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삼의 맛있는 정치> 북 도발에 직접 대처할 시점이다

현재 북한에서는 남북한 간에 공용어나 다름없다고 생각했던 용어들이 날벼락 맞듯이 사라지고 있다. ‘평화’와 ‘통일’이란 단어에 사용금지령이 내려졌다. 한 핏줄을 나눈 ‘민족’이라는 용어도 마찬가지며, ‘우리 민족끼리”라는 표현도 사라진다. 남북한을 통틀어 지칭하는 ‘삼천리’라는 말도 없어진다.

김정은 발언 배경

김정은이 지난 연말, 조선노동당 전원회의와 지난 1월15일의 최고인민회의, 그리고 2월8일의 북한 건군절 행사에서 곧 전쟁을 일으킬 것 같은 단호한 어조의 연설로 이상의 용어 사용을 금지했다.

앞서 김정은의 여동생인 김여정도 남조선 대신에 대한민국이라는 정식 국호를 입에 올리면서 윤석열정부를 비난했다. ‘남녘 땅’ ‘남조선’이라는 말도 쓰임이 끝났다.

김정은은 건군절 행사 때 “얼마 전 우리 당과 정부가 우리 민족의 분단사와 대결사를 총화 짓고 한국 괴뢰 족속들은 우리 전정에 가장 위해로운 제1의 적대국, 불변의 주적이며 유사시 그것들의 영토를 평정, 합병하기로 한 것은 우리 국가의 장래를 위해 천만지당한 조치”라고 주장했다.

또 그들의 애국가의 첫 구절인 ‘삼천리 아름다운 내 조국’서 ‘삼천리’를 빼고 그 구절을 ‘이 땅에’로 바꿨다. 남북한은 전혀 별개의 민족, 별개의 국가기 때문에 남한 땅도 평화적 방법 아닌 군사적 합병 대상으로 ‘전략적 결정’을 내렸다고 했다.


한 일본학자는 “이는 전쟁 선언이라기보다는 북한의 체제 보전을 위한 통일 거부선언”이라며 “남북한이 1민족 2국가로서 적대적으로 공존하겠다는 뜻 같다”고 해석했다.

김정은의 발언이 북한 헌법에 반영되면서 김일성이 창안했다는 연방제 통일이나 평화통일 3대 기본 원칙도 사라졌다.

강도 높은 도발 예고론

6‧15 선언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도 사라졌다. ‘조평통’이나 ‘한민전’ 같은 단어는 앞으로 북한의 대남방송서 듣기 힘들 것으로 예상된다. 모두 해체 예정인 탓이다. 김정은은 선출된 지도자도 아니고 유훈 통치로 세습한 독재자인데 전임자의 유훈을 이렇게 맘대로 지워도 탈이 없을까?

김정은의 최근 발언을 두고 평가가 다양하다. 미국학자들 가운데는 북한의 강도 높은 도발 예고로 보기도 하고 도발은 있지만 고강도 아닌 저강도 위협이라는 평가도 있다. 반면 국내에서는 김정은 발언을 북한 체제 유지를 위한 고육지책으로 해석하거나 윤정부의 대북 강경노선이 남북 간의 긴장 수준을 높인 탓으로 돌리기도 한다.

미국의 로버트 칼린과 지크프리트 해커는 핵으로 무장한 북한이 중국과 러시아가 북한의 뒷배를 봐줄 것으로 전망하고 우크라이나와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으로 미국의 전력이 분산되는 상황을 이용해 고강도 도발을 해 올 가능성이 크다고 말한다.

이들은 미국이 남한에 대해 핵 공격 시 지구상에서 북한을 없애겠다고 강력 경고했지만, 김정은은 이에 굴하지 않고 당당히 맞설 것이라면서 미국과 한국은 최악의 사태를 각오하고 대비해야 한다고 으름장을 놨다.


물론 이들의 견해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김정은이 대외적으로 이 시기에 꼭 떠들어 대고 싶은 말을 오히려 대변한 것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랠프 코라는 달리 접근한다.

김정은은 우크라이나 전쟁서 러시아 푸틴이 자국 안보가 위태로워지면 핵을 사용하겠다는 엄포 한마디로 서방 측이나 우크라이나의 러시아에 대한 공격 수준을 저하했으며 이 때문에 전시 중인데도 모스크바에 포탄 하나 떨어지지 않았다.

