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몽키하우스’ 미군 위안부 수용소 (25)조선 처녀들이 성 노리개로

  • 김영권 작가 nammunsan@naver.com
  • 등록 2026.05.11 03:22:13
  • 호수 158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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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는 남대문이나 동대문이 아니라 ‘나라 보지’를 말하는 거야. 국가에서 우리 몸뚱이를 이용했으니…그 무서운 곳을 ‘언덕 위의 하얀 집’이라 부른 건 낭만이 아니라 야유하기 위해서였지…우리 보지는 나라의 보지였어!” <어느 위안부 할머니의 절규>

노파는 담배를 깊이 빨아 한숨과 함께 훅 내쉬었다.

“죽었는지 살았는지 지금도 몰라. 그 바다 밑의 탄광 속에서 죽지 않고 만약 살아 있다면 음, 내가 끌려간 곳도 역시 일본이었어. 처음엔 일본의 큰 공장에 취직시켜 많은 돈을 벌게 해준다고 속였지. 전국 각지에서 나처럼 끌려온 처녀애들과 함께 기차를 타고 가면서…난 혹시라도 일본 땅에 닿아 고향 오빠를 찾을 수 있을까 하는 절망과 희망 속을 헤매고 있었어. 하지만 그 이상스런 열차는 계속 북쪽으로만 달려가더군. 추위에 떨며 황량한 산야를 지나 두만강을 건너 만주 땅에 도착했어. 속은 거였지. 그렇지만 아직 한가닥 소망은 끝내 놓지 않았어.”

한가닥 소망

“희망이 없다면 그런 땅에서는 아마 죽고 말겠지요.”

“그런데 마침내 촛불 같은 작은 소망까지도 꺼져 버렸어. 그 촛불이 소망을 꺾을 수 없는 나머지 내 맘속에 생겨난 환상인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결국은 다 짓밟혀 버리고 말았어.”

“만주 땅에서요?”

“그 당시 만주는 일본군 천지였어. 젊은 사내들을 전쟁터의 총알받이로 끌어 모아 놓았으니…가장 강렬한 욕구와 위안이 뭐였겠어, 응?”

“….”

“그래서 우리 조선 처녀애들이 그들의 성노리개가 되었단다. 하루에도 수십 명씩 마치 내 여윈 몸 위로 탱크가 지나가는 기분이었지. 고향 오빠가 저 멀리 시퍼런 바다 건너 어느 굴속에서나마 살아 있으리란 작은 희망도 서서히 꺼져 버렸어.”

세찬 밤바람이 허름한 가건물의 함석지붕을 날려 버릴 듯 흔들고 낡은 창문을 덜컹거리게 했다.

“난 내 몸뚱이가 시체라고 생각하며 하루하루를 지옥같이 살아갔지. 일본 놈들은 마치 시간屍姦을 하는 미치광이 같았어. 히히 웃으며 시체처럼 가만히 있으라고 말하는 놈도 없지 않았지 뭐야.”

“누님, 쐬주 한잔 드시고 얘기하세요.”

“난 강제로 끌려갔고 처녀를 잃었어.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마치 내가 큰돈이라도 벌러 간 화냥년인 양 얘기하더라구. 하지만 우리들은 친일파와 일본 경찰에 속아 강제로 끌려갔을 뿐야. 돈은 무슨 돈! 겨우 굶어 죽지 않을 정도로 적은 깡보리밥과 다꾸앙을 먹으며 일본군의 성 노리개로 시달렸어. 병이 들어도 치료해 주지 않고 골방에 팽개쳐 두었다가 죽으면 황량한 골짝에 던져 버렸지. 그뿐인 줄 알아? 마루타 부대에 끌려가서 산 채로 생체실험 도구나 되는 경우도 많았대. 그 당시 이광수나 김활란 등 유명한 친일파들이 나서서, 남자들에겐 징용이나 징병을 감언이설로 권유하고 우리 같은 여자들에겐 정신대에 가입하여 대일본의 황군들을 위해 즐겁게 위안을 해주라고 열띤 강연을 하기도 했어. 아마 니놈들도 내가, 우리들이, 돈을 벌기 위해 스스로 그런 짓을 했다고 생각할지도 모르지.”

“무슨 그런 섭섭한 말씀을!”

