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정치는 늘 ‘권력을 잡는 기술’에는 강했지만 ‘넘기는 철학’에는 약했다. 정권교체가 이뤄질 때마다 국민 통합보다 보복 프레임이 먼저 등장했고, 정권교체는 국가 시스템의 연속이 아니라 전쟁의 승패처럼 소비됐다. 상대를 제거해야만 새로운 시대가 열린다고 믿는 정치 문화 속에서 우리는 점점 더 “정권은 바뀌어도 국가는 이어져야 한다”는 가장 기본적인 원칙을 잃어가고 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천 년 전 신라의 마지막 왕 경순왕을 다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역사는 경순왕을 흔히 ‘나라를 바친 왕’으로 기억한다. 그러나 조금만 깊게 들여다보면 전혀 다른 장면이 보인다. 그는 무너지는 왕조의 마지막 왕이었지만, 동시에 백성과 문화, 국가 시스템의 연속성을 지키기 위해 결단을 내린 통치자였다. 만약 그가 끝까지 항전했다면 신라는 내전과 지방 호족의 학살, 문화재 파괴, 민생 붕괴 속으로 빠져들었을 가능성이 크다. 경순왕은 왕좌를 포기했지만, 민족의 시간을 끊어버리지는 않았다.
역사는 늘
승자의 언어
마지막 왕은 왜 늘 패배자로 기록되는가= 역사는 늘 승자의 언어로 쓰인다. 새로운 왕조는 자신의 정통성을 강화하기 위해 이전 시대를 무질서하거나 타락한 체제로 규정한다. 조선은 고려 말을 부패한 권력으로 설명했고, 고려 역시 신라 후기를 쇠락과 혼란의 시대로 묘사했다. 그러다 보니 마지막 왕들은 대개 ‘망국의 책임자’로 남는다.
그러나 국가 전환기의 진짜 핵심은 “누가 권력을 잡았는가”보다 “국가가 얼마나 덜 무너졌는가”에 있다.
왕조가 바뀌는 순간 가장 먼저 고통받는 존재는 백성이다. 집권 체계가 흔들리고, 이념이 충돌하고, 지방 세력이 들고일어나며, 수많은 사람들이 정치적 복수의 희생양이 된다. 역사 속 대부분 내전은 승자의 탄생보다 패자의 저항 과정에서 더 많은 피와 혼란을 남겼다. 그래서 마지막 순간 지도자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는 단순한 개인의 결단이 아니라 공동체 전체의 운명을 좌우하는 문제가 된다.
경순왕의 선택은 바로 그 희생을 줄이는 방향이었다. 그는 이미 신라가 회복 불가능한 수준까지 약화됐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지방 호족은 중앙 통제를 따르지 않았고, 후백제와 고려는 급속도로 세력을 키우고 있었다. 왕실 권위는 무너졌고 경제력도 붕괴했다. 이 상황에서 끝까지 싸우겠다는 결정은 왕의 자존심일 수는 있어도 국가의 미래는 될 수 없었다.
만약 경순왕이 끝까지 싸웠다면= 혹자는 “끝까지 싸웠어야 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역사는 감정이 아니라 구조로 봐야 한다. 당시 신라는 이미 통일신라 전성기의 국가가 아니었다. 지방은 사실상 독립 상태였고 중앙군은 약화됐으며, 왕실 내부 권력투쟁도 심각했다. 이런 상황에서 장기전이 벌어졌다면 가장 먼저 발생했을 것은 지방 단위의 대규모 약탈이었다.
후삼국 전쟁은 단순한 왕들의 싸움이 아니었다. 각 지역 호족들이 살아남기 위해 연합과 배신을 반복하던 시대였다. 만약 경순왕이 끝까지 항전했다면 신라 영토는 수많은 군벌 세력의 전쟁터로 변했을 것이다. 경주 일대는 반복적으로 약탈당했을 것이고, 불교 문화재와 왕실 기록 상당수도 사라졌을 가능성이 크다. 지금 우리가 보는 신라 문화유산 상당수는 존재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신·고·조 정권교체의 품격
마지막 왕들이 남긴 교훈들
더 큰 문제는 민생이었다. 전쟁이 길어질수록 백성은 세금과 징집, 약탈에 동시에 시달린다. 고려 태조 왕건 역시 후삼국 통일 과정에서 단순한 군사력보다 안정을 강조했다. 그는 지방 호족을 무조건 제거하기보다 포섭했고, 신라 왕실 역시 완전히 말살하지 않았다. 왕건도 알고 있었던 것이다. 나라를 얻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은 무너진 나라를 다시 운영하는 일이라는 사실을.
