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4조 ‘치매 머니’ 양면

뜯자고 달려들면 가족도 못 막는다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국내 치매 환자가 100만명에 육박하면서 이들이 보유한 자산, 이른바 ‘치매머니’가 새로운 사회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치매 고령층 자산 규모는 이미 154조원을 넘어섰지만, 재산을 보호할 제도는 여전히 현실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현행 성년후견제도만으로는 경제적 학대, 조직화되는 고령층 대상 범죄를 막기에 한계가 있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이하 저고위)와 보건복지부 등에 따르면 국내 65세 이상 치매환자는 지난해 기준 약 97만명 수준으로 추산됐다. 경도인지장애 인구까지 포함하면 규모는 훨씬 커진다. 고령화 속도가 빨라지면서 치매환자 수는 앞으로도 꾸준히 증가할 전망이다. 정부는 2030년 치매환자가 120만명을 넘어설 것으로 보고 있으며, 2050년에는 200만명을 웃돌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2050년
200만명

이에 따라 치매환자가 보유한 자산 규모 역시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저고위 조사 결과를 보면 2023년 기준 치매 고령층 자산 규모는 약 154조원으로 추산됐다. 국내총생산(GDP)의 6%를 넘는 수준이다.

2050년에는 약 488조원까지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자산 대부분은 부동산과 금융자산에 집중돼있다. 고령층 자산 구조 특성상 부동산 비중이 70%를 넘는 것으로 분석된다.

문제는 치매가 진행될수록 본인이 재산을 관리하기 어려워진다는 점이다. 금융 거래나 계약 체결, 병원비 지출, 생활비 관리 같은 일상적인 경제활동에서부터 어려움을 겪는 사례가 적지 않다.

가족이 대신 재산을 관리하려 해도 법적 권한이 불명확하면 금융기관 이용이나 자산 처분 과정에서 제약이 발생하기도 한다. 이 때문에 실제로 치매 고령층 자산이 장기간 방치되거나, 반대로 사기와 경제적 학대에 노출되는 사례도 많아지고 있다.

치매나 경도인지장애로 판단 능력이 저하된 고령층을 상대로 거액의 투자금을 편취하거나, 혼인과 증여를 이용해 재산을 이전받는 사건들이 발생하고 있다.

최근에는 치매 고령층을 겨냥한 조직형 투자 사기 사건도 잇따라 적발됐다. 경찰에 따르면, 한 조직은 전국 단위 지사망과 사업 설명회를 운영하며 고령층을 상대로 투자금을 끌어모았다. ‘원금 보장’이나 ‘고수익 투자’ 등을 내세워 접근한 뒤 수천억원대 투자금을 편취한 사례도 있었다.

피해자 상당수는 60~80대 고령층이었다. 범행은 인지 능력이 떨어진 노인들을 표적 삼아 이뤄졌다. 농촌 지역 고령층을 노린 범죄도 있다. 한 태양광 사기 조직은 치매 증상이 있는 노인이나 독거노인을 상대로 접근해 계약금을 받아내거나, 부동산 담보대출을 유도한 뒤 자금을 빼돌리기도 했다.

이 같은 문제를 막기 위한 대표적인 장치로 꼽히는 것이 성년후견제도다. 치매나 발달장애, 정신질환 등으로 스스로 의사결정을 하기 어려운 사람에게 후견인을 선임해 재산 관리와 법률행위를 돕는 제도다.

치매 환자 100만 시대의 그늘
보호 체계는 여전히 사후 대응

가족이나 친족, 제3자가 법원에 후견 개시를 청구하면 법원이 심리를 거쳐 후견인을 지정하는 구조다. 치매 고령층의 금융 거래와 계약 체결, 재산 처분 등을 법적으로 지원할 수 있다는 점에서 사실상 마지막 안전장치로 여겨져 왔다.

후견은 유형에 따라 나뉜다. 판단 능력이 지속적으로 부족한 경우에는 ‘성년후견’, 일부 부족한 경우에는 ‘한정후견’, 특정 사안에 대해서만 지원하는 ‘특정후견’이 활용된다.

