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기망 요리사 안성재

미슐랭 먹칠한 와인 바꿔치기

[일요시사 취재2팀] 김유미 기자 = 1인당 42만원짜리 디너 코스로 식사하던 중 와인이 잘못 나왔다. ‘탁월한 요리’에 매기는 미슐랭 별 두 개를 받은 식당에서였다. 정황상 더 저렴한 와인인 줄 ‘알고도 바꿔치기’한 듯하다는 게 고객 증언. <흑백요리사> 시리즈로 단숨에 예능계 ‘별’로 떠오른 안성재라는 이름에 깊은 흠집이 남았다.

“상상력과 정교함, 섬세함의 균형이 한결같은 셰프의 정체성이 담긴 요리를 맛보는 순간 그 완성도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2026년 판 <미쉐린(미슐랭) 가이드>는 안성재가 총괄하는 식당 ‘모수’에 별 두 개를 주며 이렇게 소개했다.

파인 다이닝
배드 페어링

마지막에는 “요리만큼이나 섬세한 서비스, 음식과 조화를 이루는 와인 페어링이 잊지 못할 다이닝 경험을 선사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공교롭게도 이번 말썽은 이 ‘와인 페어링’에서 생겼다.

안성재가 총괄 운영하는 모수 서울에 최근 방문한 A씨. 1인 42만원 디너 코스를 주문하고, 음식과 와인을 페어링해 제공받는 과정에서 와인에 문제가 생겼다며 온라인 커뮤니티에 글을 게재했다. 심지어 와인 페어링 비용은 별도. A씨는 “정말 아끼는 지인들과 방문해 매장에서 제시한 당일 와인 페어링을 즐겼다”고 주장했다.

발단은 메인 메뉴 중 하나인 ‘화덕에 구운 한우’와 함께 서빙되는 와인이었다. 소믈리에가 ‘샤토 레오빌 바르통(Château Léoville Barton)’ 2005년 빈티지 병을 들고 와인을 간략하게 설명했다. A씨와 일행 모두 페어링 리스트 빈티지까지는 기억하지 못했다고 한다.

A씨는 그날 마신 모든 와인 병을 촬영했다. 소믈리에도 A씨가 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매번 와인 병을 테이블에 놓아줬다고 한다. 공교롭게도 A씨가 2005년산 와인 사진을 찍으려 했을 때만 소믈리에가 직원 공간으로 이동했다가 다시 병을 가지고 테이블로 돌아왔다.

A씨는 와인 향과 맛을 보고, 페어링 리스트를 보다가 2000년 빈티지여야 했을 와인이 잘못 제공됐다는 점을 깨달았다. 정중하게 소믈리에에게 확인해 달라고 요청했더니, 그제야 “2000년 빈티지가 병째 주문이 들어왔었다. 병이 1층에 내려가 있었다”고 변명했다. 그러면서 “2000년 빈티지도 보르도 잔에 맛보게 해주겠다”고 했다.

샤토 레오빌 바르통은 프랑스 보르독 좌안 메독 지방 생 줄리앙에 있는 성(귀족 영지)에서 생산하는 와인이다. 유명 와인 비평가이자 소믈리에인 젠시스 로빈슨은 2000년 빈티지를 “코끝에서 느껴지는 매우 견고하고 풍미 있는 향. 탄탄한 덩어리감이 느껴지며, 아직 완전히 본래 모습을 드러내기에는 멀었음에도 정말 기대되는 잠재력을 품고 있다”고 평했다.

2005년 빈티지를 두고는 “대부분 와인보다 푸른빛이 더 감돌며 밀도감은 그리 높지 않다. 상쾌하고 활력이 넘치지만, 마무리는 매우 드라이하며 묵직한 보디와는 거리가 멀다”고 했다. 포도 수확 시기와 5년이라는 숙성 시간이 각 빈티지 맛에 차별을 둔다.

