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과거에는 “조금 늦더라도 결국 자리 잡는다”는 믿음이 있었다. 한때 한국 사회는 30대를 ‘성장의 시기’로 여겼다. 직장을 잡고, 가정을 꾸리고, 자산을 형성하며 삶을 안정시키는 시기였다. 그러나 지금의 30대는 다르다. 반복되는 취업 실패와 불안정한 노동, 치솟는 집값이 기본인 경쟁 사회 속에서 삶을 하나둘씩 포기하기 시작했다. 인간관계, 내 집 마련은 물론 미래에 대한 기대감 자체를 내려놓는 청년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과거 청년세대는 ‘3포세대’로 불렸다. 연애·결혼·출산을 포기한 세대를 의미했다. 이후 포기하는 대상이 늘어나면서 인간관계와 내 집 마련, 꿈과 희망까지 내려놓는다는 의미의 ‘N포세대’라는 표현까지 등장했다.
벌어도 불안
놀아도 불안
그러나 최근 청년세대를 설명하는 분위기는 이보다 더 무겁다. 몇 가지를 포기하는 수준이 아니라, 사회와 단절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어서다.
이런 현상을 두고 최근 청년층 사이에서 새롭게 등장한 표현이 ‘사회적 로그아웃’이다. 극심한 경쟁과 취업난, 반복되는 실패 속에서 관계와 미래 계획을 하나씩 줄여나가다 결국 사회 바깥으로 밀려난 것을 의미한다.
무엇이 30대 청년들이 삶을 포기하게 만들고 있을까. 근본적인 문제는 단연 ‘취업’이다. 최근에는 이른바 ‘쉬었음 청년’을 둘러싼 논란이 사회적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방송인 장동민이 한 방송에서 “취업이 안 된다는 건 말이 안 된다”며 청년들이 대기업 사무직만 원한다고 지적하면서다. 이에 대해 청년층 사이에서는 “현실을 너무 모른다”며 비난 여론이 거세게 일었다.
실제로 국가데이터처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쉬었음’ 상태인 2030세대는 71만7000명으로 관련 통계 작성 이후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원래 ‘쉬었음’은 통계상 비경제활동인구를 분류하기 위한 행정 용어였다.
그러나 최근 ‘쉬었음 청년’이라는 단어는 하나의 낙인처럼 소비되기 시작했다. 일을 안 하는 청년들을 조롱하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청년들은 ‘쉬었음’이라는 표현 자체에 강한 거부감을 드러낸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다.
온라인 커뮤니티와 취업 관련 게시판에는 “이력서를 수백장 넣고도 떨어진 사람을 그냥 쉰 사람으로 취급하는 게 억울하다” “쉬는 게 아니라 버티는 중”이라는 반응이 이어지고 있다. 실제로 상당수의 ‘쉬었음’ 청년은 취업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노는 게 아닌 버티는 중”
낙인찍힌 ‘쉬었음 청년’
한국경영자총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2030세대 쉬었음 인구 가운데 83.4%는 과거 취업 경험이 있었다. 특히 절반 가까이는 최근 1년 안에도 일을 했던 것으로 조사됐다. 구직을 포기한 것이 아니라 노동시장에 진입했다가 다시 밀려난 경우가 많다는 의미다.
청년층이 노동시장을 떠나는 이유 역시 단순하지 않다. 최근 1년 내 일을 그만둔 청년들의 주요 퇴직 사유로는 ‘작업 여건 불만족’ ‘임시·계절적 일 종료’ 등이 꼽혔다. 실제 청년층 사이에서는 저임금과 불안정 노동, 반복되는 야근과 조직문화 피로감 등이 누적되며 “버틸 수 없는 일자리”에 대한 거부감도 커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지금의 현상을 개인 의지의 문제로만 접근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한다. 취업 시장은 갈수록 좁아지고 있지만 경쟁은 더욱 치열해졌고, 청년들은 끊임없이 스펙과 경험을 요구받고 있기 때문이다.
