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삼기의 시사펀치> 왕릉으로 보는 역사

위치 따라가면 한국사의 권력지도가 보인다

대한민국 지도를 펼쳐놓고 왕릉 위치를 하나씩 찍어보면 흥미로운 장면이 나타난다. 신라 왕릉은 경주에 몰려 있고, 고려 왕릉은 개성 주변에 집중돼있으며, 조선 왕릉은 서울과 경기권에 퍼져 있다. 고구려와 백제는 수도를 옮길 때마다 왕릉 중심지도 함께 이동했다.

왕릉은 단순한 무덤이 아니다. “그 시대 권력이 어디에서 움직였는가”를 보여주는 살아 있는 국가 지도다.

왕릉은 그 시대의 수도와 정치 중심, 종교관, 군사 전략, 풍수 체계까지 모두 담겨있다. 그래서 왕릉 분포를 따라가다 보면 역사책보다 더 선명하게 역사 흐름이 보일 때가 있다. 왕이 어디에 묻혔는가는 결국 “그 나라가 어디를 중심으로 돌아갔는가”를 의미했기 때문이다.

신라 왕릉은 거의 대부분 경주에 집중돼있다. 신라는 1000년 가까이 수도를 크게 옮기지 않은 왕조다. 그래서 왕릉 역시 경주 시내와 주변 평야에 거대한 봉분 형태로 남아 있다. 지금도 경주 도심을 걷다 보면 초록색 둥근 언덕 같은 무덤들이 도시 전체를 감싸고 있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도시 자체가 거대한 왕릉 박물관처럼 느껴질 정도다.

대표적으로 대릉원과 천마총, 황남대총 같은 왕릉군은 지금도 신라 권력의 흔적을 그대로 보여준다. 특히 신라는 평지형 왕릉이 많다. 이는 당시 북방 유목문화 영향과도 연결된다는 해석이 나온다. 산속 깊은 곳보다 도시 가까운 평야에 거대한 봉분을 만든 것은 왕권 자체를 도시 중심에 드러내려는 의미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신라 왕 가운데 유독 다른 지역에 묻힌 왕도 있다. 바로 경순왕이다. 그는 경주가 아니라 경기도 연천에 묻혀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신라가 멸망한 뒤 고려 왕건에게 나라를 넘기고 개경 중심의 고려 체제 안으로 편입됐기 때문이다. 연천은 당시 고려 수도 개성과 가까운 전략 지역이었다. 경순왕릉은 “왕조 교체”라는 거대한 역사 전환의 흔적이다.

고려 왕릉은 대부분 개성 주변에 몰려 있다. 고려는 약 500년 동안 수도를 개경 중심으로 유지했기 때문이다. 현재 고려 왕릉 상당수는 북한 지역에 남아 있으며, 특히 개성 송악산 주변에 집중돼있다. 대표적으로 현릉은 고려 태조 왕건의 능이며, 공민왕릉은 고려 후기 예술 수준을 보여주는 대표 유적이다.

고려 왕릉은 불교 색채가 짙고 장식 또한 화려하다. 조선 왕릉이 절제와 유교 질서를 강조했다면, 고려 왕릉은 웅장함과 자연 지형의 조화를 중시했다. 산세를 따라 능이 자리 잡았고 석등과 석물도 화려하다. 개성 일대 왕릉군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왕조 수도 흔적처럼 느껴진다.

특히 고려 왕릉은 ‘산의 나라 고려’를 그대로 보여준다. 송악산 능선을 따라 이어지는 왕릉 배치는 단순한 풍수가 아니라 권력의 배치였다. 수도 개경을 중심으로 왕릉이 원형처럼 펼쳐진 모습은 고려 권력이 얼마나 개경 중심 체제를 중시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고구려 왕릉은 현재 중국 동북지역과 북한 평양 일대에 분포한다. 초기 수도였던 국내성 시기에는 집안과 환인 일대에 왕릉이 조성됐고, 이후 평양 천도 이후에는 평양 주변에 왕릉군이 형성됐다. 대표적으로 장군총은 거대한 계단식 돌무덤으로 유명하며, 광개토대왕릉 역시 고구려 전성기를 상징한다.

