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실은 불확실성과 싸우는 공간이다. 의료진은 제한된 시간과 정보 속에서 수많은 가능성 가운데 가장 개연성 높은 판단을 내려야 한다. 그러나 최근 대전지법 천안지원이 내린 2018년 만취 20대 환자가 심한 장애를 입은 사건에 대한 판결은 이 같은 응급의료의 본질적 특수성을 충분히 반영했는지에 대해 의료계 안팎의 우려를 낳고 있다.
법원은 희귀질환인 척추동맥 박리를 적절히 진단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의료진에게 금고형의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하지만 이 판결은 단순히 한 사건의 책임을 넘어, 이미 위기에 처한 대한민국 필수의료 전반에 강한 위축 효과를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
척추동맥 박리는 혈관 벽이 찢어지면서 혈관 틈 사이로 피가 스며들어 혈관을 좁히거나 막는 질환이다. 고령층의 일반적 뇌졸중이 주로 동맥경화 같은 혈관 노화와 관련된다면, 척추동맥 박리는 오히려 외부 자극이나 목의 과도한 움직임과 연관되는 경우가 많아 젊은 층에서도 발생할 수 있다.
문제는 이 질환이 임상 현장에서 매우 까다로운 형태로 나타난다는 점이다. 카이로프랙틱이나 도수치료 과정에서 목을 강하게 꺾은 뒤 발생하기도 하고, 미용실 샴푸대에서 목을 과도하게 젖힌 채 오래 누워 있다가 발생하는 이른바 ‘뷰티 팔러 스트로크(Beauty Parlor Stroke)’ 사례도 잘 알려져 있다.
골프 스윙, 요가, 롤러코스터 탑승, 심한 기침과 구토 같은 일상적 상황조차 원인이 될 수 있다.
특히 만취 상태는 척추동맥 박리의 위험 요인이 될 수 있다. 술에 취한 채 목이 꺾인 자세로 잠들거나 반복적인 구토로 목 혈관에 강한 압력이 가해지는 상황이 박리의 방아쇠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바로 그 이유때문에 응급실에서는 더욱 진단이 어렵다. 만취 환자의 어지럼증, 구토, 의식 저하는 응급실에서 흔히 접하는 주정 증상과 구별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젊은 환자가 “술을 마신 뒤 어지럽고 목이 불편하다”고 호소할 경우, 특별한 외상력이나 카이로프랙틱 같은 특이 병력이 확인되지 않는 한 척추동맥 박리에 의한 뇌경색을 즉각적으로 의심하기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더욱이 당시 환자의 뇌 CT에서 특이 소견이 없었다는 점까지 고려하면, 현장 의료진의 초기 판단이 당시 상황에서 완전히 비합리적이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응급의료는 본질적으로 제한된 단서를 바탕으로 확률적 판단을 내릴 수밖에 없는 영역이다. 모든 희귀질환을 초기 단계에서 완벽하게 감별해내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며, 응급실 의료진은 언제나 시간과 자원, 환자 상태의 제약 속에서 의사결정을 해야 한다.
재판 과정에서 미비가 지적된 신경학적 검사 역시 실제 응급실 환경에서는 상당한 한계를 가진다. 신경학적 검사는 환자의 협조가 중요한 신체검사인데, 인사불성에 가까운 만취 환자에서는 검사 자체의 신뢰도가 크게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응급 MRI 시행 여부 역시 사후적으로 단순 평가할 문제는 아니다.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만취 환자를 장시간 검사 장비 안에서 안정적으로 유지시키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으며, 진정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질식, 저산소증, 낙상 등의 위험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
야간 응급실의 제한된 인력과 장비 접근성까지 감안하면, 모든 가능성에 대비해 즉각 MRI를 시행하는 것은 실제 의료 현장과 상당한 거리가 있는 요구일 수 있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현재 건강보험 심사 체계에서는 뇌 CT가 정상인 젊은 환자에게 고가의 MRI를 시행할 경우 과잉진료로 판단되어 삭감 대상이 될 가능성이 적지 않다. 즉 의료진은 한편으로는 희귀질환을 놓쳤다는 이유로 형사 처벌의 위험에 직면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적극적인 검사를 시행했다는 이유로 행정적 불이익과 삭감 압박을 동시에 감수해야 하는 구조 속에 놓여있다.
사회와 제도는 과잉검사를 억제하면서도, 결과가 나쁘면 왜 모든 검사를 하지 않았느냐고 묻고 있는 셈이다.
이 같은 구조는 결국 필수의료 기피 현상을 더욱 심화시킬 가능성이 크다. 이미 소아청소년과, 산부인과, 외과, 응급의학과 등 고위험·고강도 분야는 심각한 인력난에 직면해 있다. 의료진이 선의를 가지고 최선을 다했음에도 불구하고 예측하기 어려운 결과에 대해 형사처벌까지 감수해야 한다면, 젊은 의사들이 위험 부담이 큰 필수의료 분야를 선택하려 하지 않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결과일 수 있다.
이는 단순히 특정 직역의 문제가 아니라 국민 전체의 생명 안전망과 직결된 문제다. 실제로 응급환자 수용 불능과 지역 응급의료 공백 문제 즉 '응급실 뺑뺑이'는 이미 전국 곳곳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물론 의료 행위에 대한 책임 원칙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다. 명백한 과실과 중대한 태만에 대해서는 적절한 책임이 뒤따라야 한다. 그러나 응급의료처럼 불확실성과 시간 압박이 극심한 영역에서는 결과만을 기준으로 형사 책임을 확대하는 접근에 신중할 필요가 있다.
의료는 기계적 정답을 맞히는 과정이 아니라 제한된 정보 속에서 최선의 판단을 시도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사후적으로 모든 사실이 밝혀진 상태에서 당시의 판단을 재단하는 방식이 반복된다면, 결국 현장의 의료진은 고위험 환자를 회피하거나 과도한 방어 진료에 의존하게 될 가능성이 커진다. 지금 필요한 것은 처벌 강화가 아니라 의료 행위의 특수성과 현실적 제약을 반영한 균형 있는 제도 개선이다.
사법부는 응급의료 현장의 구조적 한계를 보다 깊이 이해할 필요가 있으며, 건강보험 심사 체계 역시 의료진이 합리적 의학 판단을 위축 없이 수행할 수 있도록 현실적으로 조정될 필요가 있다. 필수의료를 유지하는 일은 특정 직역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 아닌, 결국은 우리 사회 전체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기반을 유지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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