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삼기의 시사펀치> 중국은 왜 세계 정상들을 불러들이나

‘천자의 나라’, 미중 정상회담 이후 세계 외교의 중심에 서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세계는 “중국 시대가 끝나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를 쏟아냈다. 미국의 반도체 제재와 공급망 재편, 부동산 위기, 청년 실업 문제까지 겹치면서 ‘탈중국’이라는 단어가 국제 경제의 핵심 키워드처럼 떠올랐다. 코로나 이후 중국 경제가 예전만 못하다는 평가도 이어졌다.

서방 언론에서는 ‘중국 피크론’(Peak China)이라는 표현까지 등장했다. 중국이 정점을 찍고 내려오기 시작했다는 분석이었다.

하지만 지금 분위기는 완전히 달라졌다. 최근 베이징 외교가를 보면 오히려 세계 주요 정상들이 중국으로 몰려가고 있다. 유럽 정상들이 연이어 중국을 찾고 있고, 중동 지도자들도 베이징을 방문하고 있다. 러시아는 사실상 중국과 전략 동맹 수준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으며, 동남아 국가들 역시 중국과의 관계를 강화하는 분위기다.

한때 ‘탈중국’을 말하던 나라들조차 이제는 다시 중국과의 연결선을 복원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지난 14일 미중 정상회담은 이런 흐름에 상징적인 장면 하나를 추가했다. 미국 대통령이 직접 베이징을 찾아 시진핑과 마주 앉은 것이다. 세계는 이 장면을 단순한 정상회담 이상으로 받아들였다. “결국 미국도 중국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구나.”

많은 나라들이 그렇게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중국의 외교적 위상이 올라갔다고 평가했다.

과거 중국 황제들은 스스로를 ‘천자(天子)’로 규정하며 주변국 사신과 왕들을 불러들이는 외교 질서를 선호했다. 황제가 직접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주변이 황제를 향해 움직이는 구조였다. 고려와 조선시대에도 중국 황제가 공식 외교 목적으로 국빈 방문한 경우는 거의 없었다. 주변국이 북경으로 향했고, 중국은 그 흐름 자체를 권력의 상징으로 활용했다.

물론 지금은 조공 시대가 아니다. 그러나 최근 세계 정상들이 잇따라 베이징으로 향하는 장면 속에서, ‘천자의 나라’ 네트워크가 다시 만들어지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는 것도 사실이다. 실제로 최근 중국을 방문한 주요 정상들의 흐름만 봐도 분위기가 얼마나 달라졌는지 확인할 수 있다.

지난해 11월에는 스페인 국왕 펠리페 6세가 중국을 방문했다. 스페인 국왕의 방중은 18년 만이었다. 공급망 안정과 투자 협력, 유럽 경제 불안 대응 등이 주요 의제로 논의됐다. 특히 중국 시장 의존도가 높은 유럽 기업들의 이해관계까지 맞물리면서, 단순한 의전 차원을 넘어선 경제 외교 행보로 해석됐다.

이어 같은 해 12월에는 프랑스의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중국을 찾았다. 그는 베이징뿐 아니라 청두까지 방문하며 첨단산업과 지방 경제 현장까지 둘러봤다. 유럽 내부에서 “미국만 바라봐서는 경제를 유지하기 어렵다”는 현실론이 강해지고 있다는 분석도 나왔다.

지난 1월에는 영국의 키어 스타머 총리가 방중했다. 브렉시트 이후 성장 둔화에 시달리는 영국 입장에서 중국 시장은 여전히 포기하기 어려운 카드다. 금융·친환경 산업·배터리 공급망 협력이 주요 의제로 거론됐다.

같은 달에는 한국의 이재명 대통령도 중국을 방문했다. 취임 이후 첫 방중이라는 상징성 속에서 공급망과 경제협력, 한중 관계 복원 문제가 논의됐다. 미국의 핵심 동맹국인 한국조차 중국과의 직접 소통을 강화하는 모습은 국제사회에서도 적지 않은 주목을 받았다.

지난 4월에는 스페인 총리 페드로 산체스가 다시 중국을 방문했다. 불과 몇 달 사이 국왕과 총리가 연이어 베이징을 찾은 셈이다. 같은 시기 베트남의 또 럼 지도자도 중국을 방문해 공급망 협력과 공산당 간 전략 협력을 논의했다. UAE 아부다비 왕세자 칼리드 빈 모하메드 알 나흐얀 역시 중국을 찾아 에너지·투자·AI 협력 확대를 논의했다.

