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세계는 “중국 시대가 끝나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를 쏟아냈다. 미국의 반도체 제재와 공급망 재편, 부동산 위기, 청년 실업 문제까지 겹치면서 ‘탈중국’이라는 단어가 국제 경제의 핵심 키워드처럼 떠올랐다. 코로나 이후 중국 경제가 예전만 못하다는 평가도 이어졌다.
서방 언론에서는 ‘중국 피크론’(Peak China)이라는 표현까지 등장했다. 중국이 정점을 찍고 내려오기 시작했다는 분석이었다.
하지만 지금 분위기는 완전히 달라졌다. 최근 베이징 외교가를 보면 오히려 세계 주요 정상들이 중국으로 몰려가고 있다. 유럽 정상들이 연이어 중국을 찾고 있고, 중동 지도자들도 베이징을 방문하고 있다. 러시아는 사실상 중국과 전략 동맹 수준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으며, 동남아 국가들 역시 중국과의 관계를 강화하는 분위기다.
한때 ‘탈중국’을 말하던 나라들조차 이제는 다시 중국과의 연결선을 복원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지난 14일 미중 정상회담은 이런 흐름에 상징적인 장면 하나를 추가했다. 미국 대통령이 직접 베이징을 찾아 시진핑과 마주 앉은 것이다. 세계는 이 장면을 단순한 정상회담 이상으로 받아들였다. “결국 미국도 중국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구나.”
많은 나라들이 그렇게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중국의 외교적 위상이 올라갔다고 평가했다.
과거 중국 황제들은 스스로를 ‘천자(天子)’로 규정하며 주변국 사신과 왕들을 불러들이는 외교 질서를 선호했다. 황제가 직접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주변이 황제를 향해 움직이는 구조였다. 고려와 조선시대에도 중국 황제가 공식 외교 목적으로 국빈 방문한 경우는 거의 없었다. 주변국이 북경으로 향했고, 중국은 그 흐름 자체를 권력의 상징으로 활용했다.
물론 지금은 조공 시대가 아니다. 그러나 최근 세계 정상들이 잇따라 베이징으로 향하는 장면 속에서, ‘천자의 나라’ 네트워크가 다시 만들어지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는 것도 사실이다. 실제로 최근 중국을 방문한 주요 정상들의 흐름만 봐도 분위기가 얼마나 달라졌는지 확인할 수 있다.
지난해 11월에는 스페인 국왕 펠리페 6세가 중국을 방문했다. 스페인 국왕의 방중은 18년 만이었다. 공급망 안정과 투자 협력, 유럽 경제 불안 대응 등이 주요 의제로 논의됐다. 특히 중국 시장 의존도가 높은 유럽 기업들의 이해관계까지 맞물리면서, 단순한 의전 차원을 넘어선 경제 외교 행보로 해석됐다.
이어 같은 해 12월에는 프랑스의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중국을 찾았다. 그는 베이징뿐 아니라 청두까지 방문하며 첨단산업과 지방 경제 현장까지 둘러봤다. 유럽 내부에서 “미국만 바라봐서는 경제를 유지하기 어렵다”는 현실론이 강해지고 있다는 분석도 나왔다.
지난 1월에는 영국의 키어 스타머 총리가 방중했다. 브렉시트 이후 성장 둔화에 시달리는 영국 입장에서 중국 시장은 여전히 포기하기 어려운 카드다. 금융·친환경 산업·배터리 공급망 협력이 주요 의제로 거론됐다.
같은 달에는 한국의 이재명 대통령도 중국을 방문했다. 취임 이후 첫 방중이라는 상징성 속에서 공급망과 경제협력, 한중 관계 복원 문제가 논의됐다. 미국의 핵심 동맹국인 한국조차 중국과의 직접 소통을 강화하는 모습은 국제사회에서도 적지 않은 주목을 받았다.
지난 4월에는 스페인 총리 페드로 산체스가 다시 중국을 방문했다. 불과 몇 달 사이 국왕과 총리가 연이어 베이징을 찾은 셈이다. 같은 시기 베트남의 또 럼 지도자도 중국을 방문해 공급망 협력과 공산당 간 전략 협력을 논의했다. UAE 아부다비 왕세자 칼리드 빈 모하메드 알 나흐얀 역시 중국을 찾아 에너지·투자·AI 협력 확대를 논의했다.
흥미로운 것은 중국을 찾는 국가들 상당수가 미국과 안보 협력을 유지하는 나라들이라는 점이다. 유럽도, 한국도, 중동도 이제는 미국과의 관계를 유지하면서 동시에 중국과의 경제 연결을 강화하는 ‘이중 축 외교’로 이동하고 있다. 세계가 더 이상 미국 아니면 중국이라는 단순한 선택 구조로 움직이지 않기 시작한 것이다.
5월엔 가장 상징적인 장면이 나왔다.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이 베이징을 방문한 것이다. 미중 무역, 대만 문제, 호르무즈 해협과 이란 문제까지 논의된 이번 정상회담은 단순한 외교 이벤트가 아니었다. 세계는 이 회담을 통해 미국조차 중국과 직접 협상하지 않고는 국제질서를 관리하기 어려운 상황에 들어섰다는 점을 다시 확인했다.
