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일 경기 여주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지방선거 지원 유세 현장에서 정청래 대표는 스타벅스코리아의 ‘탱크데이’ 이벤트 논란과 관련해 강경 발언을 쏟아냈다.
이날 정 대표는 “탱크로 시민들을 무자비하게 학살하던 장면을 어떻게 커피 마케팅에 사용할 수 있느냐”고 비판했고, 민주당 후보들에게 사실상 스타벅스 출입 자제 메시지까지 던졌다. 이어 “독일처럼 5·18을 조롱하거나 폄훼하는 것에 대해 더 강력한 처벌을 할 수 있는 법을 추진하겠다”고도 밝혔다.
같은 날 국회에서 열린 국민의힘 중앙당 선대위 회의에서 장동혁 대표도 민주당과 이재명정부를 향해 강한 공세를 이어갔다. 장 대표는 “민주당 후보들의 도덕성이 연일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며 “이번 지방선거는 뿌리까지 썩은 민주당을 퇴출시키는 선거”라고 주장했다. 이어 “끝까지 싸우겠다” “대한민국을 지켜내겠다”는 취지의 발언으로 강성 지지층 결집에도 나섰다.
최근 국민의힘 역시 타협과 중재보다는 전선 구축과 정면 돌파에 가까운 정치 스타일을 보이고 있다.
그래서 필자는 요즘 한국 정치가 두 상징 사이에서 움직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민주당에는 포청천을 패러디한 ‘정청천’이 있고, 국민의힘에는 청동검을 연상시키는 ‘장동검’이 있다. 한쪽은 법과 처벌의 정치로 사회를 움직이려 하고, 다른 한쪽은 긴 칼처럼 돌파와 전투의 정치로 맞선다. 그리고 지금 한국 정치는 그 두 상징 사이에 점점 갇혀가고 있다.
정치인의 문제 제기 자체는 가능하다. 역사적 상처를 존중하자는 취지 역시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최근 정치권 흐름을 보면 어떤 사건이 터질 때마다 거의 반사적으로 등장하는 장면이 있다. “법 만들겠다” “처벌 강화하겠다” “금지하겠다” “규제하겠다”는 선언이다. 동시에 다른 한편에서는 “끝까지 싸우겠다” “심판하겠다” “전쟁이다”라는 강경 언어도 점점 거칠어지고 있다.
최근 민주당 정치에서는 사회적 논란이 발생하면 토론보다 입법이 먼저 등장하고, 설득보다 처벌이 앞세워지는 흐름이 반복되고 있다. 온라인 혐오 표현 논란이 벌어질 때마다 “혐오 표현 처벌법” 이야기가 등장했고, 정치인 가짜 뉴스 논란이 벌어질 때도 표현의 자유와 민주주의 원칙에 대한 고민보다 “허위 정보 처벌 확대” 경쟁이 먼저 시작됐다.
사건이 생기면 원인 분석보다 입법 카드부터 꺼내는 정치가 이제는 거의 자동반응처럼 굳어지고 있는 셈이다.
반대로 국민의힘은 중재보다 투쟁과 결집의 언어가 더욱 강해지고 있다. 거의 모든 현안이 “체제 전쟁” 수준으로 격상되고, 정치적 갈등은 타협의 대상이 아니라 반드시 이겨야 할 전투처럼 묘사된다. 특히 SNS 정치가 강화될수록 정치권의 반응 속도 역시 점점 더 과격해지고 있다.
여론을 설득하고 조정하기보다 즉각적인 강경 발언으로 지지층 감정을 자극하는 방식이 정치의 새로운 공식처럼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정청래 대표는 입법 우선의 흐름을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정치인 중 한 명이다. 그래서 필자는 그를 ‘정청천’이라고 부르고 싶다. 과거 포청천이 부패 권력을 단죄하는 상징이었다면, 지금의 정청천은 사회 갈등을 법과 처벌로 해결하려는 현대 정치의 상징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정치가 설득과 조정의 기술이 아니라, 법안 발의와 처벌 조항 추가 경쟁으로 변해가고 있다는 풍자이기도 하다.
반대로 장동혁 대표를 두고는 필자가 ‘장동검’이라는 표현을 붙이고 싶다. 과거 청동검이 전투와 정복의 시대를 상징하는 무기였다면, 지금의 장동검은 말 그대로 ‘동으로 만든 긴 칼’처럼 느껴진다. 곧게 밀어붙이는 정치, 타협과 조정보다 돌파와 공격을 앞세우는 강성 보수 정치의 상징처럼 보인다는 뜻이다.
칼은 원래 적을 향해 휘두르는 무기다. 그러나 정치의 칼이 길어질수록 사회의 중간지대는 점점 사라진다.
