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삼기의 시사펀치> 노화의 종말, 장(腸)의 시대 열린다

세포 리셋과 <감정시계>, 인간 회복의 출발점은 어디인가

지난 1월15일, 미국 FDA가 하버드의대 데이비드 싱클레어 박사가 이끄는 생명공학 기업 Life Biosciences의 세포 리프로그래밍 기반 시신경 치료제 임상 1상을 허가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많은 사람들은 AI와 반도체, 국제 정세 뉴스 속에서 이 소식을 스쳐 지나갔다. 그러나 생명과학계는 이날을 꽤 상징적인 순간으로 받아들였다.

FDA가 연 ‘세포 리셋 시대’

“인간의 노화를 되돌릴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 공상과학의 영역에서 실제 의학의 영역으로 넘어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최근 필자는 두루원 미생물연구소가 정리한 전략기획 보고서를 접했다. “노화의 종말, 세포 리셋 시대가 온다”라는 제목부터 강렬했다. 단순한 건강 정보 수준의 자료가 아니었다. 세포 초기화와 줄기세포, 장내 미생물과 후성유전학, 재생의학과 인간 수명 구조를 하나의 흐름으로 엮어낸 미래 보고서에 가까웠다.

특히 “세포 리셋 기술이 문을 두드릴 그날, 당신의 몸은 과연 준비되어 있을 것인가”라는 문장이 오래 남았다. 인류가 AI를 만들어낼 만큼 기술을 발전시켰지만, 정작 그 기술을 사용할 몸 자체는 빠르게 무너지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오래전부터 젊음을 되돌리려 했다. 진시황은 불로초를 찾았고, 중세 귀족들은 젊은 피에 집착했다. 그러나 대부분 실패했다. 인간의 몸을 하나의 통합 시스템으로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생명공학은 방향 자체가 달라졌다. 몸 전체를 억지로 바꾸려는 시대에서 벗어나, 세포와 장 환경을 하나씩 복원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세포 리셋 기술의 출발점에는 줄기세포 혁명이 있다. 1962년 영국의 John Gurdon은 개구리 핵치환 실험을 통해 이미 분화된 세포도 다시 초기 상태로 돌아갈 수 있다는 가능성을 세계 최초로 증명했다. 이후 교토대학의 Shinya Yamanaka 교수는 피부세포에 특정 유전자를 주입해 배아 상태와 유사한 iPS세포로 되돌리는 기술과 야마나카 인자(OSKM)를 규명했다. 두 사람은 이 공로로 2012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공동 수상했다.

그 이후 Life Biosciences는 야마나카 인자 중 암 발병 위험이 높은 M(c-Myc) 인자를 제외한 OSK 인자(Oct4, Sox2, Klf4)만을 전략적으로 활용해 인간 세포를 20~25세 수준으로 부분 초기화하는 연구를 진행해 왔다. 그리고 마침내 FDA가 올해 1월 인체 실험을 허가한 것이다.

세계 의학은 왜 다시 장으로 가는가

세포 리셋까지 남은 골든타임은 약 10년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 시간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 노화된 세포가 다시 젊은 상태로 되돌아가려면 단순히 유전자 기술만 발전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새로운 유전자 정보를 안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깨끗하고 건강한 세포 환경이 먼저 만들어져야 한다. 최근 생명과학계가 그 핵심 공간으로 주목하는 곳이 바로 장(腸)이다.

우리가 흔히 ‘똥’이라고 부르는 것은 단순한 배설물이 아니라, 몸속 미생물 생태계의 결과물이자 건강 상태를 보여주는 신호다. 한국인의 하루 평균 배변량은 약 200g이다. 이 200g의 변 속에는 약 38조개의 장내 미생물이 산다. 이 미생물들은 식이섬유를 분해해 ‘기적의 물질’이라 불리는 뷰티르산(Butyric acid) 같은 단쇄지방산을 만들어낸다. 이 물질은 장 상피세포를 튼튼하게 할 뿐만 아니라, 인체 30조 개 세포 전반에 오토파지(세포 청소)를 유도한다.