“강제였든 반강제였든 자발적으로 갔든, 우리는 모두 화냥년이란 낙인이 찍히고 말았어. 사람이 아닌 어떤 괴물이랄까? 세월이 바뀌어 나라를 되찾았는데도 지금은 미군부대 옆에 붙어살며 양색시나 양갈보란 소릴 듣고 있지. 걔들 중에 제 발로 걸어 들어온 년이 없다곤 할 수 없겠지만 속내를 알고 보면 대부분 가난에 찌든 나머지 서울로 올라왔다가 속아서 여기까지 흘러든 경우가 많아”.

“강제로 납치된 애들도 있지만, 대체로 무허가 직업소개소 같은 데 갔다가 떼돈을 벌 수 있다는 감언이설에 속아 온 것이겠지. 일단 여기 들어오면 나가기가 싶지 않은 게 문제야. 경찰에 신고해도 별 소용이 없어. 오히려 요주의자로 찍히고, 업소에서 고용한 깡패놈들한테 죽도록 얻어맞으니까. 대한민국의 국법은 여기서는 아무런 소용이 없는 듯해. 우리나라 대통령마저도 미군에 대해선 큰나라 상전처럼 대하니까 말야. 결국엔 논바닥 속의 미꾸라지나 지렁이마냥 스스로 살아내라는 얘기일 뿐.”

마치 큰돈이라도 벌러 간 것처럼
친일파·일본 경찰에 속아 강제로

청운은 술잔을 만지작거리다가 들어 쭉 들이켰다. 그는 생각했다.

‘어딘지 비슷한 데가 있는 것 같군. 북파공작원과 기지촌의 양색시라는 존재들은 자의인지 타의인지 자의반 타의반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가난이나 굶주림 탓에 상경했다가 사악한 거짓말에 속아서 지옥 속으로 들어갔다는 사실이지.

집에서 쫓겨난 여자애들은 더욱 그렇지 않았을까? 그리고 돈에 현혹되긴 했지만 나를 포함한 이 쌍놈 쌍년들은 뭔지 몰라도 자기가 나라를 위해 중요한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는 착각에 빠진 거지. 북파공작원들은 물색관에게 속고 양공주들은 직업소개소나 포주 협회에 속은 거랄까. 흐흐, 한미친선 관광협회 같은 데서 정기적으로 유명 인사를 초빙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성 여러분은 최전방에서 총을 들고 나라를 지키는 국군 장병들보다 더 소중한 애국자라고 은근히 추켜세우면서 세뇌시키는 강연을 하고 있으니 우스워. 그래도 그런 말에 슬픈 위안을 받은 사람도 아마 있을 거야.

하지만 결국은 일시적인 환몽이었을 뿐 병마와 죽음이 아직은 젊은 몸뚱이를 차압해 버리면 지옥의 구덩이로 빠져들고 말지. 그러면 국가의 약속도 자신의 의지력도 아무 소용없이 한갓 폐기물이 되고 말아. 그들은 인간 소모품에 불과해. 무엇보다 그들이 더욱 비슷한 건 같은 나라 사람들로부터 괴물 취급에 사갈시된다는 거야. 좀 가련한 인간으로 여겨 줄 만도 하건만 대체 왜 그렇게 괄시를 하는 걸까?’

청운은 머릿속으로 생각을 하는 한편으로 백발 노파의 얘기에도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해방이 되고 일본군이 물러가자 우리 같은 여자들도 질긴 성노예의 쇠사슬에서 풀려날 줄 알았지. 하지만 현실은 너무 암담할 뿐이었어. 일단 서울까지 겨우 살아서 내려왔지만, 그런 꼴로 고향 땅으로 돌아갈 수가 있나, 돈 한푼이 있나, 무슨 다른 기술이 있나? 결국 다시 시궁창 속으로 기어 들어갈 수밖에 없었어. 흐흣, 일본군 위안부가 이번엔 미군 위안부로 변한 셈이지.”

“솔직히 잘 이해가 되지 않아요. 실감이 되지 않는다고나 할까.”

피에로가 게슴츠레한 눈으로 중얼거렸다.

“뭐가, 욘석아?”

“일본 식민지 시대는 호랭이 담배 피던 조선 왕조 무렵의 일이잖아요. 지금 현대는 대한민국 세상인데…너무 옛날처럼 느껴져서 착각인 듯 혼란스러워요. 어찌 그런 허무맹랑한 일이….”

“욘석아, 그건 네놈이 무식해서 그래. 내가 왜 쓸데없는 거짓말을 하겠냐?”

“그게 아니라.”

