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삼기의 시사펀치> 개혁은 언제 혁명을 닮는가

속도가 통제를 넘어서는 순간, 개혁은 권력된다

지금은 혁명의 시대가 아니라 개혁의 시대다. 그런데 개혁이 혁명을 닮아가고 있다. 체제를 무너뜨리는 대신 제도를 고치는 시대라고 말하지만, 그 방식은 점점 과거를 닮아간다. 피 대신 법을 쓰고, 총 대신 입법을 쓸 뿐이다. 겉모습은 달라졌지만, 권력이 움직이는 방식은 놀라울 만큼 비슷해지고 있다. 우리는 지금 다른 이름의 혁명을 보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지금 우리가 물어야 할 것은 단 하나다. 이 개혁은 정말 개혁인가, 아니면 다른 방식의 혁명인가. 방향은 개혁을 말하지만, 방식은 혁명을 따르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하는 순간, 개혁은 이미 길을 잃는다. 이름은 남지만 본질은 바뀌기 때문이다.

권력이 교체되면 개혁은 시작된다. 이것은 정치의 자연스러운 순서다. 새로운 정권은 이전 질서를 부정하며 등장하고, 그 약속을 실행해야 존재 이유를 증명할 수 있다. 그래서 개혁은 언제나 정당성을 가진다. 문제는 의지가 아니라 방식이다. 개혁이 제도 위에서 작동하는지, 아니면 권력 위에서 작동하는지에 따라 결과는 완전히 달라진다.

혁명과 개혁은 닮아 있지만 본질은 정반대다. 혁명은 질서를 무너뜨리고 새로 세운다. 개혁은 질서를 유지한 채 수정한다. 혁명은 빠르고, 개혁은 느리다. 혁명은 반대를 제거하고, 개혁은 반대를 남겨둔다. 혁명은 적을 없애려 하고, 개혁은 적과 공존하려 한다. 이 차이는 단순한 방법의 차이가 아니라, 사회가 지속될 수 있는가를 가르는 기준이다.

역사는 이 경계를 여러 번 넘었다. 프랑스 혁명은 자유와 평등을 외치며 시작됐지만, 곧 단두대로 이어졌다. 왕정뿐 아니라 혁명 내부의 온건파까지 제거됐다. 혁명을 지키기 위해 반대를 없애야 한다는 논리가 작동한 순간, 개혁은 사라지고 권력만 남았다. 혁명은 체제를 바꾼 것이 아니라, 사람을 바꾸는 숙청으로 변질됐다.

중국 문화대혁명은 그 극단이었다. 권력층뿐 아니라 지식인, 교사, 가족까지 ‘구체제’로 규정되면 제거 대상이 됐다. 사회는 서로를 감시하고 공격하는 구조로 붕괴됐다. 개혁이라는 이름은 남아 있었지만 실제로 진행된 것은 파괴였다. 개선은 사라지고 제거만 남았을 때, 개혁은 더 이상 개혁이 아니다. 그것은 권력 유지의 기술일 뿐이다.

이 두 사례의 공통점은 명확하다. 반대를 제거하고, 속도를 절대화하며, 명분을 독점하는 것이다. 그 순간 개혁은 방향을 잃는다. 그리고 그 자리에 권력이 들어선다. 개혁은 더 이상 사회를 위한 것이 아니라 권력을 위한 도구로 바뀐다.

민주주의는 원래 다른 길을 전제로 한다. 선거를 통해 권력을 얻은 정권은 제도를 완전히 부정할 수 없다. 헌법과 법률이라는 틀 안에서 움직여야 하고, 반대 세력도 제도 안에 남는다. 그래서 느리다. 대신 무너지지 않는다. 갈등을 제거하지 않고 관리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민주주의 개혁이 가진 유일한 힘이다.

그렇다면 개혁은 언제 혁명을 닮아가는가. 그 출발점은 명분의 절대화다. 개혁이 정의로 포장되는 순간, 반대는 방해로 규정된다. 견제는 장애물이 되고, 속도는 미덕이 된다. 이때부터 균형은 무너진다. 통제되지 않는 속도는 언제든 권력으로 변한다. 그리고 그 권력은 스스로를 개혁이라고 부른다.

