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쿠바 수교, 냉전 외교의 마지막 뒷정리

지난 2월14일 한국과 쿠바가 외교관계를 수립하기로 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외교부는 뉴욕 현지시각 오전 8시에 맞춰 “우리나라와 쿠바가 미국 뉴욕서 유엔대표부 간 외교 공한 교환을 통해 양국 간 대사급 외교관계 수립에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소식을 듣고 어떤 사람들은 우리나라 관광객도 많이 가는 쿠바와 외교관계가 아직 없었나? 하는 반응도 있고, 쿠바를 북한의 가장 가까운 우방국으로 인식하던 사람들은 놀라움을 표시하기도 했다.

이로써 우리는 전 세계 193개국과 외교관계를 맺게 됐고, 유엔 회원국 중 유일하게 시리아만이 미수교국으로 남았다.

시리아는 13년째 내전이 계속되고 있어 다른 나라와의 수교에 신경쓸 상황이 아니므로, 사실상 우리는 모든 국가와 외교관계를 맺게 된 셈이다. 어떻게 생각하면 뒤늦게 온 한국과 쿠바의 수교는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일까?

독특한 국가

지난 60년간 국제사회서 쿠바라는 작은 국가가 여러 계기에 관심을 받아온 배경을 이해하려면 우선 쿠바의 지리적 특성, 즉 미국과의 근접성이 고려돼야 한다. 미국 플로리다 남단의 키웨스트 제도서 쿠바까지는 90마일, 즉 145km밖에 되지 않는다.


우리나라 목포서 제주까지의 거리와 거의 비슷하다. 따라서 역사적으로 쿠바는 미국의 직접적인 영향을 많이 받을 수밖에 없었다. 미국인들은 쿠바를 생각하면 존 F. 케네디 대통령을 흔히 떠올린다.

1963년 말 암살되기까지 3년이 채 안되는 케네디의 임기 중에는 공산 혁명정부가 출범한 쿠바와 관련된 큰 사건이 많았다. 1961년 피그만 침공 사건,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 등이 대표적이다.

황당하기까지 한 피그만 침공 계획을 진보적 성향의 케네디 대통령이 승인한 것도, 현대사에서 가장 핵전쟁에 가까웠던 위기로 평가받는 쿠바 미사일 위기에 강력히 대응할 수밖에 없었던 것도 모두 미국과 쿠바의 지리적 근접성을 생각해야만 이해할 수 있다.

미국 언론은 당시 쿠바서 소련제 미사일을 발사하면 미국 동부의 주요 도시에 5분 이내에 도달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역사적으로 보면, 콜럼버스가 1492년 쿠바섬을 발견한 후 쿠바는 거의 400년간 스페인의 식민 지배를 받았다. 이 시기에도 쿠바는 미국과의 교류가 많았다. 1898년 미국-스페인 전쟁이 발발한 것도 쿠바 아바나항에 정박한 미국 군함의 폭발 사건이 계기가 됐다.

미국은 스페인과의 전쟁서 승리함으로써 쿠바와 필리핀 등을 양도받았다. 쿠바는 1902년 독립해 공화국을 수립했으나, 법과 제도에 의해 미국의 간섭을 받는 의존적 관계가 됐다. 쿠바 영토 남동부의 관타나모 미 해군기지는 이때부터 조약에 의해 미국 측에 영구 임대돼 현재도 사용 중이다.

쿠바 독립 후 50년간 선거 또는 쿠데타로 정권이 몇 번 교체됐으나, 사회 전반의 부패와 빈부격차는 점점 더 심해졌다. 1952년 쿠데타로 집권한 바티스타 대통령 시절, 독재와 부패는 극에 달했다.


쿠바 경제는 사탕수수 산업뿐 아니라 관광, 도박 등 모든 분야서 미국 기업이 장악했고, 심지어 마피아 같은 미국 조직폭력단체의 온상이 됐다. 바티스타정부는 시민과 언론의 자유를 탄압하고, 가난에 시달리는 일반 국민은 독재 정부와 미국 기업을 한통속으로 보게 됐다.

이 같은 상황은 결국 피델 카스트로를 중심으로 한 혁명세력이 6년간의 내전 끝에 1959년 바티스타정권을 쓰러뜨림으로써 끝나게 됐다.