러시아도 결코 ‘지지 않는 전쟁’을 벌이고 있다는 사실에서 큰 교훈을 얻었고 그(김정은)도 유사한 도발을 자행할지 모른다고 내다봤다. 그러나 이상의 두 견해는 모두 정세분석을 통해 도출된 추론일 뿐 뒷받침할 현장 증거는 제시되지 않았다.

저강도 도발 가능성

일각에선 전면전이나 고강도 도발 가능성은 크지 않지만. 미국 대통령선거 기간에는 으레 있었던 만큼 가능성은 높지 않겠냐는 분석도 있다. 미국 전략 안보연구소 빅터 차 한국 석좌교수의 분석에 따르면, 미국 대통령선거 기간에는 평소보다 도발 수준이 375% 더 높았다.

한편 수미 테리는 이 같은 고강도 도발 주장에 대해 “주장을 뒷받침할 현장 증거가 전혀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김정은이 대남 발언을 통해 평화통일 노선을 완전히 버렸다는 점 ▲현재 시점서 꼭 전쟁을 바라고 있다는 확증은 없는 점을 들어 오히려 전쟁을 일으키지 않을 가능성을 시사했다.

그러나 수미 테리도 최근 북한이 핵과 미사일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포격 도발을 계속해 긴장의 강도를 높이는 현실에 주목하면서 비록 저강도 도발을 가해올 수도 있지만 그렇더라도 한국이 과잉 대응 시 확전의 우려가 크기 때문에, 모든 도발에는 치밀한 사전 대비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블루스 베넷도 김정은은 핵 무력 사용 시 북한을 없애겠다는 미국의 경고를 두려워하면서 전면 도발은 물론, 고강도 도발도 벌일 수 없을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그는 예상 도발의 유형을 열전과 완전히 나누어 분석하면서 한국에서는 제3의 유형 도발로 외형은 열전 같지만, 실제는 완전하게 전개되는 형태를 예상했다.

또 미국의 <정보판단서>(NIE) 최신판을 근거로 김정은은 패망할 최악의 궁지가 아니라면 핵 무력을 사용치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국내 전문가들은 김정은이 2011년 권력을 세습하면서 주민들에게 약속한 경제적 비전 쌀밥에 고깃국을 먹는 실현에 완전히 실패했고 핵과 미사일 개발을 서둘렀으나 그것으로 주민들의 고통을 해결해 주지 못했다고 지적한다.


또 경제 총량서 북한을 50배 이상 앞서가는 한국의 존재는 항상 북한 정권유지에 엄청난 부담이 돼왔고 평화통일의 뜻도“남한에 의한 북한의 흡수”를 의미할진대 차라리 남한을 주적으로 규정하고 북한 사회에 미칠 남한의 영향력을 완전히 차단하는 데 중점을 둔 발언으로 해석한다.

그러면서 김정은이 2022년 ‘반동사상 문화 배격법’을 만들고 남한 사회의 문화를 받아들인 자들을 가혹하게 처벌하는데 이는 한국 문화가 북한 체제 변화에 미칠 영향에 매우 민감한 데 기인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체제유지론

또 지난해 ‘평양 문화어보호법’도 개정, 한국의 MZ세대들이 흔히 쓰는 ‘오빠’ ’자기‘ 같은 표현을 북한 청소년들이 쓰지 못하도록 강력 단속하는 것도 김정은의 민감도를 잘 나타내는 것이고, 김정은은 북한 주민들에게 ‘남한적인 것’을 연상시키는 모든 용어를 일상서 없애 나가기로 작심했다고 말한다.

김정은은 자기 생부인 김정일이 주창했다는 ‘우리 민족 제일주의’마저 폐기했다. 이는 체제의 절박한 위기를 말한다.

앞서 인용한 일본 학자는 “남북한이 핏줄을 같이 나눈 민족이라는 사실이 전술 핵무기의 선제 사용 공론화에 부담이 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김정은 발언의 핵심은 남한의 영향력이 북한 사회에 핵무기보다 더 무서운 ‘비대칭적 힘’으로 침투해 들어오는 것을 막지 못하면 정권붕괴를 피할 수 없다는 위기의식서 동족 부정, 평화통일 거부, 남북한의 별개 국가화’라는 주장을 펴는 것이다.