흥미로운 것은 중국을 찾는 국가들 상당수가 미국과 안보 협력을 유지하는 나라들이라는 점이다. 유럽도, 한국도, 중동도 이제는 미국과의 관계를 유지하면서 동시에 중국과의 경제 연결을 강화하는 ‘이중 축 외교’로 이동하고 있다. 세계가 더 이상 미국 아니면 중국이라는 단순한 선택 구조로 움직이지 않기 시작한 것이다.

5월엔 가장 상징적인 장면이 나왔다.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이 베이징을 방문한 것이다. 미중 무역, 대만 문제, 호르무즈 해협과 이란 문제까지 논의된 이번 정상회담은 단순한 외교 이벤트가 아니었다. 세계는 이 회담을 통해 미국조차 중국과 직접 협상하지 않고는 국제질서를 관리하기 어려운 상황에 들어섰다는 점을 다시 확인했다.

특히 대만 문제를 둘러싼 장면은 아시아 외교 지형 전체를 흔들었다. 시진핑은 미국의 대만 개입 문제에 대해 강한 메시지를 냈고, 트럼프는 과거처럼 즉각적이고 강경한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 바로 이 지점에서 각국은 다시 계산하기 시작했다. “미국은 실제로 어디까지 개입할 것인가.”

일본이 곧바로 미국과의 공조 확인에 나선 것도 이런 흐름과 무관하지 않다.

일본은 미중 사이의 상황을 가볍게 보지 않았다. 미국의 신호가 흔들린다고 느끼자 곧바로 움직이며 외교적 공간 확보에 나섰다. 실제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는 미중 회담 직후인 15일 트럼프와 통화해 미일 공조를 재확인했다. 그는 “외부에 공개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여러 이야기를 나눴다”며 “흔들림 없는 미·일 동맹을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중국 입장에서는 이번 회담이 매우 중요했다. 단순히 미국 대통령을 초청한 것이 아니라, 세계에 “중국은 미국과 대립만 하는 나라가 아니라 미국조차 찾아와 협상해야 하는 나라”라는 이미지를 보여준 셈이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워싱턴이 세계 외교의 중심이었다면, 이제는 베이징 역시 글로벌 협상의 중심축 중 하나로 올라서기 시작했다는 인상을 국제사회에 심은 것이다.

여기에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파키스탄의 셰바즈 샤리프 총리까지 잇따라 방중이 예상되면서 베이징 외교의 상징성은 더 커지고 있다. 중국 관영 <글로벌타임스>와 러시아 <타스 통신> 등에 따르면 오는 20일 푸틴 대통령의 방중이 예상된다. 파키스탄 샤리프 총리 역시 에너지·디지털 연결·중동 정세 협력을 주요 의제로 오는 24일 중국 방문이 예상된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중동 긴장이 동시에 이어지는 상황에서, 미중 정상회담 직후 러시아와 파키스탄 지도자들까지 연이어 베이징을 찾는 흐름은 단순한 외교 일정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중국이 미국 중심 일극 체제에 맞서 새로운 외교 네트워크의 중심축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신호처럼 읽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시진핑은 이번 미중 정상회담에서 트럼프를 향해 ‘투키디데스의 함정’을 언급하며 G2 공존 가능성을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흥 강대국과 기존 패권국이 반드시 충돌할 필요는 없다는 메시지다. 홍콩 <SCMP> 역시 “중국이 미국과 러시아 정상을 같은 시기에 동시에 상대하는 장면은 매우 이례적”이라고 평가했다.

물론 그렇다고 중국이 곧바로 미국을 대체하는 것은 아니다. 첨단 반도체, 기축통화, 글로벌 군사동맹 체계에서는 여전히 미국 우위가 강하다. 달러 체제와 NATO 중심 안보 구조 역시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세계가 이제 더 이상 ‘미국 단독 질서’만으로 움직이지 않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 틈에서 중국이 자신의 외교적 공간을 빠르게 넓혀가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 내부에서는 이런 흐름을 자국 영향력 확대의 상징으로 해석하는 분위기다. 중국은 이제 단순한 제조 대국을 넘어 국제질서를 조정하는 협상 공간 자체가 되려 하고 있다. 과거 중국 외교가 경제 중심이었다면, 지금 중국은 에너지·AI·반도체·공급망·금융 결제·해상 물류·중동 중재까지 모두 건드리고 있다. 국제질서를 움직이는 핵심 영역마다 중국의 영향력이 들어가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중동이 결정적이다. 호르무즈 해협 긴장과 국제유가 불안 속에서 중국은 세계 최대 원유 소비국 중 하나다. 사우디·이란·UAE 입장에서도 중국 시장은 절대 포기할 수 없다. 미국이 군사 질서를 장악하고 있다면, 중국은 시장과 소비를 장악하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중동 국가들도 이제는 미국만 바라보지 않는다. 안보는 미국과 협력하되 경제는 중국과 연결하는 균형 외교를 본격화하고 있다. 유럽 역시 마찬가지다. 안보는 미국과 유지하되, 중국 시장은 포기할 수 없다는 현실론이 강해지고 있다. 독일 자동차 산업의 중국 의존도는 여전히 높고, 프랑스 역시 친환경·항공·명품 산업에서 중국 소비시장을 무시하기 어렵다.

