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경제1팀] 총체적 불황 속에서도 유독 잘나가는 ‘절대 강자’가 있다. 막강 브랜드를 앞세운 기업들이다. 기업 수익과 직결되는 브랜드 경쟁력으로 확보한 아성은 어느 누구도 무너뜨릴 수 없을 만큼 견고하다. 하지만 ‘1등 브랜드’에도 숨기고 싶은 비밀이 분명 존재한다. 소비자 눈을 가린 ‘구멍’이 그것이다. <일요시사>는 대한민국 산업의 발전 방향 모색과 소비자들의 정당한 권리 차원에서 히트상품의 허점과 맹점, 그리고 전문가 및 업계 우려 등을 연속시리즈로 파헤쳐 보기로 했다.
“작은 키, 확실히 키워드립니다.”
각종 매체에 연일 실리고 있는 광고 문구다. ‘단신’의 고민을 품은 소비자로선 솔깃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다 큰’부모들도 어린 자녀들의 만약을 대비한 ‘보험용’으로 호기심을 가질 만하다.
10여 개 제약사서
20여 종 제품 출시
이런 뜨거운 관심 속에서 이른바 ‘키 크는 약’이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제약업계에 따르면 ‘키 크는 약’이라 불리며 시중에 유통되는 제품은 국내에서 내로라하는 10여 개 제약사에서 출시되는 20여종 안팎으로 파악된다. 그중에서도 광동제약의 A제품은 ‘혹시나’하는 소비자들 사이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그러나 A제품은 다소 복잡한 유통 과정을 거치면서 여러 문제점들이 부각되고 있다. 광동제약은 A제품이 의약품이 아닌 건강기능식품으로 분류되는 탓에 직접 공급하지 않는다. 주로 자회사인 광동생활건강이 구축한 다수의 판매망을 통해 A제품을 판매하고 있다.
판매망들이 광동생활건강으로부터 A제품을 구입한 뒤 다시 소비자에게 되파는 구도다. 한마디로 광동제약과 판매조직들이 무관하다는 얘기다. 이렇다 보니 유통상 관리에 허점이 생기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일 수도 있다.
우선 과장광고가 논란거리다. 기존의 키를 더 키우고 싶은 심리를 악용해 효능을 부풀리는 과대 포장 수법이 판을 치고 있는 것.
결론부터 말하면 A제품은 ‘신비의 약’이 아니다. 단지 성장기 어린이 및 청소년의 뼈 성장에 필수적 영양소인 각종 비타민과 칼슘, 아미노산, 미네랄 등을 두루 공급해 성장 발육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제품이란 게 광동제약 측의 설명이다.
전문가들도 현재의 약학수준에서 단순히 약으로 키를 키우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지적한다.
?‘성장’관련 약품 불티…복잡한 유통서 문제점 부각
“하청에 재하청”다단계마케팅 사이비업체 ‘수두룩’
‘과대·과장 광고, 제약사 상호 무단도용, 직원 사칭,
비싼 가격, 다단계 영업, 떴다방식 유령조직 난립…’
“영양제의 효능만으로 키가 크긴 어렵습니다. 의학적으로 입증되거나 보고된 바가 없습니다. 키 크는 약으로 시판되는 제품들은 말 그대로 영양제일 뿐 키와는 전혀 관계가 없습니다.”
식품의약품안전청과 대한의사협회 등 의약 전문기관들의 이구동성이다. 최근 공정거래위원회가 “키 크는 방법을 거짓으로 과대 광고했다”며 모 제약사의 ‘키 크는 약’을 판매한 K사에 시정명령을 내린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유통망들은 ‘먹기만 하면 키가 큰다’식으로 소비자들을 유혹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들 조직은 허위 문구를 버젓이 광고에 활용하기도 한다.
실제 한 판매망의 홈페이지엔 “A제품을 복용하면서 자사가 운영하는 성장프로그램을 병행하면 최대 10㎝이상 키를 키울 수 있다”는 A제품에 대한 소개가 게재돼 있다. 또 다른 판매업체는 블로그를 운영하면서 A제품 복용 결과 ‘키 큰’성공 사례들을 구체적으로 나열해 놨다.
삐뚤어진 상술을 펴는 업체들이 한술 더 떠 광동제약 상호를 무단 사용하는 일도 적지 않다. 심지어 일부 판매업체 직원들은 광동제약 로고가 박힌 명함을 들고 다니며 마치 ‘광동맨’인 듯 영업에 나서고 있다.
