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삼기의 시사펀치> 이 대통령, 언제 어떻게 개헌 카드 꺼낼까

2026.09.11 08:00:39 호수 0호

연임 논란 넘어 개헌으로 가는 길

정치권의 개헌 시계가 갑자기 빨라지고 있다. 지난 7일 김민석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현행 헌법과 법률의 절차적 정신을 지키면서 시대의 변화와 국민의 요구를 반영해 현실 가능한 개헌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5·18 민주화운동과 부마민주항쟁 정신의 헌법 전문 수록을 출발점으로 제시하면서 권력구조 개편도 “국민이 원하는 선까지 가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바로 다음 날 정점식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같은 자리에서 “이번 정부에서 개헌은 없다”고 맞받았다. 이재명 대통령이 중임제 개헌을 언급하면서도 “연임하지 않겠다”거나 “재판받겠다”는 말은 하지 않는다며 임기 연장과 재판 지연을 위한 개헌이 아니냐는 의혹까지 제기했다.

성일종 의원을 비롯한 야당 인사들도 개헌 논의에 앞서 이 대통령이 연임하지 않겠다고 선언해야 한다고 압박했다.

정대철 대한민국헌정회장도 개헌론에 힘을 보탰다. 정 회장은 여야 교섭단체 대표연설이 끝난 지난 8일 오후 김민석 대표를 만나 1987년 개헌 이후 8명의 대통령이 개헌을 약속하거나 공약했지만 아무도 성공하지 못했다며 이번 정부에서는 반드시 이뤄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만 여당이 일방적으로 밀어붙여서는 성공할 수 없으므로 야당의 협조를 얻어 여야가 합의하는 범위에서 추진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김 대표의 제안과 정 원내대표의 반발, 정 회장의 촉구가 거의 동시에 나온 것은 정치권의 물밑 흐름이 심상치 않다는 뜻이다. 김 대표가 개헌 논의의 불씨를 댕겼다면 이를 국가적 의제로 끌어올릴 최종 카드는 이 대통령이 쥐고 있다. 대통령이 개헌의 원칙과 내용, 일정과 추진 방식을 국민 앞에 제시하는 순간 본격적인 개헌 정국이 열릴 수 있다.

현직 대통령의 연임 논란에 본격적으로 불을 붙인 것은 조정식 국회의장의 발언이었다. 조 의장은 지난 7월 기자간담회에서 현직 대통령의 연임 문제도 주권자인 국민의 여론과 선택, 정치적 합의에 달려 있다는 취지로 말했다. 야당이 반발하자 의장실은 현직 대통령에게 연임 개헌을 적용할 수 없도록 한 헌법 제128조 제2항을 알고 있으며 원론적인 입장을 밝힌 것이라고 해명했다.

강훈식 대통령비서실장도 현직 대통령의 연임은 헌법 체계상 허용되지 않고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선을 그었지만 정치권의 의심은 가라앉지 않았다. 개헌은 더 이상 정치권이 때마다 꺼냈다가 다시 집어넣는 오래된 구호가 아니다. 현직 대통령의 연임 여부와 권력구조 개편, 다음 선거를 둘러싼 정치적 이해관계가 뒤엉킨 현실의 문제가 됐다.

이 대통령의 태도도 논란을 키웠다. 지난 4일 시민사회단체 관계자들이 개헌의 진정성을 보여주기 위해 연임하지 않겠다고 밝혀달라고 요청하자, 이 대통령은 “도둑질하지 않겠다고 말하라는 것과 같은데 그런 말을 굳이 해야 하느냐”는 취지로 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짧은 한마디면 끝날 일을 계속 돌려 말하니 야당은 의심하고 국민은 속뜻을 궁금해한다. 개헌의 내용보다 대통령의 의도가 더 큰 뉴스가 된 것이다.

지난 8일 홍익표 대통령비서실 정무수석은 유튜브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에서 연임 논란이 커진 데 유감을 나타내면서 이 대통령이 적절한 기회에 국민 앞에서 직접 더 분명하게 의사를 밝힐 것이라고 말했다. 기자회견이나 언론 인터뷰 등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국정 운영에 관한 메시지를 내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고 했다.

