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삼기의 시사펀치> 기술특례상장, 성장할 시간 주겠다는 약속

2026.08.14 07:59:20 호수 0호

20년째, 제2의 엔비디아 키우고 있나

정부가 올해 코스닥시장을 다산다사(多産多死) 구조로 바꾸겠다는 방향을 분명히 했다. 좋은 혁신기업은 더 많이 상장시키되 경쟁력을 잃은 부실기업은 신속하게 퇴출시키겠다는 것이다.

금융위원회와 한국거래소는 올해 초부실기업 신속·엄정 퇴출을 위한 상장폐지 개혁방을 발표했고, 코스닥 시가총액 상장폐지 기준도 올해 200억원, 내년 300억원으로 강화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바꿨다. 코스닥을 혁신기업의 성장 플랫폼으로 만들기 위해 들어오는 문은 넓히고 나가는 문도 제대로 만들겠다는 취지다.

필자도 부실기업을 신속하게 정리하겠다는 방향 자체에는 반대하지 않는다. 시장의 신뢰는 지켜져야 하고, 기술도 사업도 없이 상장사라는 간판만 붙잡고 연명하는 기업을 계속 보호할 이유도 없다.

그러나 여기서 한가지 질문을 던져야 한다. 몇 년 전 기술을 보고 상장시킨 기업을 ‘이제 주가와 시가총액이라는 시장 지표만으로 퇴출시키는 것이 과연 기술특례상장제도의 취지와 맞느냐’는 것이다. 다산다사가 필요하다면 어떤 기업을 살리고 어떤 기업을 죽일 것인지에 대한 기준부터 분명해야 한다.

기술특례상장제도는 당장 매출과 이익은 부족하더라도 뛰어난 기술과 성장 가능성이 있다면 코스닥시장에 들어올 기회를 주자는 제도로 지난 2005년부터 사행됐다. 일반 기업처럼 현재의 재무제표만 본다면 신약을 개발하는 바이오기업이나 첨단소재·로봇·AI 기업은 사업이 본격화하기도 전에 자본시장에서 밀려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대한민국 자본시장은 기술기업에 특별한 문을 하나 만들었다. 기술특례상장은 단순히 상장 기준을 낮춰준 제도가 아니라 “지금 이익을 내지 못하더라도 기술이 결실을 맺을 때까지 성장할 시간을 주겠다”는 약속이었다.

처음에는 이용하는 기업이 많지 않았다. 제도 도입 후 10년 동안 기술특례상장 기업은 27개에 불과했지만 2015년 제도를 개선하면서 본격적으로 늘기 시작했다.

최근 5년 동안 코스닥 신규 상장기업 가운데 기술특례상장의 비중은 약 39%에 이를 정도로 이제는 코스닥의 대표적인 기업공개 통로가 됐다. 2024년에는 기술특례 신규 상장기업이 42개로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처음에는 바이오기업이 중심이었지만 지금은 AI와 로봇, 반도체, 첨단소재 등 다양한 기술산업으로 문이 확대됐다.

20년이 지났다면 이제 기술특례상장의 성적표도 한번 제대로 평가해 볼 때가 됐다. 몇 개 기업을 상장시켰느냐만 볼 일이 아니다. 그 가운데 몇 개 기업이 5년, 10년 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기술기업으로 성장했느냐를 봐야 한다.

상장은 출발이지 목적이 아니기 때문이다. 기술특례상장의 성공은 상장기업 숫자가 아니라 상장 이후 살아남아 기술을 사업으로 만들고 세계시장까지 진출한 기업의 숫자로 평가해야 한다.

성공 사례는 분명히 있다. 알테오젠과 리가켐바이오가 대표적이다. 두 회사 모두 기술특례로 시장에 들어와 오랜 연구개발 기간을 견딘 뒤 글로벌 시장에서 기술력을 인정받았다. 레인보우로보틱스와 파크시스템스 등도 기술특례상장의 성공 사례로 꼽힌다.

특히 알테오젠과 리가켐바이오는 상장 직후부터 돈을 번 기업이 아니라 적자와 연구개발 기간을 오랫동안 지나 오늘의 위치에 도달했다. 지금의 성과가 나오기까지 짧게는 5년, 길게는 10년에 이르는 시간이 필요했다는 점을 눈여겨봐야 한다.

반대쪽 성적표도 있다. 모든 기술특례 기업이 알테오젠이 된 것은 아니다. 기술평가를 받고 상장했지만 기대했던 사업 성과를 내지 못한 기업도 있고, 상장 당시보다 기업가치가 크게 떨어진 곳도 적지 않다. 2025년 조사에서는 상당수 기술특례 기업의 시가총액이 상장 당시보다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고 실제 상장폐지된 사례도 있었다.