한때 문재인정권의 대북 노선을 지지했던 학자들은 윤정부가 9‧19 선언의 일부를 배제하자 북한이 전부를 무효화시킨 사실을 지적하면서 북한에 대한 윤정부의 강경정책이 남북대화를 막고 긴장감을 높인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정부는 ‘담대한 구상’으로 대화와 협력을 강조했고 비핵화를 위한 대화에 응할 것을 대북정책의 기조로 삼아왔다. 반면, 김정은은 9‧19 선언만이 아니라 역대 정부가 북한과 합의한 모든 선언이나 합의를 전면 무효화시켰다.

문재인의 판문점 선언을 포함해 모든 합의가 무효 처리됐는데도 무슨 헛소리를 떠드는가. 우리는 이제 한반도 문제를 보는 시각을 바꿔야 한다. 한반도 비핵화는 이제 장기목표는 될 수 있지만 더 이상 단기목표는 아니다.

중국과 러시아가 유엔안보리서 북한에 대한 추가 제재를 거부하고 기존 결의를 무시하는 한 대북제재는 더 이상 현실적 정책이 될 수 없다.

윤석열정부의 강경론

북한은 우크라이나 전쟁서 러시아에 무기를 판매함으로써 단기적으로는 러시아서 오는 식량과 석유 에너지로 급한 갈증을 풀고, 수출 무기 제조에 필요한 원자재를 들여다 공장들도 움직인다. 동시에 한국에 대해 미사일 도발은 멈추지 않는다.

도발의 본질은 북한 정권 지키기다. 러시아의 협력을 받더라도 북한 정권은 체제의 대외 개방을 서두르지 않으면 내부의 고질화된 부정부패 때문에 다시금 빈곤의 함정에 빠질 수밖에 없다.

김정은은 체제개혁보다는 그에게 익숙한 안보 위기 조성으로 정권을 지키려는 욕망에 가득 차 있다. 이제 한국은 상황 논리상 북한의 모든 도발에 직접 대처해야 할 시점에 이르렀다.

미국은 아프가니스탄 철군을 마지막으로 미군의 해외 전쟁 개입서 발을 빼려는 분위기다. 한국을 철통같이 방어하고 핵 무력에 대한 확장억제를 누차 다짐하지만, 한반도서의 확전은 피하려 하며 김정은은 이 같은 회피심리를 악용하기 때문에 이제 국가안보의 책임은 우리가 맡아야 한다.

미국의 안킷 판다 카네기연구소 핵 전문가는 한국이 개발에 성공한 정밀성 높은 미사일 방어망이야말로 최선의 북핵 대처라고 평가하면서 방산 분야에 역점을 둘 것을 강조한다. 북한의 모든 도발 지점에 가장 정밀한 원점 타격 능력을 갖추는 것 이상의 핵 안보 대책은 없다는 것이다.

작금이야말로 우린 세계랭킹 10위만큼의 경제력과 방산 능력을 자주국방 능력으로 급전시킬 때다. 동시에 대내적으로 ▲대북 동조세력에 대한 철저한 발본색원 ▲북한 내부에 자유화의 물결 투입 ▲한국의 문화 능력의 대북 침투 강화 ▲핵에 맞설 수 있는 ‘비대칭적 공세’를 취해야 한다.

이것이 오늘의 북한서 없어지는 모든 용어를 되살리면서 우리 주도의 통일역사를 도모하는 길이 아닐까?

