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삼기의 시사펀치> 45년 배상명령, 이제 제대로 작동해야

2026.08.11 08:19:02 호수 0호

범죄 피해자에게 두 번 재판을 요구해선 안 된다

지난 8일 <YTN>은 ‘인용률 저조·현장 외면 형사배상…재설계 필요’라는 제목으로 배상명령제도의 문제점을 보도했다. 범죄 피해자가 별도의 민사소송을 거치지 않고 형사 재판 과정에서 피해 배상을 받을 수 있도록 만든 제도지만, 실제 재판 현장에서는 제대로 활용되지 못하고 있다는 내용이다.

45년 전 피해자를 위해 만든 제도가 있지만 정작 피해자가 체감하는 문턱은 여전히 높다는 얘기다.

필자가 이 보도에 주목한 이유는 배상명령제도가 최근 만들어진 제도가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배상명령제도는 1981년 제정된 ‘소송촉진 등에 관한 특례법’을 통해 그해 3월1일부터 시행돼 올해로 45년째다. 45년 동안 존재한 제도가 아직도 ‘인용률 저조’와 ‘현장 외면’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면 이제는 배상명령제도가 왜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지를 물어야 한다.

배상명령은 범죄 피해자가 가해자의 형사 재판이 끝난 뒤 피해금을 돌려받기 위해 다시 민사 재판을 해야 하는 불편을 덜어주는 제도다. 일정한 범죄의 형사 재판에서 유죄 판결을 선고할 때 법원이 피해자의 신청이나 직권으로 범죄행위로 발생한 직접적인 물적 피해와 치료비, 위자료 등의 배상을 함께 명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가해자를 처벌하는 형사 절차와 피해자의 손해를 회복하는 절차를 가능한 범위에서 하나의 재판 안에서 해결하자는 취지다.

이 제도가 필요했던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사기를 당한 피해자를 생각해보자. 경찰에 고소하고 수사를 기다리고, 검찰의 기소를 거쳐 형사 재판까지 지켜봤는데 가해자가 유죄 판결을 받아도 피해금이 자동으로 돌아오는 것은 아니다.

돈을 돌려받으려면 다시 민사소송을 제기하고 판결을 받은 뒤 필요하면 가해자의 재산을 찾아 강제집행까지 해야 한다. 범죄로 한번 피해를 입은 사람에게 피해를 회복하기 위해 또 하나의 재판을 하라고 하는 셈이다.

그래서 배상명령제도가 만들어졌다. 피해자가 형사법원과 민사법원을 두 번 오가는 부담을 줄이고 형사 재판 과정에서 확인된 범죄사실과 피해를 활용해 신속하게 피해를 회복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었다. 확정된 배상명령 등이 기재된 유죄판결서 정본은 강제집행에 있어 집행력 있는 민사 판결 정본과 같은 효력을 갖는다.

피해자의 시간과 비용을 줄인다는 점에서 배상명령제도는 처음부터 ‘피해자에게 두 번의 재판을 요구하지 말자’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고 볼 수 있다.

신청 절차도 일반적인 민사소송보다 간단하다. 피해자는 원칙적으로 제1심 또는 제2심 형사 공판의 변론이 끝나기 전까지 사건이 진행되고 있는 법원에 배상명령을 신청할 수 있다. 피해자가 증인으로 법정에 출석한 경우에는 말로 신청하는 것도 가능하다.

변호사를 반드시 선임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제도만 놓고 보면 법을 잘 모르거나 변호사를 선임할 경제적 여유가 부족한 피해자에게 특히 유용한 생활밀착형 사법제도다.

그런데 문제는 현실이다. 배상명령을 신청하는 피해자는 늘어났지만 실제 법원이 이를 받아들이는 비율은 오히려 낮아져 왔다. 2020년 신청 건수는 2만6754건이었지만 2021년 4만3588건, 2022년에는 5만272건으로 크게 늘었다. 반면 인용률은 2020년 49.8%에서 2021년 41.2%, 2022년 35.9%로 떨어졌다.

