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삼기의 시사펀치> 호르무즈 이후 열린 카스피해

이란 새 생명선 세계 최대 내륙해, 유라시아 질서 바꾸다

카스피해는 바다가 아니지만 바다처럼 움직인다. 이름에는 ‘해’가 붙어 있지만, 대양과 직접 연결되지 않은 세계 최대 내륙 수역이다. 유럽과 아시아의 경계에 놓여 있고, 북쪽으로는 러시아와 카자흐스탄, 동쪽으로는 투르크메니스탄, 남쪽으로는 이란, 서쪽으로는 아제르바이잔이 둘러싸고 있다.

지도 위에서 보면 카스피해가 닫힌 호수처럼 보이지만, 국제정치의 눈으로 보면 닫힌 호수가 아니라 열린 통로다.

카스피해의 중요성은 바로 이 모순에서 나온다. 바깥 바다와 직접 연결되지 않았기 때문에 외부 세력의 군사 진입은 제한된다. 반대로 연안국들끼리는 선박과 항만, 철도와 도로를 연결해 자신들만의 물류 질서를 만들 수 있다. 2018년 카스피해 법적 지위 협약은 카스피해 문제를 연안 5개국의 배타적 권한으로 규정했고, 외부 군대의 주둔을 금지하는 원칙도 담았다.

이 구조가 지금 이란에 새로운 의미를 주고 있다. 이란은 전통적으로 페르시아만과 호르무즈 해협을 통해 세계와 연결돼 왔다. 그러나 호르무즈가 막히거나 위험해지는 순간, 이란 경제는 남쪽 바다에서 병목을 맞는다. 그때 북쪽의 카스피해가 등장한다.

러시아 남부와 볼가강 유역에서 출발한 물자가 카스피해를 건너 이란 북부 항구로 들어오고, 다시 철도와 도로를 통해 테헤란과 남부 지역으로 내려간다. 이것이 바로 국제남북교통회랑, 즉 INSTC의 핵심 구도다. 이 회랑은 인도양·페르시아만에서 이란을 거쳐 카스피해로 올라가고, 다시 러시아를 통해 상트페테르부르크와 북유럽으로 연결되는 복합 물류망이다.

특히 최근 카스피해는 미국의 해상 봉쇄와 군사 압박을 받는 이란의 군수·전략 물자 우회 통로로까지 부각되고 있다. 지난 9일 <뉴욕타임스>(<NYT>)는 이스라엘이 최근 이란 북부 반다르안잘리 항구 인근 해군사령부를 공습해 해군 함정 여러 척을 파괴했다고 보도했다.

공습 지점은 카스피해 연안이었다. NYT는 카스피해가 러시아와 이란을 연결하는 새로운 핵심 교역·보급로로 떠오르고 있다고 평가했다.

미국 당국에 따르면 러시아는 최근 전투 과정에서 드론 전력의 상당 부분을 잃은 이란에 드론 부품을 카스피해 경로로 공급하고 있으며, 이란 역시 식량과 필수 물자 수입을 북방 항로로 빠르게 전환하고 있다. 이란 국영방송 IRIB는 이란 식품산업협회장이 “카스피해 연안 이란 항구 4곳이 밀·옥수수·사료·해바라기유 수입을 위해 24시간 가동 중”이라고 밝혔다고 전했다.

카스피해 주변 5개국의 이해관계는 각기 다르다. 러시아는 북쪽 출구를 쥐고 있다. 볼가강과 볼가-돈 운하를 통해 카스피해를 흑해·러시아 내륙과 연결할 수 있는 힘을 가진다. 카자흐스탄은 광대한 자원과 곡물, 카스피해 동북부 항만을 통해 중앙아시아 물류의 거점 역할을 한다.

투르크메니스탄은 동쪽 해안을 통해 가스와 중앙아시아 교통로의 잠재력을 가진다. 아제르바이잔은 서쪽에서 카스피해와 코카서스, 튀르키예·유럽을 잇는 연결 국가다. 이란은 남쪽에서 카스피해를 페르시아만과 인도양으로 이어주는 관문이다.

