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광복 81주년이다. 1945년 8월15일 우리 민족에게 가장 절실했던 목표는 너무나 분명했다. 빼앗긴 나라를 되찾고 우리 운명을 우리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나라를 만드는 것이었다.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이 목숨을 걸었던 이유도 자신들이 잘사는 세상을 보기 위해서가 아니라 후손들에게 나라 있는 삶을 물려주기 위해서였다. 그들이 그토록 꿈꾸었던 대한민국에서 우리는 지금 살고 있다.
광복 이후 대한민국은 시대마다 분명한 국가적 목표가 있었다. 해방 직후에는 나라를 세우고 6·25전쟁 이후에는 폐허를 다시 일으켜야 했다. 산업화 시대에는 가난에서 벗어나는 것이 목표였고 민주화 시대에는 자유와 국민의 권리를 확립하는 것이 과제였다. 이후에는 세계시장에서 경쟁하며 선진국으로 올라서는 것을 꿈꿨다. 대한민국은 수많은 시행착오와 갈등 속에서도 이 목표들을 하나씩 이루어왔다.
지난해 광복 80주년은 특별한 의미가 있었다. 광화문광장에서는 ‘광복 80년, 국민주권으로 미래를 세우다’를 주제로 국민임명식이 열려 국민대표 80명이 대통령에게 임명장을 전달했다. 광복의 의미가 국권 회복을 넘어 국민이 나라의 주인이라는 민주주의로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준 자리였다. 이재명 대통령도 경축사에서 공급망 재편과 첨단기술 경쟁 등에 대응해 새로운 100년의 도약을 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제 광복을 기억하는 일은 대한민국의 다음 100년을 준비하는 일과 맞닿아 있다.
올해 광복 81주년 행사에서도 이런 흐름은 이어지고 있다. 독립기념관은 전국의 81가족을 초청하고 학생 대표가 미래세대의 다짐을 낭독하도록 했으며 경남의 경축식 주제도 ‘기억할 이름, 이어갈 내일’이다. 광복의 의미가 과거를 기억하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정신을 다음 세대와 미래로 이어가는 데 있다는 뜻이다. 필자는 바로 이 지점에서 광복 81년을 맞은 대한민국이 새로운 국가적 목표를 생각해야 한다고 본다.
이제 대한민국은 세계가 인정하는 경제력을 갖췄고 민주주의도 뿌리를 내렸다. 반도체와 자동차, 조선과 배터리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췄고 K팝과 영화, 드라마와 음식까지 한국 문화는 세계인의 일상 속으로 들어갔다. 과거에는 외국의 기술과 제품을 배우고 따라갔다면 이제는 다른 나라가 대한민국의 기술과 문화를 연구하는 시대가 됐다. 세계가 바라보는 대한민국의 위치는 30년, 50년 전과 분명히 다르다. 그렇다면 이제 대한민국에는 선진국 다음의 목표가 필요하다.
국민소득을 조금 더 높이고 세계 경제순위를 몇 단계 끌어올리는 것만으로 앞으로의 국가 목표를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 세계 10위권 경제가 8위, 7위가 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만으로 새로운 국가적 꿈을 제시하기는 어렵다. 과거에는 가난에서 벗어나자는 절박함과 민주화라는 시대적 목표, 선진국이 되자는 국민적 열망이 있었다. 이제는 ‘얼마나 잘사는 나라가 될 것인가’를 넘어 ‘세계에서 어떤 나라가 될 것인가’를 물어야 한다. 필자는 그 답을 ‘세계에 필요한 나라’에서 찾고 싶다.
세계에 필요한 나라란 미국이나 중국처럼 거대한 영토와 인구를 가진 강대국을 의미하지 않는다. 세계의 국가와 기업들이 대한민국을 빼놓고는 중요한 일을 하기 어려운 나라가 되는 것이다. 반도체와 선박, 배터리와 원전, 방산과 AI 기술이 필요할 때 대한민국을 찾도록 해야 한다.
세계 경제와 산업의 중요한 연결고리에 대한민국이 자리 잡는다면 국토와 인구의 크기를 뛰어넘는 힘을 가질 수 있다. 대한민국과 협력하는 것이 다른 나라에도 이익이 되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가장 강력한 국가 경쟁력이다.
