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한쪽에서는 폭우가 쏟아지고 다른 쪽에서는 비가 오지 않는다. 여름은 길어지고 밤은 식지 않으며, 산은 타고 바다는 뜨거워졌다. 해마다 반복되는 폭염과 폭우, 가뭄과 산불은 단순한 날씨의 변덕일까. 숫자가 보여주는 대한민국 기후 위기의 현주소를 들여다봤다.
최근 대한민국의 날씨는 한 가지 모습으로 설명하기 어려워졌다. 한쪽에서는 짧은 시간 강한 비가 쏟아지는가 하면 다른 지역에서는 비가 내리지 않아 가뭄이 이어진다. 기상청은 지난 7월 기후 특성을 분석하면서 ‘지역 양극화’가 뚜렷했다고 평가했다.
언제부터 이상?
이번 여름도 이 같은 이상기후 현상이 뚜렷하게 나타났다. 중부지방을 중심으로 많은 비가 내리는 동안 남부지방에서는 폭염과 가뭄이 이어지는 등 같은 시기 한반도 안에서 정반대의 기상현상이 동시에 발생했다.
과거와 달라진 점은 이 같은 현상이 나타나는 시기와 강도, 지속 기간과 지역별 편차다. 장기간 축적된 관측 자료에서도 기온과 강수, 해수온을 비롯한 여러 기후 지표가 과거와 다른 흐름을 보이고 있다.
대한민국의 기후는 실제로 얼마나 달라졌을까? 가장 먼저 눈에 띄는 변화는 매년 여름 체감하게 되는 ‘더위’다. 올해 한반도의 더위는 일찍부터 모습을 드러냈다. 기상청에 따르면 2026년 봄철 전국 평균기온은 13.3℃로 1973년 이후 두 번째로 높았다.
특히 5월에는 전국 평균 폭염일수가 0.5일을 기록해 역대 두 번째로 많았다. 여름이 시작되기 전부터 일부 지역에서 한여름에 가까운 고온이 나타난 셈이다.
본격적인 여름으로 접어들자 밤에도 더위가 쉽게 가시지 않았다. 지난 7월 전국 평균기온은 26.8℃로 평년보다 2.2℃ 높아 역대 3위를 기록했다. 낮 기온보다 눈에 띈 것은 밤 기온이었다. 평균 최저기온은 23.4℃로 관측 이래 가장 높았고, 전국 평균 열대야일수는 9.7일로 평년 2.8일의 3.5배에 달하며 7월 기준 역대 최다를 기록했다.
충주·전주·여수·밀양 등 전국 17개 지점에서는 해당 지점 관측 이래 가장 많은 열대야가 나타났다.
기상청이 1973~2025년 관측 자료를 분석한 결과 여름철 전국 평균기온은 10년마다 0.28℃씩 상승했고, 폭염일수와 열대야일수도 각각 10년당 1.8일, 1.6일씩 늘었다. 1973~1982년 연평균 8.3일이었던 폭염일수는 2016~2025년 18.3일로 2배 이상 늘었고, 열대야는 4.1일에서 12.2일로 약 3배 증가했다.
더위가 나타나는 시기도 빨라지고 있다. 과거 10년과 최근 10년을 비교하면 전국 대부분 지역에서 폭염 시작 시점이 10~30일가량 앞당겨졌다.
과거 주로 7월부터 시작했던 폭염이 최근에는 6월부터 나타나는 지역이 늘었고, 남해안과 제주에서는 9월 초까지 열대야가 이어지는 모습도 관측됐다. 단순히 기온만 높아진 것이 아니라 더위가 시작되는 시기는 빨라지고, 머무는 기간은 길어지고 있는 것이다.
중부엔 물 폭탄, 남부엔 가뭄 동시 발생
기후 양극화 현상…뒤틀린 한반도 공기
더위뿐 아니라 비가 내리는 방식도 달라지고 있다. 지난 8월15~18일 경남 거제와 통영에는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졌다. 나흘간 거제에는 956.1㎜, 통영에는 766.9㎜의 비가 내렸고, 거제에서는 시간당 최대 124.5㎜를 기록했다.
기상관측 이래 최대 강수량으로, 주택과 도로가 침수되고 산사태가 발생하면서 거제시와 통영 일부 지역은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됐다.
기상청의 ‘우리나라 113년 기후변화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1912~2024년 연 강수일수는 10년마다 0.68일씩 감소한 반면 연강수량은 17.83㎜씩 증가했다. 비가 오는 날은 줄었지만 한번 내릴 때의 강도는 세진 셈이다. 같은 기간 호우일수와 시간당 50㎜ 이상 강수가 나타난 날도 증가하는 추세를 보였다.