이 말은 곧 카스피해가 단순한 내륙해가 아니라는 뜻이다. 러시아에는 남하의 통로이고, 이란에는 북방 생명선이며, 카자흐스탄과 투르크메니스탄에는 자원 수출의 바다고, 아제르바이잔에는 코카서스 물류의 출입문이다. 그래서 카스피해는 ‘세계 최대 내륙해’라는 지리 용어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카스피해는 유라시아 내륙 질서가 바다처럼 작동하는 장소다.

운영 방식도 독특하다. 일반 바다처럼 완전한 공해가 아니며 그렇다고 하나의 호수처럼 단순히 나눠 갖는 구조도 아니다. 2018년 협약은 카스피해에 내수, 영해, 어업 수역, 공동 해역이라는 구분을 두고, 해저와 지하자원은 인접국 간 합의로 구획하도록 했다.

선박 운항은 연안국 국기를 단 선박에 한정되고, 각국 항구는 협약과 국내법에 따라 개방된다.

가장 중요한 원칙은 ‘외부 군사력 배제’다. 카스피해에서는 연안 5개국이 아닌 국가의 군대가 들어올 수 없도록 돼있다. 이는 이란과 러시아에 특히 유리하다. 미국이나 나토가 직접 카스피해에 군함을 들여보내기 어렵기 때문이다. 반대로 아제르바이잔·카자흐스탄처럼 서방과도 협력하려는 국가는 카스피해 안에서는 러시아와 이란의 전략적 민감성을 의식할 수밖에 없다.

이란 입장에서 카스피해는 세 가지 의미를 가진다. 첫째, 호르무즈 해협 리스크를 우회하는 북방 물류로다. 둘째, 러시아와 직접 연결되는 전략 회랑이다. 셋째, 서방 제재를 완화하거나 우회할 수 있는 내륙형 교역 공간이다. <알자지라>도 러시아-이란 교역의 중심축을 INSTC로 설명하면서, 러시아 남부 항구에서 카스피해를 건너 이란 북부 반다르안잘리 항구 등으로 물자가 이동한 뒤 철도나 트럭으로 이어진다고 보도했다.

여기서 반다르안잘리, 아미라바드, 노샤르 같은 이란 북부 항구의 중요성이 커진다. 이 항구들은 이란의 남쪽 항구들과 성격이 다르다. 남쪽 항구가 원유·가스·중동 해상교역의 관문이라면, 북쪽 항구는 러시아·중앙아시아·코카서스와 연결되는 입구다.

이란이 남쪽에서는 압박을 받더라도 북쪽에서는 러시아와 중앙아시아를 통해 숨통을 틀 수 있다. 카스피해가 이란의 ‘두 번째 바다’가 되는 이유다.

하지만 카스피해가 완벽한 대안은 아니다. 가장 큰 문제는 수심 저하다. 카스피해 수위 하락은 항만 운영과 선박 적재량에 직접 영향을 준다. <로이터>는 카스피해의 얕아짐 때문에 곡물 수출업자들이 더 작은 선박이나 적은 적재량을 사용할 수밖에 없고, 대형 벌크선이 아니라 3000~6000톤급 강·바다 겸용 선박이 주로 쓰인다고 전했다.

환경 문제도 심각하다. 카스피해는 폐쇄성 수역이기 때문에 오염이 한번 쌓이면 빠져나가기 어렵다. 그래서 2003년 체결된 테헤란 협약은 카스피해 해양환경 보호를 위한 기본 협력 틀로 작동하고 있다. 유엔환경계획도 카스피해 해양 쓰레기, 플라스틱, 오염 관리, 생물다양성 보전사업을 추진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카스피해 수위 하락 대응 협력도 중요한 의제로 다뤄지고 있다.

결국 카스피해의 운영은 세 층으로 봐야 한다. 첫째는 법적 운영이다. 연안 5개국이 협약을 통해 영해·어업·공동 수역·항행·환경·안보 원칙을 정한다. 둘째는 경제 운영이다. 각국이 항만, 철도, 에너지 시설, 곡물 터미널을 연결해 물류망을 만든다. 셋째는 군사·안보 운영이다. 외부 군사력은 배제하고, 연안국끼리 균형을 유지한다. 이 세 층이 겹치면서 카스피해는 단순한 자연 지형이 아니라 국제질서의 장치가 된다.