개혁과 혁명 사이에는 하나의 다리가 있다. 바로 개헌이다. 개헌은 기존 질서를 완전히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근본 구조를 바꿀 수 있는 유일한 제도적 통로다. 개혁이 제도의 틀 안에서 움직이는 것이라면, 개헌은 그 틀 자체를 다시 설계하는 행위다. 그래서 개헌을 거친 변화는 급진적이어도 정당성을 갖는다. 속도가 아니라 절차를 통과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 다리를 건너지 않는 경우다. 개헌 없이 헌법 아래의 법과 권력만으로 구조를 바꾸려 할 때, 개혁은 쉽게 혁명을 닮아간다. 겉으로는 입법이고 제도이지만, 실제로는 질서 자체를 흔드는 방식이 된다. 절차는 남아 있지만 본질은 우회된다. 이때 개혁은 정당성을 잃고, 성공 가능성도 함께 무너진다. 개헌 없는 급진적 개혁은 제도를 바꾸는 것이 아니다. 제도를 우회하는 것이다.

이제 질문은 명확하다. 지금의 변화가 제도를 통해 이루어지고 있는가, 아니면 제도를 우회하고 있는가. 개헌이라는 다리를 건넌 개혁은 급진적이어도 지속될 수 있다. 그러나 그 다리 없이 진행되는 급속한 변화는, 아무리 명분이 강해도 오래 가지 못한다. 정당성 없는 속도는 결국 스스로를 무너뜨린다.

최근 우리 정치에서 벌어지는 장면도 이 구조와 무관하지 않다. 정권교체 이후 강한 사정 드라이브와 입법이 동시에 추진되고 있다. 이것은 개혁 의지일 수 있다. 그러나 동시에 질문이 따라온다. 이 개혁은 통제되고 있는가. 견제가 실제로 작동하고 있는가.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하는 개혁은 방향이 아니라 힘으로 움직이게 된다.

특히 사법 개혁은 더욱 그렇다. 사법은 권력을 견제하는 마지막 장치다. 이 영역에서 균형이 무너지면 회복은 거의 불가능하다. 개혁이 균형을 강화하는가, 아니면 권력을 집중시키는가. 이 차이는 작아 보이지만 결과는 치명적으로 갈린다. 사법은 한 번 무너지면 제도로 복구되지 않는다. 권력으로만 복구된다.

입법 역시 마찬가지다. 다수는 힘이다. 민주주의가 허용한 정당한 권력이다. 그러나 그 힘이 한 방향으로만 반복될 때, 그것은 더 이상 민주주의가 아니다. 견제 없는 다수는 언제든 권력이 된다. 법은 사회의 합의여야지 의지의 결과가 되어서는 안 된다. 합의 없는 속도는 신뢰를 무너뜨린다.

기준은 단순하다. 속도인가, 절차인가. 혁명형 개혁은 빠르고 절차를 줄인다. 저항을 제거하며 밀어붙인다. 민주형 개혁은 느린 대신 합의를 만든다. 반대를 남겨두고 조정한다. 불편하지만 이 과정이 있어야 권력은 통제된다. 개혁과 혁명을 가르는 선은 이 지점에 있다.

문제는 의도가 아니다. 구조다. 어떤 정권도 스스로를 권력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모두 개혁을 한다고 믿는다. 그러나 권력이 집중되고, 반대가 사라지고, 속도가 통제를 앞서기 시작하면 구조는 변한다. 그리고 그 변화는 되돌릴 수 없다.

역사는 이미 답을 줬다. 실패한 개혁의 공통점은 단순하다. 제도를 바꾸지 않고 사람을 바꾸려 했다는 점이다. 구조를 바꾸지 않고 적을 제거하려 했다는 점이다. 그 결과는 반복된 갈등과 새로운 적의 탄생이었다. 사회는 나아가지 않고 계속 갈라졌다.

민주주의는 다른 길을 요구한다. 느리지만 남겨두고, 불편하지만 견디며, 반대를 인정하고 갈등을 조정한다. 그래서 오래 간다. 지금 필요한 것은 더 강한 개혁이 아니라 더 정교한 설계다. 권력을 어떻게 나누고 어떻게 제한할 것인가, 속도가 아니라 구조로 답해야 한다. 개혁은 방향이 아니라 방식에서 평가된다.

개혁이 혁명을 닮는 순간, 그 개혁은 이미 위험해진다. 정의의 속도가 통제를 넘어서는 순간, 권력은 균형을 잃는다. 절차를 생략한 정의는 가장 먼저 자신을 무너뜨린다. 그때부터 개혁은 국민을 위한 것이 아니라 권력을 위한 것이 된다.

