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변호사도 속은’ 100억대 투자 사건 기막힌 사기 행각

2026.09.14 14:45:43 호수 1601호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피해자가 날린 건 돈뿐만이 아니었다. 신뢰는 무너졌고 사람도 잃었다. 특히 수십년간 친하게 지내던 지인의 신뢰를 잃은 부분은 뼈아팠다. 하지만 피해자를 괴롭게 한 부분은 따로 있었다. 직업적 특성상 충분히 피할 수 있었음에도 상황에 휩쓸려 나락으로 떨어졌다는 자괴감이 피해자를 사로잡았다. 피해자는 다름 아닌 변호사였다.

사기 사건의 무서운 점은 당한 사람을 극한까지 몰고 간다는 데 있다. 단순히 금전 피해를 본 데서 그치지 않고 자신을 탓하게 되는 굴레에 빠진다. 손해를 입은 당사자임에도 본인 탓을 하는 것이다. ‘왜 그랬을까’ ‘어떻게 속은 걸까’ 같은 생각은 피해자를 갉아먹는다. 정신적 고통을 견디다 못한 사기 피해자 가운데 일부는 자살로 생을 마감하기도 한다.

속 끓이는
피해자들

‘불법 다단계’ 수법으로 피해자만 최소 수십명, 피해액 100억원 이상의 사기를 쳤다는 의혹을 받는 최모씨 사건이 딱 그렇다. 처음에는 사기꾼을 탓했던 피해자들은 최씨를 소개해 준 지인을 탓하다 이내 자신에게로 화살을 돌렸다. <일요시사>가 확인한 바로는 최소 2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쉽게 돈을 벌려는 욕심 때문에 속아 넘어간 게 아니냐는 주변의 비난도 피해자에겐 아픈 지점이다. 그래서 피해자는 주변 사람에게 피해 사실을 말하지 못하고 숨어버리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또 ‘조금만 기다리면 먼저 돈을 챙겨주겠다’는 사기꾼의 감언이설에 넘어가 수사기관 등에 도움을 받을 시기도 놓치곤 한다.

최씨를 만난 피해자들은 모두 ‘가스라이팅’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피해자들 사이에서는 그를 두고 ‘화를 내는 법이 없었다’ ‘말투가 나긋나긋하고 조곤조곤했다’ ‘듣다 보면 정말 돈을 줄 것 같았다’ ‘홀리는 느낌이었다’ 같은 말이 이어졌다. 하지만 이들 가운데 최씨로부터 약속한 돈을 받은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최씨는 세금이나 비자금 등을 언급했다. 세금을 대납해 주거나 기업의 비자금을 관리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수수료를 특정 비율로 나눈다고 한 것이다. 최씨는 단기 대여 방식으로 피해자들의 돈을 긁어모았다. 또 피해자의 카드로 정유 대금을 결제해 이른바 ‘카드깡’을 하는 방식도 사용했다.

최씨의 수법에 당한 피해자는 형사고소 건만으로 따졌을 때 30여명에 이른다. 이 중 한 건은 재판으로 넘어갔고 나머지는 아직 경찰 수사 단계에 머물러 있다. ‘고소하면 돈을 주지 않겠다’ ‘조금만 기다리면 돈이 나온다’ 등 최씨의 협박과 회유를 믿고 기다리는 피해자도 적지 않은 걸로 파악돼 피해자 수와 피해액은 확인된 것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지인의 명품백 문의에 연락
명품 리셀숍 대표 행세했다

눈여겨볼 대목은 피해자 가운데 소위 말하는 ‘사짜 직업’, 즉 전문직도 있다는 점이다. 이들은 최씨의 피해자면서 또 다른 피해자를 유인하기 위한 ‘미끼’로 활용됐다. 한 피해자는 “(최씨가) 의사도, 변호사도 돈을 넣었다고 해서 사기일 것이라곤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최근 <일요시사>는 그 가운데 1명인 A씨와 접촉했다. A씨는 변호사로, 최씨와는 법률 자문 과정에서 안면을 텄다. 독특한 점은 A씨와 그 지인을 상대로 한 최씨의 사기 수법이다. ‘기업/개인 세금 처리 대행’이라고 적힌 명함을 들고 다니며 문서 한 장 없이 ‘입’으로만 사람들을 현혹했던 기존의 방식과는 판이했다.