고구려 왕릉 특징은 압도적 규모다. 거대한 석축과 벽화, 군사국가 특유의 강한 기운이 느껴진다. 왕릉 자체가 사실상 “나는 이런 나라를 다스렸다”는 선언처럼 보인다. 특히 고구려 벽화고분은 당시 전쟁과 사냥, 춤과 신앙까지 담아내며 오늘날 살아 있는 역사 자료 역할까지 하고 있다.

고구려 왕릉을 보고 있으면 단순한 무덤이 아니라 “제국의 흔적”이라는 느낌이 강하다. 거대한 돌무덤과 벽화에는 정복국가 특유의 자신감이 담겨있다. 그래서 고구려 왕릉은 묘지라기보다 하나의 정치 선언문처럼 느껴진다.

백제 왕릉은 수도 이동 경로를 따라 나뉜다. 한성백제 시기에는 현재 서울 송파 일대 석촌동 고분군이 중심이었고, 웅진시대에는 공주, 사비시대에는 부여로 이동했다. 왕릉 위치만 따라가도 백제가 어떻게 남쪽으로 이동했는지가 그대로 보인다.

특히 무령왕릉은 백제사의 상징 같은 존재다. 도굴되지 않은 채 발견되면서 왕 이름과 당시 국제 교류 흔적까지 확인됐다. 중국 남조 문화와 일본 교류 흔적도 함께 발견되면서 백제가 얼마나 국제적인 해양 국가였는지를 보여주는 결정적 증거가 됐다.

백제 왕릉은 고구려처럼 거대하지도 않고, 신라처럼 봉분 중심도 아니다. 대신 세련되고 국제적이다. 중국과 왜, 남조 문화가 함께 섞여 있다. 백제 왕릉에서는 군사국가보다 문화국가의 분위기가 더 강하게 느껴진다.

조선 왕릉은 대부분 서울과 경기권에 분포한다. 조선은 수도 한양 중심 국가였고, 유교적 질서를 중요하게 봤기 때문이다. 그래서 왕릉도 수도에서 너무 멀지 않은 곳에 체계적으로 배치됐다. 대표적으로 동구릉과 서오릉, 융릉과 건릉 등이 있다.

조선 왕릉은 이전 왕조들과 분위기가 다르다. 신라와 고려가 웅장함과 자연의 기운을 중시했다면, 조선은 질서와 절제를 강조했다. 왕릉 구조 하나까지 유교적 위계와 예법 안에서 설계됐다. 그래서 조선 왕릉은 화려함보다 균형감이 먼저 보인다.

그러나 조선 역시 예외가 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최근 1600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 <왕과 사는 남자>를 통해 다시 주목받은 장릉의 단종이다. 단종은 세조에게 왕위를 빼앗긴 뒤 영월로 유배됐고 결국 그곳에서 생을 마쳤다. 그래서 수도 한양이 아니라 강원도 영월에 묻혔다.

훗날 복권되며 왕릉이 됐지만, 그의 무덤은 지금도 “권력에서 밀려난 왕의 역사”를 상징한다.

조선 왕릉 가운데 영월 장릉이 유독 특별하게 느껴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다른 왕릉들이 국가 질서 속에 정리된 공간이라면, 단종의 무덤은 비극과 눈물이 먼저 느껴진다. 왕릉 하나가 조선 권력투쟁의 잔혹함을 지금까지 증언하고 있는 셈이다.

이런 흐름은 현대 대한민국에도 묘하게 이어진다. 과거 왕들은 거대한 왕릉에 묻혔지만, 지금 대한민국 지도자들은 대부분 국립서울현충원이나 국립대전현충원 같은 국립묘지에 안장된다. 왕조 국가에서 민주공화국으로 바뀌며 “왕릉 중심 질서”가 “국가 공동 추모 공간”으로 바뀐 셈이다.

하지만 현대 대통령들 가운데 노무현 대통령처럼 고향 안장을 선택한 사례도 있다. 그는 서울현충원이 아니라 고향인 경남 김해 봉하마을에 안장됐다. 권위주의적 국가 묘지보다 시민과 함께하는 공간을 선택했다는 해석도 있다. 지금 봉하마을은 단순 묘역을 넘어 정치·시민 추모 공간처럼 기능하고 있다.

또 노태우 대통령은 현재 파주검단사에 안치돼있다. 생전에는 대구 동화사 안장 뜻도 거론됐지만, 결국 국립묘지가 아닌 별도 공간에 안장됐다. 전두환씨 역시 국립묘지 안장이 아닌 별도 방식으로 묻혔다. 결국 현대 대통령 묘역 역시 정치적 평가와 시대 분위기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않은 셈이다.