결국 세계는 지금 ‘미국 아니면 중국’을 선택하는 시대에서, 미국과 중국을 동시에 활용하려는 시대로 이동하고 있다. 그리고 중국은 바로 이 틈을 파고들고 있다. 세계 정상들을 베이징으로 불러들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중국은 지금 세계 공장을 넘어 ‘세계 질서의 한 축’으로 인정받으려 하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지금 베이징에서 벌어지는 장면의 본질은 단순한 외교 이벤트가 아닐지도 모른다. 세계는 다시 하나의 중심을 향해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여러 중심이 공존하는 다극 질서로 이동하고 있다.

과거 천하의 길이 장안과 북경으로 향했듯, 지금 세계의 외교 동선 역시 다시 베이징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중국은 바로 그 틈에서, 다시 ‘천자의 나라’처럼 세계 정상들을 불러들이며 새로운 질서의 중심축이 되려 하고 있다.

<skkim596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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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의 눈’ 오세훈 차기 대선 로드맵

‘태풍의 눈’ 오세훈 차기 대선 로드맵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오세훈 서울시장이 5선에 성공했다. 하지만 국민의힘은 참패했다. 국민의힘의 수도권 참패 기류 속에서 홀로 승리한 오 시장은 국민의힘에 불어올 태풍의 눈이 될 것이다. 과연 오 시장은 성공적인 시정과 국민의힘 체질 개선이란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을까? 국민의힘은 6·3 지방선거에서 참패했다. 지난 4일 오전 개표 결과, 국민의힘은 광역자치단체장 기준 서울·대구·경북·경남 등 4곳 수성에 그쳤다. 전반적으로 전통적인 지지자들의 지원에 힘입어 최소한의 수성을 한 것으로 보인다. ‘졌잘싸’ 최소 수성 이로써 오세훈 서울시장은 사상 첫 5선에 성공했다. 오 시장은 48.94%를 득표해 48.34%를 득표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원오 후보를 가까스로 물리쳤다. 방송사들의 출구조사에서는 정 후보가 오 시장을 약 5% 앞설 것이라는 예상이 나왔지만, 개표 후 13시간이 지난 시각부터 정 후보를 역전해 신승을 거뒀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3월 이후 역동적으로 중앙정치에 개입했다. 공천 과정에서는 후보 등록을 거부하면서 ‘윤 어게인’에 기반한 강경 보수 노선을 유지하려는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 체제에 반기를 들었다. 이어 당에 절윤(윤 전 대통령과의 절연) 선언을 요구했고, 국민의힘은 의원총회를 개최해 “윤석열 전 대통령의 정치적 복귀에 반대한다”는 등 절윤 결의문을 채택했다. 이후에도 오 시장은 당과 거리두기를 멈추지 않았다. 오 시장이 후보 등록을 거부하면서 요구했던 것 중 하나는 혁신 선거대책위원회 설치였으나 실현되지 않았다. 그러자 오 시장은 한동안 당의 상징색인 빨간색이 아닌 흰색 점퍼 차림으로 현장을 누볐다. 그는 장 대표의 지원 유세를 거절하기도 했다. 지난 4월 진행된 국민의힘 서울시당 필승결의대회와 지난달 12일 진행된 서울시당 선대위 발대식 모두에 장 대표를 초청하지 않았다. 오 시장이 장 대표의 지원 유세를 거절한 취지는 “마음은 고맙지만 필요 없다”는 것이었다. 오 시장은 지난 3월27일 SBS 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에 출연해 “저도 장 대표를 모시고 싶다. 변신한 모습으로 지원 와 주시길 촉구한다”며 “국민의힘 자체가 중도 확장성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후 오 시장은 서울시당을 배경으로 서울 내 자치구를 둔 의원들과 함께 선대위를 구성해 독자적으로 선거를 치렀다. 