결국 세포를 25세로 되돌리는 시대가 오더라도, 그 세포를 담아낼 몸의 환경은 장과 똥의 품질에서 출발한다.

인류는 오랫동안 장을 단순한 소화기관 정도로만 여겨왔고, 똥 역시 몸 밖으로 버려지는 더러운 배설물쯤으로 취급됐다. 그러나 현대 의학과 생명과학은 이제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장이 면역과 염증, 감정, 노화, 심지어 뇌 기능까지 연결된 인체의 핵심 시스템이라는 사실이 하나둘 밝혀지면서다. 그리고 하찮게 여겨졌던 똥 역시 장내 미생물 상태를 보여주는 중요한 생체 정보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흥미로운 것은 한국에서 이 흐름을 오래전부터 주창해 온 인물이 있다는 점이다. 두루원의 송종섭 회장이다. 대중에게는 ‘똥박사’ ‘똥기사‘라는 별명으로 잘 알려져 있지만, 그는 수십년 동안 장내 미생물과 발효, 배변과 장 건강의 중요성을 일관되게 강조해 왔다.

처음에는 “왜 그렇게까지 배변과 장 이야기를 하느냐”는 반응도 적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자 분위기는 달라졌다. 지금 글로벌 제약사와 바이오 기업들이 수조원을 쏟아붓는 분야가 바로 장내 미생물 시장이다. 과거에는 우스갯소리처럼 들렸던 이야기가 이제는 미래 의학의 핵심 산업으로 부상하고 있다.

지난해 5월3일 열린 제7회 ‘똥의 날’ 기념식에서는 이 철학이 상징적으로 드러났다. 두루원은 높이 185cm 규모의 ‘황금똥 동상’ 제막식을 진행했고, 송종섭 회장은 이렇게 말했다. “더 굵고, 더 부드럽고, 더 매력적인 똥을 만드는 것이야말로 노화의 종말, 세포 리셋 시대를 준비하는 가장 중요한 건강법이다.”

많은 사람들이 웃고 지나쳤을지 모른다. 그러나 어쩌면 인류는 지금 가장 원초적인 배설 행위 속에서 다시 생명의 본질을 발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현대 사회는 생산과 축적에는 익숙하지만, 순환과 배출에는 서툴다. 자연은 순환하지 못하면 반드시 썩는다. 인간의 몸도 마찬가지다.

<감정시계>와 ‘장 피로 사회’

여기서 더 큰 흐름 하나가 연결된다. 바로 인간의 감정과 장의 관계다. 서울대 정신의학과 교수 출신 강도형 박사는 저서 <감정시계>에서 “감정은 장에서 시작된다”고 설명한다. 많은 사람들은 감정을 뇌의 문제로 생각하지만, 그는 인간 감정의 상당 부분이 장 상태와 연결돼 있다고 본다. 장 환경이 무너지면 감정의 리듬도 함께 흔들릴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의학계는 장을 ‘제2의 뇌’라 부른다. 행복 관련 신경전달물질인 세로토닌의 90% 이상이 장에서 생성된다는 연구도 나오고 있다. 장내 미생물의 변화가 불안과 우울, 스트레스와 연결될 수 있다는 연구 또한 빠르게 축적되고 있다.

뇌와 장의 중요한 차이는 접근 가능성에 있다. 뇌는 한번 손상되면 치료가 매우 어렵다. 구조 자체가 복잡하고 직접 접근도 쉽지 않다. 치매와 우울증, 파킨슨병이 아직 완전한 치료가 어려운 이유도 여기에 있다. 반면 장은 다르다. 음식과 발효, 유산균, 생활습관 개선을 통해 비교적 직접적으로 관리할 수 있다.

그래서 최근에는 “뇌를 치료하기 전에 먼저 장을 관리해야 한다”는 흐름이 의학계 안팎에서 확산되고 있다.

