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보는 남대문이나 동대문이 아니라 ‘나라 보지’를 말하는 거야. 국가에서 우리 몸뚱이를 이용했으니…그 무서운 곳을 ‘언덕 위의 하얀 집’이라 부른 건 낭만이 아니라 야유하기 위해서였지…우리 보지는 나라의 보지였어!” <어느 위안부 할머니의 절규>
몽키하우스의 내부는 군 내부반과 비슷했다. 복도 양쪽에 쭉 늘어선 각 방은 국화반, 난초반, 장미반 따위로 불렀다. 여성미를 북돋우려는 성싶었으나 안으로 들어서면 삭막한 느낌을 풍겼다. 좁은 통로를 사이에 두고 양옆으로 수십 개의 초라한 침상이 줄느런히 놓여 있었다.
초라한 침상
여사감이 수용자들의 일상생활을 엄격히 감독했다. 한번 찍히면 구금 시간이 연장될 위험도 있으므로 조심해야만 했다. 왜냐하면 몽키하우스는 성병 치료가 주목적이었지만 접대 행실 교육과 재활을 위한 기술 교육도 명목상으로나마 선별적으로 시행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벌점을 받으면 좋을 게 하나도 없었다. 순화교육에 잘 따르지 않는 이른바 ‘꼴통’들은 좁은 감금실에 처넣어져 고통과 고독을 짓씹어야만 했다.
수용소에 처음 입소한 양색시들은 일단 진료소로 가서 검사를 받아야 했다. 그 안엔 쇠침대가 몇 개 놓였고 군용 매트 위에 하얀 시트가 씌워져 있었다.
여자들은 이름과 소속 클럽을 밝힌 후 매트에 누워 군의관들로부터 1차 관찰 검사를 받았다. 그런 다음 좀더 은밀한 안쪽 방으로 들어가 심화 검사에 응해야 했다.
군의관이 건넨 유리관에 오줌을 받아 돌려줘야 하는 것이었다. 그러면 미군 군의관은 유리관을 스텐 플라스크에 꽂곤 빙글빙글 돌린 후 슬라이드 글라스 위에 한 방울 떨어뜨려 세밀검사를 했다.
여자들은 그 성병 검사를 별로 신뢰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설령 결과가 비보균자로 나오더라도 수용소에서 곧 내보낸 주진 않았기 때문이었다.
물론 정상참작이야 있었겠지만, 일단 수용되면 일주일 동안 기본적으로 감금 상태로 지내야만 했다. 대체 왜 그랬을까?
미군들의 엉터리 컨택(성병 보균자 지목)에 의해 억울하게 잡혀 온 위안부들도 꽤 많았는데 그녀들은 분노로 치를 떨며 한숨을 폭폭 내쉬곤 했다.
청춘의 낭만과 정욕을 이국의 여인과 함께 한번 풀다가 재수없게 매독균에 걸린 미군도 물론 있었겠지만, 자기 뜻대로 갖고 놀며 지배하려다가 말을 잘 듣지 않는 여자들에게 복수하려고 컨택하는 비열스런 잡놈도 무척 많았기에 불평이 들끓었다.
한 서린 소리도 흘러나왔다.
‘아리랑 아라리~ 좆고개를 넘어가네. 가다 못 가면 발목이 끊어져 죽는다네.’
‘내 살던 고향은 꽃 피는 산골. 아, 하지만 이제 이 내 보진 내 것이 아니고 이 나라의 XX라네.’
‘헤이, 존 어서 와서 내 썩어 가는 XX를 빨아 줘. 박통 따까리들도 함께.’
그건 미군에게 비굴스런 반식민지 상황에서 당한 설움뿐만 아니라 한국 군부독재 정부의 거짓말에 대한 야유이기도 했으리라.
수용녀들은 아침 6시에 일어나 저녁 9시쯤 잠들었다. 아침 점호와 청소, 세면 등을 하고 나면 식사 시간이 왔다.
꽁보리밥에 시래기 소금국 그리고 반찬은 콩잎절임, 무짠지, 새우젓 등 오래 둬도 잘 상하지 않는 음식이었다.
그래서 식상한 여자들은 푼돈을 각출하거나 또 다른 비밀스런 방법으로 식재료를 조달해 스스로 음식을 만들어 먹었다.
이따금 빵과 우유가 나오기도 했지만 오히려 자유에 대한 향수로 인해 더 허기가 지는 모양이었다.
하루 일과는 칼같이 엄격히 정해져 있었다. 식사 후 잠시 휴식을 하고 나면 성병 검진과 치료, 그리고 시시콜콜한 관리 교육이 이어졌다.