2024년 1월부터 9월까지 전국 법원에 접수된 3만7165건 가운데 인용된 것은 1만131건으로 인용률이 27.3%에 불과했다. 신청하는 피해자는 늘어나는데 실제 배상명령을 받는 피해자의 비율은 오히려 줄어든 것이다.

물론 인용률이 낮다는 이유만으로 법원이 소극적이라고 단정해서는 안 된다. 배상명령은 형사 재판 안에서 민사상 손해배상 문제까지 함께 판단하는 제도인 만큼 한계가 있다. 피해 금액을 특정하기 어렵거나 피고인의 배상책임 유무와 범위를 둘러싸고 다툼이 있는 사건도 있다.

정신적 손해나 앞으로 발생할 치료비처럼 손해액 산정을 위해 별도의 심리가 필요한 경우도 있다. 이런 문제까지 형사 재판에서 모두 다루다 보면 유·무죄 판단이 늦어지고 피고인의 방어권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지난 8일 <YTN> 보도에서도 법조계의 이런 현실적인 고민이 소개됐다. 유·무죄를 판단하는 형사 재판과 손해배상액을 정하는 민사 재판은 성격이 다른데 이를 한꺼번에 처리하려 하면 형사 재판이 지연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현장에서는 이런 이유로 배상명령 신청 자체를 적극적으로 고려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배상명령을 확대하자는 주장만으로 해결될 수 없는 현실적인 문제가 분명히 존재한다.

그러나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이제는 제도를 없애거나 사실상 방치할 것이 아니라 45년 된 제도를 현실에 맞게 다시 설계해야 한다. 형사 재판에서 피고인의 범죄와 피해 사실, 피해 금액이 객관적인 자료를 통해 상당 부분 확인됐는데도 피해자가 다시 민사법원으로 가야 한다면 배상명령제도의 존재 이유가 약해진다.

형사법원에서는 피해자라고 인정받았지만 돈을 돌려받기 위해 다시 소장을 작성하고 비용을 내고 재판을 기다려야 한다면 피해자의 입장에서는 이해하기 어렵다.

배상명령제도의 활성화는 피해자만을 위한 일도 아니다. 형사 재판에서 이미 범죄사실과 피해액이 명확하게 확인된 사건까지 다시 민사소송으로 넘어가면 법원에는 그만큼 새로운 사건이 쌓이게 된다. 형사 재판에서 해결할 수 있는 배상 문제를 그 안에서 마무리한다면 피해자의 부담을 줄이는 동시에 민사 재판의 사건 부담을 덜어 사법 자원을 보다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특히 주목할 점은 배상명령이 반드시 피해자의 신청에만 의존하는 제도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현행법은 일정한 경우 법원이 직권으로도 배상을 명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런데 실제 재판 현장에서 이 같은 권한이 얼마나 활용되고 있는지도 점검할 필요가 있다.

피해 사실과 금액이 형사 재판 기록을 통해 명확하게 확인되는 사건이라면 피해자가 법을 몰라 신청하지 못했다는 이유만으로 다시 민사소송을 하도록 하는 것이 과연 제도의 취지에 맞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배상명령제도가 시행된 지 불과 3년 뒤인 1984년 대법원은 이미 ‘형사배상명령제도의 활성화’라는 재판예규를 만들었다. 당시 대법원은 배상명령제도의 활용도가 당초 기대에 미치지 못해 제도가 실효를 거두지 못할 우려가 있다고 지적하면서 각급 법원에 제도 홍보와 적극적인 활용을 주문했다.

특히 피해자의 신청이 없더라도 가능한 한 직권에 의한 배상명령을 활용하도록 했다. 1984년에 이미 제기됐던 문제가 40여년이 지난 지금도 반복되고 있다면 이제는 그 이유를 보다 근본적으로 따져봐야 한다.

국민에게 제도를 제대로 알리는 일도 중요하다. 범죄 피해를 당한 일반 국민이 형사 재판 과정에서 배상명령이라는 제도가 있다는 사실과 신청 시기를 스스로 알아내 대응하기는 쉽지 않다. 정부의 생활법령정보 등을 통해 제도가 안내되고 있지만 피해자가 직접 찾아보기를 기다리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수사기관이나 법원이 배상명령 대상이 될 수 있는 사건의 피해자에게 제도의 존재와 신청 방법, 신청 기한을 보다 적극적으로 안내하는 체계를 갖출 필요가 있다.