청년층이 취업 시장에서 느끼는 좌절감의 가장 큰 배경에는 고용 시장의 변화가 자리하고 있다. 과거에는 취업이 늦어지더라도 결국 사회에 진입할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첫 직장에 들어갈 기회 자체가 줄어들고 있다.
실제 청년층 사이에서는 “신입이 들어갈 자리가 사라졌다”는 말이 심심치 않게 나온다. 기업들이 경력직 중심 채용으로 빠르게 전환하면서 사회 초년생이 경력을 쌓을 첫 기회 자체가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다.
경기침체와 비용 부담 속에서 기업들은 교육이 필요한 신입보다 즉시 실무에 투입이 가능한 인력을 선호하기 시작했고, 이 과정에서 청년층이 취업 시장에서 밀려나기 시작한 것이다.
3포세대서
N포세대로
실제로 국가데이터처가 발표한 ‘2026년 4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청년층의 고용률은 43.7%로 전년 동월 대비 1.6%포인트 하락했다. 청년 고용률은 24개월 연속 하락세를 이어가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였던 2000년대 후반 이후 가장 긴 감소 흐름이다. 청년 취업자 수 역시 감소세를 이어가는 중이다.
문제는 일자리 숫자가 줄어든 것만이 아니다. 청년층이 선호하던 전문직과 기술직 영역까지 불안정하다는 점이다. 최근 전문·과학·기술서비스업 취업자는 11만5000명 급감하며 통계 작성 이후 가장 큰 감소폭을 기록했다. 연구개발과 엔지니어링, 전문기술 분야까지 위축됐다.
이는 인공지능(AI)의 영향도 크다. 최근 AI의 발전으로 취업을 준비하는 청년들의 불안도도 높아졌다. 실제로 많은 일자리가 AI로 대체되면서 “지금 준비하는 직무가 몇 년 뒤에도 살아남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불안감이 확산되고 있다.
취업을 준비하는 청년들뿐만 아니라 30대 직장인들 역시 고민이 크다. “AI 시대에도 내 직무가 살아남을까?” “지금의 선택이 10년 뒤에도 유효할까?” 같은 현실적인 고민들이다. 과거처럼 평생직장이 보장되지 않는 상황에서 끊임없이 자기계발과 생존 경쟁에 내몰리고 있다는 의미다.
고용시장의 불안은 자연스럽게 청년층의 심리적 위축으로 이어지고 있다. 국가데이터처 ‘청년 삶의 질 2025 보고서’에 따르면 청년층의 삶의 만족도는 10점 만점에 6.5점에 그쳤다. OECD 국가 가운데 하위권 수준이다. 청년층 3명 중 1명은 정신적·육체적 탈진 상태인 번아웃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번아웃의 가장 큰 원인은 ‘진로 불안’이었다.
특히 30대 초반은 청년층 가운데 일자리 만족도와 소득 만족도가 가장 낮은 집단으로 나타났다. 사회 진입 이후에도 안정감을 얻지 못한 채 끊임없는 불안 속에 놓여 있다는 뜻이다. 청년층 사이에서 반복되는 “열심히 살아도 달라지는 게 없다”는 말 역시 이 같은 배경과 무관하지 않다.
경력직만 선호?
길 잃은 신입들
실제 최근 취업난을 겪고 있는 30대들 사이에서는 스스로를 ‘실패자’처럼 느낀다는 반응도 적지 않다. 수년간 시험과 취업 준비를 반복하다 뒤늦게 노동시장에 진입하더라도 불안정 계약직이나 저임금 노동에 머무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불안정한 노동시장과 반복되는 실패 경험은 결국 청년들의 삶 전체를 바꾸고 있다. 30대의 삶은 취업 이후 결혼과 출산, 내 집 마련로 이어지는 게 마치 하나의 공식과 같았다. 그러나 최근에는 이 공식이 더 이상 당연하지 않게 됐다.
