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1팀·정치팀] 오혁진 기자·박희영 기자 = 윤석열정부 외교·안보 라인 실세 김태효 전 안보실 1차장이 구속됐다. 김 전 차장이 왜 구속되지 않는가를 두고 의문이 상당했다. 3대 특검팀과 ‘플리바게닝’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던 이유다. 이번 종합특검팀의 수사는 가장 빛난 성과로 평가받는다. 실제 종합특검팀은 과거 3대 특검팀이 확인하지 못한 부분까지 세밀하게 분석한 것으로 파악됐다.
2024년 12월3일 윤석열씨는 비상계엄 선포 직후 신원식 전 국가안보실장과 김태효 전 안보실 1차장을 대통령 집무실로 불렀다. 윤씨는 두 사람에게 “이번 조치는 자유민주주의 수호를 위한 것이다. 외교와 대외 정책은 그대로 유지될 것”이라는 대통령 단문 메시지를 미국 행정부와 주한미국대사에게 전달하도록 했다.
하달에 하달
윤씨는 해당 메시지를 주한영국·일본대사에게 전달토록 했으며 계엄 이튿날인 12월4일 새벽 1시경에는 비상계엄 담화문을 영문으로 번역해 미국, 일본, 영국 측에 전달하라고 지시하기까지 했다.
김 전 차장의 공소장과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윤씨는 이날 오전 9시경 또다시 김 전 차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대미 ‘설명 요지’ 및 ‘트럼프 측에 대한 추가 설명 요지’를 불러주면서 이를 각각 주한미국대사, 미국 바이든 행정부,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 측에 전달하라고 한 것이다.
김 전 차장은 이를 수기로 받아적은 뒤 외교비서관실을 통해 문서로 만들었고, 윤씨의 지시를 이충면 전 외교비서관을 비롯한 외교부 등에 전송해 해당 내용을 이행하도록 지시했다.
외교비서관실 A 선임행정관이 당시 수첩에 기록한 내용에는 ‘영국 측에도 전달 지시, 일본은 1차장이 직접 연락. 결과 보고하라’ ‘북미국에 연락해 대통령 담화문을 영문 번역, 미·일·영에 전달하라고 지시’ 등이 적혀 있던 것으로 확인됐다.
A씨의 수첩에는 12월3일부터 5일까지의 행적이 수기로 빼곡히 기록됐다. 2차 종합특별검사팀(특별검사 권창영)은 수첩 등을 근거로 김 전 차장이 내란을 정당화하는 과정에 가담했다고 봤다.
하지만 김 전 차장의 진술은 달랐다. 윤씨에게 메시지를 하달받은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이 전 비서관 등에게 “메시지가 미국 측에 전달되면 좋겠다”는 의견을 전달했을 뿐, 외교부에 “전달하라”는 얘기는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이충면 전 비서관이 뭘 했는지 나에게 보고하지 않았다”며 선을 긋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이에 이 전 비서관은 “‘이행하면 좋겠다’는 표현을 쓰지 않았다. 보통 전달하면서 ‘이행하라’고 말하는 것이 일반적 관례”라며 “나를 포함 일반 직원은 다른 나라 공관과 접촉할 권한이 없다. (김 전 차장이) 말하지 않더라도 당연히 외교부를 통해 전달하라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미국·영국·일본으로” 끝없이 내려오는 지시
“전달되면 ‘좋겠다’고 했을 뿐” 돌연 선긋기
김 전 차장은 본인이 대통령 단문 메시지가 주한영국·일본대사에게 전달되는 과정에도 관여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이는 A 행정관 수첩에 ‘일본은 1차장이 직접 연락’이라고 기록된 지시다.