“일본과 미국, 일본군과 미군이 뭐 생판 다른 것 같어? 1945년에 해방되자마자 바로 미군이 이 땅에 들어왔어. 너희들에겐 천지 차이로 보일지 몰라도 내겐 그놈이 그놈이야. 외국 병정들에게 시달린 건 비슷하단 얘기지. 사실상 쪽바리가 물러가고 양코배기들이 들어온 건 스물 네댓 해밖에 지나지 않았단 말야.”

“그래도 아직 실감이 나지 않아. 우리 누님의 인생이 그토록 기구했다니.”

“많은 여자들이 놈들의 폭행으로 인해 죽었고 지금도 죽어 가고 있지. 이렇게 겨우 살아 오긴 했지만, 나도 꿈인지 생시인지 때때로 분간이 잘 안 돼.”

“며칠 전에 살해당한 아가씨는 꽤 착실했다지요?”

지옥 구덩이

“그래, 여기도 자주 왔었는걸. 몸 팔아 번 돈을 알뜰히 모아 고향 부모집에 보내 주곤 했지. 그렇게 착한 애가 왜 그토록 섬뜩하게 죽음을 당해야 하는 걸까?”

셋은 말없이 술잔을 들어 쭉 마셨다.

“직접 거둬 키우셨다는 고아 남매들은?”

청운이 물었다.

“뭐, 둥지를 떠나갔으니 재주껏 살고 있겠지.”


<다음 호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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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의 눈’ 오세훈 차기 대선 로드맵

