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2팀] 박정원 기자 = 배우 하영(33·본명 안하영)이 예능프로그램에서 가문을 자랑했다가 증조부의 친일 행적이 드러나며 파문이 일파만파 확산하고 있다.
초기 해명에서 “사실무근”이라며 의혹을 부인했던 소속사 측은 하루 만에 친일 단체 활동 기록을 인정하고 고개를 숙였으나, 광고계의 발 빠른 ‘손절’이 시작되는 등 여론은 냉담한 실정이다.
앞서 하영은 지난 7일 방송된 KBS2 예능프로그램 <옥탑방의 문제아들>에 출연해 증조할아버지부터 언니까지 4대째 이어져 온 의사 집안임을 언급하며 “증조부께서 당시 한양 최초로 양의원을 개원하셨고 고종 황제를 진료하기도 했다”고 밝혀 화제를 모았다.
그러나 방송 직후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하영이 언급한 증조부가 일제강점기 친일 의혹을 받는 의사 안상호라는 지적이 제기됐다. 안상호는 1904년 서울 종로3가에 진료소를 차리고 의친왕 보필 및 고종 진료 등에 참여했으나, 일제강점기 시절 친일 행적을 남겼다는 의혹을 받아온 인물이다.
특히 1918년 조선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의 인터뷰 내용이 공개되며 논란에 기름을 부었다. 해당 기사에서 안상호는 “나도 지금 조선 옷은 한번도 입지 않고 음식도 매운 것은 조금도 못 먹는다” “자녀들이 집에서 일본어만 사용한다. 조선말은 전혀 하지 못한다. 완전한 일본인 가정으로 키우고 있다” 등의 발언을 한 것으로 확인됐다.
당시 <매일신보>는 그를 두고 ‘내선 일체의 바람직한 표본’이라고 평가했으며, 안상호는 1916년 이완용 등이 참여한 대표적 친일 단체 ‘대정친목회’의 평의원으로도 활동한 기록도 존재한다.
또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에 공개된 ‘국사관논총’ 제32집 수록 논문에 따르면, 1909년 12월22일 이완용이 이재명 의사에게 피습된 뒤 한성병원의 학전(鶴田) 의사, 안동병원장 대한병원의 국지(菊池) 원장·고계(高階) 부원장, 전의 박종환, 안상호 등 당시 의사들의 치료를 받아 목숨을 구했다는 내용이 담겼다.
논란 초기 하영의 소속사 비스터스엔터테인먼트는 “증조부가 안상호 선생은 맞으나 친일 의혹은 사실무근”이라며 강하게 부인했다. 그러나 비판 여론이 거세지자 이튿날인 11일 공식 입장을 번복했다.
소속사는 “추가 확인 결과 1916년 대정친목회 평의원 명단에 이름이 올라있는 기록을 실제로 확인했다”며 “충분한 검증 없이 성급히 답변해 혼란을 드린 점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고개를 숙였다.
대중이 이번 사태에 유독 분노하는 이유는 조상에 대한 면밀한 확인도 없이 ‘명문가 히스토리’를 방송용 포장재로 가볍게 소비했기 때문이다. 일제 수탈기에 축적된 기득권이 후손의 엘리트 코스로 이어진 것 아니냐는 특혜 의혹까지 분출하는 양상이다.
여기에 소속사의 허술한 초동 대처도 화를 키웠다. 기초적인 역사 검증조차 거치지 않은 채 “사실무근”이라며 섣불리 대응했다가 하루 만에 손바닥 뒤집듯 번복한 태도는 라이징 스타로서 갖춰야 할 리스크 관리의 허점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주연작 <이 엿같은 사랑>을 통해 글로벌 시청자들을 만난 지 불과 4일 만에 악재를 맞이한 하영은, 증조부뿐만 아니라 조부(할아버지) 역시 과거 한센인 인권 유린과 잔혹한 인체실험이 자행됐던 국립소록도병원에서 근무했다는 의혹마저 추가로 제기되고 있다.
특히 오는 8월15일 광복절을 목전에 둔 시점이라 대중의 공분은 더욱 거세지고 있다. 이에 따라 광고계도 발 빠르게 하영의 흔적을 지우기 시작했다. 삼성전자는 공식 유튜브 채널에서 하영이 모델로 참여한 ‘삼성 아트 TV’ 광고 영상 6편을 비공개로 전환했으며, 의류 브랜드 아티드 역시 지난해 촬영된 하영의 광고 영상을 비공개 처리했다.
방송계에도 여파가 이어지고 있다. 웨이브는 KBS2 예능프로그램 <옥탑방의 문제아들> 323회 다시보기 서비스를 중지한다고 밝혔다. 하영이 출연했던 회차분이다. 또 넷플릭스는 오는 14일 오후 예정된 <이런 엿같은 사랑> 인터뷰 일정이 취소됐다고 고지했다. 인터뷰가 광복절을 하루 앞두고 진행되는 만큼 적절치 않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한편, 하영의 논란이 커지자 연예계에서 조상의 친일 행적으로 홍역을 치렀던 과거 사례들과 그에 대응한 배우들의 행보도 다시금 재조명되고 있다.
배우 이지아(48·본명 김지아)는 지난해 조부 김순흥의 친일 행적 관련 논란이 재차 불거지자 회피 대신 정면돌파를 택했다. 일찍이 가족과 인연을 끊고 자립했음을 밝힌 그는 민족문제연구소를 찾아 조부의 과오를 직접 눈으로 확인한 뒤, “어떠한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는 역사적 과오”라며 후손으로서 깊이 사죄해 민심을 달랬다.
배우 강동원(45) 역시 외증조부 이종만의 친일 논란 당시 진정성 있는 후속 조치로 공분을 가라앉혔다. 초기 미숙했던 대응을 솔직히 인정하고 사과한 그는 영화 <1987>에서 고 이한열 열사 역 출연을 계기로 유가족을 찾아가 고개를 숙였고, 익명 후원과 묵묵한 추모 행보를 이어나가며 말보다 실천으로 반성의 뜻을 입증했다.
이처럼 조상의 그늘 앞에서도 성숙한 역사의식과 책임감 있는 후속 행보로 여론을 돌아세운 선례들과 달리, 섣부른 가문 자랑과 엉성한 해명으로 일관한 하영 측의 모습이 대비되면서 씁쓸함을 더하고 있다.
<jungwon933@ilyosisa.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