이란이 카스피해를 주목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이란은 남쪽으로는 호르무즈라는 세계적 병목을 안고 있다. 서쪽으로는 이라크·시리아·레바논 축이 불안정하다. 동쪽으로는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 변수가 있다. 이때 북쪽 카스피해는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방향이다. 러시아와 직접 맞닿고, 중앙아시아와 연결되며, 제재와 전쟁 상황에서도 일정한 물자 흐름을 유지할 수 있다.

물류는 단순히 상품을 옮기는 일이 아니다. 물류는 국가의 혈관이다. 식량이 들어오고, 원자재가 움직이고, 군수품과 산업재가 이동하며, 외화와 계약이 흐른다. 그래서 카스피해를 장악하거나 활용한다는 것은 단순히 항구 하나를 운영한다는 뜻이 아니다. 국가 생존의 우회로를 확보한다는 뜻이다.

러시아 역시 카스피해를 통해 얻는 것이 크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서방 제재를 받는 러시아는 남쪽과 동쪽 시장이 필요하다. 흑해가 위험해지고 유럽 시장이 막힐수록 러시아는 이란, 인도, 중동, 중앙아시아로 눈을 돌린다. 이때 카스피해는 러시아 곡물과 에너지, 공업 제품이 남쪽으로 내려가는 통로가 된다. 러시아와 이란이 카스피해에서 가까워지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카자흐스탄과 투르크메니스탄도 계산이 복잡하다. 두 나라는 러시아와 중국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야 한다. 동시에 서방과도 에너지·물류 협력을 원한다. 카스피해는 이들에게 러시아 의존을 줄일 수 있는 통로이면서, 동시에 러시아의 영향권을 벗어나기 어려운 공간이기도 하다. 그래서 두 나라는 카스피해를 경제적으로 활용하되, 군사·안보 문제에서는 신중한 태도를 보인다.

아제르바이잔은 또 다른 축이다. 카스피해 서쪽의 아제르바이잔은 코카서스, 튀르키예, 유럽으로 이어지는 길목이다. 바쿠는 에너지와 물류를 통해 자신의 전략적 가치를 키워왔다. 카스피해 동쪽의 중앙아시아 자원과 서쪽의 유럽 시장을 연결하려는 구상에서 아제르바이잔은 빠질 수 없다. 따라서 카스피해는 북남축만이 아니라 동서축의 무대이기도 하다.

이처럼 카스피해는 다섯 나라가 함께 쓰지만, 완전히 함께 믿지는 못하는 공간이다. 협약은 있지만 경쟁도 있다. 공동 해역은 있지만 자원 구획 다툼도 있다. 환경 협력은 하지만 에너지 개발도 계속된다. 외부 군사력은 막지만 각국 해군력은 존재한다. 그래서 카스피해 질서는 ‘공동 관리’와 ‘조용한 경쟁’이 동시에 작동하는 구조다.

한국 입장에서 이 문제를 가볍게 볼 수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카스피해는 멀리 있는 내륙해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에너지 가격, 곡물 가격, 중동 리스크, 러시아 제재, 인도-유럽 물류, 중국 일대일로, 중앙아시아 자원 전략과 모두 연결돼있다.

호르무즈가 흔들리면 유가가 움직이고, 유가가 움직이면 한국 경제가 흔들린다. 그런데 이란과 러시아가 카스피해를 통해 물류 우회로를 확보하면, 중동 위기의 양상도 달라진다.

앞으로 카스피해의 핵심 변수는 세 가지다. 첫째, 수위 하락과 환경 악화다. 물이 줄어들면 항만 기능과 어업, 생태계가 모두 흔들린다. 둘째, 러시아-이란 협력의 심화다. 두 나라가 제재 속에서 더 가까워질수록 카스피해는 서방 견제의 사각지대가 될 수 있다. 셋째, INSTC의 완성도다. 철도와 항만, 도로가 얼마나 촘촘히 이어지느냐에 따라 카스피해의 전략 가치는 달라진다.

결국 카스피해는 이란의 새 물자 수송로이자 러시아의 남방 통로이며, 중앙아시아의 숨은 바다다. 세계 최대 내륙해라는 지리적 이름 뒤에는 훨씬 더 큰 정치적 의미가 숨어 있다. 바다는 열려 있어야만 강한 것이 아니다. 때로는 닫혀 있기 때문에 더 전략적일 수 있는데, 카스피해가 바로 이 경우다.

