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이론으로 본 한동훈 부산 출마

  • 박형준 기자 ctzxp@ilyosisa.co.kr
  • 등록 2026.05.11 10:41:59
  • 호수 158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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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렬한 치킨 게임 앞둔 북구갑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이 박민식 전 국가보훈부 장관을 부산 북구갑 재보궐선거 후보로 확정했다. 이로써 선거는 3파전이 됐다. 개혁신당까지 후보를 배출하면 4파전이 된다. 게임 이론으로는 부산 북구갑 선거의 구도와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의 출마를 어떻게 볼 수 있을까?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지난달 29일 하정우 전 청와대 AI미래기획수석을 부산 북구갑 재보궐선거(이하 재보선) 후보로 전략 공천했다. 무소속으로 재보선에 출마하는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는 지난달 1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얼마 전 부산 북구 만덕에 집을 구했다”는 글을 올려 부산 북구갑 출마를 공식화했다. 국민의힘은 지난 5일 박민식 전 국가보훈부 장관을 북구갑 후보로 확정했다.

2위?
3위?

이달 초까지 부산 북구갑 재보선과 관련해 4회의 여론조사가 진행됐다. 미디어토마토가 <뉴스토마토> 의뢰로 지난달 24일부터 이틀 동안 부산 북구갑에 거주하는 만 18세 이상 802명을 대상으로 휴대전화 가상번호를 활용한 무선 ARS(자동응답) 조사를 진행한 결과 ▲하정우 전 청와대 AI미래기획수석 35.5% ▲한 전 대표 28.5% ▲박 전 장관 26% 순으로 지지를 얻었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한길리서치가 부산 MBC 의뢰로 지난 1일부터 사흘 동안 부산 북구갑 주민 584명을 대상으로 무선 ARS 84.3%와 유선 RDD 15.7%를 섞어 진행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하 전 수석 34.3% ▲한 전 대표 23.5% ▲박 전 장관 21.5% 순으로 지지를 얻었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박 전 장관이 한 전 대표를 앞서는 것으로 나타난 여론조사 결과도 있다. 한국리서치가 KBS 의뢰로 지난달 27일부터 이틀 동안 부산 북구갑 거주 성인 500명을 대상으로 휴대전화 가상번호를 100% 무작위로 추출해 진행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하 전 수석 30% ▲박 전 장관 25% ▲한 전 대표 24% 순으로 지지를 얻었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입소스가 SBS 의뢰로 지난 1일부터 사흘 동안 부산 북구갑 거주 만 18세 이상 남녀 503명을 대상으로 무선 전화 면접 조사를 진행한 결과에 따르면 ▲하 전 수석 38% ▲박 전 장관 26% ▲한 전 대표 21% 순으로 지지를 얻었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부산 북구갑에서는 지난 2008년 총선 이후 박 전 장관이 재선 의원을 지냈고, 민주당 전재수 부산시장 후보는 2016년부터 3선 의원을 지냈다. 전 후보와 박 전 장관은 2020년까지 4회에 걸쳐 대결했다.

지난 2024년 총선에는 국민의힘 서병수 전 부산시장과 개혁신당 배기석 당 대표 정책특보가 출마했다가 전 후보에게 패배해 낙선했다. 배 특보가 얻은 표가 많지 않았기 때문에 이때까지 부산 북구갑에서는 전형적인 양당 대결 구도의 선거가 진행됐다.

그런데 이번에는 한 전 대표의 출마로 3자 구도가 불가피해졌다. 아울러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지난 16일 부산 현장 최고위원 회의 중 “전략적으로 후보 투입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개혁신당 후보까지 출마하면 1강 2중 1약의 4자 대결 구도가 진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개혁신당 후보가 출마할 경우, 실질적 목표는 대형 선거에 참여하면서 사이가 좋지 않은 한 전 대표의 득표 확장을 저지하는 ‘스포일러’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여론조사 속 1강 2중…이어지는 단일화 논란
한 요구로 험지 갔던 박 단일화 완강히 거부

20세기 경제학자 오스카 모겐스턴과 존 폰 노이만이 정립한 게임 이론에 따르면, 부산 북구갑 재보선 구도는 전통적인 2인 제로섬 게임에서 현재 3자 비협조 게임으로의 진행이 예정돼있다. 개혁신당 후보까지 출마하면 스포일러 효과가 작동하는 4인 비협조 게임이 된다.