42만원 코스에 와인 페어링비는 별도
10만원 저렴한 빈티지 와인 대신 제공

A씨에 따르면 두 빈티지는 모수에서 병당 10만원 금액 차이가 난다고 한다. A씨는 소믈리에가 사진 촬영을 위한 빈티지 병을 구하기 위해 자리를 이동한 것을 근거로, 소믈리에가 제공하던 시점부터 와인이 바뀐 것을 인지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사과 없는 “대처와 응대가 무척 아쉽다”고 적었다.

A씨가 모수 서울에서 제대로 된 와인을 받지 못한 날은 지난달 19일, 온라인에 글을 게재한 날은 21일이었다. 여기에서 이틀이 더 추가된 23일, 모수 서울팀이 공식 사과문을 냈다.

“와인 페어링 서비스 과정에서 고객님께 정확한 안내가 이뤄지지 않아 혼선을 드리고, 이후 응대 과정에서도 충분히 설명해 드리지 못해 큰 실망을 안겨드린 점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며 고개를 숙였다.

이어 “고객님께 별도로 사과를 전했고 너그럽게 받아들였으나, 그 과정 또한 충분하지 못했다는 점을 무겁게 받아들이고 있다”며 “보여주기식 사과에 그치지 않고, 진정성 있는 자세로 고객과의 신뢰를 다시 쌓아나가겠다”고 밝혔다.

지난달 24일, 폭로 글을 올렸던 A씨는 온라인상에 또 한 번 글을 작성했다. 모수가 올린 “사과문을 확인했다”며 “지난 글에 적은 바와 같이 모두 통화 녹취 및 메시지 기록을 토대로 사실에 근거해 작성했다”고 털어놨다.

A씨는 온라인에 첫 글을 게재한 지난달 21일 오후 모수에 전화를 걸었다고 했다. 모수 측은 A씨에게 “바라는 것이 있어서 연락했느냐”고 물었고, A씨는 “보상을 바라고 연락드린 게 아니다”고 답변했다고 한다. 해당 소믈리에에게 사실관계를 확인한 모수 담당자는 A씨에게 사과의 뜻을 전했다고도 덧붙였다.

A씨는 ‘모수 또는 다른 레스토랑에서 비슷한 일이 반복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서 글을 작성했다고 밝혔다. A씨는 식사 초대 제안도 받았으나 거절했다고 했다. “모두가 불편한 자리가 될 것”을 이유로 들었다.

과거 유사한 경험을 했다는 글이 모수 공식 SNS에 올라오기도 했다. 작성자는 지난해 7월 아내가 출산한 것을 기념하고자 장모님을 포함해 4명이 모수에 방문했다고 적었다.

뒤늦게 인정
뒤늦은 사과

“두 명만 와인 페어링을 주문했는데, 중간에 ‘돔페리뇽’이 빠진 채 다음 와인이 나왔다”며 “와인을 잘 몰라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빠져 있어 ‘안 주셨다’고 하니 당황하다가 뒤늦게 가져다줬다”는 것. 장모님 앞이라 문제 삼지는 않았다는 것이 주된 내용이었다.

불똥은 곧장 안성재에게 튀었고, 삽시간에 그의 명성에 옮겨붙어 타들었다. 모수를 책임지고 있는 수장이라는 위치를 참작하면 응당 적절한 사건 추이였다.

한 온라인 플랫폼에 게재된 인터뷰에서는 안성재가 미슐랭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신념을 보여준다. “미슐랭 별 세 개를 받는 것. 사실은 ‘견뎌내는 일’에 가깝다. 최고의 요리와 서비스를 완벽하게 유지해야 한다. 엄청난 스트레스 속에서 긴장감을 잃지 않으면서.” 이번만큼은 그가 신념을 지켜내지 못했다.

A씨가 겪은 일이 단순한 사건으로 기록되는 데 그치지 않고 빠르게 확산한 데는 안성재라는 이름에 담긴 무게가 영향을 줬다. 넷플릭스 <흑백요리사> 시리즈에서, 외식업계에서 거물로 자리매김한 백종원을 상대로 절대 지지 않는 수를 두던 안성재. 커다랗게 키운 존재감이 오히려 그에게 독이 됐다.