그리고 5선에 성공했다. 오 시장의 승리는 정치학적으로 정치의 개인화 현상이라고 평가할 만하다. 정치의 개인화는 정당 등 집단적 배경이 아닌 정치인 개인의 리더십 등 이미지가 정치 과정의 핵심이 되는 현상을 말한다. 전통적인 지지 세력 외엔 국민의힘이라는 브랜드가 호감을 얻지 못하는 상황에서 유권자는 국민의힘과 오 시장을 분리해서 평가한 후 오 시장을 지지했다. 국민의힘이라는 정당 브랜드가 오 시장에게 도움이 되기보다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었다. 따라서 오 시장은 당과 거리를 두면서 개인 지지 기반이 잠식되는 것을 최대한 막은 셈이다. 지방선거와 함께 진행된 경기 평택을 보궐선거에서는 국민의힘 유의동 후보가 승리했다. 유 후보는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의 지지 선언 외에는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다. 언론이 주목한 핵심은 더불어민주당 김용남 후보와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의 갈등·상호 폭로였다. 유 후보의 승리는 범여권의 내분 속에서 어부지리 효과를 거둔 것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뒤베르제 법칙에 따르면, 단순다수대표제와 소선거구제는 양당제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김 후보와 조 대표가 단일화에 성공했다면, 유 후보를 상대로 여유 있게 승리했을 가능성이 있었다. 참패 속 홀로 선 오…당과 거리 두고 5선 신승 유 어부지리·한 자력 생존…장동혁 책임론 불씨 하지만 두 후보가 화합하지 못하면서 평택을 선거구도는 다당제로 전개됐다. 김 후보와 조 대표가 각각 일정한 경쟁력을 가진 채 분열했기 때문에 범여권 지지자의 표심은 사실상 양분됐다. 반면 자유와혁신 황교안 후보는 김 후보와 조 후보만 한 경쟁력을 갖지 못해 유 후보의 표를 결정적으로 잠식하지는 못했다. 김 후보·조 후보·진보당 김재연 상임대표 등 진보 성향 범여권 후보들은 각각 28.77%·27.44%·2.95%를 득표했다. 반면 유 후보는 34.83%를, 황 후보는 6.19%를 득표했다. 이 때문에 유 후보는 다수 대결 구도 속 승자가 될 수 있었다. 평택을 결과는 뒤베르제 법칙의 기계적 효과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보여줬다. 단순다수대표제에서는 1표라도 더 얻은 후보가 의석을 차지한다. 유 후보는 34.83%를 득표하는 데 그쳤지만, 범여권 후보들이 분열하면서 의석을 차지할 수 있었다. 범여권 후보의 분열은 뒤베르제 법칙이 기대하는 심리적 효과인 사표 방지를 위한 유력 후보 결집 효과 실현을 방해했다. 따라서 유 후보의 승리는 국민의힘의 조직적 승리라기보다, 범여권 분열과 단순다수대표제의 기계적 효과가 맞물린 결과에 가까웠다. 부산 북구갑 재보궐선거에 무소속으로 출마했던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도 민주당 하정우 후보를 물리치고 신승했다. 이로써 한 전 대표는 오 시장과 함께 자력으로 정치적 승리를 거뒀다. 지난 2월 한 전 대표 제명을 주도했던 장 대표 등 당권파는 매우 치명적인 내상을 입은 것이다. 통상적인 정치적 관례대로라면 선거에서 대패한 당 대표 등 지도부는 일괄 사퇴의 길을 걷는다. 이후엔 비상대책위원회가 설치돼 당의 혼란을 수습한 후 전당대회를 개최한다. 하지만 일각에선 선거 이전부터 “장 대표는 선거에서 패배하더라도 물러나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지난 3일 SBS 선거 방송에 출연한 홍준표 전 대구시장은 “나는 자유한국당 대표였던 지난 2018년 지방선거 당시 자유한국당 패배를 예고하는 출구조사 발표를 듣는 즉시 사퇴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장 대표는 억울하다고 생각하면서 사퇴하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가 장 대표가 억울해할 것이라고 예상한 이유로는 “상당수 후보들이 장 대표에게 지원을 요청하지 않았으므로 장 대표로서는 할 말이 있다”고 설명했다. 