생각해보면 현대인은 과거보다 더 많이 먹고 더 편하게 산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더 예민하고 더 불안하다. 하루 종일 스마트폰 알림 속에 갇혀 살고, 끊임없는 경쟁과 스트레스 속에서 감정이 쉬질 못한다. 머리는 과열됐지만 장은 지쳐 있다. 정보는 넘치지만 회복은 사라졌다. 어쩌면 현대인의 병은 단순한 피로가 아니라 ‘장 피로 사회’ 자체인지도 모른다.

인간은 왜 마지막에서 진실을 확인하는가

인간은 가장 더럽다고 여기는 곳에서 가장 정확한 진실을 발견해 왔다. 미국 정보기관이 외국 정상의 배설물을 확보해 건강 상태를 분석하려 했다는 이야기는 오래전부터 알려져 있다. 냉전 시기에는 소련 지도부의 건강 상태를 파악하기 위해 변과 소변 정보를 분석했다는 보도도 있었다. 인간의 입은 거짓말을 해도, 배설물은 거짓말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수사기관 역시 하수종말처리장의 물을 분석해 특정 지역의 마약 성분 농도를 추적한다. 인간이 버린 흔적 속에서 사회의 숨겨진 민낯을 읽어내는 것이다. 결국 인간은 가장 마지막 결과물에서 가장 솔직한 진실을 드러낸다.

미래 의학의 핵심은 단순히 오래 사는 것이 아니다. 얼마나 건강하게, 얼마나 안정된 감정 상태로 오래 사느냐가 더 중요해질 것이다. 그런 점에서 두루원이 던지는 메시지는 단순한 장 건강 차원을 넘어선다. 세포 리셋과 줄기세포, 장내 미생물과 감정 회복, 건강수명과 인간 유지 산업으로 이어지는 하나의 미래 질문이다.

의학이 발달하기 전, 인류는 심장이 인간의 중심이라고 생각했다. 이후에는 뇌가 중심이라고 봤다. 그런데 이제 의학은 다시 장으로 시선을 돌리고 있다. 인간 몸의 면역과 감정, 노화와 회복이 모두 장과 연결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장내 환경 변화가 인간의 정신 건강과 면역 체계에 큰 영향을 준다는 연구도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토양 생명체의 시작은 토양 미생물이다. 강과 바다의 수중 생명체 역시 수중 미생물에서 비롯된다. 녹조와 적조 현상 속에서는 어떤 생명체도 건강하게 살아갈 수 없다. 인간의 장내 미생물도 마찬가지다. 장내 생태계 균형이 무너지기 시작하면 결국 몸 전체의 회복력 역시 함께 흔들릴 가능성이 커진다.

똥의 양과 품질은 장내 미생물이 얼마나 건강하게 살아가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그리고 장내 미생물에 의해 뇌세포를 포함한 인체 30조 개 세포 하나하나가 살아간다. 똥은 장-뇌 축(Gut-Brain Axis)의 핵심이자 인간 회복의 출발점이다. 결국 인간 건강의 본질은 몸속 미생물 생태계를 어떻게 유지하느냐에 달려 있을지도 모른다.

유전과학이 이끄는 ‘25세로 되돌리는 부분적 역노화 세포 리셋’ 기술의 상용화는 앞으로 10년 안팎으로 다가왔다. 생각보다 훨씬 가까운 미래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에게 남은 골든타임 10년의 준비 역시 장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 장의 상태를 보여주는 결과물이 똥이다.

인류는 이제 가장 오래 소홀히 다뤄왔던 장과, 가장 오래 외면해 왔던 똥 속에서 다시 젊음과 회복의 실마리를 찾게 될지도 모른다.

