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삼기의 시사펀치> 장관직 걸었던 박민식·한동훈, 이젠 정치 인생 걸어라

투표용지 인쇄 후라도 보수 재건 위한 단일화 필요

부산 북구갑이 6·3 국회의원 재보궐선거 최대 격전지로 떠오르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하정우 후보, 국민의힘 박민식 후보, 무소속 한동훈 후보가 맞붙는 이 지역은 단순한 지역 선거를 넘어 차기 보수 진영 권력지형의 축소판처럼 움직이고 있다.

겉으로는 한 석의 국회의원 선거지만, 실제로는 “지방선거 이후 보수는 누가 이끌 것인가”를 두고 벌어지는 전초전이라는 해석이 많다. 그래서 정치권 시선은 선거 결과보다 오히려 박민식과 한동훈의 단일화 여부에 더 집중되고 있다.

현재 정가 분석을 종합하면 보수 진영 내부에서는 “단일화를 하지 않으면 어렵다”는 전망이 우세하다. 부산이 전통적 보수 강세 지역이라고는 하지만, 보수 표가 둘로 갈라질 경우 민주당 후보가 어부지리를 얻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최근 몇 년 사이 부산 민심은 예전처럼 일방적으로 움직이지 않았다. 총선과 지방선거에서 세대·지역별 표심 변화가 반복됐고, 중도층 이탈도 나타났다.

그런데 지금 상황은 더 복잡해졌다. 이미 지난 18일부터 재보궐선거 투표용지 인쇄가 순차적으로 시작됐기 때문이다. 선거법상 인쇄가 시작된 이후에는 후보자가 사퇴하거나 단일화하더라도 이름은 투표용지에서 삭제되지 않는다. 대신 투표소에 사퇴 안내문이나 공고문이 별도로 붙게 된다.

즉 과거처럼 ‘단일화=곧바로 표 결집’으로 이어지는 구조가 아니라는 뜻이다.

이 때문에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제 와서 단일화해도 효과가 크지 않다”는 회의론까지 나온다. 실제로 유권자 혼선 가능성도 있다. 사퇴한 후보 이름에 표가 들어갈 수도 있고, 일부 유권자는 단일화 사실 자체를 모르고 투표할 수도 있다. 물리적으로 보면 단일화 효과가 떨어지는 것은 분명한 현실이다.

그러나 필자는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더 단일화해야 한다고 본다.

만약 투표용지 인쇄 이전이었다면 단일화는 단순히 승리 전략 정도로 받아들여졌을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이제 단일화는 단순한 선거공학이 아니라 “누가 마지막까지 공동체를 위해 자기 정치를 접을 수 있느냐”를 보여주는 상징 행위가 된다.

효과가 줄어든 상황에서도 결단한다면, 그것은 계산보다 명분이 앞선 선택으로 읽힐 가능성이 크다.

지금 두 사람 모두 단일화를 강하게 거부하고 있다. 한동훈 입장에서는 설령 당선되지 않고 2등만 해도 의미가 있다. 무소속으로 일정 수준 이상의 득표를 기록하면 지방선거 이후 국민의힘 복귀 명분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차기 대선주자급 이미지를 유지하려면 ‘끝까지 완주한 정치인’이라는 서사가 오히려 도움이 될 수도 있다.

박민식 역시 단일화를 거부하고 끝까지 싸울 경우, 비록 패배하더라도 당내 친윤(친 윤석열)·장동혁 체제가 원하는 ‘한동훈 견제’ 역할을 했다는 정치적 평가를 받을 가능성이 있다. 특히 당 지도부 일각에서는 “선거 결과보다도 한동훈의 독자 세력화를 막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기류까지 읽히기 때문에, 박민식 입장에서는 완주 자체가 하나의 정치적 투자로 계산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즉 지금 북구갑은 겉으로는 민주당 대 보수의 싸움처럼 보이지만, 내부적으로는 ‘장동혁 보수 VS 한동훈 보수’의 미래 권력 경쟁이 동시에 진행되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단일화가 어려운 것이다. 둘 다 선거 뒤 자신의 정치적 생존 공간을 계산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필자는 지금 두 사람에게 더 큰 결단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개인의 다음 정치 일정이 아니라, 보수 진영 전체의 생존을 먼저 생각해야 할 시점이기 때문이다. 특히 투표용지 인쇄 이후 단일화는 실익보다 상징성이 더 커진다. “유불리 계산 끝에 억지로 손잡았다”가 아니라, “불리한 상황에서도 공동 책임을 선택했다”는 메시지가 되기 때문이다.

