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새벽 열린 2026 북중미월드컵 3·4위전은 잉글랜드가 프랑스를 6대 4로 꺾으며 막을 내렸다. 그러나 필자는 단순한 3·4위 결정전보다 먼저 역사 한 장면을 떠올렸다. 축구공이 굴러가는 경기장 위로 중세 유럽 전쟁과 제2차 세계대전의 기억이 겹쳐졌기 때문이다.
잉글랜드와 프랑스는 현재 유럽의 동반자이지만, 중세에는 116년 동안 싸운 '백년전쟁'의 앙숙이었다. 결국 프랑스가 승리했지만, 영국인들에게 프랑스는 오랫동안 반드시 넘어야 할 경쟁 상대였다.
그래서 이번 잉글랜드의 승리는 단순한 월드컵 한 경기 이상의 상징처럼 느껴졌다. 마치 수백년 전 패배의 기억을 현대 축구에서 조금이나마 되갚는 듯한 인상마저 주었다.
프랑스를 바라보던 생각은 다시 제2차 세계대전으로 이어졌다. 1944년 6월 연합군은 프랑스 북서부 노르망디 해안에 상륙해 유럽 해방의 결정적인 전환점을 만들었다. 프랑스 해방은 바로 이 노르망디 상륙작전에서 시작됐다. 더욱 흥미로운 사실은 '노르망디'라는 이름의 유래다.
10세기 노르웨이계 바이킹인 노르드인들이 이 지역에 정착하면서 '노르드인의 땅(Normandy)'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프랑스 역사 속에도 오래전부터 노르웨이의 흔적이 남아 있었던 셈이다.
백년전쟁의 잉글랜드와 프랑스, 노르망디 상륙작전, 그리고 노르웨이 바이킹의 역사까지 생각이 이어지자 자연스럽게 필자의 머릿속에는 노르웨이의 '괴물 공격수' 엘링 홀란이 떠올랐다. 한때 노르웨이는 바이킹으로 유럽의 역사를 흔들었고, 이번 월드컵에서는 홀란이라는 한 선수가 세계 축구의 흐름을 흔들었다.
이번 월드컵의 주인공은 결승에 오른 팀들의 선수만이 아니다. 오히려 작은 북유럽 국가 노르웨이를 사상 처음 월드컵 8강으로 이끈 홀란이야말로, 오랜 역사 속에서 반복돼 온 '노르웨이의 존재감'을 오늘날 축구라는 무대에서 다시 세계에 각인시킨 인물이다.
홀란은 우승컵을 들지 못했고 득점왕에 오르지도 못했다. 노르웨이의 도전도 잉글랜드와의 8강전에서 멈췄다. 그러나 브라질을 무너뜨리고 작은 나라 노르웨이를 세계 축구의 중심에 세운 그의 질주와, 잉글랜드전에서 득점 취소의 빌미가 된 몸싸움 뒤 굳어버린 표정은 우승 후보들의 화려한 골 장면만큼이나 강렬하게 남았다.
승리의 순간에는 누구보다 크게 환호받았고, 패배의 순간에는 누구보다 먼저 국민의 시선을 받아야 했던 선수였다.
이번 월드컵에서 영웅의 환희와 에이스의 책임을 동시에 보여준 인물을 한 명만 꼽으라면 필자는 주저하지 않고 홀란을 선택하고 싶다.
그런데 필자의 생각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월드컵 내내 홀란을 바라볼 때마다 공교롭게도 전혀 다른 분야의 한 인물이 자꾸만 겹쳐 보였다. 같은 기간 이란 공습 등으로 세계 언론의 주목을 받았던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 장관이다.
한 사람은 축구장에서 국가를 대표하는 최전방 공격수이고, 다른 한 사람은 국제정치와 안보의 최전선에 선 국방 책임자다. 살아온 길과 맡은 역할은 전혀 다르지만 두 사람은 놀라울 만큼 닮은 인상을 주었다. 그것은 뒤로 넘긴 금발 머리와 강한 체격 같은 외모의 유사성만은 아니었다.