<skkim5961@naver.com>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태풍의 눈’ 오세훈 차기 대선 로드맵

‘태풍의 눈’ 오세훈 차기 대선 로드맵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오세훈 서울시장이 5선에 성공했다. 하지만 국민의힘은 참패했다. 국민의힘의 수도권 참패 기류 속에서 홀로 승리한 오 시장은 국민의힘에 불어올 태풍의 눈이 될 것이다. 과연 오 시장은 성공적인 시정과 국민의힘 체질 개선이란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을까? 국민의힘은 6·3 지방선거에서 참패했다. 지난 4일 오전 개표 결과, 국민의힘은 광역자치단체장 기준 서울·대구·경북·경남 등 4곳 수성에 그쳤다. 전반적으로 전통적인 지지자들의 지원에 힘입어 최소한의 수성을 한 것으로 보인다. ‘졌잘싸’ 최소 수성 이로써 오세훈 서울시장은 사상 첫 5선에 성공했다. 오 시장은 48.94%를 득표해 48.34%를 득표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원오 후보를 가까스로 물리쳤다. 방송사들의 출구조사에서는 정 후보가 오 시장을 약 5% 앞설 것이라는 예상이 나왔지만, 개표 후 13시간이 지난 시각부터 정 후보를 역전해 신승을 거뒀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3월 이후 역동적으로 중앙정치에 개입했다. 공천 과정에서는 후보 등록을 거부하면서 ‘윤 어게인’에 기반한 강경 보수 노선을 유지하려는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 체제에 반기를 들었다. 이어 당에 절윤(윤 전 대통령과의 절연) 선언을 요구했고, 국민의힘은 의원총회를 개최해 “윤석열 전 대통령의 정치적 복귀에 반대한다”는 등 절윤 결의문을 채택했다. 이후에도 오 시장은 당과 거리두기를 멈추지 않았다. 오 시장이 후보 등록을 거부하면서 요구했던 것 중 하나는 혁신 선거대책위원회 설치였으나 실현되지 않았다. 그러자 오 시장은 한동안 당의 상징색인 빨간색이 아닌 흰색 점퍼 차림으로 현장을 누볐다. 그는 장 대표의 지원 유세를 거절하기도 했다. 지난 4월 진행된 국민의힘 서울시당 필승결의대회와 지난달 12일 진행된 서울시당 선대위 발대식 모두에 장 대표를 초청하지 않았다. 오 시장이 장 대표의 지원 유세를 거절한 취지는 “마음은 고맙지만 필요 없다”는 것이었다. 오 시장은 지난 3월27일 SBS 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에 출연해 “저도 장 대표를 모시고 싶다. 변신한 모습으로 지원 와 주시길 촉구한다”며 “국민의힘 자체가 중도 확장성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후 오 시장은 서울시당을 배경으로 서울 내 자치구를 둔 의원들과 함께 선대위를 구성해 독자적으로 선거를 치렀다. 그리고 5선에 성공했다. 오 시장의 승리는 정치학적으로 정치의 개인화 현상이라고 평가할 만하다. 정치의 개인화는 정당 등 집단적 배경이 아닌 정치인 개인의 리더십 등 이미지가 정치 과정의 핵심이 되는 현상을 말한다. 전통적인 지지 세력 외엔 국민의힘이라는 브랜드가 호감을 얻지 못하는 상황에서 유권자는 국민의힘과 오 시장을 분리해서 평가한 후 오 시장을 지지했다. 국민의힘이라는 정당 브랜드가 오 시장에게 도움이 되기보다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었다. 따라서 오 시장은 당과 거리를 두면서 개인 지지 기반이 잠식되는 것을 최대한 막은 셈이다. 지방선거와 함께 진행된 경기 평택을 보궐선거에서는 국민의힘 유의동 후보가 승리했다. 유 후보는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의 지지 선언 외에는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다. 