본인이 판단 능력이 있을 때 미리 후견인을 지정하는 ‘임의후견’ 제도도 존재한다. 법원이 후견인을 선임하면 후견인은 금융 거래와 계약 체결, 병원비 지급, 재산 관리 등을 법적으로 대리할 수 있게 된다.

문제는 치매가 상당 부분 진행된 이후 가족들이 뒤늦게 후견을 신청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부모의 반복적인 현금 인출이나 부동산 계약, 투자 사기 피해 등을 겪고 난 뒤에야 후견 필요성을 인지하는 식이다.

특히 전문가들은 치매 자산 문제의 상당수가 ‘완전히 판단 능력을 잃은 상태’보다, 오히려 판단 능력이 애매하게 흔들리는 단계에서 발생한다고 지적한다.

경도인지장애나 초기 치매 단계에서는 일상 대화와 기본적인 생활은 가능하지만 금융 문제에 대한 판단이나 계약 이해 능력은 크게 떨어진다. 하지만 이 단계에서는 법적으로 본인의 의사를 최대한 존중해야 하기 때문에 가족이 재산 관리에 적극 개입하기 어렵다.

반대로 후견 개시를 신청하려 해도 법원이 판단 능력 저하 정도를 엄격하게 판단하는 만큼 실제 개시까지 시간이 걸리는 경우가 많다. 후견 절차 자체도 적지 않은 부담이다.

가족이 법원에 후견 개시 심판을 청구하면 진단서와 재산 목록, 가족관계 자료 등을 제출해야 하고, 이후 법원 심리와 감정 절차 등을 거쳐야 한다. 상황에 따라 수개월 이상 걸리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재산 피해가 계속 발생하거나 생활비·병원비 집행이 지연되기도 한다.

범죄는
느는데…

후견이 개시된 이후에도 현실적인 한계는 남는다. 후견은 기본적으로 법률행위와 재산 보호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보니, 실제 생활 속 자산 운용과 돌봄 비용 관리에까지 세밀하게 대응하기 어렵다.

예컨대 치매환자의 요양비와 생활비를 장기간 안정적으로 집행하거나, 보험·연금·부동산 등 다양한 자산을 종합적으로 관리하는 데에는 제약이 있다는 것이다.

친족 후견 구조 역시 문제로 지적된다. 현재 성년후견인의 상당수는 가족이나 친족이 맡고 있다. 물론 가족이 직접 돌보는 사례가 대부분이지만, 후견 과정이 오히려 재산 갈등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적지 않다. 형제자매 간 의견 충돌이나 재산 처분 문제로 법적 다툼이 벌어지기도 하고, 후견인의 재산 남용 문제로 이어지기도 한다.

이 같은 문제의식 속에 최근 정부와 금융권에서는 후견 제도의 한계를 보완할 대안으로 ‘신탁’ 제도에 주목하고 있다. 치매가 상당 부분 진행된 이후 법원이 개입하는 후견과 달리, 판단 능력이 남아 있을 때 미리 자산 관리 계획을 설계할 수 있다는 점에서다.

실제로 정부도 올해 처음으로 치매 고령층 자산을 공공이 관리하는 ‘치매안심재산관리서비스’ 시범사업에 착수했다. 보건복지부와 국민연금공단이 운영하는 해당 사업은 치매 또는 경도인지장애를 가진 고령층의 현금성 자산을 공공기관이 위탁받아 관리하는 방식이다.

본인이나 가족이 신청하면 공단이 재산 현황과 생활 환경 등을 조사한 뒤 생활비·요양비·의료비 등을 포함한 재정지원 계획을 수립한다. 이후 계획에 따라 생활비와 병원비 등을 지급하는 구조다.

정부는 이를 통해 치매 고령층 재산이 본인 의사와 필요에 맞게 사용되도록 하고, 경제적 학대와 재산 공백을 줄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특히 요양시설 입소 이후 재산이 방치되거나, 가족 갈등 속에서 생활비 지급이 어려워지는 문제 등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복지부는 2년간 시범사업을 운영한 뒤 2028년 본사업 도입 여부를 검토할 계획이다.

