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6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삶으로 체감하는 대체불가 대한민국, 국민과 함께하는 두 번째 업무보고’에서 눈길을 끄는 발언이 나왔다. 국민참여단으로 참석한 경기도 화성의 한 아파트 관리 업무 종사자가 최근 방영된 드라마 <아파트>를 언급한 것이다.
그는 드라마의 영향으로 아파트 관리 현장에서 성실하게 일하는 종사자들까지 부정적인 시선과 오해를 받고 있다며, 일부 잘못된 사례와 대다수 관리 종사자를 구분해서 봐 달라는 취지로 이재명 대통령에게 호소했다.
필자는 이 발언을 들으며 궁금증이 생겼다. 도대체 드라마 <아파트>가 공동주택 관리 현장을 어떻게 그렸기에 실제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이 대통령에게 억울함을 호소했을까?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JTBC 토일드라마 <아파트>는 방송과 동시에 넷플릭스에서도 공개되며 많은 관심을 모으고 있었다. 그래서 넷플릭스를 통해 지난 11일부터 방영된 1~2회를 직접 찾아 시청했다.
JTBC 토일드라마 <아파트>는 아파트라는 가장 익숙한 생활 공간을 배경으로 관리비와 공사비, 관리사무소와 입주자대표회의를 둘러싼 이해관계와 갈등을 범죄와 코미디 형식으로 풀어내는 작품이다. 물론 이 드라마는 극적인 재미를 위해 현실보다 과장하거나 허구를 가미한 작품이다.
그러나 많은 시청자가 "혹시 우리 아파트도 저렇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면, 이 드라마는 우리 사회에 중요한 질문 하나를 던지는 셈이다.
드라마의 기획 의도는 단순한 범죄극에 머물지 않는다. 아파트 안에 쌓여 있는 ‘애먼 돈’을 노리고 입주자대표회의 회장 선거에 뛰어든 전직 조직폭력배가 의도치 않게 아파트 비리를 파헤치고, 그 과정에서 주민들의 신뢰를 얻으며 영웅으로 변해가는 이야기다.
관리비와 장기수선충당금, 입주자대표회의와 관리사무소를 둘러싼 현실적인 문제를 범죄와 코미디, 인간관계 속에 자연스럽게 녹여내는 점이 인상적이다.
1~2회에서는 경찰의 급습으로 조직이 하루아침에 무너지면서 전직 조폭 박해강이 새로운 목표를 찾는 과정이 펼쳐진다. 출소한 박해강은 고급 아파트 ‘트루밸류’에 장기수선충당금 178억원이 쌓여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는 “돈은 금고가 아니라 사람 마음에 있다”는 생각으로 돈을 지키는 사람들의 마음부터 얻겠다며 아파트 입주와 입주자대표회의 회장 선거를 새로운 작전으로 선택한다.
박해강은 변호사 시험에 낙방한 사실을 숨기고 있는 강하리와 계약을 맺고 가짜 부부로 위장해 아파트에 입주한다. 그러나 그들 앞에는 기존 입주자대표회의 세력과 주민 여론, 아파트를 둘러싼 여러 이해관계가 기다리고 있다. 단지 내 주차 갈등을 해결하며 주민들의 주목을 받은 박해강은 마침내 “여러분의 관리비, 한 푼도 허투루 쓰지 않겠다”며 회장 선거 출마를 선언한다.
178억원을 둘러싼 아파트 접수 작전이 시작되는 동시에 그 돈 뒤에 숨은 더 복잡한 비밀도 예고된다.
우리나라 국민의 절반 이상은 아파트를 비롯한 공동주택에서 생활한다. 아파트는 단순한 주거시설이 아니라 수백, 수천세대가 함께 살아가는 하나의 작은 사회다. 공동의 시설을 함께 사용하고, 공동의 비용을 부담하며, 공동의 규칙 속에서 살아간다. 그래서 아파트 관리가 투명하고 공정해야 하는 이유는 단순히 돈의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관리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면 공동체도 함께 흔들릴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있다. 대부분의 사람은 자동차를 수리하면 견적서를 꼼꼼히 확인하고, 식당에서 밥을 먹고도 영수증을 살펴본다. 하지만 매달 수십만원씩 납부하는 아파트 관리비는 총액만 확인하고 지나치는 경우가 많다. 관리비 명세서에 적힌 숫자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어떤 계약을 통해 지출됐는지, 공사비가 적정했는지를 따져보는 주민은 많지 않다. 그 무관심이 때로는 공동주택 관리의 가장 큰 빈틈이 된다.
관리비는 관리사무소의 돈이 아니다. 입주민 한 사람 한 사람이 땀 흘려 번 소득 가운데 일부를 공동생활을 위해 모아놓은 공동의 재산이다. 세대별로는 몇십만원에 불과해 보일 수 있지만 수백세대가 모이면 연간 수십억원이 되고, 대단지에서는 수백억원 규모의 자금이 운용되기도 한다.
