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이 18일 오전 10시 청와대 영빈관에서 기자회견을 연다. 취임 1주년 기자회견 이후 102일 만이며, 취임 후 일곱 번째다. 내·외신 기자 15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정치·외교와 정책·경제 분야를 중심으로 90분 동안 질의응답이 진행된다. 미리 질문과 답변을 맞추는 방식도 아니라고 한다.
청와대는 “주요 현안에 대한 분명한 입장과 방향을 국민께 밝히고 설명드릴 것”이라고 예고했다.
이번 기자회견은 취임 100일이나 1주년, 신년처럼 통상적인 계기에 맞춰 열린 행사가 아니다. 일부 여론조사에서 국정 지지율이 30%대로 내려가고 부동산 정책과 장관 인사를 둘러싼 논란이 이어지는 가운데 마련됐다. 공소 취소와 연임 개헌, 김승원 법무부 장관 후보자 논란과 호르무즈 파병 문제까지 무거운 현안이 쌓여 있다.
그래서 정치권에서는 벌써 ‘국면 전환용 기자회견’이라는 말이 나온다. 시기와 상황을 보면 그런 목적이 전혀 없다고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역대 대통령도 정치적 위기 때 기자회견을 돌파구로 삼았지만 결과는 기대와 달랐다.
이명박 대통령은 2008년 촛불 집회가 확산되자 특별 기자회견에서 고개를 숙였지만 민심을 곧바로 돌리지 못했다. 박근혜 대통령도 2015년 신년 기자회견에서 비선 실세 의혹 등에 답했지만 불통 이미지를 해소하지 못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2005년 긴급 기자간담회를 열어 대연정 구상을 직접 설명했지만 야당은 물론 여당의 공감도 얻지 못해 제안이 동력을 잃었다.
대통령의 대국민 소통이 국민의 마음을 움직인 사례도 있다. 김영삼 대통령은 1993년 특별담화를 통해 금융실명제를 전격 발표하면서 부정부패와 정경유착을 끊겠다는 이유를 분명하게 설명했고, 곧바로 제도를 시행해 국민의 지지를 얻었다. 김대중 대통령도 외환위기 당시 대통령 당선인 시절부터 국민에게 경제 현실과 고통을 숨기지 않고 설명하며 금 모으기와 구조개혁에 동참해달라고 호소했고, 국민의 폭넓은 동참을 끌어냈다.
국민은 대통령의 기자회견을 화려한 표현이 아니라 자세와 답변으로 평가한다. 사과한다고 하면서 잘못을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고, 설명한다고 하면서 불리한 질문을 피해 가면 기자회견은 또 하나의 정치 행사가 된다. 질문을 많이 받는 것보다 한 가지 질문이라도 제대로 답하는 것이 중요하다.
국면 전환은 기자회견을 여는 순간에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국민이 “대통령이 달라졌다”고 느끼는 순간에 시작된다.
이번 기자회견에서 국민이 보고 싶은 것도 화려한 국면 전환술이 아니다. 이 대통령이 본래 가졌던 명쾌함과 솔직함을 다시 보여주는 모습이다. 이 대통령의 정치적 브랜드는 복잡한 문제의 핵심을 단번에 짚고 에둘러 가지 않는 ‘사이다 발언’이었다.
그러나 대통령이 된 뒤에는 신중함과 절제를 앞세우면서 특유의 선명함이 약해졌다는 평가도 나온다. 이번에는 톡 쏘는 말보다 국민의 답답함을 풀어주는 명확한 답이 필요하다.
가장 먼저 분명하게 답해야 할 사안은 연임 개헌 문제다. 헌법 제128조 제2항에 따라 대통령 임기 연장이나 중임 변경을 위한 개헌은 그 개헌을 제안할 당시의 대통령에게 효력이 없다. 그럼에도 이 대통령이 자신의 연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개헌을 추진한다는 의심이 정치권에서 계속 제기되고 있다.
이 대통령은 자신의 임기가 현행 헌법에 따라 제한돼있다는 원론적 설명에 그치지 말고, 개헌이 이뤄지더라도 현 임기를 마치면 물러나겠다는 뜻을 명확하게 밝혀야 한다. 대통령의 문장이 길어질수록 의혹도 길어질 수밖에 없다.
공소 취소 문제도 마찬가지다. 여권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 관련 일부 사건을 정치검찰의 조작 기소로 규정하며 공소 취소를 요구하고, 야당은 대통령을 위한 특혜라고 비판한다. 형사소송법상 공소 취소가 가능한 절차와 각 사건의 재판 단계는 다르지만, 대통령 자신의 재판과 관련된 사안인 만큼 법률 설명만으로 넘어가서는 안 된다.