박민식과 한동훈 모두 검사 출신이다. 두 사람은 윤석열정부에서 각각 국가보훈부 장관과 법무부 장관을 맡으며 강한 메시지 정치로 존재감을 키웠다. 특히 둘 모두 “장관직을 걸겠다”는 표현을 공개적으로 사용한 공통점이 있다. 단순한 관료형 정치인이 아니라, 자신의 직을 걸고 정치적 신념을 관철하려 했던 스타일이었다.

이것이 지금의 보수 지지층이 두 사람에게 기대를 거는 이유이기도 하다.

박민식은 보훈부 장관 시절 두 차례 장관직을 걸겠다는 강경 발언으로 화제를 모았다. 그는 2022년 7월 백선엽 장군 친일 논란과 관련해 “백선엽 장군이 친일파가 아니라는 데 장관직을 걸겠다”고 말했다. 당시 그는 CBS 라디오 인터뷰에서 “최대 국난을 극복한 영웅을 친일 프레임으로 공격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주장하며 자신의 역사관을 강하게 드러냈다. 단순한 정책 설명이 아니라 정치 생명을 건 메시지였다.

같은 해 8월 광주 정율성 역사공원 논란 때도 “막지 못하면 장관직을 걸겠다”고 말했다. 그는 정율성을 “공산 세력의 사기를 북돋운 인물”이라고 규정하며 강하게 반대했고, 헌법소원까지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실제로 보훈부 차원의 법률 검토와 중앙정부 대응 가능성까지 언급했다.

여기에는 단순한 이념 논쟁을 넘어 “대한민국 정체성을 지키겠다”는 정치적 상징성이 담겨있었다.

한동훈 역시 마찬가지였다. 2022년 국회 법사위 국정감사에서 청담동 술자리 의혹이 제기되자 그는 “법무부 장관직을 포함해 앞으로 어떤 공직이라도 다 걸겠다. 의원님은 뭘 걸겠나”라고 맞받아쳤다. 당시 그는 자신에 대한 의혹을 “지라시 수준도 안 되는 이야기”라고 반박하며 강하게 대응했다.

특유의 직설 화법과 배수진 정치가 한동훈 정치 스타일의 상징처럼 된 사건이었다.

결국 박민식과 한동훈은 둘 다 “직을 거는 정치”를 해왔던 인물들이다. 그런데 지금 필자가 묻고 싶은 것은 “과거에는 장관직을 걸었다면, 이제는 무엇을 걸 것이냐?”다. 지금 두 사람 앞에 놓인 것은 국회의원 자리가 아니라 보수 정치 전체의 존립 문제다.

특히 윤정부는 이미 ‘검찰공화국’이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검찰 출신 인사들이 권력 핵심을 장악했다는 비판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검사 출신 두 장관이 정치적 계산 끝에 단일화에 실패해 보수 텃밭까지 내준다면, 국민은 그것을 단순한 선거 결과로 받아들이지 않을 수 있다.

“정권도 내주고 부산도 내준 사람들”이라는 낙인이 따라붙을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그 책임론은 두 사람 모두에게 오래 남게 될 것이다.

더구나 지금은 단일화 효과가 줄어든 상황이라는 점에서 오히려 책임론이 더 커질 수도 있다. 국민은 “이미 늦었다”고 말하면서도 동시에 “그래도 끝까지 뭉쳐보려 했는가”를 본다. 결과보다 태도를 본다는 뜻이다. 결국 이번 단일화는 몇 퍼센트 득표 계산보다 보수 정치가 아직 공동체 감각을 갖고 있는지 보여주는 시험대에 가까워졌다.