2인 제로섬 게임은 참여한 2명이 거둔 이익의 총합이 제로(0)가 되는 게임을 말한다. 양당제 구도가 그대로 반영된 선거는 2명 사이에서 당락이 결정되기 때문에 전형적인 제로섬 게임이다.

3인 비협조 게임에서는 승자 1명이 승리를 거둘 수 있는 하한선이 낮아진다. ‘비협조’는 게임 참여자들이 대화 자체를 거부하는 게 아니라, 구속력 있는 합의를 맺기 어려운 상태를 말한다. 안정적 균형을 장담할 수 없어 2명이 연합해 1명에게 대적할 수 있고, 서로 물러서지 않아 상호 확증 파괴 구도로 나아가 1위가 더욱 여유롭게 이길 수도 있다.

4인 비협조 게임에서 1강 2중 1약 구도로 진행되면, 1약을 차지하는 참여자가 자신의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대신 2중에서 1명을 주저앉힐 수도 있다. 1강은 더욱 여유로운 승리를 거둘 수 있다. 이 때문에 1약으로 평가받는 참여자는 킹메이커나 스포일러 역할을 선택할 수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2024년 대선 당시 41.44%를 득표했다. 국민의힘 김문수 전 후보는 50.19%를,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는 7.44%를 득표했다. 한 전 대표와 박 전 장관은 현재 여론조사 추이상 기존 국민의힘 지지자의 표를 분할할 뿐, 대체로 확장하진 못하는 양상이 이어지는 것으로 확인된다.

두 사람 모두 현 시점에서는 각각 단일화 가능성을 부정하고 있다. 여기에는 정치 도의 문제도 개입된 것으로 보인다. 박 전 장관은 지난 2024년 총선 당시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으로서 선거를 지휘하던 한 전 대표의 요청으로 험지로 분류되는 서울 강서을에 출마했다가 낙선했다. 서 전 시장이 재보선 출마를 하지 않은 상황에서 박 전 장관이 ‘집’으로 돌아가 선거에 출마하려고 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정치적 선택이었다.

그런데 한 전 대표는 박 전 장관에게 험지 출마를 요청했던 장본인이었다. 자신의 부탁을 받아 집을 비운 사람의 거처를 선택하는 현상을 접한 후 반발하지 않는 사례는 드물다. 두 사람의 단일화 상호 부인은 당시 상황에 따른 후유증일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따라서 한 전 대표와 박 전 장관의 대결은 하 전 수석의 존재와는 별개로 서로 양보 없는 치킨 게임 양상으로 진행될 수도 있다.

분할할 뿐
확장 못해

통상적인 ‘죄수의 딜레마’ 이론에 따르면, 각각 별도의 조사실에서 조사를 받는 죄수 2명은 ▲한 사람만 자백하면 자백자만 석방되고 다른 사람은 징역 10년형 ▲둘 다 자백하면 징역 5년형 ▲둘 다 침묵하면 징역 1년형 등 선택지 속에서, 둘 다 자백해서 징역 5년형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한다.

여론조사로 나타난 선거 구도가 변하지 않는다는 가정하에 두 사람 모두 사퇴하지 않으면 하 전 수석이 당선돼 두 사람은 징역 5년형을 선고받는 상황과 비슷해진다. 마치 미국과 소련이 핵무장 증강에 열을 올렸던 냉전 시기의 ‘상호 확증 파괴’ 같은 구도가 펼쳐지는 것이다.

현재의 구도가 재보선 결과로까지 이어지면, 한 전 대표는 박 전 장관에게 서울 강서을 출마를 요청했던 과거까지 맞물려 강한 정치적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20세기 프랑스 정치학자 모리스 뒤베르제는 “소선거구제·결선투표 없는 단순다수대표제는 양당제를 부른다”고 주장했다. 이를 ‘뒤베르제의 법칙’이라고 한다. 우리 정치 풍토는 일부 예외적인 시기를 제외하고는 전반적으로 뒤베르제의 법칙이 잘 유지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소선거구제·결선 투표 없는 단순다수대표제가 양당제를 부르는 핵심 이유 중 하나는 유권자의 사표 방지 심리에 따른 전략적 투표 행위다. 제3당을 지지하는 유권자는 당선 가능성이 높으면서도 자신이 싫어하는 정치 세력에 대적할 수 있는 당에 투표하는 경향이 있다.