왕릉과 대통령 묘역 모두 단순한 무덤이 아니다. 그것은 권력의 기억이고, 시대의 기록이며, 때로는 관광과 지역 정체성의 중심 자산이 되기도 한다. 실제로 경주·공주·부여·서울·개성 주변 왕릉군은 지금도 지역 관광의 핵심 자산이다. 왕릉 하나가 도시 브랜드가 되고, 역사 교육장이 되고, 경제 자원이 되기도 한다.

최근 국가유산청 궁능유적본부는 조선왕릉 숲길 9개 구간을 시민들에게 개방했다. 6월30일까지다. 구리 동구릉, 남양주 광릉과 사릉, 서울 태릉·강릉·의릉, 파주 장릉과 삼릉, 화성 융릉과 건릉, 여주 영릉까지 이어지는 총 19.59km 숲길이다. 이는 시민들이 왕릉 숲을 직접 걸으며 “왕조의 시간”을 몸으로 체험하게 하는 살아 있는 역사 교육에 가깝다.

왕릉은 박제된 유적이 아니다. 지금도 사람들의 발걸음과 함께 호흡하는 대한민국의 현재형 역사 공간이다. 경주 왕릉의 봉분 위를 스치는 바람과, 영월 장릉 숲길의 적막함, 봉하마을 추모객들의 발걸음은 결국 모두 같은 질문으로 이어진다. “이 나라의 권력은 어디서 시작됐고, 어디로 흘러갔는가”라는 질문이다.

왕릉은 살아 있는 국가 기억의 좌표다. 어느 왕조가 어디에서 시작됐고, 어떻게 번성했으며, 어디에서 몰락했는지를 조용히 말해주는 거대한 시간의 지도다.
 

<skkim596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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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독해진 송영길 역할론

