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다단계 투자 사기사건 억울한 죽음 막전막후

2026.08.18 13:11:50 호수 1597호

‘피해자 극단적 선택’ 소문 아니라 진짜였다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마지막에 이르렀을 땐 사실상 ‘독 안에 든 쥐’ 상태였다. 사방에서 밀려오는 압박을 견딜 힘이 더는 남아있지 않았다. 모든 게 끝난 자리에 남은 건 수억원대의 빚과 망가진 관계, 송사 등의 잔재였다. 이제 남아있는 자들이 이 모든 걸 감당해야 한다.

“어떤 날은 길을 걷다가도 눈물이 납니다.” 작게 웃으면서 말했지만 깊은 절망이 느껴졌다. 그는 지난해 7월 아내를 잃었다. 사인은 자살. 뒤늦게 아내가 처한 상황을 알게 된 이후 해결을 위해 고군분투했지만 아내의 죽음은 끝내 막지 못했다. 아내가 생전에 짊어졌던 짐은 이제 고스란히 그의 몫이 됐다.

아내의 죽음
파탄 난 가정

지난 10일 서울 동작구의 한 카페에서 A씨를 만났다. A씨는 사망한 B씨의 남편으로, 보험설계사 등을 상대로 사기 행각을 벌인 최모씨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며 연락해 왔다(<일요시사> 1592호 ‘<단독> ‘기업 비자금’ 다단계에 털린 보험설계사들’ https://www.ilyosisa.co.kr/news/article.html?no=256864 기사 참조). 당시 기사에 언급된 ‘2명이 자살했다는 흉흉한 소문’이라는 표현에 대해 그는 “소문이 아니”라고 딱 잘라 말했다.

최씨의 사기 피해자들 사이에서는 여성 1명과 남성 1명이 극단적 선택으로 사망했다는 말이 돌았는데, 이 가운데 B씨의 경우는 진짜라는 것이다. 보험설계사들이 고소한 사건에서 일부 피고소인은 “B씨가 우울증을 심하게 앓고 있었다”고 말했다. 사기 피해로 인한 게 아니라 B씨의 문제였다는 뉘앙스로 읽혔다.

하지만 A씨는 “(병원) 기록을 보면 알겠지만 이 일이 있기 전에는 우울증이 없었다. 최○○에 대한 원망, 채권자의 압박으로 인한 공포, 가족에 대한 미안함, 속았다는 자괴감 같은 게 아내를 갉아 먹었다. 자살할까 걱정돼 매일 붙어 있었는데 결국 허망하게 떠났다. 이렇게 갈 사람이 아닌데…”라고 한탄했다.

B씨가 사망한 시점은 지난해 7월경으로, 당시 B씨는 최씨를 ‘사기 및 유사수신 행위의 규제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고소한 상태였다. B씨의 사망으로 현재는 A씨가 이어서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A씨가 주장하는 B씨의 피해액은 20억원이 넘는다. A씨를 포함해 함께 소송을 진행 중인 피해자 7명의 피해액을 합산하면 30억원에 이른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B씨는 2020년부터 최씨와 돈거래를 한 것으로 확인된다. 보험설계사 등 피해자들이 2024년 4월, 변호사 등의 피해자가 2024년 7월 이후 최씨와 관계를 맺었던 것과 비교하면 상당히 빠른 시기다. A씨는 자신과 B씨가 “최○○ 사건의 초기 피해자”라고 주장했다. 최소 2020년부터 최씨가 사기 행각을 벌였다는 뜻이다.

2020년 지인 통해 소개받아
5년여 동안 20억 넘게 털려

A씨에 따르면 B씨는 학습지 교사 일을 하면서 알게 된 이모씨를 통해 최씨를 소개받았다. 두 사람은 함께 최씨의 집을 방문하기도 했다. 당시 최씨는 자신을 ‘세무사 사무실 팀장’이라고 소개했다. A씨는 “(최씨가) 사람들이 빌려준 돈으로 고객의 세금을 대납해 주고 그 대가로 수수료를 받는다. 카드는 이택스 처리해 수수료를 받는 것이니 100% 안전하다고 말했다”고 설명했다. 이택스(ETAX)는 서울시 지방세 인터넷 납부 시스템을 말한다.

B씨는 A씨에게 이 같은 내용을 말하면서 최씨에게 투자할 돈을 빌려 달라고 했다. A씨는 누나의 돈 4000만원과 신용대출로 받은 1억4000만원 등 총 1억8000만원을 아내에게 건넸다. 문제는 A씨가 융통해 준 돈이 전부가 아니었다는 점이다. A씨는 “돈 문제가 터진 시점(2024년 7월경)에 확인해 본 결과 아내가 최씨에게 (처음에만) 10억원을 보낸 사실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대기업에 다니던 A씨의 월급을 모은 돈 3억~4억원, 이들 부부의 소유로 돼있던 집과 상가를 담보로 받은 대출금, 지인과 B씨 어머니의 돈 등이다. 이후 지난해 5월 B씨가 최씨를 고소하기까지 5년여 동안 20억5000만원에 이르는 돈이 빠져나갔다. A씨는 “최○○는 약속한 수수료를 준 뒤 그 돈을 다시 재투자하게 했다”고 주장했다.