‘태풍의 눈’ 오세훈 차기 대선 로드맵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오세훈 서울시장이 5선에 성공했다. 하지만 국민의힘은 참패했다. 국민의힘의 수도권 참패 기류 속에서 홀로 승리한 오 시장은 국민의힘에 불어올 태풍의 눈이 될 것이다. 과연 오 시장은 성공적인 시정과 국민의힘 체질 개선이란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을까? 국민의힘은 6·3 지방선거에서 참패했다. 지난 4일 오전 개표 결과, 국민의힘은 광역자치단체장 기준 서울·대구·경북·경남 등 4곳 수성에 그쳤다. 전반적으로 전통적인 지지자들의 지원에 힘입어 최소한의 수성을 한 것으로 보인다. ‘졌잘싸’ 최소 수성 이로써 오세훈 서울시장은 사상 첫 5선에 성공했다. 오 시장은 48.94%를 득표해 48.34%를 득표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원오 후보를 가까스로 물리쳤다. 방송사들의 출구조사에서는 정 후보가 오 시장을 약 5% 앞설 것이라는 예상이 나왔지만, 개표 후 13시간이 지난 시각부터 정 후보를 역전해 신승을 거뒀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3월 이후 역동적으로 중앙정치에 개입했다. 공천 과정에서는 후보 등록을 거부하면서 ‘윤 어게인’에 기반한 강경 보수 노선을 유지하려는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 체제에 반기를 들었다. 이어 당에 절윤(윤 전 대통령과의 절연) 선언을 요구했고, 국민의힘은 의원총회를 개최해 “윤석열 전 대통령의 정치적 복귀에 반대한다”는 등 절윤 결의문을 채택했다. 이후에도 오 시장은 당과 거리두기를 멈추지 않았다. 오 시장이 후보 등록을 거부하면서 요구했던 것 중 하나는 혁신 선거대책위원회 설치였으나 실현되지 않았다. 그러자 오 시장은 한동안 당의 상징색인 빨간색이 아닌 흰색 점퍼 차림으로 현장을 누볐다. 그는 장 대표의 지원 유세를 거절하기도 했다. 지난 4월 진행된 국민의힘 서울시당 필승결의대회와 지난달 12일 진행된 서울시당 선대위 발대식 모두에 장 대표를 초청하지 않았다. 오 시장이 장 대표의 지원 유세를 거절한 취지는 “마음은 고맙지만 필요 없다”는 것이었다. 오 시장은 지난 3월27일 SBS 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에 출연해 “저도 장 대표를 모시고 싶다. 변신한 모습으로 지원 와 주시길 촉구한다”며 “국민의힘 자체가 중도 확장성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후 오 시장은 서울시당을 배경으로 서울 내 자치구를 둔 의원들과 함께 선대위를 구성해 독자적으로 선거를 치렀다. 그리고 5선에 성공했다. 오 시장의 승리는 정치학적으로 정치의 개인화 현상이라고 평가할 만하다. 정치의 개인화는 정당 등 집단적 배경이 아닌 정치인 개인의 리더십 등 이미지가 정치 과정의 핵심이 되는 현상을 말한다. 전통적인 지지 세력 외엔 국민의힘이라는 브랜드가 호감을 얻지 못하는 상황에서 유권자는 국민의힘과 오 시장을 분리해서 평가한 후 오 시장을 지지했다. 국민의힘이라는 정당 브랜드가 오 시장에게 도움이 되기보다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었다. 따라서 오 시장은 당과 거리를 두면서 개인 지지 기반이 잠식되는 것을 최대한 막은 셈이다. 지방선거와 함께 진행된 경기 평택을 보궐선거에서는 국민의힘 유의동 후보가 승리했다. 유 후보는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의 지지 선언 외에는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다. 언론이 주목한 핵심은 더불어민주당 김용남 후보와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의 갈등·상호 폭로였다. 유 후보의 승리는 범여권의 내분 속에서 어부지리 효과를 거둔 것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뒤베르제 법칙에 따르면, 단순다수대표제와 소선거구제는 양당제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김 후보와 조 대표가 단일화에 성공했다면, 유 후보를 상대로 여유 있게 승리했을 가능성이 있었다. 참패 속 홀로 선 오…당과 거리 두고 5선 신승 유 어부지리·한 자력 생존…장동혁 책임론 불씨 하지만 두 후보가 화합하지 못하면서 평택을 선거구도는 다당제로 전개됐다. 김 후보와 조 대표가 각각 일정한 경쟁력을 가진 채 분열했기 때문에 범여권 지지자의 표심은 사실상 양분됐다. 반면 자유와혁신 황교안 후보는 김 후보와 조 후보만 한 경쟁력을 갖지 못해 유 후보의 표를 결정적으로 잠식하지는 못했다. 김 후보·조 후보·진보당 김재연 상임대표 등 진보 성향 범여권 후보들은 각각 28.77%·27.44%·2.95%를 득표했다. 반면 유 후보는 34.83%를, 황 후보는 6.19%를 득표했다. 이 때문에 유 후보는 다수 대결 구도 속 승자가 될 수 있었다. 