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기후 위기는 더 이상 날씨만의 문제가 아니다. 산불이 휩쓸고 간 자리에는 잿더미만, 폭우가 지나간 자리에는 침수 흔적만 남는 게 아니다. 불이 꺼지고 물이 빠진 뒤에는 어김없이 ‘청구서’가 날아온다. 그 규모는 수천억원에서 많게는 수조원에 이른다. 여기에 재난을 막기 위한 예방비까지 더해지면서 ‘영수증’은 갈수록 두꺼워지고 있다.
재난이 지나간 뒤에는 피해 현장만큼이나 복잡한 계산이 시작된다. 무엇이 얼마나 망가졌는지 피해액을 산정하고, 도로와 하천·주택 등 무너진 시설을 다시 복구하는 데 필요한 예산을 짠다. 이 과정에서 실제 피해 규모보다 복구에 들어가는 돈이 더 커지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배보다 배꼽
지난해 발생한 대형 재난은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지난해 3월 경북·경남·울산을 덮친 대형 산불의 피해액은 1조818억원으로 집계됐다. 이후 정부가 확정한 복구비는 1조8809억원으로 피해액보다 약 8000억원 많았다. 주택과 농·임업시설 등 사유시설 복구뿐 아니라 산림 복원과 공공시설 정비 등에 막대한 재원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지난 7월 집중호우가 남긴 계산서는 더 길었다. 7월16일부터 20일까지 발생한 호우 피해액은 1조848억원으로 최근 10년간 가장 큰 규모를 기록했다. 그러나 복구에 투입하기로 한 비용은 피해액의 두 배를 훌쩍 넘는 2조7235억원이었다.
이 가운데 공공시설 복구비만 2조4538억원에 달했다. 복구비가 피해액보다 커지는 데는 이유가 있다. 무너진 시설을 이전 모습으로 되돌리는 데 그치지 않고, 하천 폭을 넓히거나 제방을 보강하는 등 다음 재난에 대비한 ‘개선 복구’까지 함께 이뤄지기 때문이다.
지난해 7월 호우 복구비 가운데 개선 복구에 배정된 금액만 1조1018억원이었다.
복구 비용은 결국 정부 예산과 보험을 통해 다시 나뉜다. 특히 농어업처럼 기후 영향을 직접 받는 분야에서는 재해가 발생할 때마다 보험금과 지원금 규모도 커지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2024년 호우·폭염·가뭄 등으로 피해를 입은 농업인 24만5146명에게 지급된 농작물재해보험금은 총 1조271억원에 달했다. 전년도인 2023년에도 농작물과 가축 피해 농가 20만8000곳에 1조1749억원의 보험금이 지급됐다. 자연재해에 대응하기 위해 해마다 1조원 안팎의 보험금이 움직이고 있는 셈이다.
산불·폭우 한 번에 피해액만 1조대까지 ‘훌쩍’
피해액보다 더 큰 복구비…‘재건’에 또 수조원
바다에서도 상황은 비슷하다. 2024년 고수온으로 양식업 피해가 이어지자 해양수산부는 피해 어가에 재난지원금을 여러 차례 지급했다. 9월과 11월 217억원을 지원한 데 이어 203억원을 추가로 투입했고, 같은 해 말까지 양식수산물 재해보험에서도 고수온 피해 보상금 213억원이 지급됐다.
기후재난의 비용은 피해가 발생한 뒤에만 생기는 것이 아니다. 폭염이 오기 전 무더위쉼터를 운영하고, 가뭄에 대비해 물을 확보하며, 바다가 뜨거워지기 전에 양식장에 산소 공급 장치를 설치하는 데도 적지 않은 돈이 들어간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올해 폭염과 가뭄 대응에 지원된 재난안전관리특별교부세는 총 607억5000만원이다. 폭염 대책비 300억원과 가뭄 대책비 57억5000만원에 이어 지난 8월 250억원이 추가 투입됐다. 이 예산은 용수 확보와 살수차 운영, 폭염 취약계층 예찰 활동 등에 사용된다.