최근의 호우는 비의 총량이 늘어나는 것보다 짧은 시간 특정 지역에 강한 비가 집중되는 방향으로 나타나고 있다. 문제는 강수의 편차도 함께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한쪽에서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지는 동안 다른 지역에서는 정반대로 비가 부족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지난 7월 경남지역 강수량은 68.0㎜로 평년 304.7㎜의 21.9%에 불과했다. 1973년 이후 가장 적은 7월 강수량이다.
같은 달 중부지방에는 정체전선의 영향으로 많은 비가 내린 반면, 경남은 북태평양고기압의 영향권에 들면서 맑은 날씨가 이어졌다. 기상청은 이를 두고 중부의 호우와 남부의 폭염·가뭄이 동시에 나타난 ‘지역 양극화’가 뚜렷했다고 분석했다.
지난해 강원 영동은 108년 만의 극심한 가뭄을 겪었다. 여름철 강수량은 232.5㎜로 평년의 34.2% 수준에 그쳤고, 강릉 오봉저수지 저수율은 준공 이후 최저 수준인 11.5%까지 떨어지면서 단계적 제한 급수가 시행됐다. 지난해에는 강원 영동, 올해는 남부지방에서 심한 강수 부족이 나타난 셈이다.
고온 건조한 날씨는 산불이 대형화하기 쉬운 환경을 만들기도 한다. 지난해 3월에는 영남권을 중심으로 대형 산불이 발생하기도 했다. 당시 전국에서 5건의 대형 산불이 동시에 발생해 산림 10만5084ha가 피해를 입었다. 역대 최대 규모였다.
기상청에 따르면 이 기간 전국 평균기온은 14.2℃로 역대 가장 높았고, 경북지역 상대습도는 평년보다 약 15%p 낮았다. 여기에 강한 서풍까지 겹치면서 산불이 확산되기 쉬운 조건이 형성됐다.
과거보다 10~30일 빨라진 폭염
주변 바다 수온 1.60℃ 상승
과거 대형 산불과 비교해도 규모 차이는 뚜렷하다. 2000년 동해안 산불 피해 면적은 2만3794ha, 2022년 울진·삼척 산불은 1만6302ha였다. 2025년 피해 면적은 이보다 각각 약 4.4배, 6.4배 컸다. 산림청도 최근 산불이 특정 계절에만 집중되지 않고 여름과 겨울에도 발생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산불 자체의 발화 원인을 기후변화로 단정할 수는 없지만, 고온·건조·강풍이 겹치는 기상 조건은 산불이 발생했을 때 빠르게 번지고 대형화할 위험을 높인다. 육지에서 나타나는 이런 변화와 함께 바다의 온도 역시 장기적으로 뚜렷한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육지뿐 아니라 바다도 빠르게 뜨거워지고 있다. 국립수산과학원에 따르면 1968년부터 2025년까지 한반도 주변 해역의 표층 수온은 1.60℃ 상승했다. 같은 기간 전 지구 평균 상승폭 0.76℃의 두 배를 넘는 수준이다.
특히 최근 10년간은 장기 평균보다 수온 상승 속도가 더 빨라진 것으로 분석됐다. 2026년 상반기 우리나라 해역의 평균 표층 수온은 관측 이래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고, 여름철에는 서해와 남해, 제주 연안 등을 중심으로 고수온 특보가 내려졌다.
국립수산과학원은 우리나라 주변 해역의 수온 상승이 계절별·해역별로 다르게 나타나고 있으며, 장기적으로는 해양 환경 자체가 과거와 달라지고 있다고 보고 있다.
기후 위기를 더 이상 ‘유난스러운 날씨’ 정도로 치부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매년 여름이면 폭염을 걱정하고, 장마철이면 기록적인 폭우 소식이 이어진다. 이제는 ‘역대급’, ‘관측 이래 최고’라는 표현조차 낯설지 않다. 기후 위기를 경고하는 목소리가 나온 지도 오래다.
매년 역대급
문제는 반복되는 경고에 오히려 우리가 무뎌지고 있다는 점이다. 분명한 것은 이상기후가 갈수록 더 극단적인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어쩌면 우리는 이미 생각보다 훨씬 심각한 기후 상황 한가운데에 서 있는지도 모른다.
더 경계해야 할 것은 기후 위기뿐만이 아니라, 계속되는 경고를 그저 매년 되풀이되는 날씨쯤으로 받아들이는 우리의 ‘안전불감증’이다.
<imsharp@ilyosisa.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