정청천이 법과 처벌의 정치라면, 장동검은 칼끝과 전투의 정치에 더 가까운 셈이다. 문제는 양쪽 모두 결국 정치의 본질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원래 정치는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설득하고 타협하며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그러나 지금 정치권은 복잡한 사회문제를 견디고 조정하기보다, 법과 처벌 또는 전투와 동원 방식으로 빠르게 정리하려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결국 정치는 점점 ‘조정’보다 ‘통제’와 ‘전투’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게 문제다. 갈등을 흡수하고 완충해야 할 정치가 오히려 사회적 긴장을 확대시키는 방향으로 움직인다는 지적도 그래서 나온다. 사회를 유연하게 이어줘야 할 정치가 오히려 사회를 더 경직시키고 있다는 의미다. 최근 국회를 보면 마치 “입법 속도 경쟁”과 “강경 발언 경쟁”이 동시에 벌어지는 모습까지 나타난다.
물론 법은 필요하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법은 최소한의 질서를 유지하는 핵심 장치다. 특히 역사 왜곡이나 민주주의 파괴 행위에 대해 일정한 사회적 기준을 세우자는 주장 역시 충분히 논의할 수 있다. 독일의 홀로코스트 처벌법도 단순한 검열이 아니라, 나치 범죄에 대한 역사적 반성과 민주주의 방어라는 맥락 속에서 만들어졌다.
따라서 5·18 민주화운동 왜곡 문제 역시 가볍게 볼 사안은 아니다. 대한민국 민주주의 역사에서 5·18이 가지는 상징성과 희생의 무게를 생각하면 사회적 경각심을 요구하는 목소리 역시 충분히 나올 수 있다. 문제는 그 다음 단계다. 어디까지를 사회적 비판과 토론으로 해결하고, 어디부터 국가 처벌 영역으로 가져갈 것인가의 경계는 매우 신중해야 한다.
민주주의는 불쾌한 표현까지 일정 부분 견디는 체제이기도 하다. 표현의 자유는 듣기 좋은 말만 보호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만약 정치권이 여론이 분노할 때마다 곧바로 처벌 법안을 만들기 시작하면, 결국 사회는 점점 더 “말하기 어려운 공간”으로 변할 가능성이 커진다.
반대로 정치권이 모든 문제를 전쟁 프레임으로 몰아가기 시작해도 사회는 점점 더 극단적 진영 대결 속으로 빨려 들어갈 가능성이 커진다.
성숙한 민주주의 국가일수록 국가 권력이 표현 영역에 개입하는 문제에 대해 매우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인다. 동시에 정치 지도자들의 언어 역시 갈등을 증폭시키지 않도록 절제하려 노력한다. 표현의 자유는 때로 사회를 불편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그 불편함 자체를 견디는 힘이 민주주의의 본질이라는 시각도 존재한다.
모든 갈등을 처벌이나 전투로 해결하려는 순간 민주주의는 서서히 숨 막히는 체제로 변할 수 있다.
특히 정치권이 특정 기업이나 브랜드를 향해 사실상의 정치적 불매 분위기를 조성하는 방식도 조심스럽게 봐야 한다. 스타벅스의 이벤트가 부적절했다면 기업은 사과하고 수정하면 된다. 소비자들이 자발적으로 판단할 문제이기도 하다.
그런데 정치권이 직접 ‘출입 자제령’ 수준의 메시지를 던지기 시작하면 기업들은 점점 정치 눈치를 보게 된다. 기업이 정치권의 반응을 두려워하기 시작하는 순간, 시장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 역시 함께 위축될 가능성이 커진다.
민주주의는 원래 불편한 체제다. 듣기 싫은 말도 나오고, 황당한 주장도 등장한다. 그러나 민주주의는 바로 그것을 토론과 반박, 사회적 비판으로 해결하는 시스템이다. 만약 모든 문제를 입법과 처벌로 해결하려 들기 시작하면 정치는 점점 행정화되고 사법화된다.
반대로 모든 문제를 전쟁과 투쟁으로 해결하려 들면 민주주의는 끝없는 진영 충돌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민주주의는 상대를 침묵시키는 체제가 아니라, 끝까지 말하게 두는 체제이기도 하다.
과거 포청천은 백성들이 부패한 권력을 심판해주길 바라며 열광했던 상징이었다. 청동검 역시 혼란의 시대를 돌파하기 위한 힘과 전투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민주주의 시대에 필요한 것은 “더 강한 포청천”도, “더 날카로운 청동검”도 아닐지 모른다.
지금 필요한 것은 갈등을 견디고, 다른 생각을 설득하며, 사회를 중간에서 연결할 수 있는 정치 그 자체인지도 모른다.
21일부터 13일간의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됐다. 이제 여야 지도부는 물론 후보들도 말 조심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