안성재는 1982년에 태어났다. 초등학교 6학년 때 부모를 따라 미국 캘리포니아 샌디에이고로 이민했다. 부모는 미국에서 여러 일을 닥치는 대로 하며 생계를 꾸렸다. 성인이 되어서는 미국 육군으로 입대해 4년 동안 정비병으로 근무했다. 이라크 전쟁에 파병된 것도 이때다.

전역하고 나서는 포르쉐 정비사가 되고자 차량 정비학교에 입학하기로 했다. 그러다 지나가며 본 요리 학교 르 코르동 블루 패서디나 캠퍼스 앞에 모인 학생들을 보며 진로를 바꿨다. 학생들이 입은 하얀 조리복이 한눈에 들어온 안성재는 졸업 후 100% 취업이 보장된다는 말을 듣고 그 자리에서 학교에 들어가기로 했다.

요리 학교를 졸업하고는 베벌리힐스에 있는 초밥 전문점 ‘우라사와’에서 일하며 파인 다이닝을 경험했다. 안성재는 이 레스토랑이 그 당시 미국 서부에서 가장 비싸고 평이 좋은 레스토랑 중 하나였다고 회상했다.

안성재는 그곳에서 일하고 싶은 마음에 무작정 우라사와에 전화를 걸었지만, 번번이 거절당했다. 그는 포기하는 대신 방법을 바꿔 거듭 레스토랑에 방문해 일자리를 줄 것을 요청했다고 한다. 처음에 오너 셰프 우라사와 히로유키는 안성재가 일본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청을 거절했다.

다급해진 그는 무보수로 일하겠다고 말하며 설득에 성공해 우라사와에 입성했다.

무급으로 일하던 안성재를 몇 주간 지켜보던 오너 셰프는 요리에 진심인 그의 태도에 마음을 돌려 급여를 지급하기 시작했다. 우라사와에서 2년 정도 지내자, 오너 셰프가 출근하지 않아도 레스토랑의 모든 일을 대신할 수 있을 정도가 됐다고.

그러던 중 미슐랭 별 세 개를 받은 더 프렌치 런드리 수셰프로 근무하던 한국계 미국인 셰프 이동민이 우라사와에 방문했다가 안성재를 발견하게 됐다. 안성재는 이직 제안을 받고, 레스토랑이 있는 나파밸리 포도밭에 있는 오두막에서 지내며 코미 셰프로 일을 시작했다.

한국인 최초
3스타 획득

더 프렌치 런드리에서 독립하고는 샌프란시스코에 레스토랑 ‘베누’를 열었다. 여기에서 한국인 최초로 미슐랭 별 세 개를 획득했다. 이후에는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모로코 레스토랑 ‘아지자’ 총괄 셰프로 근무하며 미슐랭 별 한 개를 받았다.

안성재가 직접 운영하는 식당 모수를 연 건 2015년이다. 이곳에서는 195달러짜리 디너 테이스팅 메뉴를 선보였다.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레스토랑 중 가장 비싼 축에 속했다고 한다. 초반에는 혹평으로 레스토랑이 휘청거릴 정도였지만, 갖은 노력 끝에 미슐랭 별 한 개를 획득하며 주목받았다.

매거진 <이터(Eater)>에 글을 쓰는 유명 푸드 칼럼니스트 빌 에디슨으로부터 요리를 극찬받고 난 이후부터였다.

2017년에는 CJ제일제당에서 투자받은 자금으로 서울 용산구 한남동에 모수 서울을 열었다. 모수는 2019년 미슐랭 별 1개로 시작해 2020~2022년에 별 2개, 2023~2024년에는 별 3개를 받았다. 2024년에는 국내 유일 미슐랭 별 3개 기록이었다.

2022년에는 홍콩에 분점을 개장했다. 2025년에 휴업으로 인해 미슐랭 별 세 개 지위를 밍글스에 넘겨줬다. 2024년 CJ제일제당과 헤어진 뒤, 2025년 다시 모수 서울을 오픈했다. GS에서 투자를 받은 덕분에 용산 이태원에 재개장할 수 있었다. 이때 별 두 개를 받았다. 새로 시작하는 레스토랑이 별 두 개를 받는 것도 이례적이라는 평가다.