홍 수석의 발언 다음 날, 프랑스를 국빈 방문 중인 이 대통령은 파리 현지 동포 간담회에서 임기 초반 해외 순방을 집중적으로 소화하는 이유를 설명하며 “저의 임기는 헌법상 명확하게 제한돼있다”고 밝혔다. 연임 개헌 논란이 불거진 이후 이 대통령이 공개 석상에서 직접 입장을 밝힌 것은 처음이다.

하지만 이날도 “연임하지 않겠다”는 직접적인 표현은 사용하지 않았다.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는 10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이 대통령의 발언을 두고 “결국 ‘연임을 위한 꼼수 개헌은 없다’ ‘연임하지 않겠다’는 말은 하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헌법상 임기가 제한돼있다는 원론적인 설명만으로는 연임 논란을 끝낼 수 없다는 주장이다.

같은 날 성기홍 청와대 홍보소통수석은 MBC라디오에 출연해 ‘대통령의 발언을 연임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이해해도 되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그렇게 해석될 수 있을 것 같다”고 답했다. 청와대가 대통령 발언의 의미를 사실상 ‘연임 불가’ 쪽으로 정리한 셈이다.

하지만 이는 참모의 해석일 뿐 대통령 자신의 선언은 아니다. 이 대통령은 헌법상 임기가 제한돼있다고 우회적으로 밝혔을 뿐, 정치권이 요구하는 직접적인 답변은 하지 않았다.

이 대통령은 왜 그 한마디를 하지 않고 있을까. 야당이 연일 공세를 펴고 국민도 궁금해하는 문제를 왜 계속 열어두는 것일까. 필자는 이 대통령이 개헌 제안의 정치적 효과를 극대화할 시점을 저울질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본다. 아직 개헌이라는 거대한 의제를 전면에 띄워 정국을 ‘개헌 블랙홀’로 끌어들일 때가 아니라는 판단 아래 논란을 진정시키되 완전히 마침표를 찍지는 않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대통령이 머지않아 개헌의 원칙과 내용, 일정과 추진 방식을 담은 공식 카드를 꺼낼 가능성은 높다. 시기는 추석 이후 민심의 흐름이 확인되는 올해 10월 전후일 수도 있고, 새해 국정 구상을 밝히는 내년 연초가 될 수도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의 재판 결과에 따라 내년 4월7일 서울시장 보궐선거가 치러진다면 선거를 한 달가량 앞둔 3월 초가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개헌 논의를 서울시장 보궐선거와 맞물리게 하면 정치적 관심과 국민 참여를 끌어올리고 정국의 주도권도 확보할 수 있다. 그러나 개헌 카드가 선거의 유불리를 바꾸기 위한 수단으로 비치면 그 순간 명분은 흔들린다. 대통령이 언제 카드를 꺼내느냐 못지않게 어떤 명분과 방식으로 국민 앞에 제시하느냐가 중요한 이유다.

한국갤럽의 9월 첫째 주 조사에서 이 대통령의 직무 수행 긍정 평가는 취임 후 최저인 40%, 부정 평가는 최고인 51%를 기록했다. 부동산과 경제·민생에 대한 불만이 커진 가운데 장관 후보자 인사 논란과 사법 문제도 다시 부담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 대통령이 대국민 담화나 기자회견을 통해 개헌 구상을 공식 제안한다면 흩어져 있던 정치 이슈는 단숨에 개헌이라는 거대한 블랙홀 속으로 빨려 들어갈 수 있다.

물론 청와대가 개헌 제안의 시기나 방식을 예고한 적은 없다. 올해 10월과 내년 연초,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앞둔 시점은 최근 발언과 정치 일정, 국정 상황을 종합한 필자의 전망일 뿐이다. 그러나 개헌은 대통령 임기 후반으로 갈수록 차기 대선주자들의 이해관계가 얽혀 추진하기 어려워진다.

역대 대통령들도 임기 중반에는 국정 현안에 밀리고 후반에는 권력 누수로 개헌에 실패했다. 이 대통령의 의지가 강하다면 임기 전반인 지금이 사실상 가장 좋은 시기다.

문제는 개헌을 어떻게 하느냐다. 대통령이 개헌을 지지율 하락과 사법 문제를 덮기 위한 국면 전환용으로 던진다는 인상을 주는 순간 논의는 정쟁의 수렁에 빠진다. 따라서 이 대통령은 현직 대통령의 임기 연장이나 연임을 위한 개헌을 추진하지 않겠다고 국민 앞에 명확히 밝혀야 한다.