뜨거워진 바다에도 사전 비용이 투입되고 있다. 해양수산부는 2026년 액화산소 공급 장치 등 고수온 대응 장비 예산을 전년 58억원에서 76억원으로 31% 늘렸다. 이후 고수온이 이어지자 18억원을 추가로 투입해 대응 장비를 확충했다.
실시간 수온 관측망도 지난해 200곳에서 올해 210곳으로 확대했다. 재난이 닥친 뒤 복구에 돈을 쓰는 것과 별개로, 피해를 줄이기 위한 비용도 해마다 발생하고 있는 셈이다.
기후 위기의 비용은 결국 각 가정에 청구서로 돌아온다. 바로 장바구니 물가다. 폭염이나 이상기온으로 농산물 생산량이 줄어들면 그 영향은 소비자까지 번질 수밖에 없다.
한국은행의 ‘기후변화가 국내 인플레이션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에 따르면 월평균기온이 일시적으로 1℃ 상승할 경우 농산물가격 상승률은 최대 0.4~0.5%p, 전체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0.07%p 높아지는 것으로 분석됐다.
기온 1℃ 상승이 1년간 지속된다고 가정하면 1년 뒤 농산물가격 수준은 약 2%, 전체 소비자물가는 0.7% 높아지는 것으로 추정됐다.
기후 대응 미루면 2050년 GDP 1.8%↓
2100년엔 21%↓…커지는 미래 빚잔치
문제는 이 같은 영향이 일시적인 물가 변동에 그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이다. 한국은행은 기후변화의 영향으로 2040년까지 농산물가격이 0.6~1.1%, 전체 소비자물가가 0.3~0.6% 추가 상승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국제 식량과 원자재 가격 상승까지 더해질 경우 물가에 미치는 영향은 더욱 커질 수 있다. 그렇다면 이미 피할 수 없는 기후비용을 줄일 방법은 없을까.
기후 위기가 심해진다고 해서 피해액까지 매년 같은 방향으로 커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어디에, 언제 돈을 쓰느냐에 따라 비용은 크게 달라질 수 있다. 고수온 피해가 대표적이다.
해양수산부에 따르면 2024년 고수온은 71일간 이어지며 전국 양식장에 1430억원의 피해를 남겼다. 이듬해인 2025년에는 고수온이 역대 최장인 85일간 지속됐지만 피해액은 177억원으로 전년보다 87% 감소했다.
고수온이 덜했던 것도 아니다. 해수부는 피해 감소 배경으로 고수온이 오기 전 양식 수산물의 조기 출하를 유도하고, 피해 예상 지역에 대응 장비를 신속하게 보급하는 등 선제적인 대응을 꼽았다. 폐사가 우려되는 어류를 미리 방류하는 긴급 방류도 함께 이뤄졌다.
피해가 발생하기 전에 들어가는 비용이 당장은 또 하나의 부담처럼 보일 수 있지만, 제대로 된 대비는 이후 치러야 할 더 큰 비용을 줄이는 수단이 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이런 기후 비용이 장기간 누적될 경우 국가경제에는 얼마나 큰 부담으로 돌아올까.
한국은행의 ‘기후변화 리스크가 실물경제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에 따르면 별다른 기후 대응에 나서지 않는 ‘무대응’ 시나리오에서는 국내총생산(GDP)이 기준 시나리오보다 2050년경 1.8% 감소하고, 기후 피해가 누적되는 2100년경에는 감소폭이 21%까지 확대되는 것으로 추정됐다.
반면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경우에는 탄소 감축 과정에서 단기적인 경제적 부담이 발생하더라도 장기적으로 기후 피해에 따른 충격을 줄일 수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갈수록 눈덩이
문제는 앞으로 이 계산서가 얼마나 더 커질지 알 수 없다는 점이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기후 위기에 돈을 쓰지 않는 선택지는 사실상 없다는 것이다. 재난이 닥친 뒤 더 큰 비용을 치를 것인지, 그 전에 대비해 손실을 줄일 것인지의 차이만 남아 있을 뿐이다.
어쩌면 기후 위기의 진짜 가격은 지금 당장 지출하는 돈이 아니라, 대응을 미룬 대가로 훗날 더 크게 돌아올 ‘연체료’에 있을지도 모른다.
<imsharp@ilyosisa.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