넷플릭스 예능 시리즈 <흑백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에서는 그해 대한민국 유일 미슐랭 별 세 개를 얻은 셰프로서, 백종원과 함께 심사위원으로 출연했다. <흑백요리사>는 미슐랭 등을 통해 공인받은 스타 셰프 ‘백수저’와 아직 이름이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실력은 뛰어난 요리사 ‘흑수저’가 요리 대결을 펼치는 서바이벌 예능 프로그램이다.

안성재는 이 프로그램에 출연한 것을 계기로 인지도를 넓힐 수 있었다. 요리 자체의 맛에 더해, 요리 과정과 조리 의도 역시 심사 기준에 포함해 평가하며 엄격하고 까다로운 요리 철학을 보여줬다. 대중적인 맛을 중요한 요건으로 평가하는 백종원과 달리 요리 기본기와 맥락을 중점으로 평가했다는 평이 나왔다.

<흑백요리사>로 존재감 부각
이븐하게 익지 않은 행보

자신은 맨땅에 헤딩하듯 흑수저로 요리사 일을 시작했지만, 미슐랭으로부터 인정받은 셰프로서 <흑백요리사> 심사위원을 자격을 얻었다는 점에서 프로그램 취지와 잘 맞는 섭외라는 말도 있었다.

안성재는 참가자가 구운 스테이크를 맛보며, “이 보섭살은, 제 기준에는 잘 못 구워졌다. 고기가 이븐(even)하게 익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이 장면에서 한때 회자하던 ‘이븐하다’는 유행어가 탄생했다. 예능 프로그램에서 그가 자주 언급될 만큼 대중으로부터 인기를 얻었다.

닉네임 ‘요리과학자’가 조리한 분자요리를 맛본 뒤에는 “생사과가 제일 맛있었다”고 했다. 특유의 냉소적인 성격에 농담이 담긴, 안성재가 구사하는 어투에 시청자는 즐거워했다.

죽기 직전에 꼭 먹고 싶은 음식이 무엇인지 묻자, 할머니가 해주신 음식이라는 답변을 하며 인간미 있는 성격을 드러내기도 했다. 특정 메뉴를 맛보고 싶은 것이 아니라, 할머니를 생각하면 눈물이 나는 그런 느낌을 다시 한번 느껴보고 싶다는 대답이었다. 안성재의 할머니는 궁중 요리사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프로그램 종영 이후에는 두 시즌 <흑백요리사>로 얻은 인기로 <GQ 코리아> <하퍼스바자> <에스콰이어> 등 매거진에 화보를 싣기도 했다. 안성재 셰프가 프로그램에서 보여준 슈트가 밈이 될 정도로 친숙해진 덕분이었다. 또 모수 운영에 집중하는 한편, 연예계 활동을 잇고 유튜버 채널을 통해 콘텐츠를 선보이며 대중과 소통하고 있다.

유튜브 채널 ‘셰프 안성재 Chef Sung Anh’는 개설 일주일 만에 13만 구독자를 확보하기도 했다. 특히 ‘딸 바보’로서 면모를 보이는 영상으로 사랑받았다. 아이를 위한 건강한 두쫀쿠(두바이 쫀득 쿠키) 등을 만들며 화제가 되기도 했다.

<흑백요리사> 제작진은 이달 중 세 번째 시즌 촬영을 시작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지난 1월13일 두 번째 시즌을 마무리한 뒤 약 4개월여 만이다. 안성재와 백종원은 두 시즌 심사위원을 맡아 참가하며 프로그램 인지도를 높이고 중심을 잡았다는 평가를 받았다. 특히 심사위원 섭외에 변화가 있을지 이목이 쏠리고 있다.

이번 모수 서울에서 발생한 ‘와인 바꿔치기’ 논란과 미비한 후속 대응 등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안성재. 식품위생법 위반 의혹 등으로 방송 활동을 중단하겠다고 선언한 백종원. 두 사람 모두 변수다.

백종원과
같은 행보?