더 독해진 송영길 역할론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의원이 목소리를 키우고 있다. 이미 명심(이재명 대통령의 의중)은 김민석 전 국무총리에게 쏠렸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지만 그는 누구보다도 ‘정청래 고립 작전’에 힘을 쏟고 있다. 친정청래계의 십자포화를 견디면서까지 존재감을 키우는 그의 의도는 무엇일까? 오는 8월 치러지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전당대회가 다가올수록 당의 내홍도 거세지는 분위기다. 지난달 대표직 사퇴 이후 사실상 연임을 선언한 정청래 전 대표는 ‘민주당 전통성’을 부각시키며 지지층 결집에 나섰다. ‘노사모(노무현 전 대통령을 사랑하는 모임)’ 출신인 점 등을 강조하면서 친문(친 문재인) 진영의 표심을 흡수하려는 시도로 해석된다. 타깃은 한 명뿐 그런 정 전 대표를 향해 날을 세우는 건 또다른 후보군인 송영길 의원이다. 송 의원은 초반부터 매섭게 정 전 대표를 몰아세우며 그의 적통성 행보를 차단하고 나섰다. 송 의원은 KBS 라디오 인터뷰에서 “정 전 대표가 친노(친 노무현)·친문 등 정체성을 부각한다”는 진행자의 말에 “그는 완전히 노무현 대통령과 등을 져서 장례식에도 참석하지 못했다”며 “다른 분이면 몰라도 정 전 대표는 (친노의) 적통성을 따질 수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 전 대표는 2002년 노사모를 기반으로 한 인터넷 정당 ‘정정당당 추진위원회’을 꾸리면서 정치에 입문했지만, 2007년 노무현정부와 대립각을 세운 열린우리당 정동영 당시 의장(현 통일부 장관)과 더 가깝다는 평이 나오면서 적통성을 의심받고 있는 것이다. 그러자 정 전 대표는 “이렇게까지 하느냐. 100% 허위 사실”이라며 불쾌감을 숨기지 않았고, 송 의원은 “당일 정 전 대표를 본 기억이 없어서 (노 전 대통령) 장례식에도 참석도 못했다는 말을 했다”며 사과의 뜻을 건넸다. 송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제 발언의 요체는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 앞에 우리는 모두 지못미(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라는 사실이다. 다시 이런 비극을 재현해서는 안 된다”면서도 “노 전 대통령께서 한미 FTA를 추진할 때 민주당 대부분 의원이 격렬하게 반대했다. 그 선봉에 (당시) 정청래 의원이 있었다”며 또다른 논란을 꺼내 들었다. 이는 친청(친 정청래)계와 친명(친 이재명)계 간의 계파 대리전으로 번졌다. 민주당 최민희 의원은 “이제는 한미 FTA 찬반까지 끌어와 당 대표 경선을 혼란스럽게 한다”며 “이런 편파적 파묘 안 하시면 안 되느냐”고 지적했다. 이어 “갈등은 필연이지만 팩트로 논쟁하자”며 “적통 논쟁도 하지 말자. 지금은 AI시대”라고 말했다. “네가 친노?” 20년 전 사건까지 파묘 거세게 몰아치는 ‘정청래 고립 작전’ 최 의원은 송 의원의 ‘사당화’ 주장에도 반박했다. 앞서 송 의원은 “대통령과 손발을 맞추려면 할 일이 많은데 우리 민주당은 운동장을 너무 좁게 쓰고 있다. 정 전 대표 측근 아니면 당무에서 거의 배제되고 최고위원도 자기들끼리만 한다”며 사당화를 도마 위로 올렸다. 이에 대해 최 의원은 “송 의원이 정 전 대표를 비난하면 기다렸다는 듯 재래식 언론이 줄줄이 보도한다. 민주당이 극복한 ‘문모닝(하루를 문 대통령 비판으로 시작한다)’의 악몽이 되살아나려 하는데 막을 사람이 바로 송 의원”이라고 주장했다. 논란의 한가운데에 선 정 전 대표는 “소모적 적통 논쟁을 하지 말자”며 싸움을 그만둘 것을 제안했다. 그는 “저는 제 입으로 적통의 적자도 꺼낸 적이 없고, 그럴 생각도 없다. 위대한 대통령 누구의 적통이라고 주장한 적도 없다”고 주장했다. 정 전 대표는 “저는 김대중 대통령을 존경했고, 노무현 대통령을 사랑했으며 문재인 대통령을 좋아했다”며 “이재명 대통령과는 동지이자 전우로 윤석열 검찰독재정권의 폭압을 함께 뚫었다. 12·3 불법 비상계엄 내란의 밤 때는 목숨 걸고 국회 담장을 넘었다”고 주장했다. 이어 “(이렇게 말한 것이) 뭐가 문제가 되냐”면서 “제 입으로 말하지도 않은 것을 상상하고 비틀어서 ‘적통이네 아니네’ 하는 언론의 프레임에 맞장구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이달 초를 기점으로 민주당의 분위기가 한층 누그러졌다는 평이 나온다. 이 대통령과 문재인 전 대통령이 오찬 회동을 하며 지지자 간의 갈등 봉합을 시도했고, 보안수사권 폐지 역시 정부가 먼저 치고 나오면서 논란을 잠재웠다. 퇴로까지 끊었다 정 전 대표의 전당대회 필살기가 사라졌다. 