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2팀] 김유미 기자 = MBC 예능프로그램 <나 혼자 산다>에서 전현무가 무작정 떠나는 방식으로 그려진 카자흐스탄 여행. 실은 카자흐스탄 알마티시 관광청으로부터 지원받은 기획 촬영이었다는 점이 밝혀졌다. 이후 리얼리티를 표방하는 모든 예능에 회의감을 드러내는 시청자가 늘었다. 연예인도 일반인과 별반 다를 바 없다는 데서 위안받고, 그 평범한 일상에 울고 웃으며 공감하던 이들은 방송가가 ‘짜고 친’ 고스톱판에 놀아났다며 허망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지난달 21일 <나 혼자 산다(이하 나혼산)> 661회분에는 전현무가 계획 없이 비행기에 훌쩍 올라타는 카자흐스탄 알마티 여행기가 담겼다. 그가 공항에서 목적지를 즉흥적으로 정하기부터 숙소에서 간신히 체크인하기까지. 준비 없는 실제 상황임이 여실해 보이는 장면으로 꾸려졌다.
무계획 표방
무작위 연출
쉴 틈 없이 바쁜 일정을 소화하다 모처럼 생긴 1박2일 휴일을 맞은 전현무는 배낭 하나만 멘 채 무작정 공항으로 향했다. 비행 일정표가 빼곡한 전광판 앞에 섰던 그는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낯선 곳이라는 이유로 7시간 비행 거리에 있는 카자흐스탄 알마티를 여행지로 선택했다.
아무런 준비 없는 여행에서 누구나 겪을 법한 난제를 헤쳐나가는 우여곡절은 해당 회차 재미에 한몫을 톡톡히 했다. 한 가지씩 임무를 해결하고 아름다운 경관에 가닿는 장면도 감동을 주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방송은 29시간 동안 펼쳐진 이 여행을 누구의 개입도 없는 우연의 연속으로 포장했다. 시청자는 늘 그래왔듯 그 우연을 보며 깔깔 웃거나 감동했다.
문제는 방송 직후 벌어졌다. 전현무는 차치하고라도 제작진 항공권이 사전에 예매돼있었을 것이 뻔한 정황과 복잡한 카자흐스탄 렌터카 이용 절차가 매끄럽게 처리됐다는 점이 누리꾼들 사이에서 의심을 샀다.
유튜브 채널 ‘엠뚜루마뚜루: MBC 공식 종합 채널’에 올라온 해당 회차 <나혼산> 영상에는 “아, 이게 그 관광청은 본인들이 지원해 준 게 맞다고 하는데 제작진은 아니라는 그 방송임?” “전현무는 연예 대상 말고 연기 대상 받겠네” 등 날 선 댓글 반응이 이어졌다.
<나혼산> 제작진이 화제성을 얻기 위해 사전 기획을 즉흥으로 포장했다면, 이는 ‘관찰 예능’이라는 장르를 저버린 기만행위라는 비난까지 나왔다.
의혹이 처음 제기됐을 때로 거슬러 올라가, 지난달 25일 MBC에서 낸 첫 공식 입장은 “이번 카자흐스탄 여행과 관련해 촬영 지원이나 협찬 등을 받은 사실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알마티시 관광청이 자체 홈페이지에 “한국 제작진과 사전 협의해 촬영을 지원했다”고 공식적으로 밝히면서 상황이 뒤집혔다.
1차 입장을 낸 지 엿새 만인 지난달 31일, 제작진은 다시 공식 입장을 냈다. “카자흐스탄 방송분은 알마티시 관광청으로부터 금전적 협찬이나 제작비 지원을 받은 사실이 없다”면서도 “현지 촬영에 필요한 행정적 절차와 현장 진행에 필요한 촬영 협조를 받아 원활하게 진행했다”고 했다. 한 번 더 낸 공식 입장은 오히려 논란을 부추겼다.
지난 4일 <나혼산> 제작진은 세 번째 공식 입장문을 공개했다. “자세한 입장 표명이 늦어진 데 대해 머리 숙여 사과드린다. 리얼리티 프로그램 특성상 세부 제작 과정을 시청자분들께 공유하는 것이 자칫 프로그램의 근간인 현실감을 해치고 몰입을 방해할까 염려하다가 빠른 입장 표명이 이루어지지 못했다”고 해명했다.