장 대표는 지난 4일에도 사퇴 의사를 밝히지 않았다. 장 대표를 강제로 사퇴시킬 수단은 사실상 없다. 국민의힘 당헌·당규에 따르면, 청년 최고위원을 포함한 선출직 최고위원 5명 중 4명 이상이 사퇴하거나 궐위되면 지도부가 무너진 것으로 간주돼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전환된다. 치열한 혈투 치명적 내상 국민의힘 선출직 최고위원은 신동욱·김민수·양향자·김재원·우재준 최고위원이다. 이들 중 신동욱·김민수·김재원 최고위원은 전반적으로 장 대표와 뜻을 함께하고 있다. 물론 구 친윤(친 윤석열)계가 장 대표의 거취를 어떻게 결정할지에 따라서 신 최고위원과 김재원 최고위원은 유동적인 결정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구 친윤계로서는 장 대표를 섣불리 사퇴시켰다가 오 시장이 당권 장악까지 시도하는 더 큰 강풍을 맞이할 수도 있어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한동안 “구 친윤계가 장 대표를 사퇴시킨 후 신 최고위원을 얼굴로 내세울 수도 있다”는 설이 돌아다녔지만, 말 그대로 설로 끝났다. 장 대표와 구 친윤계가 충돌했던 지난 1~2월에도 충돌했던 핵심 요소는 절윤 등 노선 변경 여부였을 뿐, 장 대표의 거취는 아니었다. 인위적인 지도부 붕괴는 사실상 어렵다. 최고위 자체가 장 대표에겐 벙커로 작용하기 때문에 장 대표가 버티면 끌어낼 수 있는 정상적인 방법을 찾기 어렵다. 하지만 대구·경북·경남을 수성했기 때문에, 대체로 이 지역을 기반으로 삼는 구 친윤계는 참패 속에서도 당내 발언권이 사라지지 않았음을 확인했다. 반대로 대구에서 민주당 김부겸 후보가 45.05%를 득표하는 등 핵심 지역 기반 대구에서도 예전과 다른 정치적 정서가 확인됐다. 따라서 구 친윤계로서는 “지역 기반 수성을 위해 당에 변화를 줘야 할 시점”이라는 판단과 “장 대표가 관례대로 사퇴해야 한다”는 판단이 교차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미 하마평에 올랐던 신 최고위원 등 대안 인물을 찾아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옹립하려 할 가능성이 있다. 현재의 국민의힘은 ‘윤 어게인’ 정서를 등에 업은 강경 보수 세력과 영남권에 기반을 둔 구 친윤계가 양대 축을 형성한 과두적 구조에 가깝다. 이탈리아의 사회학자 로베르트 미헬스는 ‘과두제의 철칙’이라는 개념을 주장했다. 과두제의 철칙은 “조직이 커질수록 민주성을 유지하기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미헬스가 지적했던 근거는 ▲관료화와 분업 ▲대중의 무관심과 무능력 ▲지도부의 권력 독점 등이었다. 이 중 국민의힘에 작용하는 것은 관료화와 권력 독점이라고 할 수 있다. 관료화로 인해 지도부에 권력이 집중되고, 지도부는 권위 유지를 위해 정보·자원을 통제한다. 구 친윤계 대안 옹립? 그간 구 친윤계는 “당의 이익보다 자신의 권력 자산을 보존하려고 한다”는 비판적 평가를 받아왔다. 장 대표가 구 친윤계의 사퇴 공세에 맞설 수단은 당헌·당규가 벙커로 만든 지도부의 견고함밖에 없다. 영남을 수성했기 때문에 국민의힘에서는 역설적으로 큰 혼란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 기반이 영남에 과도하게 집중돼있기 때문에 연이은 선거 패배라는 외부적 충격이 발생할수록 당내 권력구조 강화로 회귀하려는 관성이 작동하기 때문이다. 구 친윤계에 대해서는 “당을 파벌·지역의 이익을 지키기 위한 도구로 활용한다”는 비판이 오랫동안 제기돼왔다. 서울시장 5선에 성공한 오 시장은 지금까지 구 친윤계와 장 대표 모두를 상대해 왔던 한 전 대표와는 다르다. 한 전 대표는 구 친윤계와 강경 보수 성향 지지자들로부터 배신자라는 낙인이 찍혀 있었다. 그가 국민의힘 복당 이후 당권 장악을 거쳐 대권에 도전할 것이란 예상은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다. 하지만 한 전 대표의 복당은 역설적으로 더욱 어려워질 수도 있다. 