케네디 대통령은 1963년 인터뷰서 바티스타정권의 독재와 부패를 용인한 미국의 정책이 쿠바 내의 경제적 식민주의와 착취를 가능하게 했다고 언급함으로써 카스트로 집권에 미국도 책임이 있음을 인정하기도 했다.

미국은 쿠바가 혁명 후 미국 기업 소유 자산과 농장 등을 국유화하자 쿠바에 대한 경제 제재를 부과하기 시작했다. 아직도 계속 중인 대쿠바 제재는 미국 역사상 가장 오래된 외국에 대한 제재라고 할 수 있다.

미국 기업의 쿠바와의 교역 금지가 주된 내용이며, 식품과 의약품만 엄격한 조건으로 쿠바로 수출할 수 있는데 현재 연간 2억불 정도 규모다.

쿠바는 유엔의 제재 대상은 아니며, 유엔은 오히려 미국의 쿠바 제재 해제를 촉구하는 총회 결의를 매년 채택하고 있다. 미국의 제재는 오바마 대통령 당시 다소 완화되는 조짐이 있었으나, 트럼프 집권 후 다시 강화돼 오늘에 이르고 있다.

남북한과의 관계

현시점서 북한과 쿠바는 각각 아시아와 중남미서 유일하게 공산 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국가라고 할 수 있다. 두 나라는 특히 반미주의(anti-Americanism)라는 공동 노선하에 각별한 유대관계를 유지해 왔다.

유엔 등 국제무대서 핵 문제, 인권 문제와 관련해 북한을 적극적으로 옹호하는 몇 안되는 우방국 중 하나가 쿠바다. 양국 간 인적교류도 활발하다.

쿠바 혁명 직후인 1960년 체 게바라의 북한 방문을 시작으로 1986년 카스트로 국가평의회 의장의 방북, 2018년 미겔 디아스카넬 대통령의 방북이 있었다.

북한도 2015년 리수용 외무상 방문을 포함 주요 인사의 쿠바 방문이 계속됐다. 카스트로는 김일성이 10만정의 소총을 쿠바에 무상 제공했다고 밝힌 적도 있다. 쿠바는 북한의 요청에 따라 1988 서울올림픽에 불참한 7개국 중 하나였다.

2016년 카스트로 사망 시에는 북한이 3일간의 애도 기간을 설정하기도 했다. 또, 2013년 북한 청천강호 사건으로 쿠바가 전투기와 무기 수리라는 명목으로 북한에 무기를 보내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져, 대북 제재 하에서도 양국 간 군사협력이 유지되고 있음이 드러나기도 했다.


사실 공산주의 혁명 이전의 쿠바는 1949년 한국을 국가로 승인하는 등 친한 국가였다. 그러나 1959년 혁명으로 관계가 단절됐고, 남북한이 대결 외교를 벌인 냉전시대 내내 관계가 악화됐다. 1990년 냉전 종식 후 한국은 쿠바에 외교관계 수립 필요성을 제시하며 관계 개선을 시도했다.

이 같은 노력은 특히 2000년 이후 강화돼 이만섭 국회의장(2001년), 윤병세 외교부 장관(2016년), 강경화 외교부 장관((2018년)의 방문 등 여러 차례 쿠바의 문을 두드렸다.

한·쿠바 수교가 갖는 의미

이번 한·쿠바 수교 발표는 뉴욕의 양국 유엔대표부 간에 쿠바 측이 긍정적 입장을 전해온 지 1주일 만에 전격적으로 이뤄졌던 것으로 알려졌다. 원래 외교관계 수립은 발표 때까지 철저한 보안을 유지하는 게 관례다.

특히 쿠바는 북한의 저항 등을 살펴 더욱 보안 유지 속에 신속히 진행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과거 우리 외교부 장관의 쿠바 방문 전후에 북한은 외무상, 당 상임위원장 등 고위급의 쿠바 방문을 통해 견제 외교활동을 해왔던 게 주지의 사실이다.