문재인정부는 자신을 촛불 혁명 위에 세워진 정권이라고 말했다. 최근 이재명정부 역시 출발을 ‘빛의 혁명’이라는 언어로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은 혁명의 시대가 아니다. 그래서 그 출발이 혁명이었다면, 그 완성은 반드시 개혁이어야 한다.

지난 4일 이재명 대통령은 이른바 ‘윤석열정권 조작 기소 특검법’과 관련해 “여당이 시기나 절차 등에 대해 국민 의견 수렴과 숙의 과정을 거쳐서 판단해 달라”고 주문했다. 그러자 다음날 정청래 민주당 대표는 조작 기소 특검법 처리 시기와 관련해 "국민, 당원, 의원 총의를 모아 가장 좋은 선택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필자는 이 점에 대해 박수를 보낸다. 개혁의 방향을 유지하면서도 통제를 의식하기 시작했다는 신호이기 때문이다. 개혁은 밀어붙이는 것이 아니라 설계하는 일이다. 그러나 그 시기 조율이 6·3 지방선거를 의식한 회피라면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우리 국민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지금 필요한 것은 속도가 아니다. 오래 가는 힘이다. 개혁은 빠를수록 좋은 것이 아니라 견딜 수 있어야 좋은 것이다. 균형이 유지되는 한 개혁은 지속된다. 그러나 그 균형이 무너지는 순간, 개혁은 끝난다. 그리고 그 끝에서 남는 것은 개혁이 아니라, 되돌릴 수 없는 권력이다.

<skkim596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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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모자란 ‘명픽’ 출마자들