두 사람은 묘하게 닮았다. 1980년생 헤그세스와 2000년생 홀란은 스무살의 나이 차이가 나지만 뒤로 넘긴 금발 머리와 깊게 들어간 눈매, 강한 턱선과 당당한 체격, 자신감 넘치는 표정까지 놀라울 정도로 비슷한 인상을 준다. 둘 다 190cm 안팎의 압도적인 체격을 갖췄고, 사람들의 시선을 한순간에 사로잡는 카리스마와 스타성을 지녔다.
사진만 얼핏 보면 서로 다른 분야의 인물이라는 사실을 잊을 정도다.
외모만 닮은 것도 아니다. 두 사람 모두 강한 승부욕을 지녔고 자신의 신념을 숨기지 않는 성격으로 유명하다. 홀란은 세계 최고의 공격수답게 어떤 수비수 앞에서도 주눅 들지 않는 자신감을 보여 왔고, 헤그세스 역시 <폭스뉴스> 진행자와 군 장교를 거쳐 국방 장관에 오른 뒤 미국의 군사력 회복을 강하게 주장하며 국제사회의 관심을 받고 있다.
팬들에게는 영웅이지만 반대편에서는 비판도 적지 않은 논쟁적인 인물이라는 점까지 닮았다.
지난 16일 미국 마이애미에서는 200명이 넘는 사람이 참가한 '홀란 닮은꼴 대회'가 열리며 홀란 신드롬을 다시 한번 보여주었다. SNS에서는 그의 헤어스타일과 걸음걸이, 세리머니를 따라 하는 영상이 끊임없이 올라오고 있다. 14일에는 월드컵 8강 신화를 이룬 노르웨이 대표팀이 귀국하자 10만명이 넘는 국민이 오슬로 거리를 가득 메우며 홀란을 영웅처럼 맞이했다.
홀란은 단순한 축구 선수를 넘어 노르웨이를 상징하는 국가적 아이콘이 된 것이다.
헤그세스 역시 미국에서 비슷한 상징성을 갖고 있다. 지난 15일 그는 장병들의 체력과 전투력 강화를 위해 30세 이상 군인을 대상으로 남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 검사를 도입하겠다는 정책을 발표하며 세계적인 논란의 중심에 섰다. 찬성하는 사람들은 강한 군대를 만들기 위한 현실적인 조치라고 평가했고, 반대하는 사람들은 과도한 남성성 강조라고 비판했다.
그러나 누구도 부인하기 어려운 사실은 헤그세스가 지금 미국 국방 정책을 상징하는 얼굴이라는 점이다.
필자가 두 사람을 함께 떠올리게 된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한 사람은 축구장에서 국가를 대표하는 최전방 공격수고, 다른 한 사람은 국제정치 무대에서 국가 안보의 최전선에 선 국방 책임자다. 홀란은 골로 국민에게 희망을 주고, 헤그세스는 국방으로 국민에게 안전을 약속한다. 무대는 다르지만 국가를 대표해 가장 앞에 선다는 점에서는 너무도 닮았다.
특히 이번 북중미월드컵은 홀란의 존재감을 다시 한번 전 세계에 각인시킨 무대였다. 노르웨이는 그동안 세계 축구에서 변방으로 평가받았다. 뛰어난 선수는 있었지만 월드컵과는 인연이 멀었다. 그러나 홀란은 월드컵 예선에서 압도적인 득점력을 앞세워 조국을 28년 만에 본선 무대로 이끌었고, 본선에서도 경기마다 해결사 역할을 하며 노르웨이를 사상 처음으로 월드컵 8강까지 올려놓았다.
그의 발끝 하나가 노르웨이 축구의 역사를 새로 쓴 것이다.