양당은 이를 역으로 이용해 구체적 소통 없이도 서로 ‘침묵해서 징역 1년형’을 선택할 것을 암묵적으로 합의해 선거제도를 바꾸지 않는다. 완전한 무죄 석방을 받을 수 없더라도, 최대 징역 10년형을 선고받을 수 있는 범죄를 저지른 후 징역 1년형으로 방어한다면 두 사람 모두 만족할 수 있다.

이 상태는 죄수의 딜레마를 뒤집은 ‘죄수의 담합’으로 볼 수 있다. 경영학에서는 이를 ‘묵시적 담합’이라고 한다.

이 상태가 지속되면 자원 배분이 완벽해서 상대방에게 손해를 끼쳐야 자신의 이익을 늘릴 수 있는 ‘파레토 최적’ 상태에 이른다. 아울러 서로의 선택이 최적화되어 상호 작용하면서 나타나는 결과를 ‘내시 균형’이라고 한다. 양당제는 양당에 큰 이익을 보장한다.

그런데 양당에게는 효율적인 내시 균형이 진짜로 효율적인지에 대해선 다시 돌아볼 필요가 있다. 선거에 죄수의 딜레마를 대입하면 유권자는 수사관으로 비유할 수 있다. 수사관은 두 사람의 자백 여부에 따라 자신의 실적과 정의 구현이란 본연의 역할을 다 할 수 있는지 달려 있다. 시각에 따라서는 수사관도 게임 참여자일 수 있다.

유권자는
수사관?

두 사람이 침묵해서 각각 징역 1년형을 선고받으면 겉보기에는 수사관이 자신의 실적도 챙기고 정의 구현을 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두 사람은 최대 징역 10년형을 선고받을 수 있는 중범죄를 지었다. 징역 1년형이란 결과가 실적·정의 구현이란 명제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고 확답하기 어렵다.

또 미국에서는 수사관이 사법거래를 제안하는 등 더 적극적인 역할을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검사가 양형을 통해 어느 정도 사법거래를 조율할 수 있다. 현실에서는 수사관이 사건 자체를 조작해 존재감을 키우는 사례도 빈번하다. 두 죄수를 마주하는 수사관도 참여자라고 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유권자는 승패 여부를 조절한다. 그가 거두는 공고해진 양당제가 효율적인 내시 균형이라고 장담하긴 어렵다.

21세기 이후 양당제 균형은 선거에서 세 번 깨졌다. 지난 2004년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소추에 대한 역풍이 일어난 틈을 타 진보 성향 민주노동당이 처음 원내에 진출해 파란을 일으켰다.

지난 2016년에는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이 주도했던 국민의당이 더불어민주당 비판 흐름을 타고 호남 지역을 석권했다. 지난 2024년에는 이 대표가 개혁신당을 창당한 직후 경기 화성을에 출마해 민주당 공영운 후보와 국민의힘 한정민 후보를 물리치고 당선됐다.

한 전 대표는 부산 북구갑 출마로써 네 번째 내시 균형 파괴 시도에 나선다. 얼핏 보면 이 대표의 경기 화성을과 비슷하지만 그렇지 않다. 한 전 대표는 국민의힘에서 제명됐을 뿐, 정치적 기반을 국민의힘에 온전히 남겨두고 있다.

따라서 한 전 대표는 ‘내부인 아닌 내부인’으로서 내부 복귀를 노린다. 한 전 대표가 부산 북구갑에 무소속 출마한 것은 지난 세 번의 내시 균형 파괴 시도와 다른 ‘내부로부터의 파괴’라는 변형된 시도라고 볼 수도 있다.

이 대표는 인구 평균 연령 34.6세로 전국에서 가장 젊은 지역구이자 개혁신당 이원욱 인재영입위 부위원장이 민주당 소속으로 3선을 했을 정도로 민주당 우위라는 평가를 받던 경기 화성을을 전략적으로 선택했다.

첫 여론조사에서는 공 전 후보가 46.2%의 지지를 얻었고, 이 대표와 한 전 후보는 각각 23.1%와 20.1%의 지지를 얻었다. 선거가 진행될수록 공 전 후보의 각종 비리 의혹이 불거졌고, 한 전 후보는 무게감을 키우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이 대표는 기민하게 SNS를 활용했고 48시간 무박 유세를 하는 등 기동력을 막판까지 발휘했다.