언론이 주목한 핵심은 더불어민주당 김용남 후보와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의 갈등·상호 폭로였다. 유 후보의 승리는 범여권의 내분 속에서 어부지리 효과를 거둔 것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뒤베르제 법칙에 따르면, 단순다수대표제와 소선거구제는 양당제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김 후보와 조 대표가 단일화에 성공했다면, 유 후보를 상대로 여유 있게 승리했을 가능성이 있었다. 참패 속 홀로 선 오…당과 거리 두고 5선 신승 유 어부지리·한 자력 생존…장동혁 책임론 불씨 하지만 두 후보가 화합하지 못하면서 평택을 선거구도는 다당제로 전개됐다. 김 후보와 조 대표가 각각 일정한 경쟁력을 가진 채 분열했기 때문에 범여권 지지자의 표심은 사실상 양분됐다. 반면 자유와혁신 황교안 후보는 김 후보와 조 후보만 한 경쟁력을 갖지 못해 유 후보의 표를 결정적으로 잠식하지는 못했다. 김 후보·조 후보·진보당 김재연 상임대표 등 진보 성향 범여권 후보들은 각각 28.77%·27.44%·2.95%를 득표했다. 반면 유 후보는 34.83%를, 황 후보는 6.19%를 득표했다. 이 때문에 유 후보는 다수 대결 구도 속 승자가 될 수 있었다. 평택을 결과는 뒤베르제 법칙의 기계적 효과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보여줬다. 단순다수대표제에서는 1표라도 더 얻은 후보가 의석을 차지한다. 유 후보는 34.83%를 득표하는 데 그쳤지만, 범여권 후보들이 분열하면서 의석을 차지할 수 있었다. 범여권 후보의 분열은 뒤베르제 법칙이 기대하는 심리적 효과인 사표 방지를 위한 유력 후보 결집 효과 실현을 방해했다. 따라서 유 후보의 승리는 국민의힘의 조직적 승리라기보다, 범여권 분열과 단순다수대표제의 기계적 효과가 맞물린 결과에 가까웠다. 부산 북구갑 재보궐선거에 무소속으로 출마했던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도 민주당 하정우 후보를 물리치고 신승했다. 이로써 한 전 대표는 오 시장과 함께 자력으로 정치적 승리를 거뒀다. 지난 2월 한 전 대표 제명을 주도했던 장 대표 등 당권파는 매우 치명적인 내상을 입은 것이다. 통상적인 정치적 관례대로라면 선거에서 대패한 당 대표 등 지도부는 일괄 사퇴의 길을 걷는다. 이후엔 비상대책위원회가 설치돼 당의 혼란을 수습한 후 전당대회를 개최한다. 하지만 일각에선 선거 이전부터 “장 대표는 선거에서 패배하더라도 물러나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지난 3일 SBS 선거 방송에 출연한 홍준표 전 대구시장은 “나는 자유한국당 대표였던 지난 2018년 지방선거 당시 자유한국당 패배를 예고하는 출구조사 발표를 듣는 즉시 사퇴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장 대표는 억울하다고 생각하면서 사퇴하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가 장 대표가 억울해할 것이라고 예상한 이유로는 “상당수 후보들이 장 대표에게 지원을 요청하지 않았으므로 장 대표로서는 할 말이 있다”고 설명했다. 장 대표는 지난 4일에도 사퇴 의사를 밝히지 않았다. 장 대표를 강제로 사퇴시킬 수단은 사실상 없다. 국민의힘 당헌·당규에 따르면, 청년 최고위원을 포함한 선출직 최고위원 5명 중 4명 이상이 사퇴하거나 궐위되면 지도부가 무너진 것으로 간주돼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전환된다. 치열한 혈투 치명적 내상 국민의힘 선출직 최고위원은 신동욱·김민수·양향자·김재원·우재준 최고위원이다. 