공소 취소를 원하는지, 정부나 검찰에 어떤 지시도 하지 않을 것인지, 조작 기소 의혹은 어떤 절차로 규명할 것인지 분명하게 답해야 한다.
그렇다고 모든 답을 야당이 요구하는 문장 그대로 말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대통령은 야당의 모범답안을 읽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판단과 국정 철학을 국민에게 설명하는 사람이다. 다만 불편한 질문일수록 “그렇다”와 “아니다”를 먼저 밝히고 그 이유를 설명해야 한다.
전제를 길게 늘어놓다가 결론을 흐리면 아무리 많은 말을 해도 국민에게는 회피로 들린다. 이번 기자회견의 사이다는 공격적인 표현이 아니라 모호하지 않은 결론이어야 한다.
잘못한 일이 있다면 솔직하게 시인하는 것도 필요하다. 잘못을 인정하는 대통령은 약한 대통령이 아니라 책임질 줄 아는 대통령이다. 그러나 야당도 대통령이 잘못을 시인했다고 해서 그것을 중대한 범죄의 자백처럼 부풀리거나 두고두고 공세의 빌미로 삼아서는 안 된다.
정치가 사과한 사람에게 더 가혹하다면 어느 대통령도 진솔하게 잘못을 인정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사과가 책임 정치의 출발이 되려면 여야 모두 사과와 정쟁을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
여당의 자세도 달라져야 한다. 대통령의 답변이 끝나기도 전에 “완벽한 기자회견이었다”고 치켜세우고 모든 비판을 야당의 정치공세로 몰아붙인다면 대통령의 진정성까지 훼손된다. 대통령을 무조건 엄호하는 것이 충성이 아니라 잘못된 정책과 인사를 바로잡도록 돕는 것이 책임 있는 여당의 역할이다.
야당도 답변의 전체 취지는 외면한 채 단어 하나와 말꼬리만 붙잡고 공세를 이어가서는 안 된다. 기자회견이 끝난 뒤 여야가 각자 필요한 한 문장만 떼어 전쟁을 벌인다면 국민에게 남는 것은 또다시 정치적 피로뿐이다.
이 대통령은 이번 기회에 어려운 국정 상황을 있는 그대로 털어놓을 필요도 있다. 경제와 민생, 부동산과 고용, 외교·안보 현안 가운데 대통령 혼자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많지 않다. 잘한 일은 설명하되 부족했던 점은 인정하고, 여야와 국민에게 국정을 함께 풀어가자고 솔직하게 도움을 요청해야 한다.
“정부도 최선을 다하겠지만 정부의 힘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말하는 것은 책임 회피가 아니라 협치를 요청하는 지도자의 용기다. 국민은 모든 답을 가진 대통령보다 어려움을 숨기지 않고 함께 건너자고 손을 내미는 대통령을 더 신뢰할 수 있다.
청와대가 내건 이번 기자회견의 문구는 ‘국민의 뜻, 국민의 삶 더 살피겠습니다’이다. 이 문구가 백드롭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실시간 국민 댓글을 소개하는 형식보다 그 댓글에 담긴 불안과 분노, 의문에 얼마나 정직하게 답하느냐가 중요하다. 대통령과 기자의 좌석을 가깝게 배치하는 것보다 대통령의 생각과 국민의 마음 사이의 거리를 좁혀야 한다.
기자회견장의 물리적 거리가 아니라 답변의 진정성이 국민과 대통령의 거리를 결정한다.
이 대통령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국면 전환을 위한 새로운 구호가 아니라 국민이 기억하는 ‘이재명다운 명확함’의 회복이다. 날카로운 질문에 재치 있게 반격하는 사이다 대통령보다 불편한 사실까지 솔직하게 인정하는 책임 있는 대통령이 돼야 한다.
연임 문제와 공소 취소에 선명하게 답하고, 잘못은 시인하며, 어려운 국정에는 여야와 국민의 협조를 구해야 한다. 여당은 무조건 감싸지 말고 야당은 말꼬리를 잡지 말아야 한다. 대통령의 자세가 달라지면 국면은 그 결과로 전환되는 것이지, 국면부터 바꾸려 하면 국민의 마음은 움직이지 않는다.
18일 기자회견은 이 대통령에게 위기인 동시에 기회다. 준비된 모두발언보다 준비되지 않은 질문에 답하는 모습에서 대통령의 진짜 태도가 드러날 것이다. 국민은 속을 뻥 뚫는 독한 표현이나 야당을 제압하는 장면만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다.
국민이 묻고 싶은 질문을 피하지 않고 답하고, 잘못은 인정하며, 함께 도와달라고 호소하는 대통령을 보고 싶어 한다. 이번에는 기자회견장에서 국민의 답답함을 풀어주는 진짜 ‘사이다 대통령’을 볼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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