후견도 부족
신탁도 미완

민간 금융권에서도 치매신탁과 유언대용신탁 등을 확대하려는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다. 치매 발생 이전에 신탁 계약을 체결하면 이후 판단 능력이 저하되더라도 미리 정한 방식에 따라 생활비와 의료비, 요양비 등을 지급할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후견이 ‘법적 대리’ 중심이라면, 신탁은 ‘사전 자산 설계’ 기능에 가깝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공공신탁 역시 아직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다는 평가가 적지 않다. 우선 현재 시범사업은 예금과 주택연금, 임대차보증금 반환채권 등 현금성 자산 위주로만 운영된다.

치매 고령층 자산 대부분을 차지하는 부동산은 사실상 제외돼있다. 실제 조사에서도 치매머니의 70% 이상은 부동산 자산으로 분석된다.

보험금과 연금 활용 제한도 한계로 지적된다. 현행 제도상 일부 사망보험금 청구권 정도만 신탁이 가능하고, 치매보험금이나 연금 수급권은 활용 범위가 제한적이다. 이 때문에 정작 치매 환자에게 필요한 간병비와 생활비, 의료비를 안정적으로 집행하는 데에는 제약이 따른다는 것이다.

진단 절차 역시 또 다른 변수다. 공공신탁이나 후견 절차 모두 기본적으로 의료기관의 치매 진단이 선행돼야 한다. 하지만 신경과 외래 예약과 MRI·PET-CT 검사 적체 등이 이어지면서 진단 자체가 늦어지는 사례도 적지 않다.

결국 전문가들은 후견과 신탁을 대체 관계가 아니라 상호 보완 관계로 봐야 한다고 지적한다. 판단 능력이 남아 있을 때는 신탁을 통해 자산 관리 계획을 미리 설계하고, 이후 판단 능력이 크게 저하되면 후견인이 이를 감독하거나 보완하는 구조가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특히 우리 사회가 초고령사회에 본격 진입하면서 문제는 더 커질 가능성이 높다. 베이비붐 세대가 후기 고령층에 진입하는 시점부터 치매 고령층 자산 규모가 급격히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2050년 488조 전망…커지는 잠든 자산
혼인, 유언…환자들 노린 범죄 반복

실제 정부 추산대로라면 치매머니 규모는 앞으로 20여년 사이 3배 가까이 증가하게 된다. 반면 이를 보호할 제도는 아직도 후견과 제한적인 신탁 중심에 머물러 있다는 것이다. 해외에서는 이미 후견과 신탁, 돌봄 체계를 함께 연계하려는 움직임이 확대되고 있다.

미국은 생전신탁과 법인 수탁 시스템을 활용해 치매 이후에도 자산 관리와 의료·돌봄 비용 집행이 이어지도록 설계하고 있다.

일본은 고령층 금융사기를 막기 위해 고액 인출 시 동의권자 확인 절차를 강화하고 있으며, 영국 역시 신뢰 관계인을 통한 금융 위임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싱가포르는 돌봄 계획 자체를 신탁 구조에 반영해 생활 지원과 자산 관리를 함께 운영하는 방식까지 도입했다.

국내에서도 공공신탁과 후견제도를 연계하고, 보험·연금·부동산까지 포함한 종합 자산관리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특히 치매 초기 단계부터 재산관리 상담과 사전 설계를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현재처럼 판단 능력이 상당 부분 저하된 이후에야 후견 절차에 들어가는 구조로는 현실 속 위험을 따라가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다만 제도 확대 과정에서 또 다른 과제도 남아 있다. 공공이 어디까지 개인 자산 관리에 개입할 것인지, 판단 능력 저하 여부를 누가 어떤 기준으로 결정할 것인지 등을 둘러싼 논란도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실제로 치매 진단과 의사결정 능력 판단은 의료적·법률적 해석이 동시에 필요한 영역인 만큼, 자칫 개인의 자기결정권 침해 논란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반쪽짜리
공공신탁

그럼에도 전문가들은 지금과 같은 관리 공백을 그대로 방치하기 어렵다고 입을 모은다. 후견만으로는 이미 복잡해진 초고령사회 자산 문제를 감당하기 어렵고, 공공신탁 역시 아직은 제한적인 단계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치매 머니 문제는 판단 능력이 떨어지기 시작한 이후에도 인간다운 삶을 어떻게 유지하게 할 것인지에 대한 사회 시스템의 문제에 가깝다”고 말했다.