이들 중 신동욱·김민수·김재원 최고위원은 전반적으로 장 대표와 뜻을 함께하고 있다. 물론 구 친윤(친 윤석열)계가 장 대표의 거취를 어떻게 결정할지에 따라서 신 최고위원과 김재원 최고위원은 유동적인 결정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구 친윤계로서는 장 대표를 섣불리 사퇴시켰다가 오 시장이 당권 장악까지 시도하는 더 큰 강풍을 맞이할 수도 있어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한동안 “구 친윤계가 장 대표를 사퇴시킨 후 신 최고위원을 얼굴로 내세울 수도 있다”는 설이 돌아다녔지만, 말 그대로 설로 끝났다. 장 대표와 구 친윤계가 충돌했던 지난 1~2월에도 충돌했던 핵심 요소는 절윤 등 노선 변경 여부였을 뿐, 장 대표의 거취는 아니었다. 인위적인 지도부 붕괴는 사실상 어렵다. 최고위 자체가 장 대표에겐 벙커로 작용하기 때문에 장 대표가 버티면 끌어낼 수 있는 정상적인 방법을 찾기 어렵다. 하지만 대구·경북·경남을 수성했기 때문에, 대체로 이 지역을 기반으로 삼는 구 친윤계는 참패 속에서도 당내 발언권이 사라지지 않았음을 확인했다. 반대로 대구에서 민주당 김부겸 후보가 45.05%를 득표하는 등 핵심 지역 기반 대구에서도 예전과 다른 정치적 정서가 확인됐다. 따라서 구 친윤계로서는 “지역 기반 수성을 위해 당에 변화를 줘야 할 시점”이라는 판단과 “장 대표가 관례대로 사퇴해야 한다”는 판단이 교차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미 하마평에 올랐던 신 최고위원 등 대안 인물을 찾아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옹립하려 할 가능성이 있다. 현재의 국민의힘은 ‘윤 어게인’ 정서를 등에 업은 강경 보수 세력과 영남권에 기반을 둔 구 친윤계가 양대 축을 형성한 과두적 구조에 가깝다. 이탈리아의 사회학자 로베르트 미헬스는 ‘과두제의 철칙’이라는 개념을 주장했다. 과두제의 철칙은 “조직이 커질수록 민주성을 유지하기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미헬스가 지적했던 근거는 ▲관료화와 분업 ▲대중의 무관심과 무능력 ▲지도부의 권력 독점 등이었다. 이 중 국민의힘에 작용하는 것은 관료화와 권력 독점이라고 할 수 있다. 관료화로 인해 지도부에 권력이 집중되고, 지도부는 권위 유지를 위해 정보·자원을 통제한다. 구 친윤계 대안 옹립? 그간 구 친윤계는 “당의 이익보다 자신의 권력 자산을 보존하려고 한다”는 비판적 평가를 받아왔다. 장 대표가 구 친윤계의 사퇴 공세에 맞설 수단은 당헌·당규가 벙커로 만든 지도부의 견고함밖에 없다. 영남을 수성했기 때문에 국민의힘에서는 역설적으로 큰 혼란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 기반이 영남에 과도하게 집중돼있기 때문에 연이은 선거 패배라는 외부적 충격이 발생할수록 당내 권력구조 강화로 회귀하려는 관성이 작동하기 때문이다. 구 친윤계에 대해서는 “당을 파벌·지역의 이익을 지키기 위한 도구로 활용한다”는 비판이 오랫동안 제기돼왔다. 서울시장 5선에 성공한 오 시장은 지금까지 구 친윤계와 장 대표 모두를 상대해 왔던 한 전 대표와는 다르다. 한 전 대표는 구 친윤계와 강경 보수 성향 지지자들로부터 배신자라는 낙인이 찍혀 있었다. 그가 국민의힘 복당 이후 당권 장악을 거쳐 대권에 도전할 것이란 예상은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다. 하지만 한 전 대표의 복당은 역설적으로 더욱 어려워질 수도 있다. 복당하더라도 국민의힘 내 소수 계파인 친한(친 한동훈)계 수장에 불과하다. 목표로 삼을 당권·대권 도전을 위해선 당내 구 친윤계의 거부감을 누그러트릴 수 있는 정치력을 발휘해야 한다. 따라서 한 전 대표는 당선돼 자력 생존했다고 하더라도 아직은 태풍 속의 찻잔으로 남을 공산이 크다. 