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2팀] 김해웅 기자 = 고려아연을 둘러싼 경영권 분쟁이 장기화하면서 오는 9일 열리는 임시주주총회가 또 하나의 중요한 분기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번 주총에서 국민공모 절차를 거쳐 감사위원이 되는 독립이사 후보가 선출되기 때문이다.
관심의 초점은 후보자의 경력이나 추천 배경을 넘어 과연 누가 경영진과 대주주를 제대로 감시할 것인가에 맞춰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국민공모를 통해 감사위원 후보로 추천된 박유경 후보가 고려아연 소액주주들의 공개 질의에 비교적 구체적인 답변을 내놨던 반면, 함께 후보로 추천된 백인규 후보는 7일까지 별도의 답변이나 입장을 내놓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두 후보에게 던져진 질문은 단순한 인물 검증이 아니었다. 원아시아파트너스 투자부터 이그니오홀딩스 인수, 자사주 공개매수, 해외 계열사 순환출자 등 고려아연을 둘러싸고 그동안 제기된 각종 의혹과 규제기관 조사, 주주가치 훼손 논란에 대해 감사위원으로서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를 묻는 것이었다.
결국 이번 임시주총은 감사위원 한 명을 추가로 선임하는 자리를 넘어 고려아연 이사회가 앞으로 어떤 방식으로 경영진을 견제할 것인지 가늠하는 시험대가 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고려아연 소액주주들은 지난달 20일 박유경 후보와 백인규 후보에게 공개 질의서를 전달했다. 질의의 핵심은 현재 고려아연에서 벌어지고 있는 각종 사법·규제기관 조사와 주주가치 훼손 논란에 대해 감사위원 후보들이 어떤 시각을 갖고 있는지, 선임될 경우 실제 어떤 조치를 취할 것인지를 묻는 것이었다.
박 후보는 같은 달 30일, 공식 답변서를 보내왔다.
박 후보가 진단한 고려아연의 현 상황은 상당히 심각했다. 최대주주와 제2대 주주, 경영진 사이의 지배권 분쟁이 계속되는 가운데 각종 사법·규제기관의 조사와 제재, 주주가치 훼손 논란, 경영 불확실성이 동시에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눈에 띄는 대목은 현재의 위기를 단순히 경영진의 문제로만 보지 않았다는 점이다.
박 후보는 고려아연의 상황이 경영진의 불합리한 의사결정뿐 아니라 이사회의 견제와 감시 기능이 충분히 작동하지 못한 결과라는 취지의 입장을 밝혔다. 기업에서 이사회가 존재하는 이유는 경영진의 결정을 추인하는 데 있지 않다.
경영진의 판단이 회사와 전체 주주의 이익에 부합하는지를 검증하고, 필요하다면 제동을 거는 것이 이사회의 핵심 기능이다.
지배권을 둘러싼 대주주 간 충돌이 벌어지는 상황에서는 이사회의 독립성이 더욱 중요해진다. 어느 한쪽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것이 아니라 회사와 전체 주주의 이익을 기준으로 판단해야 하기 때문이다.
박 후보는 감사위원으로 선임될 경우 상당히 적극적인 감사 활동에 나서겠다는 뜻도 밝혔다. 그는 첫 감사위원회 회의에서 고려아연의 주요 현안을 크게 두 개의 축으로 나눠 특별조사 또는 특별검증을 제안하겠다고도 했다.
첫 번째 축은 국세청, 공정거래위원회, 증권선물위원회, 금융위원회, 검찰 등 사법·규제기관의 제재가 확정됐거나 조사가 진행되고 있는 사안이다. 구체적으로는 ▲원아시아파트너스 투자 관련 문제 ▲아크미디어 관련 사안 ▲이그니오홀딩스 인수 관련 의혹 ▲회계기준 위반 문제 등이 거론됐다.
두 번째 축은 주주가치와 국민주주의 이익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 자본·투자 관련 사안이다. 여기에는 ▲자사주 공개매수와 자본 변경 과정 ▲해외 계열사 순환출자 및 의결권 제한 문제 ▲상호주 문제 등이 포함됐다.
이 같은 입장은 현재 고려아연을 둘러싼 논란을 단순한 경영권 분쟁의 연장선으로 바라보기보다는, 회사의 의사결정 과정 자체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는 판단으로 읽힌다.
박 후보가 공개질의 답변에서 가장 선명하게 밝힌 부분은 감사위원의 역할에 관한 인식이다. 그는 감사위원의 주된 역할과 의무가 경영진을 방어하는 데 있지 않다는 취지의 입장을 분명히 했다. 회사와 경영진, 대주주와 주요 주주의 이해관계가 언제나 일치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경영진을 보호하기 위한 의사결정이 회사와 전체 주주의 이익에 부합하는지를 사전에 살펴야 하고, 문제가 드러났다면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묻는 것이 감사위원회의 책무라는 것이다. 특히 박 후보는 기존 감사위원회가 주요 현안을 단순히 ‘모니터링’하는 데 그치는 것에 대해서도 문제의식을 드러냈다.
9일 고려아연 임시주총, ‘독립이사’ 진짜 역할 시험대
박유경 “고려아연 위기는 이사회의 견제 실패기도…”
‘누구 편인가’보다 ‘무엇을 할 것인가’
각종 사법·규제기관의 조사와 자본·투자 관련 논란이 이미 현실화된 상황이라면 단순한 모니터링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주장이다.
