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삼기의 시사펀치> 방송 토론, 왜 중도 패널은 없나

싸움의 정치서 해법의 정치로 전환해야

정치는 본래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기술로, 서로 다른 입장을 설득하고 균형을 맞추는 과정이 본질이다. 그러나 지금의 대한민국 정치는 조정이 아니라 충돌을 설계하는 구조로 작동하고 있다. 진보와 보수는 서로를 설득하지 않고 제거의 대상으로 규정한다. 그 결과 논쟁은 해법으로 수렴되지 못한 채 감정의 확산으로 소모되고, 정치의 기능 자체가 무너지고 있다.

평소 국민은 단순한 이분법으로 나뉘지 않는다. 진보와 보수, 그리고 중도라는 다층 구조 속에서 각자의 판단을 유지한다. 그러나 선거가 시작되는 순간 이 구조는 급격히 붕괴된다. 약 30%의 중도는 양 진영으로 흡수되고 정치 지형은 45 대 45의 대결 구도로 재편된다. 이는 중도가 사라진 것이 아니라 선택을 강요받은 결과다.

45 대 45
정치 지형

실제 여론에서도 중도층은 꾸준히 존재한다. 하지만 선거 국면만 되면 사실상 보이지 않는 존재가 된다. 이 반복 구조가 정치의 수준을 점점 왜곡시키고 있다.

국민은 원래 둘이 아니라 셋이다= 우리 사회의 정치 성향은 본질적으로 다층 구조다. 상당수 국민은 특정 진영에 고정되지 않는다. 이슈에 따라 판단을 달리하는 중도적 위치에 존재한다. 그러나 정치권은 이를 인정하지 않는다. 선거라는 이벤트를 통해 단순한 이분법 구조로 재편하려 한다. 그 과정에서 다양한 판단은 축소되고 선택의 폭은 의도적으로 좁아진다.

선거 국면에서는 정당의 전략도 더욱 선명해진다. 중도를 설득하기보다 끌어당겨 편입시키는 방식이 선택된다. 그 결과 중도는 선택의 주체가 아니라 이동의 객체로 전락한다. 판단은 사라지고 진영 논리가 지배하게 된다. 결국 유권자의 선택은 자유로운 판단이 아니라 구조적 압력의 결과가 된다.

문제는 이 구조가 선거 이후에도 유지된다는 점이다. 중도는 다시 정치에서 배제되고 정당은 지지층 중심으로 재편된다. 정책 경쟁은 사라지고 진영 경쟁만 남는다. 정치의 목적보다 진영의 생존이 더 중요한 기준으로 작동하기 시작한다. 그 결과 정치 시스템은 점점 단순화되고 극단화된다.

방송은 갈등을 소비하는 산업이 됐다= 정치 토론 프로그램은 원래 다양한 시각을 검증하는 공간이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의 방송 구조는 다르다. 진보와 보수의 충돌을 중심으로 설계된다. 중도 패널은 처음부터 배제된다. 균형은 사라지고 갈등만 남는다. 토론은 해법이 아니라 대립을 재생산하는 형식으로 고착된다.

필자는 모 방송국으로부터 패널 출연 요청을 받은 적이 있다. 이력과 칼럼 10여점을 보냈지만, 돌아온 답은 “중도 색깔은 곤란하다”는 말이었다. 이것이 지금 방송 구조의 현실이다. 그러나 방송이 놓치고 있는 것이 있다. 시청자는 극진보와 극보수는 물론이고, 자기 진영 주장만 반복하는 패널 자체에 피로감을 느끼고 있다는 점이다. 시청자가 원하는 것은 진영 대변인이 아니다.

언제나 중도층 꾸준히 존재
선거 국면선 사실상 지워져

이 구조는 방송 산업의 수익 구조와 직접 연결돼있다. 시청률을 높이기 위해서는 긴장과 충돌이 필요하다. 그래서 패널 구성도 갈등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이뤄진다. 결국 시청자는 해법이 아니라 장면을 소비하게 되고, 문제의 본질보다 충돌만 보게 된다.

사회자조차 갈등을 조정하지 못하는 순간, 방송은 현실을 반영하는 수준을 넘어 사회 분열을 확대하는 장치로 변하게 된다.

중도는 ‘중간’ 아닌 ‘조정자’= 중도는 애매한 위치가 아니다. 특정 이해관계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위치다. 이 지점에서 정치적 균형이 가능해진다. 진보와 보수의 논리를 동시에 검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중도는 조정자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중도는 ‘중간’이 아니라 ‘조정자’다.

