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초부터 시작된 ‘세종시 정국’이 소강상태에 들어갔다. 2월 임시국회가 시작된 가운데 여야는 ‘세종시 수정안’을 두고 대격돌을 준비하고 있다. 호사가들은 이러한 정국을 가리켜 ‘판도라의 상자’가 열렸다고 말한다. ‘판도라의 상자’는 제우스가 모든 죄악과 재앙을 넣어 봉한 채로 판도라를 시켜 인간 세상으로 내려 보냈다는 상자로 ‘세종시 정국’이 이와 같다는 것이다. 국론분열과 지역이기주의, 미래권력과 현재권력의 다툼, 계파 갈등이라는 극심한 재앙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MB는 이 상자를 서슴없이 열었다. 신화에 보면 이 상자에서 마지막으로 남은 것은 ‘희망’이었다고 한다. MB는 ‘세종시 정국’을 통해 어떤 희망을 보았을까.
MB 세종시 정국 주도‥손해 볼 것 없다
국회 부결 땐 6월 국민투표로 한판 승부
‘세종시 수정안’을 놓고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가 치킨게임을 벌이고 있다.
정부는 지난달 11일 세종시 수정안 발표에 이어 27일 입법예고, 3월 국회 개정안 제출, 4월 국회 처리까지 일사천리로 진행하고 있다. 이런 와중에 여권은 세종시 문제를 놓고 ‘살아있는 권력’과 ‘미래 권력’의 ‘피 말리는 전쟁’이 이어지고 있다.
‘세종시 정국’은 이미 원안이냐 수정이냐의 싸움이 아닌 차기 대권을 놓고 박 전 대표를 중심으로 한 잠룡들의 각축전이 돼 버렸고, MB는 여러 정치 아바타들을 통해 박 전 대표와 ‘정치전쟁’을 치루고 있다. 세종시라는 판도라 상자를 열어 ‘대권 전쟁’에 불을 지핀 MB에게는 어떤 전략이 숨겨져 있는 걸까.
<1단계>“수정안 최대한 밀어붙여”
먼저 여러 국면별로 MB의 필승 시나리오를 살펴봐야 한다. 첫째로 4월 국회 처리이다. 이것이 안 되었을 때, 다음 단계는 6·2 지방선거와 동시에 ‘세종시 국민투표’ 방안이다. 만약 이것도 실패했을 경우 지방선거 이후의 개헌논의를 들 수 있다.
먼저 4월 국회처리라는 산을 넘기 위해서는 3월 한나라당 당론 수정이 이뤄져야 한다. 4월 국회표결 과정에서는 60여 석을 갖고 있는 ‘박근혜의 파워’를 넘어서야 한다.
이 경우 3월 당론 수정이 불가능 해 보인다. 박 전 대표의 비서실장 출신인 유정복 의원은 <일요시사>와 통화에서 “박 전 대표의 입장은 변함이 없다”며 “박 전 대표는 국민과의 약속인 ‘세종시 원안’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여러 차례 언급했다. 타협 가능성은 없다”고 강조했다. 치킨게임을 벌이고 있는 두 사람의 강경한 태도로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고 있는 것.
반면 정부와 친이계는 세종시 수정안을 3월 당론으로 확정하고 4월 처리한다는 방침이다. 이와 관련, 안상수 원내대표는 “개정법안이 제출되기 전까지는 토론을 자제하자”고 밝혔으며, 정몽준 대표도 연일 ‘대화와 타협이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한발 더 나아가 정 대표는 지난 2일 국회 교섭단체 연설에서 “세종시 문제는 ‘약속 지키기’와 ‘국가의 미래’라는 가치 사이의 딜레마”라며 “약속 준수는 그것 자체로는 선하지만 선한 의도가 언제나 선한 결과를 가져오는 것은 아니다. 다른 선택의 가능성을 재고하는 일이 반드시 나쁜 일인가”라며 박 전 대표에게 직격탄을 날렸다.