그 결과 이 대표는 42.41%를 득표했다. 공 전 후보는 39.73%, 한 전 후보는 17.85%를 득표했다. 두 사람의 지지 기반 일부를 잠식해 공 전 후보를 2.68% 차이로 제친 것이다.

뒤베르제+죄수의 담합…공고한 양당제 균형
민노·국민의당·이준석 이어 한도 가능할까

이 후보와 한 전 대표는 지지 세력 구성에서도 차이를 보인다. 이 대표는 지난해 대선 출마 당시 의석 3석 규모라는 소규모 정당 대선후보라는 한계가 있었다. 그런데도 출구조사 결과 20대 남성 중 37.2%의 지지를 얻었고, 30대 남성 중 25.8%의 지지를 얻었다. 2030 세대 남성 중 상당한 지지층을 형성했다고 볼 수 있다.

반면 한 전 대표의 지지층은 장·노년 여성 위주로 형성돼있다. 이들은 한 전 대표의 팬클럽 ‘위드후니’를 필두로 각종 집회 참여와 온라인 화력 등 측면에서 큰 힘을 발휘한다. 그런데 정치적 확장은 적의 지지층을 잠식해야 진행될 수 있다. 그들이 강할수록 확장 가능성은 낮아진다.

이는 이 대표가 2030세대 남성을 제외하면 유권자의 연령대가 높아질수록 이 대표에게 강한 비판을 한다는 측면에서도 입증된다. 하지만 이 대표는 국민의힘 대표 재임 당시 보수 정당의 가장 취약한 데이터였던 청년을 가져왔기 때문에 2022년 대선과 지방선거 승리로 연결됐단 평가를 받고 있다.

반면 한 전 대표의 지지층은 이미 이유 여하를 떠나서 범 국민의힘 지지층 안에 포함돼있다.

따라서 한 전 대표에겐 스스로 지지율 40%를 돌파할 수 있을 정도로 새로운 지지층을 포섭해야 하는 역동적인 전술이 필연적이다. 이를 구사하지 못하면, 이미 4회에 걸친 출마로 부산 북구갑 내 지역 조직을 탄탄하게 다진 박 전 후보와의 상호 확증 파괴 구도는 현실이 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그런데 지난달, 국민의힘 김도읍 의원과 서 전 시장 등 당내 일각에서는 지도부에 공개적으로 부산 북구갑 무공천을 요구했다. 한 전 대표는 지난달 29일 TV조선 유튜브 ‘류병수의 강펀치’에 출연해 국민의힘 후보와의 단일화 가능성을 부인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사실상 국민의힘에 무공천을 압박하는 게 아니냐”고 해석했다.

친한(친 한동훈)계 일원인 국민의힘 정성국 의원은 같은 날 SBS 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에 출연해 “한 전 대표는 3자 구도를 피할 생각이 전혀 없고, 단일화에도 별 관심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전날에는 YTN 라디오 <김준우의 뉴스정면승부>에 출연해 “후보 단일화는 상황에 따라 맡겨지는 것으로 전개될 것”이라고 말했다.

같은 친한계인 배현진 의원은 지난 6일 채널A 유튜브 ‘정치시그널’에 출연해 “부산 북구갑은 무공천이 바람직하다”며 “장동혁 지도부가 한 전 대표에게 공포심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한 전 대표는 지난 2일 박 전 장관이 한 전 대표와의 단일화 가능성을 부정한 기사를 자신의 페이스북 계정을 통해 공유한 후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 등 당권파는 부산 북구갑에서 민주당이 아닌 나하고만 싸우려고 한다”고 지적했다.

친한계
전의 자극

일각에서는 이를 두고도 “무공천·단일화 압박이 아니냐”고 의심하고 있다. 다른 일각에서는 “국민의힘 지도부와 박 전 장관의 전의를 자극할 수도 있는 발언 아니냐”는 평가도 나온다. 한 전 대표의 모든 정치 생명은 부산 북구갑 재보선에 달렸다. 그는 어떻게 죄수의 담합을 부술 것인가.