중도는 어느 한쪽의 이익을 직접 대변하지 않는다. 그래서 더 객관적인 기준을 적용할 수 있다. 감정이 아니라 논리로 문제를 바라보며 양 진영을 동시에 지적할 수 있다. 또 갈등을 재구성하고 과잉된 주장들을 걸러낼 수도 있다. 이 기능이 사라지는 순간 정치적 충돌은 끝없이 증폭된다.

중도 패널이 토론장에 등장하는 순간 구조는 달라진다. 토론은 승부가 아니라 과정이 되고, 논쟁은 합의를 향해 움직이기 시작한다. 우리가 지금 잃어버린 것도 바로 이 조정 기능이다. 양 진영은 각자의 주장만 반복할 뿐, 이를 조율할 주체가 사라졌다. 그 결과 사회 전체의 갈등 비용은 계속 커지고 있다.

유튜브는 분열 강화하는 구조= 유튜브 정치 콘텐츠는 선택 기반 구조다. 이용자는 보고 싶은 것만 선택한다. 그 결과 진영별로 완전히 분리된 정보 환경이 형성된다. 서로 다른 의견이 만날 기회는 사라지고, 현실 인식 자체가 따로 형성되기 시작한다. 여기에 진행자와 출연자까지 특정 진영에 치우치면서 중도는 들어갈 통로조차 잃고 있다.

진보와 보수
애매한 위치

알고리즘은 이 흐름을 더욱 강화한다. 기존 성향을 반복적으로 노출하고 같은 의견을 계속 축적시킨다. 확증 편향은 강화되고, 진보는 더 진보적으로, 보수는 더 보수적으로 고착된다. 이 구조에서는 다른 의견보다 같은 의견이 더 가치 있는 콘텐츠가 된다.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접점은 점점 사라진다.

결국 설득은 작동하지 않는다. 대화는 단절되고 남는 것은 감정적 동조뿐이다. 사회는 분열되고 중도는 개입할 공간 자체를 잃는다. 공론장은 사라지고 각자의 세계만 강화된다. 극단적 진보와 극단적 보수가 유튜브의 핵심 이용층으로 남는 현상 역시, 플랫폼 구조가 가진 한계를 보여준다.

집회도 ‘치킨게임’ 구조로 변해= 대규모 집회는 민주주의의 중요한 표현 방식이다. 시민이 직접 의견을 드러내고 권력에 메시지를 전달하는 통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진보와 보수가 같은 공간에서 따로 모여 서로를 향해 메시지를 던진다. 촛불집회와 태극기 집회가 대표적이다. 설득은 사라지고 압박만 남는다.

참가자들은 같은 주장만 반복해 외치고 같은 이야기만 듣게 되면서 다른 관점은 자연스럽게 차단된다. 상대 진영에 대한 이해는 사라지고 논쟁은 점점 공격적으로 변한다. 감정이 증폭될수록 이성은 밀려난다. 결국 집회는 갈등을 해결하지 못한 채 갈등을 고착시키는 방향으로 작동한다.

중도는 집회 현장에서 거의 보이지 않는다. 조직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집회에 나타나지 않는 중도가 가장 큰 집단일 수 있다. 문제는 그 목소리가 하나로 모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촛불과 태극기가 치킨게임처럼 맞서는 상황에서도 이를 조정할 힘은 드러나지 않는다. 그 결과 균형은 작동하지 않고 충돌만 확대된다.

중도는 왜 사라지나? 갈등으로 돈 버는 구조 때문= 필자는 결국 정치와 방송, 플랫폼이 모두 ‘갈등을 통해 이익을 얻는 구조’로 연결돼있다고 본다. 갈등이 클수록 지지층은 더 강하게 결집하고 시청률과 조회수는 상승한다. 플랫폼은 체류 시간 증가를 통해 수익을 확대한다. 이 구조 속에서 갈등은 해결해야 할 문제가 아니라 유지되고 증폭되는 자원이 된다.

반면 중도는 전혀 다른 위치에 놓여 있다. 갈등을 키워도 얻을 수 있는 이익 구조 자체가 없다. 조직과 동원력도 약하고 이를 기반으로 한 수익 모델 역시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목소리는 작고 영향력은 제한될 수밖에 없다. 결국 중도는 실제로 존재함에도 구조 바깥으로 밀려나게 된다.