특히 대만 문제를 둘러싼 장면은 아시아 외교 지형 전체를 흔들었다. 시진핑은 미국의 대만 개입 문제에 대해 강한 메시지를 냈고, 트럼프는 과거처럼 즉각적이고 강경한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 바로 이 지점에서 각국은 다시 계산하기 시작했다. “미국은 실제로 어디까지 개입할 것인가.”
일본이 곧바로 미국과의 공조 확인에 나선 것도 이런 흐름과 무관하지 않다.
일본은 미중 사이의 상황을 가볍게 보지 않았다. 미국의 신호가 흔들린다고 느끼자 곧바로 움직이며 외교적 공간 확보에 나섰다. 실제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는 미중 회담 직후인 15일 트럼프와 통화해 미일 공조를 재확인했다. 그는 “외부에 공개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여러 이야기를 나눴다”며 “흔들림 없는 미·일 동맹을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중국 입장에서는 이번 회담이 매우 중요했다. 단순히 미국 대통령을 초청한 것이 아니라, 세계에 “중국은 미국과 대립만 하는 나라가 아니라 미국조차 찾아와 협상해야 하는 나라”라는 이미지를 보여준 셈이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워싱턴이 세계 외교의 중심이었다면, 이제는 베이징 역시 글로벌 협상의 중심축 중 하나로 올라서기 시작했다는 인상을 국제사회에 심은 것이다.
여기에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파키스탄의 셰바즈 샤리프 총리까지 잇따라 방중이 예상되면서 베이징 외교의 상징성은 더 커지고 있다. 중국 관영 <글로벌타임스>와 러시아 <타스 통신> 등에 따르면 오는 20일 푸틴 대통령의 방중이 예상된다. 파키스탄 샤리프 총리 역시 에너지·디지털 연결·중동 정세 협력을 주요 의제로 오는 24일 중국 방문이 예상된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중동 긴장이 동시에 이어지는 상황에서, 미중 정상회담 직후 러시아와 파키스탄 지도자들까지 연이어 베이징을 찾는 흐름은 단순한 외교 일정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중국이 미국 중심 일극 체제에 맞서 새로운 외교 네트워크의 중심축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신호처럼 읽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시진핑은 이번 미중 정상회담에서 트럼프를 향해 ‘투키디데스의 함정’을 언급하며 G2 공존 가능성을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흥 강대국과 기존 패권국이 반드시 충돌할 필요는 없다는 메시지다. 홍콩 <SCMP> 역시 “중국이 미국과 러시아 정상을 같은 시기에 동시에 상대하는 장면은 매우 이례적”이라고 평가했다.
물론 그렇다고 중국이 곧바로 미국을 대체하는 것은 아니다. 첨단 반도체, 기축통화, 글로벌 군사동맹 체계에서는 여전히 미국 우위가 강하다. 달러 체제와 NATO 중심 안보 구조 역시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세계가 이제 더 이상 ‘미국 단독 질서’만으로 움직이지 않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 틈에서 중국이 자신의 외교적 공간을 빠르게 넓혀가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 내부에서는 이런 흐름을 자국 영향력 확대의 상징으로 해석하는 분위기다. 중국은 이제 단순한 제조 대국을 넘어 국제질서를 조정하는 협상 공간 자체가 되려 하고 있다. 과거 중국 외교가 경제 중심이었다면, 지금 중국은 에너지·AI·반도체·공급망·금융 결제·해상 물류·중동 중재까지 모두 건드리고 있다. 국제질서를 움직이는 핵심 영역마다 중국의 영향력이 들어가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중동이 결정적이다. 호르무즈 해협 긴장과 국제유가 불안 속에서 중국은 세계 최대 원유 소비국 중 하나다. 사우디·이란·UAE 입장에서도 중국 시장은 절대 포기할 수 없다. 미국이 군사 질서를 장악하고 있다면, 중국은 시장과 소비를 장악하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중동 국가들도 이제는 미국만 바라보지 않는다. 안보는 미국과 협력하되 경제는 중국과 연결하는 균형 외교를 본격화하고 있다. 유럽 역시 마찬가지다. 안보는 미국과 유지하되, 중국 시장은 포기할 수 없다는 현실론이 강해지고 있다. 독일 자동차 산업의 중국 의존도는 여전히 높고, 프랑스 역시 친환경·항공·명품 산업에서 중국 소비시장을 무시하기 어렵다.
결국 세계는 지금 ‘미국 아니면 중국’을 선택하는 시대에서, 미국과 중국을 동시에 활용하려는 시대로 이동하고 있다. 그리고 중국은 바로 이 틈을 파고들고 있다. 세계 정상들을 베이징으로 불러들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중국은 지금 세계 공장을 넘어 ‘세계 질서의 한 축’으로 인정받으려 하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지금 베이징에서 벌어지는 장면의 본질은 단순한 외교 이벤트가 아닐지도 모른다. 세계는 다시 하나의 중심을 향해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여러 중심이 공존하는 다극 질서로 이동하고 있다.
과거 천하의 길이 장안과 북경으로 향했듯, 지금 세계의 외교 동선 역시 다시 베이징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중국은 바로 그 틈에서, 다시 ‘천자의 나라’처럼 세계 정상들을 불러들이며 새로운 질서의 중심축이 되려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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