<ctzxp@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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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표용지가 없다니…’ 초유의 사태 후폭풍

‘투표용지가 없다니…’ 초유의 사태 후폭풍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선거가 끝난 뒤에는 자연스럽게 후폭풍이 따라온다. 이긴 쪽은 동력을 얻고 진 쪽은 수습에 나선다. 하지만 이번 지방선거는 결과만큼이나 선거관리위원회의 행보가 회자할 것으로 보인다. ‘투표용지 부족’이라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불러온 후폭풍이 지방선거를 뒤흔드는 모양새다.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는 이재명정부 출범 1년(4일)을 앞두고 치러졌다. 선거 자체가 국민의 심판을 받는다는 취지로 치러지는 만큼 여야는 결과에 사활을 걸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광역단체장 등에서 싹쓸이로 의회 권력에 이어 지방 권력까지 차지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고, 국민의힘은 ‘견제’를 외치며 맞섰다. 누구 손도 안 들어줘 민심은 절묘했다. 광역단체장 선거에서 민주당은 총 16개 시‧도 중 12곳에서 이겼다. 결과만 놓고 보면 압승이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격전지였던 서울시장 선거에서 채 1% 차이도 나지 않게 석패했다. 관심을 모았던 대구에서도 졌다. 지방선거와 함께 치러진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에서도 관심이 집중된 부산 북구갑에서 의석을 내줬다. 반면 국민의힘은 선거 초반 전패를 예상했던 것과 비교해 상당히 선전했다는 평을 받는다. 서울을 수성했고 텃밭인 대구에서도 예상보다 수월하게 이겼다. 경기 평택을 선거에서도 ‘어부지리’지만 의석 하나를 건졌다. 민주당으로선 이겨도 찜찜한, 국민의힘은 졌지만 미묘하게 웃을 수 있는 결과가 나온 셈이다. 이제 여야는 물론 이재명 정부는 선거 결과에 따른 후폭풍을 마주해야 한다. 여야 모두 ‘완벽하게 이겼다, 혹은 졌다’는 결과를 받아든 게 아니기에 후폭풍은 작지 않으리라고 예상된다. 전당대회를 앞둔 민주당은 이번 선거 결과를 두고 당권 싸움을 시작할 것이고, 보수 궤멸 직전에 간신히 살아남은 국민의힘에서도 내전이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 문제는 여기에 또 다른 후폭풍이 더해졌다는 점이다. 심지어 이 후폭풍의 크기는 선거 결과에 따른 후폭풍과는 차원이 다르다. 선거의 신뢰성 문제까지 뒤흔들 수 있는 수준의 초대형 태풍급이다. 선거에서 심판 역할을 맡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가 도마 위에 올랐기 때문. 지난 3일 지방선거 본투표 중에 서울 일부 지역에서 투표용지 부족으로 유권자가 투표하지 못하는 초유의 사태가 일어났다. 유권자의 참정권 행사라는 선거의 가장 본질적인 부분에 취지가 훼손된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이 같은 일이 투표소 한 군데가 아니라 십수 군데서 발생했다는 점이다. 선관위에 따르면 지난 3일 서울 송파구 잠실 일대를 비롯한 12개 투표소와 강남구 1개 투표소, 광진구 1개 투표소에서 투표용지가 부족해 유권자들이 투표하지 못하고 현장에서 대기하는 일이 벌어졌다. 선관위는 사태를 인지한 후 투표용지를 이송하고 현장 대기 인원에 한해 투표를 보장하겠다고 했다. 소쿠리 이어 투표지가 없다? 부정선거 논란에 불 질렀다 하지만 잠실7동 제2투표소는 대기표를 받은 유권자를 대상으로 오후 10시까지 투표 시간을 연장하는 등 혼란이 발생했다. 동시에 소식을 접한 시민과 유튜버 등이 투표소에 몰리면서 분위기가 험악해졌다. 일부 투표소에서는 투표함 반출을 둘러싸고 선관위 관계자와 시민 사이에 대치 상황까지 벌어졌다. 이번 투표용지 부족 사태는 선거의 공정성과 신뢰성에 강한 타격을 입혔다. 특히 서울시장 선거는 국민적 관심이 집중됐던 데다 개표가 진행되면서 출구조사보다 실제 결과가 훨씬 박빙으로 나오고 있는 상태였다. 개표가 진행되는 와중에 투표도 동시에 이뤄지는 말도 안 되는 상황에 여야는 물론 지지자들은 강하게 반발했다. 국민의힘은 개표 중단을 요구했다. 