국가데이터처에 따르면 지난해 30대 미혼율은 53.4%로 집계됐다. 30대 두 명 중 한 명 이상이 결혼하지 않은 상태라는 의미다. 2000년 13.4% 수준이었던 30대 미혼율은 24년 만에 약 4배 가까이 증가했다. 특히 서울의 30대 미혼율은 62.8%로 전국 최고 수준이었다. 서울에 거주하는 30대 남성의 경우 미혼 비율이 68.3%까지 올라갔다.
문제는 단순히 결혼 시기가 늦어지는 것이 아니다. 시간이 지나도 결혼과 출산으로 이어지는 비율 자체가 낮아지고 있다. 국가데이터처 ‘인구동태패널통계’에 따르면 2020년 기준 32세 미혼 남성 가운데 3년 뒤 결혼한 비율은 15.5%에 불과했다. 불과 몇 년 전 같은 연령대에서 나타났던 비율보다 크게 낮아진 수치다.
여성 역시 비슷한 흐름을 보였다. 청년층이 결혼과 출산을 미루는 수준이 아니라, 결혼 자체를 포기하고 있다는 것이다. 혼인률은 자산 수준이나 안정적인 직장과 연관이 있었다. 실제 최근 혼인 증가세를 살펴보면 특정 계층 중심으로 나타나고 있다.
지난해 혼인 건수는 일부 반등했지만, 증가를 주도한 건 대졸 이상 고학력층과 사무직 종사자였다. 반면 저소득·저학력 계층에서는 결혼 의향 자체가 낮게 나타났다. 부모 지원 여부와 안정적인 직장, 자산 수준에 따라 결혼 가능성이 갈리는 ‘결혼 양극화’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다.
취업난·불안정 노동에 결혼도 포기
30대 미혼율 24년 만에 4배나 증가
청년층 역시 결혼을 가로막는 가장 큰 요인으로 ‘소득’과 ‘주거비 부담’을 꼽는다. 실제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조사에서도 청년들이 결혼을 긍정적으로 생각하게 되는 가장 중요한 조건은 안정적인 소득이었다. 반대로 월평균 소득이 낮은 청년층에서는 “결혼을 원하지 않는다”는 응답 비율이 가장 높았다.
특히 수도권 청년층의 부담은 더 크다. 높은 집값과 전세 대출 부담 속에서 결혼과 출산은 현실적인 선택지가 되기 어렵다는 것이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한 청년은 “혼자 살아도 버거운데 둘이 어떻게 사느냐는 생각이 먼저 든다”며 “결혼은 하고 싶고 아이도 좋아하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상상 자체가 어렵다”고 말했다.
1인 가구 증가 역시 이런 흐름과 맞물린다. 지난해 1인 가구는 전체 가구의 36.1%를 차지했다. 이 가운데 30대 비중도 빠르게 늘고 있다.
혼자 사는 삶이 일시적 과도기가 아니라 하나의 일반적인 생활 형태로 자리 잡고 있다는 의미다. 실제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 조사에서는 청년 1인 가구 상당수가 “결혼 생각이 없다”고 답했다. 과거처럼 “언젠가는 결혼하겠지”라는 인식 자체가 약해지고 있는 셈이다.
가장 큰 문제는 이 과정에서 청년층이 점점 더 사회적 고립 상태로 들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혼자 사는 시간이 길어지고 관계 유지 비용까지 부담으로 작용하면서 인간관계 역시 축소되고 있다.

통계청 조사에서도 1인가구의 인간관계 만족도는 전체 평균보다 낮게 나타났다. 코로나19 이후 비대면 문화가 확산하면서 더 심화됐다. “힘들 때 이야기할 사람이 없다”는 응답도 증가했다.
취업난과 고용 불안, 관계 단절이 장기화되면서 청년층 정신 건강 역시 빠르게 악화하고 있다. 최근에는 30대 자살률이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는 조사도 나왔다.