공고해지는
비대칭 구조

이 비대칭 구조는 반복될수록 더욱 공고해진다. 갈등은 계속 누적되고 사회는 점점 균형을 잃어간다. 이를 조정해야 할 기능은 약화되고 이를 대신할 장치도 보이지 않는다. 남는 것은 해결되지 않은 충돌과 확대되는 긴장뿐이다. 그리고 그 비용은 결국 사회 전체가 감당하게 된다.

중도는 왜 정당이 되지 못하나= 중도를 제3당으로 만들려는 시도는 많았지만 대부분 실패했다. 이유는 단순하다. 정당이 되는 순간 권력 경쟁 구조 안으로 들어가기 때문이다. 선거를 치르고 의석을 확보해야 하는 순간부터 전략은 달라진다. 지지층 결집과 선명성 강화 압박이 작동한다. 결국 중도의 본질인 균형과 조정은 사라지고 또 하나의 진영으로 편입된다.

문제는 중도가 정당으로도 실패하지만 독립적인 세력으로도 작동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진보와 보수는 조직과 네트워크를 통해 힘을 만든다. 그러나 중도는 개인으로만 존재한다. 그래서 힘이 분산되고 영향력으로 전환되지 못한다. 공통 의제도, 이를 묶어낼 플랫폼도 부족하다.

이 구조가 반복되면서 중도는 점점 더 약해진다. 판단은 있지만 행동은 없고, 의견은 있지만 연결되지 않는다. 그래서 가장 큰 집단이 가장 약한 상태로 남는 모순이 굳어진다. 결국 해법은 분명하다. 중도는 정당이 아니라 ‘조직된 조정 세력’이 되어야 한다. 권력을 직접 장악하기보다 균형을 설계하고 흐름을 조정하는 역할이다.

과거의 ‘어른’이 사라졌다= 과거에는 종교인, 지식인, 사회 원로 등 중재자들이 그 역할을 했다. 그들은 진영 위에 서 있어 특정 이해관계에 얽매이지 않는 위치를 유지했다. 그래서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 판단이 가능했다. 양 진영이 다투다가도 중재자가 한마디 하면 흐름이 정리되곤 했다.

사회는 그들을 하나의 기준으로 삼았다. 완전한 동의가 아니더라도 멈출 수 있는 계기가 됐다. 최소한 갈등이 더 확산되지 않게 만드는 역할은 가능했다. 그래서 극단적 충돌은 일정 수준에서 조정될 수 있었다. 사회가 완전히 무너지지 않았던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어느 한쪽 이익 직접 대변하지 않아
싸움 정치서 해법 정치로 전환해야

지금은 그런 존재가 사라졌다. 심판 없는 경기처럼 충돌을 멈출 장치가 없다. 그래서 갈등은 계속 확대되고 사회 전체의 피로도만 높아지고 있다. 누구의 말도 멈춤의 기준이 되지 못한다. 공통의 권위가 사라진 상태다. 초분열 사회에서 그 현상은 더욱 선명하게 나타난다.

‘중도 구조’ 만들어야= 이제는 중도의 역할을 제도화해야 한다. 보이지 않는 영향력만으로는 지속성을 만들 수 없다. 방송에서도 이 구조는 필요하다. 토론 구성 단계부터 균형을 설계해야 한다. 진보·보수 2:2 구조가 아니라 중도를 포함한 2:2:2 구조가 필요하다. 그래야 처음부터 다른 시각이 공존하는 판이 만들어진다.

유튜브, 집회에서는 물론, 공론장 전체에서도 필요하다. 특정 채널이나 특정 집단에만 맡겨둘 문제가 아니다. 플랫폼 구조 자체가 다양성을 반영해야 한다. 알고리즘 역시 균형을 고려하는 방향으로 설계될 필요가 있다. 중도적 시각이 지속적으로 생산되고 노출되는 구조가 만들어져야 한다.

중도가 참여할 구조가 만들어져야 균형이 생기고 정치가 정상으로 돌아온다. 이것이 구조 변화가 필요한 이유다. 그래야 갈등이 충돌이 아니라 조정으로 전환된다. 일회성이 아니라 반복 가능한 구조여야 한다. 그 과정이 쌓일 때 사회는 비로소 안정된다.