그 과정에서 가장 큰 반전은 역시 브라질전이었다. 축구 역사상 다섯차례나 월드컵 정상에 오른 브라질은 누구나 인정하는 우승 후보였다. 그러나 홀란은 특유의 폭발적인 돌파와 결정력을 앞세워 브라질 수비진을 흔들었고, 노르웨이는 세계를 놀라게 하는 승리를 거두며 8강 진출이라는 기적을 만들어냈다.
세계 언론은 "홀란이 브라질을 무너뜨렸다"고 평가했고, 노르웨이 국민은 그를 새로운 국민 영웅으로 떠받들기 시작했다.
그러나 홀란에게 시험은 결국 잉글랜드와의 월드컵 8강전에서 찾아왔다. 브라질전까지 국민 영웅이었던 홀란은 단 한 번의 몸싸움으로 영웅과 책임 사이의 경계에 서게 된다. 승리하면 아무도 기억하지 않았을 장면이 패배와 함께 축구 역사에 남게 됐고, 그 순간 우리는 리더가 왜 누구보다 신중해야 하는지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현지시각 지난 11일(한국시각 12일) 열린 잉글랜드와의 월드컵 8강전은 노르웨이 축구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경기였다. 브라질을 꺾으며 자신감을 얻은 노르웨이 국민은 "이번에는 정말 해낼 수 있다"는 기대를 품었고, 그 중심에는 역시 홀란이 있었다. 누구도 의심하지 않았다. 이번에도 해결사는 홀란일 것이라고 믿었다.
경기는 예상대로 팽팽했다. 양 팀은 한 치도 물러서지 않았고, 작은 실수 하나가 승패를 가를 정도로 치열한 접전을 이어갔다. 홀란은 직접 골을 넣지는 못했지만 상대 수비수 두세명을 끌고 다니며 동료들에게 공간을 만들어 줬고, 잉글랜드 수비진은 경기 내내 홀란을 막는 데 가장 많은 힘을 쏟았다.
에이스의 존재 자체가 상대 전술을 바꾸고 있었던 것이다.
후반 11분, 마침내 노르웨이 국민이 기다리던 순간이 찾아왔다. 코너킥 상황에서 공이 골망을 흔들었고, 선수들은 서로를 끌어안으며 4강 진출을 확신하는 듯 환호했다. 그러나 그 기쁨은 오래가지 못했다. 주심은 비디오판독(VAR)을 선언했고 경기장은 순식간에 긴장감으로 얼어붙었다. 판독 결과는 노르웨이에는 너무도 가혹했다.
코너킥이 올라오기 직전 홀란이 상대 선수와 몸싸움을 하는 과정에서 파울이 있었다는 이유로 득점이 취소된 것이다.
물론 골을 넣은 선수는 홀란이 아니었다. 하지만 득점 취소의 빌미는 홀란의 행동에서 나왔다. 직접 득점하지 않았더라도 작은 몸싸움 하나가 팀 전체의 운명을 바꾸는 결과를 가져왔다. 만약 그 장면이 그대로 인정됐다면 홀란은 다시 한번 노르웨이를 4강으로 이끈 영웅으로 기억됐을 것이다. 그러나 스포츠에는 '만약'이 없다. 결과가 바뀌자 같은 장면은 영웅담이 아니라 가장 큰 아쉬움으로 남게 됐다.
물론 이번 패배를 홀란 한 사람의 책임으로 돌리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 축구는 11명이 함께 뛰는 스포츠고, 감독의 전술과 동료들의 경기력, 운까지 모두 결과에 영향을 미친다. 실제로 노르웨이는 경기 막판까지 최선을 다했지만 끝내 1대 2로 패했다. 그럼에도 국민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홀란에게 향했다. 가장 큰 기대를 받았던 선수였기 때문이다. 이것이 에이스가 감당해야 하는 숙명이다.
이 장면을 보며 필자는 다시 헤그세스를 떠올렸다. 헤그세스도 미국 국방의 최전방에서 같은 책임을 지는 사람이다. 국방 장관의 판단 하나도 국가의 운명을 바꿀 수 있다. 그래서 국방 장관에게 필요한 것은 강한 이미지보다 신중한 판단이다. 힘을 사용할 줄 아는 것만큼 언제 사용하지 말아야 하는지를 아는 것이 중요한 자리다.