끝으로, 한·쿠바 수교가 우리 외교와 한반도 상황에 대해 갖는 의미를 크게 세 가지 정도로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첫째, 한국으로서는 정부 수립 후 1990년대까지 40여년간 지속됐던 냉전 외교가 최종적으로 정리됐다는 의미가 있다. 쿠바가 그간 우리와 수교하지 못한 것은 카스트로와 김일성 시대부터 내려오는 북한 지도층과의 특수 관계 때문이었는데, 이제 국제사회서 마지막 남은 북한의 형제 국가도 결국 실리를 택하게 된 셈이다.

북한으로서는 물론 충격이 클 것이다. 북한의 관영 매체들이 침묵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충격을 대변해 준다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전통 우방인 쿠바와의 관계가 소원해진다면 북측으로서도 손해이므로 쿠바에 대한 강한 반발은 자제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둘째, 한국과 쿠바 양국이 갖는 실질적 이익도 있다. 쿠바의 처지에서는 이번 수교 결정에 경제적 고려가 중요했다고 본다. 장기간 미국의 경제 제재 하에서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고 있으므로 세계적 경제 대국으로 성장한 한국과의 경제교류 강화가 필요하다는 인식이 강했을 것이다.

현재 우리의 쿠바에 대한 수출은 1400만불, 수입은 700만불로 경제 관계가 크지 않음을 고려할 때 잠재력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우리 입장에서도 카리브해 국가 중 비교적 인구가 많고 국토가 넓은 쿠바가 앞으로 변화를 추구하고 미국의 제재가 해제되면 포괄적인 관계 발전을 기대해 볼 수 있다.

셋째, 중장기적으로 우리나라 외교와 한반도에 대해 갖는 함의가 있다고 본다. 한국은 이제 사실상 세계 모든 국가와 외교관계를 맺게 됐으므로 본격적으로 외교의 내실화를 추구할 수 있게 됐다. 형식적인 관계가 아닌 실질적이면서 다양한 분야의 교류를 추구하는 외교관계가 가능한 시대가 도래했음을 확인하게 된 것이다.

이번 수교가 한반도 상황에 긍정적 영향을 주게 될 경우, 앞으로 쿠바가 변화를 통해 경제적 발전과 국민의 자유를 높이게 되면 북한의 변화와 개방을 위한 자극이 될 수 있다는 희망섞인 전망도 가능해진다.
 

김명삼 대기자
<hntn118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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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된 밥’ 이재명 연임 시나리오