“요리사가 인생을 걸고 매일 요리를 하고 매일 도마 위에 서는데 심사위원을 해달라고 할 때 무슨 뜻인지, 어떤 데 기여할 수 있는지, 한국 미식 시장에 어떤 발전에 도움이 될지 고민이 되더라. 절대 해가 되지 않고 한국 미식 문화 발전에 기여할 거라는 확신을 받았다.”

2024년 <흑백요리사> 제작발표회 때 안성재는 프로그램에 참여한 이유를 이같이 밝혔다. 요리사로서 가져야 할 역량과 자질에서는 실격점이 없는 그가 이번 논란을 딛고 한국 미식 문화 발전에 이바지하겠다는 목표를 여전히 이어갈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younme@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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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호 폭발’ 시험대 오른 한미 관계

‘나무호 폭발’ 시험대 오른 한미 관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지난 2월 시작된 중동 전쟁의 여파가 경제는 물론 외교까지 흔들고 있다. 전쟁이 교착 상태에 빠지면서 미국의 초조함이 우리나라에 불똥으로 튀는 모양새다. 이재명 대통령은 국익에 도움 되는 ‘실용 외교’를 줄곧 강조하고 있다. 어떤 선택이 우리나라에 가장 좋은 결과를 가져다줄까. 미국과 이스라엘이 한낮에 이란 수도 테헤란에 폭탄을 떨어뜨렸다. 공습의 여파로 이란의 최고지도자 알리 하메네이를 비롯한 고위급 인사들이 폭사했다. 미국과 이스라엘은 이란이 응전할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그들의 저항은 거셌다. 이란은 전 세계 원유의 20~30%가 오가는 물류 허브인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하는 방법으로 응수했다. 끝날 듯 안 끝나는 원유 이동이 제한되면서 유가가 폭등했다. 주가가 출렁였고 물가도 오르기 시작했다. 이란은 전 세계 경제를 볼모로 잡고 버티기 작전에 들어갔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란을 석기시대로 돌려놓겠다’고 말하는 등 협박에 가까운 말로 압박했다. 이스라엘은 이란 주변국에도 폭탄을 투하하는 등 확전 태세를 보였다. 지난 2월28일 이후 두 달 가까이 이어지던 강 대 강 대치는 지난달 초 미국과 이란이 임시 휴전에 합의하면서 소강상태를 맞았다. 하지만 서로의 요구사항이 극명하게 다른 상황이라 휴전이 오래가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무엇보다 호르무즈 해협에 대한 미국과 이란의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했다. 이란은 호르무즈 해협에 대한 통제권을 유지하길 원했다. 이번 전쟁으로 호르무즈 해협이 세계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확인한 만큼 계속 주도권을 갖고 싶다는 뜻으로 풀이됐다. 반면 미국은 호르무즈 해협의 완전 개방, 자유 항행을 조건으로 내걸었다. 호르무즈 해협에 대한 미국과 이란의 힘겨루기 양상은 다른 나라에 영향을 미쳤다. 호르무즈 해협을 지나가는 선박의 통행이 제한되기 시작한 것이다. 미국은 선박을 멈춰 세운 이란에 반발해 군사작전을 기획했다. 호르무즈 해협에 발이 묶인 선박의 탈출을 돕는 이른바 ‘프로젝트 프리덤’이다. 프로젝트 프리덤 착수 첫날 이란은 즉각 반발했다. 미국과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 인근에서 무력을 행사하면서 긴장 수위가 높아졌다. 불똥은 우리나라 선박에도 튀었다. 지난 4일 오후 8시40분경 호르무즈 해협의 아랍에미리트 움알쿠와인 인근 해역에 정박 중이던 HMM(옛 현대상선) 소속 선박 나무호에서 폭발과 함께 화재가 발생했다. 호르무즈 해협서 선박 사고 “이란 공격” VS “관련 없다” 폭발과 화재 당시 우리나라 국적 선원 6명을 포함한 24명이 타고 있었지만 다행히 인명피해는 없었다. HMM에 따르면 나무호는 예인선을 통해 두바이항으로 옮겨졌다. 두바이 현지의 한국선급 지부 인력, 중앙해양안전심판원 소속 조사권, 소방청 감식 전문가 등이 참여해 사고 원인을 조사했다. 