1% 모자란 ‘명픽’ 출마자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전국 단위 선거에서는 후보의 인지도도 승패를 가를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 후보들의 체급은 대통령이 언급하기 전과 후로 나뉘기도 한다. 그러나 대통령과의 친분이 모든 것을 해결해 주지는 못하는 법. 지방선거를 앞두고 ‘이재명픽’ 후보들의 수난 시대가 계속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하정우 부산 북갑 후보가 혹독한 정치 신고식을 치렀다. ‘손털기’부터 ‘오빠’ 논란까지, 정치 초보를 겨냥한 유권자들의 회초리가 매섭다. 이재명 대통령이 뽑은 인재라는 점에서 기대치가 높았던 만큼 실망도 컸다는 해석이 나온다. 당정이 키웠지만… 하정우 후보는 대통령실 신설 직책인 인공지능(AI) 미래기획수석 출신으로 지난해 6월 이 대통령이 직접 임명한 인물이다. 그는 향후 5년간 100조원 규모로 예고된 국가 AI 투자 및 인프라 전략을 총괄하는 컨트롤타워 역할을 맡는 등 이재명정부의 AI 산업을 이끌 핵심 인물이기도 했다. 이 대통령은 유독 하 후보를 아끼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두 사람은 국무회의서 훈훈한 ‘케미’를 보여주는가 하면 대통령이 묻는 말에 막힘없이 답해 “우리 하GPT(하정우와 챗GPT를 합친 단어)는 다 알고 있네”라고 치켜세우기도 했다. 하 후보의 차출설이 돌기까지 채 1년이 걸리지 않았다. 민주당 전재수 의원의 부산시장 출마로 열리는 부산 북갑에 그를 전략공천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면서다. 하 후보의 출마를 두고 청와대와 민주당 사이에는 불편한 기류가 맴돌았다. 지난 4월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AI 수석이던 하 후보에게 러브콜을 보냈고, 이에 이 대통령은 국가경제자문회의에서 “우리 하GPT가 할 일이 많은데 작업 들어오는 것 같다. 작업 들어온다고 넘어가고 그러면 안 돼요”라고 직접적으로 말했다. 청와대는 차출설에 선을 그었지만 당 지도부는 연일 하 후보의 이름을 거론하며 출마를 설득했다. 강훈식 대통령비서실장까지 나서 “출마 여부는 하 수석이 결정하기에 달린 문제라고 생각한다”며 “하 수석의 마음이 정해져야지, ‘나가라’ 해서 나가는 것도 아니고 ‘나가지 말라’ 해서 나가지 않는 것도 아니다. 본인이 결정해야지, 대통령이나 당이 결정할 문제는 아니”라고 설명했다. 정 대표가 “우리 당으로선 쉽지 않은 지역인 북갑에 하 수석 말고는 이길 후보가 없다”며 거듭 강조하자 결국 하 후보는 “고향에서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오래전부터 해왔다”며 출마 결심을 굳혔다. 일련의 사건이 하 후보의 체급을 키우기 위한 당정 간의 약속 대련이 아니냐는 의혹이 나오는 이유다. 청와대를 떠나 부산으로 향했지만 첫 선거 유세서부터 발목이 잡혔다. 유세 첫 일정으로 방문한 구포시장에서 상인과 악수를 한 뒤 양손을 비비거나 손을 터는 듯한 모습이 포착되면서 이른바 ‘손털기 논란’이 불거진 것이다. 국민의힘으로부터 “오만하다”는 지적이 나오자 하 후보는 “처음으로 수백, 수천명과 처음으로 악수를 하다 보니 손이 저려 무의식중에 손을 쳤던 것 같다”며 당사자를 찾아 사과의 뜻을 밝혔다고 전했다. ‘하정우·정원오’ 호명하자 단숨에 관심·인지도 ‘쑥’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은 지난 3일에는 ‘오빠’ 사건이 발생했다. 부산을 찾은 정 대표는 구포시장에서 하 후보 지원 유세를 하던 중 초등학교 여학생에게 “여기 ‘정우 오빠’ 오빠 해봐요”라고 말했다. 정 대표는 거듭 “오빠(해봐요)”라고 말했고 하 후보도 “오빠”라고 반응했다. 국민의힘 성일종 의원은 해당 장면이 담긴 영상을 SNS에 올리며 “62세 정청래 대표와 50세 하정우 후보가 초등학교 1학년 여자아이에게 ‘오빠라고 불러보라’고 강요하는 모습은 참 낯뜨겁다. 망설이는 아이에게 두 사람이 번갈아가며 재차 ‘오빠라고 해보라’고 재촉하는 모습은 일종의 아동학대나 다름없다”고 비난했다. 여성단체에서도 “성인지 관점의 부재”라며 두 사람의 행동을 규탄했다. 하 후보는 캠프를 통해 “오늘 지역 주민을 만나는 과정에서 아이가 논란의 중심에 서게 됐다”며 “이로 인해 상처받으셨을 아이와 부모님께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정 대표도 민주당 공보국을 통해 “구포시장 방문 과정의 상황과 관련해 아이가 논란의 중심에 서게 돼 상처받으셨을 아이와 아이의 부모님께 송구하다”며 고개를 숙였다. 정원오 서울시장도 대표적인 ‘명픽’ 인물이다. 