헌법 제128조 제2항이 현직 대통령에게 임기 연장이나 중임 변경의 효력이 미치지 않도록 규정하고 있더라도 정치적 의심까지 저절로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대통령의 분명한 선언이 국민의 신뢰를 여는 첫 번째 열쇠다.

대통령이나 여당이 개헌안을 먼저 만들어 야당에 받으라고 해서도 안 된다. 여야가 동등하게 참여하는 국회 개헌협의체를 구성하고 헌법학자와 시민사회, 청년·노동계·경제계·지역 대표가 함께하도록 해야 한다. 위원장은 여야가 공동으로 맡거나 정치적 중립성이 검증된 인사를 세우고 회의 자료와 쟁점별 의견도 공개해야 한다.

개헌의 주도권을 국회와 국민에게 돌려줘야 정권의 개헌이 아닌 대한민국의 개헌이 된다.

개헌의 내용을 정하기 전에 논의의 규칙과 절차부터 합의하는 것도 중요하다. 언제까지 국민 의견을 수렴하고 어떤 기준으로 의제를 선정하며 이견이 큰 쟁점은 어떻게 처리할지 먼저 정해야 한다. 여야가 합의한 사안과 합의하지 못한 사안을 구분하고 공감대가 형성된 부분부터 처리하는 단계적 접근도 필요하다. 모든 쟁점을 하나의 개헌안에 담으려 하면 어느 한 문제 때문에 전체가 무산될 수 있다.

국민에게 찬반을 묻기 전에 충분히 숙의할 기회도 줘야 한다. 권역별 국민토론회와 숙의형 공론조사를 실시하고 청년과 지방 주민처럼 정치권에서 목소리가 제대로 반영되지 못했던 국민의 참여도 보장해야 한다. 그 결과를 국회 논의와 연결하고 각 조항을 왜 바꾸는지도 투명하게 설명해야 한다.

국민투표 직전에 개헌안을 내놓고 찬반 중 하나만 선택하라고 해서는 진정한 국민 개헌이라고 할 수 없다.

개헌 일정을 정치적 유불리에 따라 흔들지 않겠다는 여야 공동선언도 필요하다. 현행 헌법상 개헌안은 대통령 또는 국회 재적 의원 과반수의 발의와 20일 이상의 공고를 거쳐 국회 재적 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을 얻어야 한다.

이후 30일 이내 국민투표에서 선거권자 과반수의 투표와 투표자 과반수의 찬성을 받아야 확정된다. 어느 한쪽이 밀어붙이거나 다른 한쪽이 무조건 거부해서는 넘을 수 없는 문턱이다. 정쟁 중단과 정치 복원을 위한 최소한의 신사협정부터 맺어야 한다.

무엇보다 제6공화국 출범 이후 한 번도 성공하지 못한 개헌의 전 과정을 큰 혼란 없이 관리할 준비가 필요하다. 대통령 권한과 임기, 국회와 정부의 관계, 선거제도와 지방분권 등 주요 쟁점이 한꺼번에 분출하면 국정 전체가 멈춰 설 수 있다.

개헌 논의 중에도 민생과 경제, 외교와 안보가 흔들리지 않도록 국정 운영 원칙을 세우고 새 헌법의 시행 시점과 경과 규정도 명확히 제시해야 한다. 개헌에 성공하는 것만큼 그 과정에서 나라가 흔들리지 않도록 관리하는 능력도 중요하다.

이 대통령이 공식적인 개헌 카드를 꺼내면 정국은 크게 출렁일 것이다. 지지율 하락과 인사 논란, 사법 문제를 덮기 위한 국면 전환이라는 비판도 피하기 어렵다. 그러나 대통령이 자신의 이해관계를 내려놓고 여야와 국민에게 주도권을 넘긴다면 개헌 블랙홀은 국정을 삼키는 위험이 아니라 낡은 정치의 틀을 바꾸는 에너지가 될 수 있다.

이제 개헌 카드를 정국 전환을 위한 정치적 수단으로 소모할 것인지, 제6공화국의 한계를 넘어서는 역사적 기회로 만들 것인지는 이 대통령의 선택에 달려 있다. 중요한 것은 언제 개헌 카드를 꺼내느냐보다 어떤 방식으로 개헌의 문을 여느냐다.

<skkim596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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