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초등학교 사회 시간에 외웠던 ‘지역 특산물 지도’를 다시 펴야 할지도 모르겠다. ‘대구 사과’ ‘동해 오징어’처럼 지역 이름만 들어도 떠오르는 음식이 있었다. 하지만 기후변화 앞에서는 오랜 지역 특산물도 영원하지 않았다. 추위를 좋아하는 사과는 더 서늘한 북쪽을 찾아 올라가고, 망고는 한반도에 새 주소를 얻었으며, 따뜻해진 동해에는 새로운 물고기들이 자리 잡았다. 뜨거워진 땅과 바다를 따라 식재료는 고향을 떠나기 위해 하나둘 짐을 싸기 시작했다. 기후 위기는 어느새 우리 밥상 앞까지 와 있었다.
한때 대구는 ‘사과의 고장’으로 불렸다. 그러나 최근 사과 재배지는 점차 북쪽으로 이동하고 있다. 농촌진흥청(이하 농진청)에 따르면 대구·경북의 사과 재배면적은 1993년 3만6021ha에서 2023년 2만151ha로 44% 감소한 반면, 같은 기간 강원은 483ha에서 1679ha로 247% 증가했다.
강원 지역의 변화는 더욱 뚜렷하다. 사과 재배면적은 2005년 144ha에서 2024년 1748ha로 12배 이상 늘었다. 과거 영남에 집중됐던 사과 생산 기반이 점차 강원 등 북부 지역으로 넓어지고 있는 셈이다.
달라진 먹거리
사과는 생육기에 비교적 서늘한 기후를 필요로 하는 작물이다. 기온이 오를수록 착색 불량이나 고온 피해 등 재배 여건이 불리해질 수 있다. 농진청의 기후변화 시나리오에서도 국내 사과 재배 적지는 앞으로 지속적으로 북상할 것으로 전망됐다.
반대로 따뜻해진 기후를 발판 삼아 국내 재배가 늘어나는 작물도 있다. 대표적인 것이 망고다. 몇 년 전만 해도 망고는 ‘수입 과일’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그러나 이제는 국내산 망고가 낯설지 않다. 지난해 국내 망고 재배면적은 138ha, 재배 농가는 401곳까지 늘었다.
망고와 파파야 등 아열대 과일 전체 재배면적도 2017년 109.5ha에서 2022년 188.8ha로 1.7배 확대됐다. 과거 제주 등 일부 따뜻한 지역에 머물렀던 아열대 작물은 점차 재배 영역을 넓히고 있다. 농진청은 기후변화로 국내 재배 가능지역이 확대되는 점을 주요 배경으로 보고 있다.
현재 제주·거제·남해 등에 제한된 올리브 재배 적지도 장기적으로는 서산·상주·강릉 등 중부 지역까지 넓어질 것으로 전망됐다. 기온을 피해 새로운 산지를 찾아갈 수 있는 작물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이미 높은 곳에서 재배되는 작물은 이야기가 다르다.
한국인의 밥상에서 빠지기 어려운 김치도 기후변화를 피하기는 어렵다. 특히 한여름 배추는 서늘한 고랭지에서 주로 생산된다. 문제는 기온이 오를수록 배추가 더 높은 곳을 찾아 올라가야 하지만, 산의 높이는 정해져 있다는 점이다.
농진청이 기후변화 시나리오를 토대로 재배 가능 지역을 분석한 결과, 여름 배추는 2050년대부터 재배 적지가 크게 줄어 2090년대에는 남한에서 재배 가능한 지역이 사라질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전망됐다. 이미 이상기상과 병해충 증가 등으로 기존 고랭지의 안정적인 생산 여건도 흔들리고 있다.
이에 농진청은 ‘더위를 식히는’ 방법을 시험하고 있다. 올해 해발 400~600m 준고랭지에서 여름 배추를 재배하면서 30℃가 되면 작동하는 미세 살수 장치와 토양 온도를 4~6℃ 낮추는 저온성 필름 등을 적용하고 있다.
‘대구 사과’서 ‘강원 사과’로…북상하는 과수원
고랭지 배추, 더 오를 산이 없다…산지 한계 임박
지난해 강원과 전북 5개 지역, 26개 농가에서 시작한 시범사업을 올해도 이어가는 중이다. 기후에 맞춰 산지를 옮기는 데 한계가 생기자 이제는 재배지의 온도 자체를 낮춰 작물을 지키는 시도가 시작된 것이다.
바다에서는 잡히는 생선의 얼굴이 바뀌고 있다. 과거 오징어와 명태가 떠오르던 동해에서 최근 방어·전갱이·삼치 같은 따뜻한 물을 좋아하는 어종의 존재감이 커지고 있다.