즉흥 여행이라더니 제작진 대거 동행
전 부치며 매니저 동원 박나래도 소환
이어 “해당 방송을 위해 제작진은 해외 촬영 가능성에 대비해 항공편과 촬영 여건을 미리 검토했다. 제한된 시간 안에 이동할 수 있는 근거리 국가를 중심으로 여러 가능성을 살펴봤으며, 전현무가 평소 관심을 보여온 여행지와 당시 항공편 상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했을 때 카자흐스탄을 선택할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했다”고 덧붙였다.
또 “카자흐스탄행이 결정되면 곧바로 촬영에 대응할 수 있도록 스태프 항공권을 미리 발권하고 현지에 촬영 협조도 요청해 뒀다. 전현무가 당일 다른 목적지를 선택하거나 카자흐스탄행 항공권을 구하지 못하면 해당 스태프 항공권은 취소하고,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예상치 못한 상황 역시 여행의 한 부분으로 자연스럽게 담아낼 계획이었다”고 했다.
이 지점에서 전현무가 당일 카자흐스탄을 선택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예측하고 비행기 표를 미리 예매, 현지 촬영 협조까지 요청하는 것이 가능한지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이 쏟아졌다.
제작진은 “방송에서 ‘즉흥 여행’이라는 표현을 강조하는 과정에서 여행과 촬영의 모든 과정이 아무런 사전 준비 없이 진행된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점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했다”고도 했지만, 시청자는 오히려 배신감을 표했다.
사태는 일파만파 번져, 지난 6일 한 누리꾼은 온라인 커뮤니티 ‘디시인사이드’에 게시글 형식으로 “국민신문고를 통해 이번 에피소드 민원을 내고, 방송미디어통신심의위원회(방미심위)에 방송심의 보충 의견서를 제출했다”고 밝혔다.
그는 렌터카 대여 시작 시점이 전현무가 탄 비행기가 알마티에 도착하기 전이라는 점을 꼬집었다. 또 차량을 수령할 수 없는 시기에 이미 대여가 이뤄지고 한참 지났다는 점에서 “해당 장면이 실제 예약 절차를 그대로 보여준 것인지, 아니면 방송상 ‘즉흥 여행’ 맥락을 강조하기 위해 별도로 연출, 재구성한 장면인지 합리적 의문이 남는다”고 주장했다.
방미심위는 해당 민원을 접수해 검토한 뒤, 방송심의에 관한 규정 제14조(객관성) 위반 여부에 대한 정식 심의 절차에 착수했다.
처음 부정
이후 번복
이번 논란은 <나혼산> 과거 장면 재검증으로까지 번졌다. 지난해 한 연예 유튜브 채널이 박나래 전 매니저 측 주장을 근거로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나혼산>에서 박나래가 직접 준비한 것처럼 방송된 명절 음식 일부에 매니저들의 상당한 도움이 있었다는 것.
당시에는 단발성 사건 정도로 넘어갔지만, 이번 전현무 사태를 계기로 <나혼산> 진실성을 어디까지 믿을 수 있느냐는 더 근본적인 질문과 함께 재조명됐다.
전문가들은 사전 여행 기획 여부보다 시청자가 프로그램을 보며 우연히 발생한 상황이라고 믿도록 제작진이 의도적으로 설계했는지가 판단 기준이 돼야 한다고 말한다. 즉흥성을 표방하는 콘텐츠에서 즉흥성 자체가 허구였다면, 이는 단순한 연출 문제를 넘어 기만으로 이어진다.
촬영 순서를 조정하고 상황을 유도하고 편집으로 서사를 구성하는 방식은 관찰 예능, 혹은 리얼리티 예능에서 활용해 오던 오랜 문법이다. 이 문법을 벗어나 연출을 실제 상황인 것처럼 조작했다면 법 위반을 검토해야 할 정도에 이르게 된다.