<imsharp@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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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독해진 송영길 역할론

더 독해진 송영길 역할론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의원이 목소리를 키우고 있다. 이미 명심(이재명 대통령의 의중)은 김민석 전 국무총리에게 쏠렸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지만 그는 누구보다도 ‘정청래 고립 작전’에 힘을 쏟고 있다. 친정청래계의 십자포화를 견디면서까지 존재감을 키우는 그의 의도는 무엇일까? 오는 8월 치러지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전당대회가 다가올수록 당의 내홍도 거세지는 분위기다. 지난달 대표직 사퇴 이후 사실상 연임을 선언한 정청래 전 대표는 ‘민주당 전통성’을 부각시키며 지지층 결집에 나섰다. ‘노사모(노무현 전 대통령을 사랑하는 모임)’ 출신인 점 등을 강조하면서 친문(친 문재인) 진영의 표심을 흡수하려는 시도로 해석된다. 타깃은 한 명뿐 그런 정 전 대표를 향해 날을 세우는 건 또다른 후보군인 송영길 의원이다. 송 의원은 초반부터 매섭게 정 전 대표를 몰아세우며 그의 적통성 행보를 차단하고 나섰다. 송 의원은 KBS 라디오 인터뷰에서 “정 전 대표가 친노(친 노무현)·친문 등 정체성을 부각한다”는 진행자의 말에 “그는 완전히 노무현 대통령과 등을 져서 장례식에도 참석하지 못했다”며 “다른 분이면 몰라도 정 전 대표는 (친노의) 적통성을 따질 수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 전 대표는 2002년 노사모를 기반으로 한 인터넷 정당 ‘정정당당 추진위원회’을 꾸리면서 정치에 입문했지만, 2007년 노무현정부와 대립각을 세운 열린우리당 정동영 당시 의장(현 통일부 장관)과 더 가깝다는 평이 나오면서 적통성을 의심받고 있는 것이다. 그러자 정 전 대표는 “이렇게까지 하느냐. 100% 허위 사실”이라며 불쾌감을 숨기지 않았고, 송 의원은 “당일 정 전 대표를 본 기억이 없어서 (노 전 대통령) 장례식에도 참석도 못했다는 말을 했다”며 사과의 뜻을 건넸다. 송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제 발언의 요체는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 앞에 우리는 모두 지못미(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라는 사실이다. 다시 이런 비극을 재현해서는 안 된다”면서도 “노 전 대통령께서 한미 FTA를 추진할 때 민주당 대부분 의원이 격렬하게 반대했다. 그 선봉에 (당시) 정청래 의원이 있었다”며 또다른 논란을 꺼내 들었다. 이는 친청(친 정청래)계와 친명(친 이재명)계 간의 계파 대리전으로 번졌다. 민주당 최민희 의원은 “이제는 한미 FTA 찬반까지 끌어와 당 대표 경선을 혼란스럽게 한다”며 “이런 편파적 파묘 안 하시면 안 되느냐”고 지적했다. 이어 “갈등은 필연이지만 팩트로 논쟁하자”며 “적통 논쟁도 하지 말자. 지금은 AI시대”라고 말했다. “네가 친노?” 20년 전 사건까지 파묘 거세게 몰아치는 ‘정청래 고립 작전’ 최 의원은 송 의원의 ‘사당화’ 주장에도 반박했다. 앞서 송 의원은 “대통령과 손발을 맞추려면 할 일이 많은데 우리 민주당은 운동장을 너무 좁게 쓰고 있다. 정 전 대표 측근 아니면 당무에서 거의 배제되고 최고위원도 자기들끼리만 한다”며 사당화를 도마 위로 올렸다. 