A씨는 최씨를 명품 리셀숍의 대표로 알았다. 법률 자문을 해줄 당시 이미 명품 리셀숍 대표 행세를 했다는 것이다. 서울 부촌에 자리한 사업장, 홈페이지, 명품관 직원들과의 대화 내용이 담긴 카카오톡 채팅창, 최씨가 입고 두르고 다니는 명품들은 A씨의 눈을 멀게 했다. A씨는 피해 사실을 알기 전까지 최씨를 ‘대표님’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A씨와 최씨가 본격적으로 얽히기 시작한 시기는 2024년 11~12월경으로 확인된다. 법률 자문 이후 다시는 볼 일이 없는 줄 알았던 두 사람은 A씨의 연락으로 재회했다. A씨는 “지인이 에르메스 백을 사고 싶다고 얘기했는데, 그때 최씨가 떠올라 연락하게 됐다”고 말했다. A씨가 최씨의 그물 안에 제 발로 걸어 들어간 셈이다.

어디다가
말도 못해

이어 A씨는 “최씨가 전에는 명품 리셀 사업을 하는 과정에서 사업자 없이 현금으로 거래하면서 수익을 보고 했는데 이제 정식으로 사업자를 내고 하려 한다고 했다”며 “그때 홈페이지도 만들고 서울 한남동 쪽에 사무실을 하나 빌려 ‘프라이빗하게’ 사업장을 운영하겠다고 말했다”고 회상했다.

실제로 최씨가 말한 사무실은 존재했고 홈페이지도 그럴 듯했다. 또 사무실에는 대형 백화점 명품관 출신 직원들도 있었다. 제법 갖춰진 구색에 A씨는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고 한다. 돈은 투자 형태로 들어갔다. A씨가 변호사였기에 법정 이자 이상을 준다거나 요구하는 대신 투자금을 투입하는 방식을 택한 것이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A씨의 돈만 들어간 게 아니라는 점이다. A씨에 따르면 자신의 소개로 최씨를 만난 지인들도 돈을 투자했는데, 그 돈의 액수가 수십억원에 이른다고 한다. A씨가 넣은 돈은 4억원가량인데, 지인들이 엄청나게 큰돈을 최씨에게 준 것이다. 최씨의 또 다른 피해자들은 A씨 등의 피해액을 약 70억원으로 알고 있었다.

A씨는 “사업을 하면서 필요한 부분이 있으면 자문을 맡기겠다. 개인 사업자에서 법인으로 전환하려고 하는데 그때도 법률 자문이 필요하다는 등의 말을 계속했다. 또 자기가 거래하는 고객 가운데 비슷한 사업을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소개해 주겠다고도 했다. 그때를 생각하면 뭐에 홀린 것 같다”고 한탄했다.

A씨는 투자금이 들어가고 두세 달가량 지나고 돈이 제대로 반환되지 않자 그제야 ‘아차’ 싶었다고 털어놨다. 최씨가 세무조사 등을 핑계로 돈을 줘야 할 날짜를 차일피일 미루는 일이 여러 차례 반복되자 뭔가 잘못됐다고 느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내부를 인테리어하고 진열대를 놓는 등 사무실을 꾸미는 모습에 온전히 사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끝까지
이용했다

A씨의 눈을 뜨게 한 건 한 통의 전화였다. 최씨의 피해자 가운데 한 명이 A씨를 수소문해 전화를 건 것이다. 2024년 11월 최씨는 돈을 돌려달라고 요구하는 피해자들을 자신의 집으로 모아 일종의 ‘설명회’를 한 적 있다. 돈을 언제까지 주겠다는 둥, 왜 못 주고 있는지 등에 대해 언급하는 자리였다. 이날 최씨의 집에는 약 10명가량의 피해자가 모인 것으로 확인된다.

이날 최씨는 A씨에게 전화를 걸어 정유 대금 사건 등으로 막힌 ‘카드깡’에 대해 말했다. A씨는 “(최씨가) 정유 대금 사건에서 카드를 대여해줬던 소유자들이 이거를 계속하고 싶어하는데, 하면 안 되냐고 물었다. 그래서 실제 문제가 됐고 범행이니까 같은 방식으로 거래하는 건 당연히 불법이니 하면 안 된다고 조언했다”고 말했다.

A씨의 말은 스피커폰을 통해 최씨의 집에 모인 피해자들에게 전달됐다. 최씨는 A씨의 말을 통해 자신이 돈을 주지 못하는 상황에 대해 합리화를 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면서 이 사건(정유 대금 사건으로 추정)이 마무리되면 그때는 조금씩 해결해 줄 수 있다는 식으로 말했다고 한다. 실제 일부 피해자들은 최씨의 말을 믿은 것으로 알려졌다.

