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2팀] 김유미 기자 = 1인당 42만원짜리 디너 코스로 식사하던 중 와인이 잘못 나왔다. ‘탁월한 요리’에 매기는 미슐랭 별 두 개를 받은 식당에서였다. 정황상 더 저렴한 와인인 줄 ‘알고도 바꿔치기’한 듯하다는 게 고객 증언. <흑백요리사> 시리즈로 단숨에 예능계 ‘별’로 떠오른 안성재라는 이름에 깊은 흠집이 남았다.
“상상력과 정교함, 섬세함의 균형이 한결같은 셰프의 정체성이 담긴 요리를 맛보는 순간 그 완성도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2026년 판 <미쉐린(미슐랭) 가이드>는 안성재가 총괄하는 식당 ‘모수’에 별 두 개를 주며 이렇게 소개했다.
파인 다이닝
배드 페어링
마지막에는 “요리만큼이나 섬세한 서비스, 음식과 조화를 이루는 와인 페어링이 잊지 못할 다이닝 경험을 선사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공교롭게도 이번 말썽은 이 ‘와인 페어링’에서 생겼다.
안성재가 총괄 운영하는 모수 서울에 최근 방문한 A씨. 1인 42만원 디너 코스를 주문하고, 음식과 와인을 페어링해 제공받는 과정에서 와인에 문제가 생겼다며 온라인 커뮤니티에 글을 게재했다. 심지어 와인 페어링 비용은 별도. A씨는 “정말 아끼는 지인들과 방문해 매장에서 제시한 당일 와인 페어링을 즐겼다”고 주장했다.
발단은 메인 메뉴 중 하나인 ‘화덕에 구운 한우’와 함께 서빙되는 와인이었다. 소믈리에가 ‘샤토 레오빌 바르통(Château Léoville Barton)’ 2005년 빈티지 병을 들고 와인을 간략하게 설명했다. A씨와 일행 모두 페어링 리스트 빈티지까지는 기억하지 못했다고 한다.
A씨는 그날 마신 모든 와인 병을 촬영했다. 소믈리에도 A씨가 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매번 와인 병을 테이블에 놓아줬다고 한다. 공교롭게도 A씨가 2005년산 와인 사진을 찍으려 했을 때만 소믈리에가 직원 공간으로 이동했다가 다시 병을 가지고 테이블로 돌아왔다.
A씨는 와인 향과 맛을 보고, 페어링 리스트를 보다가 2000년 빈티지여야 했을 와인이 잘못 제공됐다는 점을 깨달았다. 정중하게 소믈리에에게 확인해 달라고 요청했더니, 그제야 “2000년 빈티지가 병째 주문이 들어왔었다. 병이 1층에 내려가 있었다”고 변명했다. 그러면서 “2000년 빈티지도 보르도 잔에 맛보게 해주겠다”고 했다.
샤토 레오빌 바르통은 프랑스 보르독 좌안 메독 지방 생 줄리앙에 있는 성(귀족 영지)에서 생산하는 와인이다. 유명 와인 비평가이자 소믈리에인 젠시스 로빈슨은 2000년 빈티지를 “코끝에서 느껴지는 매우 견고하고 풍미 있는 향. 탄탄한 덩어리감이 느껴지며, 아직 완전히 본래 모습을 드러내기에는 멀었음에도 정말 기대되는 잠재력을 품고 있다”고 평했다.
2005년 빈티지를 두고는 “대부분 와인보다 푸른빛이 더 감돌며 밀도감은 그리 높지 않다. 상쾌하고 활력이 넘치지만, 마무리는 매우 드라이하며 묵직한 보디와는 거리가 멀다”고 했다. 포도 수확 시기와 5년이라는 숙성 시간이 각 빈티지 맛에 차별을 둔다.
42만원 코스에 와인 페어링비는 별도
10만원 저렴한 빈티지 와인 대신 제공
A씨에 따르면 두 빈티지는 모수에서 병당 10만원 금액 차이가 난다고 한다. A씨는 소믈리에가 사진 촬영을 위한 빈티지 병을 구하기 위해 자리를 이동한 것을 근거로, 소믈리에가 제공하던 시점부터 와인이 바뀐 것을 인지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사과 없는 “대처와 응대가 무척 아쉽다”고 적었다.