이에 대해 최 의원은 “송 의원이 정 전 대표를 비난하면 기다렸다는 듯 재래식 언론이 줄줄이 보도한다. 민주당이 극복한 ‘문모닝(하루를 문 대통령 비판으로 시작한다)’의 악몽이 되살아나려 하는데 막을 사람이 바로 송 의원”이라고 주장했다. 논란의 한가운데에 선 정 전 대표는 “소모적 적통 논쟁을 하지 말자”며 싸움을 그만둘 것을 제안했다. 그는 “저는 제 입으로 적통의 적자도 꺼낸 적이 없고, 그럴 생각도 없다. 위대한 대통령 누구의 적통이라고 주장한 적도 없다”고 주장했다. 정 전 대표는 “저는 김대중 대통령을 존경했고, 노무현 대통령을 사랑했으며 문재인 대통령을 좋아했다”며 “이재명 대통령과는 동지이자 전우로 윤석열 검찰독재정권의 폭압을 함께 뚫었다. 12·3 불법 비상계엄 내란의 밤 때는 목숨 걸고 국회 담장을 넘었다”고 주장했다. 이어 “(이렇게 말한 것이) 뭐가 문제가 되냐”면서 “제 입으로 말하지도 않은 것을 상상하고 비틀어서 ‘적통이네 아니네’ 하는 언론의 프레임에 맞장구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이달 초를 기점으로 민주당의 분위기가 한층 누그러졌다는 평이 나온다. 이 대통령과 문재인 전 대통령이 오찬 회동을 하며 지지자 간의 갈등 봉합을 시도했고, 보안수사권 폐지 역시 정부가 먼저 치고 나오면서 논란을 잠재웠다. 퇴로까지 끊었다 정 전 대표의 전당대회 필살기가 사라졌다. 여기에 친문 의원들조차 “하늘에 계신 분들이 (정 전 대표의 적통성을) 인정하겠나” 등 표현으로 거리를 두면서 고립 직전에 놓였다. 정 전 대표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면서 송 의원의 여론전도 박차를 가하는 모양새다. 송 의원은 정 전 대표에게 힘을 싣는 여의도 밖 스피커와도 각을 세우고 있다. ‘ABC론’ ‘증축·재건축론’ 등을 주장한 유시민 작가를 향해 “간신은 주군 옆에서 권력을 독점해 똑똑하고 새로운 사람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차단한다”고 지적했다. 앞서 유 작가는 “이 대통령이 대통령이 되는 과정에서 열렬히 지켜주고 응원했던 사람들이 원했던 것은 증축이었는데, 대통령은 재건축을 하려고 했던 것 같다. 대통령의 자신감이 지나쳤던 것 아닌가”라고 주장했다. 민주 진영 코어 지지층이 바란 것은 중도·보수로의 ‘증축’이지만 이 대통령은 원주민(코어 지지층)과 상의 없이 ‘재건축’에 나서 이들이 이탈하고 있다는 증축·재건축론을 제기한 것이다. 이에 송 전 대표는 YTN <장성철의 뉴스명당>에 출연해 “충신은 자기 주군의 성공을 위해서 더 똑똑한 사람, 새로운 사람을 계속 영입한다”며 유 작가의 주장을 반박했다. 연일 송 의원의 견제가 이어지고 있지만 강성 지지층의 두터운 지지를 받는 정 전 대표가 쉽게 꺾이지 않을 것이란 평가가 지배적이다. 따라서 김민석 전 총리와 송 의원 둘 중 누구든 결선에 진출해 ‘반 정청래’ 전선을 꾸리는 것이 1차 목표라는 설명에 힘이 실린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현 상황에 대해 “지금으로서는 송 의원은 당 대표를 하겠다는 열망보다 정 전 대표를 막겠다는 열망이 더 강해 보인다”고 봤다. 이처럼 정치권에서는 송 의원을 개별 후보가 아닌 김 총리의 페이스메이커로 보는 분위기다. 