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본회의장은 말의 공간이 아닌 결정의 공간이다. 정당은 얼마든지 토론을 벌일 수 있고, 반대할 수도 있으며, 때로는 핏대를 세우며 격하게 싸울 수도 있다. 그러나 국회의원이 끝내 포기해서는 안 되는 마지막 책임이 있다. 바로 본회의 표결이다.
찬성이든 반대든, 국민 앞에서 자신의 선택을 기록으로 남기는 것. 그것이 대의민주주의의 최소한 의무이자 권리다.
그런 점에서 7일, 국민의힘의 개헌안 투표 불참은 단순한 정치 전략을 넘어 의회민주주의 자체를 흔든 행위로 평가받아야 한다.
개헌은 국가 운영의 기본 틀을 바꾸는 중대한 문제다. 권력구조, 국민 기본권, 지방분권, 통치 시스템 등 국가의 미래 방향을 결정하는 헌법적 논의다. 여야가 치열하게 부딪힐 수밖에 없는 사안이며, 당연히 여야 간 의견 차이도 존재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필요한 것은 자리를 피할 게 아닌, 책임 있는 표결이다.
국민은 국회의원에게 ‘도망가라’고 권한을 준 것이 아니라, 자신의 입장을 밝히고 판단하라고 권한을 위임했다.
하지만 국민의힘은 표결 자체를 거부했다. 반대를 원했다면 반대표를 던지면 될 일이었다. 개헌안이 문제가 있다고 판단했다면 조목조목 비판하며 부결시키려 했어야 했다. 그것이 민주주의다. 그러나 불참은 전혀 다른 문제다. 이는 정치적 책임을 회피하면서도 결과만 통제하려는 행동이다.
“우리는 결정에 참여하지 않았지만 결과는 막겠다”는 태도는 책임 정치와 거리가 멀다.
그간 국민의힘은 집권여당 시절, 야당의 국회 보이콧과 집단 퇴장을 강하게 비판해 왔다. 국회는 싸우더라도 자리를 지켜야 하며, 표결로 책임져야 한다는 논리를 반복했다. 그런데 정작 자신들이 불리한 상황에서는 같은 방식을 선택했다. 이는 명백한 자기모순이다.
정당의 원칙은 유불리에 따라 바뀌어서는 안 된다. 과거에는 “민주주의 파괴”라고 비난하던 행동을 지금은 “전략적 선택”이라고 설명한다면, 국민은 그 어떤 명분도 신뢰하기 어렵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런 행동이 정치 혐오를 키운다는 점이다. 이미 국민 상당수는 국회를 “싸움만 하는 곳”으로 인식하고 있으며 민생은 뒷전이고 정쟁만 반복된다는 불신도 깊다. 이런 상황에서 거대 정당이 헌법 개정이라는 중대한 사안마저 표결 불참으로 대응한다면 국민은 표결에 불참했던 국회의원들을 어떻게 생각할까?
결국 “정치인은 책임지지 않는다”는 냉소만 강화될 뿐이다.
물론 국민의힘 입장에서는 개헌안 통과가 정치적으로 불리하다고 판단했을 수도 있고, 야당 주도의 흐름에 힘을 실어주고 싶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러나 민주주의는 결과만으로 운영되지 않으며, 과정도 중요하다. 특히 의회민주주의는 참여와 기록, 책임의 원리에 기반한다. 표결은 단순한 절차가 아니다. 국민 앞에 자신의 정치적 신념을 남기는 행위다.
이를 포기한 순간 국회의원은 입법기관의 책무 일부를 스스로 내려놓는 셈이다.
정당 정치의 핵심은 책임성이다. 선거 때는 “국민을 위해 싸우겠다”고 말하면서 정작 가장 중요한 순간에는 투표장을 비워버린다면, 그 약속은 공허해진다. 더구나 개헌 문제는 특정 정권의 이해관계를 넘어서는 국가적 과제다. 미래 세대까지 영향을 받는 문제를 두고 집단 퇴장이라는 방식으로 대응한 것은 정치의 품격을 스스로 낮춘 선택이었다.
국민의힘은 보수 정당이다. 보수는 원래 제도와 책임, 안정성을 중시하는 정치 철학을 강조해 왔다. 그렇다면 더욱 의회의 규범과 절차를 존중했어야 했다. 마음에 들지 않는 안건이라도 토론하고, 반대하고, 표결로 맞서는 것이 책임 있는 보수의 자세다.
숫자가 불리하다고 자리를 떠나는 것은 투쟁일 수는 있어도 설득은 아니다. 민주주의는 결국 국민을 설득하는 정치이지, 의사결정 자체를 무력화하는 정치가 아니다.
정치는 때때로 패배를 감수해야 한다. 그러나 패배를 두려워해 표결을 피하는 순간, 정당은 스스로 민주주의의 경쟁 원리를 부정하게 된다. 국민이 원하는 것은 완벽한 정당이 아닌, 최소한 책임을 지는 정당이다. 찬성이든 반대든 기록으로 남고, 그 결과에 대해 다음 선거에서 평가받는 프로세스가 돼야 한다.
개헌안 투표 불참은 단순한 하루의 정치 이벤트로 끝날 수 있으나 그 후유증은 길다. 국회가 스스로 표결 문화를 가볍게 여기기 시작하면, 앞으로도 중요한 순간마다 ‘집단 퇴장’이라는 나쁜 선례가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 그렇게 되면 민주주의는 토론과 책임의 공간이 아니라 숫자와 보이콧만 남는 소모적 전쟁터로 전락하게 된다.
국회의원의 가장 큰 권한이자 가장 큰 의무는 표결권의 행사다. 국민의힘은 이번 불참 사태를 단순한 전략적 선택이었다고 넘길 일이 아니다. 왜 많은 국민이 실망했고, 왜 의회민주주의 훼손이라는 비판이 나오는지 진지하게 돌아봐야 한다. 헌법을 논하는 정당이라면, 최소한 헌법기관으로서의 기본적 책임을 지켜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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