사상 최초로 서울시장 5선에 사실상 자력으로 성공한 오 시장이야말로 태풍의 눈이 될 가능성이 높다. 장 대표는 당 대표직 유지와 생존이 급박하기 때문에 수성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 자신이 당 대표이기 때문에 자신의 노선을 변혁하려는 모순을 저지를 수도 없다. 따라서 국민의힘의 차기 권력구도는 오 시장과 구 친윤계가 여러 쟁점을 놓고 충돌하는 양상으로 전개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몇 달 안으로 결정해야 할 논점만 해도 ▲장 대표 등 지도부의 거취 ▲비상대책위원회 설치 여부 및 위원장 임명 ▲새 지도부 선출을 위한 전당대회 개최 시점 등이며, 이것들이 연쇄적으로 이어진다. 최고위는 장 벙커…영남 기반 구 친윤도 셈법 복잡 복당 벽 마주할 한…‘오세훈계’ 편성 당 흔드나 국민의힘 내 수도권 거점은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는 사실상 무너졌다고 봐도 무방한 수준이다. 따라서 오 시장이 잔존한 수도권 내 비친한계 성향 중도보수계열 인사들을 규합해 오세훈계를 구성할 수도 있다. 다만 현실적으로 광역자치단체장이 직접 정당 대표를 맡기는 어렵다. 오 시장으로서는 오세훈계를 구성해 참신한 개혁 이미지를 표방할 수 있는 대리인을 내세울 가능성이 있다. 일각에서는 그 대리인으로, 친한계로 알려졌지만 서울시당위원장으로서 당권파와 겨뤄가면서 오 시장과 호흡을 맞춘 국민의힘 배현진 의원과 서울 내 험지인 도봉갑에서 당선돼 서울시장 선거전에서도 민주당 정 후보 저격 활동에 집중했던 김재섭 의원 등을 거론한다. 이에 맞서 구 친윤계는 전통적인 논리를 동원해 맞설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2016년 이후 영남권 중심 구 친윤계의 논리는 “수도권이야말로 늘 국민의힘 선거 패배의 원흉”이라는 것이었다. 만약 오세훈계가 새롭게 편성된다면, 사안에 따라 오세훈계와 친한계가 구 친윤계의 공세에 공동 대응할 가능성도 있다. 물론 장 대표의 정치적 수명이 이 사태에 아예 참전할 수 없을 정도로 끝난 것은 아니다. 그의 정치적 수명을 연장시킬 수 있는 변수는 이번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투표용지 관리 논란에서 나올 수도 있다. 국민의힘과 개혁신당은 서울 송파구에서 발생한 투표용지 부족 사태를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일각에선 재투표까지 주장하고 있다. 당장 직면한 참패의 여파를 수습하고 당을 뭉치게 하는 데 있어서는 도움이 될 수 있다. 위기를 통제 가능한 외부의 독립된 실체로 분리해 내부적 결집을 추구하는 것이다. 하지만 강경 보수 집단이 영향력을 행사하는 국민의힘에선 오히려 내부를 겨냥한 칼이 될 수도 있다. 섬세하게 다루지 못하면 부정선거론의 영향력이 당 안에서 강해질 수 있고, 역설적으로 장 대표의 영향력이 강해지도록 돕는 생명줄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시선은 대권에? 부정선거론과 장 대표의 영향력 유지가 겹쳐지면, 오 시장과 구 친윤계가 일시적으로 연합해 대응할 수도 있다. 따라서 국민의힘에선 네 갈래 권력 투쟁인 ‘사국지’가 펼쳐질 가능성이 있다. 크게는 영남·강경 노선과 수도권·확장 노선으로 분류된다. 그런데 이를 세부적으로 파고들면, ▲대구·경북 중심 구 친윤계 ▲지도부란 벙커에 있는 친 장동혁계(당권파) ▲친 한동훈계 ▲무계파·수도권 중심 친 오세훈계 등으로 편성될 수도 있다. 계파의 세분화 가능성 중심에는 오 시장이 있다. 태풍의 눈이 된 오 시장은 과연 성공적인 서울시정 수행과 국민의힘 체질 개선에 성공할 수 있을까? 오 시장이 대권에 시선을 두고 있다면, 두 마리의 토끼는 반드시 잡아야 한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