평택을 결과는 뒤베르제 법칙의 기계적 효과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보여줬다. 단순다수대표제에서는 1표라도 더 얻은 후보가 의석을 차지한다. 유 후보는 34.83%를 득표하는 데 그쳤지만, 범여권 후보들이 분열하면서 의석을 차지할 수 있었다. 범여권 후보의 분열은 뒤베르제 법칙이 기대하는 심리적 효과인 사표 방지를 위한 유력 후보 결집 효과 실현을 방해했다. 따라서 유 후보의 승리는 국민의힘의 조직적 승리라기보다, 범여권 분열과 단순다수대표제의 기계적 효과가 맞물린 결과에 가까웠다. 부산 북구갑 재보궐선거에 무소속으로 출마했던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도 민주당 하정우 후보를 물리치고 신승했다. 이로써 한 전 대표는 오 시장과 함께 자력으로 정치적 승리를 거뒀다. 지난 2월 한 전 대표 제명을 주도했던 장 대표 등 당권파는 매우 치명적인 내상을 입은 것이다. 통상적인 정치적 관례대로라면 선거에서 대패한 당 대표 등 지도부는 일괄 사퇴의 길을 걷는다. 이후엔 비상대책위원회가 설치돼 당의 혼란을 수습한 후 전당대회를 개최한다. 하지만 일각에선 선거 이전부터 “장 대표는 선거에서 패배하더라도 물러나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지난 3일 SBS 선거 방송에 출연한 홍준표 전 대구시장은 “나는 자유한국당 대표였던 지난 2018년 지방선거 당시 자유한국당 패배를 예고하는 출구조사 발표를 듣는 즉시 사퇴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장 대표는 억울하다고 생각하면서 사퇴하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가 장 대표가 억울해할 것이라고 예상한 이유로는 “상당수 후보들이 장 대표에게 지원을 요청하지 않았으므로 장 대표로서는 할 말이 있다”고 설명했다. 장 대표는 지난 4일에도 사퇴 의사를 밝히지 않았다. 장 대표를 강제로 사퇴시킬 수단은 사실상 없다. 국민의힘 당헌·당규에 따르면, 청년 최고위원을 포함한 선출직 최고위원 5명 중 4명 이상이 사퇴하거나 궐위되면 지도부가 무너진 것으로 간주돼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전환된다. 치열한 혈투 치명적 내상 국민의힘 선출직 최고위원은 신동욱·김민수·양향자·김재원·우재준 최고위원이다. 이들 중 신동욱·김민수·김재원 최고위원은 전반적으로 장 대표와 뜻을 함께하고 있다. 물론 구 친윤(친 윤석열)계가 장 대표의 거취를 어떻게 결정할지에 따라서 신 최고위원과 김재원 최고위원은 유동적인 결정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구 친윤계로서는 장 대표를 섣불리 사퇴시켰다가 오 시장이 당권 장악까지 시도하는 더 큰 강풍을 맞이할 수도 있어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한동안 “구 친윤계가 장 대표를 사퇴시킨 후 신 최고위원을 얼굴로 내세울 수도 있다”는 설이 돌아다녔지만, 말 그대로 설로 끝났다. 장 대표와 구 친윤계가 충돌했던 지난 1~2월에도 충돌했던 핵심 요소는 절윤 등 노선 변경 여부였을 뿐, 장 대표의 거취는 아니었다. 인위적인 지도부 붕괴는 사실상 어렵다. 최고위 자체가 장 대표에겐 벙커로 작용하기 때문에 장 대표가 버티면 끌어낼 수 있는 정상적인 방법을 찾기 어렵다. 하지만 대구·경북·경남을 수성했기 때문에, 대체로 이 지역을 기반으로 삼는 구 친윤계는 참패 속에서도 당내 발언권이 사라지지 않았음을 확인했다. 반대로 대구에서 민주당 김부겸 후보가 45.05%를 득표하는 등 핵심 지역 기반 대구에서도 예전과 다른 정치적 정서가 확인됐다. 따라서 구 친윤계로서는 “지역 기반 수성을 위해 당에 변화를 줘야 할 시점”이라는 판단과 “장 대표가 관례대로 사퇴해야 한다”는 판단이 교차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미 하마평에 올랐던 신 최고위원 등 대안 인물을 찾아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옹립하려 할 가능성이 있다. 현재의 국민의힘은 ‘윤 어게인’ 정서를 등에 업은 강경 보수 세력과 영남권에 기반을 둔 구 친윤계가 양대 축을 형성한 과두적 구조에 가깝다. 이탈리아의 사회학자 로베르트 미헬스는 ‘과두제의 철칙’이라는 개념을 주장했다. 과두제의 철칙은 “조직이 커질수록 민주성을 유지하기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미헬스가 지적했던 근거는 ▲관료화와 분업 ▲대중의 무관심과 무능력 ▲지도부의 권력 독점 등이었다. 이 중 국민의힘에 작용하는 것은 관료화와 권력 독점이라고 할 수 있다. 관료화로 인해 지도부에 권력이 집중되고, 지도부는 권위 유지를 위해 정보·자원을 통제한다. 구 친윤계 대안 옹립? 그간 구 친윤계는 “당의 이익보다 자신의 권력 자산을 보존하려고 한다”는 비판적 평가를 받아왔다. 장 대표가 구 친윤계의 사퇴 공세에 맞설 수단은 당헌·당규가 벙커로 만든 지도부의 견고함밖에 없다. 