경순왕은 패배자가 아니라 ‘연착륙 설계자’였다= 경순왕은 고려에 항복한 뒤 단순히 물러난 것이 아니었다. 그는 신라 왕족과 귀족 체계 상당 부분을 고려 체제로 편입시키는 역할을 했다. 고려는 신라의 행정 경험과 문화 자산을 흡수했고, 신라 왕족은 고려 귀족으로 재편됐다. 특히 왕건 역시 신라 귀족과의 충돌보다 통합을 선택하면서 후삼국 통일 이후의 대규모 혼란과 보복 가능성을 줄이려 했다.
특히 중요한 것은 문화의 연속성이었다. 고려는 신라의 불교 문화를 계승했고, 행정과 지방 운영에서도 상당 부분 신라 시스템을 흡수했다. 만약 신라가 완전히 붕괴하며 피의 숙청이 벌어졌다면 고려 역시 국가 운영 기반을 빠르게 확보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왕건은 무에서 국가를 만든 것이 아니라, 신라라는 오래된 시스템을 흡수하며 새로운 나라를 만든 것이다.
이 과정에서 경순왕은 상징적 역할을 했다. 그는 고려 왕실과 혼인 관계를 맺었고, 신라 왕족이 고려 체제 안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을 열었다. 이는 단순한 개인 생존 전략이 아니었다. 왕조는 끝났지만 문명은 이어져야 한다는 판단이었다. 오늘날 표현으로 하면 ‘정권교체 이후 국가 시스템 연속성 확보’에 가까운 선택이었다.
고려의 마지막 왕은 왜 다른 길을 걸었나= 고려 말의 공양왕은 실질적 권력을 거의 상실한 상태에서 조선 건국을 맞이했다. 이미 군권은 이성계 세력으로 넘어갔고, 신흥 사대부는 새로운 국가 체제를 준비하고 있었다. 고려 역시 권문세족 중심 구조와 내부 부패로 국가 통제력이 크게 흔들리던 상태였다. 왜구 침입과 홍건적의 침공까지 겹치며 민생 기반도 급격히 약해졌다.
하지만 고려 말은 신라 말과 다른 특징이 있었다. 불교 귀족 체제와 신흥 성리학 세력의 충돌이 매우 강했다는 점이다. 조선은 단순한 왕조 교체가 아니라 이념 혁명에 가까웠다. 고려의 불교 중심 질서를 해체하고 성리학 기반 국가를 세우려 했다. 이 과정에서 숙청과 정치 보복도 뒤따랐고, 수많은 고려 충신들이 희생됐다.
충돌보다
통합 선택
대표적으로 정몽주의 죽음은 단순 암살이 아니라 체제 교체 선언이었다. 조선은 고려를 부분 계승하기보다 상당 부분 부정하며 출발했다. 특히 불교 중심 질서를 억제하고 성리학 중심 국가 체제를 세우면서 권력 구조와 지배 이념 자체를 바꿨다. 그래서 고려 말은 신라 말보다 훨씬 강한 정치적 단절의 시대였다. 경순왕식 연착륙보다 혁명과 개혁의 방식이 더 강하게 작동한 것이다.
조선의 개혁은 왜 성공했는가= 그렇다고 조선의 개혁이 모두 잘못됐다는 뜻은 아니다. 고려 말은 이미 권문세족 중심 구조가 심각하게 굳어져 있었다. 토지는 집중됐고 백성 부담은 커졌으며 국가 재정은 약화됐다. 불교 역시 지나치게 권력화되면서 민심과 멀어졌다는 비판을 받았다. 결국 새로운 체제가 필요했던 것도 사실이었다.
조선은 성리학을 중심으로 행정 시스템을 재편했고 과거제와 중앙집권 체계를 강화했다. 토지 개혁과 국가 질서 재정비도 추진했다. 특히 신진 사대부를 중심으로 새로운 관료 질서를 구축하며 국가 운영 효율성을 높였다. 이런 변화 덕분에 조선은 500년 가까운 장기 왕조로 이어질 수 있었다. 개혁 자체는 필요했다. 문제는 개혁 이후 얼마나 빠르게 통합을 이루느냐였다.
결국 국가는 승리만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패배한 세력까지 일정 부분 흡수해야 오래간다. 실제로 조선 역시 시간이 지나며 고려 유민과 지역 세력을 다시 포용했고, 이를 통해 국가 운영 기반을 안정화해 갔다. 혁명도 결국 마지막에는 통합으로 귀결돼야 국가가 살아남는다.