선거 초반 불거진 ‘칸쿤 여행지’ 의혹으로부터 겨우 벗어나나 싶더니 하 후보와 마찬가지로 구설에 오르내리며 곤욕을 치르는 모양새다. 정 후보는 지난해 12월 이 대통령이 자신의 SNS에 한 여론조사를 공유하며 “정원오 성동구청장님이 잘하기는 잘하나 보다. 저의 성남 시정 만족도가 꽤 높았는데 명함도 못 내밀 듯”이라고 쓴 것이 온라인에 퍼지면서 이름을 알렸다. 당시 정 구청장은 “‘원조 일잘러’로부터 이런 칭찬을 받다니, 감개무량할 따름이다. 더욱 정진하겠다”고 답했다. 이후 정원호 후보는 서울시장 선거 출마를 선언했고 “이재명정부와 손발이 맞는 서울시장”을 강조하며 다른 주자들과의 차별화에 나섰다. 그런 정 후보도 실언에 발목을 잡혔다. 지난달 CBS 라디오에 출연해 “시장직을 수행하는 사람이 대권을 바라보면 그때부터 불행해진다”며 “제가 경험해 본 박원순 전 시장, 그리고 오세훈 시장이 똑같다. 이상한 일들이 막 생기고 이상한 고집을 피우고 그런 것이 바로 대권을 바라봤기 때문”이라고 발언한 것이 화근이었다. 차기 대권주자로까지 이름을 올린 만큼 서울시장에 당선되면 대권보다는 시정에 집중하겠다는 취지였지만, 고 박원순 전 시장을 오세훈 시장과 동일시했다는 이유로 당내에서 논란이 됐다. 오만했나? 실수 또 실수 당시 서울시장 예비후보로 경선을 치렀던 전현희 의원은 “고 박원순 전 시장님을 오세훈 시장과 ‘똑같다’고 평가한 정원오 후보의 발언은 고인의 명예를 심각히 훼손한 것으로 철회돼야 마땅하다”고 주장했으며 박주민 의원은 “박원순 전 시장이 공도 있고, 과도 있겠습니다마는 오세훈 시장처럼 ‘대선에 눈이 팔려서 시정을 망쳤다’는 평가를 저는 받아들일 수가 없다. 그렇게 말씀하신 것은 잘못된 말씀”이라고 지적했다. 정 후보는 자신의 발언으로 논란이 불거지자 SNS를 통해 “마음의 상처를 입으신 분들께 정중하게 사과드린다”고 고개를 숙였다. 이어 “저는 박원순 전 시장님 곁에서 누구보다 가까이 지냈고, 시장님의 고뇌를 지켜보면서 너무도 안타깝게 생각했던 사람”이라며 “제가 말씀드리고자 했던 취지는, 서울시장은 오직 시민의 삶과 서울의 미래에 집중해야 하는 자리이며, 저 또한 그 책임에만 전념하겠다는 다짐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몇 주 지나지 않아 이번에는 ‘컨설팅’ 논란에 휩싸였다. 남대문시장에서 ‘장사가 너무 안 된다’는 상인에게 “장사가 왜 안 돼요, 관광객이 이렇게 많은데”라며 “계속 이러지 마시고 컨설팅을 한번 꼭 받아보세요”라고 말한 것이 뒤늦게 회자한 것이다. 오세훈 후보가 “시민을 가르치느냐”며 공세를 퍼붓자 정 후보 캠프 측은 “오세훈 후보 측의 굴절된 마음이 굴절된 시각으로 민심 청취 상황을 왜곡한 것”이라고 반발했다. 관련해 한 정치권 관계자는 “국민의힘이 워낙 여건이 좋지 않다 보니 작은 일도 꼬투리를 잡아 크게 벌리는 것을 생존 수단으로 정한 것 같다”면서도 “네거티브 공격이 들어올 만한 빌미를 제공하지 말아야 한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하지만 선거철에 민심이 추락하는 것은 한순간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자칭 타칭 ‘이재명픽’이라고 강조하는 이들도 도마 위에 올랐다. 그중에서도 ‘이재명의 선택’을 캠프 슬로건으로 내건 김용남 평택을 후보는 같은 곳에 출마한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 조국 대표와 설전을 벌이며 강도 높은 네거티브 공세를 주고받고 있다. 조 대표는 국민의힘과 개혁신당을 거쳐 민주당에 입당한 김용남 후보를 저격하며 “이정부의 국정 철학과 맞지 않다고 본다” “과거 김 후보가 대장동 사건을 거론하며 이 대통령의 무기징역을 주장했었다” 등 견제구를 던졌다. 살아남은 최후 1인 김 후보가 과거 보수 정당에 있었다는 점을 강조하며 조국 사태뿐 아니라 검찰개혁, 이태원 참사 등에 대해 내놨던 과거 발언을 재점화하기도 했다. 김 후보는 “과거 보수 정당에서 원내대변인 직책을 맡다 보니까 정파적 입장을 대변하는 상황에서 민주당 지지층이나 민주·진보 진영 분들에게 거북한 말씀을 드렸던 적이 많이 있었을 것 같다”며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진심으로 죄송스럽다”고 먼저 양해를 구했다. 그러면서도 조 대표의 사모펀드 등을 겨냥한 듯 “적어도 조 후보님과 관련해서 사실과 다른 말씀을 드렸던 기억은 전혀 없다. 지금 아무리 곰곰이 되돌려 봐도 사실관계는 틀림없어 보인다”고 말했고 이를 시작으로 친문(친 문재인)과 친명(친 이재명) 간의 갈등이 또다시 불거질 조짐이 보였다. 잡음이 커지자 민주당은 입단속에 나섰다. 지방선거를 한 달 앞둔 지난달 29일 정 대표는 “국민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오만한 언행에는 지위를 막론하고 단호하게 조치하겠다”고 밝혔다. 