영남을 수성했기 때문에 국민의힘에서는 역설적으로 큰 혼란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 기반이 영남에 과도하게 집중돼있기 때문에 연이은 선거 패배라는 외부적 충격이 발생할수록 당내 권력구조 강화로 회귀하려는 관성이 작동하기 때문이다. 구 친윤계에 대해서는 “당을 파벌·지역의 이익을 지키기 위한 도구로 활용한다”는 비판이 오랫동안 제기돼왔다. 서울시장 5선에 성공한 오 시장은 지금까지 구 친윤계와 장 대표 모두를 상대해 왔던 한 전 대표와는 다르다. 한 전 대표는 구 친윤계와 강경 보수 성향 지지자들로부터 배신자라는 낙인이 찍혀 있었다. 그가 국민의힘 복당 이후 당권 장악을 거쳐 대권에 도전할 것이란 예상은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다. 하지만 한 전 대표의 복당은 역설적으로 더욱 어려워질 수도 있다. 복당하더라도 국민의힘 내 소수 계파인 친한(친 한동훈)계 수장에 불과하다. 목표로 삼을 당권·대권 도전을 위해선 당내 구 친윤계의 거부감을 누그러트릴 수 있는 정치력을 발휘해야 한다. 따라서 한 전 대표는 당선돼 자력 생존했다고 하더라도 아직은 태풍 속의 찻잔으로 남을 공산이 크다. 사상 최초로 서울시장 5선에 사실상 자력으로 성공한 오 시장이야말로 태풍의 눈이 될 가능성이 높다. 장 대표는 당 대표직 유지와 생존이 급박하기 때문에 수성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 자신이 당 대표이기 때문에 자신의 노선을 변혁하려는 모순을 저지를 수도 없다. 따라서 국민의힘의 차기 권력구도는 오 시장과 구 친윤계가 여러 쟁점을 놓고 충돌하는 양상으로 전개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몇 달 안으로 결정해야 할 논점만 해도 ▲장 대표 등 지도부의 거취 ▲비상대책위원회 설치 여부 및 위원장 임명 ▲새 지도부 선출을 위한 전당대회 개최 시점 등이며, 이것들이 연쇄적으로 이어진다. 최고위는 장 벙커…영남 기반 구 친윤도 셈법 복잡 복당 벽 마주할 한…‘오세훈계’ 편성 당 흔드나 국민의힘 내 수도권 거점은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는 사실상 무너졌다고 봐도 무방한 수준이다. 따라서 오 시장이 잔존한 수도권 내 비친한계 성향 중도보수계열 인사들을 규합해 오세훈계를 구성할 수도 있다. 다만 현실적으로 광역자치단체장이 직접 정당 대표를 맡기는 어렵다. 오 시장으로서는 오세훈계를 구성해 참신한 개혁 이미지를 표방할 수 있는 대리인을 내세울 가능성이 있다. 일각에서는 그 대리인으로, 친한계로 알려졌지만 서울시당위원장으로서 당권파와 겨뤄가면서 오 시장과 호흡을 맞춘 국민의힘 배현진 의원과 서울 내 험지인 도봉갑에서 당선돼 서울시장 선거전에서도 민주당 정 후보 저격 활동에 집중했던 김재섭 의원 등을 거론한다. 이에 맞서 구 친윤계는 전통적인 논리를 동원해 맞설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2016년 이후 영남권 중심 구 친윤계의 논리는 “수도권이야말로 늘 국민의힘 선거 패배의 원흉”이라는 것이었다. 만약 오세훈계가 새롭게 편성된다면, 사안에 따라 오세훈계와 친한계가 구 친윤계의 공세에 공동 대응할 가능성도 있다. 물론 장 대표의 정치적 수명이 이 사태에 아예 참전할 수 없을 정도로 끝난 것은 아니다. 그의 정치적 수명을 연장시킬 수 있는 변수는 이번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투표용지 관리 논란에서 나올 수도 있다. 국민의힘과 개혁신당은 서울 송파구에서 발생한 투표용지 부족 사태를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일각에선 재투표까지 주장하고 있다. 당장 직면한 참패의 여파를 수습하고 당을 뭉치게 하는 데 있어서는 도움이 될 수 있다. 위기를 통제 가능한 외부의 독립된 실체로 분리해 내부적 결집을 추구하는 것이다. 하지만 강경 보수 집단이 영향력을 행사하는 국민의힘에선 오히려 내부를 겨냥한 칼이 될 수도 있다. 섬세하게 다루지 못하면 부정선거론의 영향력이 당 안에서 강해질 수 있고, 역설적으로 장 대표의 영향력이 강해지도록 돕는 생명줄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시선은 대권에? 부정선거론과 장 대표의 영향력 유지가 겹쳐지면, 오 시장과 구 친윤계가 일시적으로 연합해 대응할 수도 있다. 따라서 국민의힘에선 네 갈래 권력 투쟁인 ‘사국지’가 펼쳐질 가능성이 있다. 크게는 영남·강경 노선과 수도권·확장 노선으로 분류된다. 그런데 이를 세부적으로 파고들면, ▲대구·경북 중심 구 친윤계 ▲지도부란 벙커에 있는 친 장동혁계(당권파) ▲친 한동훈계 ▲무계파·수도권 중심 친 오세훈계 등으로 편성될 수도 있다. 계파의 세분화 가능성 중심에는 오 시장이 있다. 태풍의 눈이 된 오 시장은 과연 성공적인 서울시정 수행과 국민의힘 체질 개선에 성공할 수 있을까? 오 시장이 대권에 시선을 두고 있다면, 두 마리의 토끼는 반드시 잡아야 한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