기술특례라는 이름만 믿고 투자한 일반 투자자들이 큰 손실을 본 사례도 있다. 때문에 기술특례상장이라고 해서 무조건 보호해야 한다는 주장 역시 설득력이 없다.

바로 여기서 다산다사 정책의 핵심 문제가 생긴다. 가짜 기술기업과 실패한 기업은 당연히 퇴출돼야 하지만 아직 성공하지 못한 기업과 이미 실패한 기업을 어떻게 구별할 것이냐는 것이다. 신약개발 회사가 임상 2상을 진행하고 있는데 아직 매출이 없다는 이유로 실패했으며 우주기술 기업이 발사체를 개발하고 있지만 아직 수익을 내지 못했다고 부실기업이라고 할 수 있는가.

AI와 로봇기업이 연구개발에 막대한 자금을 투입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일반 제조업체와 같은 시간표를 적용하는 것이 맞는지도 생각해야 한다.

특히 바이오산업에서는 ‘기술의 시간’이 일반 기업과 전혀 다르다. 신약 후보물질을 발굴하고 전임상과 임상 1·2·3상을 거쳐 허가를 받아 시장에 나오기까지 10년 이상 걸리는 경우도 흔하다. 그동안에는 연구개발비가 계속 들어가면서 적자가 날 가능성이 높고 의미 있는 매출은 긴 과정의 마지막에서야 만들어진다.

이것은 반드시 경영 실패 때문이 아니라 산업 자체의 구조다. 기술특례상장제도를 만든 이유도 애초에 바로 이런 기업을 매출과 이익이라는 일반적인 기준만으로 평가해서는 안 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지난 7월 코스닥 기술특례상장을 위한 예비심사를 청구한 넥스아이의 사례를 보자. 2021년 설립된 이 회사는 면역항암제 후보 물질을 개발하고 있으며 2024년 일본 오노약품공업에 후보 물질을 기술 이전했다. 해당 물질은 현재 임상시험을 진행하고 있고 공개된 임상시험 일정상 1차 완료 예정 시점은 2029년이다.

넥스아이는 지난 5월 500억원 규모의 상장 전 투자도 유치해 후속 면역항암제와 ADC 후보 물질 연구개발에 투입할 계획이다. 바로 이런 기업에 미래의 가능성을 보고 자본을 공급하기 위해 만든 것이 기술특례상장이다.

그렇다면 2026년에 연구자금을 조달해 2029년 결과를 기다리는 기업을 2027년의 매출이나 수개월 동안의 주가만 보고 평가해도 되는가. 연구개발은 5년, 10년을 보고 진행하는데 상장유지 제도는 1년 단위로 기업을 압박한다면 시간표가 서로 맞지 않는다.

더구나 시가총액은 기업이 전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지표도 아니다. 연구개발이 계획대로 진행되고 임상이나 기술개발 마일스톤을 달성하고 있어도 증시 전체가 위축되거나 해당 업종의 투자심리가 얼어붙으면 시가총액은 떨어질 수 있다.

여기에 상장 당시의 자금조달 구조도 함께 살펴봐야 한다. 기술특례기업은 공모 과정에서 공모가 밴드와 공모 규모 등에 여러 제약을 받으면서 연구개발에 필요한 자금을 충분히 확보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결국 상장 후 다시 유상증자나 전환사채 등 외부 자금조달에 의존하게 되고, 이는 주가와 기존 주주에게 또 다른 부담으로 돌아올 수 있다.

장기간 연구개발이 필요한 기업을 상장시켜 놓고 충분한 성장 자금을 확보할 길은 좁혀놓는다면 기술특례상장의 취지와도 맞지 않는다.

그러면 엉뚱한 일이 벌어질 수 있다. 기술기업이 기술개발보다 상장 유지 기준을 맞추는 데 더 신경 쓰게 되는 것이다. 엔비디아나 팔란티어처럼 오랜 시간 한 분야에 집중해 기술 시장을 주도하는 기업을 키우려면 그만큼 시간을 줘야 한다.

그런데 다른 사업을 인수하거나 반복적인 유상증자와 전환사채 발행 등 본업보다 자본시장 생존에 힘을 쏟는 기업이 오히려 살아남기 쉽다면 정책의 방향이 잘못된 것이다. 기술보다 시가총액과 상장 지위를 지키는 일이 중요해진다면 본말이 전도된 것이다.