배상명령을 받아들이지 않는 기준도 보다 세밀하게 들여다봐야 한다. 배상 책임의 유무나 범위가 명확하지 않아 민사소송으로 보내야 하는 사건은 분명히 있다.

그러나 피해액이 형사 재판 기록을 통해 충분히 확인될 수 있는 사건까지 관행적으로 민사소송으로 돌려보낸다면 제도는 있어도 사용하기 어려운 법이 된다. 법원과 법무부가 각하 사유와 사건 유형을 분석해 어떤 사건은 형사 재판 안에서 적극적으로 배상명령을 할 수 있고 어떤 사건은 민사 재판으로 넘겨야 하는지 보다 구체적인 기준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필자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갈 필요가 있다고 본다. 배상명령제도의 성과를 신청 건수나 인용률만으로 평가할 것이 아니라 실제 피해자가 얼마나 빨리 피해를 회복했는지를 기준으로 평가해야 한다. 배상명령이 내려져도 가해자에게 재산이 없다면 돈을 돌려받지 못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배상명령을 몇 건 내렸느냐’가 아니라 ‘피해자의 손실이 얼마나 실질적으로 회복됐느냐’다. 배상명령 이후 강제집행까지 이어지는 과정도 함께 점검해야 한다.

미국 연방 형사사법에도 우리 배상명령과 비슷한 ‘restitution’ 제도가 있다. 법원이 유죄 판결을 받은 피고인에게 범죄로 피해자가 입은 재산 손실과 치료비 등을 배상하도록 명령하는 제도다. 특히 미국에서는 보호관찰기관과 검찰 등이 피해액 산정에 관여하고, 배상명령 이후에는 연방정부가 피해자를 대신해 집행에 나설 수 있는 장치도 두고 있다.

우리도 배상명령을 내리는 데서 그칠 것이 아니라 피해액 산정부터 집행까지 국가가 보다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

형사 재판에서 이뤄지는 피해자와의 합의도 함께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피고인이 피해금을 변제하고 합의하면 피해 회복 노력이 양형에 반영될 수 있다. 그러나 합의와 배상명령은 역할이 다르다. 합의는 당사자가 자발적으로 피해 회복에 뜻을 모으는 것이고, 배상명령은 합의가 이뤄지지 않아도 일정한 요건을 갖추면 형사 재판에서 피해 배상까지 명할 수 있는 제도다.

오히려 합의가 되지 않은 피해자일수록 국가의 피해 회복 절차가 더 필요하다. 이들에게 다시 민사 재판을 하라고 한다면 제도의 취지가 퇴색할 수밖에 없다.

사법제도의 목적은 범죄자를 처벌하는 것만이 아니다. 범죄로 무너진 피해자의 삶을 가능한 한 원래 자리로 돌려놓는 것도 국가의 중요한 책무다. 가해자에게 징역 몇 년을 선고했는지만큼 피해자가 잃어버린 돈과 일상을 얼마나 신속하게 되찾았는지도 사법제도의 성과로 평가해야 한다. 피해자가 형사 재판을 지켜본 뒤 다시 민사 재판까지 해야 한다면 피해자에게 사법 절차 자체가 또 하나의 부담이 될 수 있다.

배상명령제도가 시행된 지 올해로 45년이다. 이제는 제도가 있다는 사실만으로 만족할 때가 아니다. 얼마나 많은 피해자가 이 제도를 알고 있는지, 신청한 사람 가운데 얼마나 많은 사람이 실제 구제를 받았는지, 왜 많은 신청이 받아들여지지 않는지, 법원의 직권 배상명령은 얼마나 활용되고 있는지를 정부와 사법부가 함께 들여다봐야 한다. 필요한 것은 배상명령의 무조건적인 확대가 아니라 제대로 작동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45년 전 이 제도를 만든 이유는 분명하다. 범죄 피해자에게 피해를 돌려받기 위해 또 한 번의 재판을 하라고 요구하지 말자는 것이다.

<skkim5961@naver.com>

 

저작권자 ©일요시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Copyright ©일요시사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