박 후보는 감사위원회가 영업보고 요구 및 조사권, 자회사 조사권, 이사회·주주총회 통제권, 전문가 조력권 등 법적으로 부여된 권한을 적극적으로 행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감사위원이 독립성을 갖는다는 것은 단순히 경영진과 다른 의견을 낼 수 있다는 의미가 아니다. 필요할 경우 회사 내부를 들여다보고, 자료를 요구하고, 전문가를 동원하고, 잘못된 의사결정에 책임을 묻는 것까지 감수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박 후보는 잘못된 의사결정과 집행이 확인될 경우 책임의 대상을 특정 세력이나 일부 경영진으로 한정하지 않았다. 실제로 ▲경영진 등 의사결정 주체 ▲실제 집행을 담당한 임원 ▲이를 승인한 이사회 구성원 ▲감사위원회 구성원까지 각자의 권한과 역할에 상응하는 책임을 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다만 책임의 범위와 방식은 특정 세력의 이해관계가 아니라 전체 주주의 권익과 회사의 중장기적 이익을 기준으로 판단해야 하며, 확인된 사실과 법적 절차에 따라 결정돼야 한다고 선을 그었다.
이는 감사위원의 역할을 ‘누군가를 처벌하는 것’으로 규정하기보다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의사결정 과정과 책임 소재를 객관적으로 검증하는 것에 두고 있다는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다.
박 후보는 선임 이후의 활동 시한도 제시했다. 늦어도 2027년 3월 정기주주총회 전까지 현재 제기된 법적·규제적 문제와 주주이익 침해 사안에 대해 이사회와 감사위원회가 합당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결과 역시 정기주총을 통해 주주들에게 명확하게 보고해야 한다고 밝혔다.
물론 박 후보가 선임된다고 해서 곧바로 구체적인 조사 일정과 범위가 확정되는 것은 아니다. 현재는 외부인 신분인 만큼 기존 감사위원회가 어떤 업무를 어떤 방식으로 처리해 왔는지 정확하게 파악하기 어렵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그럼에도 2027년 3월 정기주총을 하나의 중요한 시한으로 제시한 것은 의미가 있다. 감사위원으로서 무엇을 조사했고, 무엇을 밝혀냈으며, 어떤 조치를 요구했는지를 주주들에게 보고하겠다는 일종의 활동 기준을 제시한 셈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또 다른 감사위원 후보인 백인규 후보의 대응이다. 고려아연 소액주주들에 따르면 백 후보는 박 후보와 동일한 공개 질의를 전달받았지만 7일 현재까지 별도의 답신이나 입장을 보내오지 않고 있다. 물론 후보자가 공개 질의에 반드시 답변해야 할 법적 의무가 있는 것은 아니다. 또 답변 여부만으로 후보자의 감사위원으로서의 자질을 단정할 수도 없다.
그러나 이번 선거가 일반적인 사외이사 선임과는 성격이 다르다는 점은 짚어볼 필요가 있다. 고려아연은 현재 최대주주와 제2대 주주 간 지배권 분쟁이 계속되고 있고, 각종 투자와 자본거래를 둘러싼 논란도 이어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독립이사이자 감사위원 후보라면 주주들이 제기하는 핵심적인 의문에 대해 자신의 원칙과 판단 기준을 밝히는 것 자체가 독립성의 중요한 시험대가 될 수 있다. 소액주주들이 백 후보에게도 공개적으로 입장을 밝혀달라고 요구하는 이유다.
고려아연 소액주주들은 박 후보의 답변에 대해 ▲원아시아파트너스와 이그니오홀딩스 등 현재 논란이 되는 사안을 감사위원회 차원에서 직접 검증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점 ▲감사위원의 역할이 경영진 보호가 아니라 전체 주주의 이익을 지키는 데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한 점을 높게 평가했다.
다만 소액주주들도 박 후보의 약속이 실제 행동으로 이어지는지를 지켜보겠다는 입장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답변서가 아니라 선임 이후 실제로 어떤 자료를 요구하고, 어떤 사안을 조사하며, 누구에게 책임을 묻느냐다. 이번 임시주총에서 소액주주들이 후보자를 평가하는 기준도 여기에 맞춰질 가능성이 높다.
추천 주체가 누구인지, 어떤 경력을 가졌는지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질문은 ▲경영진과 대주주의 결정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했을 때 실제로 제동을 걸 수 있는지 ▲회사의 손해가 확인됐을 때 책임을 묻겠다는 원칙을 끝까지 지킬 수 있는지 ▲무엇보다 주주 전체의 이익을 기준으로 독립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느냐다.
고려아연 임시주총은 바로 이 질문에 대한 주주들의 판단이 내려지는 자리가 될 전망이다. 고려아연의 경영권 분쟁은 이미 주주들 사이의 진영 대결을 넘어 이사회와 감사위원회의 역할 자체를 묻는 단계로 접어들었다.
이번 주총에서 선출되는 독립이사가 단순히 이사회 의석 하나를 채우는 인물이 될지, 아니면 경영진과 대주주를 실질적으로 견제하는 ‘감시자’가 될지는 결국 선임 이후의 행동으로 판가름 나게 될 전망이다. 또 단순한 한 명의 감사위원을 뽑는 일이 아닌, 고려아연의 이사회가 누구를 위해 존재해야 하는지를 다시 묻는 선택이 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heawoong@ilyosisa.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