A씨가 모수 서울에서 제대로 된 와인을 받지 못한 날은 지난달 19일, 온라인에 글을 게재한 날은 21일이었다. 여기에서 이틀이 더 추가된 23일, 모수 서울팀이 공식 사과문을 냈다.
“와인 페어링 서비스 과정에서 고객님께 정확한 안내가 이뤄지지 않아 혼선을 드리고, 이후 응대 과정에서도 충분히 설명해 드리지 못해 큰 실망을 안겨드린 점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며 고개를 숙였다.
이어 “고객님께 별도로 사과를 전했고 너그럽게 받아들였으나, 그 과정 또한 충분하지 못했다는 점을 무겁게 받아들이고 있다”며 “보여주기식 사과에 그치지 않고, 진정성 있는 자세로 고객과의 신뢰를 다시 쌓아나가겠다”고 밝혔다.
지난달 24일, 폭로 글을 올렸던 A씨는 온라인상에 또 한 번 글을 작성했다. 모수가 올린 “사과문을 확인했다”며 “지난 글에 적은 바와 같이 모두 통화 녹취 및 메시지 기록을 토대로 사실에 근거해 작성했다”고 털어놨다.
A씨는 온라인에 첫 글을 게재한 지난달 21일 오후 모수에 전화를 걸었다고 했다. 모수 측은 A씨에게 “바라는 것이 있어서 연락했느냐”고 물었고, A씨는 “보상을 바라고 연락드린 게 아니다”고 답변했다고 한다. 해당 소믈리에에게 사실관계를 확인한 모수 담당자는 A씨에게 사과의 뜻을 전했다고도 덧붙였다.
A씨는 ‘모수 또는 다른 레스토랑에서 비슷한 일이 반복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서 글을 작성했다고 밝혔다. A씨는 식사 초대 제안도 받았으나 거절했다고 했다. “모두가 불편한 자리가 될 것”을 이유로 들었다.
과거 유사한 경험을 했다는 글이 모수 공식 SNS에 올라오기도 했다. 작성자는 지난해 7월 아내가 출산한 것을 기념하고자 장모님을 포함해 4명이 모수에 방문했다고 적었다.
뒤늦게 인정
뒤늦은 사과
“두 명만 와인 페어링을 주문했는데, 중간에 ‘돔페리뇽’이 빠진 채 다음 와인이 나왔다”며 “와인을 잘 몰라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빠져 있어 ‘안 주셨다’고 하니 당황하다가 뒤늦게 가져다줬다”는 것. 장모님 앞이라 문제 삼지는 않았다는 것이 주된 내용이었다.
불똥은 곧장 안성재에게 튀었고, 삽시간에 그의 명성에 옮겨붙어 타들었다. 모수를 책임지고 있는 수장이라는 위치를 참작하면 응당 적절한 사건 추이였다.
한 온라인 플랫폼에 게재된 인터뷰에서는 안성재가 미슐랭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신념을 보여준다. “미슐랭 별 세 개를 받는 것. 사실은 ‘견뎌내는 일’에 가깝다. 최고의 요리와 서비스를 완벽하게 유지해야 한다. 엄청난 스트레스 속에서 긴장감을 잃지 않으면서.” 이번만큼은 그가 신념을 지켜내지 못했다.
A씨가 겪은 일이 단순한 사건으로 기록되는 데 그치지 않고 빠르게 확산한 데는 안성재라는 이름에 담긴 무게가 영향을 줬다. 넷플릭스 <흑백요리사> 시리즈에서, 외식업계에서 거물로 자리매김한 백종원을 상대로 절대 지지 않는 수를 두던 안성재. 커다랗게 키운 존재감이 오히려 그에게 독이 됐다.
안성재는 1982년에 태어났다. 초등학교 6학년 때 부모를 따라 미국 캘리포니아 샌디에이고로 이민했다. 부모는 미국에서 여러 일을 닥치는 대로 하며 생계를 꾸렸다. 성인이 되어서는 미국 육군으로 입대해 4년 동안 정비병으로 근무했다. 이라크 전쟁에 파병된 것도 이때다.