소비자들을 보다 쉽게 현혹하기 위한 ‘꼼수’다. 소비자들은 대형 제약사의 제품이란 말만 곧이곧대로 믿고 지갑을 열기 십상이다. 들쭉날쭉 제멋대로인 가격도 문제다. A제품은 유통업체에 따라 구입 금액이 5만원대부터 20∼30만원대까지 차이가 난다.
“단순히 약으로
키 크기 불가능”
여기에 성장진단, 무료컨설팅, 맞춤형 일대일관리, 운동 처방서비스 등 각종 프로젝트와 프로그램을 신청하면 가격은 2~3배 이상 뛰어 100만원에 이른다. 또 키가 큰다는 운동기구까지 추가시 수십만원의 부가 비용이 발생한다.
A제품이 터무니없는 가격에 거래되는 이유는 따로 있다. 유통업체들의 무분별한 다단계식 마케팅 영업 때문이다.
광동생활건강과 판매 위탁 계약을 체결한 총판이 또 다른 판매망에게 재하청을 주는 방식이 기승을 부리고 있는 것. 이 과정에서 부풀려진 약값은 고스란히 소비자에게 전가되기 마련이다.
‘방문판매 등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다단계영업은 사업자(판매원)가 하위사업자를 3단계 이상 모집 관리해 수당을 받으면서 모두 판매활동을 하는 경우로 규정하고 있다. 반대로 방문판매는 하위사업자가 3단계 이하로, 상위사업자가 판매활동을 하지 않아야 한다.
하지만 건강기능식품 유통업체들은 등록상 방문판매로 돼 있을 뿐 실제 영업은 다단계판매로 이뤄지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유통망에 딸린 판매원들은 실적에 따라 수당을 지급받으며, 또 다른 판매원들을 끌어들이는 전형적인 피라미드 구조다.
일부는 ‘떴다방’식의 영업 행태를 보여 심각성을 더한다. 실적이 좋지 않거나 법적으로 하자가 생기면 폐업한 뒤 곧바로 다른 조직을 만들어 똑같은 영업에 나서는 패턴이다.
한 영업사원은 “영업소는 판매원에게 제품구매를 강요하는가 하면 사기성에 가까운 판매원 모집 행위도 꺼리지 않는다”며 “이렇게 제품이 여러 단계를 거치다 보니 결국 소비자들은 시세보다 몇 배나 비싼 가격으로 약을 구입할 수밖에 없다”고 귀띔했다.
일각에선 광동제약이 ‘유령조직’들의 상술을 방관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실태를 알고도 묵인하는 거 아니냐는 것이다.
시민단체 한 관계자는 “키 크는 약의 기형적 판매 문제는 그동안 여러 차례 제기됐다”며 “제약사들은 이런 폐해를 너무 잘 알고 있는데도 전혀 시정이 되지 않아 방조하고 있다는 의심을 사고 있다”고 꼬집었다.
“총판은 정상적 영업
딸린 하위조직 말썽”
광동제약은 고민이 많다. 저인망 유통업체들의 이리저리 날뛰는 ‘막가파식’영업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것. A제품을 구입한 고객들의 항의가 빗발치고 있는 탓이다.
그러나 “제어한다고 하지만 판매 수법이 워낙 교묘하기 때문에 관리가 제대로 안 된다”는 게 광동제약 측의 토로다.
회사 관계자는 “과대·과장 광고, 직원 사칭, 비싼 가격, 다단계 영업, 유령조직 난립 등 건강기능식품의 유통 과정에 일어나는 고질적인 문제들을 잘 알고 있다”며 “하지만 회사에선 이런 판매 방식이나 지침을 지시하거나 허용한 적이 없다”고 해명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광동생활건강과 정식 계약을 맺은 총판은 정상적으로 영업에 나서고 있지만, 그 밑으로 엮인 하위조직들이 말썽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모니터링과 단체 고발, 언론 보도 등을 토대로 실태를 조사해 법적 조치도 불사하는 등 강력한 대응책을 자체적으로 시행하고 있다”며 “피해를 입은 소비자들의 항의가 들어오면 고액의 프로그램과 검증절차를 거치지 않은 유사품을 제외하고 회사에서 출고한 정품에 대해서만 100% 적당한 조치를 취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