결국 최전방에 선 사람의 가장 큰 무기는 힘 자체가 아니라, 그 힘을 언제 사용하고 언제 절제할지를 판단하는 능력이다. 홀란의 작은 몸싸움 하나가 경기의 흐름을 바꾸었듯이, 국방 장관의 판단 하나도 외교와 경제, 국민의 생명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강한 체력과 강한 군대는 필요하지만 국가를 지키는 것은 근육만이 아니다. 냉정한 판단력과 절제된 리더십이 함께할 때 비로소 힘은 국민을 지키는 수단이 된다. 영웅은 승리할 때 만들어지지만, 진정한 리더는 실패의 책임까지 감당할 때 완성된다.
우리는 영웅을 너무 쉽게 만들고 또 너무 쉽게 무너뜨리는 경향이 있다. 승리하면 모든 공을 한 사람에게 돌리고, 패배하면 모든 책임도 한 사람에게 씌운다. 그러나 축구는 한 사람이 하는 경기가 아니다. 감독의 전략과 동료 선수들의 희생, 조직력과 국민의 응원이 함께할 때 승리가 완성된다.
국가 운영도 마찬가지다. 대통령 한 사람이나 장관 한 사람만으로 나라가 움직이는 것은 아니다. 수많은 공직자와 국민이 함께할 때 국가의 경쟁력이 만들어진다.
그럼에도 국민은 왜 최전방에 선 사람에게 더 엄격한 기준을 적용할까? 이유는 간단하다. 그들은 국가를 대표하는 얼굴이기 때문이다. 홀란은 노르웨이 축구를 대표하고, 헤그세스는 미국 국방을 대표한다. 대표는 개인이 아니라 국가의 상징이다. 그래서 평범한 선수의 실수는 잊혀도 에이스의 실수는 오래 기억되고, 일반 공직자의 판단은 지나가도 국가 지도자의 결정은 역사가 된다. 대표가 된다는 것은 권한을 얻는 동시에 가장 무거운 책임을 떠안는다는 뜻이다.
홀란은 이번 월드컵에서 두 가지를 모두 경험했다. 브라질을 꺾으며 노르웨이를 사상 첫 월드컵 8강으로 이끈 영웅이, 잉글랜드전에서는 작은 몸싸움 하나로 가장 큰 아쉬움을 남긴 선수도 됐다. 그러나 이것이 홀란의 실패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는 이번 대회를 통해 세계 최고의 공격수는 골만 넣는 선수가 아니라 책임까지 감당하는 선수라는 사실을 몸소 배웠을 것이다.
진정한 리더는 실수를 하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 실수를 성장의 자산으로 만드는 사람이다.
두 사람의 진정한 공통점은 금발 머리나 강한 체격이 아니다. 국민의 기대를 가장 앞에서 받는 만큼 누구보다 무거운 책임을 져야 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결국 국민이 두 사람에게 기대하는 것은 화려한 외모도, 강한 힘도 아니다. 위기의 순간에도 흔들리지 않는 올바른 판단과 끝까지 책임지는 자세다.
이번 월드컵은 우리에게 하나의 교훈을 남겼다. 백년전쟁도, 노르망디 상륙작전도, 월드컵도 결국 역사의 주인공은 힘만 강한 사람이 아니었다. 힘을 책임으로 바꿀 줄 아는 사람이 역사를 만들었다. 경기를 이기는 것은 실력이지만, 역사를 남기는 것은 언제나 책임감과 절제된 리더십이다. 홀란도, 헤그세스도 앞으로 더 많은 승리와 더 큰 시험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그때 국민은 그들의 힘보다 판단을, 성공보다 책임을 먼저 기억할 것이다.
영웅은 박수 속에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책임을 끝까지 짊어질 때 비로소 역사 속의 진정한 리더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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