여권 전략의 핵심은 충청권 여론이다. 설 이후 충청권의 민심 변화를 노린다는 전략이다. 하지만 설 이후에도 민심이 바뀔 지 여부는 아직 미지수이다. 이미 감정이 상해버렸고, 자존심이 뭉개진 상황에서 충청민들에게 삼성이나 한화라는 ‘달콤한 유혹’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설사 민심이 변한다고 하더라도 국회처리는 어렵다는 게 중론이다. 친이계 의석수는 110석 정도로 수정안 통과 요건에는 미치지 못한다. 이를 인지하고 있는 청와대는 ‘김무성 카드’에 기대하고 있는 눈치다. 그러면서 친박 내 수정안 찬성론자들에게 은밀하게 접근하고 있다는 것.
이에 한 친박계 의원은 <일요시사>와의 만남에서 “박 전 대표의 무조건식 반대표명으로 그간 계파 정치를 하지 않겠다는 박 전 대표의 말에 의구심을 품고 있는 분들도 있다”며 “아직까지는 동요하지 않고 있지만, 흔들릴 가능성도 크다”고 우려했다.
여권 핵심이 노리고 있는 노림수는 바로 ‘친박 분열’이다. 1차 공략대상이 김무성 의원이라는 것. 하지만 그 조차 쉽지만은 않다. 김 의원의 경우도 ‘배신카드’를 내밀 수 있는 마땅한 명분이 없기 때문이다.
이런 연유일까. 일부 친박 의원들은 조기전대를 통해 박 전 대표가 당권을 잡아야 한다는 뜻을 내비치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 전면에 나서서 자칫 MB의 중간평가 성격의 선거에 후폭풍을 맞을 수 있다는 이유로 조기전대설이 쏙 들어가 버렸다.
조기전대는 친이 쪽도 반대하고 있다. 정 대표가 장광근 사무총장의 경질과 함께 7월까지 대표 임기를 보장받았고(?), 이재오 국민권익위원장의 전당대회 복귀가 점쳐지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친박계는 세종시 싸움에서 승리한 이후 7월 전당대회에 박 전 대표가 직접 나서서 당권을 장악하고, 청와대와 구분해 2012년 총선과 대선을 준비해야 한다는 계산이다. 친박계로서는 가장 이상적인 시나리오다.
<2단계>국회처리 무산 땐 6월 국민투표
이런 상황을 두고 여권 핵심은 다음 수를 염두에 두고 있다. 4월 국회처리가 힘들 것으로 판단될 때 이 대통령이 꺼낼 수 있는 카드는 ‘6월 국민투표’다. 6·2 지방선거를 세종시 찬반 국민투표와 동시에 치루겠다는 복안으로 보수진영과 50~60% 대 수정안 찬성 여론을 등에 업고 ‘국민의 뜻을 묻자’는 것이다. MB에게 있어 ‘세종시 수정’ 카드를 밀어붙일 수 있었던 결정적인 이유는 6·2지방선거가 있기 때문이다.
이미 지난해 11월 공성진 최고위원과 차명진 의원은 “국회가 세종시 관련 의견을 수렴하되 국가 안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요 정책이므로 국민투표에 부의하는 것도 검토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한국기독교총연합회 등 보수단체와 조갑제 ‘조갑제닷컴’ 대표도 “국민투표를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에 한 정치전문가는 <일요시사>와 통화에서 “세종시 수정 카드는 이번 지방선거를 MB대 반MB의 구도로 가려는 성격이 짙다”며 “수도권과 PK, TK를 잡고 가겠다는 전략이 숨겨져 있다. 6·2 지방선거 때 MB 정부의 중간 평가 성격이 아니라 세종시 찬반 투표의 성격으로 가겠다는 뜻”이라고 해석했다.
국민투표의 경우 현행 헌법상 결정권자는 대통령이다. 국민투표법은 19세 이상의 국민에게 국민투표권을 주고 대통령이 18일 전까지 국민투표일과 국민투표안을 공고하면 된다. 이제까지 건국 이래 여섯 번의 국민투표가 실시됐으며, 모두 개헌과 관련한 투표였다.
<3단계>세종시 수정안 백기…개헌·남북정상회담 올인
1~2단계가 모두 불발이 될 경우 이 대통령의 또 다른 카드는 개헌과 남북정상회담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 카드는 마지막 카드이면서 히든카드가 될 가능성이 크다. 사실상 여권 핵심부는 잇달아 개헌을 주장하고 있다.