투표용지 부족 사태가 발생한 지역이 공교롭게도 서울 지역 내에서 비교적 보수세가 강한 ‘강남권’으로 확인되자 당력을 집중한 것이다. 국민의힘 장동혁 상임선대위원장은 긴급 기자회견에서 개표를 중단하고 결과에 따라 서울시 선거를 다시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개표를 멈추고 상황에 따라 재선거를 치러야 한다는 것이다. 반면 민주당은 선관위에 책임을 묻겠다면서도 국민의힘의 개표 중단, 재선거 요구는 일축했다. 민주당 조승래 총괄선대본부장은 국민의힘의 요구에 ‘일고의 가치가 없다’고 말했다. 선관위의 부실한 선거 관리에 대해서는 책임을 묻겠다고 약속하면서도 선거를 다시 치를 필요까지는 없다는 뜻으로 풀이됐다. 선관위 역시 대국민 사과를 하면서도 투표용지 부족 사태가 선거 연기나 재선거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발표했다. 앞서 허철훈 선관위 사무총장은 “국민 여러분께 큰 혼란과 심려를 끼쳐 드렸다”며 “소중한 주권을 행사하기 위해 투표소를 찾아주신 국민께 불편을 드리고 공정한 선거 관리에 대한 신뢰를 훼손한 점에 대해 책임을 통감한다”고 고개를 숙였다. 박빙에서 불 질렀다 그러면서 “중앙선관위는 이번 사안을 엄중히 인식하고 있으며 개표가 종료되는 즉시 일부 투표소의 투표용지가 부족했던 원인과 문제점을 정확히 파악해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하겠다”며 “미흡한 준비와 대처로 실망을 드리게 돼 다시 한번 사과드린다”고 덧붙였다. 또 이상능 선관위 선거1국장은 “이런 사례가 과거 선거에서 발생했다는 보고를 받은 적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송파구의 경우 전체 유권자 수의 50% (규모의 투표용지)를 인쇄한 것으로 파악했다”고 말했다. ‘몇 표 차이로 선거 당락이 갈리는 경우가 있는데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윤재수 선거관리정책실장은 “저희가 직접 말씀드리기는 좀 곤란할 것 같다”며 “소송 절차 등을 통해 법원의 결정에 따라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답했다. 선관위는 지난 4일 0시께 긴급 위원회를 열고 수습 방안을 논의했다. 이후 위원회는 “(투표용지 부족 문제가) 공직선거법에 따른 선거 연기나 재선거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입장문을 내놨다. 또 “현재 진행되는 개표를 중단하는 것은 불가하다”고 강조했다. 국민의힘의 요구에 선을 그은 것이다. 이번 사태로 선관위에 개혁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쏟아지고 있다. 이번 일뿐만 아니라 선거 때마다 일어났던 ‘선관위발’ 논란이 ‘파묘’되는 분위기다. 가장 큰 논란 중 하나는 ‘소쿠리 투표’다. 2022년 대선 당시 코로나19 확진자와 격리자의 사전투표 용지를 간이 용기나 쇼핑백 등에 담으면서 촉발된 논란이다. 지난 조기 대선 때도 서울 신촌의 한 사전투표소에서 관외 선거를 위해 대기하던 일부 유권자가 대기 줄이 길다는 이유로 투표용지를 받은 채 식사하고 돌아오는 일도 있었다. 선관위의 행태는 일부 극우층에서 제기하는 ‘부정선거’ 논란에 빌미를 제공하고 있다. 이들은 본투표에 앞서 이틀간 진행되는 사전투표가 조작됐다는 등 부정선거가 조직적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주장을 내세우는데, 선관위 관련 논란도 그 근거로 언급하고 있다. 재선거까지 나왔지만… 부정선거 논란을 차단해야 할 기관에서 오히려 의심만 제공하는 꼴이다. 일각에서는 선관위 내부 사정이 반복되는 부실 선거의 배경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한 언론이 민주당 채현일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달 1일 기준 선관위 휴직자 수는 176명으로 집계됐다. 최근 10년 새 두 번째로 많은 수치다. 육아휴직이 124명으로 가장 많았고 일반 질병 휴직 30명, 가족 돌봄 휴직 11명, 해외 동반 휴직 8명 등이 뒤를 이었다. 지방선거, 대통령선거, 국회의원 선거 등 이른바 3대 전국 선거 때마다 휴직자가 늘어나는 선관위의 고질적인 병폐가 또다시 되풀이됐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실제 2022년 5월 기준 선관위 휴직자 수는 218명으로 최근 10년 기준으로 가장 많았다. 당시 3월에는 대선, 6월에는 지방선거가 각각 치러졌다.