대한민국은 왜 정통성 논쟁이 반복되는가= 대한민국은 조선에서 곧바로 이어진 국가가 아니다. 대한제국 몰락과 일본 식민지 시대라는 거대한 단절을 거쳤다. 조선에서 자연스럽게 공화국으로 넘어간 것이 아니라 식민 지배와 해방, 분단과 전쟁을 거치며 국가가 재구성됐다. 바로 이 때문에 대한민국의 역사 정통성 논쟁은 지금까지도 반복된다.
특히 일본 식민지 시기는 국가 체계 자체를 강제로 해체한 시간이었다. 왕조가 스스로 권력을 넘긴 것도 아니었고 내부 혁명으로 체제가 바뀐 것도 아니었다. 외부 제국주의가 국가 주권 자체를 빼앗았다. 그래서 대한민국은 왕조 교체형 국가 전환과는 전혀 다른 복합적 정통성 구조를 갖게 됐다. 임시정부 법통 계승과 산업화·민주화 과정이 함께 얽히며 지금의 국가 정체성이 형성된 것이다.
이 때문에 우리 정치는 지금도 “누가 진짜 정통인가”를 반복해서 묻는다. 독립운동 정통성, 산업화 정통성, 민주화 정통성, 지역 정통성이 끊임없이 충돌한다. 문제는 이 갈등이 국가 연속성보다 진영 승부로 소비된다는 점이다. 그래서 정권교체 때마다 이전 정부를 ‘국가 운영 세력’보다 ‘청산 대상’처럼 바라보는 문화가 반복된다.
6공화국이 남긴 정권교체의 그림자= 1987년 민주화 이후 출범한 6공화국은 군사정권 시대를 넘어선 새로운 정치 체제였지만, 동시에 극단적 진영 대립이 본격화된 시대이기도 했다. 대통령은 바뀌었지만 정치권은 늘 상대를 “함께 운영할 경쟁자”보다 “반드시 무너뜨려야 할 적”처럼 바라봤다. 정권교체가 이뤄질 때마다 전임 정부 수사와 정치 보복 논란이 반복됐고, 반대로 권력을 잃은 세력은 새 정부 정통성을 흔드는 구조가 이어졌다.
누가 진짜
정통인가
(김대중·노무현)→(이명박·박근혜)→문재인→윤석열→이재명정부로 이어지는 정권교체 과정에서 한국 정치는 점점 “단절의 정치”에 가까워졌다. 전직 대통령이 구속되거나 수사를 받는 장면이 반복됐고, 거리 정치와 강성 지지층 충돌 역시 갈수록 격해졌다. 어느 정부든 자신들은 “정의를 바로 세운다”고 주장했지만 국민 입장에서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국가 전체가 흔들리는 듯한 피로감이 쌓여갔다.
특히 윤 대통령 탄핵 이후 이재명정부로 권력이 넘어왔지만 한국 정치는 여전히 과거와의 전쟁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모습이다. 새 정부 출범 이후에도 전 정부를 둘러싼 수사와 청산 논쟁은 이어지고 있고, 반대로 윤 전 대통령 역시 수감 상태에서 현 정부와 강하게 대립하는 흐름이 계속되고 있다. 정권은 교체됐지만 정치 갈등 구조 자체는 그대로인 셈이다.
승리보다 어려운 것은 통합= 국가는 선거에서 이긴 진영만의 것이 아니다. 패배한 세력 역시 같은 국민이고, 다음 시대를 함께 살아가야 할 공동체 구성원이다. 그런데 한국 정치는 오랫동안 승자독식 구조 속에서 움직여왔다. 권력을 잡으면 상대를 제거하려 하고, 권력을 잃으면 새 정부 정통성을 흔드는 일이 반복됐다. 그 결과 정권교체는 민주주의 축제가 아니라 정치 전쟁처럼 소비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오래가는 국가는 승리보다 통합 능력에서 나온다. 미국 역시 남북전쟁 이후 화해 과정을 거쳤고, 유럽 역시 수백 년 전쟁 끝에 통합 질서를 만들었다. 결국 국가가 성숙해진다는 것은 상대를 완전히 없애는 방향이 아니라, 갈등 속에서도 공동체를 유지하는 방향으로 발전한다는 뜻이다.
어쩌면 경순왕이 마지막 순간 고민했던 것도 바로 이것이었는지 모른다. 왕조는 무너질 수 있어도 백성과 공동체까지 함께 무너져서는 안 된다는 것. 그래서 그는 왕좌보다 국가의 연속성을 먼저 선택했다.
윤 전 대통령은 무엇을 내려놓아야 하나= 윤석열 전 대통령에게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더 강한 대결이 아니라, 무엇을 내려놓아야 하는지에 대한 결단일 수 있다. 정치는 결국 영원한 승자가 없는 구조다. 권력은 반드시 끝이 오고, 중요한 것은 마지막 순간 국가를 얼마나 덜 흔들리게 만드느냐다. 경순왕 역시 왕좌는 내려놓았지만 공동체 자체를 무너뜨리지는 않으려 했다.