이란은 남쪽 바다에서 압박을 받을수록 북쪽 내륙해를 바라볼 것이고, 러시아는 서쪽이 막힐수록 남쪽 카스피해를 활용할 것이다. 중앙아시아 국가들은 그 사이에서 자국의 항만과 철도를 키우려 할 것이다. 그리고 세계는 언젠가 깨닫게 될 것이다. 카스피해는 지도 안쪽의 조용한 호수가 아니라, 유라시아 질서가 다시 짜이는 거대한 물류의 심장이라는 사실을.

<skkim596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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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의 눈’ 오세훈 차기 대선 로드맵

‘태풍의 눈’ 오세훈 차기 대선 로드맵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오세훈 서울시장이 5선에 성공했다. 하지만 국민의힘은 참패했다. 국민의힘의 수도권 참패 기류 속에서 홀로 승리한 오 시장은 국민의힘에 불어올 태풍의 눈이 될 것이다. 과연 오 시장은 성공적인 시정과 국민의힘 체질 개선이란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을까? 국민의힘은 6·3 지방선거에서 참패했다. 지난 4일 오전 개표 결과, 국민의힘은 광역자치단체장 기준 서울·대구·경북·경남 등 4곳 수성에 그쳤다. 전반적으로 전통적인 지지자들의 지원에 힘입어 최소한의 수성을 한 것으로 보인다. ‘졌잘싸’ 최소 수성 이로써 오세훈 서울시장은 사상 첫 5선에 성공했다. 오 시장은 48.94%를 득표해 48.34%를 득표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원오 후보를 가까스로 물리쳤다. 방송사들의 출구조사에서는 정 후보가 오 시장을 약 5% 앞설 것이라는 예상이 나왔지만, 개표 후 13시간이 지난 시각부터 정 후보를 역전해 신승을 거뒀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3월 이후 역동적으로 중앙정치에 개입했다. 공천 과정에서는 후보 등록을 거부하면서 ‘윤 어게인’에 기반한 강경 보수 노선을 유지하려는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 체제에 반기를 들었다. 이어 당에 절윤(윤 전 대통령과의 절연) 선언을 요구했고, 국민의힘은 의원총회를 개최해 “윤석열 전 대통령의 정치적 복귀에 반대한다”는 등 절윤 결의문을 채택했다. 이후에도 오 시장은 당과 거리두기를 멈추지 않았다. 오 시장이 후보 등록을 거부하면서 요구했던 것 중 하나는 혁신 선거대책위원회 설치였으나 실현되지 않았다. 그러자 오 시장은 한동안 당의 상징색인 빨간색이 아닌 흰색 점퍼 차림으로 현장을 누볐다. 그는 장 대표의 지원 유세를 거절하기도 했다. 지난 4월 진행된 국민의힘 서울시당 필승결의대회와 지난달 12일 진행된 서울시당 선대위 발대식 모두에 장 대표를 초청하지 않았다. 오 시장이 장 대표의 지원 유세를 거절한 취지는 “마음은 고맙지만 필요 없다”는 것이었다. 오 시장은 지난 3월27일 SBS 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에 출연해 “저도 장 대표를 모시고 싶다. 변신한 모습으로 지원 와 주시길 촉구한다”며 “국민의힘 자체가 중도 확장성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후 오 시장은 서울시당을 배경으로 서울 내 자치구를 둔 의원들과 함께 선대위를 구성해 독자적으로 선거를 치렀다. 그리고 5선에 성공했다. 오 시장의 승리는 정치학적으로 정치의 개인화 현상이라고 평가할 만하다. 정치의 개인화는 정당 등 집단적 배경이 아닌 정치인 개인의 리더십 등 이미지가 정치 과정의 핵심이 되는 현상을 말한다. 전통적인 지지 세력 외엔 국민의힘이라는 브랜드가 호감을 얻지 못하는 상황에서 유권자는 국민의힘과 오 시장을 분리해서 평가한 후 오 시장을 지지했다. 국민의힘이라는 정당 브랜드가 오 시장에게 도움이 되기보다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었다. 