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으로 갑작스럽게 치러진 지난해에도 선거를 한 달 앞둔 5월 기준 휴직자는 145명에 달했다. 이 같은 문제가 반복적으로 지적되자 선관위도 선거 기간에는 휴직을 자제하라는 내용의 공지를 내리는 등 개선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 법으로 보장된 육아휴직 등은 강제로 제한할 수 없으니 인력을 채용하는 방향으로 인력 공백을 막겠다는 대응책도 내놨다. 하지만 앞서 선관위 내부에서 채용 관련 비리 의혹이 크게 불거지면서 이마저도 미덥지 못한 방안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더 큰 문제는 선거 때마다 논란이 불거지고 내부의 고질적인 병폐 등으로 지적을 받는 와중에도 선관위는 큰 변화가 없다는 점이다. 독립된 ‘헌법기관’이라는 방패를 내세워 ‘지금만 넘기면 된다’는 안일한 생각이 선관위를 좀먹고 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자정을 할 수 없으면 외력이라도 가해야 하는데 그것조차 막혀 있다는 것이다. 선거 때마다 구설 불거지는데… 자정은커녕 외부 감사도 안 돼 2023년 5월 당시 선관위 사무총장, 사무차장 등 고위 간부의 자녀가 선관위 경력직 채용에 특혜를 받았다는 언론 보도가 나왔다. ‘아빠 찬스’ 논란의 시발점이다. 이후 선관위 자체 특별감사 결과 고위직 자녀 특혜 채용이 관행적으로 이뤄졌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이 과정에서 감사원이 선관위의 인력 관리 실태에 관한 직무감찰에 착수했다. 그러자 선관위는 ‘독립기관’임을 내세우면서 감사원 감사를 수용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밝혔다. 국회는 물론 여론의 반발이 거셌다. 선관위는 감사원 직무감찰을 부분적으로 수용하면서도 “감사원의 감사 범위를 명확히 정리할 필요가 있다”며 2023년 7월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했다. 헌재는 선관위의 손을 들어줬다. 지난해 2월 헌재는 “이 사건 직무감찰은 헌법 및 법률상 권한 없이 이뤄진 것으로 선관위의 독립적 업무 수행 권한을 침해했다”고 밝혔다. 선관위가 감사원의 감사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헌법에 기재된 감사원의 감사 범위가 “행정부 내부의 통제장치로서의 성격”인 만큼 정부와 독립된 헌법기관인 선관위는 국회, 법원, 헌재와 같이 직무감찰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본 것이다. 그 배경으로 선관위의 선거 관리 업무를 들었다. 대통령 소속 기관인 감사원이 독립된 헌법 기구인 선관위를 직무감찰할 수 있게 되면 선거 관리 공정성에 대한 신뢰가 훼손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감사원의 직무감찰 배제가 곧바로 부패 행위에 대한 성역의 인정으로 호도돼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헌재는 “감사원 직무감찰을 허용하지 않는 것은 이를 대신할 독립성과 전문성을 갖춘 자체 감찰기구가 마련될 것이라는 점을 전제로 한 것”이라며 “선관위는 자체 감찰제도의 실효성을 담보함으로써 우려를 불식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결국 내부 자정 기능에 기대를 건 것이다. 이번에는 고쳐질까 하지만 채용 의혹은 차치하고라도 그 이후에도 가장 본연의 업무인 선거 관리에서 계속해서 잡음을 내고 있다는 점에서 선관위를 바라보는 국민의 시선은 곱지 않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4일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회의에서 “민주공화국에서 무엇보다 철저해야 할 선거 관리에 납득하기 쉽지 않은 허점이 발생한 점에 대해 매우 큰 유감을 표한다”며 “국민의 참정권이 한치라도 훼손되는 일이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신뢰할 만한 적절한 대책을 조속하게 마련해 주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이제 지방선거는 끝났다. 선관위는 이 후폭풍을 감당할 수 있을까.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