민주화의 출발점은 ‘중도 시민’이었다= 민주화의 출발점은 특정 진영이 아니라 시민 전체에 있었다. 그 중심에는 이념보다 상식을 기준으로 움직였던 중도 시민이 있었다. 이들은 어느 한쪽에 속하기보다 공동체 전체의 방향을 고민했다. 단순한 참여를 넘어 책임 있는 판단을 내리는 주체였다. 그래서 균형을 선택할 수 있었다.

당시 시민들은 특정 진영의 논리에 갇히지 않았다. 무엇이 옳은가를 기준으로 판단했고 상황에 따라 입장을 조정했다. 고정된 입장이 아니라 현실에 맞는 선택을 이어갔다. 그래서 다양한 목소리가 하나의 흐름으로 모일 수 있었다. 중도는 침묵하는 집단이 아니라 방향을 결정하는 중심이었다.

그러나 지금의 구조에서는 그 중도 시민이 보이지 않는다. 존재하지만 조직되지 못하고, 목소리로 연결되지 못한다. 서로를 확인하고 결집할 통로도 부족하다. 그 결과 공론장에서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한다. 가장 큰 집단이 가장 약한 상태로 남는 역설이 반복된다.

이제 정치의 기준을 바꿔야= 6·3 지방선거 이후가 중요하다. 중도는 선거 이후에도 계속 반영돼야 한다. 선거 때만 소환됐다가 사라지는 방식으로는 의미가 없다. 정책 결정 과정에도 참여해야 하고 공론장에서도 지속적으로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정치의 방향도 흔들리지 않는다.

특정 진영
갇힌 논린

정당도, 방송도 바뀌어야 한다. 구조 자체가 바뀌어야 한다. 지금처럼 지지층 중심으로만 설계된 구조로는 한계가 분명하다. 다양한 의견을 반영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중도의 참여가 구조적으로 보장돼야 한다. 그래야 특정 진영이 아니라 전체를 보는 정치가 가능해진다.

정치는 원래 싸움이 아니다.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충돌이 아니라 질서로 바꾸는 기술이다. 지금 대한민국에 필요한 것은 더 강한 진보도, 더 강한 보수도 아니다. 그 둘 사이를 조정할 수 있는 힘이다. 중도가 살아야 민주주의도 다시 살아난다.

<skkim596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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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문 가득한 보완수사권 폐지 후폭풍