방송심의에 관한 규정 제14조(객관성)는 방송이 사실을 정확하고 객관적인 방법으로 다뤄야 하며, 불명확한 내용을 사실인 것처럼 방송해 시청자를 혼동하게 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는 특정 장르에만 적용되는 규정이 아니므로 리얼리티 프로그램 역시 적용 대상이 될 수 있다. 위반 시 방송법 제100조에 따라 해당 방송프로그램의 정정·수정 또는 중지, 방송 관계자에 대한 징계, 주의·경고 등의 제재를 조치할 수 있으며, 위반 정도에 따라 과징금이 부과될 수도 있다.
‘리얼’과 ‘관찰’을 앞세운 예능이 인기를 끌면서, 유사한 사건은 장르를 바꿔가며 꾸준히 반복됐다. 2013년 SBS <정글의 법칙> 뉴질랜드 편은 사람이 거의 살지 않는 오지에서 출연진이 극한 생존 체험을 하는 것처럼 방송됐다.
이후 촬영 장소가 일반인도 방문하는 관광 코스였다는 사실이 드러나며 진정성 논란이 커졌다. 이에 방미심위 산하 연예오락특별위원회는 실제 여행 상품으로 이용되는 곳을 오지인 것처럼 연출해 시청자에게 혼동을 줄 수 있었다고 보고, 법정 제재인 ‘주의’ 의견을 냈다.
방송은 무죄
기만은 유죄
2019년 방영한 TV조선 <아내의 맛> 함소원·진화 부부 편에서는 중국 시부모의 별장으로 소개된 장소가 실제 숙박 공유 플랫폼 에어비앤비에 등록된 숙소로 보인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제작진은 일부 에피소드에 ‘과장된 연출’이 있었다고 인정했고, 결국 시즌 종료를 결정했다.
SBS <골 때리는 그녀들>은 2021년 경기 득점 순서와 방송에서 제시된 스코어 자막·편집 순서가 달랐다는 점이 SBS 자체 조사에서 확인되면서 조작 논란에 휩싸였다. 이에 책임 PD와 CP가 교체되고 결방을 결정하기에 이르렀다. 4년이 지난 지난해 시즌 역시 편파 판정과 편집 조작 의혹이 다시 불거졌다.
제작진은 어째서 비슷한 실수를 반복할까? 개별 프로그램이 행하는 가벼운 일탈로 보기엔 사례가 여럿이고 패턴이 뚜렷하다. 관찰·리얼리티 예능은 제작비 대비 화제성이 높다. 대본 없는 상황에서 나오는 진짜 리액션은 각본 있는 드라마와는 다른 몰입감을 준다.
그러나 100% 우연에만 의존하면 제작 리스크가 커질 우려가 있다. 원하는 그림이 안 나올 수도 있고, 방송 분량을 채우지 못할 수도 있다. 제작진은 이 장르에서 최소한의 설계와 최대한의 실제 상황을 동시에 추구한다. 그 균형이 무너지면 조작 논란으로 번진다.
관찰 예능은 협찬·PPL과 구조적으로 얽혀 있다. 여행 예능이라면 항공사·호텔·현지 관광청에서 협조받고, 육아 예능이라면 유아용품 브랜드의 협찬을 받는 경우가 흔하다. 이런 상업적 지원이 순수한 일상이라는 프레이밍과 충돌한다.
협찬은 불법이 아니지만, 협찬받았다는 사실을 감춘 채 프로그램 출연자가 자발적으로 선택한 양 포장하는 행위는 광고를 다큐멘터리로 위장하는 셈이 된다.
시청률과 화제성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더 자극적인 에피소드를 찾으려는 압박이 커진다. 온라인 클립·쇼츠 조회 수가 본방송 시청률만큼 중요해진 요즘, 짧은 시간 안에 강한 인상을 남겨야 하는 제작진에게 있어서는 프로그램에 의도를 넣어 설계하고 싶다는 욕구가 커지기 마련이다.
각국 방송 규제 기관은 비교적 명확한 원칙을 두고 있다. 영국 방송·통신을 규제하는 Ofcom은 사실 프로그램이나 사실 사안을 다룬 내용이 시청자를 ‘중대하게(materially)’ 오도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프로그램 맥락 속에서 시청자가 얼마나 오인하게 했는지다. Ofcom은 프로그램 편집 방식, 시청자에게 미칠 영향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한다.