여기에 친문 의원들조차 “하늘에 계신 분들이 (정 전 대표의 적통성을) 인정하겠나” 등 표현으로 거리를 두면서 고립 직전에 놓였다. 정 전 대표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면서 송 의원의 여론전도 박차를 가하는 모양새다. 송 의원은 정 전 대표에게 힘을 싣는 여의도 밖 스피커와도 각을 세우고 있다. ‘ABC론’ ‘증축·재건축론’ 등을 주장한 유시민 작가를 향해 “간신은 주군 옆에서 권력을 독점해 똑똑하고 새로운 사람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차단한다”고 지적했다. 앞서 유 작가는 “이 대통령이 대통령이 되는 과정에서 열렬히 지켜주고 응원했던 사람들이 원했던 것은 증축이었는데, 대통령은 재건축을 하려고 했던 것 같다. 대통령의 자신감이 지나쳤던 것 아닌가”라고 주장했다. 민주 진영 코어 지지층이 바란 것은 중도·보수로의 ‘증축’이지만 이 대통령은 원주민(코어 지지층)과 상의 없이 ‘재건축’에 나서 이들이 이탈하고 있다는 증축·재건축론을 제기한 것이다. 이에 송 전 대표는 YTN <장성철의 뉴스명당>에 출연해 “충신은 자기 주군의 성공을 위해서 더 똑똑한 사람, 새로운 사람을 계속 영입한다”며 유 작가의 주장을 반박했다. 연일 송 의원의 견제가 이어지고 있지만 강성 지지층의 두터운 지지를 받는 정 전 대표가 쉽게 꺾이지 않을 것이란 평가가 지배적이다. 따라서 김민석 전 총리와 송 의원 둘 중 누구든 결선에 진출해 ‘반 정청래’ 전선을 꾸리는 것이 1차 목표라는 설명에 힘이 실린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현 상황에 대해 “지금으로서는 송 의원은 당 대표를 하겠다는 열망보다 정 전 대표를 막겠다는 열망이 더 강해 보인다”고 봤다. 이처럼 정치권에서는 송 의원을 개별 후보가 아닌 김 총리의 페이스메이커로 보는 분위기다. 명심을 등에 업은 김 총리가 거칠게 나올 경우 국정 운영에 차질이 생길 것이란 우려가 나오는 만큼 상대적으로 리스크가 적은 송 의원이 ‘정청래 저격수’ 역할을 자처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오래전 큰 그림 송 의원의 의중과 상관없이 두 사람의 단일화가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이번 전당대회서 정 전 대표에게 유리한 것으로 알려진 1인1표제가 적용되는 만큼 김 전 총리와 송 의원이 손을 잡는 것이 안전하다는 이유에서다. ‘김민석+송영길 대 정청래’ 구도로 선거를 치른다면 압승도 가능하다는 판단이 깔린 것으로 해석된다. 정치권에서는 전당대회에 출마한 송 의원이 가장 주목을 받는 시점에 김 전 총리와의 단일화를 선언한 후 사퇴하는 시나리오도 점치고 있다. 자신의 지지층 결집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 김 전 총리에게 힘을 실어준 뒤 물러서는 방식으로, 이럴 경우 확실한 1 대 1 구도가 만들어지게 된다. 정치권에서는 송 의원이 전당대회를 통해 체급을 키운 뒤 청와대에 외교부 장관 등 자신이 희망하던 자리를 요구하지 않겠냐는 해석도 나온다. 국회 입성 이후 송 의원의 외교부 장관 입각설 등이 꾸준히 나오는 것 역시 이 같은 해석을 뒷받침한다. 그동안 송 의원은 자칭타칭 ‘외교 전문가’로 이름을 알려왔다. 그는 문재인정부 당시 러시아 특사를 지냈으며 대통령 직속 북방경제협력위원회 위원장과 민주당 동북아평화협력특별위원회 초기 위원장을 지냈다. 21대 국회 전반기에는 외교통일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꾸준히 외교·통일 정책 비전을 밝혀왔다. 지난 2월 복당을 앞둔 때에는 향후 외교 분야에서 역할을 맡고 싶다는 의지를 피력하기도 했다. 송 의원은 부산 벡스코에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종결과 북극 항로의 미래’를 주제로 열린 민주당 부산시당 주최 특강에서 “러시아와 미국 등 외교 현안에서 역할을 감당하겠다”고 밝혔다. 이날 송 의원은 러시아와의 협력 필요성을 강조하면서도 “현재 한국은 러시아보다 우크라이나에 더 가까운 입장”이라며 “전쟁 중이라는 특수성이 있지만 아쉬운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북극 항로를 열기 위해서는 실용주의 외교가 필요하다”며 이정부의 실용주의 노선과 궤를 같이 했다. 그는 최근까지도 활발한 외교 행보를 보였다. 지난달 24일 조정식 국회의장 특사 자격으로 미국 출국길에 올라 전방위 외교 활동에 나서기도 했다. 