김명삼 대기자
<hntn118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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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징대는’ 북한 도발의 이면

‘징징대는’ 북한 도발의 이면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북한의 도발 방식이 다각화되고 있다. 전형적인 미사일 도발에 이어 사이버 공격을 감행하나 싶더니 최근에는 오물을 투척했다. 윤석열정부는 북한의 거듭된 도발에 강경 대응으로 맞섰다. 잦아진 북한의 도발, 그 노림수는 무엇일까? 80여년의 세월은 두 나라의 공통점을 차근차근 지워냈다. ‘한민족’ ‘동포’라는 말을 사용하긴 하지만 과거보다 유대감은 옅어졌고 소속감은 사라지고 있다. 세월이 흐르면서 이산가족 역시 줄어드는 추세다.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이 마주한 현주소다. 분단 79년 다른 나라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은 2001년부터 2022년까지 14번에 걸쳐 통일 시기에 대해 물었다. 전국 18세 이상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조사는 전체적인 경향에서는 큰 변화가 없었다. 모든 조사에서 응답자의 과반이 ‘(통일은) 10년 후쯤 점진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답했다. 2011년 김정일 전 노동당 총비서 사망, 2013년 12월 장성택 전 정치국위원의 숙청 발표 때 ‘통일되지 않는 것이 낫다’는 응답이 다른 조사에 비해 높았던 것을 제외하면 전반적인 경향은 10년 넘게 변화가 없었다. 오히려 눈에 띄는 점은 연령별 양극화였다. 2022년 조사에서도 응답자의 57%가 통일 시기를 10년 후쯤으로 답했다. ‘(통일이) 빨리 이뤄져야 한다’가 19%, ‘통일되지 않는 것이 낫다’가 19%로 나타났다. 의견을 유보한 비율은 5%였다. 큰 틀에서는 이전 조사와 비슷했지만 18~29세, 30대 등 젊은 층에서 ‘통일되지 않는 것이 낫다’는 비율이 평균치를 웃돌았다. 각각 29%, 30%의 수치를 기록했다. 젊은 층 3명 가운데 1명은 통일에 대한 거부감을 드러낸 것이다. 반면 70대 이상에서는 ‘(통일이) 빨리 이뤄져야 한다’는 답변이 39%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젊은 층에서 통일에 대한 인식이 부정적으로 나타나는 이유로는 북한과의 관계가 손꼽힌다. 그간 정부의 성향에 따라 북한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다. 진보 성향의 정부는 대화를 통해 전쟁을 억제하는 방향으로 대북정책을 전개했고 보수 성향이 짙은 정부일수록 강경 대응 방식을 취했다. 북한 역시 대화 상대의 성향에 따라 전략을 달리하는 식으로 대응해 왔다. 윤석열 대통령은 후보 시절부터 문재인정부의 대북정책을 따르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문정부는 미국과 중국 사이를 줄타기하면서 북한과의 대화 물꼬를 트고 평화 체제를 유지하는 방향의 대북정책을 고수했다. 이 과정서 한국이 미국, 중국, 북한과의 관계를 주도하는 이른바 ‘한반도 운전자론’을 전면에 내세웠다. 미사일·GPS·오물 다양한 도발 정부, 군사합의 효력 전면 정지 반면 윤석열정부는 한미동맹을 기반으로 한‧미‧일 체제를 공고히 다지면서 북한을 압박하는 형태의 대북정책을 펼치고 있다. 실제 윤 대통령은 한미, 한일관계에 공들이는 것에 비해 중국, 북한과는 거리를 두는 모양새다. 눈에 띄는 점은 북한의 대응이다. 북한은 최근 들어 다양한 방식으로 도발 수위를 높이고 있다. 지난달 28일 밤부터 29일까지 거름과 쓰레기 등을 담은 오물 풍선이 우리나라 쪽으로 날아왔다. 이른바 ‘오물 풍선’으로 이날 북한이 살포한 풍선은 260여개로 집계됐다. 오물 풍선은 지난 1~2일 사이에도 날아왔다. 합동참모본부(이하 합참)에 따르면 1일 밤 8시경부터 다음 날 오후 2시30분 기준 전국서 720여개의 오물 풍선이 식별됐다. 오물 풍선은 항공기 운항에도 영향을 미쳤다. 인천국제공항공사에 따르면 2일 오전 제1활주로와 제2활주로 사이 상공서 오물 풍선이 두 차례 확인돼 운항이 일시적으로 중단됐다. 