또 최씨는 2023년경 카드 수수료를 챙겨주겠다며 카드를 발급해 달라고 요구했다. A씨에 따르면 당시 최씨는 “정유회사에 아는 사람이 있는데 기름값을 대신 카드로 결제해 주면 정유사 결제에 따른 포인트 환급수수료를 더해 추가적인 수수료를 받을 수 있다”고 꼬드겼다.

B씨에게 카드와 현금을 투자할 다른 사람을 추천해 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B씨를 일종의 ‘모집책’으로 이용하려 한 것이다. 2020년 이후 최씨와의 거래에서 별다른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던 터라 B씨는 그 말을 믿었다. 이른바 ‘수익성이 좋은 투자’라는 착각에 빠져 있던 것이다. 실제 B씨는 지난해 5월 고소 전까지 최씨에 대한 신뢰가 상당히 굳건했다고 한다.

카드 요구에
모집 요청도

하지만 최씨가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는 ‘돌려막기’ 수법은 2024년 7월경 정유 대금 문제가 불거지면서 더는 통하지 않았다. 최씨는 피해자들의 카드를 이용해 정유 대금을 결제하고 이 중 일부를 현금으로 돌려받는 이른바 ‘카드깡’을 통해 돈을 마련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 돈을 피해자들에게 수수료 명목으로 건넨 것이다.

동시에 세금 대납 등의 이유로 피해자들에게 받은 현금은 명품 구입 등에 사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피해자들은 최씨가 만날 때마다 명품 옷을 입고 나왔다고 기억했다. 사치스러웠다는 표현도 여러 차례 나왔다. 특정 명품 매장에서의 실적이 수십억원에 이른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일부 피해자는 최씨와 명품 매장에 함께 간 적도 있다.

A씨는 “돈을 정말 턱턱 썼다. 선물로 명품 가방도 주고 한 끼 식사에 30만~40만원 하는 곳에 데려가기도 했다. 좋은 집, 화려한 차림새, 고급 외제 차, 값비싼 선물에 현혹된 것 같다. 심지어 생일까지 챙겨줬다. 정말 친한 언니, 동생처럼 굴었다. 아내는 철저하게 최○○를 믿었다. 그게 고객 관리였고 ‘가스라이팅’이었다는 걸 나중에서야 알았다”고 토로했다.

2024년 7월 정유 대금 문제로 시작된 경찰 수사에서 최씨는 참고인 자격으로 조사를 받은 것으로 파악된다. 이 과정에서 일당 가운데 일부가 구속되자 최씨의 이른바 ‘돈줄’이 막혔다. 돌려막기의 한 축이 무너지자 순식간에 둑 터진 듯 최씨의 사기 행각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

일부 피해자들이 최씨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조짐을 보이자 그는 피해 금액을 보전해 줄 또 다른 피해자를 찾아 나섰다. 최씨는 ‘기업 비자금을 관리한다’ ‘명품 리셀숍을 운영한다’ 등의 말로 피해자를 속였다. 이 시기(2024년 4월 이후)에만 수십억원에 이르는 돈이 최씨에게로 흘러 들어갔다. 피해자는 현재 파악된 숫자만 30여명에 달한다.

A씨는 정유 대금 사건이 터지고 나서야 사건의 자초지종을 정확히 알았다고 말했다. 그는 “정유 대금 사건이 터지기 전 내 명의로도 카드를 몇 개 발급해 줬다. 하지만 (정유) 사건 이후 아내가 자신뿐만 아니라 나와 딸의 명의로까지 (카드를) 임의로 발급받은 사실은 그때 알았다”며 “카드값이 밀리니 카드사에서 독촉 전화가 오기 시작했고 그때서야 아내에게 지금까지 있었던 일을 들을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2024년 7월
드러난 사기

당시 B씨는 한계까지 몰린 상황이었다. 최씨에게서 돈을 받지 못한 건 물론이고 지인에게 빌린 돈을 갚아야 한다는 압박이 심했다고 한다. A씨는 “최○○도 최○○였지만 지인들의 압력이 대단했다. 채권자가 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일을 한 것 같다. 수도 없이 쏟아지는 전화에 아내가 많이 무서워했다”고 전했다.

A씨도 최악의 상황에 놓였다. B씨에 이어 ‘독 안에 든 쥐’ 상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는 “집과 상가는 다 날렸고 신용대출로 빌린 돈, 카드값을 매달 143만원씩 갚고 있다. 그래도 대기업에 30년 동안 다니면서 돈을 꽤 모았는데 지금은 생계를 걱정해야 할 판”이라고 한탄했다.

