김민수·김재원 최고위원은 전반적으로 장 대표와 뜻을 함께하고 있다. 물론 구 친윤(친 윤석열)계가 장 대표의 거취를 어떻게 결정할지에 따라서 신 최고위원과 김재원 최고위원은 유동적인 결정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구 친윤계로서는 장 대표를 섣불리 사퇴시켰다가 오 시장이 당권 장악까지 시도하는 더 큰 강풍을 맞이할 수도 있어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한동안 “구 친윤계가 장 대표를 사퇴시킨 후 신 최고위원을 얼굴로 내세울 수도 있다”는 설이 돌아다녔지만, 말 그대로 설로 끝났다. 장 대표와 구 친윤계가 충돌했던 지난 1~2월에도 충돌했던 핵심 요소는 절윤 등 노선 변경 여부였을 뿐, 장 대표의 거취는 아니었다. 인위적인 지도부 붕괴는 사실상 어렵다. 최고위 자체가 장 대표에겐 벙커로 작용하기 때문에 장 대표가 버티면 끌어낼 수 있는 정상적인 방법을 찾기 어렵다. 하지만 대구·경북·경남을 수성했기 때문에, 대체로 이 지역을 기반으로 삼는 구 친윤계는 참패 속에서도 당내 발언권이 사라지지 않았음을 확인했다. 반대로 대구에서 민주당 김부겸 후보가 45.05%를 득표하는 등 핵심 지역 기반 대구에서도 예전과 다른 정치적 정서가 확인됐다. 따라서 구 친윤계로서는 “지역 기반 수성을 위해 당에 변화를 줘야 할 시점”이라는 판단과 “장 대표가 관례대로 사퇴해야 한다”는 판단이 교차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미 하마평에 올랐던 신 최고위원 등 대안 인물을 찾아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옹립하려 할 가능성이 있다. 현재의 국민의힘은 ‘윤 어게인’ 정서를 등에 업은 강경 보수 세력과 영남권에 기반을 둔 구 친윤계가 양대 축을 형성한 과두적 구조에 가깝다. 이탈리아의 사회학자 로베르트 미헬스는 ‘과두제의 철칙’이라는 개념을 주장했다. 과두제의 철칙은 “조직이 커질수록 민주성을 유지하기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미헬스가 지적했던 근거는 ▲관료화와 분업 ▲대중의 무관심과 무능력 ▲지도부의 권력 독점 등이었다. 이 중 국민의힘에 작용하는 것은 관료화와 권력 독점이라고 할 수 있다. 관료화로 인해 지도부에 권력이 집중되고, 지도부는 권위 유지를 위해 정보·자원을 통제한다. 구 친윤계 대안 옹립? 그간 구 친윤계는 “당의 이익보다 자신의 권력 자산을 보존하려고 한다”는 비판적 평가를 받아왔다. 장 대표가 구 친윤계의 사퇴 공세에 맞설 수단은 당헌·당규가 벙커로 만든 지도부의 견고함밖에 없다. 영남을 수성했기 때문에 국민의힘에서는 역설적으로 큰 혼란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 기반이 영남에 과도하게 집중돼있기 때문에 연이은 선거 패배라는 외부적 충격이 발생할수록 당내 권력구조 강화로 회귀하려는 관성이 작동하기 때문이다. 구 친윤계에 대해서는 “당을 파벌·지역의 이익을 지키기 위한 도구로 활용한다”는 비판이 오랫동안 제기돼왔다. 서울시장 5선에 성공한 오 시장은 지금까지 구 친윤계와 장 대표 모두를 상대해 왔던 한 전 대표와는 다르다. 한 전 대표는 구 친윤계와 강경 보수 성향 지지자들로부터 배신자라는 낙인이 찍혀 있었다. 그가 국민의힘 복당 이후 당권 장악을 거쳐 대권에 도전할 것이란 예상은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다. 하지만 한 전 대표의 복당은 역설적으로 더욱 어려워질 수도 있다. 복당하더라도 국민의힘 내 소수 계파인 친한(친 한동훈)계 수장에 불과하다. 목표로 삼을 당권·대권 도전을 위해선 당내 구 친윤계의 거부감을 누그러트릴 수 있는 정치력을 발휘해야 한다. 따라서 한 전 대표는 당선돼 자력 생존했다고 하더라도 아직은 태풍 속의 찻잔으로 남을 공산이 크다. 