그래서 지금 필요한 것은 단순한 후보 단일화가 아니다. 필자는 두 사람이 ‘정치 생명 공동 책임 선언’까지 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이기기 위해 단일화하겠다 수준이 아니라, 보수가 패배하면 우리 둘 다 차기 공천·당권·대권 경쟁에서 한발 물러서겠다는 정도의 결단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래야 국민도 이 단일화를 개인 계산이 아닌 진짜 보수 재건 의지로 받아들일 수 있다.

왜냐하면 지금 국민이 가장 싫어하는 것은 패배 자체보다도 지는 줄 알면서도 자기 정치만 하는 모습이기 때문이다. 보수 지지층 역시 마찬가지다. 지금 보수층 내부에서도 누가 더 크냐보다 누가 더 희생할 수 있느냐를 보고 있다는 분석이 많다.

결국 이번 부산 북구갑은 단순한 선거가 아니라, 보수가 아직 공동체 감각을 갖고 있는 세력인지 시험받는 무대라는 의미다.

사실 한국 보수는 최근 몇 년 동안 끊임없이 ‘윤 어게인’이라는 과거 회귀 프레임에 갇혀 있었다. 그러나 필자는 이제 ‘보수 어게인’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특정 인물의 복귀가 아니라 보수 전체의 재건을 고민해야 할 시점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그 출발점은 아이러니하게도 경쟁자인 박민식과 한동훈의 결단에서 시작될 수 있다. 둘 중 누가 살아남느냐보다, 보수 자체가 살아남느냐가 더 중요해진 상황이기 때문이다.

정치는 결국 명분의 게임이다. 순간의 승패보다 어떤 선택을 했는가가 오래 기억된다. 과거 장관직을 걸었던 검사 출신 두 후보가 이제 더 큰 것을 걸어야 한다. 바로 자신들의 미래 권력 가능성이다. 특히 지금처럼 투표용지까지 인쇄된 뒤라면, 단일화는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책임의 선언에 가깝다. 그래서 더 어렵고, 그래서 더 정치적으로 의미가 크다.

만약 두 사람이 끝까지 각자 완주하다가 함께 무너진다면, 그것은 단순한 선거 패배가 아니다. 윤정부 이후 보수 재편 자체가 더 깊은 혼란 속으로 들어가는 신호가 될 수도 있다. 반대로 둘 중 한 사람이 먼저 결단하고 양보한다면, 그 사람은 당장은 한발 물러나는 것처럼 보여도 오히려 더 큰 정치적 명분을 얻게 될 가능성이 있다.

지금 부산 북구갑에서 필요한 것은 검사 특유의 승부욕이 아니다. 필요한 것은 공동체를 살리기 위한 전략적 희생이다. 투표용지 인쇄가 시작돼 단일화 효과가 예전 같지 않더라도,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더 단일화해야 한다. 결과를 장담할 수 없는데도 손을 잡는 모습에서 국민은 계산이 아니라 책임을 보기 때문이다.

장관직을 걸었던 두 후보라면, 이제는 자기 정치의 일부를 내려놓는 결단도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검찰 권력의 연장선에 선 정치인’이 아니라, 공동체를 위해 책임지는 진짜 정치인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 그리고 어쩌면 그것이 윤석열 이후 흔들린 보수를 다시 세우는 첫 장면이 될지도 모른다.

<skkim596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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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표용지가 없다니…’ 초유의 사태 후폭풍