김 전 차장은 당시 상황에 대해 “일본대사와 영국대사로부터 여러 차례 연락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그 사람들이 뭐라도 본국에 보고를 해야겠구나 안달이 나서, 사정이 딱하다고 생각했다”며 “그래서 아침 11시가 넘어 두 대사 생각이 났고, 대통령이 자신의 입장을 밝혔기 때문에 간략한 내용이나마 축약해 설명하면 되겠다는 생각에 외교비서관에게 이야기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 전 비서관은 “영국에 대통령 메시지를 전달하라는 (김 전 차장의) 지시는 정확하다”고 반박했다. A 행정관 역시 본인의 수첩에 12월4일 오전 12시46분 ‘영국 측에 전달 지시’가 있고 난 뒤 오전 1시경 ‘임형태 유럽국장, 주한영국대사(Colin Crooks·콜린 크룩스)와 통화’ ‘결과 보고하라’라고 적었다.
이 전 비서관은 오전 11시에 이루어진 김 전 차관의 지시에는 주한영국대사와 주한일본대사에게 대미 설명 요지를 전달하라는 ‘추가 지시’였다고 주장했다.
김 전 차장은 대통령 담화문을 영문으로 번역해 미국 일본 영국에 배포한 건 이 전 비서관의 ‘단독 행동’이라는 취지로도 말했다. 이 전 비서관이 자신에게 “그건 외교비서관실의 업무가 아닌 것 같다”며 번역본을 전달하지 않기로 하고 전화를 끊었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돌연 그가 단독 행동을 했다는 것이다.
수사 중 사건 관계자에 연락 시도
“접촉만으로도 심리적 압박” 결국 구속
‘이 전 비서관이 피의자의 지시를 거부한 채 직무를 수행하는 게 가능하냐’는 수사관의 질문에 “그게 상상이 안 갔는데, 그렇게 했다”며 “만약 미국에 전문을 보낸다고 찬성했으면 비서관이 혼자 핸들링하게 두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계엄 정당화 문건 전달의 주체가 피의자가 아닌 이 비서관으로 봐야 하느냐’는 질문에도 “미국에 대한 전문 발송은 100% 확신한다”며 “호주, 캐나다, 뉴질랜드도 마찬가지로 아무것도 지시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외교부가 소극적으로 나오면 ‘압박하지 말아달라’ ‘무리해서 추진하지 말아라’ 이렇게 지시했다. 전달하라고 하지 않은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자신의 행동을 부정하는 취지로 말했다.
이 전 비서관은 대통령실 분위기상 단독 행동은 불가능하다고 했다. 그는 “대통령실 분위기가 대통령의 지시사항에 반대하거나 이의제기가 용납되지 않는 분위기”라며 “정부에서 파견된 비서관은 그런 분위기가 하나의 법이자 철학이다. 안보실 분위기는 매우 엄숙하다”고 말했다.
이 전 비서관은 김 전 차장이 설명 요지와 트럼프 측에 대한 추가 서명 요지 전달을 지시하던 당시 “대통령의 지시인가” “외교부를 통해서 이행하느냐” 등의 취지로 물었을 때 김 전 차장이 “반드시 이행해야 한다”고 느껴질 정도로 엄숙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A 행정관에게 지시를 전달했다는 게 이 전 비서관의 설명이다.
이 모든 과정에서 관계 부처에 상당한 압박이 가해지기도 했다.
임형태 유럽국장은 A 행정관으로부터 ‘대통령 단문 메시지’ 관련 지시를 받은 뒤 “이미 계엄이 선포된 상황에서 대외 정책에 변화가 없다는 건 논리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며 “압박을 느낀 저는 콜린 크룩스 주한영국대사에게 전화해 ‘관료로서 대통령실 메시지를 전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고 진술했다.
A 행정관으로부터 연락받은 김상훈 아시아태평양국장 역시 메시지를 전달하라는 지시를 거부할 경우 불이익이 있을 것으로 우려해 이행했다고 토로했다.
드러난 정황
김 전 차장은 종합특검팀의 수사를 받는 과정에서 한 인물이 자신의 주장에 반하는 진술을 한 것을 알게 되자 그에게 직접 연락을 시도했다. 외교·안보라인에 영향력을 가진 그가 사건 관계자에게 접촉을 시도한 것만으로 상당한 압박이 있을 수 있다. 수사기관 입장에서 증거를 인멸하려 한 게 아니냐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결과적으로 이 인물은 김 전 차장의 연락을 받지 않고 종합특검팀에 김 전 차장으로부터 연락이 왔던 사실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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