의문 가득한 보완수사권 폐지 후폭풍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70년 넘게 유지된 우리나라 형사제도에 지각변동이 일어났다. 오는 10월 검찰청 폐지와 맞물려 사회에 많은 변화를 일으킬 것으로 예상된다. 문재인정부 때부터 힘을 키워온 경찰은 이번 개정안으로 강력한 권한을 갖게 됐다. 동시에 경찰은 국민의 질문에 답해야 할 상황에 이르렀다. 경찰을 믿을 수 있나? 지난달 31일 형사소송법 개정안이 국회 문턱을 넘었다. 형소법 개정안은 검찰의 수사권을 완전히 없애는 것을 골자로 한다. 이제 검사는 사법경찰관에게 보완수사를 ‘요구’할 권한만 갖는다. 1954년 형사소송법이 제정된 이래 72년 만에 가장 큰 사법체계 변화를 마주하게 됐다. 격변하는 형사제도 형소법 개정안의 국회 본회의 통과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주도로 이뤄졌다. 표결 결과 재석 의원 178명 가운데 찬성 175명, 반대 2명, 기권 1명으로 가결됐다. 민주당 곽상언 의원과 개혁신당 이주영 의원이 반대했고, 민주당 이소영 의원이 기권표를 던졌다. 국민의힘은 표결에 불참했다. 이번 개정안에는 보완수사권을 포함해 오는 10월 신설되는 공소청 검사의 수사권을 전면 폐지하는 내용이 담겼다. 또 수사 과정에서의 모든 자료를 형사사법정보시스템(KICS)에 기록하도록 했다. 피해자 보호를 위한 장치로는 경찰이 사건을 불송치할 경우 고소인‧피해자‧고발인이 이의 신청할 수 있도록 하고 이에 필요한 사건 기록 열람‧등사 권한도 부여했다. 이번 형소법 개정안이 통과되면서 그동안 민주당이 주도해 온 검찰개혁은 마무리 수순에 접어 들었다. 앞서 민주당은 지난해 9월 검찰청 폐지를 골자로 하는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개정안에 따라 오는 10월2일 공소청과 중대범죄수사청이 출범하는데, 공소청 검사는 공소 제기와 재판 유지만 맡는다. 일각에서는 이재명 대통령이 재의요구권(거부권)을 써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지만 국회 본회의 통과 직후 청와대에서 환영의 메시지가 나오면서 가능성은 사라졌다. 이날 청와대는 “국회의 입법 과정과 최종 판단을 존중한다”며 “수사와 기소의 분리를 통해 권력의 독점과 남용을 막는 한편, 피해자와 국민 인권 보호 수준을 높임으로써 형사사법 시스템이 국민 곁으로 한걸음 더 다가서도록 할 것”이라는 내용의 입장문을 내놨다. 국민 10명 중 6명 반대 여당 주도 본회의 통과 이 대통령은 거부권 대신 ‘사필귀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난 4일 국무회의에서 “국민의 삶을 더욱 안정적으로 지키기 위해 모든 권력기관은 예외 없이 국민의 통제 아래 두겠다는 사필귀정의 필연적 조치”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수사·기소 분리는 비정상적 형사사법 시스템을 정상화하는 첫걸음”이라고도 했다. 국회 본회의 통과, 국무회의 의결 등 법안 공포 과정이 일사천리로 진행되면서 우리나라 사법체계는 그동안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을 걷게 됐다. 그리고 그 중심에 ‘경찰’이 놓였다. 문재인정부 당시 검·경 수사권 조정으로 검찰의 기소 독점주의가 깨지면서 경찰에 실리기 시작한 힘은 이번 형소법 개정안으로 절정에 이르렀다. 이번 형소법 개정안이 통과되기까지 검찰에 ‘보완수사권’이라는 견제 기능을 남겨둘지를 두고 진통이 상당했다. 형소법 개정안이 검찰의 수사권을 완전히 박탈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만큼 경찰에 집중되는 권한을 견제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보완수사권은 그 최후의 보루로 여겨졌다. 실제 보완수사권 폐지에 관한 여론조사 결과는 압도적으로 반대가 높았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길리서치가 <쿠키뉴스>의 의뢰로 지난 1~3일까지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보완수사권 존치 여부에 대한 조사를 진행했다. 그 결과 62.5%가 ‘검찰에 보완수사 권한을 줘야 한다’고 답했다. ‘불필요하다’는 응답은 31.8%로 나타났다. 민주당 지지층에서도 53.8%가 ‘보완수사가 필요하다’고 답했고 모든 지역에서 과반을 기록했다. 대구‧경북 지역에서 73.1%로 가장 높았고 서울 64.7%, 호남권에서도 59.9%가 ‘보완수사권을 존치해야 한다’고 응답했다. 남녀노소, 지지 정당, 정치 성향을 불문하고 ‘보완수사권이 필요하다’는 쪽에 손을 든 것이다. 존치 의견 우세해도… 존치 찬성자들은 경찰의 수사 능력을 의심했다. 검찰보다는 경찰이 국민과의 접점이 더 넓은 상황에서 ‘억울한 피해자가 나오지 않도록’ 수사를 제대로 처리할 수 있겠느냐는 지적이다. 무엇보다 ‘장윤기 사건’이 불거지면서 형소법 개정안에 대한 우려가 더 커진 감도 없지 않았다. 장윤기 사건은 지난 5월 광주 광산구 월계동 남부대학교 인근에서 장윤기가 여고생을 흉기로 살해한 내용이다. 이 여고생의 비명을 듣고 달려간 남학생도 크게 다쳤다. 장윤기와 여고생이 일면식도 없는 사이로 알려지면서 ‘묻지마 범죄’라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 장윤기 사건에 경찰인 그의 아버지가 개입한 사실이 드러났다. 