‘다 된 밥’ 이재명 연임 시나리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더불어민주당이 합심해 이재명 대표의 연임설에 군불을 때고 있다. 이 대표는 긍정의 뜻을 밝히지 않았지만 구태여 거절하지도 않았다. 주어진 시간은 3개월. 고심을 거듭한 이 대표의 선택은 무엇일까? 2022년 3월부터 쉼 없이 달려왔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이야기다. 이 대표는 지난 20대 대선서 패배한 후 곧바로 인천 계양으로 향했다. 지역구에 깃발을 꽂자마자 그해 8월에는 전당대회에 출마해 당 대표직까지 싹 쓸었다. 지난해 9월, 윤석열정부에게 민주주의 파괴에 대한 사과 등을 요구하며 24일 동안 단식을 했고 올해 초에는 피습을 당해 수술을 받기도 했다. 죽지 않고 돌아왔다 하지만, 그의 여정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당 대표 임기를 3개월 앞둔 시점서 이번에는 연임설이 솔솔 오르고 있다. 지금까지 이 대표는 당대표 연임을 묻는 질문에 부정적인 입장을 밝혀왔다. 지난달까지만 하더라도 “당 대표는 정말 3D(어렵고·더럽고·위험한 직을 일컫는 말) 중에서 3D다. 억지로 시켜도 다시 하고 싶지 않다”며 불출마 의사를 내비치기도 했다. 지금으로부터 약 2년 전 이 대표는 대선 패배의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 전당대회 출마 의사를 밝혔다. 대선서 패배한 뒤 6·1 보궐선거로 국회에 입성해 약 한 달 반 만에 경선 출마를 공식 선언한 것이다. 당에서는 이 대표의 선택을 만류했다. 대선 패배의 책임론서 벗어나지 못한 상황서 전당대회에 출마하는 것은 오히려 본인에게 독이 된다는 이유에서다. 그럼에도 이 대표가 출마를 고심한다는 풍문이 여의도를 돌자 그의 측근들 사이에서는 “스스로를 생각해서라도 자제하셔야 한다”는 여론이 형성됐다. 국민의힘은 이 대표를 저격하고 나섰다. 당시 차기 당권주자였던 국민의힘 김기현 의원은 “전과 4범의 이력으로 뻔뻔하게 대선에 나서고 연고도 없는 곳에 나가 ‘방탄용 출마’로 국민들 부끄럽게 하시더니 이젠 제헌절마저 부끄럽게 만드나”라며 이 대표를 직격했다. 이어 “‘개딸(개혁의 딸)’들 같은 광신도 그룹의 지지를 받아 ‘어대명(어차피 당 대표는 이재명)’이라고 하니 ‘방탄 대표’ 이 의원의 당선을 미리 축하는 드린다”며 비꼬기도 했다.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이 대표는 전당대회 출마를 공식화했다. 경선을 약 한 달 앞둔 2022년 7월이었다. 그는 기자회견을 열고 “지난 대선과 대선 결과에 연동된 지방선거 패배의 가장 큰 책임은 제게 있다는 생각에 변함이 없다”면서도 “책임은 문제회피가 아니라 문제해결이고 말이 아닌 행동으로 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선 끝에 이 대표는 77.77%라는 압도적인 지지율로 승리를 거머쥐었다. 대선서 패배한 지 채 반년도 되지 않아 169석을 가진 거대 야당의 우두머리가 된 것이다. 산전수전 다 겪고 당대표로 우뚝 연임-지선 코스 밟고 대선까지 쭉 당 대표직을 따내는 데 성공했지만 이 대표의 정치 인생은 난항의 연속이었다. 당시 민주당은 친문(친 문재인) 세력이 주류였던 만큼 하루가 멀다하고 친명(친 이재명)과 비명(비 이재명) 간의 갈등이 불거진 탓이다. ‘심리적 분당’이라는 말이 심심찮게 오갔고 비명계 의원들의 도미노 탈당이 이어졌다. 총선을 앞두고 공천 과정서 또다시 계파 갈등이 불거졌다. 모든 과정서 비판과 화살의 끝은 이 대표를 향했다. 오는 8월을 마지막으로 이 대표가 자리서 물러설 것이란 관측이 우세했다. 총선이 끝나자 판세가 바뀌었다. 이번 선거를 승리로 이끈 이 대표가 한 번 더 당권을 잡아야 한다는 주장이 빠르게 확산한 것이다. 민주당이 이 대표의 연임을 원하는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제시된다. 첫 번째로는 정권교체다. 이번 총선서 압승을 거둔 이 대표의 능력이 입증됐으니 2027년 정권을 교체하기 위해서는 지금의 기세를 몰아야 한다는 것이다. 범야권까지 탈탈 털어도 대권주자가 마땅치 않은 모양새다. “윤석열 대통령의 맞수는 이재명 뿐”이라는 주장이 커지는 이유기도 하다. 두 번째는 인사의 부재다. 당장 전당대회가 4개월 앞으로 다가왔지만 당내 차기 당 대표감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다. 총선 후 자칭타칭 차기 당 대표로 지목된 이들이 여의도 입소문에 오르내릴 법도 하지만 사소한 소문조차 떠돌지 않는다. 