국립수산과학원이 강원 고성·양양과 경북 울진의 정치망 어획물을 20년간 분석한 결과, 최근 5년(2020~2024년) 난류성 어종 비율은 고성 53%, 양양 64%, 울진 90%까지 높아졌다. 특히 동해 최북단인 고성에서는 방어가 전체 어획 개체의 21.6%를 차지했다.
방어가 살기 적합한 수온이 형성되는 기간도 과거 5~10월에서 최근 5~12월로 길어졌고, 회유 범위 역시 경북에서 강원 고성까지 확대된 것으로 분석됐다.
지난 3월 강원 고성 연안에서는 어린 참다랑어가 처음 확인되기도 했다. 울릉도·독도 주변에서 발견된 참다랑어 알도 2021년 16개에서 2024년 111개, 2025년 250개로 늘었다. 따뜻한 바다를 따라 난류성 어종의 활동 범위가 동해 북부까지 넓어지고 있는 것이다.
반면 살오징어는 사라지고 있다. 살오징어는 우리나라 동해를 대표해 온 주요 연근해 어종 가운데 하나다. 오랫동안 동해안 어업과 지역 먹거리의 상징처럼 여겨졌지만, 2010년대 이후 어획량은 장기적인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방어·참다랑어 등 난류성 어종들 증가
K푸드 김도 뜨거워진 바다에 생산 재편
바다에서 직접 길러내는 수산물도 변화한 환경에 맞춰 품종과 장소를 바꾸기 시작했다. 바다가 뜨거워지자 양식장에서는 ‘무엇을 키울지’부터 다시 고민하기 시작했다. 여름철 높은 수온을 견디기 어려운 어종을 계속 기르는 대신 더위에 비교적 강한 어종으로 바꾸거나, 아예 양식장을 수온이 낮은 곳으로 옮기는 방식이다.
해양수산부는 올해부터 ‘기후변화 대응 시범양식 지원사업’을 시작했다. 고수온에 비교적 강한 참조기와 벤자리, 바리과 어류 등으로 양식 품종을 바꾸는 어가를 지원하고, 멍게나 우럭처럼 고수온에 취약한 품종은 여름철 수온이 상대적으로 낮은 외해 등으로 양식장을 이전할 수 있도록 했다.
기존에는 수온이 오르면 액화산소를 공급하거나 사육밀도를 낮추는 방식으로 고수온을 버티는 데 집중했다면, 이제는 기후에 맞춰 키우는 품종과 장소 자체를 바꾸는 단계까지 나아간 셈이다.
최근 세계적인 인기를 끌며 ‘K푸드’의 대표 주자로 떠오른 김도 기후변화의 영향을 피하지 못하고 있다. 김은 수온과 영양염 등 바다 환경의 영향을 크게 받는 품목인 만큼, 고수온이 반복되면서 안정적으로 생산할 수 있는 해역을 확보하는 일이 중요해졌다.
해양수산부는 기후변화에 따른 물김 산지 변동에 대비해 2026년산 김 양식 면적을 인천·경기 등 접경·도서 지역을 중심으로 626ha 추가 개발했다.
기존 양식장을 적정 지역으로 재배치하고 우량 종자 보급을 확대하는 방안도 함께 추진하고 있다. 단순히 양식 면적을 늘리는 데 그치지 않고 달라진 바다 환경에 맞춰 생산 기반 자체를 분산하려는 것이다.
앞서 정부는 2024년에도 2700ha 규모의 신규 김 양식장 개발에 나선 바 있다. 당시에도 고수온으로 김 양식 시기가 늦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면서 생산 기반을 넓히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이제 김 생산지도 역시 과거의 산지를 그대로 유지하기보다 수온과 해역 여건에 따라 새롭게 조정되는 단계에 들어선 셈이다.
특산물은 옛말
기후변화에 가장 먼저 반응한 것은 밥상 뒤편의 생산 현장이다. 농민은 더 서늘한 땅을 찾아 작물을 옮기고, 어민은 달라진 바다에 맞춰 잡고 기르는 어종을 바꾸고 있다. 마트와 식탁에서 마주하는 음식은 여전히 익숙해 보인다. 그러나 그 음식이 어디에서,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는 이미 달라지고 있다.
지금의 기후 변화가 계속된다면 ‘대구 사과’나 ‘동해 오징어’처럼 당연하게 여겨온 우리의 먹거리도 머지않아 옛말이 될지 모른다.
<imsharp@ilyosisa.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