전날에도 제3활주로와 제4활주로 사이에 낙하한 오물 풍선을 수거하느라 일정 시간 동안 항공기가 이착륙하지 못했다. 결항된 항공편은 없었지만 자칫 대형사고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었다. 북한은 오물 풍선에 이어 탄도미사일을 대거 발사하는 등 무력 도발을 이어갔다. 지난달 30일 합참은 “오늘 오전 6시14분께 북한 평양 순안 일대서 동해상으로 발사된 단거리 탄도미사일(SRBM) 추정 비행체 10여발을 포착했다”고 밝혔다. 그동안 시험발사 명목으로 탄도미사일을 발사한 적은 있지만 이렇게 무더기로 쏜 것은 이례적이다. 합참은 “북한의 미사일 발사는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명백한 도발 행위로 강력히 규탄한다”며 “군은 굳건한 한미연합 방위 태세하에 북한의 다양한 활동에 대해 예의주시하면서 어떠한 도발에도 압도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능력과 태세를 유지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거듭된 공세 강경한 대응 북한은 지난달 17일에도 300㎞를 날아간 단거리 탄도미사일 1발을 발사했다. 북한은 위성항법장치(GPS) 교란 공격도 자행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정통부)에 따르면 지난달 29일 오전 5시50분부터 발신지가 북한의 강령과 옹진으로 추정되는 전파 교란 신호가 3일까지 누적 1500건에 육박했다. 발신지가 북한으로 추정되는 전파 교란 신호가 연평·인천·강화·파주의 과기정통부 전파감시시스템에 유입됐다가 중단되길 반복한 것이다. 지난달 31일 기준 932건으로 집계됐는데 주말 새 550건이 늘어 1482건으로 나타났다. GPS 전파 혼신 신고 건수를 대상별로 분류하면 항공기 507건, 선박 975건 등이다. 실제 피해로 이어진 사례는 다행히 발생하지 않았다. 과기정통부 관계자는 “북한의 GPS 교란 전파가 산과 같은 지형지물을 넘기 힘들어 수도권 등 국민의 일상생활에까지 영향을 미치기는 힘들 것으로 보고 있다”고 밝혔다. 북한의 다각화된 도발에 정부는 강경 대응에 나섰다. 윤정부는 지난 4일 남북 간 적대 행위를 금지하는 9‧19 군사합의 효력을 전부 정지시켰다. 오물 풍선 사태가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9‧19 군사합의의 효력이 정지되면서 대북 확성기 방송, 군사분계선 일대의 군사훈련 등이 가능한 여건이 마련됐다. 9‧19 군사합의는 2018년 8월19일 문재인 전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간 회담서 채택한 ‘9월 평양공동선언’의 부속 합의로 남북 간 적대 행위를 금지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북한은 지난해 11월 이미 전면 파기를 선언했고 윤정부도 같은 달 효력을 일부 정지했다. 북한이 오물 풍선, GPS 교란 등의 도발을 거듭하자 전면 정지로 맞대응에 나선 것이다. 미국도 규탄 국제기구에 지난 3일 대통령실은 김태효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처장 주재로 NSC 실무조정회의를 열고 “남북 간 상호 신뢰가 회복될 때까지 9‧19 군사합의 전체의 효력을 정지하는 안건을 국무회의에 상정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윤 대통령은 지난 5일 국무회의서 의결된 9‧19 군사합의 전부 효력정지안을 재가했다. 이 같은 조치는 북한의 도발을 더 이상 좌시하지 않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외교부는 북한의 GPS 교란 공격에 대해 국제기구에 문제를 제기했다. 임수석 외교부 대변인은 지난 4일 “최근 북한의 GPS 교란과 관련해 정부는 유관 부처 간 긴밀한 협의하에 유관 국제기구를 통해서도 이 문제를 제기하는 등 필요한 조치를 취하고 있다”고 밝혔다. 정부가 밝힌 국제기구는 국제전기통신연합(ITU), 국제민간항공기구(ICAO), 국제해사기구(IMO) 등 3곳이다. 정부는 2016년 3월 북한이 GPS 교란 전파를 발사했을 때에도 이들 기구에 문제를 제기했으며 각 기구는 비판 성명을 채택하거나 교란 중단을 촉구하는 서한을 발송한 바 있다. 