자녀, 특히 딸의 상황도 안 좋았다. A씨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딸이 자살을 시도했다고 털어놨다. 그는 “딸 앞으로도 5000만원가량 빚이 있다. 매달 50만원씩 10년간 갚아야 할 돈이다. 누군가에게는 큰돈이 아닐 수 있지만, 딸은 막막했던 것 같다. 본인의 미래를 저당 잡혔다고 생각하는 것 같기도 하다”고 우려했다.

처가와의 관계도 송사로 번졌다. 현재 사는 집에 B씨의 어머니, 즉 A씨의 장모가 명도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A씨는 “장모님께서 딸이 남편을 잘못 만나 이 지경에 이르렀다고 생각하신 것 같다. 딸이 잘못됐으니 사위가 원망스러운 거다. 여기(집)서 나가면 어디에서 살아야 할지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A씨는 B씨를 원망하면서도 열심히 마음을 다잡고 있다고 했다. 마치 스스로 다짐하는 듯한 말투였다. 그는 “평생 일만 하느라 집에 잘 신경을 못 썼다. 또 워낙 (아내가) 알뜰하게 살림을 했던 터라 이런 일이 있을 거라곤 생각도 못했다. 대체 왜 그런 못되고 우악스러운 인간들하고 어울렸는지 원망스러운 마음도 크다. 하지만 아내는 죽을 때까지 최○○의 실체에 대해 잘 몰랐다. 누군가는 아내를 최○○의 공범이라고 했지만 정말, 정말 아내는 (최○○가 사기꾼인걸) 몰랐다”고 항변했다.

소송 진행 도중 사망
남편이 이어받아 진행

그러면서 “최○○가 그린 시나리오에서 아내는 꼭두각시였다. 최○○는 피해자들에게 일종의 역할을 부여하고 그들의 머리 꼭대기에서 자기가 감독을 맡았다. 살면서 이렇게 ‘악마’ 같은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사람이 죽었는데도 그 어떤 죄책감도 없는 모습에 아주 완벽히 질려 버렸다”고 말했다.

A씨에 따르면 최씨는 10~15명 정도로 피해자를 분류해 따로 단체 채팅방을 만들어서 관리했다. A조, B조, C조 등으로 나눠 그 안에서만 정보를 공유하게 한 것이다. 피해자들끼리 접촉하지 못하도록 했다는 증언이 여러 차례 나왔다. 피해자들끼리 서로 알게 되면 사기 행각이 탄로 날 것을 우려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 최씨가 사기 혐의로 기소돼 열린 재판 변론기일에 피해자가 15명가량 모였는데 서로 누가 누군지 모르는 웃지 못할 일도 벌어졌다. 각기 다른 그룹의 피해자가 최씨의 재판을 보기 위해 모인 것이다. 이날 재판이 끝나고 피해자들끼리 모인 자리에서 서로 모르고 있던 정보가 많이 공유됐다고 한다.

A씨는 “돈을 돌려받을 거라고는 기대도 안 한다. 그저 최○○가 더 이상의 피해자를 양산하지 않길 바랄 뿐이다. 우리 가족은 말 그대로 풍비박산 났다. 인생의 낙 같은 건 사라졌고 하루하루 버티면서 살고 있다. 죽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이 일을 마무리할 때까지는 안 된다. 최○○가 꼭 죗값을 치렀으면 한다”고 힘줘 말했다.

A씨는 B씨의 휴대폰을 가지고 다닌다고 했다. 혹시 사망 전 남긴 글이 있는지를 묻자, 그는 휴대폰에서 메시지를 찾아 기자에게 보여줬다. 글의 첫머리에 ‘화병’이라고 쓰여 있었다. 최씨, 최씨를 소개해준 사람, 지인 등에 대한 원망, 가족에 대한 걱정과 미안함, 자책감, 두려움, 공포 등 온갖 감정이 버무려진 글이었다. 이 글은 B씨가 사망하기 열흘 전인 지난해 6월 중순에 쓰였다.

못다 이룬
버킷리스트

‘속이 너무 뜨겁다. 타는 것만 같다.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그만 멈추고 싶다. ○○○(자녀 이름)의 목소리가 날 너무 아프게 한다. 나쁜 생각을 가지지 않으려 했지만 감당이 되지 않는다. 남겨진 사람들에게 또 커다란 상처를 준다는 것도 알지만 내 스스로 이겨나갈 힘이 없다(유서 중 일부 발췌).’

스치듯 보게 된 B씨의 ‘버킷리스트’ 글에는 ‘무등산 수박 먹어보기’ ‘성지 순례’ 같은 소망이 쓰여 있었다.

<jsjang@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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