따라서 오 시장은 당과 거리를 두면서 개인 지지 기반이 잠식되는 것을 최대한 막은 셈이다. 지방선거와 함께 진행된 경기 평택을 보궐선거에서는 국민의힘 유의동 후보가 승리했다. 유 후보는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의 지지 선언 외에는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다. 언론이 주목한 핵심은 더불어민주당 김용남 후보와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의 갈등·상호 폭로였다. 유 후보의 승리는 범여권의 내분 속에서 어부지리 효과를 거둔 것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뒤베르제 법칙에 따르면, 단순다수대표제와 소선거구제는 양당제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김 후보와 조 대표가 단일화에 성공했다면, 유 후보를 상대로 여유 있게 승리했을 가능성이 있었다. 참패 속 홀로 선 오…당과 거리 두고 5선 신승 유 어부지리·한 자력 생존…장동혁 책임론 불씨 하지만 두 후보가 화합하지 못하면서 평택을 선거구도는 다당제로 전개됐다. 김 후보와 조 대표가 각각 일정한 경쟁력을 가진 채 분열했기 때문에 범여권 지지자의 표심은 사실상 양분됐다. 반면 자유와혁신 황교안 후보는 김 후보와 조 후보만 한 경쟁력을 갖지 못해 유 후보의 표를 결정적으로 잠식하지는 못했다. 김 후보·조 후보·진보당 김재연 상임대표 등 진보 성향 범여권 후보들은 각각 28.77%·27.44%·2.95%를 득표했다. 반면 유 후보는 34.83%를, 황 후보는 6.19%를 득표했다. 이 때문에 유 후보는 다수 대결 구도 속 승자가 될 수 있었다. 평택을 결과는 뒤베르제 법칙의 기계적 효과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보여줬다. 단순다수대표제에서는 1표라도 더 얻은 후보가 의석을 차지한다. 유 후보는 34.83%를 득표하는 데 그쳤지만, 범여권 후보들이 분열하면서 의석을 차지할 수 있었다. 범여권 후보의 분열은 뒤베르제 법칙이 기대하는 심리적 효과인 사표 방지를 위한 유력 후보 결집 효과 실현을 방해했다. 따라서 유 후보의 승리는 국민의힘의 조직적 승리라기보다, 범여권 분열과 단순다수대표제의 기계적 효과가 맞물린 결과에 가까웠다. 부산 북구갑 재보궐선거에 무소속으로 출마했던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도 민주당 하정우 후보를 물리치고 신승했다. 이로써 한 전 대표는 오 시장과 함께 자력으로 정치적 승리를 거뒀다. 지난 2월 한 전 대표 제명을 주도했던 장 대표 등 당권파는 매우 치명적인 내상을 입은 것이다. 통상적인 정치적 관례대로라면 선거에서 대패한 당 대표 등 지도부는 일괄 사퇴의 길을 걷는다. 이후엔 비상대책위원회가 설치돼 당의 혼란을 수습한 후 전당대회를 개최한다. 하지만 일각에선 선거 이전부터 “장 대표는 선거에서 패배하더라도 물러나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지난 3일 SBS 선거 방송에 출연한 홍준표 전 대구시장은 “나는 자유한국당 대표였던 지난 2018년 지방선거 당시 자유한국당 패배를 예고하는 출구조사 발표를 듣는 즉시 사퇴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장 대표는 억울하다고 생각하면서 사퇴하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가 장 대표가 억울해할 것이라고 예상한 이유로는 “상당수 후보들이 장 대표에게 지원을 요청하지 않았으므로 장 대표로서는 할 말이 있다”고 설명했다. 장 대표는 지난 4일에도 사퇴 의사를 밝히지 않았다. 장 대표를 강제로 사퇴시킬 수단은 사실상 없다. 