웬만한 중소기업의 매출이나 작은 지방자치단체의 일부 예산에 맞먹는 규모다. 그만큼 관리의 투명성과 책임성도 높아져야 한다.
문제는 돈이 많이 모이는 곳에는 언제나 유혹도 함께 존재한다는 점이다. 공사 계약 하나만 잘못 체결해도 수천만원에서 수억원의 차이가 발생할 수 있고, 용역 계약이나 시설 보수, 장기수선충당금 집행 과정에서도 불필요한 지출이 생길 수 있다. 관리 절차가 불투명하고 견제 장치마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면 주민들의 소중한 재산은 어느 순간 주인 없는 ‘애먼 돈’처럼 취급될 위험이 있다. 주민들이 가장 우려하는 것도 바로 이 지점이다.
실제 잠실 대단지 아파트에 거주하는 최모 씨는17일 필자와의 통화에서 “드라마 <아파트>를 본 입주민들 사이에서는 장기수선충당금이 실제 은행 통장에 제대로 예치돼있는지 확인해 봐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오면서 단지 분위기가 어수선해졌다"고 말했다.
그는 "관리사무소와 입주자대표회의가 서로 짜고 장기수선충당금이나 공사비를 빼돌린 것 아니냐는 근거 없는 소문까지 돌고 있다"며 "드라마 한 편이 주민들의 불신을 이렇게까지 키울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물론 국민참여단의 호소처럼 모든 관리사무소와 입주자대표회의를 의심의 눈으로 바라봐서는 안 된다. 전국의 수많은 관리사무소 직원들은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주민들의 안전과 생활 편의를 위해 묵묵히 일하고 있다. 전기와 수도, 승강기와 소방시설을 관리하고 각종 민원을 처리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성실하게 일하는 관리 인력의 노고는 충분히 존중받아야 한다. 다만 일부의 부실한 관리와 비리가 전체 공동주택 관리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리고 있는 현실도 외면해서는 안 된다.
드라마의 힘은 현실을 그대로 재현하는 데만 있지 않다. 우리가 익숙함 속에서 지나쳤던 현실을 다시 바라보게 만드는 데 있다. 뉴스로 접할 때는 남의 일처럼 느꼈던 문제도 드라마 속 인물과 사건을 통해 만나면 자신의 일처럼 받아들이게 된다. 사회적 반향을 일으킨 작품들은 때때로 가려져 있던 문제를 공론장으로 끌어내고 정부와 정치권의 제도 개선 논의를 촉발하기도 한다.
<아파트> 역시 공동주택 관리의 투명성이라는 오래된 과제를 다시 사회의 중심으로 불러내고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모든 관리사무소를 향한 막연한 불신도, 입주자대표회의에 대한 무조건적인 비난도 아니다. 중요한 것은 주민들이 자신이 낸 돈의 흐름을 쉽게 확인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다. 관리사무소는 관리비가 어디에 어떻게 사용됐는지 설명할 수 있어야 하고, 입주자대표회의는 어떤 절차와 판단을 거쳐 계약과 공사를 결정했는지 공개해야 한다. 투명하게 공개할수록 신뢰는 커지고, 설명을 피할수록 의심은 깊어진다.
아파트 관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돈을 많이 쓰는 것이 아니라 돈을 제대로 쓰는 것이다. 아파트에서 운용되는 돈은 일반 관리비만이 아니다. 장기수선충당금과 각종 공사비, 승강기 유지보수비, 청소·경비 용역비, 소독비, 조경관리비, 광고수입, 재활용품 판매수입, 공용시설 사용료 등 다양한 자금이 함께 관리된다. 항목과 성격은 다르지만 모두 입주민의 재산과 직결되는 돈이다. 작은 금액이라도 오랜 기간 쌓이거나 여러 세대가 함께 부담하면 결코 작은 돈이 아니다.
특히 장기수선충당금은 주민들이 장기간 적립하는 미래의 자산이다. 승강기 교체와 외벽 보수, 옥상 방수, 급수·배관 교체처럼 대규모 공사를 위해 마련하는 돈인 만큼 더욱 엄격하게 관리돼야 한다. 공사가 정말 필요한지, 시기는 적정한지, 공사비 산정은 합리적인지, 경쟁입찰은 공정하게 진행됐는지를 주민들이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수십억원에서 수백억원에 이르는 적립금이 단순히 서류 몇 장과 회의 몇 번으로 집행돼서는 안 된다.
공사와 용역 계약도 마찬가지다. 아파트에서는 시설 보수와 조경 정비, 외벽 도색, CCTV 교체, 승강기 점검 등 크고 작은 계약이 끊임없이 체결된다. 이 과정에서 특정 업체와의 유착이나 수의계약 남용, 담합과 공사비 부풀리기 같은 문제가 발생한다면 그 부담은 결국 관리비를 내는 주민에게 돌아간다. 계약의 공정성이 곧 관리의 신뢰다. 일정 금액 이상의 공사와 용역에 대해서는 계약 과정과 업체 선정 기준, 견적 비교 내용까지 더욱 상세히 공개할 필요가 있다.