‘투표용지가 없다니…’ 초유의 사태 후폭풍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선거가 끝난 뒤에는 자연스럽게 후폭풍이 따라온다. 이긴 쪽은 동력을 얻고 진 쪽은 수습에 나선다. 하지만 이번 지방선거는 결과만큼이나 선거관리위원회의 행보가 회자할 것으로 보인다. ‘투표용지 부족’이라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불러온 후폭풍이 지방선거를 뒤흔드는 모양새다.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는 이재명정부 출범 1년(4일)을 앞두고 치러졌다. 선거 자체가 국민의 심판을 받는다는 취지로 치러지는 만큼 여야는 결과에 사활을 걸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광역단체장 등에서 싹쓸이로 의회 권력에 이어 지방 권력까지 차지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고, 국민의힘은 ‘견제’를 외치며 맞섰다. 누구 손도 안 들어줘 민심은 절묘했다. 광역단체장 선거에서 민주당은 총 16개 시‧도 중 12곳에서 이겼다. 결과만 놓고 보면 압승이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격전지였던 서울시장 선거에서 채 1% 차이도 나지 않게 석패했다. 관심을 모았던 대구에서도 졌다. 지방선거와 함께 치러진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에서도 관심이 집중된 부산 북구갑에서 의석을 내줬다. 반면 국민의힘은 선거 초반 전패를 예상했던 것과 비교해 상당히 선전했다는 평을 받는다. 서울을 수성했고 텃밭인 대구에서도 예상보다 수월하게 이겼다. 경기 평택을 선거에서도 ‘어부지리’지만 의석 하나를 건졌다. 민주당으로선 이겨도 찜찜한, 국민의힘은 졌지만 미묘하게 웃을 수 있는 결과가 나온 셈이다. 이제 여야는 물론 이재명 정부는 선거 결과에 따른 후폭풍을 마주해야 한다. 여야 모두 ‘완벽하게 이겼다, 혹은 졌다’는 결과를 받아든 게 아니기에 후폭풍은 작지 않으리라고 예상된다. 전당대회를 앞둔 민주당은 이번 선거 결과를 두고 당권 싸움을 시작할 것이고, 보수 궤멸 직전에 간신히 살아남은 국민의힘에서도 내전이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 문제는 여기에 또 다른 후폭풍이 더해졌다는 점이다. 심지어 이 후폭풍의 크기는 선거 결과에 따른 후폭풍과는 차원이 다르다. 선거의 신뢰성 문제까지 뒤흔들 수 있는 수준의 초대형 태풍급이다. 선거에서 심판 역할을 맡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가 도마 위에 올랐기 때문. 지난 3일 지방선거 본투표 중에 서울 일부 지역에서 투표용지 부족으로 유권자가 투표하지 못하는 초유의 사태가 일어났다. 유권자의 참정권 행사라는 선거의 가장 본질적인 부분에 취지가 훼손된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이 같은 일이 투표소 한 군데가 아니라 십수 군데서 발생했다는 점이다. 선관위에 따르면 지난 3일 서울 송파구 잠실 일대를 비롯한 12개 투표소와 강남구 1개 투표소, 광진구 1개 투표소에서 투표용지가 부족해 유권자들이 투표하지 못하고 현장에서 대기하는 일이 벌어졌다. 선관위는 사태를 인지한 후 투표용지를 이송하고 현장 대기 인원에 한해 투표를 보장하겠다고 했다. 소쿠리 이어 투표지가 없다? 부정선거 논란에 불 질렀다 하지만 잠실7동 제2투표소는 대기표를 받은 유권자를 대상으로 오후 10시까지 투표 시간을 연장하는 등 혼란이 발생했다. 동시에 소식을 접한 시민과 유튜버 등이 투표소에 몰리면서 분위기가 험악해졌다. 일부 투표소에서는 투표함 반출을 둘러싸고 선관위 관계자와 시민 사이에 대치 상황까지 벌어졌다. 이번 투표용지 부족 사태는 선거의 공정성과 신뢰성에 강한 타격을 입혔다. 특히 서울시장 선거는 국민적 관심이 집중됐던 데다 개표가 진행되면서 출구조사보다 실제 결과가 훨씬 박빙으로 나오고 있는 상태였다. 개표가 진행되는 와중에 투표도 동시에 이뤄지는 말도 안 되는 상황에 여야는 물론 지지자들은 강하게 반발했다. 국민의힘은 개표 중단을 요구했다. 투표용지 부족 사태가 발생한 지역이 공교롭게도 서울 지역 내에서 비교적 보수세가 강한 ‘강남권’으로 확인되자 당력을 집중한 것이다. 