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삼기의 시사펀치> 추석 장바구니에 들어온 패권전쟁

2026.09.14 07:50:38 호수 1601호

올해도 추석이 다가오면서 온라인 유통시장이 명절 대목을 잡기 위한 경쟁으로 뜨겁다. 과일·한우·건강식품부터 생활용품과 여행상품까지 할인전이 쏟아지고, 소비자들은 백화점이나 대형마트보다 먼저 휴대전화 쇼핑앱을 연다. 명절 선물을 고르고 주문하며 배송 상황을 확인하는 모든 과정이 이제 이커머스 안에서 이뤄진다.

그런데 우리가 무심코 여는 쇼핑 앱의 국적을 보면 묘한 풍경이 펼쳐진다. 쿠팡의 모회사는 미국 법인이고, 초저가를 앞세운 알리익스프레스와 테무는 중국 기업이다. 세계 정치에서 미국과 중국 사이에 놓인 대한민국의 처지가 이커머스에서도 재현되고 있다.

틈바구니
생존 고민

한국 소비자가 만든 거대한 시장에서 미국과 중국 플랫폼이 주도권을 다투고, 한국 기업들은 그 틈바구니에서 생존을 고민하고 있다.

추석 대목 장악한 온라인 장바구니= 과거에는 추석을 앞두고 재래시장과 백화점, 대형마트가 명절 경기를 보여주는 현장이었다. 지금은 새벽 배송과 당일 배송, 예약 배송을 앞세운 온라인 플랫폼이 추석 소비를 주도한다. 부모님 댁으로 보낼 선물도, 차례상에 올릴 과일과 고기도 매장을 방문하지 않고 주문한다. 명절 소비의 출발점이 매장 진열대에서 스마트폰 화면으로 바뀐 것이다.  

플랫폼들은 명절 특수를 잡기 위해 할인 쿠폰과 카드 혜택, 무료 배송, 적립금을 한꺼번에 내놓는다. 소비자는 여러 앱을 오가며 가격과 배송일을 비교하지만 결국 가장 익숙하고 빨리 도착하는 플랫폼을 선택한다. 이커머스 경쟁에서 가격만큼 배송과 신뢰, 멤버십이 중요해진 이유다. 한번 형성된 소비 습관은 좀처럼 다른 플랫폼으로 이동하지 않는다.

추석 장바구니는 단순히 물건을 담는 공간이 아니다. 소비자가 무엇을 검색하고 누구에게 무엇을 보내며 어느 가격대의 상품을 선택하는지가 데이터로 남는다. 플랫폼은 이를 이용해 다음 상품을 추천하고 광고와 결제, 배송까지 연결한다. 명절 대목의 진짜 자산은 판매액만이 아니라 수천만 소비자의 구매 데이터인 셈이다.

법적으로 미국 기업인 쿠팡= 쿠팡은 한국에서 창업했고 사업과 고용, 물류의 대부분이 한국에서 이뤄진다. 그러나 한국 사업을 지배하는 모회사 쿠팡Inc는 미국 델라웨어주에 설립된 법인으로 뉴욕증권거래소에 상장돼 있다. 법인과 자본시장 기준으로 보면 미국 기업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한국에서 성장해 미국 자본시장을 선택한 기업이라는 이중적 성격도 함께 봐야 한다.

쿠팡의 힘은 단순히 상품을 싸게 파는 데 있지 않다. 전국 물류센터와 로켓배송, 새벽배송, 간편한 반품에 쿠팡이츠와 쿠팡플레이까지 와우 멤버십으로 묶었다. 소비자는 쇼핑앱 하나에 가입했지만 배송과 음식 배달, 영상 서비스까지 이용하게 된다. 쿠팡이 쇼핑몰을 넘어 일상생활의 기반으로 자리 잡은 이유다.

2026년 5월 쿠팡 앱의 월간 활성 이용자는 약 3369만명으로 국내 종합몰 가운데 압도적 1위다. 수조원의 적자를 감수하면서 구축한 물류망은 이제 후발기업이 단기간에 따라가기 어려운 진입장벽이 됐다. 쿠팡을 대체할 플랫폼이 없다는 인식이 생긴 배경이다. 한국 소비자의 일상적 쇼핑에 미국 법인이 막강한 영향력을 갖는 구조가 만들어진 것이다.