특히 지금 필요한 것은 개인 정치의 복귀보다 보수 진영 전체의 미래를 먼저 고민하는 태도일 수 있다. 끝없는 과거 전쟁 속에 갇히면 보수 역시 미래 세대 확장보다 과거 방어에 머물 가능성이 크다. 역사 속 지도자의 품격은 끝까지 싸우는 데만 있는 것이 아니다. 때로는 다음 시대를 위해 무엇을 남길 것인가를 고민하는 데서 나온다.
‘권력 잡기’ 강하고
‘넘기는 철학’ 약해
지도자의 마지막 책임은 자신을 지키는 것보다 공동체를 덜 흔들리게 만드는 데 있을 수 있다. 윤 전 대통령 역시 언젠가는 역사 평가의 대상이 된다. 그때 중요한 것은 얼마나 강하게 싸웠느냐보다, 마지막 순간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를 얼마나 덜 흔들리게 했느냐일 가능성이 크다.
새 정부는 무엇을 배워야 하나= 새 정부가 들어설 때 가장 위험한 유혹은 ‘완전한 새 시대’를 선언하는 것이다. 물론 개혁은 필요하다. 부패를 바로 잡고 비효율을 개혁하며 국민이 요구하는 방향으로 국가 시스템을 바꾸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도 국가 운영의 연속성은 유지돼야 한다. 특히 안보·외교·산업 전략처럼 장기 축적이 필요한 분야는 정권 교체와 별개로 국가 자산처럼 관리할 필요가 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외교·산업·행정 시스템까지 전면 부정되면 국가 경쟁력은 약해진다. 미국과 중국 같은 강대국이 무서운 이유도, 대통령이 바뀌어도 국가 전략 자체는 쉽게 흔들리지 않기 때문이다. 반면 한국은 정권교체 때마다 정책 방향이 급격히 바뀌는 경우가 많았다. 정권이 달라질 때마다 이전 정부 정책을 유산이 아니라 청산 대상처럼 접근하는 정치 문화는 장기 국가 전략을 어렵게 만든다.
경순왕이 보여준 핵심은 바로 이것이다. “내 권력은 끝나더라도 국가 공동체는 이어져야 한다.” 이것은 단순한 왕의 항복이 아니라 국가 운영 철학이다. 자신의 시대가 끝나더라도 백성과 문화, 행정 체계의 연속성만큼은 지켜야 한다는 판단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지금 한국 정치에 가장 부족한 것도 어쩌면 바로 이 철학인지 모른다.
마지막 왕의 품격, 민주주의 지도자의 책임= 국가 지도자의 품격은 권력을 잡을 때보다 권력을 내려놓을 때 더 분명하게 드러난다. 마지막 순간까지 국민을 분열시키고 지지층만 바라보는 지도자는 결국 공동체 전체를 약하게 만든다.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끝없는 대결과 증오를 동원하는 정치는 순간적으로는 강해 보일 수 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국가 시스템 자체에 대한 국민 신뢰를 무너뜨린다.
필자는 경순왕이 ‘망국의 왕’이 아니라 가장 현실적이고 냉정한 선택을 한 통치자였다고 생각한다. 그는 이미 무너진 시대를 억지로 붙들기보다, 그 이후 백성과 공동체가 어떻게 살아남을지를 먼저 고민했다. 왕조의 자존심보다 백성의 생존과 나라의 연속성을 우선했던 것이다. 그것은 단순한 항복이나 비겁함이 아니라 시대 붕괴 앞에서 공동체를 끝까지 지키려 했던 마지막 책임감에 가까웠다.
한국도 이제는 배워야 한다. 정권교체를 전쟁처럼 소비하는 나라에서 벗어나야 한다. 대통령은 승리한 진영의 왕이 아니라, 다음 시대까지 국가를 이어야 하는 관리자여야 한다. 그리고 언젠가 권력을 내려놓는 순간에도 국민이 “그래도 국가는 지켜졌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바로 그것이 경순왕이 천 년 전 우리에게 남긴 마지막 정치적 유산인지 모른다.
최후의
책임감
왕조시대에는 혁명을 통해 국가가 교체됐다. 그래서 권력을 내려놓는 순간 왕조의 몰락과 숙청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지금 대한민국은 다르다. 국민 선택에 따라 정권교체가 이루어진다. 결국 민주주의 시대 지도자의 마지막 책임은 국민 선택 위에 국가의 연속성을 세우는 일인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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