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의 말에는 이상한 힘이 있다. 같은 상황에서도 자신이 어느 자리에 있느냐에 따라 원칙이 달라진다. 야당일 때는 “철저한 검증”을 외치다가 여당이 되면 정쟁을 걱정하고, 권력을 감시할 때는 증인을 요구하다가 권력을 지켜야 할 때는 “증인 없는 청문회도 많다”고 말하기도 한다.
최근 서영교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의 발언이 딱 그렇다. 김승원 법무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증인 채택을 두고 여야 간 이견이 나오자 서 위원장은 “인사청문회에서 증인을 채택한 적도 별로 없고, 증인 없이 가는 것이 보통의 인사청문회”라는 취지의 말을 했다. 후보자 청문회에서는 “후보자가 증인이 되는 것”이라는 설명도 함께 내놨다.
문제는 이 말이 단순한 절차 설명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인사청문회법은 증인·감정인·참고인의 출석을 명시적으로 규정하고 있으며, 위원회가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출석을 요구할 수 있도록 제도화돼있다. 즉 증인은 청문회의 장식품이 아니라 국회가 후보자를 검증하기 위해 사용할 수 있도록 법이 마련해 놓은 장치다.
물론 증인이 반드시 있어야 청문회가 성립하는 것은 아니므로, 서 위원장의 말이 법적으로 틀렸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정치적 문제는 여전히 남아있다. ‘증인이 필수가 아니다’와 ‘증인 없는 것이 보통이다’는 전혀 다른 명제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법사위원장의 역할은 증인 없는 청문회를 정당화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증인이 필요하고 어떤 증인이 필요하지 않은지를 객관적으로 판단하는 것이다.
그런데 “원래 증인 없는 청문회가 보통”이라고 말해버리면 질문 자체가 사라진다. 오히려 “왜 이 증인을 부르지 않는가” “무슨 이유로 증인의 진술이 필요 없다는 것인가” “이미 어떤 자료를 통해 사실관계가 확인됐는가”라고 따져물었어야 했다.
정치권에서 가장 불신을 받는 것이 무엇인가. 바로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식의 이중잣대다. 야당일 때는 작은 의혹 하나에도 “국민이 알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여당이 된 뒤에는 같은 의혹을 두고 정치 공세라고 치부한다면 국민은 원칙이 바뀐 것 아닌지 묻게 된다.
특히 인사청문회에서는 이중잣대가 더욱 치명적이다.
인사청문회는 여당의 행사가 아니며, 대통령이 지명한 후보자를 국회가 검증하는 절차다. 여당 의원에게도 야당 의원과 똑같은 검증 의무가 주어진다. 오히려 여당이 더 조심해야 한다. 후보자를 지명한 권력이 행정부에 있고, 여당은 그 행정부와 정치적으로 연결돼있기 때문이다.
그런 만큼 여당 법사위원장에게 필요한 것은 후보자를 방어하는 논리가 아니라 후보자에게 제기된 의혹까지도 공정하게 검증하겠다는 입장을 내놨어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증인 없는 것이 보통”이라는 발언은 그 반대의 인상을 강하게 준다.
후보자에게 질문할 기회는 충분히 주겠지만 제3자의 증언까지 들어볼 필요는 없다는 식으로 읽힐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국민 입장에서는 ‘청문회의 목적이 후보자에게 해명할 기회를 주는 것인가, 아니면 후보자의 해명이 사실인지 확인하는 것인가’라는 의문이 생긴다. 증인이 불출석할 경우 청문회는 사실상 후보자의 자기소개 시간에 불과하다.
서 위원장은 “후보자가 증인이 되는 것”이라는 취지의 설명도 내놨지만 후보자의 답변만 듣는 것으로 검증이 완성되지 않는다. 후보자가 어떤 사건에 대해 “나는 그런 사실이 없다”고 답했다고 하자. 이 경우 ▲그 사건의 다른 관계자가 존재한다면 국회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후보자의 말만 믿고 끝내야 하는가, 아니면 그 관계자를 불러 사실관계를 확인해야 하는가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재판에서 피고인의 진술만 듣고 판결하지 않는 것과 비슷한 이유다. 물론 인사청문회는 재판이 아니지만, 사실관계를 교차 검증해야 한다는 기본 원리는 같다. 후보자가 증인이라는 이유로 제3자의 증언이 필요 없다는 논리는 결국 “검증 대상자의 말을 검증 수단으로 삼겠다”는 자기모순에 빠진다.
