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의료 체계가 안에서부터 무너져 내리고 있다. 길거리에서 산모와 아이, 응급환자가 갈 곳을 찾지 못해 구급차 안에서 목숨을 잃는 이 참담한 현실은 결코 우연한 사고가 아니다. 이는 한정된 국가 재정인 건강보험료를 생명과 직결된 필수 의료에 먼저 쓰지 않고, 오직 표를 얻기 위해 대중 영합적인 불요불급한 의료에 탕진해 온 정치권이 만들어낸 인재다.
이제는 필수 의료 의료진과 필수 의료 강화를 열망하는 환자단체가 한목소리로 외쳐야 할 새로운 표어가 필요한 시점이다.
과거 보건의료계를 지배했던 대표적인 표어는 “돈보다 생명이다”였다. 주로 환자단체를 포함한 시민단체가 보건당국과 병원, 의사를 공격하는 무기로 사용하며 건강보험 보장성을 무조건 확대하라는 주장의 근거로 쓰였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마주한 진실은 냉혹하다. 잘못된 건강보험 지불 정책이 필수 의료 붕괴의 가장 큰 원인이라는 사실을 인식해야 할 때다. 이에 과거의 구호에 미러링하는 댓구를 달아 정치인과 보건당국, 나아가 국민 전체의 각성을 촉구하는 새로운 선언인 “표보다 생명이다!”를 제시하고자 한다.
이 새로운 표어는 건강보험 정책이 포퓰리즘에 휩쓸려 의학적 근거가 부실하고 불요불급한 항목에 대한 급여를 늘린 결과가 결국 낮은 필수 의료 수가의 원인이 되어, 필수 의료와 응급의료의 붕괴를 초래하고 있음을 날카롭게 비판한다. 연이어 발생하고 있는 산모 뺑뺑이 태아 사망 사건은 현 대한민국 의료의 왜곡된 단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런데, 생사의 갈림길에 선 임산부와 아이들이 길거리에서 방치되는 참극 속에서 보건복지부가 국민 앞에 내놓은 시급한 의제는 고작 탈모 급여화 토론회였다. 국민의 생명권이 위협받는 비상시국에 정치가 조장한 의제의 우선순위가 고작 대머리 치료비 지원이라는 사실은 경악을 금치 못하게 하며, 생명보다 표가 먼저인 포퓰리즘 정치의 극치를 증명한다.
언뜻 봐서는 “표보다 생명이다”라는 구호가 단번에 이해되지 않을 수 있으므로, 표어 확산 초반에는 이 비판적 맥락과 설명을 함께 전파할 필요가 있다.
이 같은 정치적 기만 속에서 지방의 필수 의료 인프라는 소리 없이 소멸하고 있다. 최근 27년간 제주 출산 건수의 1/4을 감당해 온 서해산부인과의 폐원 소식은 매우 상징적인데, 해당 병원장은 몇 년간 동료 원장과 둘이서 365일 24시간 당직을 서야 했던 체력적 임계점을 토로했다.
더욱이 분만 후 과다 출혈로 위독했던 산모가 인근 종합병원들의 전원 거부로 개인 병원 수술실에서 6시간 동안 사투를 벌여야 했던 아찔한 사건은 지방 필수 의료의 붕괴가 얼마나 위험 수위에 도달했는지를 증명하며, 지역 거점 종합병원조차 산모를 받을 여력이 없음을 여지없이 보여준다.
상황이 이토록 엄중함에도 정치권은 여전히 근본적인 처방 대신 지방의사제 같은 허울 좋은 구호만 외치고 있다. 의사 수만 강제로 늘리거나 묶어두면 지방의 필수 의료가 살아날 것이라는 발상은 현장의 본질을 완전히 왜곡한 오판이며, 강제성 제도만으로는 밤샘 당직의 피로감과 분만 사고 시 따르는 사법적 중압감을 해결할 수 없다.
진정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분만 수가를 파격적으로 인상해 생명을 다루는 위험도에 걸맞은 보상을 제공해야 하고, 이와 동시에 고위험 분만 과정에서 발생하는 불가항력적 사고에 대해 국가가 100% 책임진다고 선언해야 한다.
그렇게 용을 써야 5-6년 후에야 개선의 기미가 보이기 시작할 것이다. 이 모든 비극의 뿌리에는 대중의 눈앞에 달콤한 사탕만 쥐여주며 정작 국가의 뼈대를 무너뜨리는 포퓰리즘 정치가 존재한다. 달콤한 복지 공약은 듣기에 좋으나 한정된 재원을 표가 되는 표면적 복지에 쏟아붓는 사이 진짜 살려야 할 국민의 목숨은 우선순위에서 밀려났다.
그렇기에 이제는 국민 전체가 깨어나 선심성 공약 뒤에 숨은 정치인의 옥석을 엄격히 가려내야 한다. 생명과 직결된 필수 의료 인프라를 구축하는 일은 당장 눈에 보이지 않고 표로 연결되지도 않지만, 탈모 급여화나 선심성 복지는 즉각적인 표를 가져다준다.
정치인들이 후자를 선택하도록 방치한 책임은 감언이설에 속아온 우리 자신에게도 존재하며, 국민이 먼저 포퓰리즘 정치인을 심판하지 못하면 다음 뺑뺑이의 피해자는 나와 내 가족이 될 수밖에 없다.
당장 달콤한 공약이 아니라 국가의 백년대계와 국민의 생명을 진정으로 걱정하는 책임 있는 정치인을 선택하고 복지의 우선순위를 바로잡는 엄중한 심판관이 돼야 한다. 의료진과 환자가 함께 “표보다 생명이다!”를 외치며 포퓰리즘에 맞설 때, 길거리에서 스러져간 아이들과 산모들의 죽음을 헛되게 하지 않는 유일한 길이 열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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