외교부는 지난 10일 “조사 결과 5월4일 미상의 비행체가 HMN 선미를 타격한 것으로 확인됐다”며 “CCTV 영상에 해당 비행체가 포착됐으나 발사 주체, 정확한 기종 및 물리적 크기 등을 확인하기에는 제약이 있는 상황”이라고 정부 합동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그러면서 “현장에서 수거된 비행체 엔진 잔해 등을 추가 분석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문제는 나무호 폭발을 바라보는 엇갈린 시각이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이 이번 사건을 동맹의 전쟁 참여의 ‘지렛대’로 사용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4일(현지시각) “이란이 한국 화물선을 포함해 관련 없는 국가들을 공격했다”며 “이제는 한국이 이 작전에 참여할 때가 된 것 같다”고 말했다. 나무호 폭발과 관련해 사고 원인이 정확히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의 공격 때문이라고 규정해 버린 것이다. 반면 이란 측은 나무호 사건에 선을 그었다. 주한이란대사관은 지난 6일 “호르무즈 해협에서 발생한 한국 선박 피해 사건에 이란군이 연루됐다는 모든 의혹을 강력히 거부하며 단호히 부인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책임’을 언급했다. 이란대사관은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기 위해서는 관련 규정을 준수하고 발령된 경고에 주의를 기울여야 하며, 지정된 항로를 따르고 이란 이슬람 공화국 관계 당국과 협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피격이냐 결함이냐 또 “군사 및 안보적 긴장의 영향을 받는 환경에서 선포된 요구사항과 작전상의 실태를 무시할 경우 의도치 않은 사고가 발생할 수 있음은 자명하다”며 “이 같은 고려 사항을 무시한 채 해당 구역에서 통행이나 활동을 진행하는 당사자들에게 그런 결과에 대한 책임이 있다”고 했다. 미묘하게 우리나라 선박 측으로 책임을 돌리는 듯한 뉘앙스다. 정부는 지난 6일 “(프로젝트 프리덤) 작전이 종료됐기 때문에 (참여) 검토는 꼭 필요하지 않게 됐다”고 밝혔다. 위성락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우리는 그동안 ‘해양 자유 구상’에 대해 검토하고 있었고 프로젝트 프리덤에 대해서도 검토하려고 했었다”고 말했다. 정부의 선 긋기에도 불구하고 이번 나무호 사건은 동맹국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노골적인 요구가 또다시 표면화했다는 점에서 우려스럽다는 반응이 나온다. 지난 3월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나라를 비롯한 5개국을 향해 호르무즈 해협에 함정 파견을 요구했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여러 국가, 특히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봉쇄 시도로 영향을 받는 국가들은 해협을 개방하고 안전하게 유지하기 위해 미국과 함께 군함을 보낼 것”이라고 자신의 트루스소셜에 글을 썼다. 트럼프 대통령이 언급한 5개국은 중국, 프랑스, 일본, 한국, 영국 등이다. 그는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에너지 수급에 큰 영향을 받은 국가들이 직접 호위 작전에 나서야 한다는 ‘수익자 부담 원칙’을 내세웠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에도 우리나라를 포함한 5개국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일부 국가들은 군함을 보내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우리나라 역시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에 응하지 않았다. 그러다 두 달도 못 돼 또 한 번의 ‘트럼프발 호르무즈 청구서’가 날아든 것이다. 신중한 정부 넘겨 왔는데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일각에서는 한미 관계에 균열이 생긴 게 아니냐는 말이 지속해서 흘러나오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중동 전쟁을 빌미로 우리나라에 여러 가지를 요구하는 것과는 별개로 동맹 사이에 일어날 수 있는 부정적인 상황이 잇따라 벌어지고 있다는 반응이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 임기 초 각국에 관세 폭탄을 던질 때부터 시작된 균열이 아직까지 봉합되지 않고 있다는 말까지 들린다. 