중국서 밀려오는 알리와 테무= 중국은 알리익스프레스와 테무를 앞세워 한국 이커머스 시장을 파고들고 있다. 처음에는 몇천원짜리 생활용품과 의류·전자부품을 판매하는 해외직구 플랫폼으로 여겨졌다. 배송이 느리고 품질을 믿기 어렵다는 평가도 많았다.

그러나 파격적인 가격과 쿠폰 공세를 앞세워 짧은 기간에 수백만명의 이용자를 확보했다.

2026년 5월 와이즈앱·리테일 기준 테무의 월간 활성 이용자는 약 906만명, 알리익스프레스는 약 841만명에 달했다. 쿠팡과는 아직 격차가 크지만 국내 중견 종합몰을 위협하는 규모로 성장했다. 특히 테무는 초저가 상품과 게임형 이벤트, 반복적인 쿠폰 지급으로 이용자의 재방문을 끌어내고 있다. 중국 플랫폼을 일시적인 유행으로만 볼 수 없는 이유다.

국내 유통망
협력 강화

더 주목해야 할 것은 이들이 더 이상 중국 상품만 한국에 보내지 않는다는 점이다. 테무는 한국 판매자가 국내 재고를 국내 소비자에게 배송하는 ‘로컬 투 로컬’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알리도 한국 상품 판매와 국내 유통망과의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중국 플랫폼이 해외직구의 문을 넘어 한국 오픈마켓 안으로 들어오고 있는 것이다.

조용해진 알리의 1조5000억원= 알리바바는 2024년 한국에 3년간 약 1조5000억원을 투자하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그중 약 2630억원을 들여 축구장 25개 크기인 18만㎡ 규모의 통합물류센터를 구축하고, 한국 판매자의 해외 진출과 소비자 보호, 가품 차단에도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당시 국내 유통업계에서는 ‘알리의 공습’이라는 말이 나올 만큼 긴장감이 컸다.

그러나 당시 계획했던 대규모 자체 물류센터가 완공돼 본격 가동되고 있다는 소식은 아직 뚜렷하지 않다. 투자 계획이 어느 정도 집행됐는지도 외부에서는 전체적으로 확인하기 어렵다. 겉으로 보면 알리의 기세가 한풀 꺾이고 투자 계획도 흐려진 것처럼 보인다. 1~2년 전의 소란과 비교하면 요즘 알리가 조용해졌다는 인상을 주는 이유다.

알리가 한국 시장에서 물러났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직접 물류센터를 짓는 정면 승부보다 국내 유통망과 판매자를 활용하는 전략에 무게를 싣고 있기 때문이다. 거액의 시설 투자보다 한국 기업과 손잡고 기존 기반을 활용하는 편이 빠르고 위험도 적다. 조용해진 것이 아니라 공격 방식이 바뀐 것으로 볼 수 있다.

신세계와 알리바바의 불편한 동거= 신세계그룹과 알리바바그룹은 각각 50%씩 참여하는 합작구조를 만들었고, 그 아래 G마켓과 알리익스프레스코리아가 놓였다. 두 플랫폼은 독립적으로 운영하면서 판매자와 해외 유통망 등에서 협력할 수 있는 구조다. 국내 대표 오픈마켓이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 자본과 한 지붕 아래 놓인 것이다.

신세계는 2021년 약 3조4000억원을 들여 이베이코리아를 인수하며 쿠팡과 맞서겠다는 구상을 내놓았다. 그러나 인수와 함께 신세계 품에 들어온 G마켓은 기대만큼 반등하지 못했고, 신세계가 자체적으로 키운 SSG닷컴 역시 수익성 개선이라는 과제를 안고 있다.

결국 신세계는 두 온라인 플랫폼만으로 쿠팡을 추격하기 어렵다고 판단해 알리바바와 손잡는 길을 선택했다. 한국 유통 대기업이 처한 현실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다.

미국 쿠팡과 중국 알리·테무 사이
한국 이커머스는? 묘한 풍경 펼쳐져

한국 판매자가 알리바바의 세계 유통망을 통해 해외로 진출할 수 있다는 것은 분명한 기회다. 하지만 국내 판매자와 소비자의 데이터, 거래 주도권이 어느 쪽으로 이동할지는 별개의 문제다. 처음에는 대등한 합작으로 출발하더라도 자본과 기술, 글로벌 네트워크를 가진 쪽으로 힘이 기울 수 있다. 협력의 문이 종속의 통로가 되지 않도록 살펴야 한다.