국가 연구개발 정책과의 시간표도 맞춰볼 필요가 있다. 정부는 AI와 바이오, 반도체, 우주, 에너지 같은 국가전략기술에 수년짜리 연구개발 과제를 맡기고 기업들은 연구 인력을 채용하고 대응 자금을 투입한다. 국가 R&D 과제 상당수는 몇 년에 걸쳐 수행된다.

그런데 정부 한쪽에서는 “5년 뒤 대한민국에 필요한 기술을 개발하라”고 지원하면서 다른 한쪽 자본시장에서는 단기간의 주가와 시가총액으로 그 기업의 생존을 판단한다면 정책 사이에 충돌이 생긴다. 국가의 기술 정책과 자본시장 정책에도 같은 시계가 필요하다.

그렇다고 기술기업에 영원히 시간을 주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기술특례라는 이름으로 계속 적자를 내면서 아무런 성과도 내지 못하는 기업을 보호한다면 결국 그 피해는 투자자에게 돌아간다. 기술개발이 실제로 진행되고 있는지, 상장 당시 제시했던 기술이 살아 있는지, 임상과 특허·기술이전·수주·제품개발 등 구체적인 성과가 나타나고 있는지 냉정하게 평가해야 한다.

미국 나스닥도 주가와 시가총액 등 엄격한 상장유지 기준을 두고 있다. 혁신기업에 기회를 주는 것과 부실기업을 퇴출시키는 것은 얼마든지 함께 갈 수 있다.

그래서 필자는 기술특례상장제도의 입구와 출구를 같은 철학으로 연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첫째, 기술로 들어온 기업에는 상장 후에도 기술로 평가받을 수 있는 통로가 있어야 한다. 매출과 시가총액뿐 아니라 임상 진행 상황, 특허, 기술 이전, 국가 R&D 수행 실적, 연구개발 마일스톤, 수주 잔고 등 기술이 사업화 방향으로 제대로 움직이고 있는지도 함께 평가해야 한다. 기술이 멈춘 기업은 내보내되 기술이 전진하고 있는 기업에는 시간을 주자는 것이다.

둘째, 산업마다 다른 ‘기술의 시간’을 인정해야 한다. 신약과 AI 소프트웨어의 사업화 기간이 같을 수 없고 우주산업과 반도체 소재기업의 투자 회수 기간도 다르다. 똑같은 상장 유지 기준을 적용하는 것이 형식적으로는 공평해 보여도 실제로는 불공평할 수 있다. 기술평가를 산업 특성에 맞춰 하듯이 상장 이후에도 산업별 개발 주기와 사업화 기간을 평가에 반영할 필요가 있다.

셋째, 제도의 예측 가능성을 높여야 한다. 기준이 엄격하다는 것과 기준이 갑자기 달라진다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5년 뒤 어떤 기준을 충족해야 하는지 미리 알 수 있다면 기업은 거기에 맞춰 기술개발과 자금조달 계획을 짤 수 있다. 그러나 10년을 내다보고 연구개발을 시작한 기업의 생존 기준이 수시로 달라진다면 장기 계획을 세우기 어렵다. 제도를 강화하더라도 충분한 유예기간과 장기적인 일정표를 함께 제시해야 한다. 

기술특례상장 20년은 실패한 제도가 아니다. 최근 5년 코스닥 신규 상장의 약 39%를 차지할 만큼 혁신기업의 중요한 자금 조달 통로로 자리 잡았고, 알테오젠과 리가켐바이오, 레인보우로보틱스 같은 성공 사례도 만들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성공했다고 말하기에도 아직 이르다. 이제부터는 몇 개 기업을 상장시켰느냐가 아니라 그중 몇 개를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기술기업으로 키워냈느냐를 물어야 한다.

다산다사의 진짜 의미도 여기에 있어야 한다. 많이 상장시키고 많이 퇴출시키자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가짜 기술기업은 빨리 내보내되 진짜 기술기업에는 성공을 증명할 충분한 시간을 주는 시장을 만드는 것, 그것이 기술특례상장과 다산다가 함께 가는 길이다.

기술특례상장은 20년 전 대한민국의 기술기업에 “성장할 시간을 주겠다”고 한 자본시장의 약속이었다. 이제 필요한 것은 그 약속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입구에서 한 약속과 출구의 기준을 맞추는 일이다.

우리는 기술특례상장으로 200개가 넘는 기업을 시장에 올려보냈다. 이제 다음 20년의 질문은 하나여야 한다. 그 가운데 제2의 엔비디아가 몇 개 나왔는가. 제2의 엔비디아는 기술평가서에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실패를 견디고 기술을 증명할 시간을 주는 시장에서 태어난다.

<skkim596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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