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판교에서 개발자가 알고리즘을 짜고, 이천에서는 그것을 돌릴 반도체가 나온다. 같은 시각 안산의 작은 공장에서는 반장이 형광등 아래 부품을 하나씩 들어 눈으로 흠집을 본다. 포천에서는 어르신이 병원 가는 버스를 한참 기다린다. 네 장면이 차로 두어 시간 거리 안에서 벌어진다.
경기연구원이 도민 4700명에게 물었더니 76.1%가 AI는 생활에 도움이 된다고 했다. 그러나 70.6%는 일자리가 줄 것 같다고 했다. 동네에 AI를 배우거나 써볼 곳이 있는지조차 모른다는 응답은 77.5%였다. 좋기는 한데 불안하고, 어디서 배울지도 모른다.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자리다.
그래서 ‘AI 나루’를 제안한다. 다리는 건널 힘이 있는 사람의 길이고, 나루는 아직 건너지 못한 사람을 배에 태워 건네주는 자리다. AI를 아직 못 쓰는 공장과 사람을 먼저 건네주자는 뜻이다.
첫째, 일터에 나루를 놓자. 안산의 반장이 눈으로 하던 검사는 카메라와 AI가 대신할 수 있다. 이런 기술을 요즘 피지컬 AI라고 부른다. 그런데 경기연구원이 스마트공장을 갖춘 도내 제조기업 200곳을 조사해보니, 이 기술을 실제로 쓰는 곳은 여덟곳에 한 곳뿐이었다.
경총 조사에서 전국의 큰 제조기업은 절반 가까이가 이미 쓰고 있었다. 큰 공장은 강을 건넜고, 작은 공장은 강가에 남았다.
작은 공장의 가장 큰 걸림돌은 처음 드는 돈이다. 그러나 요즘은 공장 안에서 혼자 돌아가는 작은 검사 장비도 나와 있다. 인터넷에 연결하지 않아도 되니 보안 걱정도 적다. 큰 공사부터 벌일 일이 아니라 기계 한 대부터 시작하면 된다.
둘째, 동네에 나루를 놓자. 주민이 AI로 먼저 해결하고 싶어 한 일은 보이스피싱을 막는 일, 응급환자를 빨리 옮기는 일, 버스와 지하철을 제때 오게 하는 일이었다. 멋진 기술이 아니라 하루를 지켜주는 일이다. 이 셋은 금융·소방·교통처럼 나라가 맡은 일과 얽혀 있으니, 지자체가 먼저 시험해보고, 그 결과를 들고 제도를 고치자고 요구하면 된다.
서비스를 만들어도 쓸 줄 모르면 소용없다. 배울 곳이 먼 동네에는 체험관을 짓기보다 마을회관으로 찾아가는 편이 빠르다.
셋째, 믿음의 나루를 놓자. 올해 인공지능 기본법이 시행돼 관공서는 위험이 큰 AI를 쓸 때 점검을 거친 것을 먼저 골라야 한다. 관공서가 AI로 내린 결정에 주민이 다시 봐달라고 하면, 며칠 안에 사람이 다시 살펴보는가. 믿음은 여기서 자란다. 시·군에는 아직 점검할 힘이 부족하니 나라가 방법을 마련해줘야 한다.
일자리는 어떤가. 기업의 79%는 새로 뽑기보다 지금 있는 사람을 다시 가르쳐 쓰겠다고 답했다. 밀어내기보다 함께 태우겠다는 뜻이다. 다만 이는 기업의 생각일 뿐, 다시 배운 뒤에도 월급과 자리가 그대로여야 진짜다. 배우는 동안의 월급을 작은 회사가 혼자 댈 수는 없다. 나라에는 훈련받는 동안의 월급을 지원하는 제도가 있다. 이것을 지자체 사업과 처음부터 묶어야 한다.
성과는 AI를 몇 대 붙였는지가 아니라, 불량과 사고가 줄고 일자리가 지켜졌는지로 따져야 한다. AI가 격차를 저절로 좁혀주지는 않는다. 나루도 나라만 놓는 것이 아니다. 주머니 속 AI를 오늘 한번 써보는 일도 배에 오르는 일이다. 판교의 기술이 안산의 작업대와 포천의 하루에 닿는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AI 수도는 시설이 많은 곳이 아니라, 가장 많은 사람을 건너게 한 곳이다.
[배성훈 박사는?]
LX공간정보연구원 AX국토융합그룹장
국가인공지능전략위원회 자문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