네이버·카카오는 한국의 방어선 될 수 있나= 국내 기업 가운데 쿠팡과 중국 플랫폼에 맞설 가장 유력한 주자는 네이버다. 네이버는 검색과 광고, 쇼핑, 결제, 콘텐츠를 연결하고 수많은 스마트스토어 판매자를 확보하고 있다. 실제로 2025년 3월 주요 오픈마켓·종합몰의 순 결제 추정 금액에서 쿠팡은 37.7%, 네이버·네이버페이는 34.0%를 차지해 양강 구도를 형성했다.

물류를 직접 장악한 쿠팡과 검색·결제·콘텐츠를 쇼핑으로 연결하는 네이버가 서로 다른 방식으로 경쟁하고 있는 것이다.

네이버의 약점은 판매자마다 배송 속도와 서비스 수준이 달라 쿠팡처럼 일관된 배송·반품 경험을 제공하기 어렵다는 데 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네이버는 CJ대한통운 등 물류 기업과 협력하고, 2026년 컬리에 330억원을 추가 투자해 지분을 6.2%로 확대했다.

네이버플러스스토어에 장보기 전문관 ‘컬리N마트’를 열고, 컬리의 물류 자회사 컬리넥스트마일이 스마트스토어와 브랜드스토어 상품의 샛별배송까지 맡도록 했다. 네이버의 검색·결제·판매자 기반에 전문 물류 회사의 배송 경쟁력을 결합한다면 미중 플랫폼에 맞설 여지는 충분하다.

카카오도 빼놓을 수 없다. 카카오는 쿠팡처럼 거대한 물류망을 갖추거나 네이버처럼 가격 검색과 오픈마켓을 장악하지는 못했지만, 국민 메신저인 카카오톡을 기반으로 선물하기와 톡딜, 카카오페이를 연결하고 있다. 특히 명절에는 주소를 몰라도 마음과 상품을 함께 보낼 수 있는 ‘선물하기’가 강력한 유통망이 된다.

2026년 1분기 카카오의 선물하기·톡딜 등 커머스 통합 거래액은 2조9000억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10% 증가했다. 쿠팡이 배송을, 네이버가 검색을 장악했다면 카카오는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소비로 연결하는 독자적인 경쟁력을 갖고 있다. 추석 장바구니만 놓고 보면 카카오는 국내 플랫폼 가운데 가장 한국적인 방식으로 성장한 이커머스라고 할 수 있다.

구조조정에 몰린 토종 쇼핑몰= 11번가와 SSG닷컴, 롯데온은 한때 한국 이커머스를 대표하는 플랫폼이었다. SK와 신세계, 롯데라는 대기업을 등에 업고 있어 쿠팡과 충분히 경쟁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됐다. 그러나 쿠팡이 장기간 적자를 감수하며 물류망을 확장하는 동안 이들은 뚜렷한 차별화를 만들지 못했다. 이제는 성장보다 적자를 줄이고 버티는 것이 중요한 과제가 됐다.

배송 경쟁력
네이버 약점

2026년 1분기 11번가는 약 79억원, SSG닷컴은 219억원, 롯데온은 약 58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11번가와 롯데온은 적자 폭을 줄였지만 매출도 감소했고, SSG닷컴은 매출 감소와 함께 적자가 확대됐다. 비용을 줄여 손실을 방어할 수는 있어도 이용자와 거래액까지 줄어든다면 시장 영향력은 약해질 수밖에 없다.

앞으로는 각자의 강점을 더 선명하게 만들어야 한다. 롯데온은 뷰티와 명품, SSG닷컴은 신선식품과 이마트 상품, 11번가는 오픈마켓과 해외직구 등 경쟁력이 있는 분야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모든 상품을 다 파는 종합몰로 쿠팡과 정면 승부하는 시대는 사실상 끝나가고 있다. 한국 플랫폼의 수는 많지만 시장을 움직이는 힘은 분산돼있다.

미중 패권경쟁의 축소판= 국제사회에서 미국은 반도체와 인공지능, 금융과 동맹을 앞세워 중국을 견제하고 있다. 중국은 거대한 생산력과 가격 경쟁력, 자본을 바탕으로 세계시장에 영향력을 넓히고 있다. 한국은 안보에서는 미국과 동맹을 맺고 있으면서 무역에서는 중국과 깊게 연결돼있다. 어느 한쪽만 선택하기 어려운 대한민국의 고민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국내 이커머스에서도 비슷한 구도가 만들어졌다. 미국 법인 쿠팡은 자본시장과 첨단 물류를 바탕으로 한국 소비자의 일상에 깊숙이 들어왔고, 중국의 알리와 테무는 초저가 상품과 거대한 공급망을 무기로 밀려오고 있다. 미국은 편리함과 물류로, 중국은 가격과 물량으로 한국 시장을 공략한다.