반도체는 그 가능성을 이미 보여주고 있다. AI 데이터센터와 로봇, 자율주행차와 첨단무기, 우주산업이 발전할수록 첨단 반도체의 중요성은 더욱 커진다. 대한민국이 누구도 쉽게 대체할 수 없는 기술 경쟁력을 갖는다면 반도체 산업은 국가의 전략자산이 된다. 조선과 방산, 배터리와 원전도 세계가 대한민국을 필요로 하게 만들 수 있는 분야다. 세계가 반드시 필요로 하는 기술과 제품을 가진 나라는 국제사회에서 쉽게 무시할 수 없다.
AI와 로봇, 바이오 같은 미래산업에서는 지금부터 승부를 걸어야 한다. 대한민국은 빠른 추격으로 세계적인 제조업 국가가 됐지만 AI 시대에는 추격만으로 세계의 중심에 서기 어렵다. 다른 나라의 AI를 잘 사용하는 것을 넘어 세계가 필요로 하는 AI 기술과 서비스를 만들어야 한다. 지난해 광복절 경축사에서도 첨단과학 기술 육성과 에너지 전환을 통한 새로운 100년의 도약이 강조됐다. 앞으로 대한민국의 경쟁력은 미래기술을 얼마나 스스로 만들어 세계에 제공하느냐에 달려 있다.
세계에 필요한 나라가 되는 길은 산업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K팝과 드라마, 영화와 음식이 세계에서 사랑받는 것은 대한민국이 가진 또 다른 힘이다. 한국을 좋아하는 사람이 늘어날수록 대한민국에 대한 신뢰와 호감도 함께 커진다. 김구 선생이 소망했던 것도 군사력이나 경제력만 강한 나라가 아니라 높은 문화의 힘을 가진 나라였다. 산업과 기술에 문화의 힘까지 갖춘다면 대한민국은 세계가 필요로 하고 좋아하는 나라가 될 수 있다.
외교에서도 대한민국만이 할 수 있는 역할을 찾아야 한다. 우리는 미국과 동맹을 맺고 중국과 경제관계를 유지하며 일본과는 과거사를 안고도 미래를 위해 협력해야 한다. 지난해 이재명 대통령도 일본에 과거사를 직시할 것을 요구하면서 국익 중심의 실용외교와 미래지향적 협력을 강조했다. 대한민국은 국제사회에서 연결하고 조정하며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는 외교력을 갖춰야 한다. 국제사회에 문제가 생겼을 때 대한민국의 해법을 궁금해한다면 그것 역시 새로운 국력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국내 정치부터 달라져야 한다. 세계가 AI와 반도체, 에너지와 안보를 놓고 미래를 준비하는데 정치가 상대 진영을 공격하는 데 매달린다면 미래를 준비할 수 없다. 진보와 보수가 경쟁하더라도 국가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에 대한 최소한의 합의는 필요하다. AI와 에너지, 인구와 교육 같은 장기전략을 정권이 바뀔 때마다 뒤집어서도 안 된다. 정치의 승리보다 대한민국의 승리를 먼저 생각하는 영역이 있어야 한다.
국민의 생각도 달라질 필요가 있다. 우리는 오랫동안 미국과 일본, 유럽을 따라잡으려 노력했고 그 절박함이 오늘의 대한민국을 만드는 힘이 됐다. 그러나 이제는 남의 등을 바라보는 것을 넘어 어떤 분야에서는 우리가 앞에 서서 길을 만들어야 한다. 선진국을 따라가는 정신과 선진국 이후의 길을 만드는 정신은 다를 수밖에 없다. 이제 추격자의 근면함에 개척자의 자신감을 더해야 한다.
물론 대한민국에는 여전히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많다. 저출생과 고령화, 지방소멸과 청년 문제, 양극화 등 어느 것 하나 쉽지 않고 국민 모두가 선진국의 삶을 누리는 것도 아니다. 따라서 ‘세계에 필요한 나라’가 국민의 삶과 동떨어진 구호가 돼서는 안 된다. 세계가 대한민국을 필요로 할수록 더 많은 기회가 생기고 그 힘이 국민의 삶으로 돌아와야 한다. 강한 나라를 만드는 궁극적인 이유도 국민이 더 안전하고 행복하게 살도록 하기 위해서다.
1945년의 목표는 분명했다. 나라를 되찾는 것이었고 이후 대한민국은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뛰고 민주주의와 선진국을 향해 달려왔다. 이제 광복 81년을 맞은 대한민국에는 다음 80년, 100년을 향한 새로운 목표가 필요하다. 그 목표는 단순히 더 부유하고 더 강한 나라가 되는 데 머물러서는 안 된다. 잘사는 나라를 넘어 세계에 필요한 나라가 되는 것, 그것이 광복 81년 대한민국이 준비해야 할 ‘다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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