사상 최초로 서울시장 5선에 사실상 자력으로 성공한 오 시장이야말로 태풍의 눈이 될 가능성이 높다. 장 대표는 당 대표직 유지와 생존이 급박하기 때문에 수성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 자신이 당 대표이기 때문에 자신의 노선을 변혁하려는 모순을 저지를 수도 없다. 따라서 국민의힘의 차기 권력구도는 오 시장과 구 친윤계가 여러 쟁점을 놓고 충돌하는 양상으로 전개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몇 달 안으로 결정해야 할 논점만 해도 ▲장 대표 등 지도부의 거취 ▲비상대책위원회 설치 여부 및 위원장 임명 ▲새 지도부 선출을 위한 전당대회 개최 시점 등이며, 이것들이 연쇄적으로 이어진다. 최고위는 장 벙커…영남 기반 구 친윤도 셈법 복잡 복당 벽 마주할 한…‘오세훈계’ 편성 당 흔드나 국민의힘 내 수도권 거점은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는 사실상 무너졌다고 봐도 무방한 수준이다. 따라서 오 시장이 잔존한 수도권 내 비친한계 성향 중도보수계열 인사들을 규합해 오세훈계를 구성할 수도 있다. 다만 현실적으로 광역자치단체장이 직접 정당 대표를 맡기는 어렵다. 오 시장으로서는 오세훈계를 구성해 참신한 개혁 이미지를 표방할 수 있는 대리인을 내세울 가능성이 있다. 일각에서는 그 대리인으로, 친한계로 알려졌지만 서울시당위원장으로서 당권파와 겨뤄가면서 오 시장과 호흡을 맞춘 국민의힘 배현진 의원과 서울 내 험지인 도봉갑에서 당선돼 서울시장 선거전에서도 민주당 정 후보 저격 활동에 집중했던 김재섭 의원 등을 거론한다. 이에 맞서 구 친윤계는 전통적인 논리를 동원해 맞설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2016년 이후 영남권 중심 구 친윤계의 논리는 “수도권이야말로 늘 국민의힘 선거 패배의 원흉”이라는 것이었다. 만약 오세훈계가 새롭게 편성된다면, 사안에 따라 오세훈계와 친한계가 구 친윤계의 공세에 공동 대응할 가능성도 있다. 물론 장 대표의 정치적 수명이 이 사태에 아예 참전할 수 없을 정도로 끝난 것은 아니다. 그의 정치적 수명을 연장시킬 수 있는 변수는 이번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투표용지 관리 논란에서 나올 수도 있다. 국민의힘과 개혁신당은 서울 송파구에서 발생한 투표용지 부족 사태를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일각에선 재투표까지 주장하고 있다. 당장 직면한 참패의 여파를 수습하고 당을 뭉치게 하는 데 있어서는 도움이 될 수 있다. 위기를 통제 가능한 외부의 독립된 실체로 분리해 내부적 결집을 추구하는 것이다. 하지만 강경 보수 집단이 영향력을 행사하는 국민의힘에선 오히려 내부를 겨냥한 칼이 될 수도 있다. 섬세하게 다루지 못하면 부정선거론의 영향력이 당 안에서 강해질 수 있고, 역설적으로 장 대표의 영향력이 강해지도록 돕는 생명줄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시선은 대권에? 부정선거론과 장 대표의 영향력 유지가 겹쳐지면, 오 시장과 구 친윤계가 일시적으로 연합해 대응할 수도 있다. 따라서 국민의힘에선 네 갈래 권력 투쟁인 ‘사국지’가 펼쳐질 가능성이 있다. 크게는 영남·강경 노선과 수도권·확장 노선으로 분류된다. 그런데 이를 세부적으로 파고들면, ▲대구·경북 중심 구 친윤계 ▲지도부란 벙커에 있는 친 장동혁계(당권파) ▲친 한동훈계 ▲무계파·수도권 중심 친 오세훈계 등으로 편성될 수도 있다. 계파의 세분화 가능성 중심에는 오 시장이 있다. 태풍의 눈이 된 오 시장은 과연 성공적인 서울시정 수행과 국민의힘 체질 개선에 성공할 수 있을까? 오 시장이 대권에 시선을 두고 있다면, 두 마리의 토끼는 반드시 잡아야 한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