정 대표는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 회의에서 이같이 밝히며 “당 대표인 저부터 불광불급·종횡무진·전광석화·지성감천의 낮고 겸손한 자세로 국민 속으로, 현장 속으로 달려가겠다”고 강조했다. 국민의힘이 힘을 못 쓰는 상황에서도 민주당이 책을 잡히자 일부 후보들이 ‘이재명 후광’을 믿고 안일하게 선거에 임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 대통령이 직접 띄워주고 밀어준 만큼 여권 프리미엄을 기대하고 있지만, 여론은 얼마든지 변화할 수 있다. 지금부터는 개인 역량으로 승부를 봐야한다는 뜻이다. 한 민주당 관계자는 “이 대통령은 후계자를 키우지 않는다. 철저하게 개인주의 성향”이라며 “이 대통령은 특정 인물에 대해 몇 마디 언급한 게 전부다. 그걸 가지고 ‘대통령이 뽑은 나’에 취해 선거를 그르치면 안 된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이어 “후보를 호명하고 몸값을 띄워주는 것까지가 이 대통령의 역할”이라며 “이후 어떻게 살아남는지는 철저하게 본인의 역량이고, 이 대통령은 여기서 끝까지 남는 이들만 자신의 그룹에 넣는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친명’ ‘찐명(진짜 친명)’만 강조한 이들은 이번 지방선거 과정에서 다 탈락했다”고 부연했다. 역량 부족? “자기 일은 스스로” ‘친명’ 훈장만 믿었다간 낭패 김용 전 민주연구원 부원장은 ‘이재명의 남자’로 알려졌지만 이번 지방선거 공천에서 배제됐다. 김 전 부원장은 “안산·하남 어디든 국민께 심판받겠다”며 지도부에 신호를 보냈지만 민주당 지도부는 그의 출마가 보수 결집의 명분이 되는 등 선거에 미칠 영향을 고려해 이 같은 선택을 내린 것으로 전해진다. 민주당 조승래 사무총장은 경기 지역 전략공천 결과 발표 후 김 전 부원장의 공천 배제에 대해 “이번 선거에서 가장 하지 말아야 할 것을 먼저 정리한 것”이라며 “특정 후보의 리스크가 표심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현장 후보들의 우려를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당내 친명계 의원들은 김 전 부원장을 ‘검찰 수사의 피해자’로 규정했고, 공천을 통한 정치적 명예 회복을 요구했으나 당 지도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재명 2기 지도부에서 최고위원을 지낸 친명 한준호 의원도 경기도지사 예선에서 고배를 마셨다. 이 대통령의 ‘1호 감사패’를 받은 만큼 경기도지사 출마 당시에도 이 대통령의 의중을 등에 업고 나섰다는 해석에 힘이 실렸다. 그러나 2차 예선서 추미애 후보에게 밀려 패배했고, 정치권에서는 “큰 단위의 선거에서는 특정 인물과의 관계보다는 개인 역량이 중요한데 그 점을 간과한 것 같다”는 해석이 나왔다. 국민의힘 성일종 의원은 “지금 대통령이 취임한 지 1년이 안 됐다. 그런데 ‘한준호픽(한 후보와 이 대통령을 지지하는 세력)’이 전혀 힘을 쓰지 못했다”며 “반면 지금 추미애 후보 같은 경우는 강성 지지층의 지원이 있었다”고 분석했다. 이어 “인구도 가장 많고 당원도 가장 많은 경기도에서 추미애 후보가 한번에 후보를 확정했다”며 “이변이 일어났다. 권력 흐름이 바뀌고 있는 것 아닌가”라고 설명했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은 현역을 모두 물갈이하는 과감한 쇄신을 단행했다. 이 과정에서 청와대 출신이거나 이 대통령과 가깝게 일한 이들도 대거 후보로 이름을 올렸다. 인천시장 후보로 단수 공천된 박찬대 의원은 이 대통령이 당 대표이던 시절 원내대표로 호흡을 맞췄던 핵심 인사다. 이정부 첫 정무수석인 우상호 전 청와대 정무수석은 강원도지사 후보로 1호 단수공천을 받았다. 대선 당시 이 대통령이 직접 ‘입당하면 좋겠다’고 언급한 김상욱 의원은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 정국에서 국민의힘에서 탈당해 민주당에 입당했다. 이후 그는 탈당한 지 1년도 채 되지 않아 민주당 울산시장 후보가 됐다. 원팀이거나 업보거나 코스피 상승과 맞물려 이재명정부의 긍정적인 평가가 이어지고 있지만 ‘대통령의 후광효과’에만 의존해서는 안된다는 조언이 나온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대통령과의 친분을 앞세워 여권 프리미엄을 강조하는 것은 흔한 현상이지만 오로지 후광효과만 보려고 하는 현상도 늘어났다”며 “다만 우려가 되는 건 만약 이들이 모두 당선됐을 때, 시간이 지나고 다음 선거가 ‘심판론’으로 치러진다면 부정적 평가는 이정부에까지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밝혔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