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북구갑이 6·3 국회의원 재보궐선거 최대 격전지로 떠오르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하정우 후보, 국민의힘 박민식 후보, 무소속 한동훈 후보가 맞붙는 이 지역은 단순한 지역 선거를 넘어 차기 보수 진영 권력지형의 축소판처럼 움직이고 있다.
겉으로는 한 석의 국회의원 선거지만, 실제로는 “지방선거 이후 보수는 누가 이끌 것인가”를 두고 벌어지는 전초전이라는 해석이 많다. 그래서 정치권 시선은 선거 결과보다 오히려 박민식과 한동훈의 단일화 여부에 더 집중되고 있다.
현재 정가 분석을 종합하면 보수 진영 내부에서는 “단일화를 하지 않으면 어렵다”는 전망이 우세하다. 부산이 전통적 보수 강세 지역이라고는 하지만, 보수 표가 둘로 갈라질 경우 민주당 후보가 어부지리를 얻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최근 몇 년 사이 부산 민심은 예전처럼 일방적으로 움직이지 않았다. 총선과 지방선거에서 세대·지역별 표심 변화가 반복됐고, 중도층 이탈도 나타났다.
그런데 지금 상황은 더 복잡해졌다. 이미 지난 18일부터 재보궐선거 투표용지 인쇄가 순차적으로 시작됐기 때문이다. 선거법상 인쇄가 시작된 이후에는 후보자가 사퇴하거나 단일화하더라도 이름은 투표용지에서 삭제되지 않는다. 대신 투표소에 사퇴 안내문이나 공고문이 별도로 붙게 된다.
즉 과거처럼 ‘단일화=곧바로 표 결집’으로 이어지는 구조가 아니라는 뜻이다.
이 때문에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제 와서 단일화해도 효과가 크지 않다”는 회의론까지 나온다. 실제로 유권자 혼선 가능성도 있다. 사퇴한 후보 이름에 표가 들어갈 수도 있고, 일부 유권자는 단일화 사실 자체를 모르고 투표할 수도 있다. 물리적으로 보면 단일화 효과가 떨어지는 것은 분명한 현실이다.
그러나 필자는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더 단일화해야 한다고 본다.
만약 투표용지 인쇄 이전이었다면 단일화는 단순히 승리 전략 정도로 받아들여졌을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이제 단일화는 단순한 선거공학이 아니라 “누가 마지막까지 공동체를 위해 자기 정치를 접을 수 있느냐”를 보여주는 상징 행위가 된다.
효과가 줄어든 상황에서도 결단한다면, 그것은 계산보다 명분이 앞선 선택으로 읽힐 가능성이 크다.
지금 두 사람 모두 단일화를 강하게 거부하고 있다. 한동훈 입장에서는 설령 당선되지 않고 2등만 해도 의미가 있다. 무소속으로 일정 수준 이상의 득표를 기록하면 지방선거 이후 국민의힘 복귀 명분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차기 대선주자급 이미지를 유지하려면 ‘끝까지 완주한 정치인’이라는 서사가 오히려 도움이 될 수도 있다.
박민식 역시 단일화를 거부하고 끝까지 싸울 경우, 비록 패배하더라도 당내 친윤(친 윤석열)·장동혁 체제가 원하는 ‘한동훈 견제’ 역할을 했다는 정치적 평가를 받을 가능성이 있다. 특히 당 지도부 일각에서는 “선거 결과보다도 한동훈의 독자 세력화를 막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기류까지 읽히기 때문에, 박민식 입장에서는 완주 자체가 하나의 정치적 투자로 계산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즉 지금 북구갑은 겉으로는 민주당 대 보수의 싸움처럼 보이지만, 내부적으로는 ‘장동혁 보수 VS 한동훈 보수’의 미래 권력 경쟁이 동시에 진행되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단일화가 어려운 것이다. 둘 다 선거 뒤 자신의 정치적 생존 공간을 계산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필자는 지금 두 사람에게 더 큰 결단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개인의 다음 정치 일정이 아니라, 보수 진영 전체의 생존을 먼저 생각해야 할 시점이기 때문이다. 특히 투표용지 인쇄 이후 단일화는 실익보다 상징성이 더 커진다. “유불리 계산 끝에 억지로 손잡았다”가 아니라, “불리한 상황에서도 공동 책임을 선택했다”는 메시지가 되기 때문이다.
박민식과 한동훈 모두 검사 출신이다. 두 사람은 윤석열정부에서 각각 국가보훈부 장관과 법무부 장관을 맡으며 강한 메시지 정치로 존재감을 키웠다. 특히 둘 모두 “장관직을 걸겠다”는 표현을 공개적으로 사용한 공통점이 있다. 단순한 관료형 정치인이 아니라, 자신의 직을 걸고 정치적 신념을 관철하려 했던 스타일이었다.
이것이 지금의 보수 지지층이 두 사람에게 기대를 거는 이유이기도 하다.
박민식은 보훈부 장관 시절 두 차례 장관직을 걸겠다는 강경 발언으로 화제를 모았다. 그는 2022년 7월 백선엽 장군 친일 논란과 관련해 “백선엽 장군이 친일파가 아니라는 데 장관직을 걸겠다”고 말했다. 당시 그는 CBS 라디오 인터뷰에서 “최대 국난을 극복한 영웅을 친일 프레임으로 공격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주장하며 자신의 역사관을 강하게 드러냈다. 단순한 정책 설명이 아니라 정치 생명을 건 메시지였다.