빈약한 점심 식사 후에도 마찬가지였다. 규칙상 화장을 하지 않은 여자들의 얼굴은 수수할 정도가 아니라 영양실조로 인해 여위고 해쓱했다.
가끔 외출할 기회가 생기면 청운은 여자들의 부탁을 받곤 김치찌개나 된장찌개에 필요한 재료들을 슬쩍 사다 주었다.
그런 날 밤엔 은밀한 축제가 열렸다. 어디서 구했는지 조니워커 같은 양주도 한 순배 돌았다.
음주와 흡연은 엄격히 금지됐고, 만일 발각될 시엔 구금 기간이 두 배로 늘었다. 그런데도 여자들은 도둑고양이처럼 그런 스릴의 묘미를 즐겼다.
물론 그런 비밀 축제는 수용소에서 아주 희소했을 터였다.
캄캄한 밤하늘에 문득 뜬 별 하나처럼, 청운은 블루문 클럽에서 알게 된 미애라는 위안부의 간곡한 부탁으로 서너 번 그런 역할을 맡았을 뿐이었다.(어쨌든 죄책감은 별로 들지 않았다. 청운 자신도 그 밤의 성찬에 초대받아 한두 번 낀 적이 있었다.)
성병 치료 주목적 입소
실제론 접대 행실 교육
어느 날 미애라는 여자가 혀꼬부라진 소리로 말했다.
“오빠, 아직도 희란 언닐 좋아해?”
“뭐? 그건 왜 물어?”
청운은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 희란이란 붉은 옷을 입고 춤추는 댄서였다.
“혹시 그렇다면 이젠 그만 잊어야 할 거야.”
미애는 게슴츠레한 눈으로 청운을 바라보며 짓궂게 미소지었다.
“왜?”
“호호 오빠 얼굴이 하얗게 변하네. 아이 참 재밌어.”
미애는 소녀처럼 깔깔거렸다.
“장난치지 말고 빨리 말해 봐.”
“흥, 누가 장난이래? 그 언니 이미 시집갔어.”
“뭐? 어디로?”
“서울.”
“서울 어디?”
청운은 겨우 말을 꺼내고 있었다.
“어디긴 어디겠어. 동두천 기지촌에서 용산 기지촌으로 간 거지 뭐. 혹시 꽃가마 타고 가회동이나 안국동 대갓집 며느리로 들어갔다고 공상하는 건 아니겠지, 응?”
“….”
“오빠야, 너무 슬퍼하지 마. 나도 소문으로 들은 얘기니까 확실한 건 몰라. 미8군으로 전속돼 가는 어떤 캡틴을 따라갔다니까. 만약 잘 되면 그 언니도 큰 무대에서 꿈을 이룰지도 모르잖어.”
“나도 그러길 바라.”
“흥, 바라긴 고양이 뿔을 바라. 그 언니가 성공하면 할수록 오빠한테서 더 멀어질 텐데도?”
“나도 성공하면 되지 뭐. 기차 타고 가면서 바로 옆에 달리는 버스를 바라보는 재미도 괜찮잖아.”
“제발 꿈 깨셔! 뭘로 성공해서 특급열차를 탈 텐데, 응?”
청운은 대답이 궁해 슬쩍 홀로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찬바람이 부는 산길을 거닐며 생각에 잠겼다.
은밀한 축제
‘그런 줄도 모르고 난 그녀가 여전히 가까운 곳. 그녀로 인해 그리운 동두천에서 춤추고 있다고 착각했었군. 더 큰 착각은 거리가 아니라 여자의 현실적인 마음과 현재 처한 상황을 잘 모른 채 제대로 파악해 보려는 시도조차 마다코 그냥 몽상 속에서 그녀의 매혹적인 모습을 그리워하고 있었다는 사실이야. 물론 지난 달에 동두천 읍내에서 만나 함께 영화를 보고 생맥주를 마시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도 했었지. 난 쑥스러워 마음속의 그리움을 고백하지 못했건만 아, 혹시 그녀는 나를 애정이나 연정이 별로 없는 목각인형으로 착각해 버린 건 아닐까? 이번 달 휴일에 다시 만나게 되면 용감하게 이 심정을 직접 고백하거나 편지라도 써볼까 고민중이었는데 훌쩍 떠나가 버리다니. 음, 아마 그녀는 애초부터 나를 연인이나 남자로 전혀 생각지 않았는지도 몰라.’
<다음 호에 계속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