우선적으로 제시했던 6월 세종시 국민투표 시나리오가 실패할 경우 ‘친이의 정치 공간’이 붕괴되는 것으로 미래권력인 친박에게 숙청당할 가능성이 커진다. 그렇기 때문에 미래권력 다툼의 패배에 대비해 퇴로를 열어주겠다는 뜻이다. 개헌 카드는 최후의 수단이자 반전 카드이기도 하다는 것.
이미 이 대통령은 ‘개헌’이라는 애드벌룬을 지난해 8.15 경축사에서 띄웠다. ‘권력구조 개편’이라는 명분 아래 개헌을 제안했고, 정운찬 총리도 지난해 국회 대정부 질문 답변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개헌을 한다면 앞으로 1년 안에 해야 한다’고 했다”고 밝힌바 있다.
정 대표도 지난달 8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올해 안에 개헌 논의를 끝내고 내년 2월 임시국회에서 개헌안을 처리하자”고 제안했다.
안 원내대표 역시 개헌문제와 관련해 야당에 국회 개헌특위 구성을 지속적으로 제안한 바 있다. 이에 민주당 박지원 정책위원장은 지난달 13일 “이 대통령이 개헌으로 밀고 나올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MB가 취임 후부터 개헌을 주장해온 이유가 무엇일까. 이에 대해 한 정치전문기자는 “‘차기 박근혜 대통령’이라는 생각을 머릿속에 갖고 있어서 그런 거 아닐까 한다”며 “‘이원적 정부제’는 제왕적 대통령이 아닌 분권형 대통령으로 대통령의 권한을 축소하고 국회가 선출한 국무총리가 내각 구성권을 가지게 한다. 즉 박 전 대표가 차기 대통령이 된다고 해도 어느 정도 후사를 세울 수 있다는 계산이 깔려 있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개헌문제에 대해서도 MB와 박 전 대표는 전혀 다른 생각을 갖고 있다. 박 전 대표는 4년 중임제 개헌입장으로 ‘8년 대통령’을 하겠다는 생각이다. 즉 제왕적 대통령의 권한을 유지하고 강화하겠다는 것.
따라서 세종시 전쟁에 이은 또 한 차례 피할 수 없는 전쟁이 기다리고 있는 셈이다. 이런 가운데 개헌 전쟁의 변수로 야권이 떠오르고 있다. 확실한 ‘박근혜 대항마’가 없는 친이와 야권이 연대할 경우 분권형 개헌으로 기울 수 있다.
이와 함께 3단계의 마지막 카드는 남북정상회담이다. 연초부터 이 대통령은 남북정상회담에서 직접 언급하고 나섰다. 지난해와는 전혀 다른 스탠스다. 먼저 지난달 BBC와 CNN 인터뷰를 살펴보면 ‘남북정상회담’에 대해 가능성을 열어놨고 가능하면 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지난 2일에는 “정상회담을 위한 대가는 있을 수 없다는 대전제하에 남북 정상이 만나야 한다. 이 원칙을 양보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정상회담과 관련해 언론에서 여러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그러나) 정상회담은 확고한 원칙 아래 추진할 수 있는 것이다. 그 원칙이 충족되지 않으면 성사될 수 없다”고 밝혔다.
이 대통령은 ‘만남을 위한 만남’ 배제하고 북한에 정상회담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것을 위한 움직임은 이미 포착됐다. 지난해 남북 특사설과 더불어 이제는 공개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은 3일 남북 정상회담 문제와 관련, “주변국과의 협조가 매우 중요하다”며 “미국뿐 아니라 중국, 일본, 러시아 등 6자회담 관련국 간 조율이 중요하기에 외교부가 협의를 해나가고 있다”고 밝힌바 있다.
따라서 이 대통령의 히든 카드는 ‘남북정상회담’이라는 것이다. 이제 집권 3년차를 맞이한 MB에게 확실한 성과물이 나와야 한다는 것과 정국주도권을 끝까지 놓지 않겠다는 의지가 반영된 것이다. 세종시 정국 이은 개헌 논의, 남북정상회담까지 이 대통령의 권력 투쟁은 계속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