복당하더라도 국민의힘 내 소수 계파인 친한(친 한동훈)계 수장에 불과하다. 목표로 삼을 당권·대권 도전을 위해선 당내 구 친윤계의 거부감을 누그러트릴 수 있는 정치력을 발휘해야 한다. 따라서 한 전 대표는 당선돼 자력 생존했다고 하더라도 아직은 태풍 속의 찻잔으로 남을 공산이 크다. 사상 최초로 서울시장 5선에 사실상 자력으로 성공한 오 시장이야말로 태풍의 눈이 될 가능성이 높다. 장 대표는 당 대표직 유지와 생존이 급박하기 때문에 수성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 자신이 당 대표이기 때문에 자신의 노선을 변혁하려는 모순을 저지를 수도 없다. 따라서 국민의힘의 차기 권력구도는 오 시장과 구 친윤계가 여러 쟁점을 놓고 충돌하는 양상으로 전개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몇 달 안으로 결정해야 할 논점만 해도 ▲장 대표 등 지도부의 거취 ▲비상대책위원회 설치 여부 및 위원장 임명 ▲새 지도부 선출을 위한 전당대회 개최 시점 등이며, 이것들이 연쇄적으로 이어진다. 최고위는 장 벙커…영남 기반 구 친윤도 셈법 복잡 복당 벽 마주할 한…‘오세훈계’ 편성 당 흔드나 국민의힘 내 수도권 거점은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는 사실상 무너졌다고 봐도 무방한 수준이다. 따라서 오 시장이 잔존한 수도권 내 비친한계 성향 중도보수계열 인사들을 규합해 오세훈계를 구성할 수도 있다. 다만 현실적으로 광역자치단체장이 직접 정당 대표를 맡기는 어렵다. 오 시장으로서는 오세훈계를 구성해 참신한 개혁 이미지를 표방할 수 있는 대리인을 내세울 가능성이 있다. 일각에서는 그 대리인으로, 친한계로 알려졌지만 서울시당위원장으로서 당권파와 겨뤄가면서 오 시장과 호흡을 맞춘 국민의힘 배현진 의원과 서울 내 험지인 도봉갑에서 당선돼 서울시장 선거전에서도 민주당 정 후보 저격 활동에 집중했던 김재섭 의원 등을 거론한다. 이에 맞서 구 친윤계는 전통적인 논리를 동원해 맞설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2016년 이후 영남권 중심 구 친윤계의 논리는 “수도권이야말로 늘 국민의힘 선거 패배의 원흉”이라는 것이었다. 만약 오세훈계가 새롭게 편성된다면, 사안에 따라 오세훈계와 친한계가 구 친윤계의 공세에 공동 대응할 가능성도 있다. 물론 장 대표의 정치적 수명이 이 사태에 아예 참전할 수 없을 정도로 끝난 것은 아니다. 그의 정치적 수명을 연장시킬 수 있는 변수는 이번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투표용지 관리 논란에서 나올 수도 있다. 국민의힘과 개혁신당은 서울 송파구에서 발생한 투표용지 부족 사태를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일각에선 재투표까지 주장하고 있다. 당장 직면한 참패의 여파를 수습하고 당을 뭉치게 하는 데 있어서는 도움이 될 수 있다. 위기를 통제 가능한 외부의 독립된 실체로 분리해 내부적 결집을 추구하는 것이다. 하지만 강경 보수 집단이 영향력을 행사하는 국민의힘에선 오히려 내부를 겨냥한 칼이 될 수도 있다. 섬세하게 다루지 못하면 부정선거론의 영향력이 당 안에서 강해질 수 있고, 역설적으로 장 대표의 영향력이 강해지도록 돕는 생명줄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시선은 대권에? 부정선거론과 장 대표의 영향력 유지가 겹쳐지면, 오 시장과 구 친윤계가 일시적으로 연합해 대응할 수도 있다. 따라서 국민의힘에선 네 갈래 권력 투쟁인 ‘사국지’가 펼쳐질 가능성이 있다. 크게는 영남·강경 노선과 수도권·확장 노선으로 분류된다. 그런데 이를 세부적으로 파고들면, ▲대구·경북 중심 구 친윤계 ▲지도부란 벙커에 있는 친 장동혁계(당권파) ▲친 한동훈계 ▲무계파·수도권 중심 친 오세훈계 등으로 편성될 수도 있다. 계파의 세분화 가능성 중심에는 오 시장이 있다. 태풍의 눈이 된 오 시장은 과연 성공적인 서울시정 수행과 국민의힘 체질 개선에 성공할 수 있을까? 오 시장이 대권에 시선을 두고 있다면, 두 마리의 토끼는 반드시 잡아야 한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