전역하고 나서는 포르쉐 정비사가 되고자 차량 정비학교에 입학하기로 했다. 그러다 지나가며 본 요리 학교 르 코르동 블루 패서디나 캠퍼스 앞에 모인 학생들을 보며 진로를 바꿨다. 학생들이 입은 하얀 조리복이 한눈에 들어온 안성재는 졸업 후 100% 취업이 보장된다는 말을 듣고 그 자리에서 학교에 들어가기로 했다.
요리 학교를 졸업하고는 베벌리힐스에 있는 초밥 전문점 ‘우라사와’에서 일하며 파인 다이닝을 경험했다. 안성재는 이 레스토랑이 그 당시 미국 서부에서 가장 비싸고 평이 좋은 레스토랑 중 하나였다고 회상했다.
안성재는 그곳에서 일하고 싶은 마음에 무작정 우라사와에 전화를 걸었지만, 번번이 거절당했다. 그는 포기하는 대신 방법을 바꿔 거듭 레스토랑에 방문해 일자리를 줄 것을 요청했다고 한다. 처음에 오너 셰프 우라사와 히로유키는 안성재가 일본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청을 거절했다.
다급해진 그는 무보수로 일하겠다고 말하며 설득에 성공해 우라사와에 입성했다.
무급으로 일하던 안성재를 몇 주간 지켜보던 오너 셰프는 요리에 진심인 그의 태도에 마음을 돌려 급여를 지급하기 시작했다. 우라사와에서 2년 정도 지내자, 오너 셰프가 출근하지 않아도 레스토랑의 모든 일을 대신할 수 있을 정도가 됐다고.
그러던 중 미슐랭 별 세 개를 받은 더 프렌치 런드리 수셰프로 근무하던 한국계 미국인 셰프 이동민이 우라사와에 방문했다가 안성재를 발견하게 됐다. 안성재는 이직 제안을 받고, 레스토랑이 있는 나파밸리 포도밭에 있는 오두막에서 지내며 코미 셰프로 일을 시작했다.
한국인 최초
3스타 획득
더 프렌치 런드리에서 독립하고는 샌프란시스코에 레스토랑 ‘베누’를 열었다. 여기에서 한국인 최초로 미슐랭 별 세 개를 획득했다. 이후에는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모로코 레스토랑 ‘아지자’ 총괄 셰프로 근무하며 미슐랭 별 한 개를 받았다.
안성재가 직접 운영하는 식당 모수를 연 건 2015년이다. 이곳에서는 195달러짜리 디너 테이스팅 메뉴를 선보였다.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레스토랑 중 가장 비싼 축에 속했다고 한다. 초반에는 혹평으로 레스토랑이 휘청거릴 정도였지만, 갖은 노력 끝에 미슐랭 별 한 개를 획득하며 주목받았다.
매거진 <이터(Eater)>에 글을 쓰는 유명 푸드 칼럼니스트 빌 에디슨으로부터 요리를 극찬받고 난 이후부터였다.
2017년에는 CJ제일제당에서 투자받은 자금으로 서울 용산구 한남동에 모수 서울을 열었다. 모수는 2019년 미슐랭 별 1개로 시작해 2020~2022년에 별 2개, 2023~2024년에는 별 3개를 받았다. 2024년에는 국내 유일 미슐랭 별 3개 기록이었다.
2022년에는 홍콩에 분점을 개장했다. 2025년에 휴업으로 인해 미슐랭 별 세 개 지위를 밍글스에 넘겨줬다. 2024년 CJ제일제당과 헤어진 뒤, 2025년 다시 모수 서울을 오픈했다. GS에서 투자를 받은 덕분에 용산 이태원에 재개장할 수 있었다. 이때 별 두 개를 받았다. 새로 시작하는 레스토랑이 별 두 개를 받는 것도 이례적이라는 평가다.
넷플릭스 예능 시리즈 <흑백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에서는 그해 대한민국 유일 미슐랭 별 세 개를 얻은 셰프로서, 백종원과 함께 심사위원으로 출연했다. <흑백요리사>는 미슐랭 등을 통해 공인받은 스타 셰프 ‘백수저’와 아직 이름이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실력은 뛰어난 요리사 ‘흑수저’가 요리 대결을 펼치는 서바이벌 예능 프로그램이다.