국민의힘 장동혁 상임선대위원장은 긴급 기자회견에서 개표를 중단하고 결과에 따라 서울시 선거를 다시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개표를 멈추고 상황에 따라 재선거를 치러야 한다는 것이다. 반면 민주당은 선관위에 책임을 묻겠다면서도 국민의힘의 개표 중단, 재선거 요구는 일축했다. 민주당 조승래 총괄선대본부장은 국민의힘의 요구에 ‘일고의 가치가 없다’고 말했다. 선관위의 부실한 선거 관리에 대해서는 책임을 묻겠다고 약속하면서도 선거를 다시 치를 필요까지는 없다는 뜻으로 풀이됐다. 선관위 역시 대국민 사과를 하면서도 투표용지 부족 사태가 선거 연기나 재선거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발표했다. 앞서 허철훈 선관위 사무총장은 “국민 여러분께 큰 혼란과 심려를 끼쳐 드렸다”며 “소중한 주권을 행사하기 위해 투표소를 찾아주신 국민께 불편을 드리고 공정한 선거 관리에 대한 신뢰를 훼손한 점에 대해 책임을 통감한다”고 고개를 숙였다. 박빙에서 불 질렀다 그러면서 “중앙선관위는 이번 사안을 엄중히 인식하고 있으며 개표가 종료되는 즉시 일부 투표소의 투표용지가 부족했던 원인과 문제점을 정확히 파악해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하겠다”며 “미흡한 준비와 대처로 실망을 드리게 돼 다시 한번 사과드린다”고 덧붙였다. 또 이상능 선관위 선거1국장은 “이런 사례가 과거 선거에서 발생했다는 보고를 받은 적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송파구의 경우 전체 유권자 수의 50% (규모의 투표용지)를 인쇄한 것으로 파악했다”고 말했다. ‘몇 표 차이로 선거 당락이 갈리는 경우가 있는데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윤재수 선거관리정책실장은 “저희가 직접 말씀드리기는 좀 곤란할 것 같다”며 “소송 절차 등을 통해 법원의 결정에 따라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답했다. 선관위는 지난 4일 0시께 긴급 위원회를 열고 수습 방안을 논의했다. 이후 위원회는 “(투표용지 부족 문제가) 공직선거법에 따른 선거 연기나 재선거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입장문을 내놨다. 또 “현재 진행되는 개표를 중단하는 것은 불가하다”고 강조했다. 국민의힘의 요구에 선을 그은 것이다. 이번 사태로 선관위에 개혁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쏟아지고 있다. 이번 일뿐만 아니라 선거 때마다 일어났던 ‘선관위발’ 논란이 ‘파묘’되는 분위기다. 가장 큰 논란 중 하나는 ‘소쿠리 투표’다. 2022년 대선 당시 코로나19 확진자와 격리자의 사전투표 용지를 간이 용기나 쇼핑백 등에 담으면서 촉발된 논란이다. 지난 조기 대선 때도 서울 신촌의 한 사전투표소에서 관외 선거를 위해 대기하던 일부 유권자가 대기 줄이 길다는 이유로 투표용지를 받은 채 식사하고 돌아오는 일도 있었다. 선관위의 행태는 일부 극우층에서 제기하는 ‘부정선거’ 논란에 빌미를 제공하고 있다. 이들은 본투표에 앞서 이틀간 진행되는 사전투표가 조작됐다는 등 부정선거가 조직적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주장을 내세우는데, 선관위 관련 논란도 그 근거로 언급하고 있다. 재선거까지 나왔지만… 부정선거 논란을 차단해야 할 기관에서 오히려 의심만 제공하는 꼴이다. 일각에서는 선관위 내부 사정이 반복되는 부실 선거의 배경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한 언론이 민주당 채현일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달 1일 기준 선관위 휴직자 수는 176명으로 집계됐다. 최근 10년 새 두 번째로 많은 수치다. 육아휴직이 124명으로 가장 많았고 일반 질병 휴직 30명, 가족 돌봄 휴직 11명, 해외 동반 휴직 8명 등이 뒤를 이었다. 지방선거, 대통령선거, 국회의원 선거 등 이른바 3대 전국 선거 때마다 휴직자가 늘어나는 선관위의 고질적인 병폐가 또다시 되풀이됐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실제 2022년 5월 기준 선관위 휴직자 수는 218명으로 최근 10년 기준으로 가장 많았다. 당시 3월에는 대선, 6월에는 지방선거가 각각 치러졌다.