장윤기의 부친을 비롯한 경찰 관계자가 사건에 개입해 증거를 인멸하고 수사 관련 정보를 누설하는 등의 행위를 한 게 검찰의 보완수사 과정에서 나타난 것이다. 특히 장윤기의 아버지가 아들의 방에서 없앤 리얼돌은 성범죄 가능성을 입증할 수 있는 증거로 여겨졌다. 10대 여고생이 피살된 사건에서 경찰이 가해자 측과 유착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자 보완수사권이 쟁점으로 떠올랐다. 경찰에 대한 최소한의 견제 장치라도 남겨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받기 시작한 것이다. 범죄 피해자들의 목소리도 더해졌다. 부산 ‘돌려차기’ 사건 피해자 김모씨는 보완수사권 폐지와 관련해 강한 분노를 드러냈다. 김씨는 지난 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무소속 한동훈 의원 주최로 열린 보완수사권 폐지 긴급 간담회에 참석했다. 피해자들 나섰지만… 김씨는 “세금을 내고 열심히 사는 사람들을 보호하지 않고 왜 그들(범죄자)을 보호하고 감싸려고 하는지, 죄를 짓지 않은 피해자는 잘 모르겠다”며 “변호사와 검사도 반대하고 경찰도 난리 나고 피해자도 반대하는데, 도대체 누구를 위한 법인가 하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이어 “지금 이 시점에도 피해받는 피해자에 대한 장치는 아무것도 없다는 게 화가 난다”고 덧붙였다. 이 대통령도 형소법 개정안에 대한 국무회의 의결 전 경찰 수사에 대한 우려를 표한 바 있다. 형소법 개정안이 국회 입법권을 부정할 만큼 심각하진 않다고 전제하면서도 경찰에 집중되는 거대한 권한을 걱정한 것이다. 이 대통령은 “경찰이 엄청난 권한을 갖게 되는데 ‘앞으로 안전할 걸까’라는 우려를 안 할 수가 없다”며 “경찰 스스로 책임 의식이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경찰이) 높은 책임감으로, 높은 윤리 의식으로 엄정하고 중립적으로 철저하게 범죄 피해자들이 억울하지 않게, 또 억울한 피의자가 생기지 않게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경찰의 수사 비리에 대해 엄중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수사에 관한 비리를 저지르면 국민이나 피해자로서는 내 사건을 저렇게 망가뜨려서 가해자, 피해자를 뒤집어 놓으면 자살하고 싶을 정도가 됐는데, 담당 경찰은 감봉 몇 개월하고 또 딴 데 가서 수사하는 게 이해가 안 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엄청난 힘” 우려하면서도 거부권 요구에 “심각하지 않아” 이어 “(경찰이) 증거를 숨기고 없애 버리고 내 사건을 뒤집어서 반대로 만들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에 대한 엄중함을 갖고 있냐. 전 자신이 없다”며 “수사와 관련된 비리나 비위에 대해 더 높은 책임을 요구해야 할 것 같다”고 덧붙였다. 명백한 수사상의 비위가 발생하면 최소 해임, 파면 등의 조치를, 아니면 아예 영구적으로 수사를 하지 말고 다른 일을 하는 등의 엄중한 책임을 언급했다. 형소법 개정안 통과로 사실상 수사의 전 과정을 맡게 된 경찰은 조직의 명운을 걸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경찰청은 지난 4일 유재성 경찰청장 직무대행과 전국 시‧도 경찰청장, 경찰서장 등이 참석한 지휘부 회상회의를 열었다. 형소법 개정안에 따른 후속 조치를 논의하는 자리였다. 이 자리에서 현장 수사관과 중간관리자를 대상으로 개정 내용을 집중 교육하고 보강이 필요한 수사 인력과 예산을 검토해 관계 부처와 협의하기로 하는 등의 내용이 나왔다. 유 직무대행은 “국민께서 경찰 수사의 공정성과 신속성, 범죄 피해자에 대한 실질적인 보호, 경찰의 비대화 등에 대해 걱정하고 계신 것을 잘 알고 있으며 경찰은 이를 무겁게 받아들이고 있다”며 “국민의 우려를 불식시키고 새로운 형사사법 체계가 성공적으로 안착할 수 있도록 조직의 명운을 걸고 철저히 준비하겠다”고 밝혔다. 또 “견제받지 않는 권력은 부패하기 마련이고 경찰도 예외가 아니”라며 “경찰관 배우자 및 존‧비속 상피제와 경찰 수사 인권‧감찰 조사기구, 경찰 수사 개혁위원회 권고 사항 등을 포함한 촘촘한 통제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전했다. 아울러 “경찰 수사의 유일한 지향점은 국민이며 기준은 오직 법과 원칙”이라며 “새로운 형사사법 체계가 국민의 신뢰 속에 제대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분골쇄신의 각오로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불신 의심 극복되나 이 대통령의 당부, 경찰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국민의 불신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여기에 경찰 내부에서도 이번 개정안을 크게 반기는 분위기는 아니라고 한다. 검‧경 수사권 조정 이후 경찰에 일이 몰려 과부하가 걸린 부분도 아직 해결되지 않았는데, 이제는 수사에 대한 책임까지 모두 짊어져야 하는 상황에 이른 것이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