이 대표가 연임을 시작으로 지방선거를 거쳐 대권주자까지 이어지는 코스를 밟아도 공개적으로 문제를 제기할 이들이 없다. 이번 공천을 통해 다수의 비명계가 경선서 탈락하거나 탈당하는 등 대규모 물갈이가 이뤄졌기 때문이다. 연임설에 최초로 불을 댕긴 건 5선을 달성한 박지원 당선인이다. 그는 지난달 15일 한 라디오에 출연해 “이번 총선을 통해서도 국민은 이 대표를 신임했다”며 “총선 때 차기 대통령 적합도 여론조사에서 이재명 대표가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다. 이 대표 본인이 원한다면 당 대표를 해야 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매끄러운 시나리오 최근에도 박 당선인은 “연임에 대해서 아무런 이의가 없고 현재 당내서도 당 대표에 대해서 도전자가 없다”며 연임 가능성을 재차 강조했다. 이어 “전직 총리 등 중진들과 이야기해 보면 지금은 ‘이재명 타임’이라고 한다”며 “이 대표가 국민의 지지를 받고 있기 때문에 당을 이끄는 것이 좋다고 전에 얘기한 것이 적중한 것 같다”고 말했다. 친명계 좌장으로 통하는 민주당 정성호 의원은 “이 대표의 연임은 당내 통합을 강화할 수 있고 국민이 원하는 대여 투쟁을 확실히 하는 의미서 나쁜 카드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민주당 장경태 최고위원 역시 “국민의 바람대로 22대 개혁 국회를 만들기 위한 대표 연임은 필수 불가결”이라며 “부디 선당후사의 정신으로 민주당이 가질 수 있는 최고의 선택, 최선의 결과인 당 대표 연임을 결단해주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민주당 정청래 최고위원은 대표 연임 추대 분위기 조성에 앞장서겠다는 의지까지 밝혔다. 그는 “옆에서 가까이 지켜본 결과 (이 대표가)한 번 더 당 대표를 하면 갖고 있는 정치적 능력을 더 충분히 발휘할 수 있을 거라 확신한다”며 “당 대표 연임으로 윤석열정부에 반대하는 모든 국민을 하나로 엮어내는 역할을 할 지도자는 이 대표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계열서 당 대표가 연임한 건 1995년 9월부터 2000년 1월까지 새정치국민회(민주당 전신)의 총재직을 지낸 김대중 전 대통령 이후 전례가 없는 일이다. 만일 이 대표가 연임에 성공한다면 민주당 역사상 두 번째로 남게 된다. 핵심 친명을 중심으로 이 대표의 연임이 기정사실화되면서 사실상 추대 수순을 밟게 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그가 연임에 성공한다면 차기 대권주자로서 명분과 타이밍을 모두 챙길 수 있게 된다. 만일 이 대표가 연임을 받아들인다면 그의 임기는 2026년 8월까지 연장된다. 하지만 민주당 당헌·당규상 대권후보가 되기 위해서는 대선일로부터 1년 전 당 대표직을 사퇴해야 하는 만큼 2026년 3월까지 당직을 유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2026년 6월에 치러질 지방선거를 3개월 앞둔 시점이다. 3개월은 공천 작업 등 선거를 치르기 위한 기반을 충분히 다져놓을 수 있는 기간이라는 게 민주당 측 관계자의 설명이다. 민심? 당심? 엇갈린 선택 이번 총선에 이어 지방선거까지 이 대표 체제로 승리한다면 그는 더할 나위 없는 리더십을 얻는다. 2027년 치러질 대선에 출마할 명목도 다시 한번 다질 수 있게 된다. 이 대표의 연임이 확실시되는 분위기지만 그만큼 날 선 비판의 목소리도 커지는 모양새다. 이 대표의 연임이 ‘사법 리스크 방탄용’이란 지적이 제기되면서 또다시 발목 잡힐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여권에서는 이 대표의 연임이 대장동 개발 특혜를 비롯한 성남FC 불법 후원금 의혹 등을 방어하기 위한 ‘매력적인 카드’에 지나치지 않다고 비판했다. 이는 이 대표 개인뿐만이 아니라 민주당 전체가 ‘방탄 정당’이란 오명으로 이어지는 연결고리가 될 수 있다.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가 현실화될 경우에는 이 대표와 민주당이 함께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다. 사법 리스크로 당내 신 비명 세력이 생기고 지방선거 결과까지 영향을 미친다면 이 대표는 오히려 대권주자로서 큰 오점을 남기게 된다. 게다가 이번 총선처럼 지방선거서도 압승을 거둘 것이란 보장도 없다. 