송 전 의원은 미국 워싱턴에서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관계자와 미 의회 지도부와 연쇄 면담을 갖고, 북핵 문제와 경제 제재 예외 조치 등 한미 간 주요 현안을 논의한 것으로 전해진다. “복당 후 역할은…” 마음은 다른 곳에? ‘미주민주참여포럼(KAPAC)’이 워싱턴DC의 한 호텔에서 개최한 콘퍼런스에서 송 의원이 이 대통령의 서면 축사를 대독에 눈길을 끌기도 했다. 이에 국민의힘 신지호 전 의원은 송 의원이 “양손에 떡을 다 쥘 수 있는 상황이 됐다”고 평가했다. 그는 채널A 라디오쇼 <정치시그널>에 출연해 이같이 주장하며 “누군가 송 의원에게 ‘너 외교부 장관 할래, 당 대표 할래?’라고 묻는다면 바보가 아닌 이상 당 대표라고 답한다. 이번에 당 대표가 되면 공천권을 쥘 수 있기 때문”이라며 “(선거를) 하다가 여의치 않을 경우 외교부 장관으로 가는 것이고, 지금의 이런 것들이 또 외교부 장관으로 가기 위한 과정이 될 수 있다. 지금 양쪽 접근을 다 하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유리한 지점에 서 있는 만큼 송 의원의 당권 레이스 완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2021년 치러진 전당대회서 당선된 경험이 있는 만큼 이미 민주당에 조직 기반이 있다는 점에서다. 최근에는 경남 지역 시민사회단체와 당원 등 100여명이 모여 ‘8·17 전당대회, 응답하라 송영길!’이라는 슬로건과 함께 송 의원의 출마를 촉구하기도 했다. 이들은 “지금 대한민국은 대내외적으로 복합적인 위기와 갈등을 동시에 마주하고 있다”며 “이런 시대일수록 국정을 안정적으로 뒷받침하고 당을 하나로 묶어낼 검증된 지도력이 절실하다. 송영길 의원은 ‘이재명 국민주권정부’의 성공적인 국정 운영을 가장 안정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정치적 경험과 국가 운영 능력을 갖춘 인물”이라며 평가했다. 친명 좌장으로 불리는 민주당 김영진 의원은 8월 전당대회와 관련해 “제가 아는 송영길 의원은 (김 전 총리를 위한) 페이스메이커로 나가지는 않을 것”이라고 봤다. 그는 한 라디오를 통해 “누구든지 1등을 하기 위해서 나가고, 만약에 결선투표로 간다면 1등, 2등 해서 결선에 가서 이기겠다는 생각일 것”이라며 “송 의원이 누구를 위해서 자기가 페이스메이커로 나간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양손에 쥔 꽃놀이패 송 의원 역시 본인이 김 전 총리의 페이스메이커 역할을 자처하고 있다는 분석에 대해 “후보자들은 일종의 면접시험을 보고 있는 것이고 인사권자인 당원들께서 판단하실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이어 “결선투표 제도가 없다면 단일화 논란이 일어날 수 있지만 전당대회는 제도적으로 결선투표제가 있다”며 완주 가능성을 부정하지 않았다. 만일 송 의원이 전당대회를 완주한다면 정 전 대표와 청와대라는 양강 구도에 변수가 된다. 그의 선택에 따라 이번 전당대회 판세가 갈릴 것이란 전망이 나오면서 그가 페이스메이커가 아닌 ‘게임 체인저’로 바뀔지 이목이 쏠린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여의도 복귀 김민석, 전대 신호탄 김민석 전 국무총리가 당권 경쟁자인 정청래 전 대표를 겨냥해 “지금까지 했던 방식으로 굳이 (대표를) 두 번 할 필요나 필연성은 지금 발견하기 어렵다”고 직격했다. 총리직에서 퇴임해 여의도에 복귀하자마자 이같이 밝힌 김 전 총리는 유튜브 채널 ‘오마이TV’가 공개한 영상에서 “이제는 정청래 전 대표와 다른 색깔, 역량, 스타일, 장점을 가진 리더십이 필요한 때”라고 주장했다. 이어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와 지방선거로 (정부 출범 후) 최초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당의 역할 폭과 숙제 크기가 더 넓고 커지고 강해졌다. 이제 당이 더 본격적으로 움직여야 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당이 어떻게 가야 하나, 무엇을 해야 하나에 대한 제 나름의 생각이 있기 때문에 그것을 최대한 반영하고 싶다”며 “대한민국 역사의 황금시대 도래, 그 첫 장을 이재명정부가 열고 있다고 보고 그것을 실제로 만들어내는 일에 모든 걸 다 해야 한다”고도 강조했다. 올해 초 정 전 대표가 시도했다가 무산된 조국혁신당과의 합당 문제도 꺼내들었다. 김 전 총리는 “그것(합당)을 풀어가는 데 문제 제기와 과정이 잘못돼서 일을 그르쳤다고 본다”며 “같은 세력은 통합하고 다르면 연대하고, 통합과 연대와 확장이 반드시 필요하다. 통합을 할 것이냐 연대를 할 것이냐의 문제에 대해서는 혁신당이 스스로 명확하게 판단하고 (입장을) 드러내는 것이 좋다”고 제언했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