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으로 갑작스럽게 치러진 지난해에도 선거를 한 달 앞둔 5월 기준 휴직자는 145명에 달했다. 이 같은 문제가 반복적으로 지적되자 선관위도 선거 기간에는 휴직을 자제하라는 내용의 공지를 내리는 등 개선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 법으로 보장된 육아휴직 등은 강제로 제한할 수 없으니 인력을 채용하는 방향으로 인력 공백을 막겠다는 대응책도 내놨다. 하지만 앞서 선관위 내부에서 채용 관련 비리 의혹이 크게 불거지면서 이마저도 미덥지 못한 방안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더 큰 문제는 선거 때마다 논란이 불거지고 내부의 고질적인 병폐 등으로 지적을 받는 와중에도 선관위는 큰 변화가 없다는 점이다. 독립된 ‘헌법기관’이라는 방패를 내세워 ‘지금만 넘기면 된다’는 안일한 생각이 선관위를 좀먹고 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자정을 할 수 없으면 외력이라도 가해야 하는데 그것조차 막혀 있다는 것이다. 선거 때마다 구설 불거지는데… 자정은커녕 외부 감사도 안 돼 2023년 5월 당시 선관위 사무총장, 사무차장 등 고위 간부의 자녀가 선관위 경력직 채용에 특혜를 받았다는 언론 보도가 나왔다. ‘아빠 찬스’ 논란의 시발점이다. 이후 선관위 자체 특별감사 결과 고위직 자녀 특혜 채용이 관행적으로 이뤄졌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이 과정에서 감사원이 선관위의 인력 관리 실태에 관한 직무감찰에 착수했다. 그러자 선관위는 ‘독립기관’임을 내세우면서 감사원 감사를 수용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밝혔다. 국회는 물론 여론의 반발이 거셌다. 선관위는 감사원 직무감찰을 부분적으로 수용하면서도 “감사원의 감사 범위를 명확히 정리할 필요가 있다”며 2023년 7월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했다. 헌재는 선관위의 손을 들어줬다. 지난해 2월 헌재는 “이 사건 직무감찰은 헌법 및 법률상 권한 없이 이뤄진 것으로 선관위의 독립적 업무 수행 권한을 침해했다”고 밝혔다. 선관위가 감사원의 감사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헌법에 기재된 감사원의 감사 범위가 “행정부 내부의 통제장치로서의 성격”인 만큼 정부와 독립된 헌법기관인 선관위는 국회, 법원, 헌재와 같이 직무감찰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본 것이다. 그 배경으로 선관위의 선거 관리 업무를 들었다. 대통령 소속 기관인 감사원이 독립된 헌법 기구인 선관위를 직무감찰할 수 있게 되면 선거 관리 공정성에 대한 신뢰가 훼손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감사원의 직무감찰 배제가 곧바로 부패 행위에 대한 성역의 인정으로 호도돼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헌재는 “감사원 직무감찰을 허용하지 않는 것은 이를 대신할 독립성과 전문성을 갖춘 자체 감찰기구가 마련될 것이라는 점을 전제로 한 것”이라며 “선관위는 자체 감찰제도의 실효성을 담보함으로써 우려를 불식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결국 내부 자정 기능에 기대를 건 것이다. 이번에는 고쳐질까 하지만 채용 의혹은 차치하고라도 그 이후에도 가장 본연의 업무인 선거 관리에서 계속해서 잡음을 내고 있다는 점에서 선관위를 바라보는 국민의 시선은 곱지 않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4일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회의에서 “민주공화국에서 무엇보다 철저해야 할 선거 관리에 납득하기 쉽지 않은 허점이 발생한 점에 대해 매우 큰 유감을 표한다”며 “국민의 참정권이 한치라도 훼손되는 일이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신뢰할 만한 적절한 대책을 조속하게 마련해 주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이제 지방선거는 끝났다. 선관위는 이 후폭풍을 감당할 수 있을까.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