미국도 반응했다. 미 국무부는 북한의 오물 풍선 살포에 대해 “역겨운 전술”이라고 규탄했다. 매슈 밀러 국무부 대변인은 “이것은 분명히 역겨운 전술”이라며 “무책임하고 유치하니 북한은 이를 그만둬야 한다”고 말했다. 앞서 베단트 파텔 국무부 부대변인도 “우리는 어떤 형태의 비행 물체든 불안정을 초래하고 도발적인 것이라고 본다”며 한국, 일본과 긴밀한 대응 논의를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의 계속된 도발에 윤정부가 9‧19 군사합의 전면 효력정지로 맞서자 정치권이 술렁이고 있다. 윤정부의 강경 대응에 따른 입장이 엇갈리고 있는 것.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9‧19 군사합의 전면 효력정지 안건이 국무회의에 상정되기 전 “오물 풍선을 보낸 북한 행태는 비판받아 마땅하지만 이 문제에 대한 윤석열정부의 대응은 정말 유치하고 졸렬하다”고 지적했다.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한반도 긴장 수위를 높여 정권이 처한 위기를 모면하려는 나쁜 대책이라는 설명이다. 내부 상황 안 좋아 외부로 눈 돌렸나? 반면 국민의힘은 환영의 뜻을 전했다. 국민의힘은 “북한은 올해만 6차례에 걸친 탄도미사일을 발사했고 1000여개의 오물 풍선을 살포해 우리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하고 재산 상의 피해를 초래했다”며 “북한의 몰상식하고 치졸한 도발행위에 대해 강력히 규탄하며 향후 이로부터 발생하는 모든 사태에 대해서는 북한 당국이 책임져야 한다는 것을 엄중히 경고한다”는 내용의 결의문을 발표했다. 일각에서는 북한의 도발과 윤정부의 대응에 모두 노림수가 있는 게 아니냐는 분석이 제기된다. 외부의 적을 만들어 내부 상황을 감추려 한다는 설명이다. 양쪽 모두 국면전환을 위한 일종의 ‘노림수’라는 말이 흘러나오고 있다. 실제 북한의 경우 정찰위성 발사 실패, 경제난 등을 겪고 있다. 북한은 지난달 27일, 밤 군사정찰위성 2호기를 발사했다. 하지만 1호기 발사 때와 달리 비행 과정서 폭발했다. 사실상 실패한 것이다. 합참에 따르면 우리 군은 이날 밤 10시44분경 북한이 평안북도 동창리 일대서 서해 남쪽 방향으로 발사한 ‘북 주장 군사정찰위성’으로 추정되는 항적 1개를 포착했다. 해당 발사체는 밤 10시46분경 북한측 해상서 다수의 파편으로 탐지됐다. 비행 과정 중 폭발, 실패가 추정되는 대목이다. 북한이 군사정찰위성을 쏜 것은 지난해 11월21일 이후 6개월여 만이다. 당시 북한은 3번의 시도 끝에 1호기를 궤도에 올리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북한 군사정찰위성 만리경 1호는 정찰 등의 역할은 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2호기 발사가 북한에 중요했던 이유다. 이번 실패로 김정은 위원장의 군사정찰위성 추가 발사 계획에 차질이 불가피해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여기에 경제난으로 북한 주민의 불만이 누적되고 있는 점도 북한 입장에서는 차단해야 할 부분이었다는 것이다. 결국 우리나라와의 군사적 긴장 수위를 높이는 방법으로 위기 상황을 모면하려 한 게 아니냐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주거니 받거니 짜고 치는 쇼? 내부 상황만 놓고 보면 윤정부도 녹록지 않다. 윤정부는 4‧10 총선서 패한 이후 거듭된 이슈로 수세에 몰리는 중이다. 윤 대통령의 지지율은 20% 초반 박스권에 갇혀 반등의 기미조차 보이지 않고 있다. 채 상병 특검, 의료개혁, 김건희 여사 사건 등 곤혹스러운 이슈들이 산재한 상황이다. 문제는 북한 이슈에 대한 국민의 관심이 과거와는 달리 현저하게 떨어져 있다는 점이다. 북한이 미사일을 쏘면 정국이 요동치고 북한 내부에 문제가 발생하면 관심도가 높아졌던 때와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다. 며칠만 ‘반짝’ 이슈화됐다가 사라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한국과 북한이 마주한 현주소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