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대구 10대 추락 환자 사망 사건과 관련해 구급대의 수용 요청을 거부한 병원에 책임을 묻는 법원의 항소심 판결이 나왔다. 1심을 뒤집고 병원의 패소를 결정한 이번 판결은 ‘응급실 뺑뺑이’라는 사회적 분노에 부응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대한민국 응급의료 체계의 구조적 모순을 의료진의 개인적 희생으로 덮으려는 위험한 시도다.
우리는 과거 이국종 교수와 아주대병원 사이의 갈등에 등장했던 ‘바이패스(Bypass, 구급차 우회)’ 사태를 기억한다. 당시 아주대 외상센터는 병실 부족을 이유로 밀려드는 외상 환자의 진입을 차단했다. 수술할 의사가 없고 환자를 눕힐 침상이 없는 상태에서 환자를 받는 것은 치료가 아니라 방치에 가깝기 때문이다.
이국종 교수가 결국 현장을 떠난 이유는 단순히 지원이 적어서가 아니다. 환자를 살리고 싶어도 살릴 수 없는 구조적 한계에 절망했기 때문이다.
세계적으로 외상 체계는 구급대가 수술 불가능한 병원을 우회해 항상 준비된 거점 외상센터로 이송하는 것을 전제로 성립된다. 하지만 한국의 현실은 어떤가. 병원이 진료 불가능 상태임을 밝히는 행위조차 처벌의 대상이 된다면, 병원은 역량이 안 되는 환자를 억지로 떠맡아야 한다.
일단 수용은 하되 적절한 처치를 못 해 환자가 사망할 경우, 그 사법적 책임은 다시 병원과 의사가 져야 하는 외통수에 걸리는 것이다.
문제는 ‘병원 간 전원의 난맥상’에도 존재한다. 우리나라에서 응급의료 정보센터(1339)가 폐지된 이후, 병원 간 환자 이송을 조율할 실무적 컨트롤타워가 사실상 사라졌고, 이는 한국의 소방, 보건복지부, 국회와 청와대에 책임이 있다. 구급대는 환자를 응급실에 내려놓으면 임무가 종료되지만, 병원은 수용하는 순간부터 무한 책임을 진다.
전문적인 전원 조정 기구가 없는 상태에서 병원이 직접 전원할 곳을 찾아 헤매는 동안 골든타임은 흘러가고, 환자는 응급실에서 죽어간다. 우리의 입법, 행정과 사법부는 이 시스템의 공백을 메우는 대신 병원에 몽둥이를 드는 손쉬운 길을 택하고 있다.
이국종 교수를 사지로 몰아넣었던 문제들은 지금도 해결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병원에 징벌적 판결을 내리는 것은 필수의료에 종사하는 의사들을 현장에서 내쫓는 결과만 초래할 뿐이다. 사법 리스크를 감당하며 외상 환자를 돌볼 의사가 사라진 자리에는 더 참혹한 ‘응급실 뺑뺑이’가 기다릴 것이다.
정부는 책임 전가를 멈추고 붕괴된 전원 조정 기능을 재정립하라. 시스템의 결함을 의료진의 가슴에 주칠(朱漆)하는 방식으로는 단 한 명의 국민도 더 살릴 수 없다. 비겁한 판결 뒤에 숨어 구조적 문제를 방치하는 한, 대한민국 응급의료의 미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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