같은 해 8월 광주 정율성 역사공원 논란 때도 “막지 못하면 장관직을 걸겠다”고 말했다. 그는 정율성을 “공산 세력의 사기를 북돋운 인물”이라고 규정하며 강하게 반대했고, 헌법소원까지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실제로 보훈부 차원의 법률 검토와 중앙정부 대응 가능성까지 언급했다.
여기에는 단순한 이념 논쟁을 넘어 “대한민국 정체성을 지키겠다”는 정치적 상징성이 담겨있었다.
한동훈 역시 마찬가지였다. 2022년 국회 법사위 국정감사에서 청담동 술자리 의혹이 제기되자 그는 “법무부 장관직을 포함해 앞으로 어떤 공직이라도 다 걸겠다. 의원님은 뭘 걸겠나”라고 맞받아쳤다. 당시 그는 자신에 대한 의혹을 “지라시 수준도 안 되는 이야기”라고 반박하며 강하게 대응했다.
특유의 직설 화법과 배수진 정치가 한동훈 정치 스타일의 상징처럼 된 사건이었다.
결국 박민식과 한동훈은 둘 다 “직을 거는 정치”를 해왔던 인물들이다. 그런데 지금 필자가 묻고 싶은 것은 “과거에는 장관직을 걸었다면, 이제는 무엇을 걸 것이냐?”다. 지금 두 사람 앞에 놓인 것은 국회의원 자리가 아니라 보수 정치 전체의 존립 문제다.
특히 윤정부는 이미 ‘검찰공화국’이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검찰 출신 인사들이 권력 핵심을 장악했다는 비판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검사 출신 두 장관이 정치적 계산 끝에 단일화에 실패해 보수 텃밭까지 내준다면, 국민은 그것을 단순한 선거 결과로 받아들이지 않을 수 있다.
“정권도 내주고 부산도 내준 사람들”이라는 낙인이 따라붙을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그 책임론은 두 사람 모두에게 오래 남게 될 것이다.
더구나 지금은 단일화 효과가 줄어든 상황이라는 점에서 오히려 책임론이 더 커질 수도 있다. 국민은 “이미 늦었다”고 말하면서도 동시에 “그래도 끝까지 뭉쳐보려 했는가”를 본다. 결과보다 태도를 본다는 뜻이다. 결국 이번 단일화는 몇 퍼센트 득표 계산보다 보수 정치가 아직 공동체 감각을 갖고 있는지 보여주는 시험대에 가까워졌다.
그래서 지금 필요한 것은 단순한 후보 단일화가 아니다. 필자는 두 사람이 ‘정치 생명 공동 책임 선언’까지 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이기기 위해 단일화하겠다 수준이 아니라, 보수가 패배하면 우리 둘 다 차기 공천·당권·대권 경쟁에서 한발 물러서겠다는 정도의 결단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래야 국민도 이 단일화를 개인 계산이 아닌 진짜 보수 재건 의지로 받아들일 수 있다.
왜냐하면 지금 국민이 가장 싫어하는 것은 패배 자체보다도 지는 줄 알면서도 자기 정치만 하는 모습이기 때문이다. 보수 지지층 역시 마찬가지다. 지금 보수층 내부에서도 누가 더 크냐보다 누가 더 희생할 수 있느냐를 보고 있다는 분석이 많다.
결국 이번 부산 북구갑은 단순한 선거가 아니라, 보수가 아직 공동체 감각을 갖고 있는 세력인지 시험받는 무대라는 의미다.
사실 한국 보수는 최근 몇 년 동안 끊임없이 ‘윤 어게인’이라는 과거 회귀 프레임에 갇혀 있었다. 그러나 필자는 이제 ‘보수 어게인’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특정 인물의 복귀가 아니라 보수 전체의 재건을 고민해야 할 시점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그 출발점은 아이러니하게도 경쟁자인 박민식과 한동훈의 결단에서 시작될 수 있다. 둘 중 누가 살아남느냐보다, 보수 자체가 살아남느냐가 더 중요해진 상황이기 때문이다.
정치는 결국 명분의 게임이다. 순간의 승패보다 어떤 선택을 했는가가 오래 기억된다. 과거 장관직을 걸었던 검사 출신 두 후보가 이제 더 큰 것을 걸어야 한다. 바로 자신들의 미래 권력 가능성이다. 특히 지금처럼 투표용지까지 인쇄된 뒤라면, 단일화는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책임의 선언에 가깝다. 그래서 더 어렵고, 그래서 더 정치적으로 의미가 크다.
만약 두 사람이 끝까지 각자 완주하다가 함께 무너진다면, 그것은 단순한 선거 패배가 아니다. 윤정부 이후 보수 재편 자체가 더 깊은 혼란 속으로 들어가는 신호가 될 수도 있다. 반대로 둘 중 한 사람이 먼저 결단하고 양보한다면, 그 사람은 당장은 한발 물러나는 것처럼 보여도 오히려 더 큰 정치적 명분을 얻게 될 가능성이 있다.
지금 부산 북구갑에서 필요한 것은 검사 특유의 승부욕이 아니다. 필요한 것은 공동체를 살리기 위한 전략적 희생이다. 투표용지 인쇄가 시작돼 단일화 효과가 예전 같지 않더라도,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더 단일화해야 한다. 결과를 장담할 수 없는데도 손을 잡는 모습에서 국민은 계산이 아니라 책임을 보기 때문이다.
장관직을 걸었던 두 후보라면, 이제는 자기 정치의 일부를 내려놓는 결단도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검찰 권력의 연장선에 선 정치인’이 아니라, 공동체를 위해 책임지는 진짜 정치인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 그리고 어쩌면 그것이 윤석열 이후 흔들린 보수를 다시 세우는 첫 장면이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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