국민의힘 당헌·당규에 따르면, 청년 최고위원을 포함한 선출직 최고위원 5명 중 4명 이상이 사퇴하거나 궐위되면 지도부가 무너진 것으로 간주돼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전환된다. 치열한 혈투 치명적 내상 국민의힘 선출직 최고위원은 신동욱·김민수·양향자·김재원·우재준 최고위원이다. 이들 중 신동욱·김민수·김재원 최고위원은 전반적으로 장 대표와 뜻을 함께하고 있다. 물론 구 친윤(친 윤석열)계가 장 대표의 거취를 어떻게 결정할지에 따라서 신 최고위원과 김재원 최고위원은 유동적인 결정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구 친윤계로서는 장 대표를 섣불리 사퇴시켰다가 오 시장이 당권 장악까지 시도하는 더 큰 강풍을 맞이할 수도 있어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한동안 “구 친윤계가 장 대표를 사퇴시킨 후 신 최고위원을 얼굴로 내세울 수도 있다”는 설이 돌아다녔지만, 말 그대로 설로 끝났다. 장 대표와 구 친윤계가 충돌했던 지난 1~2월에도 충돌했던 핵심 요소는 절윤 등 노선 변경 여부였을 뿐, 장 대표의 거취는 아니었다. 인위적인 지도부 붕괴는 사실상 어렵다. 최고위 자체가 장 대표에겐 벙커로 작용하기 때문에 장 대표가 버티면 끌어낼 수 있는 정상적인 방법을 찾기 어렵다. 하지만 대구·경북·경남을 수성했기 때문에, 대체로 이 지역을 기반으로 삼는 구 친윤계는 참패 속에서도 당내 발언권이 사라지지 않았음을 확인했다. 반대로 대구에서 민주당 김부겸 후보가 45.05%를 득표하는 등 핵심 지역 기반 대구에서도 예전과 다른 정치적 정서가 확인됐다. 따라서 구 친윤계로서는 “지역 기반 수성을 위해 당에 변화를 줘야 할 시점”이라는 판단과 “장 대표가 관례대로 사퇴해야 한다”는 판단이 교차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미 하마평에 올랐던 신 최고위원 등 대안 인물을 찾아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옹립하려 할 가능성이 있다. 현재의 국민의힘은 ‘윤 어게인’ 정서를 등에 업은 강경 보수 세력과 영남권에 기반을 둔 구 친윤계가 양대 축을 형성한 과두적 구조에 가깝다. 이탈리아의 사회학자 로베르트 미헬스는 ‘과두제의 철칙’이라는 개념을 주장했다. 과두제의 철칙은 “조직이 커질수록 민주성을 유지하기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미헬스가 지적했던 근거는 ▲관료화와 분업 ▲대중의 무관심과 무능력 ▲지도부의 권력 독점 등이었다. 이 중 국민의힘에 작용하는 것은 관료화와 권력 독점이라고 할 수 있다. 관료화로 인해 지도부에 권력이 집중되고, 지도부는 권위 유지를 위해 정보·자원을 통제한다. 구 친윤계 대안 옹립? 그간 구 친윤계는 “당의 이익보다 자신의 권력 자산을 보존하려고 한다”는 비판적 평가를 받아왔다. 장 대표가 구 친윤계의 사퇴 공세에 맞설 수단은 당헌·당규가 벙커로 만든 지도부의 견고함밖에 없다. 영남을 수성했기 때문에 국민의힘에서는 역설적으로 큰 혼란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 기반이 영남에 과도하게 집중돼있기 때문에 연이은 선거 패배라는 외부적 충격이 발생할수록 당내 권력구조 강화로 회귀하려는 관성이 작동하기 때문이다. 구 친윤계에 대해서는 “당을 파벌·지역의 이익을 지키기 위한 도구로 활용한다”는 비판이 오랫동안 제기돼왔다. 서울시장 5선에 성공한 오 시장은 지금까지 구 친윤계와 장 대표 모두를 상대해 왔던 한 전 대표와는 다르다. 한 전 대표는 구 친윤계와 강경 보수 성향 지지자들로부터 배신자라는 낙인이 찍혀 있었다. 그가 국민의힘 복당 이후 당권 장악을 거쳐 대권에 도전할 것이란 예상은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다. 하지만 한 전 대표의 복당은 역설적으로 더욱 어려워질 수도 있다. 복당하더라도 국민의힘 내 소수 계파인 친한(친 한동훈)계 수장에 불과하다. 목표로 삼을 당권·대권 도전을 위해선 당내 구 친윤계의 거부감을 누그러트릴 수 있는 정치력을 발휘해야 한다. 