명심을 등에 업은 김 총리가 거칠게 나올 경우 국정 운영에 차질이 생길 것이란 우려가 나오는 만큼 상대적으로 리스크가 적은 송 의원이 ‘정청래 저격수’ 역할을 자처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오래전 큰 그림 송 의원의 의중과 상관없이 두 사람의 단일화가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이번 전당대회서 정 전 대표에게 유리한 것으로 알려진 1인1표제가 적용되는 만큼 김 전 총리와 송 의원이 손을 잡는 것이 안전하다는 이유에서다. ‘김민석+송영길 대 정청래’ 구도로 선거를 치른다면 압승도 가능하다는 판단이 깔린 것으로 해석된다. 정치권에서는 전당대회에 출마한 송 의원이 가장 주목을 받는 시점에 김 전 총리와의 단일화를 선언한 후 사퇴하는 시나리오도 점치고 있다. 자신의 지지층 결집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 김 전 총리에게 힘을 실어준 뒤 물러서는 방식으로, 이럴 경우 확실한 1 대 1 구도가 만들어지게 된다. 정치권에서는 송 의원이 전당대회를 통해 체급을 키운 뒤 청와대에 외교부 장관 등 자신이 희망하던 자리를 요구하지 않겠냐는 해석도 나온다. 국회 입성 이후 송 의원의 외교부 장관 입각설 등이 꾸준히 나오는 것 역시 이 같은 해석을 뒷받침한다. 그동안 송 의원은 자칭타칭 ‘외교 전문가’로 이름을 알려왔다. 그는 문재인정부 당시 러시아 특사를 지냈으며 대통령 직속 북방경제협력위원회 위원장과 민주당 동북아평화협력특별위원회 초기 위원장을 지냈다. 21대 국회 전반기에는 외교통일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꾸준히 외교·통일 정책 비전을 밝혀왔다. 지난 2월 복당을 앞둔 때에는 향후 외교 분야에서 역할을 맡고 싶다는 의지를 피력하기도 했다. 송 의원은 부산 벡스코에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종결과 북극 항로의 미래’를 주제로 열린 민주당 부산시당 주최 특강에서 “러시아와 미국 등 외교 현안에서 역할을 감당하겠다”고 밝혔다. 이날 송 의원은 러시아와의 협력 필요성을 강조하면서도 “현재 한국은 러시아보다 우크라이나에 더 가까운 입장”이라며 “전쟁 중이라는 특수성이 있지만 아쉬운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북극 항로를 열기 위해서는 실용주의 외교가 필요하다”며 이정부의 실용주의 노선과 궤를 같이 했다. 그는 최근까지도 활발한 외교 행보를 보였다. 지난달 24일 조정식 국회의장 특사 자격으로 미국 출국길에 올라 전방위 외교 활동에 나서기도 했다. 송 전 의원은 미국 워싱턴에서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관계자와 미 의회 지도부와 연쇄 면담을 갖고, 북핵 문제와 경제 제재 예외 조치 등 한미 간 주요 현안을 논의한 것으로 전해진다. “복당 후 역할은…” 마음은 다른 곳에? ‘미주민주참여포럼(KAPAC)’이 워싱턴DC의 한 호텔에서 개최한 콘퍼런스에서 송 의원이 이 대통령의 서면 축사를 대독에 눈길을 끌기도 했다. 이에 국민의힘 신지호 전 의원은 송 의원이 “양손에 떡을 다 쥘 수 있는 상황이 됐다”고 평가했다. 그는 채널A 라디오쇼 <정치시그널>에 출연해 이같이 주장하며 “누군가 송 의원에게 ‘너 외교부 장관 할래, 당 대표 할래?’라고 묻는다면 바보가 아닌 이상 당 대표라고 답한다. 이번에 당 대표가 되면 공천권을 쥘 수 있기 때문”이라며 “(선거를) 하다가 여의치 않을 경우 외교부 장관으로 가는 것이고, 지금의 이런 것들이 또 외교부 장관으로 가기 위한 과정이 될 수 있다. 지금 양쪽 접근을 다 하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유리한 지점에 서 있는 만큼 송 의원의 당권 레이스 완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2021년 치러진 전당대회서 당선된 경험이 있는 만큼 이미 민주당에 조직 기반이 있다는 점에서다. 