연출 없는 프로그램 제작 불가하지만…
시청자 오도하지 않게 할 규정 필요
BBC 편집 가이드라인 역시 알고 있는 사실을 왜곡하거나, 만들어낸 것을 사실로 제시하거나, 시청자를 의도적으로 오도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두 기준 모두 중요한 사실에 대한 오인 유발 여부에 초점을 맞춘다는 공통점이 있다.
일본 방송윤리·프로그램 향상기구(BPO)는 ‘야라세(사전 각본)’라는 별도 개념을 규정하고 있다. BPO는 “시청자와 무엇을 어디까지 약속하고 있는지가 중요하다”고 강조한 바 있다. 사전에 어느 정도 연출이 예상되는 프로그램인지, 아니면 실제 상황을 보여주는 프로그램으로 받아들여지는지에 따라 시청자의 기대와 판단 기준도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해외 사례를 보면, 규제 기관이 리얼리티 프로그램에 연출이 존재한다는 자체를 문제 삼는 것은 아니다. 프로그램이 시청자에게 어떤 사실성을 약속했는지, 제작진이 연출과 편집에서 기대를 넘어 시청자를 실질적으로 오도했는지가 주요 쟁점이다.
미국에서 일부 리얼리티·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은 재연이나 연출된 장면을 별도로 알린다. 제작자가 법적 책임을 피하고자 엔딩 크레디트나 시작 화면에 “본 프로그램은 연출된 상황이나 편집이 포함돼있습니다”는 고지 문구를 넣는 방식이다. 의무 관행이나 법적 면책 장치로 보기는 어렵지만, 적어도 제작진이 실제 상황과 재연·연출 사이 경계를 알리려는 노력을 기울인다는 면에서 참고할 만하다.
우리나라는 방통위 방송심의 체계와 재연·연출에 관한 규정을 갖추고 있다. 다만 ‘관찰형 예능 제작 시 사전 연출 사실을 시청자에게 어디까지 알릴 것인지’를 구체적으로 정한 규정이 명확하지 않다는 게 방송 관계자 지적이다. 사후 제재는 가능하지만, 시청자의 오인을 사전에 막을 장치가 없다는 것도 맹점이다.
이번 <나혼산> 사태에서 시청자들이 분노한 지점을 조금 더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리얼리티 예능은 시청자에게 ‘함께 지켜본다’는 감각을 판다. 출연자와 같은 시점에서 상황을 경험하고, 예측할 수 없는 전개에 함께 놀라는 것이 이 장르의 핵심 재미다. 그런데 그 놀라움이 처음부터 각본에 있던 것이었다면, 시청자는 ‘속아서 웃었다’는 데 모욕감을 느낀다.
해법은 무엇일까. 완전한 무편집·무연출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고, 시청자들이 이를 원하는 것도 아니다. 가장 현실적인 방안으로 거론되는 것은 해외 사례처럼 연출·편집·협찬 포함 여부를 사전에 알리는 장치를 최소한으로 마련하는 것이다.
협찬 혹은 상황 설계 여부를 밝히는 것만으로도 시청자로부터 얻은 신뢰를 유지할 수 있다. 어디까지가 진짜인지 몰라서 발생하는 사후 배신감을 예방하는 장치다. 장르별·리얼리티 수준별로 세분화한 지침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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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로
전현무는 오는 20일 MBN 신규 예능 <디스이즈 현무로드> 첫 방송을 앞두고 있다. ‘정해진 길은 없지만, 기준은 있다’를 표방한다지만, 진정성 논란은 가시지 않을 듯하다. 리얼리티 예능이 팔고자 하는 ‘진정성’이라는 상품과 실제 제작 방식 사이 차이가 클수록, 그리고 그 틈을 감추려는 시도가 있을수록 신뢰는 무너진다. 시청자는 완벽한 진실을 요구하지 않는다. 다만 자신이 무엇을 보고 있는지를 명확하게 알고 싶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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