따라서 한 전 대표는 당선돼 자력 생존했다고 하더라도 아직은 태풍 속의 찻잔으로 남을 공산이 크다. 사상 최초로 서울시장 5선에 사실상 자력으로 성공한 오 시장이야말로 태풍의 눈이 될 가능성이 높다. 장 대표는 당 대표직 유지와 생존이 급박하기 때문에 수성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 자신이 당 대표이기 때문에 자신의 노선을 변혁하려는 모순을 저지를 수도 없다. 따라서 국민의힘의 차기 권력구도는 오 시장과 구 친윤계가 여러 쟁점을 놓고 충돌하는 양상으로 전개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몇 달 안으로 결정해야 할 논점만 해도 ▲장 대표 등 지도부의 거취 ▲비상대책위원회 설치 여부 및 위원장 임명 ▲새 지도부 선출을 위한 전당대회 개최 시점 등이며, 이것들이 연쇄적으로 이어진다. 최고위는 장 벙커…영남 기반 구 친윤도 셈법 복잡 복당 벽 마주할 한…‘오세훈계’ 편성 당 흔드나 국민의힘 내 수도권 거점은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는 사실상 무너졌다고 봐도 무방한 수준이다. 따라서 오 시장이 잔존한 수도권 내 비친한계 성향 중도보수계열 인사들을 규합해 오세훈계를 구성할 수도 있다. 다만 현실적으로 광역자치단체장이 직접 정당 대표를 맡기는 어렵다. 오 시장으로서는 오세훈계를 구성해 참신한 개혁 이미지를 표방할 수 있는 대리인을 내세울 가능성이 있다. 일각에서는 그 대리인으로, 친한계로 알려졌지만 서울시당위원장으로서 당권파와 겨뤄가면서 오 시장과 호흡을 맞춘 국민의힘 배현진 의원과 서울 내 험지인 도봉갑에서 당선돼 서울시장 선거전에서도 민주당 정 후보 저격 활동에 집중했던 김재섭 의원 등을 거론한다. 이에 맞서 구 친윤계는 전통적인 논리를 동원해 맞설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2016년 이후 영남권 중심 구 친윤계의 논리는 “수도권이야말로 늘 국민의힘 선거 패배의 원흉”이라는 것이었다. 만약 오세훈계가 새롭게 편성된다면, 사안에 따라 오세훈계와 친한계가 구 친윤계의 공세에 공동 대응할 가능성도 있다. 물론 장 대표의 정치적 수명이 이 사태에 아예 참전할 수 없을 정도로 끝난 것은 아니다. 그의 정치적 수명을 연장시킬 수 있는 변수는 이번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투표용지 관리 논란에서 나올 수도 있다. 국민의힘과 개혁신당은 서울 송파구에서 발생한 투표용지 부족 사태를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일각에선 재투표까지 주장하고 있다. 당장 직면한 참패의 여파를 수습하고 당을 뭉치게 하는 데 있어서는 도움이 될 수 있다. 위기를 통제 가능한 외부의 독립된 실체로 분리해 내부적 결집을 추구하는 것이다. 하지만 강경 보수 집단이 영향력을 행사하는 국민의힘에선 오히려 내부를 겨냥한 칼이 될 수도 있다. 섬세하게 다루지 못하면 부정선거론의 영향력이 당 안에서 강해질 수 있고, 역설적으로 장 대표의 영향력이 강해지도록 돕는 생명줄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시선은 대권에? 부정선거론과 장 대표의 영향력 유지가 겹쳐지면, 오 시장과 구 친윤계가 일시적으로 연합해 대응할 수도 있다. 따라서 국민의힘에선 네 갈래 권력 투쟁인 ‘사국지’가 펼쳐질 가능성이 있다. 크게는 영남·강경 노선과 수도권·확장 노선으로 분류된다. 그런데 이를 세부적으로 파고들면, ▲대구·경북 중심 구 친윤계 ▲지도부란 벙커에 있는 친 장동혁계(당권파) ▲친 한동훈계 ▲무계파·수도권 중심 친 오세훈계 등으로 편성될 수도 있다. 계파의 세분화 가능성 중심에는 오 시장이 있다. 태풍의 눈이 된 오 시장은 과연 성공적인 서울시정 수행과 국민의힘 체질 개선에 성공할 수 있을까? 오 시장이 대권에 시선을 두고 있다면, 두 마리의 토끼는 반드시 잡아야 한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