최근에는 경남 지역 시민사회단체와 당원 등 100여명이 모여 ‘8·17 전당대회, 응답하라 송영길!’이라는 슬로건과 함께 송 의원의 출마를 촉구하기도 했다. 이들은 “지금 대한민국은 대내외적으로 복합적인 위기와 갈등을 동시에 마주하고 있다”며 “이런 시대일수록 국정을 안정적으로 뒷받침하고 당을 하나로 묶어낼 검증된 지도력이 절실하다. 송영길 의원은 ‘이재명 국민주권정부’의 성공적인 국정 운영을 가장 안정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정치적 경험과 국가 운영 능력을 갖춘 인물”이라며 평가했다. 친명 좌장으로 불리는 민주당 김영진 의원은 8월 전당대회와 관련해 “제가 아는 송영길 의원은 (김 전 총리를 위한) 페이스메이커로 나가지는 않을 것”이라고 봤다. 그는 한 라디오를 통해 “누구든지 1등을 하기 위해서 나가고, 만약에 결선투표로 간다면 1등, 2등 해서 결선에 가서 이기겠다는 생각일 것”이라며 “송 의원이 누구를 위해서 자기가 페이스메이커로 나간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양손에 쥔 꽃놀이패 송 의원 역시 본인이 김 전 총리의 페이스메이커 역할을 자처하고 있다는 분석에 대해 “후보자들은 일종의 면접시험을 보고 있는 것이고 인사권자인 당원들께서 판단하실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이어 “결선투표 제도가 없다면 단일화 논란이 일어날 수 있지만 전당대회는 제도적으로 결선투표제가 있다”며 완주 가능성을 부정하지 않았다. 만일 송 의원이 전당대회를 완주한다면 정 전 대표와 청와대라는 양강 구도에 변수가 된다. 그의 선택에 따라 이번 전당대회 판세가 갈릴 것이란 전망이 나오면서 그가 페이스메이커가 아닌 ‘게임 체인저’로 바뀔지 이목이 쏠린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여의도 복귀 김민석, 전대 신호탄 김민석 전 국무총리가 당권 경쟁자인 정청래 전 대표를 겨냥해 “지금까지 했던 방식으로 굳이 (대표를) 두 번 할 필요나 필연성은 지금 발견하기 어렵다”고 직격했다. 총리직에서 퇴임해 여의도에 복귀하자마자 이같이 밝힌 김 전 총리는 유튜브 채널 ‘오마이TV’가 공개한 영상에서 “이제는 정청래 전 대표와 다른 색깔, 역량, 스타일, 장점을 가진 리더십이 필요한 때”라고 주장했다. 이어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와 지방선거로 (정부 출범 후) 최초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당의 역할 폭과 숙제 크기가 더 넓고 커지고 강해졌다. 이제 당이 더 본격적으로 움직여야 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당이 어떻게 가야 하나, 무엇을 해야 하나에 대한 제 나름의 생각이 있기 때문에 그것을 최대한 반영하고 싶다”며 “대한민국 역사의 황금시대 도래, 그 첫 장을 이재명정부가 열고 있다고 보고 그것을 실제로 만들어내는 일에 모든 걸 다 해야 한다”고도 강조했다. 올해 초 정 전 대표가 시도했다가 무산된 조국혁신당과의 합당 문제도 꺼내들었다. 김 전 총리는 “그것(합당)을 풀어가는 데 문제 제기와 과정이 잘못돼서 일을 그르쳤다고 본다”며 “같은 세력은 통합하고 다르면 연대하고, 통합과 연대와 확장이 반드시 필요하다. 통합을 할 것이냐 연대를 할 것이냐의 문제에 대해서는 혁신당이 스스로 명확하게 판단하고 (입장을) 드러내는 것이 좋다”고 제언했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