여기서 서 위원장의 발언이 갖는 가장 큰 정치적 문제가 드러난다. 정치인은 흔히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말을 정치적 정당성의 근거처럼 사용한다. 그러나 국회의원의 책임은 법을 지키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고 국민에게 설명하고 설득해야 한다.
“증인을 부르지 않아도 법적으로 청문회가 가능하다”는 서 위원장은 “왜 이번에는 증인이 필요 없다고 판단했는가”를 먼저 설명했어야 했다. 또 그의 발언에서 가장 눈여겨봐야 할 단어는 ‘증인’이 아니라 ‘보통’이다. “증인 없는 것이 보통”이라고 전제할 경우 소환 자체를 예외적인 것으로 만들어버린다. 오히려 증인을 요구하는 쪽이 오히려 과도한 요구를 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인사청문회의 본질은 보통이냐 아니냐가 아닌, 필요하냐 아니냐다. 어떤 의혹이 제기됐고, 그 의혹의 사실관계를 확인하는 데 특정인의 증언이 필요하다면 부르는 것으로 그것이야말로 국회의 역할이며 인사청문회의 가장 큰 본질이다.
과거에 증인을 많이 부르지 않았다는 이유로 앞으로도 부르지 않아야 한다면 국회 인사청문회는 존재할 이유가 없다.
“증인 출석이 후보자에게 반드시 불리한 것인가”라는 더 근본적인 질문도 있다. 후보자에 대한 의혹이 사실이 아니라면 증인을 불러 사실관계를 확인하는 것이 오히려 후보자에게 유리하다. 후보자가 결백하다면 증인의 진술을 통해 의혹을 해소하면 된다.
반대로 증인 출석을 막고 후보자에게만 답변할 기회를 준다면 의혹은 오히려 부각될 수밖에 없다. 국민이 가장 의심하는 순간은 의혹 자체가 아니라 의혹을 확인할 기회가 차단될 때다. 후보자를 보호하고 싶다면 오히려 철저하게 검증하는 것이 맞다. 모든 의혹을 공개적으로 털어내는 것이 가장 확실한 방어이기 때문이다.
더 큰 문제는 서 위원장이 더불어민주당 의원인 동시에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이라는 점인데, 정당의 구성원으로서 후보자를 옹호할 수는 있다. 그러나 상임위원장으로서 청문회를 진행할 때는 후보자 검증을 방해해서는 안 된다. 법사위원장은 특정 후보자의 변호인이 아니며 여당의 방패도 아니며 돼서도 안 된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이번 ‘인사청문회 보통’ 발언은 더욱 아쉽다.
서 위원장이 정말 청문회의 공정성을 강조하고 싶다면 증인 없는 청문회를 ‘보통’이라고 설명할 것이 아니라, 민주당이 야당이었을 때 인사청문회에서 어떤 기준을 요구했는지부터 돌아볼 필요가 있다. 그때 “철저한 검증”을 주장했다면 지금도 같은 주장을 하면 된다. 당시 증인과 참고인의 필요성을 강조했다면 지금도 똑같이 하면 된다.
이번 논란의 본질은 증인 단순히 한두명의 출석 여부가 아니다. 정권이 바뀌고 공수 위치가 바뀔 때마다 검증의 원칙도 함께 바뀌는 정치권의 오래된 이중잣대다. 야당일 때는 청문회가 검증의 장이고, 여당일 때는 정쟁의 장인가. 야당 후보자에게는 증인이 필요하고, 여당 후보자에게는 후보자 답변만으로 충분한가.
서 위원장은 “원칙이 바뀐 것인가, 아니면 자리가 바뀐 것인가”라는 질문에 답해야 한다. 증인 없는 청문회가 정말 보통이라면 자랑할 일도 아니다. 어쩌면 국회의 검증 기능이 그만큼 약해졌다는 고백일 수 있기 때문이다.
국민이 원하는 것은 여당이 편한 청문회도, 야당이 공격하기 좋은 청문회도 아니다. 여당 후보자에게도 야당 후보자에게도 똑같은 잣대를 들이대는 청문회다. 그리고 그 원칙을 지키는 첫걸음은 간단하다. 증인이 필요하면 부르고, 필요 없으면 보통이라는 말 뒤에 숨지 말고 그 이유를 설명하는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법사위원장이 보여줘야 할 최소한의 정치적 책임이자 의무가 아닐까?
<kangjoomo@ilyosisa.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