그 사이에서 한국 플랫폼들은 동맹을 맺거나 사업을 재편하며 생존을 모색하고 있다.

미중 패권경쟁에서 반도체와 배터리만 중요한 것이 아니다. 온라인 플랫폼은 결제와 물류, 광고와 인공지능, 소비자 데이터를 연결하는 핵심 산업이다. 어느 플랫폼이 시장을 장악하느냐에 따라 국내 제조업체와 중소상공인의 판매 조건까지 달라진다. 이커머스는 상품을 사고파는 시장인 동시에 디지털 시대의 경제 영토다.

소비 데이터가 새로운 주권이다= 한국 상품이 많이 팔린다고 반드시 한국 유통산업이 강해지는 것은 아니다. 상품은 한국 중소기업이 만들지만 판매와 결제, 광고, 배송의 통행료를 외국 플랫폼이 가져갈 수 있다. 플랫폼이 검색 노출과 수수료 정책을 바꾸면 판매자는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생산은 한국이 하고 시장의 규칙과 데이터는 외국 플랫폼이 갖는 구조를 경계해야 한다.

우리는 편리함과 싼 가격을 얻는 동안 누가 소비 정보를 축적하고 어떻게 활용하는지에는 상대적으로 무관심했다. 개인정보 보호를 넘어 경제안보의 관점에서도 소비 데이터를 바라볼 필요가 있다. 데이터 주권은 거창한 구호가 아니다. 매일 휴대전화로 여는 장바구니에서 시작된다.

외국기업도 같은 책임을 져야 한다= 외국 플랫폼을 막는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쿠팡의 빠른 배송과 알리·테무의 낮은 가격은 국내 기업의 혁신을 자극하고 소비자 선택의 폭을 넓히는 측면이 있다. 경쟁 자체를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다만 한국에서 같은 사업을 한다면 국적과 관계없이 같은 법과 같은 책임을 적용해야 한다.

위해 상품과 가품이 발견되면 즉시 판매를 중단하고 회수할 수 있어야 한다. 판매자 신원과 개인정보 관리, 교환과 환불, 세금과 관세에서도 국내 기업과 해외 기업 사이에 빈틈이 없어야 한다. 해외 본사를 이유로 조사와 피해구제가 늦어진다면 공정한 경쟁이라고 할 수 없다. 싼 가격 뒤의 안전 비용을 한국 소비자와 사회가 대신 부담해서는 안 된다.

동시에 정부가 국내 플랫폼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경쟁력이 없는 기업을 무조건 지원해서도 안 된다. 필요한 것은 특혜가 아니라 국내외 기업이 같은 조건에서 경쟁하는 운동장과 장기 투자를 가능하게 하는 제도다. 물류·결제·인공지능·데이터를 하나의 디지털 유통산업으로 보고 경쟁력을 키우는 국가 전략이 필요하다.

한국 이커머스의 길을 다시 묻다= 국내 플랫폼과 유통 기업들은 더 이상 각자도생해서는 안 된다. 네이버의 검색·AI·결제, 카카오의 메신저·선물하기, 컬리와 오아시스의 신선식품, 물류기업의 배송망, 신세계와 롯데의 오프라인 점포를 연결해 한국형 이커머스 생태계를 만들어야 한다.

K뷰티와 K푸드, 패션과 콘텐츠가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지금, 한국 상품을 국내 플랫폼과 결제·물류망을 통해 세계 소비자에게 직접 연결해야 한다. 내수시장을 지키는 방어전과 세계시장으로 나가는 공격전을 동시에 준비해야 한다.

한국형
생태계

올해 추석에도 우리는 쿠팡에서 선물을 주문하고 알리와 테무에서 값싼 생활용품을 찾으며 네이버에서 가격을 비교하고 카카오톡으로 마음을 전할 것이다. 소비자의 선택을 탓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 편리한 장바구니 안에서 미국과 중국이 시장과 데이터를 차지하고 한국 기업이 설 자리를 잃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봐야 한다.

미중 패권경쟁의 틈바구니에서 대한민국이 지켜야 할 것은 상품 몇 개의 매출이 아니라 디지털 유통의 주권이다.

<skkim596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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