입주자대표회의의 책임도 무겁다. 대표회의는 주민을 대신해 예산을 심의하고, 중요한 계약과 공사를 승인하며, 관리사무소를 견제하는 기구다. 주민을 대표하는 자리가 개인의 영향력을 행사하거나 특정한 이익을 챙기는 자리가 되어서는 안 된다. 대표회의와 관리사무소가 서로 견제와 균형을 이루면 공동주택은 건강하게 운영될 수 있지만, 두 조직이 서로를 감시하지 않고 이해관계를 공유하는 구조가 된다면 주민을 보호할 장치는 사라지게 된다.
따라서 회의록 공개와 의사결정 과정의 투명성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회의 결과만 간단하게 알릴 것이 아니라 어떤 안건이 상정됐고, 누가 어떤 의견을 냈으며, 어떤 근거로 결정했는지를 주민들이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입주자대표회의 구성원의 이해충돌 가능성도 철저히 점검해야 한다. 본인이나 가족, 지인과 관련된 업체가 계약에 참여한다면 심의와 의결에서 배제하는 원칙이 명확하게 지켜져야 한다.
투명한 관리는 누군가를 불편하게 만들기 위한 장치가 아니다. 오히려 정직하고 성실하게 일하는 관리사무소와 입주자대표회의를 보호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모든 계약과 회계가 공개되고, 모든 절차가 기록으로 남는다면 근거 없는 의혹과 불필요한 갈등도 줄어든다. 투명성은 감시를 위한 수단인 동시에 신뢰를 증명하는 방패다. 감출 것이 없는 조직일수록 공개를 두려워할 이유도 없다.
공동주택 관리에 대한 현장 감독과 감사의 일차적 권한은 시·군·구 등 지방자치단체에 있다. ‘공동주택관리법’에 따라 지방자치단체는 관리규약 준수 여부를 점검하고, 필요한 경우 감사와 행정지도를 실시하며 위법 사항에 대해 행정처분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전국의 수많은 공동주택을 각 지방자치단체의 한정된 인력과 예산만으로 꼼꼼하게 감독하는 데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
그래서 중앙정부가 보다 적극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다. 공동주택 관리를 지방자치단체에만 맡겨둘 것이 아니라 국가 차원의 관리 투명성 강화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관리비 공개 시스템을 고도화하고 전자계약을 확대하며, 회계와 계약 관리 기준을 전국적으로 표준화해야 한다. 중앙정부는 공통된 기준과 시스템을 마련하고, 지방자치단체는 현장 감독과 집행을 담당하는 체계를 확립해야 한다.
사회적 관심이 높아진 지금 공동주택 관리체계를 전반적으로 점검하는 것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모든 아파트를 일시에 전수조사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면 일정 규모 이상 단지를 대상으로 정기적인 표본감사를 확대하고, 민원과 이상 징후가 반복되는 단지에는 특별점검을 실시할 수 있다. 관리비와 공사비의 규모, 장기수선충당금 적립·사용 실태, 계약업체의 반복 수주 여부 등을 기준으로 위험도가 높은 단지를 선별하는 방식도 가능하다.
인공지능과 데이터 분석 기술도 활용할 수 있다. 최근 AI는 회계의 이상 징후와 비정상적인 계약 패턴을 찾아낼 수 있는 수준까지 발전하고 있다. 일정 금액 이상의 공사 계약, 특정 업체와의 반복적인 거래, 비슷한 규모의 다른 단지보다 지나치게 높은 관리비, 급격하게 늘어난 지출 항목 등을 자동으로 분석한다면 지방자치단체의 부족한 인력을 보완할 수 있다.
기술은 사람을 대신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사람이 미처 발견하지 못한 위험을 먼저 찾아내는 도구가 되어야 한다.
드라마 한 편이 곧바로 우리 사회를 바꿀 수는 없다. 그러나 한 편의 드라마가 국민의 관심을 바꾸고, 커진 관심이 제도를 움직이며, 개선된 제도가 공동체를 바꾸는 일은 충분히 가능하다. 중요한 것은 드라마가 끝난 뒤에도 문제의식을 이어가는 것이다. 이번 관심이 일회성 화제로 끝난다면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겠지만, 공동주택 관리의 투명성과 책임성을 높이는 계기가 된다면 드라마는 중요한 사회적 역할을 한 셈이다.
아파트의 ‘애먼 돈’은 결코 눈먼 돈이 아니다. 주민 한 사람 한 사람이 땀 흘려 번 소득으로 마련한 소중한 공동재산이다. 그 돈이 한 푼도 허투루 쓰이지 않도록 하는 것은 관리사무소의 책임이자 입주자대표회의의 의무이고, 지방자치단체의 감독 책임이며, 중앙정부의 제도적 책무다. 입주민 역시 자신의 재산을 스스로 살피고 공동체 운영에 참여해야 한다.
드라마가 우리 사회에 “우리 아파트는 정말 괜찮은가”라는 질문을 던졌다면, 이제 그 질문에 답할 차례는 우리 모두에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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