따라서 이 대표가 그동안 쌓아온 업적을 보존한 채 한발 뒤로 물러서 숨을 고르는 게 좋은 전략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여의도에서는 실보다 득이 더 크게 보이는 만큼 총선 승리라는 유종의 미를 거두고 박수칠 때 떠나야 한다는 것이다. 한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일요시사> 취재진과 만난 자리서 “‘어차피 다음 당 대표도 대통령 후보도 이재명 당신이 될 테니 좀 쉬셔라’라는 이야기가 나온다”며 “총선서 좋은 성적표를 받지 않았나. 또다시 자신을 시험에 들게 하는 건 확률이 반반인 게임을 하는 셈”이라고 말했다. 원대·의장 이어 ‘3톱’ 달성? 점점 멀어지는 포스트 우려도 이 대표가 연임한다면 2022년부터 2026년까지 내리 4년 동안 당권을 잡게 된다. 국민의 피로도가 누적될 것이란 우려가 제기되는 부분이다. 최근 당내 발생한 일렬의 사건에 모두 명심(이재명 대표의 의중)이 짙게 묻어났다는 지적이 나오는 만큼 이 대표에게도 정치적 휴식기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앞서 지난 3일 민주당 신임 원내대표 선거가 열렸는데 다른 후보가 없어 경선을 건너뛴 채 친명 박찬대 의원이 찬반 투표로 선출됐다. 22대 국회 전반기 국회의장 선거 후보군은 당초 4명이었지만 정성호·조정식 의원이 잇따라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교통정리가 이뤄졌다. 원내대표 선거와 국회의장 후보가 교통정리 되는 과정서 이 대표가 과도하게 영향을 끼쳤다는 해석이 나온다. ‘포스트 이재명’에 대한 논의조차 시작되지 않은 상황서 당의 무게 중심이 지나치게 이 대표 쪽으로 쏠릴 경우 민심의 후폭풍을 맞이할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전당대회까지 3개월가량 남은 만큼 민주당은 당의 흐름과 민심이 다르게 흘러갈 수 있다는 점도 의식해야 한다. <뉴시스>가 국민리서치그룹과 에이스리서치에 의뢰해 지난 8~9일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에게 이 대표의 연임에 관해 물은 결과 ‘찬성한다’는 응답은 44%로 ‘반대한다’는 응답 45%보다 1%p 낮게 나타났다. ‘잘 모르겠다’는 11%였다. 오차범위로 인해 반대 여론이 우세하다고 확실할 수는 없지만 민주당과 민심에 차이가 존재한다는 게 정치권 관계자의 중론이다. 정당 지지도별로 봤을 때는 더욱 확연한 차이가 드러난다. 민주당 지지층에서는 찬성이 83%, 반대가 12%로 찬성 여론이 압도적인 반면 국민의힘 지지층에서는 반대가 76%로 찬성(15%)보다 61%p 높게 나타났다. 무당층에선 반대 응답이 47%, 찬성 응답은 25%로 집계됐다. 해당 조사는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p로 응답률은 1.5%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지금부터 이의 시간 이 대표는 떠오르는 자신의 연임설과 관련해 공식적인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민주당 박성준 대변인도 “당 대표 연임설과 관련해 의견 교류는 전혀 없었다”고 설명했다. 다만 이 대표는 최근 들어 당 의원들에게 “어떻게 하는 게 좋겠냐”며 의견을 묻고 다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일각에서는 당의 수장이 아랫사람들에 압박을 가하고 있다고 지적했지만 “공당의 대표로서 당원들의 의견을 묻는 것은 당연한 민주적 절차”라는 게 민주당 관계자의 설명이다. 현재 여의도 안팎의 상황을 종합하면 이 대표는 말 한마디만으로도 연임이 가능하다. 2027년 대선까지 앞으로 3년, 민주당의 운명은 이 대표의 손에 달려 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견제구 던지는 국힘 총선 참패의 먹구름이 채 가시지 않은 국민의힘에 다시 한번 긴장감이 맴돌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연임에 성공한다면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 마지막 날까지 윤-이 대결 구도로 정국을 운영해야 하기 때문이다. 국민의힘 김민수 대변인은 지난 7일 논평을 통해 “이 대표의 민주당 사당화 전략은 반헌법적 행태”라며 일찌감치 견제에 나섰다. 김 대변인은 “민주당은 이 대표의 ‘점지’ 없이는 주요 보직에 자리하는 것조차 불가능한 상황”이라며 “처절한 마음으로 국민을 바라보며 이 대표의 독주에 맞서겠다”고 밝혔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