실제 트럼프 대통령은 ‘혈맹’이라고 불리던 한미 관계가 무색할 정도로 우리나라에 거친 태도를 보여왔다. 특히 관세 문제,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등을 대놓고 화두로 올렸다. 관세를 부과하고 분담금을 더 내라는 식으로 여러 차례 압박했다. 미군이 북한으로부터 우리나라를 지켜주고 있으니 돈으로 보상하라고 밀어붙였다. 최근에는 정동영 통일부 장관의 말을 두고 진실 공방이 벌어졌다. 정 장관이 지난 3월6일 국회에서 북한 우라늄 농축시설 소재지로 구성을 언급했다. 정부와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공식 확인한 영변과 강선 외의 장소다. 국민의힘 정보위원회 소속 의원들에 따르면, 정 장관의 발언 이후 미국은 4월 초 정보를 공유하는 것을 일부 제한했다. 정 장관은 구성이 과거 미국 싱크탱크나 국내 언론 보도 등으로 이미 언급됐던 장소라며 정보 유출이 아니라는 입장을 밝혔다. 이재명 대통령도 지난달 20일 “정 장관의 발언 이전에 구성 핵시설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각종 논문과 언론 보도로 이미 전 세계에 널리 알려져 있었던 점은 명백한 팩트”라고 두둔했다. 정 장관의 발언은 정쟁으로도 번졌다. 국민의힘은 정 장관의 해임 건의안을 발의했다. 국민의힘은 해임건의안을 발의하면서 “(한미) 동맹의 균열을 초래하고 국가 안보의 금도를 넘어섰다”며 그 배경을 밝힌 바 있다. 정 장관은 “안보 사안에 대해 숭미주의가 너무 지나친 것 같다”고 맞섰다. 정 장관에 대한 해임건의안은 자동 폐기됐다. 트럼프 노골적 참전 요구 청구서 받아든 이 선택은? 미국 측에서 우리나라 사법 체계를 흔드는 듯한 행보도 잇따라 나왔다. 김범석 쿠팡 의장, 방시혁 하이브 의장 관련 논란이다. 쿠팡은 지난해 11월 3300만건의 고객 개인정보 유출로 조사를, 방 의장은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고 있다. 심지어 방 의장은 출국금지 상태다. 미국 정계에서는 다양한 경로로 쿠팡 ‘감싸기’를 하고 있다. 미국 기업인 쿠팡을 ‘차별적으로’ 대하지 말라는 게 골자다. 수사 대상에 오른 김 의장의 안전을 보장해야 안보를 논의할 수 있다는 말까지 나왔다. 미국 공화당 하원의원들이 쿠팡 등 미국 기업에 대한 차별적 규제를 중단하라는 항의 서한을 보내기도 했다. 최근에는 공정거래위원회가 김 의장을 쿠팡의 동일인(총수)으로 지정하면서 한미 간에 감정싸움이 불거질 수 있다는 말도 나왔다. 지금까지 쿠팡의 동일인은 법인이었는데 김 의장(개인)으로 바뀌면서 법적 책임이 대폭 늘었다. 실제 쿠팡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미국에서 공시 의무를 준수하고 있는 만큼 우리나라가 이중으로 규제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차별적 조치라는 것이다. 또 김 의장이 미국 국적자인데 그를 한국법상 총수로 지정한 것은 한미FTA를 위반한 것이라고도 강조했다. 주한미국대사관에서 방 의장을 비롯한 하이브 관계자 3명의 출국금지를 해제해 달라는 요청이 경찰청에 오기도 했다. 서울경찰청 금융범죄수사대는 하이브 상장 과정에서 방 의장이 2000억원대의 부당이득을 챙긴 혐의로 수사하고 있다. 경찰은 방 의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했지만 검찰이 보완 수사를 이유로 반려했다. 이 같은 소식이 전해지자 미국이 내정간섭을 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어떤 이유로든 미국이 우리나라에서 수사를 받는 인물에 대해 특정 요구를 한다는 것 자체가 과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선택 기로 앞으로는? 더 큰 문제는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가 또다시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이재명정부의 외교 방향은 ‘국익’ ‘실용’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 대통령은 전시작전권 전환 등 안보 독립을 외치는 중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외교는 오랜 시간 한미동맹의 바탕 위에서 이뤄졌다. 결국 선택해야 할 시기가 올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합류일까, 관망일까?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