안성재는 이 프로그램에 출연한 것을 계기로 인지도를 넓힐 수 있었다. 요리 자체의 맛에 더해, 요리 과정과 조리 의도 역시 심사 기준에 포함해 평가하며 엄격하고 까다로운 요리 철학을 보여줬다. 대중적인 맛을 중요한 요건으로 평가하는 백종원과 달리 요리 기본기와 맥락을 중점으로 평가했다는 평이 나왔다.
<흑백요리사>로 존재감 부각
이븐하게 익지 않은 행보
자신은 맨땅에 헤딩하듯 흑수저로 요리사 일을 시작했지만, 미슐랭으로부터 인정받은 셰프로서 <흑백요리사> 심사위원을 자격을 얻었다는 점에서 프로그램 취지와 잘 맞는 섭외라는 말도 있었다.
안성재는 참가자가 구운 스테이크를 맛보며, “이 보섭살은, 제 기준에는 잘 못 구워졌다. 고기가 이븐(even)하게 익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이 장면에서 한때 회자하던 ‘이븐하다’는 유행어가 탄생했다. 예능 프로그램에서 그가 자주 언급될 만큼 대중으로부터 인기를 얻었다.
닉네임 ‘요리과학자’가 조리한 분자요리를 맛본 뒤에는 “생사과가 제일 맛있었다”고 했다. 특유의 냉소적인 성격에 농담이 담긴, 안성재가 구사하는 어투에 시청자는 즐거워했다.
죽기 직전에 꼭 먹고 싶은 음식이 무엇인지 묻자, 할머니가 해주신 음식이라는 답변을 하며 인간미 있는 성격을 드러내기도 했다. 특정 메뉴를 맛보고 싶은 것이 아니라, 할머니를 생각하면 눈물이 나는 그런 느낌을 다시 한번 느껴보고 싶다는 대답이었다. 안성재의 할머니는 궁중 요리사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프로그램 종영 이후에는 두 시즌 <흑백요리사>로 얻은 인기로 <GQ 코리아> <하퍼스바자> <에스콰이어> 등 매거진에 화보를 싣기도 했다. 안성재 셰프가 프로그램에서 보여준 슈트가 밈이 될 정도로 친숙해진 덕분이었다. 또 모수 운영에 집중하는 한편, 연예계 활동을 잇고 유튜버 채널을 통해 콘텐츠를 선보이며 대중과 소통하고 있다.

유튜브 채널 ‘셰프 안성재 Chef Sung Anh’는 개설 일주일 만에 13만 구독자를 확보하기도 했다. 특히 ‘딸 바보’로서 면모를 보이는 영상으로 사랑받았다. 아이를 위한 건강한 두쫀쿠(두바이 쫀득 쿠키) 등을 만들며 화제가 되기도 했다.
<흑백요리사> 제작진은 이달 중 세 번째 시즌 촬영을 시작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지난 1월13일 두 번째 시즌을 마무리한 뒤 약 4개월여 만이다. 안성재와 백종원은 두 시즌 심사위원을 맡아 참가하며 프로그램 인지도를 높이고 중심을 잡았다는 평가를 받았다. 특히 심사위원 섭외에 변화가 있을지 이목이 쏠리고 있다.
이번 모수 서울에서 발생한 ‘와인 바꿔치기’ 논란과 미비한 후속 대응 등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안성재. 식품위생법 위반 의혹 등으로 방송 활동을 중단하겠다고 선언한 백종원. 두 사람 모두 변수다.
백종원과
같은 행보?
“요리사가 인생을 걸고 매일 요리를 하고 매일 도마 위에 서는데 심사위원을 해달라고 할 때 무슨 뜻인지, 어떤 데 기여할 수 있는지, 한국 미식 시장에 어떤 발전에 도움이 될지 고민이 되더라. 절대 해가 되지 않고 한국 미식 문화 발전에 기여할 거라는 확신을 받았다.”
2024년 <흑백요리사> 제작발표회 때 안성재는 프로그램에 참여한 이유를 이같이 밝혔다. 요리사로서 가져야 할 역량과 자질에서는 실격점이 없는 그가 이번 논란을 딛고 한국 미식 문화 발전에 이바지하겠다는 목표를 여전히 이어갈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younme@ilyosisa.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