지난해 기준 청년층 극단적 선택 비율은 인구 10만명당 24.4명으로 집계됐다. 연령별로는 30~34세가 가장 높았다. 청년층 내에서도 30대 초반은 2009년 이후 줄곧 20대보다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취업난과 장기 구직, 불안정 노동이 누적되며 우울과 번아웃이 심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미혼율 역대급
자살률 최고치
해당 문제는 상담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결국 청년층이 미래를 계획할 수 있는 안정적인 노동 환경과 주거, 사회적 안전망이 함께 구축되지 않으면 문제 해결이 어렵다. 정부 역시 최근 이 문제를 심각하게 보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최근 국무회의에서 “나라에 죽고 싶어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은 국가적 수치”라며 극단적 문제를 개인 책임으로만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imsharp@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달라진 청년 문화
“술 안 마셔요”
최근 청년 세대는 인간관계와 소비, 여가 방식 전반에서도 이전 세대와는 전혀 다른 흐름을 보이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음주 문화 변화다. 과거 청춘과 회식, 인간관계의 상징처럼 여겨졌던 술 문화가 빠르게 약화하면서 주류업계 전체가 구조적 위기를 호소할 정도다.
실제 최근 몇 년 사이 MZ세대를 중심으로 ‘소버 라이프(Sober Life)’와 ‘소버 큐리어스(Sober Curious)’ 문화가 확산하고 있다. 술에 취하는 대신 맨정신의 컨디션과 건강, 자기 관리를 중시하는 흐름이다.
예전에는 회식 자리에서 술을 거절하는 것이 어려웠지만 지금은 “각자 편한 만큼만 마시자”는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자리 잡고 있다. 대학가에서도 술자리 대신 보드게임 카페나 일반 카페에서 모임을 갖는 경우가 늘고 있다.
실제 통계도 이를 보여준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의 ‘주류산업 실태조사’에 따르면 최근 20대의 음주 빈도와 음주량은 전 연령대 가운데 가장 낮은 수준으로 떨어졌다. 월평균 음주 빈도와 하루 평균 음주량 모두 감소세다.
주류 소비 감소는 업계 실적으로도 직격탄이 되고 있다. 롯데칠성음료와 하이트진로 등 주요 주류 기업들은 최근 실적 부진을 겪고 있다. 특히 맥주 판매량 감소 폭이 크다. 일부 기업은 분기 적자까지 기록했다.
업계에서는 경기침체만이 원인이 아니라 “술 자체를 덜 마시는 구조적 변화”라는 진단을 내리고 있다. 실제 전국 주점 수 역시 빠르게 감소하고 있다. 코로나19 이후 회식 문화가 약해진 데다 고물가까지 겹치면서 술집 폐업이 이어지고 있다. 대학가 상권 역시 과거 같은 활기를 찾기 어려워졌다는 반응이 나온다.
이 같은 흐름 속에서 주류업계는 생존 전략 자체를 바꾸고 있다. 기존처럼 “많이 마시는 술” 대신 “가볍게 즐기는 술”을 내세우고 있는 것이다. 저도주, 제로슈거, 무알코올 제품이 잇따라 출시되는 이유다.
대표적으로 소주의 알코올 도수는 계속 낮아지고 있다. 과거 20도 안팎이 일반적이던 소주는 이제 15도대 제품까지 등장했다. 과일향 리큐르와 RTD(즉석음용주류), 논알코올 맥주 시장도 빠르게 커지고 있다. 이는 주류 소비 방식 자체가 달라졌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과거처럼 집단 속에서 취하기 위한 음주보다 “내 취향에 맞게 가볍게 즐기는 소비”가 중요해졌다는 것이다.
청년층 소비 패턴 변화는 다른 산업에서도 뚜렷하게 나타난다. 술 소비는 줄어드는 반면 운동·러닝·헬스·식단 관리·독서·뷰티 등 이른바 ‘헬시 플레저(Healthy Pleasure)’ 산업은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실제 헬스장과 스포츠웨어, 건강식품, 뷰티 시장은 최근 높은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청년층 사이에서는 “자기 관리가 더 중요하다”는 인식이 확산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를 청년 세대 가치관 변화로 해석한다. 미래가 불안정한 상황에서 건강과 자기 관리는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영역이 됐다는 것이다. <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