다른 피해자를 통해 사기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A씨는 그 길로 최씨를 추궁했다. 그리고 관련 내역을 보여 달라고 요구했다. A씨는 “당시 연락을 준 피해자에게 들은 말인데 최씨는 명품 리셀숍 사무실에 대해 ‘실제로 하려고 하는 거 아니다’ ‘위장 사업장이다’ 등의 말을 했다고 했다”며 “정말 철저하게 당했다”고 한숨을 쉬었다.

A씨의 추궁에 최씨가 보여준 자료는 가관이었다. A씨는 “임대차 계약서도 확인하고 임대인에게도 물었는데 사무실 보증금도 다 지급하지 않은 상태였다. 월세도 제때 낸 적이 드물다고 했다. 정말 딱 최소한의 외관만 갖추려고 진행했던 것이다. 제대로 공사 당했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덧붙였다.

투자금 명목으로 수십억원
다른 피해자 전화에 ‘아차’

실제 최씨를 믿은 대가는 혹독했다. A씨는 돈은 물론 수십년간 알고 지낸 지인들도 잃었다. 최씨를 소개해 준 부분이 문제로 떠오르면서 지인에게 강한 비난을 받았다고 했다. 또 A씨의 사정을 아는 주변 사람은 그의 직업이 변호사라는 점에 놀라움을 표했다. 피해자들도 마찬가지였다. 그 시선은 A씨를 옥좼다.

A씨는 자괴감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정말 괴롭다. 남은 인생이 이제 거의 파탄 지경에 이르렀다. 하루하루 버티기도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죄책감도 없어 보이는 최씨의 태도에는 분노도 표했다. 그는 “피해자뿐만 아니라 피해자 가족들까지 생존 자체를 어렵게 만든 것 아니냐. 그거에 대한 양심의 가책이랄까, 인간적인 부분이랄까 그런 게 없다”고도 했다. A씨의 말은 다른 피해자들도 입을 모아 하는 내용이었다.

더 큰 문제는 최씨의 사기 행각으로 금전적 손해를 본 피해자들이 원금 회복 등을 위해 최씨를 옹호한다는 데 있다. 최씨는 정유 대금 사건과 피해자의 사기 혐의 형사고소 사건 등에서 위기를 맞은 적이 있다. 하지만 그때마다 최씨를 구한 건 아이러니하게도 피해자들이었다.

당시 사정을 알고 있는 A씨는 “정유 대금 사건에서 최씨는 참고인 신분으로 조사를 받았다. 최씨가 현재 구속된 이모씨와 공범으로 엮이지 않은 건 피해자들이 카드 대금을 받았다고 진술했기 때문으로 알고 있다. 최씨가 경찰 조사 과정에서 피해자들에게 카드 대금을 지급했다고 했는데, 피해자들이 그게 맞다고 인정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A씨에 따르면 그렇게 진술해 준 피해자가 50여명에 이른다.

현재 재판 중인 형사고소 사건에서 구속 갈림길에 선 최씨에 대한 탄원서도 피해자들이 써준 것으로 알려졌다. 한 피해자는 “최씨는 (피해자가) 고소한다고 하거나 문제를 제기할 조짐을 보이면 늘 돈을 언급했다. ‘고소하면 돈 받는 순위가 가장 마지막으로 밀린다’ ‘내가 감옥에 가면 돈을 줄 수 없지 않느냐’ 등의 말을 하곤 했다”고 주장했다.

남 탓하며
요리조리

남 탓도 서슴지 않았다. 최씨는 <일요시사> 보도 이후 한 피해자에게 연락해 ‘팀장님 그냥 저 감옥 가면 되는 건가요? 어찌 상황을 최악으로 몰고 가세요. 제가 어찌 해볼 수도 없게. 함께 좀 정리해요’라는 내용의 문자를 보낸 것으로 확인됐다. 그러면서도 다른 피해자들에게는 문자를 받은 피해자 때문에 돈을 못 주고 있다고 떠들고 다녔다는 것이다.

또 다른 피해자는 “피해자들 사이에서 아주 미친X이 됐다”고 말했다. 해당 피해자는 카카오톡 채팅방 등을 통해 최씨의 문제를 공론화한 인물로, 1년 가까이 그 주변을 파헤쳐 고소를 진행했다. 하지만 그는 “피해자들 가운데 여전히 최씨를 신봉하고 옹호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 사람들 사이에서는 내가 나쁜 사람이 돼있는 상황”이라고 한탄했다.

<jsjang@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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